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21:04:48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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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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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공화국의 총리
본명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António de Oliveira Salazar)
출생1889년 4월 28일, 포르투갈 왕국 산타콩바당
사망1970년 7월 27일(향년 81세), 포르투갈 공화국 리스본
학력코임브라 대학 박사
시민권포르투갈인
배우자없음(독신)
정당포르투갈 가톨릭 중앙당[1](-1930년)
국민연합(1930년-)
재임기간총리 : 1932년 7월 5일 ~ 1968년 9월 25일
종교가톨릭

1. 개요2. 우민 저개발 독재3. 외교 정책4. 사망5. 대중매체6.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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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모습

1. 개요

포르투갈 제2공화국독재자.

처음에는 가톨릭 신학대학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마음을 바꾸어 코임브라 대학에서 법학을 배우고 1916년 동 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1926년 장군 카르모나의 쿠데타가 성공하여 재무장관으로 기용된 후 1932년 총리가 되었고[2], 국민연합을 조직하여 일당독재를 추진하였다. <Estado Novo(이스타두 노부, 새로운 국가)> 운동을 <Deus, Pátria e Familia(하느님, 조국, 그리고 가족)>이란 슬로건으로 진행했다.

2. 우민 저개발 독재

경제학 교수라는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인 독재자와는 달리 경제학자 출신으로 군사정권의 재무장관이 된 인물이었다. 재임기간 동안 세계 대공황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포르투갈의 경제를 되살리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드높아지는 권세 앞에 1930년대 후반 쯤 되면 군사정권의 실력자들조차 꼭두각시로 전락, 사실상 포르투갈을 한손에 쥐었다. 자신의 정책을 유지하지 위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를 했으며 3F 정책이라 불리는 우민화 정책을 펼쳤다.[3]

게다가 경제학 교수라는 이력과 어울리지 않게 산업화근대화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포르투갈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았다. 20세기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낭만적 목가주의자의 감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을 제조업 중심의 강력한 패권국가로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근대산업혁명의 광풍으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농촌국가로 만드는 것을 추구하였다. 그것이 30여 년 장기집권의 비결이었다.[4]

먹물들이 많아지면 정권 유지가 힘들다면서 노골적인 우민화 정책을 실시했다.[5] 반대로 초등교육은 기본 교육이라며 적극 권장했다.[6] 7-14세 아동의 문해율은 1930년에 33%였던 것이 살라자르 통치 하에서는 1940년 56%, 1960년에는 97%를 달성했다.[7] 하지만 고등 교육에 대해서는 냉담했는데 그나마도 1960년대 들어서는 앙골라와 모잠비크에 대학교도 세워주는 등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

본국의 교육사정이 이러하니 당연히 식민통치 지역에서의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어서 앙골라는 전체 인구의 98% 가량이 문맹이었고 모잠비크도 마찬가지로 문맹률이 90% 이상이었다. 또 내수 산업 개발보다는 해외 식민지 경영에 집중해 포르투갈의 산업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비록 2차 대전 당시 전 유럽이 쑥대밭이 되어가는 와중에 중립을 지키면서 추축국연합국 모두에 군수물자를 수출하면서 어느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루는 듯 했으나, 2차 대전 이후 탈식민화의 바람이 불어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식민통치에서 벗어날 때, 포르투갈은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등은 영구한 포르투갈 영토라는 논리 하에 해외 식민지에 집착하여 오랫동안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을 벌였고, 이는 국가 재정과 경제 전체에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8]

더딘 산업화로 인해 6, 70년대 많은 포르투갈 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후 호황을 누리고 있던 다른 유럽 국가들로 유출되었으며, 덕분에 포르투갈의 최대 수출품은 포르투갈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9] 대항해시대에 신이 포르투갈 인들에게 요람으로 작은 포르투갈을 주고, 무덤으로 세계를 주었다는 말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3. 외교 정책

