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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국가
폴란드 공화국
Rzeczpospolita Polska
파일:폴란드 국기.png 파일:폴란드 국장.pn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Mazurek Dąbrowskiego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국화 팬지꽃
국조 흰꼬리수리
표어 Bóg, Honor, Ojczyzna
(신, 명예, 조국)
역사
폴란드 제2공화국 출범 1918년 11월 11일
폴란드 망명정부 출범 1939년 9월 20일
폴란드 인민공화국 출범 1945년 4월 8일
폴란드 제3공화국 출범 1989년 9월 13일
수도
바르샤바
면적
312,685㎢ / 세계 70위
인문 환경
인구 총인구 38,105,000명(2018년) / 세계 37위
인구밀도 약 123명/㎢(2017년)
출산율 1.32명(2015년)
공용 언어 폴란드어
공용 문자 로마자
종교 국교 없음
가톨릭 87.5%, 정교회 0.7% (2011년)
자국군 보유 여부 폴란드군
하위 행정 구역
제1단계 16
정치
정치 체제 의원내각제, 공화제, 단일국가
국가 원수(대통령) 안제이 두다
정부 수반(총리) 마테우시 모라비에스키
민주주의지수 167개국 중 53위(2017년)[1]
경제
경제 체제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5,494억7,800만(2018년 10월) / 세계 22위
1인당 GDP $14,468(2018년 10월) / 세계 53위
GDP(PPP) 전체 GDP $1조2,018억(2018년 10월) / 세계 21위
1인당 GDP $31,647(2018년 10월)
신용 등급 무디스 A2
S&P A-
Fitch A-
화폐 공식 화폐 즈워티(zł, złoty)
ISO 4217 PLN
ccTLD
.pl
국가 코드
616, PL, POL
국제 전화 코드
+48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1)(일광절약시간제 실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89년
북한: 1948년
국제연합 가입 1945년 10월 24일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landmap_cia.png
언어별 명칭
한국어 폴란드 공화국 / 폴란드 / 뽈스카[2]
영어 Republic of Poland / Poland
프랑스어 République de Pologne / Pologne
스페인어 Républica de Polonia / Polonia
포르투갈어 República da Polónia / Polónia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Польша / Польша
아랍어 بولندا / الجمهورية البولندية
중국어 波兰共和国 / 波兰
일본어 ポーランド共和国/ ポーランド
에스페란토 Respubliko Pollando / Pollando

1. 개요2. 국명3. 역사4. 경제5. 언어6. 지리7. 행정 구역
7.1. 독일어 명칭7.2. 변화한 국토
8. 폴란드군9. 폴란드 출신 인물들
9.1. 폴란드식 이름
10. 종교11. 문화12. 외교
12.1. 미국과의 관계12.2. 러시아와의 관계12.3. 영국과의 관계12.4. 주변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12.5. 헝가리와의 관계12.6. 체코와의 관계12.7. 한국과의 관계12.8. 일본과의 관계12.9. 폴란드 대통령 사망 사건
13. 여담14. 창작물에서의 폴란드15. 둘러보기

1. 개요

중부유럽에 위치한 국가. 수도는 바르샤바. 폴란드어 표기는 Polska(폴스카)다.

지정학적으로 서쪽에는 독일, 남쪽의 체코슬로바키아, 동쪽으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북쪽에는 발트 해러시아,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 그대로 유럽 한복판에 위치한 국가다. 국토의 총면적은 312,679km²로 유럽에서 (러시아, 터키를 제외하고) 8번째로 크고, 인구는 2014년 추정치로 약 3,800만 명으로 유럽연합에서 6번째로 많다(우크라이나가 4,500만).[3]

민족 구성이 극단적으로 단일화되어 있는바, 인구의 97% 이상이 폴란드인(Poles)로 분류된다. 원래는 상당한 다민족 국가였지만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들이 많이 살던 동부지역 영토를 소련에게 내어주는 한편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의 손에 대부분이 사망하고, 전후 독일인들이 독일로 쫓겨나다 보니 민족의 순수성이 매우 높아진 사례. 종교적으로도 인구의 90%가 가톨릭을 믿고 있다.

