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4 17:14:30

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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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를 바탕으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

共和主義 / Republicanism

1. 개요2. 한자명의 유래3. 기원4. 공화주의의 자유관5. 공화주의 이론가6. 한국의 공화주의자7. 군주국의 공화주의8. 미디어와 공화주의9. 주요한 저작들10. 관련 문서

1. 개요

시작하겠습니다. 공화국(re publica)국민(res populi)의 것입니다.[1] 국민이란 대중의 아무 연합이나 일컫는 것이 아니고 의 이름으로 정의된(法正義) 것에 대한 동의와 이익의 공유에 의해 결속된 연합입니다. 한편 인간이 결속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인간들의 연약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어떤 것, 마치 군집성(congregatio) 같은 것입니다. 사실상 인간은 홀로 떠도는 종류가 아니라, 모든 것의 풍부함을 부여받았어도 사회 속에서 사는 것이 자연에 의해서 강제되도록 태어난 것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한 사람잔인함에 의해서 전체가 억압받고, 또 하나의 법적인 유대나 합의나 계약된 결속, 즉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것을 국민의 것, 즉 공화국이라 하겠습니까?

왕정에서는 나머지 사람들이 공통의 법과 계획에 거의 참여하지 않게 됩니다. 최선량들의 지배에서는 모두에게 공동의 계획과 능력이 없으므로 다수는 자유에 대한 참여자가 거의 될 수 없습니다. (중략) 따라서 페르시아키루스가 매우 정의롭고 현명한 왕이었지만, 한 사람의 명령과 양식에 의해서 통치되었을 때에 국민의 것은 (사실 이것이 앞서 말했듯이 공화국의 본질인데) 별로 기대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우리의 피호민인 마실리아 사람들이 선발된 자들과 제1 시민에 의해서 가장 정의롭게 통치되었는데도 그 국민의 상태는 어떤 노예제와 유사한 것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권력이 최상인 곳을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나라에도 자유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전혀 없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욱 달콤한 것은 확실히 있을 수 없지요. 그래도 이 자유가 동등하게 향유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국민이 노예 상태가 되는 것이 사실상 불분명하지도 않고 의심의 여지도 없는 왕정에 관해선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2]
스키너(Quentin Skinner)와 페티트(Philip Pettit)는 오히려 자유주의적 자유론이 인간의 시(공)민적 의무는 도외시하고 사적 영역의 확보를 위한 권리 추구만을 자유라고 정당화한다면 인간들은 그러한 권리마저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사적 영역의 저 깊은 곳으로만 숨어든다면 잠재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은 공동체의 저 높은 곳을 차지해 우리를 내려다보며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승래, <공화국을 위하여> 中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라는 거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또 하나의 제국인 민주주의에 속한 일개 속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오히려 자유주의, 민주주의 양 사상이 법의 지배와 인민주권이라는 양대 원리 위에 구축된 고전적 공화주의에 속한 속주들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상은 각각 이러한 양대 원리 중 하나만을 강조하면서 나머지 하나의 원리는 그 의미를 축소한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 귀족정이나 자유주의 왕정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민주권을 찬양했던 적도 많았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이 인민회의체(그리고 민중선동가들)에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는 포퓰리즘적이고 군중적인 형태의 민주주의를 막기 위해 법의 지배를 찬양하고 입헌적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자유주의를 최고 통치권의 헌법적 법률적 제한을 통해 자유수호를 위한 최선의 성채를 구축하려는 사상전통으로 묘사하고 민주주의를 인민주권의 장점을 찬양하는 사상전통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 그런데 이러한 묘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양대 사상이 한층 넓고 비옥한 사상체계인 공화주의 안에 포함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고전적 공화주의가 변형되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서로 다른 사상전통으로 나눠진 것은 전혀 박수칠 일이 아니라 개탄할 만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즉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키아벨리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로크와 몽테스큐로 하는 한쪽과 루소로 하는 다른 한쪽으로 나눈 것은 인류 지성사에서 뼈아픈 손실이었다.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영어판 독자들을 위한 소개의 글 中

공화주의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혹은 소유적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인이 사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의 확보보다는 시민(혹은 공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德)의 고양을 강조하는 이념을 말한다. 자유주의와 함께 현대국가를 형성하는 두 개의 큰 축이며, 동시에 자유주의를 견제하는 선의의 라이벌 사상이기도 하다.

