최근 수정 시각 : 2018-10-16 15:23:49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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虐殺, Massacre, Bloodbath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금지된 방법에 의한 전쟁범죄) ① 국제적 무력충돌 또는 비국제적 무력충돌과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1. 민간인 주민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거나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한 민간인 주민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
2. 군사목표물이 아닌 민간 대상물로서 종교·교육·예술·과학 또는 자선 목적의 건물, 역사적 기념물, 병원, 병자 및 부상자를 수용하는 장소, 무방비 상태의 마을·거주지·건물 또는 위험한 물리력을 포함하고 있는 댐 등 시설물을 공격하는 행위
3. 군사작전상 필요에 비하여 지나치게 민간인의 신체·생명 또는 민간 대상물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는 것이 명백한 공격 행위
4. 특정한 대상에 대한 군사작전을 막을 목적으로 인도에 관한 국제법규에 따라 보호되는 사람을 방어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
5. 인도에 관한 국제법규를 위반하여 민간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을 박탈하거나 그 물품의 공급을 방해함으로써 기아(飢餓)를 전투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
6.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예외 없이 적군을 살해할 것을 협박하거나 지시하는 행위
7. 국제법상 금지되는 배신행위로 적군 또는 상대방 전투원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② 제1항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죄를 범하여 인도에 관한 국제법규에 따라 보호되는 사람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사람은 다음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중대한 상해에 이르게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③ 국제적 무력충돌 또는 비국제적 무력충돌과 관련하여 자연환경에 군사작전상 필요한 것보다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장기간의 중대한 훼손을 가하는 것이 명백한 공격 행위를 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 제1항 또는 제3항에 규정된 죄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제88조(내란목적의 살인)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1]

1. 개요2. 학살 목록
2.1. 한국사2.2. 국외2.3. 가상매체
3. 실제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
3.1. 영화3.2. 만화
4. 학살자 목록5. 관련 문서

1. 개요

한자로는 '모질(사나울) 학(虐)'에 '죽일 살(殺)'을 쓴다. 국어사전에서의 정의는 '가혹하게 마구 죽임'. 일반적으로 단기간의 대량살인, 대규모 집단살해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나, 단 소수의 사람을 죽였을지라도 그 과정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경우 살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런 막장행각을 저지르면 역사에 악랄한 학살자로 기록된다. 다만 이런 학살자가 영웅화된다고 여기고 그를 수용하는 서브컬처물이 있기도 하지만[2] 그것은 학살 때문에 영웅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영웅이 공적을 세우는 도중에 어쩔 수 없이 벌어졌던 것이고, 아무리 대영웅이라도 학살과 같은 악행이 자행되면 그것은 과오로 기록될 뿐이다. 학살은 불가피성이 인정될수 없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전쟁들을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사람이 가장 큰 인적 자원이기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적을 많이 죽이면 죽일 수록 상대에게는 큰 이득이 될 수 밖에 없다. 학살의 불가피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것도 현재의 도덕관념으로 보는건데 그 당시의 사상이나 도덕등을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안된다.

학살자의 영웅화를 잘 표현한 명대사로 알려진 찰리 채플린이 제작한 1947년작 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3]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긴 "한두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100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풍자나 비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4] 학살이 당대 좋게 여겨지는 것은 철저히 에 대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적과 아군의 구분은 철저히 편의적이고 대부분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않거나 대중이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강력한 정복자를 보고 (그게 과연 민중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느냐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우와 멋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며, 이는 대중들이 흔히 전쟁사나 군사사 쪽에 유독 흥미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현대까지 꾸준히 일어났으며, 부족사회에서는 식인과 같이 동반되기도 했다. 이후 노예제가 등장하면서 줄어들었으나 적에게 공포를 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학살로 유명한 인물들은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 폴 포트, 차우셰스쿠, 오다 노부나가, 칭기즈 칸, 히틀러, 밀로셰비치, 도조 히데키 같은 권력자들을 우선 꼽을 수 있으며, 유명하지 않아도 학살을 저지른 사람은 더 많다.

