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0 02:22:33

포르투갈

포르투갈 공화국
República Portuguesa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국기
파일:포르투갈 국장.png
국장
수도 리스본(Lisboa)[1]
면적 92,090㎢[2]
전체 인구 10,291,000명(2018년)[3]
민족 구성 포르투갈인 96.8%, 흑인 1.5%, 기타 1.7%
인구 밀도 112명/㎢(2018년)[4]
출산율 1.28명(2015년)[5]
출생 인구 86,000명(2015년)[6]
기대 수명 81세(2015년)[7]
공용어 포르투갈어[8]
종교 국교 없음
기독교 84.3%(대부분이 가톨릭)
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사실상 의원내각제)
대통령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Marcelo Rebelo de Sousa)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 (António Costa)
GDP $2,488억9,100만(2018년)
GDP PPP $3,106억5100만(2017년)
1인당 GDP $24,237(2018년)
1인당 GDP PPP $30,137(2017년)
통화 유로(€, EUR)
HDI 0.830(2014)
국제 전화 +351
국가 A Portuguesa(포르투갈의 노래)
역사 868년 포르투갈 백국 성립
1139년 레온 왕국으로부터 독립, 포르투갈 왕국 성립
1640년 이베리아 연합으로부터 독립
1910년 포르투갈 제1공화국 성립
1926년 포르투갈 군사 반란 발생, 포르투갈 제2공화국 성립
1974년 카네이션 혁명 발생, 포르투갈 공화국 민주화
대한수교현황 남한 단독수교(1961년~)
북한 단교(2017년~)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주한대사관/총영사관
주한포르투갈대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1길 13
포르투갈총영사관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로16번길 3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map.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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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가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자연4. 역사5. 인구6. 정치7. 행정 구역8. 경제9. 사회10. 문화
10.1. 언어10.2. 영화10.3. 스포츠
11. 군사12. 대외 관계
12.1. 스페인12.2. 중국12.3. 일본12.4. 대한민국12.5. 브라질12.6. 영국12.7. 프랑스12.8. 러시아12.9. 인도12.10. 인도네시아12.11. 과거 식민지
13. 포르투갈 국적, 출신의 캐릭터14. 관련 문서15. 둘러보기

1. 개요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국가. 해양 무역이 상대적으로 활발했을 시기에는 위세가 상당한 국가 중 하나였다.

수도는 리스본(Lisbon). 리스본의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2,927,000명[9]이다. 리스본은 영어식 이름이고 포르투갈어로는 리즈보아(Lisboa)라고 한다. 그 밖에 포르투(Porto), 브라가(Braga), 코임브라(Coimbra), 파루(Faro)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다. '포르투는 일하고, 코임브라는 공부하고, 브라가는 기도하고, 리스본에서 즐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10,291,000명[10]이다. 비슷한 인구 규모의 유럽 국가는 벨기에, 스웨덴, 그리스, 체코, 헝가리 등이 있다. 면적은 대한민국보다 약간 작은데 인구는 대한민국의 1/5 정도 된다.[11]

한국으로부터 가장 이동 거리가 긴 유럽 국가들 중 하나다. 아이슬란드, 영국, 아일랜드, 독일보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한국에서 이동 거리가 더 멀다. 직항편이 없으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환승해야 한다.

한국에는 유럽 축구의 강호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사실 이런 인식은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를 보기 시작한 세대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라 볼 수 있다.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제 무대에서 메이저 대회에 본격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다. 그 전에는 에우제비오 시대인 66년과 84년~86년을 제외하면 월드컵이나 유로 본선에 오른 일이 없는 국가였다. 아무튼 포르투갈 축구는 에우제비우,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포르투갈 출신 유명 선수들로 잘 알려져 있고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포르투갈 1부리그)의 SL 벤피카, FC 포르투 등이 강팀으로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웃 국가인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투우도 인기다. 단 포르투갈의 투우는 스페인의 투우 방식과 같이 소를 죽이지 않는다. 그저 스페인 소들만 웁니다.