공화주의는 개인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누리는데 '도구적 의미에서' 절실하다는 게 공화주의의 주장이다. 실생활에서 보자면, 선거철에 투표를 하고 평소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서 참정권을 적극 활용하자는 게 공화주의식 주장이며, 공공선과 개인의 이익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데 반대한다. 만약 공공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지받아 실현되어도 개개인에게 돌아갈 혜택이 제대로 균등하게 나뉘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인류 구성원의 동등성평등을 부정하는 셈이므로 공공선이 아닐 것이다.

공화주의는 전제군주제와 반대되며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중시한다.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은 군주정, 귀족정, (고전적)민주정을 모조리 물어뜯었으며, 이들의 요소를 섞어놓은 혼합정을 선호했다. 여기서 말하는 고전적 민주정은 현대 민주주의가 아니라 '폭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공화주의적 전통이 낳은 정수가 바로 삼권분립이다.

공화주의에서는 정부의 권력 외에 시민의 권력도 견제의 대상으로 본다. 좌파냐 우파냐의 스펙트럼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사상인데, 이는 라이벌(?)인 자유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특성이다. 경제적으로는 복지에 친화적이고,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친화적이며, 중앙집권보다는 지방자치에 친화적이다. 번외로 역사인식에서는 아테네, 스파르타, 로마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등의 도시국가를 좋아하는 게 특징이며, 시민, 덕(virtue), 자치, 참여 등의 어휘를 애용한다. 21세기 기준으로는 보통 중도우파 정도로 분류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대체로 좌파로, 프랑스 대혁명때는 극좌파로 분류되던 사상이기도 하다.[3]

주권이 구성원들에게 있으므로 민주주의와 매우 잘 결합된다.[4]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대립하는 주장이지만, 현대의 자유주의는 이러한 공화주의의 공격에서 한 발짝 물러나 수정된 이념이므로 완전하게 상극은 아니다.[5] 공공선을 강조하므로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오인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덕목을 우선시하므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공화주의의 "공공선"은 자유는 구성원들의 "자유"를 뜻한다. 즉 민중들은 당연히 각자의 삶을 추구해나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공화주의자들도 인정하며 오히려 강력하게 원한다. 따라서 공공선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정권을 꾸준히 발휘 한다면, 법질서라고 하는 '도구'가 당사자를 지켜주는 훌륭한 방패가 된다는 게 공화주의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나치의 등장 과정을 보면 공화주의가 전체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자유주의자들은 공격한다.[6] 여기에 대해서 공화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야말로 사회의 양극화와 같은 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점들을 심화시킨 원흉이라고 반박한다.[7]

정치이론의 하나로서의 공화주의는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주의를 견제하는 입장이며[8] 공동체주의에 친화적이다. 자유주의가 중시하는 자유가 소극적 자유로 다분히 개인주의적 성격이 짙다면, 공화주의가 중시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도 적극적 자유도 아닌, '예속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주의적 자유의 반대말은 '법의 간섭'이 아니라 '개인에게 지배받는 노예'[9]라고 할 수 있다.[10] 자유주의는 공화주의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보기도 한다.

