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5:35:43

라이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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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영국식 세속주의와의 비교
2. 역사
2.1. 프랑스 가톨릭의 특이성2.2. 프랑스 혁명기2.3. 19세기 이후2.4. 이슬람주의와의 전쟁2.5. 이슬람 좌파주의
3. 톨레랑스와의 관계4. 라이시테에 대해 평가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점들
4.1. 프랑스의 영미권 정체성 정치 이론에 대한 입장4.2. 영미권 진보진영 및 정치적 올바름 지지세력의 입장
5. 관련 단체, 인물6. 같이 보기7. 둘러보기

1. 개요

라이시테(Laïcité)는 프랑스세속주의, 정교분리 사상을 일컫는 표현이다. 같은 세속주의라고 하더라도 영국식 세속주의(secularism)과는 다른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어원은 프랑스어로 '평신도'를 의미하는 형용사 라이크(laïc)에 명사형 접미사 이테(-ité)를 결합한 것으로 교권주의에 대항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현대 프랑스 공화국프랑스 헌법 제1조에서 "프랑스는 불가분적,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이다."(La France est une République indivisible, laïque[1], démocratique et sociale.)라고 규정하여 라이시테를 국가 이념 중 하나로 추구하고 있다.

튀르키예, 멕시코, 캐나다 퀘벡 주, 스위스 뇌샤텔제네바정교분리를 넘어 아예 헌법이나 법률에 '세속주의'(secular, laïque, laico, laiklik) 추구를 명기한 지역들은 프랑스 라이시테의 영향을 크게 받아 강경한 세속주의를 추구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라이시테는 주류 프랑스인들 사이에서의 시민종교를 구성한다.

한국을 포함하여 영국식 세속주의를 세속주의의 표준으로 생각하는 담론에서는 라이시테를 '전투적 세속주의'로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뜻은 미묘하게 다르다.

1.1. 영국식 세속주의와의 비교

한국이나 영미권 국가에서 세속주의라고 함은 흔히 정교분리를 의미한다. 정치와 교회(종교)가 분리된다는 의미는 종교가 정치에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이 반대로 정치 역시 종교에 간섭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 뿌리는 성공회 39개 신조제 37조이다.

이러한 세속주의에서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세속주의적이지 않다'고 인식되는 것과 같이 정치가 개인의 종교적 표현에 개입하는 것도 '세속주의적이지 않다'고 인식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는 라이시테에 따르면 자연스럽지 않다. 라이시테에 따르면 개인의 종교적 표현이더라도 그것이 공적 영역에 나오면 정치가 개입하여 규제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종교는 개인과 가정에서의 영역에서만 그쳐야 하며, 이것이 정치사회적 활동이나 움직임으로 발전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는 절대로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공식적 공간이나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터번의 착용이나 십자고상 목걸이 착용 등 종교적 복장을 금지하며, 공공장소에서의 포교활동도 전면적으로 금지되며,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도 금기시되기 때문에 종교정당의 활동까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영국적 세속주의와 라이시테가 공존하는 캐나다의 경우 두 관념이 충돌하는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퀘벡에서는 공무원이 터번을 착용할 수 없지만 연방정부의 관할인 군대의 경우 터번을 착용할 수 있다.

2. 역사

2.1. 프랑스 가톨릭의 특이성

라이시테가 성립한 배경에는 역시 프랑스 가톨릭 문화의 특이성이 존재한다. 가톨릭은 대체로 권력에 융화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프랑스 가톨릭은 그 중에서도 특이할 정도로 밀접히 융화한 모습을 보였다. 강대하고 보수적이지만 동시에 종교적으로도 전혀 독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가톨릭 국가를 보자면, 스페인은 교회권에 휘둘려서 국익에 의미가 없는 전쟁에 교회의 요구로 쓸데없이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고, 가톨릭의 진실한 수호자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제국이 휘청일 정도의 전비를 쓰다가 네덜란드 저지대를 잃고 결국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독일은 중세 시절엔 반독립적인 성직제후들과 교회세력이 황제 vs 교권 싸움을 지리하게 반복했으며, 개신교의 대두 이후 개신교도 제후를 달래서 제국을 안정시키려는 황제에 대해 늘 강경책을 주장하여 반발해 트롤링을 일삼다 30년 전쟁을 발발시켰다. 그런 주제에 성직제후가 개신교로 개종하는 일도 여러번 발생해 그때마다 교회령의 처리 문제가 폭탄의 뇌관으로 수차례 부상하며 내전이 그치지를 않게 만들었다.

한편 프랑스는 강한 중앙집권 전통에 힘입어 교회는 세속권력인 프랑스 왕에 대항한 적이 거의 없으며[2] 위그노에 대한 처리 및 교권에 대한 처리 등에서 강경책이건 유화책이건 관계없이 왕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여론을 승인하고 주도하였으며 그 대가로 세속 권력에 깊숙히 뿌리박았다. 프랑스의 정규 교육과정은 교회가 장악하고 있었으며, 많은 분야의 행정사무를 성직관료가 대리하고 있었다. 가장 빠르게 근대적 군대를 만든 프랑스군에는 연대 단위로 장교 연봉을 받는 군종 신부가 교회의 지휘로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사제의 인적 수요와 교회의 재정 수입이 폭증했다. 프랑스 내 가톨릭교회는 많을 때는 국가예산의 20~30%의 집행에 관여함으로써 그 영향력과 규모가 타국과는 궤를 달리했다. 이러한 강대한 세력은 물론 왕정을 타파하고자 하는 혁명가들에게 미움을 받는 주요 원인이 된다.

사례를 들자면, 아비뇽 유수에서는 세속권력이 교황을 납치했는데도 이에 호응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프랑스의 최고위 성직관료 리슐리외 추기경은 30년 전쟁에서 개신교도 측으로 참전해 교황청의 강한 질책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도들에게 허덕이는 타국과 다르게 확실히 정부의 뒷배를 입는 프랑스 가톨릭은 교세가 확고한 점은 칭찬받고 있었다. 거기에 신성로마제국의 세력이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하면서 사코 디 로마 같은 사건도 일으킬 정도로 무력해진 교황령을 신성로마제국이 직접적인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견제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프랑스를 크게 나무랄 수도 없었으며 재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프랑스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령의 가장 확실한 동맹이기도 했다. 그래서 프랑스 교회는 '가톨릭의 맏딸(장녀)'이라고까지 불렸다.

이베리아 반도스페인포르투갈토르데시야스 조약이라는, 교황을 개입시킨 조약으로 세계를 둘로 갈랐으나,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와 영국은 상큼하게 씹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영국 동인도 회사를 만들며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저 조약을 씹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먼저 서방과 동방관구를 장악하고 있는 예수회를 모함해서 박살낼 필요가 있었다. 예수회의 마테오 리치 등은 제사 등의 전례를 허용하고 있었고 현지의 관습에 폭넓은 인정을 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국왕은 자신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도미니코 수도회 등을 이용해 이단으로 몰기 시작했다.[3]

마침 영화 미션 등으로 유명해진 남아메리카노예사냥을 예수회 선교사들이 저지하고 현지인들에게 무기를 주어 무장시키기까지 했다. 이들은 노예사냥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원주민들을 사냥하고 있다고 스페인 국왕에게 청원을 했는데, 그 노예사냥꾼들의 뒷배를 봐주고 있던 국왕은 불쾌함을 내보였고 원주민들을 무장까지 시키고 있다는 소식에 이르러서는 격분을 참지 못하여 예수회에 대한 비호를 철회하였다. 프랑스 국왕은 이 틈을 타 교황령에 대한 강한 정치력으로 예수회를 이단으로 몰아 해산시켰으며, 스페인 국왕에게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진출을 하지 않는 대신 포르투갈의 영역만 진출하겠으며 해당 구역에서의 스페인군의 활동에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여 동의를 얻어내고, 동남아로의 진출을 위해 파리외방전교회라는 전교회를 설립[4]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예수회의 관구를 접수하였다.