냉전 이후 동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축에 속한다. 폴란드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함께 비셰그라드 그룹(Visegrád Group)이라 하여 지역협력기구를 창설했는데, 이들 네 나라는 옛 공산권에서 체제전환을 경험한 국가들 중 가장 성공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성장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역시 비교적 성공한 사례들 중 발트 3국은 인구가 너무 적고, 러시아카자흐스탄은 천연자원 의존형 경제인 반면, 비셰그라드 그룹은 인구도 적지 않고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는데 성공한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다.

하지만 2015년 기준 서유럽의 부자 국가들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한국이나 일본보다 소득수준이 많이 낮다. 대략 한국의 2분의 1 정도 수준.[4] 덕분에 주변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유럽연합으로 묶인 탓에 국민들이 노동이주가 쉬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잔뜩 몰려가 외국인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주로 3D 육체노동에 종사한다고. 게다가 다른 옛 동구권 국가들처럼 출산율이 1.3명대에 불과해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2020년대가 되면 노동력 부족현상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적으로 동구권 붕괴 이후 빠르게 서방진영으로 노선을 바꿔 유럽연합과 NATO에 가입했으며, 오늘날에는 유럽 안보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이다. 지리적 위치에서부터 나토의 최전선이고, 인구와 경제력도 새롭게 서방에 편입된 국가들 중[5] 가장 양호한 수준이다.

군사력 또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소련 다음 가는 군사강국이었던 역사가 어디 가지 않아서 러시아를 견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러시아에 의한 안보 위협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모스크바와 가깝다). 냉전 종료 이후 나토 회원국들의 군축 바람으로 미국을 제외하면 군사적으로 다 맛이 간 지 오래라 폴란드는 유럽에서도 가장 친미적인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 또한 폴란드를 유럽의 중요한 안보 파트너로 간주하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2015년 법과 정의당 정권이 들어선 후로는[6] EU와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서 관계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2. 국명

폴란드, 혹은 폴스카라는 이름은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부족 중 하나인 폴라니에(Polanie)에서 기원하는데 6세기에 오늘날 폴란드 바르타 강 인근에 정착했던 부족이다. 헝가리 등 주변국 일부에서는 슬라브 신화의 민족 이름인 레흐(Lech)의 이름을 딴 이름으로 칭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헝가리에서 폴란드를 부르는 이름인 Lengyelország.

한자 음차로는 파란(波蘭)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소파전쟁 등의 용어에서 알 수 있다.

한편 폴란드의 정식 국명은 Rzeczpospolita Polska로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폴란드(폴스카) 공화국'인데, rzeczpospolita라는 말은 '공화국'이라는 뜻의 일반명사가 아니라 폴란드 민족이 세운 공화국을 나타내는 일종의 고유명사이다. 오늘날 폴란드어에서 공화국은 다른 유럽 언어들과 비슷하게 republika이다.

3. 역사

4. 경제

5. 언어

슬라브어파에 속하는 폴란드어를 쓰며, 동슬라브어파에 속하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와는 차이를 보인다.

문자도 동슬라브어파 언어와 달리 키릴 문자가 아닌 라틴 문자를 쓴다. 그리고 단어를 보면 자음이 굉장히 많아 보인다. 폴란드어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kwzystwztskwtk 이런 느낌. 사실 자음 많은 것은 슬라브어가 다들 그렇지만 폴란드어는 다른 슬라브어에서 č, š처럼 한 글자로 쓰는 발음을[7] cz, sz처럼 두 글자로 쓰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다가 슬라브어에 아주 흔한 v를 획수가 더 많은 w로 쓰기 때문에 자음이 더더욱 많아 보인다.

게다가 격변화가 복잡한 것도 유명하다. 라틴어 뺨칠 정도. 그런데 중세 시기에는 격변화가 더 많았다고 한다!

지역적으로는 서슬라브어파의 소수 언어인 실레지아어(실롱스크어), 카슈브어, 비미소리쉬어를 쓰는 사람이 있다. 동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루신어를 쓰는 사용자도 존재한다.

주요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순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러시아어는 공산주의 시절 이래 가장 널리 교육해서 지금도 중장년층 이상은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안다. 하지만 러시아어가 통용되는 벨라루스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러시아어를 쓰면 좀 싫어한다 카더라[8]. 반러감정이 심한 편이지만, 그래도 인접 강대국의 언어인지라 러시아어를 배우는 경우는 여전히 자주 있다. 최근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더 그럭저럭 하는 편이고 독일어 역시 잘 통하는 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프랑스어도 배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으로도 가입되어 있다.

