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8 18:12:45

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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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
Euskal Her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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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장[1]
국가 스페인[2]
최대 도시 빌바오
행정 수반 이니고 우르쿨루 (바스크 국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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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분리주의4. 경제5. 축구팀6. 출신 인물7. 트리비아8. 관련 문서

1. 개요

유럽의 민족, 혹은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

'바스크 지방'이라는 개념은 크게는 스페인령의 남부 바스크 지방과 프랑스령의 북부 바스크 지방까지 통틀어 의미하기도 하고(사진의 지도 전체로 노란색 부분은 프랑스령 북부 바스크, 초록색 부분은 나바라 자치주.) 작게는 남부 바스크 지방 중에서도 알라바(Araba), 기푸스코아(Gipuzkoa), 비스카야(Bizkaia) 3주로 구성된 바스크 자치 지방(스페인어로는 Comunidad Autónoma del País Vasco, 바스크어로는 Euskal Autonomia Erkidegoa, 사진의 지도에서 분홍색 부분.)만을 의미한다. 분리주의 성향을 보이는 지방이라 한다면 스페인령의 바스크 자치 지방으로 보아야 한다.

비스카야의 대표적인 도시는 빌바오, 기푸스코아의 대표적인 도시는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 아라바의 대표적인 도시는 비토리아-가스테이스로 이 중 빌바오에 있는 아틀레틱 빌바오, 산 세바스티안에 있는 레알 소시에다드, 비토리아의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는 지역의 대표적인 구단으로 바스크 더비를 이룬다. 그런데 정작 2015년엔 SD 에이바르가 바스크 최고 존엄 등극

이들 바스크 민족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민족 중 하나로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등 게르만·라틴족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문화를 유지해 왔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바스크어는 어떤 어족에 속하는지 알 수 없는 계통상의 고립어다. 확실한 건 인도유럽어족에는 전혀 속하지 않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괴악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스페인에는 약 240만명의 바스크인이 살고 있고 프랑스에는 약 20만명이 살고 있다. 바스크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이 정도라는것이고, 조상중에 바스크인이 있다거나 바스크계 성씨를 가지고있는 사람을 더 한다면 이보다 더 많아진다. 또한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중남미 지역에서 바스크인들도 많이 이주했는데 바스크계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추리면 수천만명 이상에 달한다. 바스크계가 많은 지역은 바스크계 성씨를 가진 사람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바스크인들의 특이사항이 있다면 혈액형 중에서 Rh- 형 혈액형이 유달리 많다는 것이다. 유럽 내에서 Rh- 형 비율은 16% 정도라고 하는데 바스크인들은 무려 36%나 된다고 한다.

2. 역사

이베리아 반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주민들이다. 이들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다양한 설들이 내려오고 있다.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석기시대에 농경이 시작된 이후 피레네 산맥 부근에서 천년 이상 고립되어 살던 토착민들과 즉 인도유럽어족을 쓰는 이주민(스페인인, 프랑스인)들 간의 혼혈화된 후손일 확률이 높다. 선사시대 유적을 통해 보면 전통적인 바스크인의 거주 지역은 피레네 산맥을 중앙에 두고 남프랑스의 가스코뉴와 아키텐, 스페인 북부 산악 지대와 해안에 걸쳐 있었다. 따라서 원래 이베리아 반도의 선주민 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유적은 반도 중남부에서는 보이지 않고 반도 북부와 남프랑스에만 국한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반도의 다른 선주민들과의 관계도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이들이 엄청나게 오랜 시간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기원전 3,000년~5,000년부터 현재까지) 정착민으로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바스크인의 조상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 시대 유적들은 청동기 시대에 점점 산지로 이동하며 요새화되는데 다른 유럽계 민족들과의 마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언어는 유럽의 다른 언어와 연관성이 거의 없고 완전히 다른데다가 혼혈이 많이 되지 않은 바스크인들의 외모 또한 유대인과 함께 유럽에서 특징적인 외모를 하고 있다.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바스크족 어부들이 대서양(Atlantic sea)에서 참치잡이로 부를 축적하는 와중에 신대륙까지 비공식적으로 갔다온 적이 여러번 있다.[4]

유럽에서 작지만 강한 불굴의 전투 민족으로 유명하다. 많은 전쟁을 거치며 바스크족을 건드리는 군대는 이기든 지든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11세기 프랑스군이 그랬고 나폴레옹 또한 게릴라 전술로 힘겨워 했다. 최근까지도 ETA 등 테러 단체로 활동한 바 있다. 오늘날 세계의 특수 부대들이 쓰는 베레모 또한 바스크족의 전통 모자다.[5]

