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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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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골라의 역사를 서술하는 문서.

2. 선사시대와 포르투갈령 앙골라 전(~1575년)

루안다, 콩고, 나미브 지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적으로 보아 구석기,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최초로 이 지역에 정착한 이들은 산족들이었으나 이후 기원후 6세기경부터는 제철기술, 토기제작기술, 농업기술을 가지고 있던 반투족들이 산족을 밀어내고 주류가 된다.
13세기경부터는 일대 최초의 대형국가인 콩고 왕국이 생겼으며 현재의 앙골라 북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콩고 왕국의 역사를 통틀어서 꽤나 강력했던 국가 중 하나였던 음반자 콩고의 수도 음반자콩고는 16세기에는 인구가 5만 명을 넘어섰고[1] 현재도 존재하는 도시이며 자이르주의 주도이다. 이후 포르투갈의 항해사였던 디오고 캉(Diego Cão) 등등 포르투갈인 탐험가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고 포르투갈인은 종교를 전파, 콩고 왕국은 상아, 노예 등을 거래하기 시작한다.

3. 포르투갈의 식민지배(1575년~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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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은징가 음반데 }}}}}}}}}}}}}}}

앞서 말한 포르투갈의 항해사 디오고 캉(Diego Cão)이 1483년, 앙골라 북부 해안에 도착하여 콩고 왕국을 방문하면서 처음 유럽에 알려졌다. 당시 앙골라 지역에는 은동고 왕국을 포함한 몇 개의 부족 왕국들이 있었으며, 한동안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였다. 본격적인 포르투갈의 진출은 1540년대 선교 활동을 하면서 이루어졌으며, 1575년 포르투갈은 군대를 이끌고 앙골라를 침공하여 해안가를 중심으로 정착하였다. 앙골라의 대서양 연안 도시들 대부분은 이런 목적으로 포르투갈인들이 개척한 것으로, 수도인 루안다는 물론 벵겔라, 루방구, 그리고 본토에서 떨어져 있는 카빈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까지 포르투갈에게 앙골라는 그렇게 중요한 지역은 아니었다. 주로 인도 무역을 할 때 지나가는 거점 지역으로 활용되거나, 포르투갈의 브라질 식민지 개척에 쓸 노예를 납치하는 정도로 이용되었다. 앙골라 영토가 지금은 넓어보이지만 그 중에서 대서양과 인접한 연안 지역의 몇몇 항구만이 원래 포르투갈의 관심사였다. 그러던 것이 당시 포르투갈이 콩고를 먼저 발견했다며 식민지 영유권을 주장하였는데 19세기에 이미 포르투갈은 열강 중에서 위세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 무시 당하고, 벨기에가 식민지로 삼아버려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게다가 바다 반대편에서는 포르투갈의 중요 식민지였던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이에 포르투갈은 아직 가지고 있는 영향권이라도 잘 써먹어 보자는 심정으로 본격적으로 앙골라 식민지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내륙 진출이 이루어지고, 이후 열강들 간에 체결된 일련의 조약을 통하여 오늘날의 앙골라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포르투갈의 기본적인 식민지 정책은 동화와 강제 노역이었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철저하게 차별하여 대우했으며, 식민지 농업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을 위하여 무수히 많은 앙골라인들이 '계약노동'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되었다. 하지만 막상 포르투갈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당대 본국인 포르투갈조차 20세기 중반에도 식민 열강답지 않게 문맹률이 40%를 한창 넘나들었을 정도로 교육에 대한 투자가 미비했기 때문에, 앙골라 교육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1950년대 당시에 앙골라의 문맹률이 98%에 달했다. 포르투갈어는 물론이고 ABCD를 외우는 사람조차 소수 계층에 불과했다.

4. 앙골라 독립 전쟁(1961년 ~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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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범아프리카 운동이 대두되면서 독립운동의 물결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다. 1956년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이 조직되고, 1958년에는 앙골라인민연합(UPA)이 창설되었다. 1961년 이들 단체의 무장독립투쟁에서부터 앙골라 독립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앙골라 독립에는 소련, 중국, 쿠바를 비롯한 공산권의 지원이 활발하였다. 당시 소련은 공산 혁명과 관련하여 식민지 해방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냉전 시기 세력 확장을 위하여 아프리카 식민지 독립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한편 중국의 경우에는 소련과의 대립, 제3세계 주도권을 둘러싸고 활발하게 해외 원조를 하고 있었다. 한편 소련과 쿠바가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을 지원하자 소련의 라이벌인 미국과 서방세계는 우파 성향의 앙골라인민연합(UPA)과 그 후신인 앙골라민족해방전선(FNLA)을 지원하며, 이들은 경쟁 관계 속에서 포르투갈이라는 상대를 두고 포르투갈군과 전쟁을 벌였다.

