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8:43:37

동군연합

동군연합
同君聯合 | Personal 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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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1세잉글랜드+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1. 개요2. 어형3. 역사4. 양상5. 사례6. 기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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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Personal Union

동군연합은 말 그대로 동일한 군주, 국가 원수, 혹은 그 배우자가 되어, 그 개인 및 결혼 관계를 매개로 둘 이상의 국가들을 하나로 병합하지 않고 연합하여 주권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통치하는 것이다.

근대 국민 국가 출현 이전에 주로 보인 현상으로, 일반적으로 군주가 다른 나라의 왕위-작위도 차지하면서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있다.

2. 어형

영어로는 좀 더 명확하게 "personal union"을 "인적(人的) 연합"이라고 번역하고 이와 대비하는 "real union"이라는 용어를 "물적(物的) 연합"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동연합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군주국의 '군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어인 영단어 personal union이나 real union의 정의는 그보다 범위가 넓은 '국가 원수(head of state)'의 공유를 통한 국가 간의 연합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그 사례가 드물기는 해도 대통령 같은 공화정의 국가 원수를 복수의 국가가 공유하는 것도 personal union이나 real union의 범주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안도라는 부분적인 personal union을 이루는 것으로 분류되는데, 안도라의 공동 군주 중 한 명은 프랑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personal union이 단순히 군주만 해당된다면 절대 이렇게 분류할 수 없을 텐데(안도라의 공동 공작은 군주이지만 동일인이 가지는 프랑스 대통령 직위는 군주가 아니므로), '국가 원수'를 가지고 정의하니 자연스럽게 부분적 personal union으로 분류되는 것.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동'군'연합은 영어 personal union이나 real union에 완벽히 대응되는 번역어는 아닌 셈이다.[1]

한국 사학계에서는 널리 쓰이는 말은 아니다. 동군연합에 관해서 질문하자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이는 교수의 사례가 있다. 해당 사례와 분석글# 명시적이고 구체적이며 범용적인 사례가 아니기에 사학계에서는 개별 사례 각각을 독립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유럽에서 한 명의 군주가 여러 작위를 겸하는 일은 흔하기에 유럽에 한정하면 동군연합은 특이한 상황이 아닌 것도 한몫할 듯.

예를 들어 카를 5세사례를 보자. 한 명의 군주가 수십 개의 작위를 가지고 있지만, 각 작위 하나하나에 대해서 다 '동군연합'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고작해야 "신성 로마 제국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이며 오스트리아 대공으로 저지대 국가를 다스렸다."고 말하는 정도다. 그런데 스페인만 보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스페인 국왕이 아니라 카스티야 연합 왕국, 아라곤 왕국 등의 왕위로 시작하여 그라나다, 갈리시아,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등등까지 다수의 작위로 구성되므로 원칙적으로는 스페인 자체도 동군연합으로 다스린 것이고, 신성 로마 제국에서 그의 영지는 저지대 국가에 한정되었는데 그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조차도 브라반트 공국이나 플란데런 백국, 홀란트 백국 등 여러 지역의 군주를 겸하고 있었다.[2] 그리고 하술된 것처럼 동군연합이란 꼭 '왕'이 아니라 제위나 왕위, 공위 등 다양한 군주 작위의 조합으로도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니 원론적으로는 수십 개 작위 각각에 대해 모두 동군연합이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보통 실제로 그렇게까지 세세히 구분을 하진 않는다. 결국 흔히 사용되는 '동군연합'이란 '한 명의 군주가 여러 작위를 가지고 여러 영토를 다스린 사례' 중에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있는 사례', 예를 들어 '각 영토가 관습적으로 다른 나라, 특히 독립된 국가라고 여겨져 왔기에 한 군주가 이를 함께 다스리는 것이 특이한 일로 여겨지는 사례' 등을 따로 뽑은 뒤 다시 뭉뚱그려 지칭하는 표현이기에 굳이 동군연합이라고 분류해야 할 사례들의 기준도 모호하고, 이렇게 분류된 사례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특히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학술적으로 엄밀한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라리 위 링크에서 지적된 것처럼, '앙주 제국'이나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베리아 연합', '칼마르 연합' 및 '폴란드-리투아니아'와 같은 각각의 사례들로 접근하는 것이 역사학적으로 더 의미가 클 것이다. 흔히 동군연합이라고 불리는 사례들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어떤 이유로든 역사 매니아들의 관심을 받는 사례라는 정도이다. 예를 들어 이전까지는 서로 별개로 여겨지던 국가들에서 소위 '동군연합'이 통합 행보의 시작이 되어 그 나라가 결국 하나의 국가로 근현대 국민국가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거나[3], 아니면 반대로 근현대 국민국가의 기준에서는 엄연히 별개로 여겨지는 국가, 또는 영역이 소위 '동군연합'에 의해 일시적으로 '같은 영역'으로 통치된 적이 있다고 하면[4]그것은 특이한 사례이기에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게 된다. 이에 더해 그 사례나 관련 인물에 뭔가 특이한 점이 있다면[5]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끌기 쉽다.