자유주의 vs 공화주의 논쟁 담론은 전공자(정치학, 철학)들만 알던 주제였으나,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고등학교 사회과 윤리와 사상 과목에서도 다루어질 예정이라 해당 과목을 이수하는 고교생들에게도 어느정도 인지도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2. 한자명의 유래

기원전 841년 중국 주나라의 여왕(厲王)이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쫓겨나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천자(天子)를 대신해 함께 정무(政務)를 관리하였는데, 두 사람이 공동으로 화합하여 정무(政務)를 보았다고 해서 이를 ‘공화(共和)’ 혹은 ‘주소공화(周召共和)’라고 한다.[11] 나중에 황제가 없는 정치체제의 명칭을 지어야 되자, 과거에 왕이 없던 시절의 명칭을 따다 붙인 것.

3. 기원

기본적으로 정치적 기원은 그리스 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본다. 그리스 시대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다스리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이는 공화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실제 그리스를 다스리던 시민이 전체 인구중에 5%인 것을 감안하면... (참고로 그 유명한 프랑스의 삼부회 시절에도 제 1신분과 제 2신분의 비중이 5%다.)

따라서 공화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보통 로마시대로 보는 사람이 대다수다. 로마는 기존에는 왕정으로 시작했다. 로마가 에트루리아 인들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선출된 왕들이 다스리던 체제였다. 그러나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12]가 막장짓을 시작하면서 분노한 로마 시민들이 왕을 몰아내고 귀족정을 세웠다. 그러나 지속적인 정복활동을 계속하던 로마 안에서 귀족들과 시민들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로마 시민들은 로마의 국방을 수호하기 위한 의무를 저버리고, 무장한 상태로 로마의 산 하나를 점거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성산사건) 이후 로마사회는 기존의 로마 귀족정의 후계인 원로원과, 정치적,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는 집정관, 그리고 시민들이 주축이 된 민회와 그 대표인 호민관으로 구성되게 된다.

플라톤은 군주정은 독재(참주정)로, 귀족정은 과두체제로, 민주정은 중우정으로 타락한다고 주장했기에 로마 공화정에서는 이 세 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각 집정관, 원로원, 민회이다. 기본적으로 로마의 정치적 결정체제는, 민회가 안건을 결의하고, 원로원은 이를 승인하며, 정무관이 이를 수행하는 체제로서 오늘날의 3권 분립 체제와 매우 흡사하다. 이런 방식으로 로마는 공화주의를 잘 이끌어갔다. 하지만 이런 로마의 공화주의는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루비콘강 도하로 멸망되었고, 로마 제국이 세워지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그 껍질은 유지되었으나 현실은..

근대 공화주의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립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기본적으로 공화주의는 법치를 필요로 하는데, 중세에 법치가 있다고 보는 건 좀 아니고, 왕이나 귀족같은 특권계급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감히 천한 것들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도 좀 아니고, 주권이 피지배인들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근대 공화주의의 역사는 이 3가지 측면의 형성에서 찾아봐야 한다.

우선 법치의 형성을 본다면, 이 점에서는 고대 로마의 법치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칙명으로 로마법 대전을 편찬함으로써 고대 로마의 법체계가 중세에도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렇게 전해진 법은 점차 정교하게 발전해 헌법과 입헌주의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시민들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가지게 되었다.

두 번째로 특권계층의 소멸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프랑스 혁명과 큰 연관이 있다. 일단 앙시앵 레짐(기존 집권층)의 모순으로 인한 반란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특권계급의 소멸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는 로마를 모델로 하여 상원과 하원을 적용하였고, 특히 상원은 원로원을 그대로 따서 Senate라고 했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후 후속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전 유럽에 전파함과 동시에 특권계급을 말 그대로 때려잡았고, 그 덕분에 특권계층의 소멸이 가속화 되었다. 물론 테르미도르 반동이라든지 여러 사건이 있엇지만, 이런 개념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덕분에 국민주권주의, 국민자치, 권력 분립, 다수결의 원리등 여러 개념이 형성되었다.

공화주의는 이 시기 이후로 정치적 이념으로서 근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후 시대와 역사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는 변화하였지만 근본적으로 특정 사회 집단 및 계층에 대한 권력 집중과 일방적 지배관계 형성을 반대하는 논리로서 전개되었다.

