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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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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
1.1. 게르니카 폭격
2. 그림

1. 도시

스페인바스크 지방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15,000명 정도다. 현재는 이웃한 마을인 루모(Lumo)와 통합해 정식 명칭은 게르니카루모(Guernica-Lumo)다.

1.1. 게르니카 폭격

스페인 내전 당시인 1937년 4월 26일 독일 콘도르 군단스페인 제2공화국 세력권이었던 게르니카에 가한 폭격이다.

1937년 4월 국민파는 수도 마드리드에 대한 공세가 실패로 끝난 후 분단, 고립된 스페인 북부 바스크 전선에서의 공세에 주력을 투입하고 있었으며 공화파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게르니카는 보잘 것 없는 시골마을이 아니라 철도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거기에 당시 바스크 국의 3개 대대 병력도 주둔해있었고 탄약 공장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게르니카는 바스크 지방에서는 독보적인 정치적 정통성을 지닌 도시였다. 우선 게르니카 내의 백색 오크 나무[1] 아래에서는 바스크 지방의 각 도시들의 의회가 열렸으며 이 외에도 바스크 지방의 관료들이 모여 이전 세대에 선서를 하는 전통이 있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바스크 지방의 영주, 이후에는 카스티야나 스페인의 국왕이 영주권을 행사하기 전 이 나무 아래에서 선서를 했다. 특히 카를로스파 국왕 참칭자들이 카를로스파 내전 당시 자기들이 국왕임을 선서할 때 이곳에서 선서를 했다.

당시 게르니카 일대에는 존재했던 공화파 부대의 규모는 23개 대대에 달했으며 이들은 교통의 요충지인 게르니카를 거쳐 빌바오 방면으로 후퇴 중이었다.

이에 4월 26일 독일 콘도르 군단은 공화파 부대의 후퇴를 지연시키기 위해 게르니카에 대한 전술폭격을 실시한다. 폭격 당일 게르니카에 있었던 민간인 수는 추산 3000여명이었고 시외 장터가 열리는 날이었기에 군중들이 해당 장소로 몰리고 있었다. 독일 콘도르 군단의 목표는 게르니카 중심부와 동쪽 렌테리아를 연결하는 다리를 파괴해 공화파의 후퇴 및 지원을 차단함으로써 국민군의 점령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투입된 폭격기의 규모는 역사가들마다 다른데 후술할 사망자 1600명 설을 지지하는 네버다 대학 자비에 이루조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Ju 52 21기, He 111 2기, Do 17 1기, 이탈리아 공군의 SM. 79 3~6기로 총 27~30기의 폭격기와 32대의 전투기가[2] 투입되었다고 주장했고 앤터니 비버는 자신의 저서 스페인 내전에 Ju 52 18대, He 111 2대, Do 17 1대, SM. 79 3대가 투입되었다고 적었다. 폭격은 오후 4시 30분 Do 17기가 110파운드 항공 폭탄 12발을 투하하는 것으로 개시되어 총 5차례에 걸쳐 실시되었고 오후 7시 종료되었다. 대다수의 기록은 폭격에 참여한 전투기들이 주민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했다고 적혀있지만[3]기총소사는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4] 투하된 폭탄은 최소 22톤에서 최대 40여톤으로 추산되며 그 중 30% 정도가 소이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술할 사상자 논란을 불러일으킨 민간인 폭격과 별개로 당초 폭격의 목표였던 다리 파괴는 실패했다. 당시 수평 폭격 기술은 그리 발달하지 않아 높은 명중률을 달성하기 위해선 급강하 폭격을 요했으나 게르니카 폭격에는 급강하 폭격이 실시되지 않았다. 이러한 전술적 실패는 스페인 내전 이후 독일 공군이 발터 베버의 전략 폭격 대신 근접 지원 교리로 방향을 트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5]폭격 다리는 온전했고 대신 게르니카 시내가 불길에 휩싸였는데 소방대는 폭격이 종료된지 4시간 후인 밤 11시 도착했으나 수도관 파열 등으로 인해 화재는 27일 오후 3시 게르니카의 70%를 전소한 뒤 진압되었다. 국민군은 폭격 3일 후인 4월 29일 게르니카를 점령했다.