결국 위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한 명의 군주가 여러 작위를 가지고 여러 영토를 다스린 사례' 중에서 그저 그런 사례들은 그냥 스킵하고 뭔가 흥미로운 사례들만 따로 모아놓고 '이런 재미있는 사례들이 있다'고 하다보니 '이 모음집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라는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그 모음집에 속한 사례들 사이에는 솔직히 말하면 '흥미롭고 특이하다' 이외의 공통점은 딱히 없다. 물론 호사가나 역사 매니아의 입장에서야 재미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들의 관점에서 이 사례들을 '묶어두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3. 역사

유럽에서는 혈통에 따라서 군주의 지위와 영지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때문에 때때로 발생한다. 다만 살리카법이 있는 프랑스 등의 경우 부계 혈통 또는 남계 혈통만 인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프랑스-나바르 동군연합의 경우 카페 왕조의 직계 남계가 단절되자 카페 왕조의 방계 남계인 발루아필리프가 프랑스를, 카페 왕조의 직계 여계 자손인 잔(후아나 2세)이 나바라를 물려받으며 다시 분리되었다.

어떤 형태의 동군연합이든 국민권리가 통합 전이나 후나 변동이 없다는 점은 같다.[6] 그래서 유럽에서는 동군연합 체제에 대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컸다. 가령, 카를 5세 당시에 결성되었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스페인 왕국 동군연합의 경우, 둘 다 가톨릭이 국교이긴 했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이미 북독일 영방군주들이 루터교회로 개종하면서 개신교에 대해 마냥 탄압으로 일관할 수 없었지만[7] 스페인은 수많은 개신교인들을 이단 심문으로 싹 다 화형시켰다. 또, 현재까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현존하는 동군연합 체제인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 동군연합에서 잉글랜드는 성공회국교로, 스코틀랜드는 장로회를 국교로 하는 등, 적용되는 법률이 제각각이었다. 가장 유명한 동군연합인 합스부르크 제국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 오스트리아 대공이자 보헤미아 국왕,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을 겸했지만 4개국의 법률과 관습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나마 보헤미아 왕국은 같은 신성 로마 제국의 울타리 안에 있어서 나중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1749년 보헤미아 왕관령을 사실상 해체시켜 버리는 방식으로 정부에 실질적으로 종속시켰지만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는 전혀 그렇지 못했고, 특히 헝가리는 라코치 페렌츠 2세, 1848년 헝가리 혁명 등 수 차례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기업의 경우로 바꿔보면 편하다.
  • A 그룹 회장이 B 그룹을 인수 합병 해 B 간판 내리고 A 산하 사업부, 지사 등으로 만들면 보통의 통합, 흡수, 병합, 합병이다.
  • A 그룹 회장이 B 그룹 회장에 취임했지만(CEO건 지분 인수건), 그 둘을 통폐합하거나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동군연합이다.

계열사 간 연계 효과를 위해 통폐합하는 경우가 많지만, 굳이 그럴 유인이 없거나 그 회사의 사내 분위기 변질을 막기 위해 지배 지분만 먹고 회사 자체를 놔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동군연합 개념과 유사하다.