예수회의 활동으로 베트남에는 상당한 숫자의 가톨릭 신자가 있었는데 이들에게 천병인 "프랑스 병사"들에게 협조하라는 지시를 내려 30만에 이르는 가톨릭 신도를 동원할 수 있었고 이들을 통해 안남을 정복하였다. 마카오포르투갈인 신부들은 프랑스의 관구로 이전된 이후에도 교도권에 강하게 저항하였으며 파문을 선언받아도 당황하지 않고 요새의 포르투갈인 군인들을 격려하여 프랑스 함대의 공격으로부터 마카오를 지켜내었다. 이런 활동은 동아시아 각국에 직간접적으로 전해져 가톨릭에 대한 강경대응을 불러왔는데 프랑스 신부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각지에 첨병으로 파견되어 프랑스 함대가 곧 올 것이니 반란을 준비하라는 식의 활동을 펼쳤고 일본에서도 난을 일으키려다 참수되었다.

명나라는 원래 예수회 신부를 황궁에 현대의 연구위원같은 박사로 초빙하여 서방의 정세, 무기 기술[5], 학문을 얻는 창구로 쓰고 있었다. 황제가 직접 이들과 대화하는 일도 정기적으로 있었는데, 이때 가톨릭의 교의를 물었는데, 그들이 유교와 가톨릭는 큰 틀에서 다르지 않으며 제사도 부모공경을 위해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 중국의 관습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자[6] 일종의 학문으로 보고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포교의 자유도 허가해주어 5만 정도의 신도를 모았다. 그러나 교체된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온 사제와 교황청 특사는 황제에 대해 오만방자한 행동을 보이며 유교적 관습을 미신으로 폄하했다. 그러자 명나라는 금교령과 추방령을 때렸고, 청나라 시기에도 사실상 고의로 시비를 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밀입국하여 포교를 하며, 프랑스 함대가 올 것이니 협력을 준비하라는 식의 반란을 선동했으므로 체포되면 당연히 처형되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것을 중국 개항 및 베이징 공략을 위한 개전 명분으로 사용하였다. 조선에도 공공연히 반란을 선동하던 프랑스 신부가 처형된 병인박해를 빌미삼아 병인양요 등으로 찔러보기는 했다. 물론 가톨릭의 세력이 베트남처럼 강하지 않아서 프랑스 함대가 침입했을 때도 아무 호응이 없었기에 그냥 물러나버렸다.[7] 이렇게 프랑스 가톨릭 교단은 세속권력과 손을 잡고 더러운 일을 청부받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고, 그들을 프랑스의 세속권력과 구분할 수도 없었다.

즉 다른 나라와 다르게 프랑스의 세속권력은 알아서 눈엣가시같은 위그노와 반교권주의자들을 탄압해주고 교회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 안건에서도 세속권력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하는 모습을 보인 덕에 주변국들이 극심한 종교적 혼란에 빠져있던 사이 중앙집권체제를 완성시켜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시기에 전 유럽과 맞짱뜰 만큼의 국력을 쌓을 수 있었다. 이게 부국강병의 관점에서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과 가톨릭 교회는 국가 체제의 현존하는 한 축으로서 앙시앵 레짐의 지탱하는 반석이자 구 체제의 물리적인 일부로서, 혁명이 발생했을 때 왕정과 함께 쓸려나가야만 하는 세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2.2. 프랑스 혁명기

혁명 전의 볼테르 등에 의해 퍼진 이신론 등의 영향을 받은 이 사상은 계몽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절대진리 정도로 해석하였고 그외 전통 전례 교단 같은 것들은 미신으로 격하하였다.[8]

프랑스는 중세기 극히 종교적인 국가였고 가톨릭을 지지하는 앙시앵 레짐위그노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형태로 수많은 학살과 개종강요가 판치는 국가였는데 이같은 점과 연계하여 가톨릭을 미신으로 격하하는 해석은 혁명가들 사이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이에 따라 혁명 이후 종교적인 열정을 담아 가톨릭을 박해하며 역으로 학살을 시작했다. 혁명정부미사 금지령을 내리고 수도원과 성당을 몰수해 국유화했으며, 혁명에 저항하는 신부들을 단두대로 보냈다. 이에 가톨릭계는 크게 반발했고 지방 농민들도 그에 동조하여 함께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움직임에 파리 지방을 제외한 모든 지방이 합류하기도 하였지만 혁명정부는 모든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진압 이후에도 많은 수를 처형했는데 특히 방데 전쟁에서는 "살아있는 자가 아무도 없게 할 것이며 건물들도 모조리 불태우라"는 명령까지 내려져서 집단적인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다.

이같은 극단적인 명령이 모든 곳에서 이행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 실행에 옮겨진 곳도 많았으며 나폴레옹이 점령한 툴롱 항구의 반란 같은 경우 상당히 충실하게 말살과 파괴 명령이 이루어졌기에 나폴레옹이 혁명에 회의를 품는 시발점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나폴레옹은 충실한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집정정부를 세운 나폴레옹의 집권 초기에도 이러한 기조는 변함없었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될 때 서구 사회에서 황제라는 자리에 직접적으로 권위를 줄 수 있는 "교황" "로마" 이 두 권위를 위해 미사금지령을 풀면서 교황과 화해하여, 프랑스 정부의 강경한 세속주의는 다소 완화된다. 수도원과 성당에 몰수한 재산을 돌려주고 가톨릭은 국교 지위를 회복했다. 이러한 상황은 부르봉 왕정복고7월 왕정, 짧은 제2공화국, 제2제국 시기에도 유지된다.

2.3. 19세기 이후

나폴레옹의 몰락과 짧은 부르봉 왕조 복권 시기, 나폴레옹 3세 시기 이후 프랑스 공화국이 부활하면서 이 혁명정신은 다시 강하게 타오른다.

이 시기에 가톨릭 사제수도자들은 초등교육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사제들이 아이들에게 반동적인 이념을 교육할까봐 매우 우려했다. 1882년에 정부는 학교 내의 모든 종교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인 쥘 페리 법을 통과시킨다.[9] 게다가 정부는 가톨릭에 경제적으로도 압박을 가하기 시작해서 가톨릭 사제 출신 선생들의 월급을 대폭 깎았고(...) 가톨릭 재단, 특히 예수회가 운영하는 사립학교를 약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들 학교 측에게 많은 공과금을 납부하게 해서 이렇게 받은 돈으로 공립학교를 설치했다. 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이뤄내는 일등공신이었는데, 이 시기에 프랑스 농촌으로 파견된 젊은 선생들은 모두가 공화국의 열렬한 신봉자였기 때문에 이들을 지칭하는 별명 중 하나가 '공화국의 검은 경기병단(Les hussards noirs de la République)'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 교사들의 근무복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에 그런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이 법 이후로도 정부의 가톨릭 견제는 더욱 심해졌고, 20세기에 들어서면 가톨릭의 거센 반발에도 프랑스 정부는 1884년에 이혼을 합법화했고, 군종 신부들이 군대에서 추방되었다.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3세가 중재를 해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19세기 말에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에서 가톨릭 측이 보여준 극우적이면서도 편향된 모습은 프랑스 국민들한테 가톨릭에 대한 반감을 주었으며 진보적 정치인들로 하여금 더더욱 가톨릭을 정계에서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해주었을 뿐이었다.