6. 지리

폴란드는 북위 49도에서 55도에 걸쳐 있다. 북부와 서부는 해양성 기후, 동부와 남부는 대륙성 기후를 가진다지만, 국토가 평평해서 지역 간 기후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폴란드 대부분은 냉대습윤기후에 속하며 여름철 기온은 지역에 따라 18℃~30℃로 쾌적한 편이고, 겨울 기온은 3℃~-6℃도로 조금 춥다. 연평균 7℃~10℃ 정도 이다. 참고로 영하 20도를 밥먹듯이 찍는 우리나라 철원의 위도는 38도 정도 된다. 가장 더운 지역은 남서부의 돌니실롱스크 주이며(체코와 접한 지역) 가장 추운 지역은 남쪽 마워폴스카 주의 산악지대인 하이타트라 지역, 그리고 러시아 한랭전선의 영향을 받는 북동부의 포들라스키에 주(벨라루스와 접한 지역)이다. 1년 강수량은 약 500mm~600mm대로 폴란드 대부분 지역이 거의 비슷하다.(바르샤바 515mm, 크라쿠프 688mm, 그단스크 499mm, 포즈난 515mm)[9] 1년 내내 강수량이 고른 가운데 여름철 강수량이 조금 더 많지만 흐린 날은 겨울이 더 많다.

상술했듯 폴란드 국토의 90%는 평지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높이 200m를 넘어가는 언덕도 찾아보기 힘들며 구글지도에서 지형탭을 켜고 폴란드 지역을 보면 지형탭이 제대로 작동하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평탄한 지형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밋밋한 와중에도 재미있는 지형들이 있는데, 국토 전역에 숲과 습지 호수가 많이 흩어져 있고 북쪽의 발트해와 면한 지역에는 석호와 길고 가늘게 뻗은 사주(spit, 곶)가 발달해 있다. 동쪽 벨라루스와 면한 지역에는 유럽 최후의 원시림인 비아워비에자(Białowieża) 숲이 있고, 남쪽의 비옥한 곡창지대를 지나 슬로바키아 접경으로 가면 2000m가 넘는 산들이 있는 하이 타트라 산맥이 있다.

세계지도에서 프루시(프로이센)지역을 보면 마치 인공 방파제마냥 육지가 길고 가늘게 뻗어서 바다에 면한 호수를 가두고 있는 지역이 두 곳 있는데, 이 중 남쪽에 있는 것이 폴란드와 러시아가 공유하는 비스툴라 사주(spit, 곶), 비스툴라 석호이다.[10] 비스툴라 사주는 인공물이 아닌 자연 지형이며 길이는 55km나 되면서 폭은 500m~1km에 불과하다. 폴란드의 낮은 고도, 발트해의 얕은 수심이 어우러져 비스툴라 호 외에도 폴란드의 발트해 연안에는 크고 작은 석호와 사주들이 여럿 있다.

비아워비에자(Białowieża) 숲은 한때 유럽 평원으로 뻗어나간 원시림이 현재까지 남은 마지막 부분으로 폴란드와 벨라루스에 걸쳐 141,885ha의 면적을 자랑한다. 이곳은 유럽의 가장 육중한 육상동물인 유럽 들소의 거의 유일한 서식지이기도 한데, 유럽 들소는 거의 멸종했다가 폴란드 정부의 노력으로 복원된 뒤 현재 800마리 정도가 이 숲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거대한 전나무, 죽은 나무에 서식하는 12000종에 달하는 생물 등 수많은 동식물의 보금자리이며, 197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2016년부터 폴란드 정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이 숲의 일부를 벌채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EU는 폴란드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이타트라 산맥(타트리 비소키에, Tatry Wysokie)은 카르파티아 산맥의 서쪽 일부로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을 이루는 산맥이다. 산맥 상당부분이 슬로바키아에 속한 데다 산맥 자체의 규모도 크진 않아서, 평지 투성이인 폴란드 영토 내에서 이 산맥이 차지하는 면적은 매우 작다. 그러나 하이 타트라가 유럽 내에서 꽤 높은 산맥이다보니 이 산맥의 일부를 영유하는 폴란드는 고도 2000m 이상의 고봉들을 70개나 가지고 있다. 이 중 최고봉이자 폴란드의 최고봉은 리시(Rysy)산으로 높이가 2503m나 된다. 이 지역에 위치한 자코파네(Zakopane)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 하나이며, 하이 타트라의 고봉들과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 같은 아름다운 호수들을 여행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도시 자체도 매력적이라 크라쿠프를 찾는 사람들이 이곳까지 여행하는 경우도 있다.

