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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color=#fff> 포르투갈령 앙골라 Angola Portugues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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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60> 국기(1910-1975) | 휘장(1935-197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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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5년 ~ 1975년 | ||
| 성립 이전 | 독립 이후 | |
| 콩고 왕국 | 앙골라 인민공화국 | |
| 은동고 왕국 | ||
| 마탐바 왕국 | ||
| 위치 | 중앙아프리카 앙골라 | |
| 수도 | 루안다 | |
| 민족 | 포르투갈인, 앙골라인 | |
| 언어 | 포르투갈어 | |
| 종교 | 가톨릭 | |
| 국가원수 | 포르투갈 국왕(1575~1910) 포르투갈 대통령(1910~1975) | |
| 정부수반 | 총독 | |
| 통화 | 앙골라 에스쿠도 | |
1. 개요
앙골라에 존재하던 포르투갈 제국의 식민지이다.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África Ocidental Portuguesa)라고도 한다.2. 역사
역대 국호1575년 ~ 1834년 : 앙골라 왕국(Reino de Angola)
1834년 ~ 1914년 : 앙골라 도(Província de Angola)
1914년 ~ 1951년 : 앙골라 식민지(Colónia de Angola)
1951년 ~ 1972년 : 앙골라 도(Província de Angola)
1972년 ~ 1975년 : 앙골라 주(Estado de Angola)
1483년 포르투갈의 항해사인 디오고 캉이 콩고 왕국에 도착하며 알려졌다. 디오고 캉이 앙골라에 도착했을 때 앙골라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여러 부족과 왕국이 나뉘어 있었다. 포르투갈은 처음엔 콩고 왕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 노예 무역을 중심으로 한 상업 활동을 전개했다. 1540년대부터 포르투갈인들이 가톨릭 선교활동이 시작되며 본격적인 진출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노예에 관심이 있었고 콩고 왕국과 노예무역을 했다. 1575년에는 루안다에 정착촌을 세우며 지배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17세기에 현지 왕국들인 콩고 왕국과 은동고 왕국을 무력으로 침공하여 제압하였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지배는 20세기 초반까지 내륙 지역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포르투갈인들은 앙골라인들을 노예로 잡아 브라질로 끌고 가거나, 광산이나 농장 등지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17세기에는 포르투갈과 콩고 왕국 사이에 경제적 이해관계 충돌로 전쟁이 벌어졌고, 1665년 암부일라 전투에서 콩고가 패배했다. 그러나 포르투갈도 1670년 키톰보 전투에서 패배했다. 이후 18~19세기 들어서야 포르투갈은 내륙 침투와 지배 확립을 진행했다. 19세기에는 브라질 독립과 노예무역 금지 이후 본격적인 내륙 식민화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유럽 열강과의 아프리카 분할 경쟁 속에서 진행되었다. 1884~1886년 여러 국제 조약을 통해 현재 앙골라의 국경이 대부분 확정되었다. 1822년 벵겔라 지역에서는 브라질과의 합병을 시도한 ‘콘페데라상 브라질리카(Confederação Brasílica)’라는 분리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이후 탐험가들이 내륙 지역(말란제, 비에, 쿠안자강 등)을 조사하며 식민 통치를 확장했다. 19세기 말, 앙골라의 식민 경계는 대체로 오늘날의 영토와 비슷해졌으나, 내륙의 실질적 통제는 미약했고, 완전한 점령은 1926년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포르투갈의 식민 정책은 1924년 국제연맹에서 앙골라인들은 농노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육 역시 매우 제한적이라, 인구의 무려 98%가 문맹이었다. 1950년대에 와서야 앙골라인들을 대상으로 한 초등학교가 늘기 시작했을 정도이다. 포르투갈은 도시·항만·철도 건설 등 인프라 개발과 경제 확장에 주력했지만, 그 기반은 토착민 노동 착취에 있었다. 식민 정부는 서서히 교육 제도를 도입했으나, 이는 주로 식민 행정을 위한 숙련 노동력 양성이 목적이었다.
1951년에는 식민지에서 해외영토(Província)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에는 주(Estado)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민족주의가 대두하였다. 좌익 계열의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과 우익 계열의 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이 성립되었다. 이들은 1961년 포르투갈에 대항하여 포르투갈군과 전쟁을 벌였다. 소련을 필두로 하고 있던 제2세계 진영은 앙골라 인민해방운동을 지원하였고, 미국을 필두로 하고 있던 제1세계 진영은 앙골라 민족해방전선을 지원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로디지아는 포르투갈을 지원했다.
포르투갈군 측이 유리했으나 점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갔고,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제2공화국 정권이 붕괴되고 들어선 신정부는 식민지 포기를 선언하였다. 앙골라에 거주하던 수십만 명의 포르투갈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1975년 11월 11일 알보르 협정에 따라 앙골라는 '앙골라 인민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2.1. 역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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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 1935년 5월 8일(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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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 식민지 박람회의 임시 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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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5월 8일 ~ 1975년 11월 11일(소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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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5월 8일 ~ 1951년 6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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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6월 11일 ~ 1975년 11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