게르니카 폭격의 최초 보도는 2일 후인 4월 28일 더 타임즈 기자인 조지 로더 스티어에 의해 이루어졌다.[6]스티어는 독일제 폭격기와 전투기들에 의해 사망자가 수백에서 수천명에 발생했다고 적었고[7] 폭격을 당한 바스크 정부 측에서 27일 1654명 사망, 899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스티어의 보도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바스크 정부에 의해 발표된 피해자 수치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민간인을 목표로 잔혹한 폭격을 가했다는 것에 대해 국제 여론의 큰 충격을 유발했다. 익히 알려진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품도 이 충격에 기반해 제작한 것이다. 국제 사회의 비난은 나치 독일과 국민파 진영으로 쏟아졌고, 4월 27일 국민파 장군이었던 곤살로 케이포 데 야노는 공화파가 사건을 조작했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스티어와 바스크 정부의 주장이 실제 사망자 수에 비해 과장되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미 육군 예비역 중령 출신 항공 역사가인 제임스 코럼(James Sterling Corum)은 항공 전쟁 대학(Air War College) 교수로 재직하던 1998년 작성한 저서 <<INFLATED BY AIR COMMON PERCEPTIONS OF CIVILIAN CASUALTIES FROM BOMBING>>에서 게르니카 폭격 당시 40여톤의 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점을 들어 바르카 정부의 초기 발표대로라면 드레스덴 폭격의 1톤당 사망자 수인 7~12명보다[8] 배로 많은 톤당 40명의 사망자가 나와야 했다며 1600명 사망설은 과장되었다고 주장했다.# 사망자 추산수는 연구 수행자마다 조금씩 다른데 앞서 언급한 제임스 코럼은 드레스덴 폭격 당시 톤당 사망자 수를 대입해 사망자 수가 300~400명이었을 것이라고 적었고 1985년 설립된 게르니카 폭격 연구 모임인 게르니카자라 히스토리아 탈데아(Gernikazarra Historia Taldea)에서는 2012년 발간한 간행물에서 사망자 수를 165명으로 추산했고# 바르셀로나 대학교 현대학 교수 조안 비랴로야 이 폰트(Joan Villarroya i Font)와 호세프 마리아 솔레 이 사바테(Josep Maria Solé i Sabaté)는 그들의 공동 저서인 'España en Llamas: la Guerra Civil desde el Aire'에서 사망자를 300명대로 추산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2007년 4월 26일 열린 게르니카 폭격 기념식에서는 논란이 있다고 적으면서도 게르니카 폭격 사망자를 150~250명으로 명시했다.## 다만 이에 대해 반론도 존재하는데 네버다 대학교 바스크 연구소장인 자비에 이루조(Xabier Irujo)는 2018년 자신의 저서 '게르니카 폭격: 짧은 역사'[9]에서 이러한 견해에 반박, 파괴된 건물 속에 묻혀 수습되지 못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존의 바스크 정부 추정치보다 더 많은 2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바스크 정부의 초기 발표를 지지하는 학자들의 경우 사망자 축소설을 지지하는 역사가들의 연구는 프랑코 정권을 거치며 손실된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폭격으로 대부분 건물이 전소해버린데다 프랑코 정권을 거치면서 스페인측 자료의 대다수가 유실되었고 폭격을 가한 콘도르 군단의 기록물 역시 2차 대전의 전화 속 유실되어버려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공군이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목표했든 아니면 기술 부족으로 민간인들이 맞게 된 것이든 독일 공군에 의해 적지 않은 수의 민간인이 죽은 것은 명백하기에 1997년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은 스페인을 찾아 게르니카 폭격을 비롯한 스페인 내전 기간 독일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1998년 독일 연방하원에서 콘도르 군단을 연방군의 롤모델로 삼지 않는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2005년 연방 군사사연구소는 연방군에 콘도르 군단의 구성원들에 대한 기념을 중단할 것을 권고하며 콘도르 군단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베르너 묄더스의 이름을 딴 74 전투 비행단의 병영 및 부대 명칭이 변경되었다. [10]

2. 그림

파일:external/www.pablopicasso.org/guernica3.jpg
게르니카
Guernica
화가 파블로 피카소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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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1937년
사조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종류 전쟁화
기법 캔버스에 유화
크기 349.3cm × 776.6cm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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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레이나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 작품.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다.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었다. 초현실주의와 후기 입체주의가 혼합된 독특한 모더니즘 양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1937년 5월 10일부터 6월 15일까지 제작되었다.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1월에 스페인 공화정부 사절단이 피카소를 직접 방문하여 그 해 열릴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의 벽화 제작을 의뢰했고 당시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의 승낙으로 게르니카가 그려졌다.