여타 유럽의 다른 소수 민족들이 그랬듯 로마 제국에 패배했다. 나름대로 자치권을 잘 지켜내면서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는 로마인으로써 완전히 동화되었다. 로마가 망하고 난 한참 이후까지도 가톨릭으로 개종이 상당히 느렸다가 중세 초기에 유럽의 대세를 따라 결국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중세 시대 때는 소수 민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 동맹 등으로 외교적으로 자주성을 지켜내면서도 스페인 왕국 성립에 참여해 스페인 시민이 되어 동화되는 등 유연한 면모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통합 스페인 왕국의 전신인 아라곤 왕국, 카스티야 왕국, 나바라 왕국의 왕가들은 모두 바스크 민족의 왕이였던 산초 3세의 후손들이다. 이렇게 스페인 제국 출발의 핵심에는 바스크 민족이 있고 스페인은 물론 독일계 합스부르크에도 이들의 혈통이 들어간다. 게다가 프랑스에 여왕을 시집 보냄으로써 결혼 동맹으로 동군연합이 되었고 위그노 전쟁에서 부르봉 왕가의 외가로써 참전해 왕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바스크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유럽 강대국들과 결혼 동맹과 군사적 지원에 성공한 결과 많은 유럽 강대국들의 왕가에 바스크인의 핏줄이 흘러서 현재까지도 바스크족을 소수 민족이라 낮춰 보는 국가는 없고 스페인 내에서도 꽤나 위상이 높다.

중세 시대 바스크족은 다른 유럽인들과 다르게 바이킹들과 평화적으로 교류했는데 이들로부터 조선술, 항해술을 전수받았고 바이킹 몰락 이후에는 대서양의 주인으로 불렸던 만큼 조선술과 항해술에 매우 뛰어났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도 이미 신대륙을 다녀왔던 바스크족이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당시 고래잡이, 선박, 철광석 수출 등의 사업을 했고 영국, 북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며 무역 흑자로 막대한 수입을 올려서 당시부터 꽤나 부유한 지역이였다.

바스크 지방은 원래 나바라 왕국의 영토였지만 1512년 스페인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다만 통일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연합체였기 때문에 지방 분권성이 강했고 다른 지방들이 그러하듯 바스크 지방 또한 폭넓은 자치를 누렸다. 특히 스페인의 군주들은 카탈루냐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바스크 지방의 지원을 받았고 그 대가로 바스크 지방에는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다.

19세기 말 산업혁명 시기 영국 자본이 많이 유입되면서 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했고 금융 쪽에 강하다는 점은 지금도 남아 BBVA 은행(라리가 공식 스폰서인)과 이베드롤라(Ibedrola) 은행의 본사가 빌바오에 위치하고 있다. 바스크족들이 경영하는 몬드라곤 협동 조합은 웬만한 대기업 이상의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했고 일자리 창출 또한 탁월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원래 바스크 지역은 자치권 확대 약속 때문에 공화 진영에 가담했지만 공화 진영 중 가장 보수적 색채가 짙은 지역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바스크 지역은 전쟁 전부터 중앙 정부와 멀찌감치 떨어져 나머지 유럽, 아메리카와 장사해 번 돈을 지역 사회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현지 산업 노동자들과 소위 '민족 자본가'의 갈등이 심하지 않은 편이었고 바스크 가톨릭 사제들 또한 스페인 전국 규모의 극우 정치판과 거리를 두어 바스크 지방 자체가 전반적으로 스페인 다른 지방보다 좌우 계급/이념 갈등, 세속주의/가톨릭 교권 사이의 갈등이 확연하게 적었다. 이러니 대외적으로는 자치권 확대를 위해 군인들이 미는 스페인 중앙 집권적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공화국 정부와 전략적 동맹을 맺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나머지 스페인 공화파 진영을 휩쓸었던 주로 아나키스트들이 주도한 사회 혁명과 무관하게 돌아갔다.

가부장적인 문화를 가졌던 로마에 동화되면서도 특유의 전통적인 남녀 평등 상속 문화를 중세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도 고수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도 여성 상속이 가능한 민족으로 나온다.

3. 분리주의

1937년에 국민군이 바스크 지역을 원정할 때 바스크 지역 군인들에게 평화적인 대우를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그 약속은 무참히 짓밟혔다. 유명한 게르니카가 바스크 지방의 도시다. 프랑코 정권 수립 후에는 중앙 집권화 정책 때문에 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바스크인의 무장 투쟁 단체인 ETA가 등장해 2017년에 해체될 때까지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쪽은 비교적 평화적으로 독립을 요구했던 카탈루냐보다 더 적극적이었는데 중앙 정부 인사를 납치해서 죽이거나 정부 건물에 폭탄 테러를 하는 등 무력 투쟁이 주류였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분리주의 테러리스트 중 가장 악명 높았던 지역 중 하나가 바스크였다. 이원복 만화 <현대문명진단>에 따르면 1992년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및 세비야 엑스포,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이기 때문에 ETA의 테러를 예상했으나, 정작 ETA는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죽은 뒤 민주화가 진전되고, 주민들 중에 스페인과 화해하고 무장투쟁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일자 1980년대 중후반부터 신입 전사가 오지 않고, 혁명세도 걷히지 않아 쇠퇴해갔다. 이것 때문인지 폭력투쟁은 완전히 사라졌고 스페인 정부의 통치에 순응하고 있지만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더불어 스페인 정부에서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지역이다.