공화국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성당이나 수도원에 대한 폭력과 방화사건이 이어졌다. 프랑스 공화국은 중재하는 척하면서, 1905년 총리를 지낸 에밀 루베가 종교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법률(프랑스어: Loi du 9 décembre 1905 concernant la séparation des Églises et de l'État)[10]을 통과시켜 프랑스식 정교 분리가 확립된다. 이로써 가톨릭은 국교의 지위를 잃었고, 더 나아가 정교분리법에 따라 "프랑스 안의 모든 종교시설[11]을 문화재로서 국유화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가톨릭계와 교황청은 반발하였으나,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모두 무시하고 몰수한 뒤 종교 색채를 최대한 지우고 미사 때만 한시적으로 가톨릭에 임대한다는 식의 처분을 내렸다. 아울러 가톨릭계 미션스쿨들도 모두 국유화하였으며, 가톨릭 교육 단체를 강제로 통폐합해버리면서 가톨릭 세력은 치명타를 입고 정치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공교육 커리큘럼에서 종교색을 띄는 것을 금지하였고, 교직에 있던 사제수도자를 추방했으며, 공공장소에서 십자가를 내거는 것까지 금지하였다.

그리고 1946년에 세워진 프랑스 제4공화국프랑스 헌법 1조에 스스로를 비종교적(laïque) 국가로 규정하여 라이시테를 국가 원칙으로 확립한다. 이 조항은 현재에도 변하지 않은 채 내려오고 있다.

1968년 68운동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젊은 세대의 혁명적 열기로 사보타주를 진행해 프랑스 교회의 60%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며, 그 이후 교회에 대한 보안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 대가로 정부의 교회 통제는 더욱 강해졌다.

2.4. 이슬람주의와의 전쟁

프랑스에 무슬림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라이시테는 새로운 논쟁을 유발했다. 프랑스 공화정의 눈에 종교는 앙시앵 레짐을 지탱하는 미신쟁이들에 불과했으므로 이슬람도 가톨릭과 똑같이 처분하려 하고 있는데 무슬림들이 극렬히 반발하면서 거의 문화적 전쟁에 가까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현재 프랑스는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 전쟁에서 유럽측의 최선봉이자 메인탱커가 되었다. 부르키니, 히잡 금지령처럼 사회적 소수자 탄압이라고 보일 수 있는 정책을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고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도 끝까지 유지한다. 그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도 눈치보며 슬그머니 따라하는 식이다. 극단주의 모스크에 대한 폐쇄 처분도 프랑스가 가장 먼저 시작하였고 그 이후 눈치보던 오스트리아가 뒤따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모스크도 국유화하고 이맘들도 시험봐서 국가가 임명하며 모든 종단을 국가가 관리하자는 이슬람 애국회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가톨릭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처분을 이슬람에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수백년 된 교회와 달리 지은 지 얼마 안 된 모스크를 문화재라고 몰수할 만한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며 가톨릭 같은 주교서임권이 존재하지 않는 이슬람에 대해 성직자를 타인이 임명한다는 처분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로 자신들의 교리에 어긋난다며 이슬람계는 경악하고 있다.[12]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라이시테와 관련해서 무슬림들에게 새로운 규제를 하면 교황이 한마디씩 무슬림들을 거드는데, 가톨릭이 프랑스 공권력에 가지고 있는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국민의 90%가 가톨릭이던 시절에 프랑스 혁명정부는 미사금지령 내리고 미사를 드리면 단두대에 보냈고, 가톨릭이 60%이던 시절에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교회를 국유화하고 교회에 방화했다. 현재 프랑스는 이슬람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고, 일부 무슬림들이 광신적 테러로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프랑스인들은 타국이 자국을 비난하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국가간 다툼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으며 넘치는 자부심으로 문화적, 도덕적 문제가 끼여있는 문제에서도 "우리가 옳고" "너희가 그르다" 라는 태도를 여러 곳에서 비친다. PC가 정치적 주도권을 가진 유럽에서 매우 특이한 행태다.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남의 나라에 "돈 안되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매우 많으며, 관심뿐만이 아니라 수단, 리비아, 아르메니아처럼 개입해도 별 이익을 볼 게 없는 곳에도 학살을 막고 안정된 정부를 건설하는 것을 지원한다며 군사력을 투입한다.

그런데 하필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단에서도 리비아에서도 이슬람 반군과 싸우고 있다. 그리스도교 국가 아르메니아의 교전대상은 이슬람국인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국 아제르바이잔이다. 지중해권에서 대량학살을 반복하거나 확장정책을 펼치는 국가들이 죄다 이슬람 반군이나 이슬람권 국가들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입장이 곤란하게 되어있다.

내정에서도 중앙집권적 전통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구성원 중 일부가 다른 관습을 가지거나, 영미권과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중앙정부에 방침에 지방정부가 거스를 수 있을 정도의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는 것을 절대로 가만히 두고보지 않는다.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왕정 때부터 프랑스식 민주주의까지 모두 공유하는 공통점이다.

이러다보니 이슬람권의 눈에 프랑스는 십자군의 선봉으로 보여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혀 있다. 주한프랑스대사관에도 협박문을 붙이는 무슬림이 있을 정도다.

2020년 테러가 다시 일어나자 12월 10일에 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는다는 취지로 입법한 이른바 공화국 원칙 강화법의 초안을 공개했다.#.

프랑스 전직 장성 20명을 대표로 1000명 이상의 전, 현직 군인들이 이슬람 사회에 대한 통제를 촉구하는 취지의 공개 서한을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내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2.5. 이슬람 좌파주의

이슬람 좌파주의라는 단어가 프랑스 내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한국어로는 어감이 이상한데, gauchisme는 지금까지는 분파, 종파로 직역하거나 수정주의로만 의역했던 단어다. 즉 전통적인 번역행태대로 번역하자면 이슬람 수정주의 좌파 혹은 이슬람 좌파종파가 된다. # 시초는 공산당 내부에서 레닌주의 파벌이 트로츠키주의자, 마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을 지칭할 때 쓰던 단어로서 어원적으로도, 사용되는 의미로도, 그 분파를 경멸하기 위해 쓰이는 경멸어이다. '좌파주의'라는 번역어는 gauchisme과 달리 경멸의 어감이 살지 않으며 의미조차 불명확한 단어로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풀어쓰자면 Islamo-gauchisme는 이슬람과 매우 친화적인 좌파의 한 종파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영미권에도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게 특히 문제되고, 이름까지 달리는 이유는 프랑스의 역사적 정치 상황 때문이다.

300년간에 걸친 라이시테 투쟁기간 동안 프랑스 좌파들은 지속적으로 가톨릭과 싸워왔고, 보수파는 이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 반대파들은 천주교 세력, 왕당파, 권위주의, 파시스트 파벌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국유화나, 공공장소에서 십자가를 내걸지 못하는 것은 다른 유럽 국가에는 없는, 오직 프랑스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온정적인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그들은 여지없이 우파로 매도되고 규정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이 지속적으로 프랑스로 유입되다 보니 이들은 프랑스의 강경한 세속주의 문화 및 라이시테 원칙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때 좌파의 상당수는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일부는 라이시테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마저 이슬람에게는 적용하면 안된다고까지 주장하자, 이번에는 우파에서 Islamo-gauchisme라는 단어를 밀고 나온 것이다. "우리 가톨릭도 아니었는데 좀 온정적이라고 가톨릭 종파 취급 받았었으니 이젠 너희가 이슬람 종파군"이라는 아이디어가 그 시작이고, 이런 명칭에 우파는 물론, 중도파와 프랑스 전통의 전투적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좌파의 상당수까지 가담함으로써 이 단어가 프랑스에서 성립하게 된 것이다.