보러가기

사진만으로는 느끼기 어렵지만 가로 7m, 세로 3m가 넘는 상당한 대작이다. 그래서 피카소 역시 게르니카를 그릴 때 붓이 아닌 롤러로 그렸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고 있었는데, 피카소를 감시하러 온 게슈타포 장교가 그의 집에 있던 복제품을 보고 "저거 당신이 그린 거요?"라고 따지자 피카소가 "아니, 당신한 거지."라고 응수했다는 이야기가 매우 유명하다.[11]

한편 이 그림에 대해 평론가들이 '황소는 전체주의, 말은 핍박받는 스페인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내놓자 피카소가 "소는 소고 말은 말이다."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이후에 이어진 말이 더 있으나 어떤 말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알려져 있기도 하고 "이들은 학살을 당한 짐승들일 뿐이다. 나에게는 그게 전부다."라고도 알려져 있다. 뭐가 됐든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제대로 보여주는 그림이자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한 나치의 만행을 세상에 널리 알린 반전(anti-war) 회화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첫 공개 후 작품은 프랑코 독재 정권 하의 스페인에서 전시할 수 없다며 피카소가 반대해서 뉴욕 현대 미술관에 대여 형태로 전시했다. 피카소는 92세까지 장수했지만 프랑코도 천수를 누리는 바람에 피카소 생전에 이 그림이 스페인으로 되돌아오지는 못했고 스페인이 민주화된 후 피카소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보존 문제로 1992년부터 마드리드 소피아 왕비 미술관(Museo de Reina Sofia)에 소장·전시 중이다.

스타워즈 클론전쟁 3D 애니메이션에서 패러디가 나온다. 다스 시디어스다스 몰이 싸울 때 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은 여지없이 게르니카의 판박이. 오른쪽 총을 든 트루퍼와 칼을 든 보바 펫 구성을 살펴보면 6.25 전쟁을 모티브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도 패러디된 듯.

2024년 스페인의 해변에는 가자 지구 전쟁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게르니카 그림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화제가 됐다. 국내 기사
[1] 이 문제의 백색 오크 나무, 즉, 게르니카 나무는 도시의 절반 이상이 소이탄으로 잿더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거의 아무 피해도 받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았다.[2] He 51 12기, Bf109 7기, CR.32 13기[3] Michael Alpert: Franco and the Condor Legion. The Spanish Civil War in the Air. Great Britain: Bloomsbury Academic, 2019. ISBN 978-1-78831-118-2.[4] T. Nowakowski M. Skotnicki: Legion Condor. Hiszpańska wojna Hitlera. Warszawa: Instytut Wydawniczy Erica, 2011, s. 82. ISBN 978-83-6232-943-4.[5] 애시당초 1930년 당시 전략 폭격론은 전 세계적으로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베버의 우랄 폭격기 계획은 조기에 종료 되었고 베버 본인은 석연찮은 항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6] 기사 작성은 폭격 다음날인 4월 27일이었다.[7] The total of deaths, which may be hundreds and may run into thousands, is impossible to reckon at present.[8] 코럼은 2월 14일 당일 미 공군과 영국 왕립 공군이 투하한 3400톤에 의해 사망한 수를 2만 5천에서 3만 4천으로 추산했다. 다만 현대 학계에선 사망자 수를 코럼 추정치 보다 적은 1만 8천에서 2만 5천 사이로 추산한다. 그렇다해도 드레스덴의 인명 피해에 치명타를 안긴 영국군 폭격 톤수인 2600톤을 도입할 경우 코럼의 추산한 톤당 7명에서 10명으로 나온다.[9] Xabier Irujo: The Bombing of Gernika. A Short History. Reno 2018, S. 121[10] 다만 베르너 묄더스는 게르니카 폭격이 발생하고 난 이후인 1938년 4월 스페인에 입국했기 때문에 게르니카 폭격 자체엔 참여하지 않았다. 연방 군사사연구소가 묄더스 이름을 박탈할 것을 권고한 이유는 게르니카 폭격 참여 여부가 아닌 당초 알려진 '묄더스가 기독교적 사상에 따라 나치즘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그 근거가 부족하고 나치당의 전쟁 행보에 찬성하고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 행위에 침묵했기 때문으로 독일 연방군이 내세우는 내적 지휘의 모델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1] 독일어 das machen은 '이것을 만들다/무엇을 하다'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혹은 나치 콘도르 군단을 필두로 한 공군이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한 것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었으니, 게르니카라는 그림은 '나치가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