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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o-brasileiros. 브라질 국적을 지닌 흑인을 말한다.
1. 개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혈통의 브라질인들을 말한다. 브라질은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흑인이 사는 나라이다. 유명한 인물로 펠레,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있다.2. 역사
16세기 때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원주민의 노동력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대농장의 운영을 위해 가까운 서아프리카 해안지대에서 노예를 수입한 것이 시초이며, 17세기에는 브라질 남동부 내륙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노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내륙에도 유입됐다. 아프리카에서 브라질로 이주당한 노예들은 크게 서아프리카 출신과 중앙아프리카 출신으로 나뉘었다. 서아프리카 출신들은 대부분 오늘날 나이지리아와 베냉 일대의 요루바족이 많았는데, 주로 다호메이 왕국에서 이웃한 오요 왕국을 공격해서 잡아온 노예들이었다. 중앙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은 주로 오늘날의 앙골라, 콩고 일대에서 잡혀온 반투어군 부족 노예들이 중심이 되었다.브라질의 노예제는 미국보다도 훨씬 가혹했다. 미국에서는 소규모 농장에서 노예를 부렸기 때문에 종종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었으나, 브라질의 대농장에서는 농장주가 관리하는 노예의 규모가 훨씬 더 컸다. 미국에서는 먹다 남은 밥을 주던 것과 달리 브라질에서는 아예 밥을 한두가지만 줘서 중노동과 영양불균형 때문에 브라질에 도착한 후 대개 7~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영양학 상식이 부족했고, 소나 돼지한테 사료를 주듯이 사람에게 밥을 계속 한두가지만 넉넉하지도 못하게 주는데 빨리 죽는게 당연했다.[1] 브라질에 유입되는 흑인과 백인은 모두 남초였지만 흑인 남성의 경우 가혹한 환경으로 인해 수명이 훨씬 더 짧았고, 이러한 연유로 포르투갈계 브라질인 상당수는 흑인 노예 여성과의 사이에서 혼혈 아이를 보았다. 브라질 흑인들은 노예뿐만 아니라 청지기, 보모, 가정부, 처첩, 정부 및 첫 경험 상대 등으로 백인들과 부대끼면서 살았기에 브라질 흑인들은 대개 상당수의 백인 혈통이 흐른다. 브라질 흑인들의 유전자 중 모계는 85%가 흑인이지만 부계는 대략 50%는 백인에서 왔다고 한다.
일부 요루바족들은 무슬림이었고 종종 하우사족이나 풀라족 출신 무슬림들이 노예로 끌려올 때도 있었는데, 이들은 노예 대우에 맞서 봉기할 때도 있었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상당수가 마름 같은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19세기 이전 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계 브라질인 대다수가 문맹이었고, 농장주들 중에서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풀라족이나 하우사족 흑인들은 포르투갈어 라틴 문자가 아니라 아랍 문자를 배워온 사람들이었지만, 글을 읽고 쓴다는게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다른 언어로 글을 읽고 쓰던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게 더 빨랐다. 브라질에서는 무슬림 출신 노예들을 말레(Malê)라고 불렀는데, 1835년 라마단 기간에 약 600여 명의 흑인 무슬림들이 브라질 바이아에서 봉기를 일으켰다가 진압된 사건도 있었다.
16~17세기동안 51만여 명의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으며, 1701년부터 1760년 사이에는 958,000여 명, 1761년부터 1829년에는 172만여 명, 1830년부터 1855년까지는 618,000여 명이 서아프리카 등에서 노예로 유입되었다. 후에 브라질 제국의 2대 황제 페드루 2세에 의해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노예였던 흑인들은 그때서야 모두 해방된다. 페드루 2세는 노예제를 폐지한지 1년 만에 노예제 폐지에 불만을 품은 농장주들에게 매수된 군인들의 쿠데타로 폐위되어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쿠데타를 주도한 군인들이 신헌법 제정을 놓고 지들끼리 권력 투쟁을 벌이느라 바빠서 쿠데타의 목표였던 노예제 부활은 흐지부지되었다.
