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음악가였던 조제프 불로뉴 슈발리에 드생조르주(Joseph Bou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 1745.12.25-179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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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oirs en France / French Blacks프랑스 국적 흑인.[1]
유럽내 흑인들 중 가장 규모가 크지만 프랑스에선 인종이나 민족별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불법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근거하고 1958년 수정된 프랑스 헌법이 이를 금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추정치를 쓰며 적게는 300만에서 많게는 500만 이상 정도로 추정한다. 대략 프랑스 인구 8% 이상에 이르는 비율이다.[2] 이는 유럽 내에 거주하는 흑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이며 160~300만으로 추정되는 영국보다도 많은 수치이다.[3] 서구권 국가로 확대하면 프랑스보다 흑인비율이 높은 나라는 전체인구의 12%인 미국뿐 이다.[4]
2. 이민사
프랑스 흑인 5명 중 1명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왔고 나머지는 영국 흑인의 상당수와 마찬가지로 카리브에서 이주해왔다. 프랑스흑인대표위원회(Conseil représentatif des associations noires de France, CRAN)에서는 소수민족이나 소수자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 수집을 해보려고 하지만 다른 조직이나 정치인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2007년 프랑스 대선 당시에 니콜라 사르코지는 이 문제를 합법화하겠다고 했지만 흐지부지된 듯하다.프랑스에 흑인이 산 것은 꽤 오래 전 일로 프랑스 혁명 당시에 프랑스 흑인으로 구성된 군 부대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많은 흑인이 건너왔다. 프랑스 흑인보다 더 많은 소수집단은 북아프리카인들로 흔히 무어인나 마그레브인, 아랍인 등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백인들이다. 이자벨 아자니가 대표적인 북아프리카 출신 혈통이다. 물론 북아프리카계 프랑스인 중에는 투아레그족 같은 흑백혼혈도 있다.
스포츠나 연예계에서 많이 활동한다. 특히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엔 흑인이 많다. 그러나 정치적인 파워는 대개 유럽 국가의 흑인 커뮤니티가 그렇듯이 아직은 인종차별 이슈 이외에 영향력 발휘가 힘들다. 2017년을 기점으로 불굴의 프랑스 등의 급진좌파 정당에서 흑인들의 힘이 커지고 있지만 그 이외의 정당에서의 힘은 아직 미미하다.
그래도 유럽 내에서는 프랑스가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덜한 편이다. 미국에서는 흑인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가 있었기에 흑백 갈등이 심각했지만,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령을 제외하고 유럽 내의 프랑스에서는 노예제도가 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참혹한 인종갈등 역사가 없다. 단 어디까지나 덜한 편이지 없는 건 아니다. 2023년 프랑스 폭력 시위를 보듯이 은근한 차별이 있으며# 많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이주해서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존중을 받기도 하지만 이런 어두운 면도 있는 것이다.
1차대전 당시 미군부대 소속으로 참전한 미국 흑인들은 프랑스에서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았는데, 파리 시내의 모든 가게와 식당들이 자신들을 내쫓지 않고 받아주었고, 시민들 역시 평범한 백인들을 대하듯 허물없이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미국 남부에서는 군정이 끝나고 나서부터 흑인에 대한 차별이 다시 극성을 부려 흑인들은 백인과 같은 시설을 이용하기는 커녕 참정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흑인 대이동도 이때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악명높았던 대규모 흑인 노예 제도와 백인과 흑인의 분리를 강제하는 짐 크로우 법 등의 역사적, 제도적 요인으로 인해 미국 사회 전반에 인종차별이 뿌리깊었던 반면, 프랑스는 법이나 제도 등으로 인종차별을 정착시키지는 않았고 역사적으로 유럽과 중동을 비롯한 인접국들과 교류가 많았기에 인종적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문화가 보다 확산되어 있었으며 노예 제도가 있긴 있었으나 미국처럼 본토에 대규모의 흑인 노예는 없었고 노예는 대부분 식민지에 있었으며 미국보다 더 빠른 1848년도에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요인이 프랑스가 미국보다 흑인 차별이 적었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유로 2008 당시의 프랑스 대표팀. 엔트리 가운데 흑인이 14명에 백인이 9명이다. 백인 중에서도 카림 벤제마와 사미르 나스리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계 혈통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연장 후반 라파엘 바란이 교체된 직후에 프랑스 선수 중 골키퍼인 요리스와 윙어인 음바페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 9명 모두가 흑인인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5]
3. 유명인
3.1. 정치
가스통 모네르빌(Gaston Monnerville, 1897-1991). 프랑스 최초의 흑인 상원의원이다. 1946년부터 1974년까지 공화국 의회[6] 및 프랑스 상원에서 의원으로 일했고 1947년부터 1959년까지는 공화국 의회 의장을, 1959년부터 1968년까지는 상원의장을 지냈다.