가톨릭은 이 단어를 부정적으로 본다. 교황청유럽 내부에서 최대의 적으로 보아왔던 것은 프랑스식 이신론이었다. 현재도 교황청은 각국의 가톨릭 성당에서 보내오는 교부금에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프랑스식으로 유럽 내 모든 가톨릭 성당이 국유화되고 가톨릭교회가 오히려 국가에 임대료를 내야 하며 기부금 교부에 국가가 간섭하게 되면 바티칸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사실 중세기에도 프랑스인들은 그 독실함과는 별개로 돈이나 주교서임권같은 실권은 내주기 싫어해서 아비뇽 유수 같은 사태도 일으킨 전례가 있었으므로 교황청은 프랑스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있고, 현실적 위협인 프랑스 내의 전투적 세속주의가 다른 유럽에 퍼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유럽 내 교단교육의 제1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에 찬동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실 프랑스 내에서 라이시테 문제에 있어 전통적인 반대 진영이자 가장 큰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가톨릭 신자들은 이 단어를 쓸 때 "이슬람도 탄압해라"가 아니라 이 사안을 계기로 하여 라이시테를 후퇴시키려는 목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진짜 이걸 진심으로 주장하는 것은 중도 쪽에 가깝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톨릭 등의 그리스도교 진영에서는 "이슬람 때리는 척 하면서 우리 또 때리려는거 알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며(링크), 앙 마르슈 등의 중도파는 "그냥 딱 지금 그리스도교 조지는 만큼만 조질거임. 너흰 상관없어."라고 설명하고 있고(링크), 사회당 등의 좌파는 "거 봐. 결국 이 법 이슬람을 조지려고 만드는 거다. 이슬람은 안 됨. 봐주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링크)

3. 톨레랑스와의 관계

톨레랑스와 라이시테는 상충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톨레랑스는 왕당파/전통 종교에는 처음부터 해당사항이 없다. 톨레랑스로 유명해진 볼테르도 이 두 부류는 격렬하게 비난했으며, 특히 가톨릭과 이슬람은 저주에 가까울 정도로 비난했다. 무슬림들이 질색하는 무함마드에 대해 남긴 저주와 비난만도 책 한 권은 나온다. 톨레랑스는 기본적으로 프랑스 공화주의에 대한 동의를 전제조건으로 삼으며, 프랑스 공화주의가 표방하는 것은 세속주의이다. 고로 종교는 톨레랑스에 포함될 수 없으며, 톨레랑스의 적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만의 매우 특수한 점이 바로 라이시테다. 프랑스인들은 라이시테를 톨레랑스에 대한 대척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가 개인 영역을 넘는 것을 관용의 대상으로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으로 타도하고자 하는 대상은 제1계급과 제2계급, 즉 종교와 봉건 질서였으며, 이후 프랑스 공화정 내내 종교 세력 및 왕당파와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프랑스 공화정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검은 교사들과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교사들 사이의 정치적 알력 다툼을 벌이며 가톨릭 교사들을 공직에서 모두 추방하고 완전한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약 수백년간에 걸친 기나긴 전투가 존재했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싸워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영미권적인 관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라이시테 정신을 고려하면 종교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말로 설득도, 타협도 안되는 사상인데, 그러면서도 민중의 정신에 대한 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언제라도 국가통치체제와 결합할 수 있는 존재로서 본질적으로 불관용적이고 위험한 존재[13]이므로 종교에 톨레랑스를 적용하는 것은 불관용에 대한 관용이기에 말도 안되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르몽드의 기고[14] 흔히 불관용을 불관용한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사실 톨레랑스란 게 유명한 이유도 프랑스의 현실이 아닌 철학 문제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독일 사상가들이 하이데거 하버마스 이후 나치협력 혐의로 대부분 박살난 상황이라 그렇다. 하이데거마저도 박살나고 있는 분위기 하에서 볼테르 - 들뢰즈 - 지젝 등 프랑스 철학계가 대륙철학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끄는 문화상대주의자라 이 사람들의 말이 크게 울려퍼지기는 하지만, 문제는 프랑스 학계는 그럴지 몰라도 사회는 사실 별로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혹한 법률을 집행하는 국가이며 그외 공권력에 대항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하다. 중세 때부터 중앙집권이 강한 국가였고 국가주의가 만연해 좌파마저도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있기도 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할 정도로 전체주의가 강하다.[15] 혁명도 피를 부르는 방식으로 일으켰고, 혁명을 진압할 때도 피를 부르는 방식으로 시행하는 등 절대 관용적인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근세사만 봐도 패전국 독일을 지독하게 괴롭혀서 같이 싸운 영국과 미국이 프랑스를 말린다고 애를 먹기도 했다. 2차대전 독일 점령 기간의 부역자 처리도 엄청나게 잔인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며, 독일에서 나치가 준동하지 않았다면 2차대전을 일으켰을 나라로 프랑스가 꼽힐 정도다.

4. 라이시테에 대해 평가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점들

한국의 문화는 영미권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어서, 세속주의나 성문화적인 관념이나 한국인들이 선진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영미권의 지식층의 것들을 가져오고 있다. 따라서 영미권의 개념들은 친숙한 반면, 프랑스 고유의 것들은 생경하다. 또한 68운동을 마지막으로 유럽 대륙이 문화 운동의 중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이 프랑스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프랑스 내에서도 전통적 프랑스 사상과 문화가 전면적인 공격을 받고 있고, 라이시테도 역시 그러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 정치 이론이고, 공격받는 것은 평등, 자유, 박애, 라이시테로 대표되는 프랑스 공화국 정신 전반이다.

프랑스의 정치 전통에서 파리 코뮌의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사회당은 대통령을 꾸준히 배출하는 주요 정파로서 프랑스의 사회 담론에 중심축이 되어왔다. 그러나 매카시즘적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미국은 사회당이나 공산당이 독립정당으로서의 활동을 할 수가 없기에 진보운동의 추동력이 정체성 정치라는 형태로 왜곡되어 발전해왔고[16] 그게 프랑스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어 사회당 지지세력을 산산조각 내고 프랑스의 정치 및 문화지형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형태로 바꾸고 있다는게 프랑스 지식인들의 생각이다. 물론 미국 대학들은 이를 계급 환원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어느 쪽이건 자국 전통에 맞는 형태로 담론구조가 형성된다고 생각하면 상호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국 전통에 맞추어진 담론이 국경을 넘을 때 파급 효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슬람 국가에서의 이민이 적어 이슬람 인구 수가 1%대에 불과하며, 반면 역사적인 이유로 무슬림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는 10%를 훨씬 초과하는 이슬람 신자 수를 가지고 있다. 라이시테의 정신으로 프랑스는 종교를 전혀 문제시하지 않아왔으며 종교 분포를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프랑스에선 정체성 정치의 위험성이 훨씬 커진다.[17] Muslim lives matter [18] 운동이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그 결과 이슬람주의 정체성운동과 이슬람주의 정당 운동이 발생할때의 참상을 상상해보자. # [19]#

프랑스는 종교적 대립을 타국처럼 부드럽게 해결한 적이 없으며, 한 쪽이 절멸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수십-수백만 명씩 학살하는 사건을 일으켰고 유럽 내에선 매우 드물게도 자국 내에 신교도들을 완전히 절멸한 국가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을 두려워해 가톨릭을 극단적으로 학대한 유일한 가톨릭 국가이기도 하다. 이 모든 역사의 끝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다른 나라라면 아무래도 좋았을 유대인 한 명의 재심 문제로 나라가 반쪽이 나서 준 내전상황이 되고, 가족들간 논쟁에 이은 폭력과 수많은 결투, 폭동, 테러로 사상자가 속출하다 결국 정부가 엎어진 끝에, 더 이상 이런 문제가 일어날 수 없도록 공적 영역에서 종교를 철저히 배제하도록 합의하고 헌법에 명문화한 것이 라이시테이다. 그러니 이것을 타국의 모욕스러운 사상에 따라 되돌리라는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현재진행형으로 중동을 불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바로 그 사상을 한 축으로 말이다.