주요 수출품은 포도주코르크 등이 있고 전통 음악은 파두(Fado)가 유명하다. 여러모로 시끌벅적한 이미지의 이웃 스페인 문화와는 달리 포르투갈의 전통 문화는 차분하고 소박한 맛이 난다.[12]

한국 관광객은 주로 스페인과 연계해서 리스본과 주변 지역, 포르투, 몇 개의 관광 도시와 남부 해변 정도를 단기로 찾는 편이지만 유럽 내에서는 이외에도 휴양지인 마데이라 제도, 해안선을 따라 걷는 코스인 호따 비센치나(Rota Vicentina)[13]가 아주 유명하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지역이 많은 만큼 해산물 요리가 발달되어 있다. 현지인에게 포르투갈에서 먹어 봐야 할 것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흔히 정어리(sardinha, 사르디냐), 대구(bacalhau, 바칼랴우), 에그타르트(pastel de nata, 파스텔 드 나타)가 언급된다.

코에이게임대항해시대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정확히는 항해자들의 클럽 리스본 덕택에 UN 사무총장인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이 국가 출신이다.

2. 국가 상징

2.1. 국호

고대에는 이 지역에 살던 종족명을 따서 Lusitania[14]라고 불렸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국명은 중세 포르투갈 형성의 중심지였던 포르투라틴어 명칭인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 에서 유래했다. 영어로는 '폴추걸' 에 가깝고 현지 발음은 '푸르투갈([puɾtuˈɣal])' 에 가깝다. 라틴어로는 Portugalia(포르투갈리아)라고 표기되었다. 포르투갈이 국명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알폰소 6세(Alfonso VI)가 자신의 사위 엔히크 드 보르고냐에게 준 포르투갈레 백국이 헤콩키스타 과정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공로로 아폰수 1세 때 유럽 세계에서 왕국으로 인정받으면서부터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음차로 포도아(葡萄牙)라고도 한다. 음차이므로 한자 뜻과는 상관없지만 실제로 포르투갈은 지중해성 기후라서 포도 농사가 잘 된다.

왠지 국내에서는 포르투로 많이 불리고 있다. 앞의 'ㅌ' 이 유기음이라서 뒤의 'ㅋ' 도 덩달아 유기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 교수가 프린트된 자료에 포르투이라고 써 놓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세대인 것을 인증하기도 한다. 당장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포르투을 검색해도 포르투을 포르투로 쓰는 사람이 상당하다. '투' 의 영향으로 '르' 까지 '루' 로 바꿔 포투갈로 부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투' 에서 어느 쪽에 강조를 하면서 부르느냐에 따라 이렇게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포르투갈의 한글 표기명은 포르투갈이다. 될 수 있으면 평소에는 포르투로 쓰는 것이 권장된다. 영어나 포르투갈어 발음으로 들어 보는 것도 좋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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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국기는 2:3으로 분할된 초록과 빨강의 직사각형이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고 분할선 중앙에 포르투갈의 문장이 들어 있다. 초록은 희망을, 빨강은 1910년 10월 혁명의 피를 나타내고 혼천의는 대항해 시대의 천체 관측 기구이자 항해 도구로 포르투갈 선인들의 측량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항로의 발견으로 이룩한 포르투갈의 위대한 역사를 의미한다. 현재 포르투갈의 국기는 혁명으로 공화국이 된 이후의 색으로 왕정 시기에는 바탕이 흰색과 파란색이었다.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의 기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2.3. 국가

3. 자연

유럽의 중생대 지층들 중에서 쥐라기 지층이 광범위한 국가여서 알로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다켄트루루스 등 말기 쥐라기에 번성했던 공룡의 화석들이 발견되거나 출토되기도 한다.

지중해에 접해 있지는 않지만 지중해에 가까워서 지중해성 기후고 유럽에서는 기후가 가장 온화한 편이다. 지금까지 포르투갈 전국에서 기록된 최저 기온은 영하 16도였는데 이 기온도 해발 1,500m가 넘는 산지에서 기록된 기온이다. 수도 리스본은 1월 평균 기온 11.6도, 8월 평균 기온 23.5도의 온화한 기후고 774mm인 강수량은 겨울에 비교적 집중되어 있다. 여름에는 일교차가 크고 낮에는 더워서 특히 남부 내륙 지역은 50도 가까이 올라가기도 한다. 역대 최고 기온은 공식 기록상으로는 2003년 폭염 때 아마렐레자에서 기록된 47.4도이나 50도가 넘는 비공식 기록도 있다. 참고로 리스본의 위도는 38.73도로 남한 최북단보다도 더 북쪽에 있다. 남한에서 춥기로 이름난 철원도 북위 38도밖에 안 된다.