제2차 세계 대전독재체제였지만 살라자르 본인은 파시즘의 열광적 대중동원이나 대외적 팽창주의를 혐오하며 안빈낙도(...)를 추구했다. 그럼에도 살라자르 치하의 전체주의 체제였다. 어쨌든 포르투갈에 전체주의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에는 포르투갈 파시즘 운동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재체제임에도 연합국 측에 호의적이었고 아조레스 제도 등의 군사기지를 영국미국에 제공하기도 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냉전기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가면서 OECD, NATO 등 국제기구 창설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4. 사망

말년인 1968년에는 해먹에 앉아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포르투갈의 대통령직은 의례적인 존재일 뿐이었고 그가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다른 정치가들의 모략으로 총리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렇게 모든 권력을 상실했으며 마르셀루 카에타누가 후임 총리가 되었다. 살라자르는 몇 달 뒤 의식을 되찾았으나 이미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측근들은 건강이 나빠진 살라자르가 이 사실에 충격을 받기를 바라지 않았고, 이런 부하들을 둬야 한다 조작된 신문과 가짜 서류들을 바쳐서 여전히 살라자르가 권력을 잡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살라자르는 아무 의미도 없는 명령서에 사인이나 하면서 죽을 때까지 진실을 모르고 있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는 살라자르가 가족도 없었고 사저에만 틀어박힌 채 기자회견도 안 하고 해외순방도 안 한 덕에 가능했던 것. 아무래도 TV나 라디오는 잘 안 본 모양이다[10] 실사판 굿바이 레닌아니 굿바이 살라자르, 또는 트루먼 쇼를 찍다가 간 사람(…). 이 부분은 2017년 12월 31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11]

그가 죽은 뒤 1974년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으로 포르투갈은 결국 식민지였던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상투메 프린시페의 독립을 승인하는 등 그때까지 보유하고 있던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마카오만 제외하고 모조리 포기한다. 사실 마카오도 반환하려고 했는데 중국 정부가 서방에 대한 창구로 써먹으려고 거부했다(...).[12]

살라자르 사후 포르투갈의 민주화는 젊은 장교들이 주축이 된 군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살라자르 생전에 열악한 경제상황 때문에 장교들에게 봉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자 그 해법으로 젊은 장교들에게 부르주아 가문의 여성과 결혼하라고 권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인 듯.

5. 대중매체

한때 포르투갈에 살았던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은 이 사람의 성을 따서 "악명높은 기숙사" 슬리데린의 창립자 살라자르 슬리데린만들었다.

캡콤의 바이오하자드 4에 등장하는 라몬 살라자르의 이름이 그의 이름에서 따왔을 것이라 추측된다. 독재자/사이코 영주 기믹이라는 것과 라틴 계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공통점. 근데 바이오하자드 4의 가나도들은 스페인어를 쓴다(...)

6. 평가

파시즘의 영향을 깊게 받은 독재자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고 살아 남았다는 점에서 이웃나라 스페인프란시스코 프랑코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프랑코와 살라자르는 꽤 친했다고 한다. 유유상종 스페인 내전 당시에 살라자르가 프랑코를 지지했던 것도 있고, 내전이 끝나고 2차대전이 벌어지자마자 추축국 편을 드는 듯 안 드는 듯 간보는 프랑코와 마찬가지로 중립을 고수하였으며 중남미의 콘도르 작전을 지원해 망명 온 중남미인들을 송환시켰던 것도...

그러나 내전기와 내전 이후에도 자국민 수십 만명을 처형하였으며 탈출한 사람들을 체포하여 처형시켜 탈출을 법으로 금지하고 연좌제를 시행하는 등 스페인 전역을 피비린내로 물들인 프랑코와는 달리, 살라자르의 독재정은 권위주의적이고 고압적이긴 했지만 프랑코에 비해 온건했다. 실제로 반 살라자르 야권의 거두였던 포르투갈 공산당 당수 알바루 쿠냘만 하더라도 콩밥은 오래 먹었지만 사형은 당하지 않았고[13], 2차대전 이후에는 해빙 무드를 타 비록 손발은 꽁꽁 묶어 두었지만 제대로 된 야당의 형성 또한 정말 몇년 동안만허락했다가 바로 다시 금지하고 탄압했다. 스페인은 실제로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사형을 프랑코 정권 말엽까지 지속했지만, 포르투갈의 경우 대대적으로 처형하지는 않았다.