폴란드의 큰 강은 폴란드의 젖줄인 비스와(비스툴라) 강, 그리고 일부분이 독일과의 국경이 되는 오드라(오데르) 강이 있다. 비스와 강은 남부 실롱스크의 베스키디 산맥에서 발원하여 크라쿠프, 바르샤바, 토룬 같은 주요 도시들을 지난 뒤 1022km를 흘러 그단스크 근처에서 발트해로 흘러들어간다.[11] 오데르 강은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발원하지만 거의 발원하자마자 폴란드로 흘러들어가 브로츠와프, 슈체친을 지난 뒤 835km를 흘러 역시 발트해로 들어간다. 오데르 강 전체 구간 중 약 30%가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이다. 하지만 슈체친은 오데르 강 서쪽에 있음에도 폴란드 영토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오데르-나이세 선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자원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실롱스크 지방은 유럽의 대표적인 탄광지대인데, 이 지역을 보유한 폴란드는 무연탄, 갈탄 매장량 세계 9위, 생산량 세계 9위를 자랑한다. 지금까지도 석탄은 폴란드 경제에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폴란드 발전소의 대부분은 이 저렴한 석탄으로 가동된다. 또 폴란드는 2010년 기준으로 레늄 생산량 세계 4위, 은 생산량 9위, 구리 생산량 10위를 자랑하며[12] 이 밖에도 황, 암염[13], 석회석 등 여러 광물들이 매장되어 있다. 2011년엔 폴란드에서 셰일가스가 있다는 것이 확인 되었고 당시엔 채굴 가능 매장량도 5조 입방미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추정치는 갈수록 줄어들어 현재는 약 380억 입방미터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장밋빛 예상과는 달리 갈수록 줄어드는 추정치, 더딘 탐사, 법적 논쟁 등으로 인해 외국계 회사들이 하나 둘 발을 빼고 떠났지만, 여전히 폴란드 정부의 개발 의지는 확고하다고 한다.

7. 행정 구역

크게 총 16개 주[14]로 구성되어 있다. 주 밑으로는 군[15], 군 밑으로는 코뮌[16]이 있고, 군 개념에는 시도 들어간다. 주의 중심지인 주도는 보통 1개 포비아트로 되어 있지만, 루부시나 쿠야비-포모제처럼 주 정부와 주 의회 소재 포비아트가 동시에 주도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17개 주로 구분되었는데, 1975년에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49개로 세분화한 것이 1998년까지 사용되다가 1999년에 현재의 16개 주로 다시 조정되었다.
주 이름 주도
돌니 실롱스크(Województwo dolnośląskie)브로츠와프(Wrocław)
마워폴스카(Województwo małopolskie)크라쿠프(Kraków)
루부시(Województwo lubuskie)고주프 비엘코폴스키(Gorzów Wielkopolski. 주 정부)/지엘로나 구라(Zielona Góra. 주 의회)
루블린(Województwo lubelskie)루블린(Lublin)
마조프셰(Województwo mazowieckie)바르샤바(Warszawa)
바르미아-마주리(Województwo warmińsko-mazurskie)올슈틴(Olsztyn)
비엘코폴스카(Województwo wielkopolskie)포즈난(Poznań)
서(西)포모제(Województwo zachodniopomorskie)슈체친(Szczecin)
시비엥톡시스키에(Województwo świętokrzyskie)키엘체(Kielce)
실롱스크(Województwo śląskie)카토비체(Katowice)
오폴레(Województwo opolskie)오폴레(Opole)
우치(Województwo łódzkie)우치(Łódź)
쿠야비-포모제(Województwo kujawsko-pomorskie)비드고슈치(Bydgoszcz. 주 정부)/토룬(Toruń. 주 의회)
포트카르파츠키에(Województwo podkarpackie)제슈프(Rzeszów)
포들라스키에(Województwo podlaskie)비아위스토크(Białystok)
포모제(Województwo pomorskie)그단스크(Gdańsk)