산악 지형이 아닌데도 언덕이 많다. 리스본, 포르투, 코임브라 등 주요 관광 도시에서 도보 여행을 한다면 언덕길을 빈번하게 오를 각오를 하는게 좋다. 그리고 최근에는 지진 활동이 없지만 예로부터 지진이 잦은 곳이었고 역사적으로 유럽 최악의 지진이라는 리스본 대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4. 역사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제국주의의 서막을 열기도 했다. 당시 교황의 중재 아래 스페인과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해서 전 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해양 강대국이었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인도의 고아, 중국의 마카오 등이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하지만 식민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부작용도 많이 생겨났고 주앙 6세 시절에는 페드루 왕세자가 최대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차지하고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의 2류 국가로 전락해서 강대국들 간의 패권 경쟁에서 소외되었다. 그나마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지역과 동티모르, 마카오 등 아시아 일부 지역의 식민지 해외 영토들만을 유지하면서 20세기까지 유지했지만 이 와중에 혁명과 군부 쿠데타, 살라자르와 카에타누 치하의 독재 정권을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 운동을 무력으로 저지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현지 독립 운동 세력들의 무장 투쟁이 거세게 불타오르면서 수렁에 빠진다. 식민지 전쟁에 막대한 국가 재정과 병력들이 투입되면서 힘이 상당히 분산되었고 결국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화가 되었다. 새로 들어선 민주 정부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고 철군하면서 1974년 기니비사우의 독립을 시작으로 1975년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 앙골라가 독립했다. 그리고 1999년 마지막으로 남은 해외 영토인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면서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 시기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5. 인구

포르투갈은 상당히 변동이 심한 인구 변화를 보였던 국가다. 1965년 정도까지는 인구가 느리게 증가하다가 갑자기 인구가 다시 줄어들어서 정체해 있었고 서유럽의 다른 국가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1975년부터 갑자기 인구가 증가했다. 다시 1985년부터는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고 정체했다가 다시 느리게 증가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시 줄어들고 있어서 포르투갈은 심지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 변동이 불안정했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의 전체 인구는 다음과 같다.
시기 전체 인구
1950년 8,512,000명
1955년 8,657,000명
1960년 8,891,000명
1965년 8,996,000명
1970년 8,663,000명
1975년 9,094,000명
1980년 9,767,000명
1985년 10,011,000명
1990년 9,899,000명
1995년 9,917,000명
2000년 10,355,000명
2005년 10,566,000명
2010년 10,652,000명
2015년 10,418,000명
2018년 10,291,000명

포르투갈의 역사적인 인구 변화 등의 내용은 포르투갈/인구 참조.

6. 정치

포르투갈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62점 2016년, 세계29위
언론자유지수 15.77점 2017년, 세계18위[15]

기본적으로 사회민주당과 사회당 양당이 정권을 주고 받고 인민당(다만 사회민주당과 암묵적인 연합 상태다.)과 공산당, 좌파연합이 3, 4, 5당을 차지하는 구도다. 다만 보수 정당의 이름도 사회민주당이라 얼핏 보면 좌파 양당제로 보이지만 사실 포르투갈 사회민주당이 1980년대 중반 이래 보수적인 정책을 펴면서 우경화되었기 때문에 세계 어디에나 흔히 있는 보혁 양당제가 되었다.

2015년 10월 4일에 열린 총선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사회당에게 패배할 것으로 보였지만 선거 중반에 사회민주당이 인민당과 선거 연합을 했던 덕택에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인민당 연합이 107석으로 1당을 차지하면서[16] 긴축 정책을 시행한 정당이 승리했다고 전 세계적으로 뉴스가 났다. 하지만 과반수에 미달하는 의석수인데다가 사회당과 공산당, 좌파연합이 반긴축 연립 정권을 구성하면서 판이 완전히 뒤엎어졌다. 사실 긴축 정책을 시행한 정당이 승리했다고 본 것도 사회당과 좌파연합, 공산당의 성향이 제각각이라는 점을 감안했던 것인데 이것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좌파당이 주도한 튀링겐주 의회 적적녹 대연정이 있다.