그 외에 민주화 이후에 대도시와 해안가에 모든 게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지역불균형 문제가 심해진 터라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촌지역에서는 그나마 농촌에 신경을 썼던 살라자르 시기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듯 하다. 사실 스페인의 프랑코 같은 강력한 억압 통치를 한 것도 아니면서 반세기 가까이 장기 집권을 해온 것 자체가 천조국의 지지는 물론 어느 정도 광범위한 지지기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심지어 2007년 포르투갈 국영방송사 RTP가 시행한 위대한 포르투갈인 설문조사에서 항해왕자 엔히크, 바르톨로뮤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대항해시대를 연 세계사적 위인들이 포함된 20명의 최종 후보들 중 4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 이는 존경하는 인물 혹은 존경하는 대통령 여론 조사에서 항상 윗 순위를 차지하는 박정희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 때 2등을 한 인물은 살라자르 정권 내내 반정부 인사 중 최대 거물이었던 포르투갈 공산당 당수 알바루 쿠냘이었다. 그리고 라이벌 민간 방송사 SIC의 최악의 포르투갈인 설문조사에서도 여전히 둘은 사이좋게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다(...). 살라자르 정권에서 수혜자였던 가톨릭 교회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문제로 프랑코를 살라자르보다 고평가하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엉망이던 시절이라도 나름 열강으로 인정해 줬고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상당했기에 2류 국가라는 비아냥은 들어도 실제 국력은 그렇지 않았던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가 끝나자마자 진짜 2류 국가, 중진국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스페인은 바스크 지방의 조선업아스투리아스의 철광업, 바르셀로나금융업은 그 스페인이 삼류 국가 소리 듣던 20세기 초반에도 유럽에서 알아 주었을 정도였다. 스페인은 원래 잠재력은 충분했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포텐셜이 워낙 늦게, 그리고 급격하게 터졌던 것이다. 오히려 장기적인 성장률은 살라자르 치하 포르투갈이 프랑코의 스페인보다는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살라자르의 경제정책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워낙 1, 3차 산업에 치중하다 보니까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물론 살라자르도 바보는 아니니 철강, 기계 제조업 분야에서 기업들을 육성하긴 했지만, 상당수가 국영기업이었던 이 기업들이 1980년대 민영화되면서 상당수 외국계 다국적 회사에 팔려나갔고, 오래 지나지 않아 글로벌 생산 차원에서 비중이 미미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포르투갈 내 생산시설을 폐쇄하면서 제조업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게 유로화 사태 당시 포르투갈에 치명타를 입혔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비해서도 회복이 지지부진한 결과를 낳았으니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다만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회복되기는 해서, 청년실업률에서나 경제적인 수치에서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보다는 사정이 훨씬 낫기는 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이 30-50%대를 넘나들 때 포르투갈은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고 급기야 1980년대 이후 재정적자가 가장 적을 정도라서 브라질이나 앙골라가 원자재값 하락으로 다시 침체에 빠지면서 빠져나갔던 인재들이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다만 포르투갈의 청년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 국내보다는 같은 유럽연합 안에서 일자리가 있는 영국, 독일, 룩셈부르크 등지나, 말도 통하고 한참 고도성장 중인 과거 식민지인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등지의 해외로 나간 결과다보니 실제 경제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 고급인력이 부족한[14] 앙골라 같은 곳으로의 이주민은 불과 10년 전 몇백 명 수준이었던 게 최근에는 만 단위를 넘고 있는 상황일 정도.

물론, 그래봤자 'A보다 B가 덜하다고 해서 B가 온당하다'는 증명이 되진 못한다. 독재자는 독재자. 영화이자 소설인 '리스본행 야간열차'나 페드로 코스타의 용암의 집, 행진하는 청춘, 호스 머니를 보면 그 시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프랑코 수준으로 반대세력을 당장 공개처형하지 않아도 인생 조지는 방법은 참 다양했다는 걸 알 수 있다.[15] 다만 옆동네 프랑코가 하도 피비린내 나게 굴어서(...) 주목을 덜 받는 것뿐이다. 오늘날 포르투갈이 겪고 있는 개고생의 대부분은 이 사람이 뿌려놓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암군이란 점에서는 프랑코와 별반 차이 없다.