7.1. 독일어 명칭

2차대전독일 영토에서 편입된 지역이 많다 보니,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들의 경우 몇몇 지명을 지금도 독일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딱히 독일인이 아니더라도, 19~20세기 독일사/폴란드사를 공부할 경우에는 2가지 명칭을 모두 알아야 한다. 자세한 것은 프로이센/행정구역 참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데르-나이세 선에 의해 폴란드령이 된 곳은 굵은 글씨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폴란드령이 된 곳은 굵은 글씨에 밑줄을 더했다.
폴란드어 독일어
그디니아그딩엔(Gdingen)
돌니 실롱스크니더슐레지엔(Niederschlesien)[17]
루부시레부스(Lebus)[18]
마워폴스카클라인폴렌(Kleinpolen)[19]
마조프셰마조비엔(Masowien)
바르미아-마주리에름란트-마주렌(Ermland-Masuren)[20]
비엘코폴스카그로스폴렌(Großpolen)[21]
서(西)포모제[22]베스트포메른(Westpommern)/포메른(Pommern)[23]
시비엥톡시스키에하일리히크로이츠(Heiligkreuz)
실롱스크슐레지엔(Schlesien)/오버슐레지엔(Oberschlesien)[24]
오폴레오펠른(Oppeln)[25]
우치로치(Lodsch)
쿠야비-포모제쿠야비엔-포메른(Kujawien-Pommern)[26]
포트카르파츠키에카르파텐포어란트(Karpatenvorland)[27]
포들라스키에포들라히엔(Podlachien)
포모제포메른(Pommern)/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28]
고주프 비엘코폴스키란츠베르크 안 데어 바르테(Landsberg an der Warthe)[29]
그단스크단치히(Danzig)만악의 근원[30]
바르샤바바르샤우(Warschau)
브로츠와프브레슬라우(Breslau)[31]
비드고슈치브롬베르크(Bromberg)[32]
슈체친슈테틴(Stettin)[33]
올슈틴알렌슈타인(Allenstein)[34]
지엘로나 구라그륀베르크(Grünberg)[35]
카토비체카토비츠(Kattowitz)[36]
크라쿠프크라카우(Krakau)[37]
토룬토른(Thorn)[38]
트체프디르샤우(Dirschau)
포즈난포젠(Posen)[39]

7.2. 변화한 국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DistributionOfPolesInCentralEurope.png
현재 폴란드 국토의 상당 부분은 과거 프로이센 지역이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에 대한 완충구역을 더 두고 자신들의 영토는 더 넓히기 위한 소련에 의해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독일 동부 영토들이 폴란드에게 넘어간 대신, 독립 당시의 영토 중 커즌 선 동쪽은 또 소련에게 넘어갔다. 때문에 폴란드의 국토 크기는 그럭저럭 비슷하게 유지됐지만, 원래 국토 살짝 서쪽에 있던 수도 바르샤바는 원래보다 국토의 동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1945년 폴란드로부터 소련에 할양되었던 지방은 현재 많은 부분이 우크라이나벨라루스귀속되어 있다.

프로이센이었던 지역에 대해서는 프로이센 문서와 프로이센/행정구역 문서를, 이 지역의 복잡한 영토 문제에 대해선 2차대전 후 독일과 폴란드의 영토 문제 문서를 참조할 것.

이 나라는 자국의 역사교사들에게 특별 수당을 지급한다는 농반진반의 유머가 있을 정도로 국경선 변화가 심했다. 한 때 폴란드-리투아니아라는 이름으로 에스토니아 중부와 흑해 연안까지 지배하고, 비록 짧은 시기였지만 스웨덴동군연합을 이루던 시절이 있기도 했으니.