그래서 우파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아니발 카바쿠 실바가 대선에서 승리해서 좌파 정당인 사회당과 조제 소크라트스와 함께 좌우 동거 정부를 형성했다가 2차 대선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아니발 카바쿠 실바가 승리하여 단독 정부를 구성했다. 그리고 신임 총리를 뽑는 총선에서 우파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전 총리인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가 지면서 총리직을 좌파 정당인 사회당과 안토니오 코스타에게 넘겨 주고 또다시 좌우 동거 정부를 구성했지만 2016년 대선에서 무소속의 마르셀루 헤벨루 데 소자가 당선되어 2016년 3월 9일에는 대통령에 현재 직무 중이고 안토니오 코스타와 사회당은 좌파 내각을 단독으로 구성했다. 긴축 정책을 어느 정도 완화했고 한때 20%에 달했던 실업률도 크게 내려가서 지지율은 높은 편이다. 연립 정당까지 합하면 50% 중반-60% 초반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7. 행정 구역

브라가Braga
브라간사Bragança
포르투Porto
비아나두카스텔루Viana do Castelo
빌라헤알Vila Real
아베이루Aveiro
구아르다Guarda
비제우Viseu
레이리아Leiria
리스본Lisboa
산타렝Santarém
세투발Setúbal
베자Beja
파루Faro
에보라Évora
포르탈레그르Portalegre
카스텔루브랑쿠Castelo Branco
코임브라Coimbra
자치 지방
아조레스 제도Região Autónoma dos Açores
마데이라 제도Região Autónoma da Madeira

8. 경제

9. 사회

사우다지(saudade)는 포르투갈인의 대표 정서로 꼽힌다. 한국어로 최대한 비슷하게 번역하면 '향수' 에 가깝다. 그렇지만 딱 떨어지게 번역되지는 않는다. 사우다드는 나홀로를 뜻하는 라틴어 'solum' 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울하기 짝이 없다(...). 한국인의 대표 정서로 '정' 과 '한' 을 밀어 주는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 듯하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체로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애국심도 강한 편이고 애향심도 상당히 강하다고 여겨진다. 순혈주의가 강한 유럽 내에서도 유색 인종이나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국가 중 하나다. 대항해시대부터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돌아 오지 않거나 못해서 조금 귀해서 혼기가 차도록 짝을 구하지 못한 여자들이 남자 흑인 노예와 결혼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어 왔고 심지어 귀족 가문의 딸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밖으로 나간 남자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냥 아프리카, 동남아, 브라질, 인도, 중동 등의 현지 여자와 만나 눌러 앉아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까 농담으로 포르투갈에는 백인은 없고 혼혈만 산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다(...). 물론 이 당시라고 아예 남자와 여자가 분리된 것도 아니었고 현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싶지만 별개로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혼혈에 대한 차별 의식이 희미한 국가 중 하나다.

영국홍콩을 중국에 되돌려 줄 때 홍콩 주민들에게 영국 국적을 주지 않은 것과 달리 포르투갈은 당시 합법적인 마카오 시민 43만명 전원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했다. 홍콩에 비해 마카오가 작다는 점 덕분에 가능하기는 했다.

10. 문화

유럽의 자유 진영 국가들 중에서 컬러 텔레비전 본방송 개시가 가장 늦었던 국가기도 하다.(1980년 3월 7일)[17] 공영 방송사는 RTP이다. 한국보다 9개월 정도 빨랐다. 참고로 공산권에서는 루마니아가 1983년에 시작했다.

밀어 닥치는 외세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인들은 고유 문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전통적인 포크 댄스는 여전히 포르투갈인의 자존심으로서 전수되고 있고 각 지방에서는 축제의 전통도 잘 지켜지고 있다. 16세기 소극과 종교극에서 뛰어났던 질 비셍트(Gil Vicente)가 포르투갈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Luis de Camões)가 오시 루시아다스(Os Lusiadas)라는 발견과 개척의 시대를 찬양한 서사시를 썼다. 19세기에는 알메이다 가헤트(Almeida Garrette)가 로맨틱 드라마를 많이 썼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도 이 시대에 드라마와 시작 활동을 하였는데, 포르투갈 현대 작가로는 드물게 외국까지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가장 잘 알려진 포르투갈 음악은 16세기의 선원들의 갈망을 노래한 우수와 향수가 깊이 서린 파두(fado)다. 지금은 리스본에서 듣는 파두는 상업화되어 있고 비싼 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아멜리아 호드리그스(Amélia Rodrigues)는 최고의 파두 여가수로 포르투갈 레코드 가게 어디서나 음반을 살 수 있다. 16세기동안 건축에서는 마누엘 1세(Manuel I)의 이름을 따서 붙인 매뉴린 양식이 유행했다. 이 양식은 이 시대를 풍미했던 개발과 개척 정신의 반영으로 트위스트와 소용돌이 장식을 주제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장식용 타일인 아줄레주(azulejo)[18]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원래 무어족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포르투갈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리스본에는 아줄레주 박물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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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가톨릭이 압도적이어서 2011년 기준 81%를 차지하고 21개의 교구가 있다.[19] 개신교인은 만명 이하고 유대교인은 5천명 이하다.