4. 공화주의의 자유관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공화주의 입장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그 질적인 의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자유주의적 의미의 자유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지만 대체로 소극적 의미의 자유관이 주류이다. 즉 '간섭의 부재'를 자유주의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공화주의적 자유는 보다 구체적으로 자의적 지배의 부재라는 조건을 내건다. 따라서 공화주의의 입장에서는 공동체 정신과 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에 의한 간섭은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충분한 법이 없다면 약자는 강자가 가진 자의에 예속되는데, 이게 어딜 봐서 자유냐는 것이 공화주의자들의 지적이다. 물론 공화주의라고 해서 법의 간섭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섭이 있지만 예속되지 않은 상태'가 '예속되어 있지만 간섭이 없는 상태'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자유롭다는 게 공화주의의 핵심이다. 전자의 예시로는 '법에 복종하지만 주인이 없는 자유시민'이 있을 것이고, 후자의 예시로는 '좋은 주인을 만나 간섭을 안 받는 노예'가 있을 것이다.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한 어떤 무언가에 예속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13] 자신을 예속하는 존재가 무엇일 때 가장 자유로운 상태가 될 지가 공화주의의 중요한 주제인 것. 피치자(被治者)가 스스로[14] 만든 법에 의해 예속을 받을 때, 제일 자유로운 상태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공화주의자의 주장이다.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법에 의한 지배는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이다. 단, 법이 구성원들의 의지를 곧이곧대로 반영하여 만든 것을 넘어, 보편적 가치와 공공선을 담고 있는 것이어야[15] 정당하다고 본다는 면에서 민주주의적 자유와도 개념상 거리가 있다.

공화주의적 자유를 해하는 것은 공동체 정신에 입각하지 않은 자의적인 간섭을 할 수 있는 집중되고 고착화된 권력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독재나 중우정치, 다수의 횡포와 같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16]

따라서 공화주의적 의미의 자유는 법치주의와 결부되며, 피치자 자신의 영향력을 반영하여 법 질서를 수립하는 절차,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의식, 정치 참여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고,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다양한 수단[17]을 갖춘 지속성 있는 정치 체제에 의해 뒷받침된다.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 달리 공동체를 언제든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성질을 인민의 의무이자 본받을 만한 덕으로 보기에 병역, 정확히는 국민개병제를 기본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에 섰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징병제 부활론도 이런 맥락과 관련되었다는 의견도 있다.[18]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민영화와 부자 세금 감면, 정작 혜택받아야 할 국민들에게 줄 것도 팍팍 줄이면서 말려죽이는 증세 등은 공화주의의 이념에 알맞지 않다. 딱히 충실한 공화주의자라기보단 거의 핑계(...)를 댄 것이다. 징병으로 돈 아끼기, 정부가 반쯤 사유화되었다면 군침도는 제안이지 않은가? 공화주의에서 군대를 모은다면, 결과는 정복전에 내몰린 처절한 총알받이 개념이 아닌 국민 주권의 수호 면에 더 가깝다.

5. 공화주의 이론가

6. 한국의 공화주의자

한국의 대표적인 공화주의 학자로는 곽준혁 숭실대 교수[19]가 꼽힌다. 곽준혁은 공화주의에 관해 다수의 번역서와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특히 스페인의 좌파정권에게 정책적인 협력을 했던 Philip Pettit의 이론처럼 좌파가 새롭게 해석한 신공화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에서 즐겨 인용하는 공화주의 좌파 성향의 학자이다.