그러던 와중에 1974년 포르투갈 제2공화국 독재 정권이 카네이션 혁명으로 붕괴되고, 혁명 후 들어선 포르투갈 신정부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1975년 앙골라는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앙골라는 독립 전쟁을 이끌었던 독립군 단체들과의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여담으로 앙골라 독립 직후, 앙골라 거주 포르투갈인들이 대부분이 아니라 거의 모두 앙골라에서 쫓겨나 본국 포르투갈로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앙골라 독립 이후에 앙골라인민해방운동 등 앙골라의 독립 운동 세력들이 포르투갈인들부터 백인들을 사실상 적으로 간주하고 이들이 그동안 앙골라를 수탈하며 모은 재산을 몰수하고 나아가 목숨까지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현지 주민 얘기에 따르면 독립 직후에 신정부 흑인들은 포르투갈 출신 자본가들에게 "자산을 대부분 놓고 나가라"고 명령하면서 언제까지 안 나가면 목숨을 보장 못해준다고 신변 정리할 기한도 정해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포르투갈인들이 쫓겨나듯이 앙골라를 떠나고, 그래도 앙골라에 붙어있으려 했던 포르투갈인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부모 한쪽이 흑인으로 혼혈 정도만이 남았다고 한다.[2]

5. 앙골라 내전(1975년 ~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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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전 종식과 발전사(2002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onas_Savimbi.jpg
조나스 사빔비

이런 상황은 2002년에야 겨우 해결의 실마리가 열려서, UNITA의 리더였던 조나스 사빔비(Jonas Malheiro Savimbi)[3]가 전사하면서 UNITA 세력이 약화, 정부와 UNITA는 정전 각서를 교환했고 가까스로 국가는 안정되고 있다. 그러나 2010년에 독립을 주장하는 카빈다 지역에서 토고 축구대표팀이 테러를 당하는 등, 국가 치안은 여전히 불안하다.

게다가 앙골라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2배를 넘어서 360만 명에 이르는데, 국토의 대다수에 지뢰가 남아 있어서 지금도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있으며, 앙골라는 세계 최악의 대인 지뢰 피해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파일:external/adrempress.com/31-bajarangi.jpg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이후 상황이 다소 안정화된 이후로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가 집권을 이어나갔다. 산투스는 집권했을 때 경제 성장은 이룩했지만 이념 따윈 내팽개치고 국민들을 위한 복지나 교육, 의료 문제보다 제 잇속 챙기기에 몰두하는 부패한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1979년부터 2017년까지 38년간 장기집권했다. 이 사람과 비교할 만한 장기 집권 독재자로는 2023년 현재, 1982년부터 계속 집권 중인 카메룬폴 비야[4]와 1979년부터 현재까지 적도 기니의 독재자로 집권 중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5]가 있다.

내전 이후 앙골라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역시 산투스와 그 측근을 중심으로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앙골라 전체 국부의 30%를 대통령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그의 딸인 이사벨 두스 산투스는 앙골라 국내는 물론 과거 식민지 종주국인 포르투갈 및 유럽 내에서 여러 회사를 소유하고 있고, 아프리카 대륙 내 유일한 여성 억만장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부정부패로 체포되어 포르투갈에서 조사 받고 있는 정부 각료 문제로 양국간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등 외교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이다.

2017년 8월 24일에 있었던 선거에서 여당인 앙골라인민해방운동이 승리했고 후보인 주앙 마누엘 곤살베스 로렌수가 대통령으로 9월 26일에 취임했다. #, #

산투스 퇴임 이후로 로렌스 대통령의 주도하에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유가 하락으로 앙골라의 고도 경제성장기가 마감되고 침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개혁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2017년 총선에서 지지율 하락이 확인된 이상, 로렌수 대통령 입장에서 산투스를 냅둬봐야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앙골라 법원은 산투스 전 대통령의 딸인 이사벨 두스 산투스의 은행 계좌 등 자산을 동결하는 명령을 내렸다. #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알려진 이사벨 두스 산투스는 부정축재와 부패로 얼룩진 것으로 드러났다. #

2019년 앙골라 대법원은 식민 잔재인 반동성애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2021년 앙골라는 동성간 연애 관계를 비범죄화함과 동시에 성적 지향·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고용 차별 금지 및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범죄 처벌 법안을 통과시켰다. #

2022년 8월 25일, 앙골라인민해방운동이 총선에서 과반 득표를 했고 로렌수 대통령이 재선했다. #

7. 관련 문서


중앙아프리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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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고 및 수단 일부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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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2] 사실 이런 인과응보는 앙골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다른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기니비사우모잠비크에서 살던 포르투갈인들 역시 비슷했다.[3] 앙골라 내전 당시에 미국과 서방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서 수도 루안다를 빼고 앙골라 전역을 장악할 정도로 세력이 강했다. 하지만 루안다 점령을 앞두고 미국과 서방 국가와 맺은 밀약을 깨고 앙골라 자원 독점을 선언한다. 이 때 무려 친소 정권이고 상당수 중요 인물이 소련에서 유학을 다녀오거나 군사 훈련을 받은 인사로 구성된 MPLA 정권에서 미국으로 특사를 보내서 밀약을 맺으면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MPLA를 밀어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전세가 완전히 뒤집힌다.[4] 1975년까지는 총리였으며, 1982년에야 대통령에 취임하며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여담으로 비야는 2023년 현재 무려 90세임에도 현역 대통령이다.[5] 산투스와 동일한 1942년생으로 산투스가 2017년 퇴임하고 5년 뒤인 2022년 7월 8일 사망한 반면에 응게마는 아직도 독재자로 집권 중이다. 이쪽은 아예 아프리카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집권한 비군주 통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