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6:14:31

주니뉴 파울리스타

주니뉴 파울리스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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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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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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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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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주니뉴 파울리스타
Juninho Paulista
본명 오스바우두 지루우두 주니오르
Osvaldo Giroldo Júnior
출생 1973년 2월 22일 ([age(1973-02-22)]세)
브라질 연방 공화국 상파울루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신체 165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상파울루 FC (1993~1995)
미들즈브러 FC (1995~199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7~2002)
미들즈브러 FC (1999~2000 / 임대)
CR 바스쿠 다 가마 (2000~2001 / 임대)
CR 플라멩구 (2002 / 임대)
미들즈브러 FC (2002~2004)
셀틱 FC (2004~2005)
SE 파우메이라스 (2005~2006)
CR 플라멩구 (2007)
시드니 FC (2007~2008)
이투아누 FC (2010)
기타 이투아누 FC (2009~2019 / 회장)
브라질 대표팀 (2019~2023 / 팀 코디네이터)
국가대표 49경기 5골 (브라질 / 1995~2003)

1. 개요2. 기록
2.1. 대회 기록2.2. 개인 수상
3. 기타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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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 1993년에 상파울루 FC에서 뛰다 1995년 미들즈브러 FC로 이적하였고 1년후인 1996년 브라질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공을 세웠다.

1996-1997 시즌 EPL에서 보기 드문 남미 출신의 테크닉을 이용한 플레이로 돌풍을 일으키며 리그컵, FA컵 대회 준우승의 주역이었으나 그 시즌에 승점 삭감 등의 징계 등 악재가 겹치며 강등당하고 컵대회에서도 잇달아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러 눈물을 흘려 '보로의 눈물'이라고 불렸다. 어쨌든 이 시즌 활약을 통해 파울리스타는 남미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다.

1997년 프레월드컵에서 대표팀에 소집되자 당시 주장이었던 둥가는 "저 키 작은 선수[1]는 도대체 누군가요? 축구하기엔 너무 덩치가 작지 않나요?"고 자갈로 감독에게 말했으나 자갈로 감독은 "그가 볼차는 걸 봐라"고 했는데, 과연 둥가는 30분간 그의 연습경기를 보고 그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그에게 찾아가서 극찬했다고 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원래 주전 멤버로 예정돼 있었다. 브라질의 4-2-2-2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뛸 것이 유력했으나 부상으로 불참했다. 그러나 사실 부상은 명분이고 자갈로와의 불화 때문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파울리스타 역시 부상에서 완쾌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갈로가 자길 안 뽑았다고 디스하기도 했다. 파울리스타를 대신해 주전으로 뛴 게 바로 레오나르두 아라우주였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 했다. 당시 브라질의 2선 자원 중에서 드물게 개인기 뿐만 아니라 팀웍을 중시하고 플레이메이킹에 능한 파울리스타의 부재는 브라질 대표팀의 주된 공격 루트를 호나우두 개인의 드리블 돌파[2]로 좁히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브라질은 결승에서 프랑스에 참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3]

그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미들즈브러에서 임대로 잠깐 뛰고 브라질 리그로 복귀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경기에서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으나 02 월드컵 한정으로 다비즈 모드였던 조세 클레베르손에 밀려 토너먼트에선 벤치를 지켰다. 패싱력과 테크닉에선 파울리스타가 앞섰지만 수비력과 피지컬, 기동력에선 클레베르손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3R의 뛰어난 공격력을 십분 활용해야 했던 브라질은 안정성을 위해 중원에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의, 수비보단 공격에 장점이 있는 파울리스타보다는 수비력이 더 뛰어난 클레베르손을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쨌든 브라질의 우승으로 파울리스타는 월드컵 우승이라는 큰 환희를 누렸다. 참고로 파울리스타를 밀어냈던 조세 클레베르손은 02년 월드컵에서의 빼어난 활약에 힘입어 로이 킨 이후 유나이티드의 중원을 책임질 선수를 물색하던 퍼거슨에게 발탁돼 에릭 젬바젬바와 함께 기대를 모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진출했으나 알다시피 폭망해버렸다.

월드컵 우승 후 미들즈브러로 다시 복귀, 2004년 2월 리그컵을 우승하며 그토록 갈망하던 우승을 해냈다.

2004년 여름 미들즈브러를 떠나 셀틱으로 갔으나 마틴 오닐 감독을 잘못 만나 고생하고 브라질 리그로 돌아갔다.#

2008년까지 호주 리그의 시드니 FC에서 뛰다가 2010년부터 이투아누[4]의 선수로 뛴 이후 현재는 구단주로 재직하다가, 이후 2022년 현재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총괄 코디네이터로 치치 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2. 기록

2.1. 대회 기록

2.2. 개인 수상

3. 기타

  • 주니뉴 페르남부카누와는 2000년, 2001년 바스코 다 가마 시절 한 팀에서 뛴적이 있다. 국가대표 경력과 전체 커리어 길이에 비해 클럽 출장수가 353경기로 적은 편인데, 부상이 잦았던 선수였다.
  • 말컹의 성장을 위해 경남으로의 무상 임대를 결정한 사람이기도 하다.
  • 호나우지뉴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한때 '주닝요'로 불리기도 했다.[5]

4. 같이 보기

1 마르쿠스 · 2 카푸 · 3 루시우 · 4 호케 JR · 5 에드미우송 · 6 R. 카를루스 · 7 히카르지뉴 · 8 지우베르투 · 9 호나우두
10 히바우두 · 11 호나우지뉴 · 12 지다 · 13 벨레티 · 14 A. 포우가 · 15 클레베르송 · 16 주니오르 · 17 데니우손
18 밤페타 · 19 주니뉴 · 20 이지우송 · 21 루이장 · 22 R. 세니 · 23 카카
파일:브라질 국기.svg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1] 그의 키는 167cm.[2] 당대 최고의 2선 자원인 히바우두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히바우두는 가공할만한 왼발 사용능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패싱력을 자랑하지만 탐욕이 많은 성향이라 플레이 메이킹에 능한 선수라고 보기는 힘들다. 찬스메이커에 가깝지 플레이메이커는 아니란 얘기. 98프랑스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공격 전술은 기본적으로 호나우두가 개인 돌파로 공격 진영까지 공을 운반해 오면 히바우두가 2선에서 침투해 득점을 노리거나 베베투가 마무리를 하는 식이었다. 스트라이커인 호나우두가 사실상 플레이 메이커였던 셈.[3] 사실 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브라질 대표팀은 멤버 개개인의 네임벨류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팀 전체로 보면 그렇게까지 밸런스와 완성도가 높은 팀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원래 주전 멤버였던 중원의 핵 마우로 실바, 플레이 메이커 주니뉴 파울리스타, 당대 최강의 피니셔 호마리우가 부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모조리 낙마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주전으로 발탁된 게 삼파이우, 레오나르두, 베베투였지만 원래 주전 멤버들의 기량에는 못 미쳤다.[4] 前경남FC의 선수였던 까보레가 바로 이 클럽 출신이다. 경남에서 뛰었던 말컹도 원래 여기서 임대였다가 완전이적했다.[5] 다만 SBS에서 월드컵 중계방송을 할 때는 '주닝유'로 표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