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5 00:25:42

히바우두


히바우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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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FIFA 올해의 선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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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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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히바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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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안드리 솁첸코
1999 코파 아메리카 MVP
히바우두
월드사커 1999 올해의 선수
히바우두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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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히바우두.jpg
전체 이름 히바우두 비토르 부르바 페헤이라
(Rivaldo Vítor Borba Ferreira)
생년월일 1972년 4월 19일 ([age(1972-04-19)]세)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
출신지 페르남부쿠 주 파울리스타
신장/체중 187cm / 76kg
포지션 프리롤 공격수[1],공격형 미드필더,좌우 윙어
등번호 11번, 10번
소속 클럽 산타크루스 FC (1991~1992)
모지미링 EC (1992~1993)
SC 코린치안스 (1993~1994)
SE 파우메이라스 (1994~1996)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1996~1997)
FC 바르셀로나 (1997~2002)
AC 밀란 (2002~2003)
크루제이루 EC (2004)
올림피아코스 FC (2004~2007)
AEK 아테네 FC (2007~2008)
FC 분요드코르 (2008~2010)
상파울루 FC (2011)
카부스코르프 SC (2012~2013)
AD 상카에타누 (2013)
모지미링 EC (2014~2015)
국가대표 74경기 35골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커리어4.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5. 1999년6. 2인자7. 끝자락8. 기타9. 경력
9.1. 대회 우승9.2. 개인 수상
10. 관련 문서

1. 개요



내가 유스클럽에 있었을때 나는 호마리우의 플레이를 보면서 자랐고 1군에 콜업됐을 당시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목격했으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필드에서 뛰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최고는 히바우두다.
- 샤비 에르난데스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공격수. 특별한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롤 선수이지만 주로 섀도우 스트라이커와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호나우두 등과 함께 1990~2000년대 브라질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 플레이 스타일


히바우두는 미드필더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공격수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 스트라이커부터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유연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선수였다. 투톱이나 쓰리톱에서의 한 자리를 차지한 상태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는 선수이다.

악마의 왼발로 알려졌을 정도로 왼발슛과 크로스가 자로 잰 듯 정교하다. 심지어 거의 모든 볼터치를 (의식적인지 본능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왼발로만 행하며, 차는 것도 전부 왼발. 발 하나를 거의 안 쓰는데도 불구하고 감각적이고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점에서는 헝가리의 유명한 레전드 페렌츠 푸스카스와 흡사하다. 물론 둘의 소속팀은 철천지 원수지만.

몸싸움도 주력도 뛰어났다. 등지는 플레이 등의 피지컬로 수비수들 사이의 좁은 틈새에서 자신의 공간 확보 후 왼발 테크닉으로 폭풍 돌파 or 패스로 수비라인을 박살냈다.[2] 즉 말하자면 무시무시한 킥력에 덤으로 몸빵과 주력을 얹은 선수. 수비 입장에서는 들러붙자니 이긴다는 자신이 없고 좀 떨어져 있자니 발도 빠른데 킥력도 좋다.

아르연 로번이 자주 쓰는 드리블 스킬로 유명한 컷 인 드리블의 달인이기도 하다. 로번의 컷 인 드리블이 몇 번을 연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치고 들어가서 수비진의 허점을 찾는 형태의 드리블이라면, 히바우두의 컷 인 드리블은 꺾어들어가는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언제든지 슈팅할 수 있는 각을 만들어버리는 형태이다. 또 로번보다 컷 인 동작이 훨씬 역동적이라는 것도 차이점이다. 히바우두는 상체각도를 매우 자주 바꿔가며 온 몸을 페이크 동작에 사용한다.

히바우두의 가장 큰 약점으로는 탐욕을 꼽을 수 있다. 선수생활 최전성기인 바르셀로나나 브라질 국가대표등에서 섀도우 스트라이커나 인사이드 포워드 등의 역할을 많이 했지만 원래는 골 사냥꾼에 가까운 선수이고 멘탈리티 역시 그러했다. 물론 본인의 능력이 출중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본인이 결정적인 순간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컸고 그렇게 날려먹은 찬스도 제법 되는 편. 요한 크루이프는 히바우두를 두고 훌륭한 테크니션임에도 포지셔닝이 좋지 않아 항상 어렵게 플레이를 한다고 깠다.

