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2 21:02:01

차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만화 블리치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사도 야스토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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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드 공화국
République du Tchad
جمهورية تشا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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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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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통일, 노동, 진보
(Unité, Travail, Progrès)
면적 1,284,000km2
인구 15,617,644명[1]
수도 은자메나
국가 차드의 노래
(La Tchadienne)
공용어 프랑스어, 아랍어, 기타 토착어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
대통령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총리 칼주베 파히미 두베
민족구성 사라족, 아라베족, 마요케비이족외 토착민
종교 이슬람교 약 52%, 기독교 약 43%, 기타 정령숭배 및 무종교 3%[2]
UN가입년도 1960년 9월 20일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61년 8월 6일
북한: 1969년 5월 8일
1인당 GDP 명목 881$(2016), PPP 1,865$(2011)
교민 수 20명
여행경보 전지역철수권고
차드 지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Chad_on_the_globe_%28North_Africa_centered%29.svg.png

1. 개요2. 역사3. 자연4. 사회와 경제 상황5. 언어와 종교6. 외교 관계7. 국기8. 여행경보9. 기타10. 지도

1. 개요

아프리카 북부 중앙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수도는 은자메나(N'Djamena).

국토면적 1,284,000㎢(한반도의 약 6.5배),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11,852,462명. 차드는 오랜 식민 지배와 내전, 이웃 국가에서 난민 이주 등으로 아프리카에서도 두드러지게 언어, 인종, 종교가 다양한 국가다.

특히나 거의 반세기에 달하는 오랜 내전으로 아프리카 최강의 막장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데, 아프리카 사헬 사막지대에 위치해서 가장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차드는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이 전세계 3위일 정도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심장 쯤에 해당한 위치에 있는 차드를 빗대서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할 정도.

2. 역사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사하라 사막 교역로에 위치해 있었다. 차드 호 주변의 왕국으로선 700년경 카넴 제국이 처음으로 들어섰으며, 이후 14세기의 보르누 제국 등이 차드에 나타났다. 이 외에도 와다이 왕국 등의 몇몇 왕국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수단의 노예상이자 군벌 라비흐 앗 주바이르가 19세기 말 차드 호 주변에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으나, 결국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프랑스의 식민지 중 제일 먼저 자유 프랑스를 지지한[3] 식민지였다. 그로 인해 이탈리아령 리비아에 주둔하던 이탈리아 왕국군과 충돌하기도 했으나 큰 교전은 없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Fran%C3%A7ois_Tombalbaye_p1959.jpg

차드의 초대 대통령 프랑수아 톰발바예

이후 투쟁을 통해 차드는 1960년 8월 아프리카의 해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초대 대통령 프랑수아 톰발바예(François Tombalbaye)는 일당 독재 국가를 구축했다. 그러나 정권을 놓고 기독교인인 남부의 흑인 주민과 무슬림인 북부 비흑인 주민 간의 대립이 이어졌고 결국 이러한 대립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차드 북부의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반정부 운동이 일어났고, 1966년 차드 북부의 반정부 단체인 차드 민족 해방 전선(FROLINAT)이 세워짐으로서 그 악명높은 차드 내전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리비아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이 내전을 부추기기 위해서 FROLINAT에 군사지원을 하자, 열세에 몰린 중앙정부는 프랑스에 파병을 요청해 이후 차드 내전은 리비아와 프랑스가 개입한 국제분쟁으로 발전했다.

사실상 2017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차드 내전은 1960년 8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민족해방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뭉쳤던 여러 부족 지도자들이 패권쟁탈을 위하여 갈라진 것이 내전과 쿠데타로 이어져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편 이렇게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에 1975년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톰발바예 정부는 무너지고 톰발바예 또한 축출되어 사망하게 되는데, 이때 톰발바예는 총을 너무 많이 맞아서 시신이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톰발바예가 살해당하고 펠릭스 말룸(Félix Malloum)에 의한 군사정권이 세워졌으나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고 대통령 암살 사건이 있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결국 1979년 인접 5개국이 중재에 나선 끝에, 남북은 휴전 협정을 체결해 북부가 주도하는 과도거국일치내각(GUNT)을 수립했다.