이 문제를 다루는 한국의 많은 언론에서 "프랑스는 톨레랑스의 정신으로 라이시테를 조화시켜야 한다. 소수자 보호를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라는 결론의 이야기를 한다. # 그러나 적어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논평할 때, 다른 나라 사람이 어떤 사상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고는 하는 게 필요하다. 타국에 대한 이해나 사회 문제에 대한 폭넓은 철학적 사유가 요구되는 라이시테 관련 문제를 그저 자신의 도덕관념에 따라 느낌을 진술해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20] 다만 프랑스 철학이 현대 철학에서 차지하고 있는 깊이와 비중을 고려해볼 때 학자도 아닌 일간지 기자에게 그걸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21]

4.1. 프랑스의 영미권 정체성 정치 이론에 대한 입장

프랑스는 미국 대학들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젠더·인종담론이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들을 흔든다고 보며 비판한다.

이를 미국에서는 보편에 대항한다는[22] 논리로 비판한다. 그러나 정체성 정치는 어느 나라의 지배적 문화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그의 정책을 볼 때 미국에서조차 완전히 수용되지 못한 문화이다.[23]

라이시테는 극단적인 종교적 행태가 아니다. 반대로 종교적 행태를 공공의 장소에 가지고 오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 집에선 뭘 해도 상관없고, 양심의 자유에는 전혀 관계할 마음이 없다. 타인과의 상호관계에 종교를 들이밀고, 종교 학교를 만들고, 종교를 정치이념으로 하는 짓을 그만두고, 무엇보다 프랑스 공화국의 정치이념인 평등, 자유, 박애를 바탕으로 한 정치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사 금지령을 내리고 단두대에 보내고 하는 행위는 라이시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과거의 일을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 공화파가 가진 가톨릭에 대한 뿌리깊은 적대감과 오류가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가톨릭의 만행도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근세기에 들어서도 드레퓌스 사건 등 프랑스 가톨릭은 사회적 해악을 저질러 왔다. 라이시테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합의했던 프랑스인의 정치적 유산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하마드를 모욕한다는 죄로 누군가가 처형당한다면 프랑스인들은 불쾌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평등, 자유, 박애를 바탕으로 하는 프랑스 공화국의 정신이자 전 인류의 정신으로 믿기에 프랑스 국민들은 분노할 것이며 가능한 개입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 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러운 외교적 언사를 사용할 것이며, 설득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와중에 그들의 땅에서 그들 고유의 문화나 전통에 대한 생각없는 행동이나 존중을 표시하지 못하여 분노를 산다면 어리석은 행위일 뿐일 것이다. 반면 정체성 정치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프랑스 땅에서 이슬람 신성모독하는 만평을 금지하라는 주장을 하며 표현의 자유를 종교 앞에 굽히라고 요구한다. 또한 라이시테를 가리켜 무슬림 혐오자들이라고 비난해서 분노를 사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정작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반대로 이슬람이 다수라는 이유로 신성모독을 권장해서 분노를 산다. 서로 다른 집단이더라도 동지애로 협력해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한 다수자가 소수자를 가해자와 피해자로서 착취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라고 믿는 정치이념은 어디에서나 그 사회와 전통에 대한 일관성 없는 모독과 갈등만을 조장할 뿐이며, 다양성을 강조하는 그들의 목표는 설사 이루어진다해도 각 집단들간 힘의 균형으로 적대적 공존이 유지되는 사회를 구상할 뿐, 그 어떤 바람직한 사회상을 상상해 내지도 못한다. 따라서 프랑스는 공화정 정신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이념을 지켜 평등, 자유, 박애[24]를 지켜나가고 싶어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상과 행동을 반동주의라고 칭한다면, 그런 말이 타국인의 입에서 나온다면 타국인들의 굉장한 근자감의 발휘밖에는 안될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와 철학이 현대철학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미국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반동 운운할 만큼 현대 문화, 철학에서 대놓고 무시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25] 타인을 반동이라 칭하고 사소한 의혹을 내세워 사실의 검증없이 숙청하려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새롭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 자신을 정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정적들의 입을 공포로 틀어막고 그림을 지우고 동상을 무너뜨려 자신들의 말만 남기려는 반달리즘#을 행하는 것 역시 "오래된 현재"이며 그게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4.2. 영미권 진보진영 및 정치적 올바름 지지세력의 입장

라이시테가 과도하게 프랑스 중심적이고 보편주의적이지 못한 견해라는 비판도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도 극단적인 종교적 행태는 비판받고 배척된다. 프랑스의 역사적 특수성을 근거로 라이시테를 추구한다면 아랍권에서 무하마드를 모욕하는 행위를 하면 엄벌에 처하는 것도 그들의 특수성이라며 인정해야 하나 인권 선진국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가 없는 후진국이라며 비판한다. 또한 히잡을 쓰는 등 부조리와 무관한 문제에서 전통과 정체성을 주장하는 무슬림들까지 프랑스에선 싹 다 탄압한다. 이러한 라이시테가 과연 21세기에 와서도 '진보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매카시즘으로 탄압받으니까 정체성 정치같은 왜곡된 진보운동이 발달했다는 주장도 미국 학계에서는 프랑스적 오만이라고 반론한다. 미국도 제국주의적 행태를 벌이기는 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유럽 강대국들은 아예 대놓고 제국주의로 전세계 민족들을 탄압해놓고, 그 피해자인 무슬림을 포함한 소수자들의 정체성과 권리를 얘기하는 '탈식민주의'적인 운동을 프랑스에서 '프랑스 문화와 철학에 대한 영미권의 대대적인 식민화 시도'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면 그 전에 제국주의를 하지 않았어야 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정체성 정치가 반사회주의적이라는 것도 편견이다.[26] 정체성 정치를 가장 강하게 지지하는 미국 밀레니얼 50%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며, 샌더스나 AOC 등 미국의 사회주의자들도 정체성 정치를 부정한 적이 없다.[27] 오히려 미국에선 밀레니얼 사회주의자들이 아닌 캔슬 문화 운운하면서 정체성 정치를 부정하는 오바마 같은 온건주의 기성세대가 민주사회주의들이나 진보주의자들을 '급진주의'라고 비판하며(#, #)[28] 좌파 내지 사회주의에 가까울수록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 아닌 한)되려 정체성 정치를 지지한다. 즉, 정체성 정치=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소수자 정체성 정치와 사회주의는 충분히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는 되려 프랑스 우파와 프랑스의 기득권 지성계에서 우려하는 '미국의 사례'가 증명한다. 평등은 좌파가 추구해온 가치이며 정체성 정치는 이러한 평등 추구의 연장선에 있다.