3. 커리어

브라질 리그에서 뛰다가 1994년 팔메이라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1996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하며 유럽축구에 발을 딛는다. 적응기는 고사하고 오자마자 21골을 몰아쳤고(득점랭킹 리그 4위), 호나우두가 인테르로 떠나고 그의 대체자를 찾던 FC 바르셀로나가 그를 영입했고 그와 바르셀로나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바로 전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 CF에게 승점 2점차로 리그 우승을 빼앗겼기에 바르셀로나는 독기를 잔뜩 품고 있었고, 히바우두 -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 루이스 피구로 이어지는 스리톱[3]을 형성하고 뒤에서 과르디올라가 킬패스를 쭉쭉 질러주는 공포의 스쿼드를 갖추게 된 바르셀로나는 이듬시즌 4년만에 라 리가 챔피언 자리를 탈환함과 동시에 국왕컵에서도 우승, 한 시즌 더블을 이룬다.

이후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바르셀로나 전력의 핵심으로 활약하다, 감독과의 불화로 스쿼드에서 제외되는 일이 많아지고 때마침 베를루스코니 구단주가 원해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나 대망.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전술상에 히바우두가 녹아들지 못하던 상황에서, 당시 막 이적해온 카카에게 완전히 밀렸다. 그러나 자신은 후배 카카의 성공에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오오 대인배.

결국 벤치신세에서 벗어나 주전을 뛰기 위해 떠돌다 크루제이루를 거쳐 2004년 그리스 리그의 올림피아코스 FC로 이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올림피아코스에서의 맹활약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혼자 미쳐 날뛰면서 레알 마드리드나 리버풀 등 온갖 강팀들을 때려부수는 활약을 보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거의 리버풀을 때려잡고 진출할 뻔했으나 리버풀의 젊은 주장의 극적인 중거리가 터지면서 고배를 삼키게 된다. 그리고 2007년에는 올림피아코스 생활을 마치고 그리스 리그의 AEK 아테네로 이적해 1시즌동안 활약했다.

파일:attachment/Rivaldo_Bunyodkor_1.jpg

그리고 2008년 또다시 이적을 감행했는데, 새로 입단하게 될 팀은 우즈베키스탄FC 분요드코르. 당시 분요드코르는 엄청난 돈지랄자금력을 동원해 아시아 축구계의 신흥 강호로 올라서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이었고, 히바우두 영입에 이어 감독으로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앉히며 일약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세로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렸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8강전에서 2차전 연장 혈투까지 가는 끝에 결국 4-5로 패해 좌절되었고, 2010년도 알 힐랄에게 밀려 중도하차했다. 이후 팀에서 방출되었다가 2011년 상파울루와 1년 단기계약을 맺었다. 2014년 현역은퇴를 선언 했는데...

자신이 구단주로 있던 팀인 모르징요가 2부 리그에서 안습한 모습을 보이자 팀을 되살리고자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답답해서 내가 뛴다. 기성용 하드 카운터 히바우두 코치, 감독에 이제는 구단주까지 경기에 뛰는 세상

2015년 7월 8일 나우티쿠와의 11라운드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환상적 프리킥을 보여주는 등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7월 15일, 패널티킥으로 현역 복귀 후 첫 골을 넣었다고 한다. 원래 자신이 안 차려고 했으나 관중이 히바우두의 이름을 연호해서 찼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기에서는 히바우두의 아들인 히바우지뉴가 멀티골을 넣었다. 결국 팀은 그 날 3대 1로 승리했다. 8월 16일, 무릎 부상 때문에 다시 은퇴 선언을 했다.

4.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

딱히 멘탈甲이라 불릴만한 강한 멘탈을 지닌 선수는 아니었고, 오히려 호나우지뉴처럼 경기를 즐기는 타입이었지만 그는 유독 큰 경기, 혹은 위기 상황에 강했다.

상술한 대로 바르셀로나에 합류하자 마자 리그 트로피와 국왕컵 트로피를 안긴 것으로 시작해 1999년 루이스 반 할 감독의 대삽질[4]로 바르샤 스쿼드가 휘청댈 때도, 히바우두만은 변함없는 활약을 하며 해당 시즌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따냈다. 물론 직후 반 할은 경질되었다. 감독과의 다이다이 매치에서 승리 지난 2010년 11월 어느 꼬마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통산 27골.