브라질 식민지의 본국인 포르투갈이 워낙에 인구가 부족했던데다가, 15세기부터 서아프리카 노예 무역을 주도했던 나라이다보니, 결과적으로 당시 브라질의 흑인 인구비율은 백인의 몇 배를 넘었으며 특히 1835년 브라질 인구조사에 의하면 흑인이 브라질 인구의 51%를 차지해서 절반을 넘었다. 다만 이 흑인인구 증가는 주로 노예무역에 의한것이었고, 윗문단에 적혀있듯이 혹독한 착취로 인해 후손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던데다가, 백인 농장주와의 통혼으로 흑인들의 자체 인구증가율이 낮았으며, 브라질 독립 후에 비 포르투갈인 백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고 1850년에 흑인노예의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들의 인구비율은 빠르게 줄게 된다. 처음 개발된 브라질 북동부를 중심으로 몰려있는데, 이 지역은 정글을 무리하게 개간하여 토양의 표토층이 유실되고[2] 계속되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토질이 악화되는 바람에[3] 19세기 이후로는 브라질 내에서 가장 척박하고 빈곤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설상가상으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레반트, 독일 등지로부터 유럽 및 중동계 백인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오고[4], 1877~78년에는 동북부에 대기근이 발생하였음에도 브라질 정부에서 별다른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아 40~50만여 명에 달하는 흑인 인구가 아사하기도 했고, 흑인 노예 해방으로 흑인들의 인구증가율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 당시에는 백인들도 자식 다섯 정도는 기본적으로 낳을 정도로 브라질 전반의 출산율이 한창 높았던 시기였고, 브라질 정부에서 흑인여성들에게 미혼 백인남자와 통혼을 적극적으로 권하여 흑인의 인구비중은 10% 아래로 고정되었다.
3. 현황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의 흑인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61%에 불과하다. 그러나 브라질 흑인 혈통을 가진 인구 비율은 이보다 높다. 흑인에 대한 차별 및 자가응답에 의지하는 브라질 인구 통계 특성상 자신을 흑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혼혈인으로 규정하는 문화 등이 반영된 것이다. 흑인이라도 포르투갈계 유럽인 조상을 두는 경우가 많으니 혼혈이라고 주장할 근거도 있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흑인들의 유입이 미국보다 훨씬 많았음에도 통계상의 흑인 비율이 미국보다 낮게 나온다.[5] 또한 브라질에서 흑인 가계에 백인 한명만 있어도 백인으로 등록되면 백인으로 불린다. 쌍둥이 형제가 한명은 햇빛에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흑인 전형으로 학교에 붙고 한명은 집에서 공부만 해서 피부가 좀 하얗다고 흑인이 아니라고 흑인 전형에서 떨어지는 일도 존재한다. 관련 포스팅브라질 전체 인구 가운데 자신을 이른바 파르두(혼혈)로 자각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43%[6] 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유전적으로 보면 인구의 80% 이상이 흑인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그러니까 외형으로는 분명히 유럽계 백인이라 해도 조상 중에 흑인과 원주민 조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얘기고, 반대로 흑인이라 해도 유럽계 백인이나 브라질 원주민 조상이 있는 흑인도 많다는 얘기다.