1979년 혼란의 끝에 군사정권 지도자였던 펠릭스 말룸(Félix Malloum)이 망명하고 선거가 치뤄졌다. 이에 따라 1979년 8월 FROLINAT의 구쿠니 우에데이(Goukouni Oueddei)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FROLINAT 내부에 대립이 발생해 인민군(FAP)과 북부군(FAN)으로 나뉘어 파벌 투쟁을 벌였다.

파일:external/www.leral.net/8269167-12935487.jpg

후세인 하브레

이런 막장 상황 속에 결국 1980년 3월 FROLINAT 안에서 우에데이와 후세인 하브레(Hissène Habré) 사이의 내분이 일어나 다시 내전이 재발했다. 1980년 우에데이를 지원하던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군대를 보내고 1981년 차드의 합병을 선언했다가 아프리카통일기구의 비난으로 철수했고 1982년 결국 내전에서 승리한 아브레가 다시 차드의 수도를 점거하고 대통령이 된다. 그렇게 1982년 FAN은 GUNT를 타도하고 6인 임시위원의 국가위원회가 이끄는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과거 GUNT를 구성했던 파벌들은 대부분 자체 군대를 유지하고 있어 정부 지배력은 일부 지방에 국한되었다. 이 와중에 리비아의 카다피가 또다시 FAP를 지원하고 미국이 중앙정부를 지원하면서 차드 내전은 또 다시 국제분쟁으로 발전했다.

게다가 1983년 리비아가 침공해 토요타 전쟁이 일어난다. 1984년에 이르면 우에데이 파도 분열되어 내전이 더 심해졌다. 그러나 리비아가 아무리 지원을 해봐야 미국의 지원을 이기기는 무리였고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는 1986년 차드 정부군은 미국의 지원으로 리비아군 주둔지와 우에데이 파 거점을 점령했다. 그렇게 1986년 리비아가 지원하던 우마르 파가 패망한 1987년 차드 정부군은 차드 전체를 통일한 것 같았고 1980년대 말까지 하부레(Habre)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그의 세력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하브레는 대통령에 있으면서 일단 확인되는 사람만 약 4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폭압적인 독재를 펴댔고 이에 차드 내의 여론도 점점 하브레에게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EP20121206014201034_P2.jpg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이렇게 하브레에 대한 비난이 높아져가자 1990년 하브레의 군사고문이었던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차드 현 대통령이 리비아의 지원으로 다시 애국구원운동당을 만들어 게릴라전을 통해 다시 수도를 점령하고 권력을 잡았다. 1993년 잠정의회인 ‘고등잠정평의회’를 발족시켜 1993년 최고국민회의를 개최하고 신헌법 채택 등 민주화 조치를 벌였다. 이후 1994년 민정이관을 결정하였고, 1996년 신헌법에 의해 이드리스 데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98년 5월 남부 반군 FARF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FARF를 합법 정당화하여 남부 지역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그렇게 1998년 남부 반군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 내전이 끝나는 듯 했으나...

1999년 다시 반군이 새롭게 일어났다(...). 1999년 11월 토고미가 이끄는 MDJT 반군이 새롭게 일어나 북부 티베치 지역을 공격하고 2000년 3월과 7월에 대규모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남부 지역에서도 소규모 반군 활동을 벌여 차드는 막장 상황에 빠졌다. 이후 부정선거를 통해 2001년 5월 이드리스 데비가 총선거에서 재선되어 2001년 9월 반군과 협상을 제의했으나 반군은 거절했다.