그리고 지금도 회자되는 00-01시즌 리그 최종전. 팀 분위기가 개판이 되다 못해 막장가도를 달리던 중 난적 발렌시아 C.F.를 홈으로 불러들여 마지막 38라운드를 치러야 했다. 그때까지 바르샤는 발렌시아에 승점 3점이 모자란 5위였고, 무조건 이겨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날, 히바우두는 영웅이 되었다. 결과는 3-2 바르셀로나 승리. 히바우두 해트트릭. 승리를 확정짓는 마지막 일격이 된 그때 그 오버헤드 킥은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보라. 숨 넘어간다. #

그리고 이러한 그의 위기대처 능력은 월드컵 국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그 진가를 볼 수 있었다. 조별예선 1차전인 터키전에서 페널티 킥으로 역전골을 넣어 2:1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잉글랜드전에서도 동점골을 넣어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5] 그리고 월드컵 내내 기존의 히바우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탐욕이라는 단어가 꼭 따라붙던 기존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르게 철저하게 호나우두의 득점력을 배가시키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월드컵 다득점 해야되거든 잉글랜드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켰듯이 호나우두의 능력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자신이 결정하는 모습이나, 추하게까지 비춰졌던 헐리우드 액션 등은 저게 정말 그 히바우두인가 싶을 정도로 놀랍고도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5.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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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월드컵 이후 브라질 A팀에서 히바우두는 호나우두와 영혼의 투톱을 이루며 승승장구했는데, 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우승을 안겨주었다. 개인상 측면에서도 톱을 달렸는데, 득점왕 부문에서는 호나우두와 공동 수상이었지만(5골) 대회 MVP는 히바우두의 몫이었다. 앞서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고 했는데,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던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1점차로 끌려가던 마당에 미친 듯한 프리킥으로 2-1 역전승을 만들어냈고, 리얼 결승전에서도 2골을 때려넣으며 확실한 도장을 찍었으니 그에게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시작으로 온갖 개인상이 돌아가게 되었다.[6].데이비드 베컴 : 난 트레블했는데 어째서?? 앞서 적었던 대로, 히바우두가 유일하게 호나우두를 제치고 1인자의 자리에 올랐던 20세기의 피날레였다.

6. 2인자

흔히들 발락콩락이라 부르며 축구계 2인자의 대명사로 칭하는데, 이 사람 역시 콩라인으로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뭐 결국 둘 다 축구로 정점 찍은 사람들이니 우스개소리긴 하지만. 히바우두의 경우 브라질의 10번으로 1998년 월드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우승에 기여했고 99년 한 해는 독보적인 에이스였다.[7] 그리고 발락은 히바우두가 팀 내 2인자 이미지가 컸던 것에 반해 독일의 에이스로서 여러 차례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을 했지만 아무래도 국대가 준우승에 머물렀던 점, 팀 우승도 첼시 시절 한 번을 제외하면 왠지 당연해 보이는 뮌헨 시절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겠다.그래 봐야 축구로 연봉 수십억씩 받던 사람들...

히바우두는 놀라운 공격 포인트에 비해 전성기가 짧은게 옥의 티라면 옥의 티였다. 1996년 올림픽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1997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도 출전했지만 그 때는 아직까지 호마리우가 건재했던 시기였고 호마리우가 은퇴한 때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약 5년 간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한일 월드컵 이후로는 국대에 선발되지 않은 점이 그를 콩라인 반열에 들게 한 큰 이유일지도.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약간 비슷한 신세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라 리가를 완전히 휘어잡았던 왼발신이었음에도 네임밸류가 잘 알려져있지 않은 편인데, 다른 건 둘째치고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군림할 수 있는 기량이 충분했음에도 팀 동료에 묻혀서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 커리어 내내 지속되었다. FC 바르셀로나시절 전성기를 불태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루이스 피구를 더 주목했다. 개인 득점랭킹 또한 97-98,비에리 : 득점왕 감사합니다 냠냠 98-99,라울 : 득점왕 감사합니다 냠냠 00-01시즌 리그 득점랭킹 2위를 차지했다. 특히 00-01시즌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골 차로 2위였다.라울 : 또다시 득점왕 감사합니다 냠냠

브라질 국가대표에서도 다를 건 없다. 기세등등하게 국가대표에 승선했을 때는 밤새 술마시며 클럽을 전전하면서도 미친 듯이 골 넣어대는 어떤 아저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한물 가자 이번에는 황제라는 양반이 등장해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고, 가뜩이나 늙어가는 처지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웬 외계인엄친아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괴물까지.[8]

월드컵인데, 98년 월드컵에는 본선에서만 3골 3어시, 2002 월드컵 때는 5골 4어시를 찍는 활약을 했다. 순수히 공격포인트 수만으로 따지면 호나우두를 오히려 능가했음에도 그 어떤 스포트라이트도 그에게 오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9]

그러나 브라질이 원래 그런 동네고 자기 자신 역시 다른 동네 같았으면 국대 붙박이였을 사람들 앞길 막은 건 마찬가지이다. 당장 베베투만 해도 노구를 이끌고 참가한 98년 거의 경기마다 교체당했으면서도 히바우두와 같은 수의 득점을 올렸다. 자르데우, 지오반니 에우베르, 마르시오 아모로소, 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 같은 유럽 4대 리그 득점왕들조차 히바우두와 전성기가 겹쳐서 쓸쓸한 국대생활을 보냈다. 이들보다 한 끗발 떨어지는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노리기는 거의 언감생심에 가까웠으니[10] 남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는 히바우두도 남의 앞길 많이 막은 셈이다.