3.2. 군사
3.3. 사업가
3.4. 문화예술
3.5. 스포츠
3.6. 기타
- 다요 우파메카노
- 바카리 사냐
- 사뮈엘 움티티
- 수리야 보날리
- 스티븐 은존지[9]
- 시릴 간
- 알렉상드르 뒤마[10]
-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 악셀 디사시
- 앙토니 마르시알
- 에릭 아비달
- 알루 디아라
- 위고 에키티케
- 이고르 & 그리슈카 보그다노프[11]
- 라사나 디아라
- 야야 사노고
- 얀 카라모
- 오마르 시
- 우스만 뎀벨레
- 오렐리앵 추아메니
- 제프 렌아델라이드
- 조프리 콩도비아[12]
- 클로드 마켈렐레
- 토니 파커
- 토마알렉상드르 뒤마[13]
- 탕기 은돔벨레
- 파트리크 비에이라
- 파트리스 에브라
- 펠릭스 에부에
- 폴 포그바
- 프란시스 은가누 : 카메룬 이민자
- 프랑시스 코클랭
- 프레스넬 킴펨베
- 은골로 캉테
- 이브라히마 코나테
- 퀴르트 주마
- 토마 르마
- 티에무에 바카요코
- 뱅자맹 멘디
- 페를랑 멘디
- 블레즈 마튀이디
- 코랑탱 톨리소
- 킹슬리 코망
- 만수르 바르나위 : 튀니지 난민 출신
- 칙 콩고
- 웨슬리 포파나
- 워렌 자이르에머리
- 티모시 펨벨레
- 랑달 콜로 무아니
- 쥘 쿤데
- 브라이스 삼바
- 스티브 만단다
- 마이크 메냥
- 알퐁스 아레올라
- 에두아르도 카마빙가
- 지레스 켐보 에코코
4. 관련 문서
[1] 아프리카계 프랑스인이란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영어로 African French하면 보통 아프리카에서 쓰이는 프랑스어를 말한다.[2] 유럽에서 프랑스와 비슷한 흑인 비율을 가진 국가는 포르투갈으로 포르투갈 인구 흑인 비율은 약 7% 정도이다.[3] 단, 영국은 전체 인구 흑인 비율이 프랑스에 비해서 상당히 적은 편이고 실제로 파리나 클레르몽같은 대도시권에 가보면 백인이 별로 없고 전부 흑인들만 거리에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유럽계 민족이 상당수가 살고있으며 사실상 준서구권 국가나 다름없는 브라질도 공식적인 흑인 비율은 7.6%로 통계상으로는 프랑스보다 적은 편이나 흑인 피가 어느정도는 섞인 갈색 피부의 혼혈인인 파르두의 비율이 43%에 육박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흑인다수 국가로 인식이 되고 있다.[5] 음바페는 흑백혼혈, 사실 냉정히 말하면 바란도 흑백혼혈인지라 교체 이전에 이미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중 순수 백인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6] Conseil de la République. 프랑스 제4공화국 시기 프랑스의 상원이다. 현재 프랑스 상원의 전신.[7] 카메룬-알제리 혼혈.[8] 정확히는 서인도계 혼혈[9] 정확히는 혼혈[10] 엄밀히 말해서는 쿼터.[11] 쿼터이다. 정확히는 외할아버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였던 롤랜드 헤이즈. 다만 보그다노프 형제들의 모친은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였고, 롤랜드 헤이즈는 죽을 때까지 보그다노프 형제들의 어머니를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이들 형제가 외할아버지를 생전에 만난 적은 없다.[12] 프랑스 출생이고 청소년 대표팀은 프랑스 대표팀으로 뛰었지만 성인 대표팀은 부모님의 조국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선택해 더이상 프랑스 대표팀으로 뛸 수 없다.[13] 정확히는 혼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