이 지역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것은 일찍이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있을 무렵부터였다. 7세기 사라센의 침입으로 한 때 이슬람교의 영향 아래 있기도 했으나 114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포르투갈 왕국을 세운 아폰수 엔히크스는 왕국을 교회에 봉헌했다. 그의 뒤를 이은 산초 1세 때는 시토회의 영향으로 반 교황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나 13세기에 탁발 수도회가 들어와 교황의 강한 지지 세력을 형성했다.

포르투갈은 15세기 이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해서 남아메리카 일부, 인도, 아프리카 등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들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했다. 1536년 종교재판을 실시했고 1540년 예수회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1580년-1640년의 시기는 포르투갈 교회사에 있어서 최악의 시기였다.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 왕위를 겸하면서 주 포르투갈 교황 사절과 예수회를 추방하고 해외 선교도 금지했다. 그러나 교황이 포르투갈의 독립 전쟁을 도움으로써 관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18세기에 들어 반교회 감정이 강해지면서 세속주의 운동이 급격히 퍼져 나가서 1821년에는 모든 수도회를 폐쇄시키고 교회 재산을 몰수했다. 1910년 이후에는 초등 교육에서 종교 교육을 금지했다. 그러나 1926년 정변으로 실권을 잡은 군사 정권과 살라자르는 적극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교황청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도 1917년에 일어났는데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군사 정권은 가톨릭을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모두 금지하고 박해했다.

1976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군사 정권이 무너지면서 포르투갈은 다시 세속적인 국가로 전환했다. 군사 독재 정권과 가톨릭의 정경유착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새로운 제3공화국은 헌법과 법률에서 국교를 폐지하고 정교 분리 원칙을 확고히 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권력을 억눌렀다. 그런데도 1980년대에는 가톨릭 교회가 포르투갈 선거에 개입하려던 사건들이 터져서 국민들 사이에 신뢰만 더 떨어트리는 결과만 낳았다. 그래서 포르투갈에서 가톨릭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이웃 국가인 스페인도 독재 정권 하에서 기톨릭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해졌으나 그것이 현대에도 이어진 점을 생각해 보면 독재 정권을 어떻게 청산했냐의 결과에 따라 극단적 차이가 발생한 셈이다. 현대에는 스스로 가톨릭을 믿고 있다는 사람들도 1/3만이 미사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다고 하니 통계와 실제 종교관 간의 차이가 큼을 알 수 있다.

포르투갈은 카네이션 혁명 이후 이혼과 낙태를 합법화했다. 또한 2001년부터 동성커플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했고 2010년에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근처에 대학이 있다면 대학생들이 정장에 망토를 입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현지인들은 이것을 농담삼아 해리포터들이라고도 한다. 술은 만 16세부터 마실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1 때부터 음주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은 7월9월에는 공휴일이 아예 없고 2월, 3월, 6월카니발부활절, 성체 축일의 날짜에 따라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 대체 휴일 제도는 없다.

10.1. 언어


살라자르 정권 당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초반까지 문해율이 30%대에 불과했을 정도지만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는 문맹률이 줄기 시작해 1980년대 초에는 문해율이 80%~90%대로 늘어났다. 현재 포르투갈의 문해율은 생각보다 준수한 수준이다. 주요 외국어는 영어(32%), 프랑스어(24%), 스페인어(9%)가 꼽힌다. 그리고 소수 언어로 미란다어[20]라는 언어가 쓰이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는 브라질쪽 표현과는 일부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거나 젊은 층은 대체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스페인어는 언어적 유사성 때문에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 편이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포르투갈, 브라질외에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있다보니 이들 국가들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가 결성되어 있고 몇개의 나라들도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10.2. 영화