7. 끝자락

2011년, 커리어 내내 영혼의 파트너라 불렸던 그리고 자기를 가장 엿먹였던 호나우두가 은퇴함에 따라 이제 히바우두 역시 은퇴를 준비하는 듯했으나 페이크였고 여전히 현역이다. 2013년 기준으로 자신의 커리어 15번째 팀인 브라질 1부리그 상 카에타누에서 뛰었다. 2014년 브라질 3부리그 모지미림 FC로 이적하였다.

콩라인, 콩라인이라고 하지만 이미 축구 선수로서 다 이룬 선수로서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필드를 누비는 걸 보자면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선수인 것 같다. 위대한 전설의 마무리가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 그를 지켜보는 올드팬들도 제법 궁금하게 지켜보고 있다.아직도 은퇴 안 했냐

파일:external/s2.glbimg.com/dsc_05501.jpg
"팀원들은 저를 보고 할아버지라 부릅니다. 저도 그게 그리 싫지는 않아요. 저는 현재 경기를 뛰기 보다는 애들에게 조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것처럼요... 그래도 귀를 잡아 땡겨가며 억지로 조언을 해주지는 않죠. 은퇴...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선수에게 있어 은퇴는 첫 번째 죽음이나 마찬가지거든요. 하지만 저는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선수는 자신이 언제 은퇴해야 하는 지에 대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전 아직 아닙니다."[11]

하지만 결국 한국시간으로 3월 16일,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제2의 인생이 성공할 수 있길 빌자.

2015년 7월, 모지미링 구단주 히바우두는 팀의 성적이 좋지않자 스쿼드에 들어가기 위해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2015/jun/23/rivaldo-considers-comeback-mogi-mirim 답답해서 내가 뛴다!
그리고 경기에 출전해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football&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2039078&redirect=false

2015년 8월 14일, 히바우두는 왼쪽 무릎 통증이 재발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2번째 은퇴를 선언한다고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8. 기타

국내의 한 기자가 듣보잡 취급을 했다. 지못미...#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이 8강에서 탈락하자 쓴소리로 비난했다. "요즘은 브라질 국대에 아무나 들어온다. 나만 해도 2006년 월드컵 당시 그리스 리그나 뛴다고 하여 퇴물처럼 취급되어 국대팀 선수가 되질 못했다.[12] 이런 상황이 계속 된다면 적어도 30년은 브라질 국대팀이 발전이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요즘 축구는 예전만 못하다, 퇴보했다는 식의 인터뷰를 간간이 하며 어그로눈길을 끌고 있다.

캡틴 츠바사 road to 2002에서 주인공 츠바사의 포지션 라이벌이자 조언자 정도의 위치로 등장했으며, 작품 내에서 츠바사와의 공존에 성공한다. [13]

폐인 양성게임으로 악명높은 풋볼 매니저에서 불혹의 나이지만 능력치가 매우 높은편이라 에디터로 나이를 의도적으로 낮춰 사용하는 유저들이 많다. 나이 때문에 신체 능력은 형편없는 상태에서 기술/정신 부분만 굉장한 상태인데,[14] 나이를 낮춰버리면 안습했던 피지컬이 미친듯이 상승하면서 전천후 괴물이 탄생한다.[15]

히바우두의 아들 히바우지뉴[16]도 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브라질 리그에서 얼마 안있고 일찍 해외로 진출했다. FC 디나모 부쿠레슈티로 이적하여 리그에서 30경기 5골을 넣으며 그렇게 나쁘지 않은 첫 시즌을 보냈고, 2018년에 불가리아의 레프스키 소피아 소속이 되었다. 201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게오르게 하지가 구단주 겸 감독으로 있는 비토룰 콘스탄차로 임대를 오게 되었다. 하지의 지도 아래 꽃을 피운 선수들이 다수임을 봤을 때 히바우지뉴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아직 나이가 젊은것을 감안하여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2019년 5월 22일, 히바우두가 네이마르에 대한 언급을 했다. 히바우두는 네이마르는 바르샤를 떠난게 최대의 실수라고 했다.[17]

9. 경력

9.1. 대회 우승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1997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우승
    •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 2002 FIFA 한국/일본 월드컵 우승