퇴행적 좌파가 아닌 일부 극좌계열 정체성 정치 지지자들은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한다. 그들은 프랑스에서는 알라를 모욕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이 핍박받는 소수자이므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들은 튀르키예나 이란에서는 되려 무슬림이 소수자를 핍박하는 다수자라 중동에선 소수자들이 알라를 신나게 모욕하고 이슬람을 모욕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29] (퇴행적 좌파가 아닌) 좌파 정체성 정치 지지자들은 당연히 '튀르키예에서는 이슬람 혐오가 성립될 수 없고 프랑스에서 그리스도교 혐오는 성립될 수 없지만 그 역은 성립된다'고 본다. 전통은 다수자 중심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좌파 정체성 정치 지지자 입장에선 당연히 해체 대상이다. 그게 그리스도교든 이슬람이든 라이시테든 마찬가지이다. 편견과 달리 미국의 정체성 정치 지지자들 중에도 아얀 히르시 알리를 동정하며 "이슬람권에선 이슬람을 모욕할 권리가 있다"며 중동 소수자 편을 적극적으로 드는 이들도 소수나마 있는데다가 사실 정체성 정치 지지자들 중에도 이란이나 사우디, 튀르키예 우익 정권을 옹호할 정도로 퇴행적인 부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지지하는 미국 민주당부터가 민주주의와 소수자 보호하는 국가의 편을 든다. 쉽게 말해서 미국에서 퇴행적 좌파가 아닌 극좌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정체성 정치 지지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같은 나라에서는 이슬람 신성 모독을 권장해야하며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 극좌파들은 다수자 중심적 전통을 혐오하고 파괴할 것을 주장하며 이슬람권을 포함한 전세계 문화를 소수자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30] 미국도 2010년대 와서는 '미국식 밀레니얼 사회주의'가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DSA 등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도 '자본가계급'에 억압받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보아 노동계급 중심 문화투쟁에도 관심을 보인다. 미군 철수까지도 주장하는 미국의 반제국주의 좌파 사회주의자 일부가 프랑스식 라이시테로 이슬라모포비아를 정당화하는 행태를 비판했다고 이들이 문화제국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부아르나 푸코의 전통을 미국식으로 계승한 주디스 버틀러같은 이들도 미국 우파들에게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미국 사회 좀먹는다는 소리 듣고 있고, 놈 촘스키하워드 진,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학자들도 장폴 사르트르 못지 않게 소중한 지성들이다. 다만 정체성 정치 지지자가 이런 급진 좌파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밋 롬니, 수전 콜린스, 록펠러 공화당 등 리버럴적 소수자 담론이나 BLM, 미투 운동 등 정체성 정치를 지지하는 공화당 중도보수 인사들도 있어 케바케이긴 하다.[31][32]

그리고 라이시테와 전혀 무관한 문제에서도 프랑스가 미국보다 보수적이고 불관용적인 면이 적지 않다. 가령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일 당시에 프랑스 정부에서는 집시 추방 정책을 펼쳤다. 이것은 집시 일부가 소매치기를 해서 관광 수익이 떨어지는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즉 반사회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논리로 소수자를 핍박한 것이며 미국뿐 아니라 UN 등 국제 단체에서까지 인종차별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식으로 프랑스 내에서 소수자 핍박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프랑스가 미국보다 진보적/사회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의 정체성 정치는 프랑스식 진보담론보다 보수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이 공정한 판단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세속주의 논리 하에 영불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소수자 문화를 핍박하는게 진보는 아니다. 타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신체 접촉하지 말라는 것이 청교도적 윤리이며 정체성 정치인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미국보다 더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은 실제 한인 유학생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나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영미권의 세속주의를 폄하하고 그에 대한 외국인의 몰이해로 밀어붙이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미국의 진보적인 소수자 담론들을 정체성 정치라며 경멸적으로 바라보며 '문화적 식민화', '문화침략'이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불관용성을 정당화하지만, 이것은 중동의 이슬람주의자들이 하는 레토릭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 문화침략이라면, 전세계 곳곳에서 차별받고 사회적 타살로 몰려가는 소수자들 입장에게는 문화침략이 절실하게 필요할 수도 있다. 이슬람이 '다수자'인 이슬람권 국가들의 국가주도 여성 학대와 성소수자 및 그리스도인 핍박, 한국의 성소수자 차별을 미국식 담론으로 공격하는 게 문화침략이라면 그 문화침략은 필요악이다. 북한에 대한 제1세계 서방국가들의 제재와 인권개선 요구가 제국주의라면 그 제국주의는 필요악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소수자'인 무슬림 핍박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문화적 식민화라면 그 문화적 식민화는 필요악이다. 왜냐하면 지금 프랑스 우파와 기득권, 그리고 다수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그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주장에 자국의 전통이 훼손된다고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반동주의적인 분노를 표하며 징징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내의 소수자에는 이민자 등의 소수민족도 포함되어 있는데, 프랑스의 반종교적 정책은 민족 정체성을 거세하려는 시도로도 읽힐 수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에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기 때문이다[33] 이는 프랑스 정부가 표준 프랑스어 이외의 지방 프랑스어를 차별하여 지방 문화를 말살하는 행태와 다를 바다 없다.