물론 유럽도 나중에 가면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외국계 왕실이 자국을 지배하는 현실을 마뜩잖아하기도 했으나, 원래는 동군연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던 곳이라서 민족별로 자치권을 주거나, 군주가 "나도 이 나라 사람이에요." 하고 그 나라의 문화종교로 전향하려는 노력으로 반발이 수그러드는 경향을 보였다. 헝가리 왕국에게 자치권을 주고 이중 제국을 설립한 합스부르크 왕조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어난 반독일 여론 탓에 독일계 왕실에 대한 반감이 늘자, 자기들도 영국인임을 어필하고자 왕가의 이름까지 갈아치운 윈저 왕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아주 일찍이 국민 국가(nation state) 혹은 국민의 전신 격 정체성이 형성되어서 외국 군주를 섬기는 것에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던 아시아와 다른 점이다.[8] 예를 들면 일본 제국한일 강제 병합 당시 일본 천황이 한국 황제를 겸하지 않고 그냥 아예 자국령으로 흡수하였는데, 전통적으로 타국의 형식을 남겨둔 채 동군연합을 구성한다는 개념이 없었고, 제국주의민족주의 시대에 그러한 고리타분하고 비효율적인 구조를 취할 이유가 없던 까닭이다.[9] 영국이 무굴 제국의 황실을 폐지한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것은 무굴 제국 황실이 세포이 항쟁을 지원한 것이 황실 폐지의 명분이 된 점과 무굴 제국 황실부터가 인도의 기층민중 대다수를 이루는 힌두교도 관점에서는 영국인들보다 인도에 조금 일찍 들어왔을 뿐 이교도, 이민족 지배자라는 사실은 다를 바 없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동군연합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지만, 매우 드물어도 있기는 하다. 만주이자 청나라 황제가 몽골 제국대칸티베트전륜성왕[10]을 겸한 것이 그 사례다. 물론 이 사례는 실질적으로 중국에 세워진 만주인 정복 왕조가 몽골과 티베트 등을 본토에 가깝게 지배하고 있었던 사례이기에[11], 굳이 따지면 상기한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관계에 더 가까운 봐야 한다.

그런데 사실 역사를 확인하면, 동아시아에서도 유럽식 동군연합까지는 아니어도 그와 유사하게 복수 신분을 활용하여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일 정도는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우세한 입장에 있던 자들이 자신들 주요 가문의 남성이나 여성정략결혼시킨 사례들도 있는데, 당연히 괜히 그런 일들을 한 것이 아니다.[12] 실제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서, 조선만 봐도 초기에 세종에게조차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명나라 사신들도 명나라 황실과 인척 관계인 사람들한테는 아랫사람 취급받았다.[13] 조금 올라가서 고려의 사례를 보면 더 극명해지는데, 고려 왕이 원나라 황제 사위로서 나라를 다스려 부마국인 덕분에 원나라 사신이 이전처럼 완전히 안하무인으로 굴지는 못하게 되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원 황실의 사위'를 강조해야 하니 고려 왕이 자발적으로 원의 영향력을 앞세워야 하는 부작용은 있었다.

4. 양상

동군연합하 정치적 통합의 정도는 다양하다. "어, 너희 나라랑 우리 나라랑 섬기는 군주가 같네?" 정도로 끝나는 경우('인적 동군연합')도 있고, 사실상 한 나라처럼 움직이는 경우('물적 동군연합')도 있다. 인적 동군연합의 사례는 대타협 이전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제국이고, 물적 동군연합의 사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

동군연합이라도 각각은 법적으로 별개의 국가라서 부부간, 연인 간에도 서로의 재산이나 권리를 건드리거나 하면 이혼, 이별, 절연 각이 서듯이 서로의 권리를 침범했다가는 동군연합이 와장창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대표적인 동군연합 체제인 스페인-포르투갈 이베리아 연합도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일개 자치 지방 취급하거나, 포르투갈 식민지의 일부를 개입 간섭하는 것에 귀족과 평민 가릴 것 없이 울컥한 포르투갈인들이 독자적인 군주를 옹립해 버리면서 해체되었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중심의 중앙집권화를 구축하지 못한 것도 보헤미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3국에서 모두 현지 관습과 문화, 법률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선출된 국왕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동군연합이 성립할 경우, 해당 양국의 갈등 조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양국 국민들 모두 일단 왕한테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데다가, 왕 역시 굳이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 유인이 약했기 때문. 왕이 일종의 판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동군연합 국가들끼리 전쟁을 벌인 예는 적으며 전쟁이 일어날 경우 거의 대다수가 다른 한쪽에서 새로운 왕을 옹립하여 동군연합이 해체되곤 했다.