또한 종교 문제를 놓고 학살이 벌어지기도 하며, 19세기 콩고의 경우처럼 제국이 식민지에서 벌인 약탈적인 학살, 또 전쟁으로 인한 학살도 많다. 전쟁은 어차피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무리 전쟁이라도 무고한 민간인을 여럿 살해한 경우는 학살로 보아야 한다. 프랑스군 역시 알제리 전쟁에서 베트남 못지 않은 대삽질을 벌였고. 좀 애매한 경우로 직접 총질이나 죽창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대기근[5]이나 비아프라 전쟁 때처럼 물자결핍이나 대규모 기근을 불러일으켜 많은 사람이 죽은 경우도 학살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고의적으로 기근을 불러일으킨게 아니라면 학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학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정책의 실패 등) 저런 상황을 불러 일으킨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건 명백하지만 그것이 학살이라고 하는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는 강대국의 수탈 과정에서 학살이 주로 발생했다면, 그후 식민지들이 독립하고 제국주의가 사그라든 20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종족분쟁이나 민족분쟁에 의한 학살이 빈번해졌다는 것이 한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중국에서는 도살(屠殺)이라고 하는데, 한국어와 달리 학살의 뜻으로도 쓴다. 난징대학살 박물관을 남경대살기념관(南京大屠杀纪念馆)이라고 써놓은 것이 그 예이다. 과거 한자 문화권전쟁 기록에서도, 특정 지역을 점령했을때 도성, 도+지역단위, 도+지역명등 도(屠)자가 붙어 나오면 지역 단위의 조직적인 학살이 벌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경우에 따라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등 폭동적 시위진압을 할 때 학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나 천안문 6.4 항쟁.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도 학살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다.

21세기인 현재는 일반적으로 양민학살 대신 민간인 학살이란 표현을 쓰는 편이다. 양민이란게 '무고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바꿔 말하면 이념 등과 전혀 상관 없는 무고한 사람이 집단 살해당한 일에만 '학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보도연맹 학살사건 같은 이념 때문에 일어난 '집단 살해'는 학살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6] 물론 '양민학살' 쪽이 비극적인 느낌이 더 강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학살이 또 다른 학살을 부르는 일도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보복성 학살' 이 될 터인데, 학살을 당한 측이 힘을 얻었을 때 앙갚음을 하는 경우. 보통은 당한 것보다 몇 배 내지 몇십 배로 갚아주는 경우가 흔하고, 결국 애먼 사람들에게 다시 재보복의 원한을 심게 되기도 한다. 여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 이런 사례가 민족주의, 종교주의와 결부되면 더욱 더 잔혹해진다. 대표적으로 동유럽유고슬라비아 내전돈바스 전쟁, 중동시리아 내전, 아프리카르완다 내전 등이 있겠다.

사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평등의 한 예시이기도 하다. 물론 좋은 뜻은 절대 아니지만... 특히나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학살의 대상에 넣어버리는 수준이라면 두 말할 것도 없다.

1.1. 포로 학살

그렇다면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라면 학살의 대상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닌,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살해를 당했다면 비록 군인이더라도 학살 대상이 된다. 군경 및 그 가족을 살륙한 6.25 때의 인민재판이라든가, 자리에 누워 있는 부상병들을 죽여버린 서울대병원 학살사건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개중에는 적군도 아닌 아군의 병크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많은 인명이 죽어간 사례도 적지 않은데, 국민방위군 사건 같은 것은 애초에 정규군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임팔 전투 같은 것은 그냥 학살로 봐야 할 정도다. 그리고 말메디 학살이나 슈노뉴 학살과 같이 적군 포로를 죽인 경우는 또 다른 종류의 학살로 구분해야 한다.