정치인 중에서는 한때 왕당파였던유승민바른미래당 공동대표를 위시로 한 이혜훈, 이준석, 지상욱 등의 친유계 정치인들이 꼽힌다. 특히 유승민 의원은 바른정당 대표 시절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독서상권 신년하례식에서 자신이 고른 <공화주의(모리치오 비롤리 저)>와 <대한민국 헌법>을 추천도서로 소개하기도 했다. 공화주의 우파 성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20]

7. 군주국의 공화주의

국왕을 두는 군주국들의 경우에는 공화국으로 갈 것을 주장하는 세력이 꽤 있다. 군주국의 공화주의를 참고할 것.

8. 미디어와 공화주의

민주주의에 비해 공화주의 자체만을 창작물에서 소재로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화주의의 매력적인 요소 중 많은 것들이 민주주의에도 공통으로 해당되고, 이미 민주주의만으로도 충분히 창작물에서 매력적인 간판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공화주의의 국가관, 공동체관은 창작물에서 주인공의 사상으로 많이 나오는 아나키즘이나 자유주의의 사상과도 충돌할 여지도 많고, 작가 입장에서도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묘사하기 어렵다. '권위를 거부하고 죽창을 찌르는 주인공'과 '시민적 미덕과 법의 지배를 부르짖는 주인공' 중 어느쪽이 작가 입장에서 다루기 쉽겠는가(...)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면 전체주의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차라리 질서 선/질서 중립 VS 혼돈 선/혼돈 중립처럼 '탈권위,개인의 자유'와 '법치주의, 시민의 의무'의 충돌, 즉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아나키즘을 대립시키는 형태로 나가는게 더욱 간편하면서도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공화국 vs 제국처럼 군주제, 특히 전제군주제와 공화제를 대립시키는 클리셰는 존재하지만 공화주의의 한 요소로서의 공화제 만이 아니라, 공화주의 자체를 다룬 현대 창작물은 찾기 어렵다.

9. 주요한 저작들

고전 공화주의에 관한 근래의 논의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선 '한스 바론 테제'로 통칭되는 논제를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에서 인문주의가 부활했고, 이것이 중세적인 '관조적 삶(vita comtemplativa)'에 대한 관심을 시민으로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활동적 삶(vita activa)'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어놓았다는 논제다. 이것은 현세에서의 삶에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중세적인 스콜라 철학 아래에서 본다면 중요한 것은 영원한 보편자뿐으로, 스콜라 철학을 따르는 신학자들은 영원성에 대한 사유를 중시하고 현세적 삶을 비교적 덜 중요하게 여겼다. 반대로 정치적•군사적인 위기 상황 아래에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요구되었던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시민들은 보다 현세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현세적인 역사에 대한 의식이 출현했다. 이것은 시민의 정치적 참여와 같은 근대적 이념을 촉발시킨 계기로, 따라서 자유주의와 개인의 탄생을 근대성의 계기로 놓는 관점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짤막한 영어 논문을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의 시민적 휴머니즘(civic humanism)[21] 부분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고전 공화주의를 다루는 1차 문헌 중에서 읽어 두면 도움이 될 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로마사 논고』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으로, 뒤의 두 권은 고전 공화주의라는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철학과 커리큘럼 상으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고전 공화주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이 두 권을 빼놓을 수 없다. 키케로의 『국가론』 또한 읽어두면 좋겠지만 저작의 일부만 남아 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치사상사 이해에 필수적인 홉스의 『리바이어던』, 로크의 『제2 통치론』, 루소의 『사회계약론』[22] 같은 경우, 공화주의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저작들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배경지식으로 읽어 두는 것이 좋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Liberty before Liberalism)』는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을 이용해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의 협소함을 비판하고 있는 저작으로, 이를 읽기 전에 이사야 벌린의 저작을 읽거나 최소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개념에 대해서는 알아두는 것을 권장한다. 한국어 번역이 있지만 2019년 기준으로 절판된 상태다.