물론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든 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왕들도 몸이 한 개인 사람인지라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정확하게는 군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어느 한쪽 국가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완전히 공평하게 동일한 대우를 해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예 한 나라에서도 끊임없이 특혜 논란, 역차별 논란이 나오는데 아예 다른 나라라면 공평하게 해줘도 불만을 가지기 쉽고, 특혜란 게 주면 없는 쪽이 불만을 가지고, 안 주면 가졌던 쪽이 불만을 가지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찰스 1세가 있다.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 1세는 본래 스코틀랜드 왕국 국왕 제임스 6세였다가 친척 엘리자베스 1세의 사후 잉글랜드 왕국 왕위를 상속받으면서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동군연합의 군주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양국의 통합을 위해 영국 내 여러 개신교 종파 간의 화합을 이끌어내고자 킹 제임스 성경을 출판하거나, 정기적으로 양국을 오가면서 각국의 귀족부르주아들, 국회의원들과 회동하면서 집무를 보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서 양국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아버지와는 달리 잉글랜드에서만 살면서 스코틀랜드를 촌구석 취급하면서 개무시하거나, 장로회가 주류인 스코틀랜드인에게 성공회을 강요하는 병크를 터뜨렸다. 때문에, 분노한 스코틀랜드가 동군연합도 씹고 잉글랜드령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기도 하고, 뒷날 찰스 1세가 청교도 혁명으로 인해 잉글랜드에서도 민심을 잃고 폐위되어 스코틀랜드로 망명해 오자, 즉각 의회가 그를 체포해서 잉글랜드 의회에 돈 받고 팔아넘기는 하극상까지 벌이는 것으로 응수했다[14].

5.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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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일본 역사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동군(東軍) 연합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다이묘끼리 동군과 서군으로 서로 갈라져 연합해 싸운 걸 가지고 동군연합 VS 서군연합 이렇게 혼동해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완전히 무관하다.

KBO 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KBO 올스타전에서 드림 올스타에 속하는 5팀(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kt wiz, SSG 랜더스)들의 연합을 동군연합이라고 부른다. 드림 올스타와 나눔 올스타의 옛 명칭이 각각 동군과 서군이었기 때문. 그래서 이 경우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같을 동(同)이 아닌 동녘 동(東)을 쓴다.