최고령 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를 비롯해 1960년대 포르투갈 뉴웨이브 시네마가 유명했다. 1990년대부터는 페드로 코스타라는 감독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10.3. 스포츠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포르투갈 역시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인구는 천만명 수준이지만 축구 경기장 규모는 3만~6만석 수준으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21] 이러한 인프라를 갖춘 자국 리그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는 유럽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리그[22]로 리그의 대표적인 팀 벤피카FC 포르투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유럽의 명문팀들이고 2010년~2011년 시즌에는 모처럼 유로파 리그에 4강에 3팀이나 진출한 덕분에 결승전에서 포르투갈 팀끼리 맞붙게 되기도 했다.[23] 2011년~2012년 시즌에는 벤피카가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 맨유를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해 8강까지, 스포르팅 CP가 유로파리그 4강까지 진출했고 2012년~2013년 시즌에는 FC 포르투가 챔피언스리그 16강에, 벤피카가 유로파리그에서 준우승에 도달해 여전히 무시 못할 위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탄탄한 자국 리그를 바탕으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유럽의 강호 중 하나로 통한다. 과거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득점왕이자 1965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전설적인 선수 에우제비우와 함께 전성기를 맞은 바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루이스 피구를 위시한 황금 세대의 등장으로 다시 세계적인 전력을 갖춘 팀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지금도 유벤투스의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팀을 이끌고 있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은 유로 2016에서 우승해 사상 첫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따냈다.

포르투갈 축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이 국가 출신의 또 다른 전설적인 축구 선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도 했고 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루 벤투 또한 이 국가 사람이다. 석현준 선수가 2015년~2016년 시즌 초에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한국팀이 포르투갈 황금 세대팀을 꺾고 조별 예선 탈락 시켜 주기도 했다. 포르투갈 쪽에서 두 명이 퇴장당한 건 덤.[24]

축구 강국 이미지 때문에 다른 유럽의 축구 강국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처럼 각종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역대 올림픽 성적은 엄청나게 저조하다. 첫 참가한 1912 스톡홀름 올림픽 이래 2016 리우 올림픽 때까지 하계 올림픽에 빠짐없이 참가했으나 지금까지 금 4, 은 8, 동 12, 합계 24를 기록하고 있다. 이 성적은 대한민국은 물론 이웃 국가 스페인이나 한 때 식민지였던 브라질보다도 더 저조한 성적이다.

11. 군사

12. 대외 관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나토 국가들과 군사적, 외교적인 협력을 한다. 더불어 영연방보다는 못하지만 포르투갈어 상호 교류를 하면서 과거 식민지 국가들인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 상투메 프린시페, 동티모르와 축구 대회를 가지기도 한다.

포르투갈어 연합체인 CPLP에는 참관국도 있다. 주로 일본, 터키, 조지아 등 몇몇 국가가 참관국 지위를 가지고 있고 마카오 등 일부는 정회원국으로 등록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12.1. 스페인

12.2. 중국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애초 마카오아편전쟁의 전리품인 홍콩이나 청일전쟁의 전리품인 대만 섬과 달리 평화적으로 영구 조차한 곳이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매 해 베이징에 세금을 납세하는 조건으로 영구 임대했다. 그리고 중국이 1949년 공산화 이후 미국 등 서방과 외교적으로 고립되었을 당시 포르투갈이 미국과 중국의 중재자로 나서며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기도 했다.

다른 국가들, 특히 스페인이 복속시킨 아메리카의 대부분이 콘키스타도르들 몇몇이 압도할 만큼 무력에서 뒤떨어져 있던 것과는 달리 중국은 강력한 천자의 조정과 수없이 많은 인구가 있고 화약 무기가 보편화되어 문명 수준이 훨씬 앞서 있었다. 대포 들고 콘키스타도르 몇몇이 얼쩡거려 봤자 바로 관군이 출동해서 쓸어버리기 쉬웠다. 그래서 국력의 차이를 인식한 포르투갈은 인도의 캘리컷이나 아프리카의 앙골라 등을 무력 복속한 것과 달리 평화적으로 명나라 조정과 협상하고 지방 관리를 매수해서 마카오를 얻어 간 것이다.

마카오는 과거에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었다가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어 현재는 마카오 특별행정구다. 마카오는 그래서 중국과 포르투갈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남유럽 문화를 느낄 수 있고 가톨릭도 대륙과 달리 보편화되어 있어 크고 작은 오래된 교회를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은 마카오를 중계지로 포르투갈과 교역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국과 포르투갈은 아소르스 제도에 중국의 과학탐사용 기지를 개방하기로 결정하는 등 현재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으니까 그런 면도 있다.