J.G.A. 포칵의 『마키아벨리언 모멘트(The Machiavellian Moment)』는 근세 피렌체의 고전 공화주의 담론이 어떻게 영국과 미국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은 (특히 로크의) 자유주의를 건국이념으로 하는 국가'라는 도식이 어떤 점에서 옳다고 하기 어려운지 논하는 저작이다. 출간된지 제법 시간이 흐른 시점까지도 공화주의와 지성사 분야의 주요 저작으로 꼽힌다. 나남에서 나온 번역의 평가는 괜찮은 편이다.

10. 관련 문서



[1] 엄밀히 말하자면, 이 문구에서 국민으로 번역된 populi, populus 등은 영어 people에 대응하는 말로 흔히 '인민'이라 번역된다. 다만 이 문구에서 populus(people)는 법에 대한 동의를 전제한 '결속된 연합'이기에, 적극적 소속를 벗어난 자연인의 집단인 한국어 인민과는 그 뜻이 맞지 않고, 국민 혹은 공민(公民)에 가까운 뉘앙스다. 자세한 건 인민 문서 참고.[2]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의 장군. 인용문의 굵은 부분은 공화주의에서 너무나 유명한 표현이다. 스키피오의 이 발언은 키케로의 <국가론>을 통해 간접 인용되어 있는데, 라틴어에서 말하는 공화국(Res publica)은 직역하면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다. 스키피오와 키케로는 이를 다시 인민의 것(Res populi)이라 봤다. 스키피오와 키케로의 이 멋진 표현은 공화주의의 핵심을 관통하는 말로, 공화주의자들에게는 왕이 있느냐 없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이며, 국가가 개인의 사유 재산인가 혹은 자유시민들의 공공 재산인가가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왕이 없는 어떤 나라가 실질적으로는 특정한 집단 혹은 개인의 사유재산에 불과하다면, 단언컨대 그 나라는 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 또한 국민은 '법정의에 대한 동의와 이익의 공유'를 전제하는 집단이므로, 공화국을 위해 헌신하는 국민이 이익을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나라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주의와도 구분된다. 참고로 res publica의 단수 탈격이 republica인데, 이는 영어 republic의 어원이다.[3] 19세기 말만 하더라도, 공화주의는 사회주의와 같이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았다.[4] 사실 '국가는 인민(혹은 국민)의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한자어로 쓰이니까 민주주의가 마치 본래 '국가는 인민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 오해하기 쉬운데, 원어인 Democracy는 '다수의 지배'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그리고 공화주의자들은 공화국(Res publica)은 말 그대로 공공의 것(Res publica)이며 국민의 것(Res populi)이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서양에서의 어원을 따지고 본다면 공화주의야말로 '국가'를 '국민의 것'으로 규정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현대 민주주의는 엄밀한 민주주의라기보다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혼합에 가까워서 이런 논의 자체가 큰 의미는 없을 수 있다.[5] 다만 이렇게 될 경우 '수정 자유주의'를 자유주의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가라는 논쟁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의견에 의하면, 현대 국가는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두개의 기둥으로 지탱되는 것이지, 자유주의만으로 돌아가는 곳은 아니다.[6] 물론 이런 극단적 가능성만을 가지고 무턱대고 공화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극단적 가능성만으로 따지고 든다면, 자유주의 역시 광기에 의한 독선처럼 한계 없는 이윤 추구, 이기심이 팽배한 사회상과 그 결과를 지지하는 것으로 타락할 수 있으니 똑같이 지탄받아야 할텐데, 당연히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7] 공화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서로 멱살 잡은 역사는 굉장히 길다. 일례로 자유주의자들은, 공화주의자들이 찬양하는 시민적 삶이란 고대 도시국가의 시민들 곧 노예주들이 누린 삶이며, 그렇기에 공화주의자들이 귀족적인 놈들이라고 공격했었다. 여기에 대해서 공화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위에 서려는 이기적 욕망의 가림막에 불과하며, 오히려 너희들은 부르주아 돼지들의 앞잡이가 아니냐며 맞불을 놓았다. 