8. 폴란드군

9. 폴란드 출신 인물들

어두웠던 근대 역사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유명인을 배출한 나라이다. 16세기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있었고, 17세기에는 서구문명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황제 얀 3세 소비에스키[40]와 오늘날 별자리의 탄생주역들 중 하나인 천문학자 헤벨리우스[41]가 있었다. 19세기~20세기에 들어와서는 피아니스트 프레데리크 쇼팽, 쿠오 바디스 등을 지은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노벨문학상 수상자), 폴로늄라듐을 발견한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수상자),[42] 폴란드 자유화의 기수 레흐 바웬사(노벨평화상 수상자), 제264대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천재 물리학자 테오도어 칼루차, 첫 외계행성을 발견한 알렉산데르 볼시찬 같은 사람들이 있어 약소국으로 파묻힐 폴란드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외국에 의해 지배당하고 핍박당한 역사가 길어서 애국심이 굉장히 강하다. 다만 이런 애국심이 오히려 국수주의로 번져 조롱과 비판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령 위키백과의 경우 거의 모든 폴란드 관련 항목들이 폴란드인들의 POV 편집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으며, 폴란드인 편집진 여럿과 폴란드인 관리자 1명이 메신저를 통해 조직적인 편집 및 러시아인 편집진 추방 공작을 벌였던 것이 발각되면서 역으로 연루자 전원이 추방되는 등 온라인상의 흔한 비웃음거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런 국수주의는 폴란드볼의 성립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미국에 약 950만명의 폴란드계 미국인들이 거주하며 폴란드인 혹은 폴란드계 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해외 국가가 미국이다. 폴란드계 미국인 참조.

9.1. 폴란드식 이름

폴란드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것은 폴란드 특유의 작명 관습 때문이다. 폴란드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아기가 태어난 날이 축일인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그대로 따다 짓는다. 만약 해당일이 축일인 성인이 없다면, 축일 날짜가 가장 가까운 성인 이름을 따다 짓는다.[43] 즉, 생일이 같으면 이름도 같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녀의 대다수는 '마리아'인지라, 폴란드의 학교에서 "마리아!!"를 부르면 여자아이들의 1/3이 돌아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따서 작명을 하므로 이름이 조금만 독특하면 대다수가 유대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서도 대세를 따르거나, 기독교식 이름의 대다수는 유대계에 뿌리를 둔 이름이기도 해서 너무나 평범한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가톨릭에 크게 매여 있지 않아서 자유롭고 덜 동구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러시아인에게 ~스키(ski)식의 성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스키 성씨(Nazwisko)는 폴란드에 훨씬 많다. 사실 러시아의 "~스키" 들 역시도 대체로 폴란드계가 많다.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데다가,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니 당연하다. 루카스 포돌스키 역시 폴란드계 독일인으로 본래 폴란드 국가대표 자격이 있었으나 독일을 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폴란드 여자가 '~스키'라는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어미변화가 이루어져 ~스카로 성이 변화된다. 딸을 낳으면 딸내미도 성이 이렇게 변화된다고 한다.[44] 이유인즉 ~ski/~ska는 슬라브어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형용사 어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도 형용사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슬라브 이름의 특징으로 러시아어도 마찬가지이다. ~프는 ~바로(고르바초프-고르바초바), ~스키는 ~ 스카야(차이코프스키 → 차이코프스카야)로 변한다. 물론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Józef Wojtyła,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이름)처럼 형용사를 성으로 따온 경우가 아니라면 변화하지 않는다.

폴란드식 이름에는 오프스키(-owski), 츠키(-cki 혹은 -dzki), 치크(-czyk), 비치(-wicz)도 많이 쓰이는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투수 라이언 사도스키폴란드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폴란드계 성씨하면 코왈스키(폴란드어로는 코발스키)라고 답할 정도로 폴란드에는 코발스키 씨들이 많다. 폴란드에서 2번째로 많은 성씨가 코발스키 씨며, 가장 많은 성씨는 노바크(Nowak) 씨다. NHL의 전설적인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조상도 폴란드 출신.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 성씨 중에 가장 흔한 것이 대장장이를 뜻하는 스미스(Smith)인데, 코발스키에서 코발의 뜻도 대장장이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코발스키를 그대로 번역하면 "대장장이네 아들"이다.

언어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라틴알파벳과 비슷하면서도 자음에 해당하는 문자가 많이 들어가 외국인들은 제대로 읽기가 난해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옝드제이첵(Jędrzejczyk) 이 있다.

10. 종교

폴란드인들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다.

폴란드는 국교가 없는 세속 국가이지만, 2014년 기준 총 인구의 85.8%가 가톨릭을 믿고 있어[45] 이탈리아(83%)[46], 리투아니아(77.2%), 크로아티아(86.3%)[47], 포르투갈(81~88%), 아일랜드(78.3%) 등과 함께 가톨릭이 주류인 곳이다. 서기 966년에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가톨릭 신앙은 폴란드의 문화 정체성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리고 가톨릭 역대 교황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 출신이다.