브라질에서도 흑인계 브라질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상당하다. [엔조이리우] 브라질 내에서 인종차별은 어느정도인가요? 동영상 속 브라질 출신 청년들의 말에 따르면, 흑인계 브라질인들은 아무 죄가 없어도 경찰서에 끌려가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취업에 있어서도 흑인들을 암암리에 차별해서 흑인들이 고임금직에 취직하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브라질에서 흑인 중산층의 비율은 백인 중산층 비율에 비해 현저히 낮고 교육수준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미국처럼 흑인민권운동이 큰 규모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브라질 흑인이라고 해서 호구처럼 가만히 있던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백인들이 흑인들과의 결혼을 대놓고 꺼리는 풍토가 미국에 비해 적어서 상대적으로 흑인들의 자녀가 중위층 이상으로 진출하는 것이 수월했다는 점이나, 혼혈이면 적어도 중간 정도는 치는 사회적인 풍토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종갈등이 덜 분출되었던 편이다. 20세기 중반 제툴리우 바르가스같은 인물이 흑인 차별을 크게 없애서 김을 뺀 것도 있고, 미국에서 흑인 민권 운동이 벌어질 동안 브라질은 군사독재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더 시급했던지라 흑인민권운동이 상대적으로 뒤로 밀린 이유도 있었다.
어쨌든 브라질의 흑인들 가운데 대다수가 빈민층으로 열악하게 살고 있다. 군사정권기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흑인에 대한 이럴다할 정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들은 초등교육 정도만 받고 바로 사회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초등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흑인들도 적지않아서 문맹률이 20%대에다가 평균소득도 백인의 절반 이하에 머물렀다. 2000년대에는 보우사 파밀리아와 소수자보호법 도입으로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흑인들이 늘면서 상황이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흑인들이 많이 사는 북동부 지역은 브라질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히고, 적지 않은 흑인들이 여전히 엄청난 빈부격차와 암암리에 잔존하는 사회적인 차별, 열악한 치안과 인프라로 인해 고통받는건 여전하다. 치안 개선을 한다고 경찰에 의해 애꿎게 살해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브라질의 축구계에는 흑인계 선수가 많이 진출한 편이다. 축구황제로 평가받는 펠레부터가 브라질 흑인이며 펠레 외에도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가린샤, 카푸, 히바우두, 호나우두, 지우베르투 시우바, 호나우지뉴, 호비뉴, 마르셀루, 네이마르 주니오르, 루카스 모라, 가브리에우 제주스 등 많은 축구스타를 배출했다.
종교적으로는 63%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며, 흑인들이 주축이 되어 탄생시킨 브라질의 문화로는 삼바, 카포에라 등이 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로 BLM 운동이 거세지면서 흑인 정체성을 숨기던 이들이 다시 흑인 정체성을 밝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1] 비타민이 발견된 것은 엄연히 현대의 일이고 물론 대항해시대 선원들이 괴혈병으로 죽어나간다던가 18~19세기에는 유럽에서도 비타민 B3 결핍으로 펠라그라병에 시달리는 인구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별로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다.[2] 밀림 지대는 강우량이 높은 만큼 토양의 영양분이 씻겨내려가는 경우가 많아 척박한 편인데, 이 상태에서 숲이 파괴되고 토양이 그대로 폭우에 노출되는 경우 그나마 빈약한 표토층마저 쓸려내려가고, 새로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과정에 반복되면서 토양이 더 척박해진다. 밀림이 우거져있던 지역에 숲이 대규모로 벌채되면 해당 지역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강우량이 감소하고, 극단적인 경우로는 종종 밀림이었던 지역이 개간한 지 몇 년 안가 사막화되는 경우마저 생긴다.[3] 사탕수수는 옥수수, 인삼, 담배 등과 함께 지력 소모가 엄청난 식물이다.[4] 이들을 주로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남동부 지역이나 남부 지역으로 이민왔다.[5] 비교하자면 미국에서는 혼혈이라 해도 외모에서 흑인의 모습이 나오면 흑인으로 간주되거나, 스스로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버락 오바마도 어머니가 백인이지만 미국에서 흑인으로 간주되었고 스스로도 흑인이라 생각했는데, 만약 브라질이라면 혼혈인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6] 물론 혼혈이라 해도, 흑백혼혈만 있는 건 아니고 원주민 혼혈도 의외로 상당한 편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