사실 현대적인 시선에서 보더라도,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중 어느 쪽이 더 왼쪽이고 무엇이 더 오른쪽인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8] 고전적 자유주의와 현대 자유주의는 다른 개념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9] 그렇다고 여럿에 의해 지배받는 노예 상태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 물론 강자들의 횡포를 다수의 집합체인 국가가 나서서 제한하는 것은 용인된다. 여기서 강자는 사회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힘과 그 행위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잣대가 약자에 비해 엄하게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결과적으로 강대하다고 판단되는 부류를 예외없이 가리킨다. 극단적으로 표출될수록 겉으로만 개인을 위하며 일단 실현된 인과를 강력하게 보장하려 드는 자유주의와는 다르게, 힘을 키워서 스스로 계급을 만드려 드는 자들에게 적대적으로 다가가곤 한다. 물론 아무리 강해도 일단은 들고 일어나는 다수보단 수가 적으니 군중이 사람을 탄압한다는 식으로 공격받을 수는 있겠다 여기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국가 수반에 힘을 몰아주는 식으로 변화한다면 공화주의 의식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임으로, 개인의 선한 의지를 이끌어낸다는 자유주의가 현실의 바람직하지 못한 흐름이 풀어낸 힘에 굴복하며 자유의지에서 생겨난 다른 사람들의 자유 위에 선 권위를 옹호하는 꼴과 같이 보통은 담론에서 제외한다.[10] 여기서 말하는 '노예'는 굉장히 광의적 개념이다(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의 타협이 아닌, 모든 사회적 관계를 포함해 이의를 제기하는 면에서는 자유주의보다 더 폭넓을 수 있다). 이를테면 충분한 수단(법률, 지도 등)이 없다면, 힘이 약한 사람은 힘 센 사람의 폭력 가능성에 노출될 수 밖에 없으며, 빈자는 부자의 횡포 가능성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공화주의에서 주장하는 노예 상태인데, 공화주의자들은 이러한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충분한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착한 부자는 횡포를 부리지 않을 것이고, 착한 강자는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화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나쁜 주인을 만났느냐 좋은 주인을 만났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사람에게 주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11] 이외에 '공' 지역에 분봉된 백작인 '화'라는 인물이 대신 집권했다는 설도 있다.[12] 이 사람 이전에도 타르퀴니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둘을 구분하기 위해 이 마지막 왕을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즉 '오만한 타르퀴니우스'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친적지간이었다.[13] 내가 지키거나 신경써야 할 예속이 전혀 없어진다면, (흔히 상상하는) 천국과 같은 상태가 되기 보다, 현실적으로는 소말리아 같은 무법천지의 모습이 되기 쉽다.[14] 반드시 직접 정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대의민주주의와 같이 적어도 정하는 과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충분하다.[15] 공익 실체론과 유사한 전제를 공유한다.[16] 공화주의가 가진 문제의식이 왕정, 귀족정, 민주정 각각의 부작용 모두에 걸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7] 주로 권력의 분산, 특히 대통령제에서는 권력 분립 및 상호 견제와 균형 등[18] 현재 프랑스가 당장 징병제를 부활해야 할 정도로 안보가 악화된 것도 아닌 것을 보면, 순전히 전쟁 나갈 일 없는 기득권들의 등살에 힘업은 것으로 보인다.[19] 원래는 모교인 고려대의 교수였으나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이후 숭실대로 이적함.[20] 다만 바른미래당 전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친유계 자체도 스펙트럼이 꽤 넓은 편이다. 자유주의자들도 꽤 많은 편.[21] 일반적으로 시민적 휴머니즘은 고전 공화주의에 관한 한스 바론식의 접근을 일컫는 용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스 바론과 그 이후의 지성사 연구자들은 르네상스 시절 고전 공화주의의 부흥을 시민적 휴머니즘의 부흥으로 이해한다.[22] 이쪽은 공화주의적인 저작으로 보는 시각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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