9.2. 개인 수상

  • 프리메라 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 : 1997-98
  • 코파 델레이 득점왕 : 1997-98
  • FlFA 월드컵 베스트 Xl (2) : 1998, 2002
  • ESM 올해의 팀 (2) : 1998-99, 1999-00
  • 월드사커 올해의 선수 : 1999
  • 옹즈도르 : 1999
  • 발롱도르 : 1999
  • FlFA 올해의 선수 : 1999
  •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 1999
  • 코파 아메라카 MVP : 1999
  • EFE 트로피 : 1998-99
  •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 1999-00
  • lFFHS 최고의 골 : 2000
  • FlFA 올해의 선수 : 3위 (2000)
  • FlFA 월드컵 실버슈 : 2002
  • FlFA 100 : 2004
  • 그리스 챔피언십 최우수 외국인 선수 (2) : 2006. 2007
  • 우즈베키스탄 리그 득점왕 : 2009

10. 관련 문서


[1] 전천후 프리롤 공격수로 뛴다. 투톱으로 배치 될 때 전형적인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며, 스트라이커 보다 오히려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비슷한 역할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인다. 2선과 전방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움직이며 플레이메이킹과 득점을 노리는 프리롤 포워드이다. 기본적으로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제로톱 등등 거의 모든 공격수 역할이 가능하다.[2] AC 밀란에서 두각을 못 보인 것은 갑자기 닥친 수비부담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피지컬 능력의 하락이 눈에 띄었다. 2002 월드컵이후 쭈욱 하락세[3] 사실 이때의 히바우두는 자신의 최적의 포지션인 섀도우 스트라이커가 아닌 바른발 윙어로써 왼쪽 윙포워드에서 뛰었다. 원톱 롤도 소화하는 전천후 스트라이커인 클루이베르트와 프리롤에 가까운 오른쪽 윙포워드였던 피구가 있었기 때문에 반 할식 쓰리톱을 세운다면 윙어로 뛰기엔 어정쩡한 위치였지만 측면에 있는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10.5번에 가까운 롤. 그럼에도 득점력이나 파괴력 자체는 죽지 않아서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 하긴 했다. 반 할이 사임하고 나서 투톱체제로 전환했을때 AC 밀란으로 이적.[4] 섀도우 혹은 플레이메이커 위치에서 활약하던 히바우두를 좌측면 미드필더로 고정시키려 했다. 쉽게 예를 들자면, 메시를 좌측 미드필더로 고정시키는 것과 거진 같은 상황이라 보면 된다.[5] 잉글랜드전 최고 수훈으로는 히바우두에게 천금같은 어시스트를 선사하고, 역전골을 성공시킨 호나우지뉴를 꼽을 수도 있겠다.[6] 그러나 지금의 수상의 조건으로 보면 리그만 우승한 선수가 트레블을 달성한 선수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받은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뭐 코파 아메리카를 비중있게 두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지만.[7] 오죽하면 당시에는 이 사람의 어시 덕분에 '호나우두가 주워먹기를 했네, 황제소리 들었네'라는 풍문이 있었을 정도. 호나우두가 1인자였을 시기에도![8] 그러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호나우지뉴와 카카는 스트라이커 내지는 공격수인 히바우두와 포지션이 약간 달라 히바우두에 명성에 누가 갔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사람들의 주목도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사실은 같은 피지컬 괴물 계열인 탕아, 아드리아누에게 밀렸다고 봐야 한다.[9] 최종보스가 스포트라이트를 죄다 가져가버렸고, 오히려 사람들은 터키전에서 그가 잠시 보여줬던 헐리웃 액션만 기억해줄 뿐이었다.[10] 루이장 에딜손처럼 국대 승선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11] 2013년 상 카에타누에 있을 당시의 인터뷰 내용이다.[12] 이런 말이 나올 만 한 것이 2015년 브라질 국대에 중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전이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하던 일.[13] 작내 이름은 리바울. 히바우두를 영어로 읽을 경우 리발도를 조금 바꾼것이다. 애초에 해당작품에는 실축에 나오는 선수들 죄다 이름이 살짝 바뀌어 나온다.[14] 간단히 말해서 피지컬을 제외한 능력치는 20~30대 현역 공격수 중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15] 훈련 방향에 따라 개인기, 골결정력, 드리블, 볼트래핑, 중거리슛, 코너킥, 크로스, 패스, 패널티킥, 프리킥 등 공격관련 기술 모두 20이 나올 수도 있다. 그걸 평균 이상으로 돌아온 피지컬이 받쳐준다.[16] 1995년[17] 이건 맞는말이다. 만약에 네이마르가 바르샤를 떠나지 않고 바르샤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네이마르는 축구생활을 힘들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