또한 '프랑스의 입장 항목'의 마지막 문단에서 적힌 내용은 자기부정이나 다를게 없다. 프랑스 라이시테를 부정할 때 하는 논리가 가톨릭 측에서는 라이시테가 반대 세력을 반동으로 몰고, 그림을 없애고, 종교시설에 불을 지르거나 국유화해오고, 극단적인 반종교적 공포선동으로 온건 세속주의자들마저 매도해 숙청하고 자기들 말만 남기는 반달리즘을 행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논리를 지금 프랑스 우파들은 "라이시테가 무슬림 탄압에 이용되면 안 된다"는 주장을 정체성 정치라고 매도할 때 사용하고 있다. 본인들이 정체성 정치 비판하는 논리가 과거 가톨릭 극우파가 본인들을 비판했던 논리와 전혀 차이가 없다. 전투적 세속주의라는 이유로 반달리즘을 행하는 것은 라이시테가 훨씬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다. 최소한 BLM은 로버트 리 동상을 철거하라고 하지 교회에 불지르고 언론사에 쳐들어가 총질하고 공화당원들의 목을 자르지는 않았다. 이를 볼 때 프랑스 라이시테 옹호자들 일부는 자신들의 이슬람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 가톨릭 우파들이 자신들(라이시테) 비판하는 논리를 가져온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라이시테는 본래 교권으로 인해 억압받는 민중의 의지로 구현된 제도이다. 그러나 프랑스를 포함한 서유럽에서 19세기와 달리 가톨릭 교권주의가 무력해졌다. 따라서 과거의 가톨릭 우파를 막기 위해 민중의 의지로 만들어진 진보적 도구가 되려 (무슬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핍박하는 도구로써, 다양성을 억제하는 흉기로 이용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고, 프랑스 청소년의 60%가 넘는 수가 종교적 상징을 학교에서 허용하는 것에 호의적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과도하게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가 앞으로는 좀 더 유연하게 바뀔 것으로 기대해볼 여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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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의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완전한 '중도'로 적용되지 않으며 대한민국, 미국, 일본, 콜롬비아 등의 지역에서는 범좌파,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몽골, 베네수엘라 등의 지역에서는 범우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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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aïc의 여성형이다. République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성수일치해서 쓴다.[2] 역사를 뒤져보면 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중앙집중전통이라는 건 결국 중앙권력이 빠르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말이니 토착세력화를 방관하지 않고 바로 진압작전을 한다는 걸 의미한다.[3] 현대기준으로 생각해 이 어처구니 없는 조약에 프랑스가 구속될 이유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당대에 교회의 명분은 현대기준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세인들을 강하게 구속했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을 이 조약을 근거로 끊임없이 막았다. 이에 반발한 프랑수아 1세 "스페인 국왕에게 이 세계의 반쪽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담의 유언장에 나와 있다면 몇 항 몇 조에 있는지 보여주시오."라고 말하기까지 했지만 당장 프랑스 내에서도 교황령이 개입한 조약을 어긴다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컷다. 그 결과 예수회를 이단으로 몰아 해산하는 관구권 이전공작이 필요해진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관구권을 명분으로 포르투칼일 개척한 식민지 전체를 양도받는게 가능하다는 구상으로 이 장대한 공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되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식민지가 프랑스의 손에 넘어간다.[4] 교회사에서는 "설립자금과 인선을 프랑스 왕이 직접 전액 헌사였고 창립식에 친히 참석하여 사제들을 격려하였다."라고만 써있는데 왕이 왜 그랬는지, 이게 무슨 목적으로 세운 조직인지 뒤에 나올 행적으로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5] 임진왜란 당시 일본을 상대로, 원숭환후금을 상대로 대승을 거둘 때 쓰던 캘버린을 명나라는 홍포, 홍이포라고 불렀는데 이걸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기술자들을 예수회가 주선해 초빙했으며 그외 역법 시계 등등의 기술을 소개함으로써 유용성을 증명하고 사대부와 황제에게 호의를 샀다. <기하원본> 같은 서양의 기하학을 한역하여 소개함으로써 서양의 과학기술도 전파하였고, 이런 활동으로 가톨릭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었다. 이 신부들은 <천주실의>같은 경전을 편찬했음에도 "그 정도는 뭐 재들은 원래 저런 거 하는 학자들이니 서양의 도학도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명나라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6] 현존 가톨릭의 공식 입장과 같다. 이 해석을 이단으로 몰았는데, 이게 시대적으로 엄청나게 앞선 것이라기보다는, 가톨릭는 원래 개신교보다도 훨씬 유연한 종교다. 교리가 뒤바뀐다는 것을 불쾌해하는 카톨릭 신자들도 많으나 카톨릭의 교리는 해당 시점에서나 절대적인 것이지 시계열적으로의 변화는 교회사에 수두룩하게 드러나있어 부정하는게 오히려 이단이다. 이미 초대교회와 로마제국 시절부터 유지해 온 가톨릭의 기본적인 입장이고 이건 그냥 선교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그건 자신들을 전 인류의 보편종교(Catholic)로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통성과 전통을 강조하는 정교회(Orthodox)와 교리에 대한 입장 자체가 다른 것이다. 둘 다 중요한 것이지만 어느것이 더 표상적인 것인지에 대한 종교 철학의 차이다. 물론 이건 안전한 비잔티움궁전에 있던 정교회 주교와 당대 주변지역을 점거한 게르만족과 연합, 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로마 주교의 정치적 위치에 따라 결정되어진 부분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카톨릭은 현지인 관습이나 교리 수정에 있어 사도교회중 가장 적극적인 교파였다. 따라서 조상 숭배의 제사풍습을 허용했다는 걸 빌미로 이단으로 모는 것은 당대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원리주의적인 해석이었고, 정치적인 이유로 결정된 일이었다.[7] 한국 가톨릭의 역사에서 파리외방전교회가 한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에서는 이 점을 가급적 들추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톨릭의 교리를 담당하는 신앙교리성은 이때의 일을 확실히 잘못이라고 규정한다. 제사를 미신의례라고 인식한 당시 교회의 처분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2차공의회 이전논쟁을 되살리는 성 비오 10세회같은 복고파 이단의 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문제로 예수회가 파문되었었는데 따라서 예수회 입장에서는 매우 원한이 깊은 논쟁이라서 다른 과거의 과오 시리즈와 달리 그냥 좋게 좋게 묻어버리지 않고 확실히 과오라 규정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가장 많은 가톨릭 인구수를 가진 남미에서 예수회의 영향력은 매우 강하고 프랑스가 속한 유럽교단은 약해지기만 해서 현임 프란치스코(교황)마저 예수회 출신 인사라서 교리에 대한 해석 문제에 정치력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가 큰데다 제국주의적 과오를 정당화한다는 것에 대해 유럽쪽 교단인사들도 떨떠름한 상황이라 따리서 이 문제에 대한 중앙 교단의 시각은 한국 가톨릭 교단의 시선과 명백히 다르다.[8] 흔히 종교인과 가장 적대적인 것이 무신론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행동만 보면 이신론자들이 한수 더 뜬다. 무신론자나 이신론자나 종교인들을 사기꾼으로 보고 종교교단을 현실정치세력과 결합하여 이권을 탐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대개 그랬듯이 무신론자들은 그들을 사기꾼이라 생각하고 행동과 영향력을 제거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이신론자들은 세상이 흘러가는 질서, 역사, 정의, 윤리에서 신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적같은 세계를 두고 신에게는 더는 기적이 필요하지 않으며 기적이 필요한 것은 천박한 사기꾼들"이라는 제퍼슨의 말이 이런 생각을 표현해준다. 즉 종교인들이란 기적을 운운하며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경지 너머에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의 질서를 신이 직접 개입하여 어지럽힐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을 편애한다고 주장하여 결과적으로 신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즉 존재하는 모든 종교인과 교단은 그들에게는 사실상 이단이다.[9] 다만 모든 종교교육을 금지한 것은 아니고 목요일은 종교교육을 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10] 1905년 프랑스 정교분리에 관한 법률[11] 개신교 교회유대교 시나고그 등 당시 프랑스 내의 모든 종교시설에 적용되었으나, 역시 메인 타겟은 가톨릭 성당이었다.[12] 튀르키예에서는 공화국 초기 칼리파제를 폐지한 이후 라이시테의 영향을 받아 이렇게 하고 있다. 2021년 현재에도 튀르키예 내 모든 교단은 튀르키예공화국 종무부(T.C. Diyanet İşleri Başkanlığı)라는 장관급 부서에서 모스크의 신축, 철거, 관리, 근무자의 고용과 해고, 이맘의 기용, 종교기관의 관리, 종교자선기관-와크프-의 관리 등 모든 종교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심지어 금요일 설교문도 전부 다 여기서 짜서 방침을 지시한다. 또한 튀르키예공화국 종무부 장관은 오스만 제국시절 셰이휠 이슬람(Şeyh-ül İslam)처럼 튀르키예 내에서의 교리해석에 있어 최고 권위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이슬람에 대한 관리는 이슬람 국가에서도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다.