다만 이는 "현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고대~중세에는 인권의 개념이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일 비재했다. 현대의 관점으로 중세의 포로 학살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임용한도 지적한 바 있다.
이세한 : 어떤 역사학자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도 해요. (리처드와 십자군이) 2,700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먹여 살려야 했잖아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급이 조금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몇천명의 포로를 먹여 살린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거든요?
허준 : 그렇지만 그래도 존경받는 리처드 왕께서 밤하나 나눠주기 아쉬워서...
임용한 : 포로를 안 죽여야 한다는 거는, 20세기 전쟁때에 간신히 말로 나왔어요. 말로. 우리가 독소전쟁도 다루고 제 2차 세계대전 때도 말했지만, 2차 대전때도 기사도가 지켜진 전쟁이 몇개 없어요.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전쟁 포로를 죽이면 범죄야." 도시를 폭격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면 범죄야."라고 말한지 불과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고 있는 거에요.
이세한 : 지금 (인권이라는) 이런 개념이 나온지가 50여년 밖에 안됬어요.
허준 : 죄송합니다. 중세임을 잊고 있었습니다.
임용한 : 아니, 중세라서가 아니고, 지금도 그렇다니까요. 지금도 쿠르드 족에게 가스 뿌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독가스 뿌리고, 지금도 그런 짓을 해요. 안하는 나라가 적어요. 지금도.
토크멘터리 전쟁사 42부, 십자군 전쟁 4편 리처드 1세의 포로 학살에 대해 이야기 하며.

2. 학살 목록

테러 사건이나 제노사이드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학살은 그 규모에 관계없이 똑같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니 따로 강조하지 말 것.

2.1. 한국사

한반도 역사상에도 학살은 적지않게 일어났지만, 타민족 및 국가에 의해 세계구급의 학살을 당한적은 없다.

2.2. 국외

한국인이 학살을 당했거나 학살을 주도한 경우 ☆자로 표시.