중국은 브라질의 영향으로 브라질쪽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지만 마카오의 영향으로 간혹 유럽식으로 배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포르투갈 정부에서 주관하는 포르투갈어 시험인 CAPLE(유럽식)가 실시되고 있다.

12.3. 일본

일본에 대항해시대 이후 처음 도달한 서양인들이 포르투갈인이다. 이들은 일본에게 [25], 튀김, 조총, 기독교(가톨릭) 등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일본어에도 일부 포르투갈어 차용어가 존재한다. 그러다가 17세기 이후로 종교적인 문제와 무역적인 문제로 교역이 끊겼고 19세기 후반에 다시 국교를 정상화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포르투갈인이 일본에 정착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파울루 로샤의 사랑의 섬은 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정착한 벤세슬라우 드 모라이스라는 작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당연하게도 일본에서도 로케이션을 했다.

일본도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았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에도 참관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어를 가르치지만 대개 한국, 중국과 함께 브라질 쪽이 널리 알려져 있고 브라질 쪽 표현을 가르치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그래도 한국과는 달리 포르투갈 정부에서 주관하는 포르투갈어 시험인 CAPLE(유럽식)가 실시되고 있다.
2차세계대전 에서는 일본의 선전포고를 받았으나 용케 중립을 지켰다.

12.4. 대한민국

12.5. 브라질

12.6. 영국

2차례나 독립에 도움을 주었고[26] 공식적인 관계로 성립한 것만 생각해도 700년이 넘어가는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적으로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 오고 있다.

이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확고했는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도 무시하고 영국과 무역을 지속했을 정도였다. 그 대가로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에 본토가 침공당하고 왕가가 브라질로 피신해야 했지만 이 피신 과정에서 영국 해군이 왕가의 피난을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육군이 대거 파병되어 반도 전쟁을 통해 나중에 포르투갈 영토를 되찾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양국의 왕가 사이의 교류도 활발해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에 차를 전해 주기도 했을 정도다.[27] 또 이 공주가 혼수로 인도의 봄베이를 들고 가서 영국의 인도 식민지화의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는 비슷하게 광동 성 앞바다에 붙어 있어서 양자 교류가 활발하다. 마카오는 홍콩 때문에 포르투갈과 포르투갈령 식민 국가가 우측 통행을 할 때 혼자 좌측 통행을 할 정도다.

브라질과 관련해서는 브라질 독재 탄압 당시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 식으로 브라질인이 영국으로 망명하는 케이스도 간혹 있었다. 카에타누 벨로주와 질베르투 질도 영국 망명 생활을 했을 정도다.

12.7. 프랑스

프랑스의 경우 역사적으로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악연이 깊었기도 했지만 지금은 돈독하게 지내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포르투갈 왕정복고전쟁 때는 포르투갈을 도와 주기도 했다.

12.8. 러시아

러시아와는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고 적지만, 포르투갈도 러시아와 교류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에 영국에서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EU의 일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외교관 추방정책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12.9. 인도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고아(인도), 다만디우 등을 식민 지배한 적이 있다. 20세기에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남아있던 고아, 다만디우를 되찾았다.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고아, 다만디우에서도 포르투갈어가 쓰이기도 하고 가톨릭도 퍼져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에도 인도계 후손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28]

12.10. 인도네시아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은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12.11. 과거 식민지

브라질, 마카오, 동티모르, 앙골라,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 모잠비크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동시에 포르투갈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포르투갈과 함께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국가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브라질, 마카오, 앙골라, 모잠비크 등 다른 포르투갈어권 국가들로 이주하는 포르투갈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마카오는 카지노로 대표되는 도박 산업과 유흥업, 관광업 등 사업의 다각화 와중에 국가 산업이 대박을 맞았고[29] 앙골라, 모잠비크 등도 식민지 독립 후 과거 종주국으로 떠나갔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식민 종주국의 어려워진 사정 때문에 다시 이민을 오게 되면서 백인 비율이 다시 늘게 되었다. 게다가 산유국인 앙골라가 포르투갈을 돕는 등 완전히 관계가 역전되기도 했다. 단, 기니비사우는 경제적으로는 가난하다보니 포르투갈인들은 오지 않는 편이다.