[13] 종교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종교를 몰아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 정신이 라이시테다.[14] 이 한 교수가 프랑스인 전체의 시각을 대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프랑스인의 전반적인 정서를 보여주는 데는 좋은 글이라 링크한다.[15] 영미권이나 같은 라틴 국가라도 지방 자치가 고도로 발달해있는 스페인, 이탈리아의 지식인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은 따라서 진보적인 나라 프랑스 이미지 자체에 의문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적어도 이 사람들, 해당 나라들의 정치적 전통에서 프랑스, 현대 대한민국식의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행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와 불신은 진보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이고, 좌파란 사람들이 '공화국'이란 단어가 상징하는 민족주의에 너무도 열광하는 프랑스식 자코뱅 좌파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보인다.[16] 오해하면 안 되는 점은 영미권에서 좌파만이 정체성 정치를 이용한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다. 특히 근래 들어 우파 역시 정체성 정치를 이용한다는 관점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이는 좌우 모두 국민 통합보다는 분열이 더 이득이 됨을 알고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17] 헤겔의 말처럼 양적 차이는 질적 차이로 변화한다.[18] 프랑스에선 정체성 정치의 총본산인 미국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미국 내에서 정체성 정치가 흑인들의 Thug Culture에 정당성을 준 결과 경찰 및 공권력에 대한 공격, 강도 및 범죄행위 미화, 백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을 포함한 타인종 모두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을 유도할 뿐, 흑인들의 사회-정치적 지위향상에 도움이 될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버락 오바마가 정체성 정치를 반대하고 흑인사회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 대신 오바마는 Thug Culture 보다 훨씬 온건한 BLM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19] 미셸 우엘베크는 자신이 부자이기 때문에 앙 마르슈에 투표하지 국민전선이나 사회당에 투표할 수 없다고 표현한다. 즉 사회주의적 기본 가치관은 가지고 있는데 "허무주의적이고 냉소적이라 부자인 나는 앙마르슈에 투표한다."라면서 앙마르슈도 비꼬는 형태의 발언인데 그의 작품 세계 전체가 이런 식이다. 따라서 프랑스 내에선 어떤 기준으로도 그를 극우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페미니즘, 이슬람에 대한 비판,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를 표현한 시점에서 그를 극우라고 딱지 붙이는 영미권 사람은 많으나, 프랑스에서는 아니다. 당장 영미권 언론이 극우적이라고 비판하는 집권당 앙마르슈가 지지율 50~70%이고 앙 마르슈보다 확실한 오른쪽에 있는 공화당과 국민전선은 20%~40% 사이를 기록한다. 사회당의 지지율은 5%까지 폭망했고 두자리수 지지율이 지상목표인 상태다. 이 상태에서 우엘베크를 극우라 표현한다면 프랑스인의 최소 90%를 극우로 규정된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이런 기사가 종종 나온다. 이래서 모욕적이라 느낀 프랑스인들이 영미권 언론에 매우 적대적인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복종은 정치소설이 아니라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린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라이시테 강화 법안이 의회에서 압도적 찬성률로 지속적으로 통과되는 것처럼, 프랑스 내에서는 결코 일각의 문제 의식이 아니다.[20] 이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좌파나 우파라는 라벨을 붙여서 자신의 마음속에 필터링을 하는 것이다. 좌파의 전유물이었던 라이시테를 극우까지 수용한 것은 르펜 가문의 세대교체가 일어난 불과 30년 남짓한 일이며 라이시테는 늘 사회당의 의제였다. 이런 사람들 상당수가 집권당 앙 마르슈!로 옮겨가긴 했지만, 앙마르슈는 사회당 지지자의 과반 이상을 흡수하며 집권했고 사회당 내에서도 라이시테 원칙을 이슬람에 어디까지 굽힐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무 자르듯 단정하면 사안을 오히려 오해하게 된다.[21] 모든 기사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프랑스에 수십 년간 살아온 학자가 쓰는 논평이나 특파원이 쓴 기사도 잘 찾아보면 있다.[22] NYT 사설에서도 나온다.##[23]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아직 강고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정체성 정치에 부정적인 사람은 있다.[24] 갈등론적 사회해석의 산물인 정체성 정치와 아예 개념단위에서 대립한다. 정체성 정치의 전제는 박애(Fraternité)와 완전히 반대되는 전제를 깔고 있으며 그 행동양식 또한 정체성에 기반한 집단간의 가해자, 피해자 규정을 통한 투쟁과 각기 다른 집단간 공동의 목표를 위한 연합행동으로 정반대다.[25]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서양 현대철학은 그냥 프랑스 현대 철학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서구 현대 철학 정립에 프랑스 철학자들의 공헌이 지대했다. 영미권은 정치적 올바름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나 가열찼지 학계에서 계속해서 인용되는 이론은 거의 다 프랑스 현대 철학의 산물이다. 프랑스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나 정체성 정치가 영미권만큼 잘 수용이 안 되는 이유도 그들 입장에서 그것들은 편협하고 논리적 일관성도 없고 지적 성실성을 결여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소리 듣는 게 없던 말도 아니고, 한두 해도 아니라서 프랑스 내에서도 문제의식은 많았다. 프랑스에서는 68혁명 이후 대학 평준화와 함께 유서깊은 명문 대학들이 여러 대학으로 쪼개지면서 권위도 파편화되어 하버드, 옥스퍼드발 논문에 대항할 수 없었다는 반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소르본 대학교가 부활되었다.[26] 사실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이 웃긴 게 영미권에서 비판 측은 사회주의라고 색깔론을 펼치면서, 또 다른 쪽에서는 되려 사회주의가 아닌 왜곡된 진보운동이라는 것이다. 정체성 정치와 사회주의는 별개의 개념이지만 미국식 민주사회주의와는 충분히 결합할 수 있다.[27] 샌더스는 트럼프 당선 당시 정체성 정치말고 노동 문제도 관심가져야 한다는 식의 발언이 왜곡되어서 한국 인터넷에서 밈처럼 떠돌고 있긴 하지만, 정체성 정치 자체가 왜곡된 진보인 마냥 부정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촘스키도 정체성 정치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노동 문제에 소홀하면 안되고 (정체성 정치는) 노동 문제와 같이 가야할 문제라는 식으로만 언급할 뿐이다. 샌더스는 60~70년대 민권운동과 정체성 정치, 베트남전을 비롯한 반전주의 좌파 운동, 당시에는 좌파였던 시오니즘 운동, 성해방 운동을 지지하며 반자본주의 극좌 정당(자유연합당)에서 활동도 하는 등 정통 신좌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경력 때문에 우파들과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몽상적 히피 극좌파라는 비난을 받았다.[28] 참고로 오바마는 친 마크롱 성향이다.[29] 이는 1990 ~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진보진영 중에서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서는 중동 문화권과 달리 동성애자들의 목을 자르지 않고, 유대교 모욕에 최소한 형사적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지금 미국 급진 좌파 진영에서 시오니즘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연장선인 것이다. 우파 시오니즘에 의해 팔레스타인 정체성이 학대당하고 있기 때문.[30] 물론 미국 주류세력이 친사우디 성향이 있지만 우파가 아닌 온건 리버럴들은 사우디 인권 문제를 우려하고 샌더스와 유사한 급진 좌파 리버럴(현대자유주의) 내지 사회주의자들은 사우디를 강하게 비난한다.[31] 사실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은 트럼프 당선도 정체성 정치보다는 백인노동계층의 계급적인 분노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즉 (미국 기준)정체성 정치를 부정하는 극우파들과 달리 정체성 정치를 추구하더라도 제대로 (백인 포함)노동자 제대로 챙기고 복지했으면 반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대안 우파 같은 유사 파시즘 운동이 고개를 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바마 등 친월가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기도 한다. 즉, 진짜 문제는 '노동 정치의 빈곤'과 '열악한 복지 체계'이지 '정체성 정치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진보적이고 미국보다 훨씬 복지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는 캐나다를 들기도 한다. 이쪽은 아예 정체성 정치 반대 세력 자체가 강경우파 내지 극우로 몰리지만 캐나다인 대다수는 자국의 정치 시스템에 큰 불만이 없다. 또한 캐나다의 사례는 프랑스의 다양성 부족을 비판할 때 나오는 케이스이기도 하다.[32]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는 오바마 부부도 BLM을 지지하며 아내 미셸은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당연한 주장을 트럼프가 조롱거리로 만든다고 발언할 정도이다.#[33] 당장 한민족의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유교가 있다. 종교가 민족 구분의 가장 큰 요소인 유대교이슬람말할 것도 없다. 남슬라브의 경우에는 서로 말이 통할 정도로 가까운 민족이지만, 종교가 갈라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