4. 경제

스페인에서 경제 수준이 월등히 높은 지역이고 부자 동네임을 자처하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보다도 1인당 GDP가 훨씬 높다.[6] 몇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내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주(州)에 속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스페인에서 가장 경제 사정이 나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 예로 2010년 기준 안달루시아의 1인당 GDP가 22,000$인 데 비해 바스크는 41,000$다. 바스크의 경제력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실업률의 경우 2012년 바스크의 실업률이 14%였다면 안달루시아의 실업률은 35%였다. 그렇지만 급여 수준은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스페인 국립 통계청(INE)에서 발간한 Encuesta anual de estructura salarial(연간 임금 구조 조사)을 보면 País Vasco의 평균 임금은 26,535유로, 스페인 전체 평균은 22,726유로다. 먼저 언급된 안달루시아는 20,891유로. 제일 못 버는 것은 19,278유로의 카나리아 제도다. 어쨌든 스페인에서 소득이 제일 높고 전체 평균보다 20% 가까이 높으니 경제력이 제일 우월한 것은 맞다. 실업률 격차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고...[7]

포경 산업으로도 유명했다. 포경수술 아니다 9세기부터 시작된 바스크 지방의 포경 산업은 주 본거지인 비스케이 만의 고래가 줄어들자 아이슬란드나 심지어 북아메리카뉴펀들랜드 섬까지 진출했다고. 나중에는 영국네덜란드에 뒤쳐지기는 했지만 이들도 바스크 출신 포경 선원들을 상당히 많이 고용했다고 한다.[8] 그래서 아이슬란드로 진출한 선원들 사이에서 아이슬란드어-바스크어피진어가 생겨나기도 했고 북아메리카에 남은 유일한 프랑스 식민지인 생피에르 미클롱의 국기에 바스크 지방기가 삽입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9]

5. 축구팀

6. 출신 인물

오랫동안 한 국가를 이루어 교류하고 살았기 때문에 스페인의 다른 지방 사람들도 많든 적든 바스크 혈통이 섞인 경우가 많다. 스페인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가르시아(García)도 바스크계 성씨다. 스페인 정복자의 자손들이 주류인 라틴아메리카 사람들도 바스크계 혈통을 가진 사람이 많다.

7. 트리비아

스페인에서 이 지방에서만 한국을 Korea라고 표기한다.(나머지 지역은 Corea) 바스크어와 로망스어권의 철자 선호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보물찾기 시리즈 스페인 편에서 나오는 훌리오와 악역 바울이 바스크인이다. 둘 다 바스크 분리 독립 운동을 하지만 둘의 노선은 정반대.

영화로는 바스크인의 애환이 그린 스패니시 어페어가 유명하다. 2편까지 나왔고 스페인 영화의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산세바스티안은 영화제로도 유명하다.

8. 관련 문서



[1] 생피에르 미클롱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2] 스페인의 역사적인 인구 변화는 스페인/인구 참조.[3] 스페인 내에서는 바스크어 표기에 대한 존중의 취지로 후자가 대세다.[4] 확실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참치잡이를 위해 먼 바다까지 갔다가 우연히 아메리카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5세기 포르투갈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것 역시 당시 포르투갈의 국가 기간 산업이던 어업을 후원하던 엔히크 왕자가 참치 어장을 찾아서 어선을 이용해 대서양을 뒤지다가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고고학 연구를 통해 관련 유물과 유적이 출토되면서 사실임이 입증된 빈란드와는 달리 바스크인들의 아메리카 도달설은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발견된 바가 없어서 아직 가설에 머무르고 있다.[5] 돈키호테에서도 비스카야(바스크)인 호위 무사가 기사가 아니지만 상대해 준다는 돈키호테의 말에 '비스카야인들은 어디를 가나 기사'라고 말하면서 싸운다. 작중에서 말도 안 타고 방패 대신 마차에 있던 방석을 썼음에도 돈키호테를 거의 죽일 뻔했으나 방석 위로 내리친 칼을 맞고 기절한다.[6] 카탈루냐의 경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카탈루냐인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공업 단지 조성을 해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지만 바스크는 그러지도 않았다.[7] #[8] 출처: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 '고래의 삶과 죽음'[9] 1950년경까지 이곳에 이주한 바스크계 주민들이 바스크어 방언을 사용하기도 했다.[10] 오직 바스크 지역 출신이나 바스크 이민자 출신만을 선수로 받아들이는 순혈주의의 대표적인 구단이다. 다만 2010년대에 들면서 조금 유해져서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 중 유소년을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보냈다면 준 바스크 취급을 해주는 것 같다.[11] 그래서 바스크 지방의 전통과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영화들을 많이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