내전은 현재진행형인데 이드리스 데비의 장기집권에 대한 차드 국민들의 염증이 내전발발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차드 반군을 이끄는 지도자 중에는 마하마트 누리 전 국방장관 등 데비 대통령 휘하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들이 많다. 이들은 데비 대통령의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불만을 품고 반군에 합류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ivil_war_in_Chad.png

차드 내전이 일어나는 주요 교전지

지난 2003년 이후 수단에서 오마르 알 바시르다르푸르 학살을 자행하여 수단의 난민이 차드로 흘러들면서 국경에서의 분쟁이 빈발하자 수단 정부는 차드의 반군을 지원하고, 차드 정부는 이에 맞서 수단의 반군을 지원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에는 반군 공세가 강화되면서 은자메나가 장악되어 대통령이 대통령궁에 고립되기도 하였으며, 정부군과 반군이 대통령궁 주변에서 산발적으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현지 군과 반군 소식통들이 전했다. 수천여명의 반군들로 구성된 연합세력은 지난 1일부터 중화기를 동원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 시내 곳곳에서는 치열한 교전이 일어나 사망자와 부상자가 대거 발생했으며, 일부 약탈도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교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아직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고 있으나 유엔관료들은 거리에 수많은 시신들이 널려 있다고 전했으며, 사우디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저에 포탄 한 발이 떨어지면서 대사관 직원의 부인과 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반군은 쫓겨났지만 2009년에도 동부 지역에서 교전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들 반군은 상당수가 수단 공화국에서 지원하거나 수단에 근거지를 둔 이유로 차드가 수단 몇몇 지역의 반군 거점을 폭격하는 등의 행동을 해 수단과의 외교 마찰도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막장 상황에서 차드 반군과 정부군(!)이 소년병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차드는 휴전 협정을 맺고 내전이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이지만, 내전의 후유증은 더 없이 심각한 상태다. 현재 차드는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의 통제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국제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반군들의 활동과 차드의 만성적인 가난으로 인해 데비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많다. 그나마 2010년대 전반에는 전후복구 효과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이것도 2010년대 후반기 들어서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다시금 암물한 상황에 빠졌다.

2015년에는 보코 하람과 싸우기 위해서 나이지리아에 파병을 보냈다. 내전으로 쌓은 경험치 때문인지 보코 하람을 압도적인 사상비로 격파하는 미친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

2015년 즈음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내전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잠깐의 안정기라고 볼 수 있다. 나이지리아 파병으로 인한 타 국가들의 지원이 어느정도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미래가 평화로운 쪽으로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2019년 8월 19일에 차드 동부에서 유목민과 농민사이에서 유혈사태가 발생되자 차드 정부는 동부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 자연

차드라는 국명도 호수 이름에서 따왔을 만큼 이 나라와 나이지리아, 니제르, 카메룬의 국경사이에 규모가 큰 차드 호가 있다. 그러나 급격한 사막화로 현재는 원래 유량의 95% 이상을 잃고 급격히 소멸되는 과정에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차드 호를 참고하길 바란다.

4. 사회와 경제 상황

석유 자원 및 우라늄을 비롯한 광물 자원이 많기에 미국이나 유럽 강대국들과 이웃 리비아내전을 배후 지원하면서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왔다.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수익을 극소수와 강대국들이 가져먹기에 가난에 시달리며 사막화로 그나마 농업생활도 어려움에 빠지고 있는데다가 2008년 수단 공화국과 무력 충돌로 국교 단교를 했으며, 나아가 남수단난민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더더욱 가난에 시달리면서 몇 해전 세계적인 논란이 된 개밥 지원 문제로 국제 뉴스로 언급될 정도로 식량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데 차드가 얼마나 가난한가 하면 차드 인구의 80%가 극빈층일 정도다.

뉴질랜드의 개사료 업체가 "개밥이라도 그냥 줄테니까 먹을래?"라면서 지원한다고 밝혔다가 세계적으로 아주 사람을 개로 본다면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고 그 업체 홈페이지는 비난 및 해킹으로 엉망이 되었으며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그 업체 정문 앞에서 계속 시위를 벌이며 비난했기에 결국 없던 일이 됐던 사건이 있는데, 정작 차드 여론은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그거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이런 분위기였다고... 개사료는커녕 지원도 안하는 사람들이 말은 잘하는 듯 하다

오죽하면 차드를 방문한 기자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마을 아이 대부분이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려 소화기와 피부 등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라는 대답까지 돌아왔으며 아이 엄마들도 잘 먹지 못해 젖이 다 마른 상태일 정도로 영양실조가 심각하다. 심지어 보건소도 주민들과는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가기도 힘든데다가 설령 가더라도 의사가 영양실조로 아픈 아이는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해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래서 2015년 10월 상황을 기준으로 차드에서 어린이 10명 중 1명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고 있다고 확인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성인들도 테러나 내전 뿐이 아니라 AIDS에 걸려 죽는다고 한다.