13. 포르투갈 국적, 출신의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제외
어째 죄다 대항해시대 등장 캐릭터들이다. 그만큼 포르투갈이 머나먼 나라라는 뜻

14. 관련 문서

15. 둘러보기

남유럽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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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영국의 유럽연합은 10월 31일로 탈퇴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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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스본의 역사적인 인구 변화는 리스본/인구 참조.[2] 남한에서 전라북도를 뺀 면적과 비슷하다.[3] 포르투갈의 역사적인 인구 변화는 포르투갈/인구 참조.[4] 포르투갈/인구 참조.[5] 포르투갈/인구 참조.[6] 포르투갈/인구 참조.[7] 포르투갈/인구 참조.[8] 일부 지역에서 미란다어가 지역 공용어로 인정된다.[9] 리스본/인구 참조.[10] 포르투갈/인구 참조.[11] 한국의 인구밀도가 1330인 데 비해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300~500선이기에 보통 대한민국 면적일 때 유럽 국가들의 인구는 1/3~1/5 정도에 해당된다.[12] 스페인의 음악과 춤이 굉장히 흥겨운 반면 포르투갈의 민속 음악이나 파두는 굉장히 우울하다. 대부분의 주제가 바다로 나간 남편이나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노래다. 이게 다 대항해시대의 악덕 선장들 때문이다. 물론 농담처럼 하는 말이고 실제로는 다양한 역사적 기원이 있기는 하다.[13] 그 중에서도 특히 fishermen's trail이라고 부르는 구간이 인기있다.[14] 루시타니아, 제1차 세계 대전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된 배 루시타니아 호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15]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다. 언론 자유 최상은 0점, 언론 자유 최악은 100점이고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16] 2015년 포르투갈 의회의 총 의석 수는 230석이다.[17] 정확히 말하면 시험방송을 포함한 컬러 방송 개시 자체는 1976년부터 했지만 당시의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완전 컬러 방송이 미뤄진 것이다.[18] 스페인에서는 발음만 스페인식으로 바꿔서 아술레호라고 한다.[19] 한국 가톨릭에는 16개의 교구가 있다.[20] 포르투갈에서 쓰이는 로망스어파의 언어로 형태를 보면 포르투갈어와 매우 유사하다.[21] 단 이것은 유로 2004를 단독개최하면서 (잉글랜드, 프랑스 등도 하지 않은) 10개 경기장을 신축 및 증축하는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으로 실제로는 국내 빅3인 벤피카, 스포르팅, 포르투가 경기당 3만명이 넘는 대관중을 불러모으는 반면 다른 클럽은 경기장 적당히 채우기도 어려워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나마 김동현이 있던 브라가나 정재권이 진출했던 비토리아 세투발 정도는 나은 편이다. 실제로 인구 수준이 비슷한 스코틀랜드나 그리스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고 보아비스타와 같이 유로 2004 당시 경기장 지출 때문에 잘나가던 클럽이 파탄난 사례도 있다.[22] 2013년~2014년 UEFA리그에서 규모가 몇 배 차이나는 프랑스리그앙을 누르고 랭킹 5위를 차지할 정도.[23] 그동안 듣보잡이던 SC 브라가와 포르투의 결승전으로 FC 포르투가 우승했다. 그리고 감독 보아스는 첼시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으나 반 시즌만에 경질되고 시즌 종료 후 토트넘 핫스퍼의 지휘봉을 잡는다.[24] 파울루 벤투 감독은 이 경기에서 주앙 핀투가 퇴장당할 때 난투극으로 번질 뻔한 상황에서 선수를 말리는 역할을 했다. 당시 등번호는 17번.[25] 덕분에 한국까지 포르투갈어 '빵(pão)' 을 쓰게 되었다.[26] 처음은 12세기 레콩키스타 시절, 2번째는 1640년까지의 왕정복고전쟁 기간 중.[27] 정작 포르투갈에서는 홍차보다는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데 인도양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차례로 잃어버린 상황에서 남은 것은 브라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가 차의 대체재로 떠오르면서 정치, 지리적인 이유로 들여 오는 것이 더 수월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28] 포르투갈의 총리인 안토니우 코스타가 인도계 총리다.[29]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은 마카오가 포르투갈령이었을 당시 지배국이었던 포르투갈 정부에서 마카오에서 카지노 사업을 육성, 실시했었지만 금융업 등으로 산업 다각화를 시도한 것은 반환 이후의 일이다. 식민지 시절 카지노 재벌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 포르투갈 혼혈의 스탠리 호라는 중국인 재벌.[30] 스페인측 주인공이지만 본래는 포르투갈 출신이다.[31] 이 인물은 스페인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32] 2016년 영화 버전에서는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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