7. 관련 문서


[1] 이는 "프랑스 대통령" 자체는 군주가 아니지만, 안도라 계승에 관한 국제적·국내적 법률에 따라 "프랑스 대통령을 맡는 개인"에게 "안도라 대공"이라는 군주 지위를 부여하여 하는 바, "프랑스의 군주"나 "프랑스 내 군주"가 아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유럽동아시아와는 달리 복수 신분이 자연스럽기에 이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벌어지는 혼란이다.[2]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신성 로마 제국의 영내에 속하는 작위들은 결국 법적으로 제국령이므로 축약해서 '신성 로마 제국'으로 퉁칠 수 있는게 맞고, 스페인의 각 구성국들 역시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국왕 페란도 2세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와 카스티야-레온 연합 왕국이 더블연합 스페인 왕국의 탄생에 합의한 이후 공식적(선언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재분리된 바 없으니 그냥 스페인으로 퉁칠만 하긴 하다. 즉 카를 5세의 주요 작위를 말할 때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을 말한 뒤 이 두 작위의 법적 고유영토에 속하지 않는 오스트리아, 부르고뉴, 남이탈리아 정도만 언급하고 끝내는 것이 어거지는 절대 아니고, 다 당시 유럽 기준으로 봐도 법적 근거가 있는 것.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은 제국의 창건자 오토 1세때도 영방국가에 간섭하기 어려웠고, 프리드리히 2세 사후 영방국가 체제로 전환되면서 황권이 유명무실해졌고, 스페인의 각 구성국들 자체도 법적인 통일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거쳐 즉위한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시조 펠리페 5세대에 이루어진 것이라 그 이전까지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카스티야-레온 연합왕국 및 아라곤 왕국의 국왕 자리에 같은 사람이 앉음으로써 통일국가 스페인을 성립시키는 인적/물적 동군연합 구조였음도 무시할수는 없다. 즉 유럽의 작위 개념이 복잡하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후술된 것처럼 '동군연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모호할 수 밖에 없다.[3] 예컨데 이사벨 1세와 페란도 2세의 결혼을 통한 이베리아반도 통합이나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의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 즉위가 여기 해당할 것이다.[4] 예컨데 앙주 제국이나 칼마르 동맹, 영국-하노버 선제후국이라든지 카를 5세의 사례 등이 여기 속할 것이다.[5]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프로이센 공국의 동군연합은 여기 넣는 것이 좋겠고, 다른 사례와 관련된 것 중에서도 리처드 1세가 엄청 인기인인 것과 앙주 제국의 지명도는 분명 관계있다. 뿐만 아니라 폴리투 국가연합의 사례는 그 자체도 아주 흥미로운 정치적 특수성을 가질 뿐 아니라 요가일라로리콘이라고 놀려먹는 맛도 쏠쏠한 것이 역덕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6] 이는 우선 동군연합 자체가 개인의 복수 신분이 각국 국가 원수라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각 국가는 상호 간에 법적으로 동맹 이상의 관계가 아닌 점, 이러한 현상이 주로 같은 종교권(특히 기독교 세계)에서 발생하였는데, 보편 종교로서 민족·문화를 초월하는 국제성, 통치 가문이 서로 통혼하여 인척 관계를 형성하면서 발생하는 신분·계급적 연대 의식에서 기인하였다. 그래서 국민 국가가 완성되어 가던 근대에는 민족적 차이가 큰 동군연합이 해체되거나 동질성이 큰 동군연합이 법적으로도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7] 카를 5세가 황제이긴 하나 신성 로마 제국 자체가 선거군주제였기 때문에 실제 그의 통치력은 어디까지나 그의 직할 영지에 한정되었다. 문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령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그의 명령이 닿는 곳은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밖에 없었다.[8] 동아시아는 이미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례처럼 고대에도 총력전을 벌일 만큼 고도로 중앙화되었고, 동시에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질감이 큰 겨레 간에 대규모 전쟁이 많았다. 따라서 전쟁 양상도 개인이 보유한 권리 주장에 대한 전쟁이 벌어진 유럽과는 달리, 차라리 흡수 및 동화를 전제한 민족 간 정복전에 가까웠다. 그 결과 아시아에서는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국민 정체성 및 근대 국가 체계가 일찌감치 성립하였다고 평가된다.[9] 대한제국 말에 일부 지식인이 동군연합을 꿈꾸고 일진회라는 단체를 수립하고 한일 강제 병합에 적극 협조했으나, 정작 합방 후에 일본 제국조선총독부에 의해 일진회 전체가 가차 없이 내버려졌다(...).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을 이왕이라는 바지사장으로 존속시키기는 했지만, 이들은 일본 제국 귀족(화족의 일종 이왕가 조선귀족으로 취급되었지, 별도로 대한제국 및 그 귀족을 설정한 것은 아니었다.[10] 본래 전륜성왕이란 인도 문화권에서의 이상적인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티베트에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인해 티베트 전체를 통치하는 세속 군주의 명칭으로 쓰였다.[11]티베트-몽골의 각 정부가 번국인 조선만큼도 자치권을 받지 못해, 실질적으로 충분히 '연합'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로서 성립된 단계에 있지 못했었다는 뜻이다.[12] https://en.wikipedia.org/wiki/Heqin.[13] 군주들도 명나라 사신의 횡포가 심하면 그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들은 오히려 조선에서보다 명나라에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더 강하기도 했다. 그래서 외교나 조공 문제에서도 굉장히 활약했다.[14] 이때 팔아넘겨진 찰스 1세내란죄로 기소되어 잉글랜드 의회에 의해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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