차드의 인프라는 매우 열악한 상태로 수도 은자메나를 제외하면 도로·전기·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대다수 차드 국민의 삶은 아직도 근대 이전의 생활 방식에 머물러 있으며 약 3만Km 정도인 도로 중에 포장도로 길이가 600Km밖에 안 된다.[4] 이는 국토가 훨씬 작은 적도 기니보다 포장도로 길이가 짧은 것이며 그나마 도로가 있는 차드의 수도인 은자메나에서도 포장도로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은 상태라 모래 먼지와 독한 매연으로 뒤덮여 있어서 그곳만 지나다니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눈과 코가 따끔거릴 정도. 심지어 사막 기후다 보니 차드에서 한낮에 10분 정도만 햇볓을 쬐면 웬만한 사람들은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며 햇볓을 피해도 그냥 온도가 무지하게 더워서 밖에 서 있으면 약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마에 땀이 흐르며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차드의 거리에는 뜨거운 차 한 잔을 따라주고 푼돈을 받는 소년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게다가 수도인 은자메나는 물가도 비싸다. 2013 론리 플래닛 아프리카에서는 치안 불안의 이유로 소개 글이 "Chad has always been some place where travellers wave goodbye to their comfort zone and say hello to adventure."이다. 뒤에 나오는 부연 설명에 의하면 도로는 대부분 포장이 안 되어 있는데 여행 경비는 무지하게 비싸다고 한다. #

차드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다른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막장인 이유와 같은 오랜 내전 때문이다. 현재 차드에는 보건 및 위생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며 그나마 몇 개 안되는 시설은 그동안 정권을 잡았던 남부지방에 집중되는 형편이다. 또한 내전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말라리아, 결핵, 파상풍은 물론 온갖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내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곳곳에서 출몰하는 무장집단이 구호단체의 구호품을 탈취해 가는 등 안전 보장이 확보되지 않아, 차드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차드복음주의 연맹, 세계교회봉사회(ACT), 루터교세계연합 등 기독교 단체들 대다수가 구호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 차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프리카내륙선교(AIM)의 데비 웨젠버그 선교사는 “오랜 내전으로 황폐해진 차드는 현재 식량 공급을 전적으로 해외 구호에 의존할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물자가 부족한 상태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와 일본은 여행경보 3단계가 발령되었고, 이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서는 이미 여행금지령이 발령되었다.

5. 언어와 종교

인구 절반 이상이 무슬림이라서, 아랍어가 상당히 많이 쓰인다. 프랑스에게서 독립하여 프랑스어도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백 개가 넘는 부족 언어가 사용된다.

종교는 통계수치에 따라 차이가 다소 발생하긴 하나, 대체로 이슬람이 50~55% 정도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수니파이다. 종파와는 별개로 이슬람 수피즘을 신봉하는 무슬림들도 매우 많다. 제 2의 종교는 기독교로, 40%~45% 정도를 차지한다. 또 기독교 인구는 가톨릭개신교가 반반씩 양분하고 있다.

6. 외교 관계

프랑스에서 프랑스어가 많이 쓰이는 점을 들먹이며 여러가지 지원에 나서면서 친프랑스 국가로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이 와중에 벌어진 여러가지 일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일부 프랑스인들이 기독교 선교 및 차드 고아들을 기독교화한다는 명분으로 무작정 입양 시도를 했는데 아이들이 친척들이 있음에도 묻지도 않고, 표면적으로는 입양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자아이 81명과 여자아이 22명을 사실상 납치했다가, 차드 공항 및 국경에서 죄다 걸려 수감되었고 이들은 프랑스로 돌아가서도 수감되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곧 나왔다. 이로 인해 반프랑스 분위기가 거세져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차드 대통령에게 사과전화를 할 정도였다. 물론 자원 개발이라든지 영향력 확대라는 점 때문에 물러선 것이지만. 그 책임자인 프랑스인을 오래가지 않아 풀어주는 바람에 차드에서 반프랑스 감정이 심해졌다. 웃기는 건 아이들을 납치하던 주제에 그 프랑스인은 차드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는 것. 물론 차드 측은 입국금지시켰고 프랑스 측도 차드 출국을 금지했다. 차드 외교부장관이 '차드인이 프랑스 아이들을 103명이나 납치하였다면 너희들이 과연 이럴까?'라며 깠다고...