2.3. 가상매체

3. 실제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

3.1. 영화

3.2. 만화

4. 학살자 목록

해당 문서 참조

5. 관련 문서


[1] 일부 학살행위는 내란죄로 분류되기도 한다.[2] 대표적으로 fate/stay night. 서번트로 소환되는 영웅들을 이야기하면서 학살자영웅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한다.[3] 국내 수입되어 제목이 바뀐 경우. 원 제목은 프랑스어로 무슈 베르두. 베르두씨란 별 뜻 없는 인명이다.[4] 좌파적 성향의 채플린은 보수우파 세력의 역사관과 영웅주의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었으며, 누가 봐도 전후에 살인광으로 비난받게 된 히틀러 뿐만 아니라 주류세력 역시 살인광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꼰 것이었기에 반대파들에게 많은 반발을 샀다.[5] 스탈린이 고의로 일으킨 것인지 아닌지 논란이 크다.[6] 다만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경우에도 이념문제에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들이 실적 부풀리기등을 이유로 가짜로 가입되어 어이없이 죽은 사람들도 많다.[7] 목호의 난공민왕 집권 당시의 고려에서 원나라와 관련된 '목호'들이 명나라에 말을 바치는 것을 반대하며 저항하자 최영, 염흥방 등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그러나 진압 와중에 목호들과 연루되어 많은 수의 제주도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을 고려판 4.3 사건이라고 하기도 한다. 더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8] 21세기에 동래성 유적지에서 한곳에 묻힌 다량의 학살 희생자 유골이 발견되 실체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는 전투참여가 불가능한 여성과 어린아이의 유골도 발견되었다.[9] 1909년 일제가 의병 진압을 목적으로 한 민간인학살 작전.[10] 좌우익 대립에 의한 민간인 학살[11] 국군과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12]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13] 군납비리로 인한 대형 참사. 의도적인 학살이기보다는 이승만 정권과 그들의 비호를 받는 대한청년단 간부들의 병크미필적 고의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학살에 비견할 만하다.[14] 개척단을 빙자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강제동원한 케이스[15] 위의 사건과 다른 사건이다.[16] 양주에서만 80만 이상, 광주에서 70만 이상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과장일 가능성도 있고, 상당수의 희생자는 명말-청초 사이의 혼란기에 발생된 희생자 전체를 포함한 것이다. 이 혼란기에 지역을 떠난 유민들의 많은 수가 명이 멸망한 뒤 청이 제대로 안정된 뒤에야 나타났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이 시기 많은 명나라 유민이 조선과 베트남, 일본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17] 조선인 희생자가 발생했다.[18] 한국인 희생자 발생. 공식 사망자 1명, 비공식 사망자 28명.[19] 장애인에 대한 국가기관의 학살[20] 다른 이름으로는 간도 참변이며, 강조하여 경신 대참변이라고도 한다. 1920년 일제가 마적 토벌이라는 명분 하에 독립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간도 지역의 조선인들을 대거 학살한 사건. 봉오동 전투에서 일제가 패배하자 일제는 이를 만회위해 훈춘 사건(중국 마적단과 내통하여 훈춘시에 있는 일본 영사관를 고의로 습격한 사건)을 조작하여 이를 빌미로 만주에 군대를 출동시켜 간도에 있는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21] 대전 말기 미군과 수용자들에 의해서 다하우 수용소에서 독일군 포로와 수용소 직원(무장친위대)의 일부가 사망한 사건. 수용소의 참상에 충격을 받은 미군에 의해서 사건이 일어났고 지휘관들이 제제하는것이 늦어져서 사망자가 좀 있다. 물론 미국은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기에 이 사건을 일으킨 미군들은 법정에 기소되었다.[22] 숙청과 고려인 강제이주 과정에서 희생자 발생.[23] 조선인 희생자 발생[24] 정확히는 대반달리즘.[25] 조선인 희생자 발생[26] 조선인 희생자 발생[27] 1929년 2월 14일, 경찰관으로 위장한 알 카포네 파 조직원들이 라이벌인 조지 모런 파 조직원들을 살해한 사건[28]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일으킨 학살인 것이 확인된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이 사건 이외에 한국군이 저질렀다는 다른 학살들은 선전을 목적으로 한 조작이거나 증거는 없고 주장만이 존재하는 의혹 수준이다. 덧붙여 사건을 주도한 김종수 소위는 군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후에 15년 형으로 감형)[29]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시기, 대통령 임기 시작일을 1일 앞두고 대통령 당선인이자 팔랑헤당이라고도 부르는 친미·친서방·친이스라엘 기독교 민병대 카타엡(Kataeb)당의 대표인 바시르 게마옐(بشير الجميّل, Bachir Gemayel)이 시리아 정보원에 의해 암살당하자 제대로 빡친 팔랑헤가 레바논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봉쇄 후 학살한 사건. 목표는 테러리스트 제압이었다고 하지만, 이미 이 사건은 작전 수일 전에 노출되어서 남자들은 모두 탈출한 뒤였고, 부녀자와 아이들만이 남아있었음에도 3일간에 걸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이 학살을 이스라엘군은 묵인하다 못해서 조명탄까지 쏴주면서 부추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다시 국제적 비난이 쇄도하였다. 학살의 원인인 바시르의 암살을 일으킨 시리아는 아에 모른척 무시했다. 틈바구니에 끼인 나라의 비극이 어떤 건지 잘 알려주는 사건이다. 바시르와 왈츠를이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30] 공산주의 테러집단인 일본 연합적군이 자신들의 멤버들 중 12명에 린치를 가해 살해한 사건[31] 肅清大虐殺.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이 2월 18일에서 3월 4일 사이에 싱가포르에 거주하던 중국인 화교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32] 벨기에 슈노뉴 마을 근처에서 미군이 독일군 포로를 학살한 사건[33] 조선인 희생자 발생[34] 단, 이 경우는 당시의 전쟁법을 기준으로는 전쟁범죄가 아니다.[35] 조선인 희생자 발생[36] 조선인 희생자 발생. 추정치 약 1만명.[37] 내전 초기 당시 한국인 희생자 발생. 또 한국인이 필리핀에서 ISIL 연계조직 아부 사야프에 의해 피랍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38] 제노사이드 항목에 보다 자세히 언급된다.[39] 1960년대 수하르토의 쿠데타 이후 공산당 토벌을 빌미로 1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40]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에 의해 벌어진 학살.[41] 2차대전 때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학살. 우스타샤 항목도 참조.[42] 1943년 이탈리아 카니카티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살해당한 사건.[43]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버마의 칼라공에서 벌인 학살.[44] 특히 방데전쟁 진압 과정에서의 학살은 근대적 학살, 제노사이드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로 잔혹했다. 해당 항목 참조.[45] 1932년 일본군이 게릴라 토벌을 벌인다며 중국에서 저지른 학살.[46] 조선인 희생자 발생[47] 위에 있는 킬링필드을 소재로 한 영화[48]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을 때, 러시아 공화국에서는 애도기간 동안 TV 시청 황금시간대에 이 영화를 집중 방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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