심지어 포르투갈은 살라자르의 산업화 경시와 저개발 우민화 독재로 인해서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크게 성장하고 국민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아질 1980년 즈음까지 옆나라 스페인과 같이 유럽의 대표적 후진국으로 발칸 반도아나톨리아 반도의 가난하다고 여겨진 국가들만도 못한 소득과 생활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1] Centro Católico Português[2] 사망시까지 실권을 가진 총리였다. 대통령들은 살라자르의 바지사장이었을 뿐.[3] 축구(Futebol), 종교(가톨릭, Fatima), 파두(Fado -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민속 음악)[4] 산업화와 근대화는 능력 있는 개인들에게 부를 축적할 기회를 주고 일반 대중들의 경제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부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러다보면 정부의 정책을 시행하는 게 어려워질 뿐 아니라 세금을 걷는 것 역시 힘들어질 수 있다.[5] 당연한 것이 지식인들은 국가와 사회의 운영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이 비합리적일 경우 이에 반대할 여지가 많다. 그렇다고 지식인들을 향해 무력을 쓴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므로 여의치 않다.[6] 적어도 기본적인 지식은 있어야 하니까. 하다못해 자기 이름 정도는 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7] 출처 : Candeias, António; Simoes, Eduarda (1999). "Alfabetização e escola em Portugal no século XX: Censos Nacionais e estudos de caso". Análise Psicológica[8] 그래도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는 포르투갈군이 백인지배 체제 유지를 노리던 인접국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로디지아의 지원을 받으며 전선에서 독립군 세력들을 몰아내는 등 승전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남아공, 로디지아와 붙어있지 않았고 가까운 모잠비크, 앙골라와 달리 기니비사우에서는 남아공조차도 자국과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포르투갈을 도와주지 않아 현지 독립군 세력들이 수도 비사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니비사우 영토들을 점령하며 전선에서 우위를 차지했다.[9] 그리고 현재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단지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이나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경기가 침체되어 있다보니 이민 대상이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등 빠르게 발전하는 옛 식민지로 바뀐 정도다. 카네이션 혁명 직후 앙골라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상투메 프린시페 등이 독립했을 때 그 곳에 이미 살고 있던 포르투갈인들이 대거 본토로 돌아오게 되면서 헬게이트가 열렸고 이들을 본토에서조차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바람에 달동네마냥 귀환자들로 구성된 빈민촌이 생긴 적도 있었다.(출처: 이원복 교수의 진짜 유럽이야기)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다시 그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단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반복이 따로 없는 셈. 이 빈민촌 중 폰타야나스는 페드로 코스타 영화들에서 자세히 다뤄진다. 폰타야나스는 2000년대 이후 철거되었다.[10] 근대화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여왔다만 그래도 1950년대 중반에 TV방송이 시작되기는 했다.[11] 당시 방송분의 자막을 보면, 이 문서를 참고한 듯하다. 제작진 중에 위키니트가?[12] 다들 알다시피 결국은 1999년에 반환된다.[13] 포르투갈은 1867년부터 사형제도를 폐지한 상태였다. 1차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군법에 한해 사형을 부활시켰지만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제 폐지는 그대로 유지했고 살라자르 독재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완전 폐지는 1976년) 반면 비슷한 시기 스페인 공산당의 당수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프랑코를 피해서 소련에 망명해 있었다.[14] 앙골라 같은 경우 식민지 시절부터 포르투갈 본토보다 나았던 적도 있었지만 독립 직후 오랜 내전과 쿠데타로 인해 각종 산업시설들과 현지 자체 인력들이 거진 갈려나간 적이 있었다. 물론 앙골라도 독립 직후 백인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반강제적으로 추방한 것도 크다.[15] 일례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은 살라자르 때문에 그나마 움트려고 하던 경력이 단절될 뻔했다. 당시 포르투갈 뉴웨이브 감독들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는 말 안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