투아레그족과 갈등이 심각하다. 차드에 거주하는 흑인계 앙헬 족은 과거 투아레그족의 노예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두 부족의 갈등이 장난아니라서 차드 공화국이 세워지자, 투아레그족을 강제추방하는 보복을 했고 투아레그족도 차드 정부를 인정하지않고 내전을 벌였다. 이 와중에 리비아, 정확히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투아레그족을 지원하는 바람에 차드는 심각한 피해를 입어야 했으며 지금도 우라늄 및 여러 자원 개발 문제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웃 나라인 수단 공화국, 이집트와도 영토 분쟁으로 국경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갈등이 크다. 리비아와는 결국 토요타 전쟁이란 전쟁을 치뤘고, 압승을 거두었다.[5]

이스라엘과는 1972년에 외교관계가 단절되었지만, 2019년 47년만에 공식적으로 외교관계가 복원되었다. #

한국과는 수교를 맺었고, 북한과도 수교를 맺었다. 하지만 차드는 여행경보 3단계가 발령된 상태이다.

7. 국기

루마니아와 국기가 거의 같아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데칼코마니 양국은 국기의 색부터 시작해서 배열과 비까지 동일하다. 사실 차드가 독립한 1960년 당시에는 루마니아 국기에 문장이 있어서 국기 정중앙의 문장이 있냐없냐로 구분을 했는데, 1989년에 루마니아 공산정권이 붕괴된 이후 루마니아가 국기에서 문장을 삭제했기 때문에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굳이 구별하자면 차드 쪽의 파란색이 루마니아의 것보다 어둡다.

8. 여행경보

매우 위험. 소말리아나 남수단등에 비하자면 나을지언정 여기도 엄청 위험하다. 당장 여행금지국가로 격상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 위와 같이 차드는 그냥 전쟁터이고, 보코하람의 은신처다. 만약 아프리카라면 차드는 가지 말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여행경보 3단계,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여행금지가 내려졌다.

9. 기타

소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범아프리카 연맹' 소속국으로, 달 세계가 독립하자 달 세계의 독립을 가장 먼저 승인했다. 족장 몇 명에게 미리 뇌물을 먹여서 손을 써둔 결과라는 걸 보면 2070년대에도 막장인 건 여전한 듯.

드라마 빅뱅 이론쉘든 쿠퍼가 어린시절 어머니의 비자카드를 가지고 차드의 군지도자에게서 우라늄을 사려고 했다.

드라마 SIX에서 마이클 나스리 일당의 기지가 있는 곳으로 등장했다.

영화 감독 마하맛 살레 하룬의 고향이기에 그가 만든 영화 대부분은 이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10.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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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정확한 인구도 확실치 않다. 내전으로 인구가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다.[2] 2014-2015년 통계.[3] 당시 총독은 펠릭스 에부에였다.[4] 도로 포장 비율이 0.2%에 불과하다는 얘기다.[5] 소련제 기갑장비로 중무장한 리비아 기갑부대를 차드군이 테크니컬 병력으로 개발살낸 괴랄스런 전쟁. 당시 리비아군은 사망자가 9000~10000명에 1000여대에 달하는 전차, 장갑차가 파괴된 것에 비해 차드군은 1000여명 정도가 사망한 게 전부. 하지만 나중에 투아레그 족도 테크니컬을 사용해 반대로 차드군을 뭉개면서 차드군 2개 연대가 전멸당하는 대패를 당하였으니 돌고 도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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