폴란드는 단순히 가톨릭의 교세가 큰 나라인 것 뿐 아니라 종교성과 신앙심도 매우 깊은 국가이다. 일반적인 서유럽 국가들의 정기적 성당 출석율이 고작 10~20%인데 비해, 폴란드는 1달에 1번 이상 정기적으로 성당에 출석하고 고해성사까지 정기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인구의 70~80%에 달하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영성체하는 사람들의 수와 사제 수도 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느님을 믿거나 매우 독실하게 믿는다'고 답한 사람도 인구의 94%나 된다.[48]이쯤되면 무섭다 2010년대 들어서 성당 출석율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이는 국민들의 신앙심이 약해져서가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교적을 폴란드에 남겨둔 채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서유럽으로 일하러 갔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속화 경향이 짙은 영국 같은 경우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영국인 신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영국으로 오는 폴란드 출신 외국인들과 이민자들 덕택에 가톨릭 교세는 줄기차게 늘고 있다. 이 정도면 비서구 개발도상국 지역들에서 한창 성장 중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열렬한 종교성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이런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현재 유럽 교회 가운데서 가장 '비유럽적'이다. 유럽 전역을 휩쓰는 성소자(聖召者)[49] 부족 사태가 폴란드에는 없다. 사제수도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 몇 년 전, 크라쿠프 교구에서는 신학교가 꽉 찼으니 성소자들은 다른 교구수도회를 알아보거나 1-2년 뒤에 입학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폴란드에서 가톨릭이 강세인 이유는 아일랜드의 경우와 비슷한데, 오랜 외세 침략과 시련의 역사 속에서 가톨릭이 국민적인 단합의 상징과 사람들의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와 국가 정체성이 섞이는 현상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는 영국과의 투쟁 속에서 '성공회=침략자 영국인들의 종교, 가톨릭=아일랜드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인식하고 국가 정체성을 가톨릭에서 찾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는 '가톨릭=서유럽인들의 종교, 정교회=러시아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생각했다.

폴란드는 공중파 방송이 5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각 교구마다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한다. 이런 교회와 일반 매체들에서 교황의 동정을 날마다 보도한다. 교황청에서 조그만 메시지나 성명서를 발표하더라도, 폴란드 매체는 꼭 보도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교황을 변호하려고 한다. 이따금 이들은 교황청교황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 같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읽을 때, 고난받는 예언자의 모습에서 교황을 떠올리는 이들이다. 참고로 교황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폴란드어 위키에서는 한국어 위키피디아에도 없는 프란치스코(교황)/한국 방문이 따로 독립된 위키 문서로 만들어질 정도다.# 이게 문서로 만들어진 위키백과는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와 함께 폴란드어 위키백과뿐이다. 폴란드에서는 이것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동양에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걸 보고 좋아했다고.

한편, 폴란드 내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는 곳은 실롱스크 주 쳉스토호바(Częstochowa)의 야스나 고라(Jasna Góra) 성당이다. 이곳에는 폴란드 최고의 성물인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Obraz Matki Boskiej Częstochowskiej)'라는 성화가 모셔져 있는데, 이 성화를 직접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의 사람들이 야스나 고라 성당을 찾아 온다. 2011년 한 해 80개국에서 320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고, 그 중 143,983명은 폴란드에서 직접 발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성화의 제작 연도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1430년에 후스파에 의해 파손된 후 그 위에 손상된 부분을 다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녀 헬레나가 326년 예루살렘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콘스탄티노플과 벨즈(Belz)를 거쳐 14세기 경 오폴레 공작에 의해 쳉스토호바로 모셔졌다고 한다. 이 성화는 여러차례 기적을 일으켜 야스나 고라 성당과 폴란드를 지켜주었다고 믿어진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대홍수'로 신음할 때, 연방을 침공한 스웨덴군이 쳉스토호바까지 내려와 1655년 야스나 고라 성당을 포위하자 250명의 수도사들과 지원자들이 4000의 스웨덴군을 막아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것이 검은 성모상이 가져다 준 기적이라고 믿었으며 더 나아가 대홍수 시기 전쟁의 양상까지도 바꿔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국왕 얀 카지미에슈 2세는 이듬해 1656년 4월 1일 르부프(리비우)의 성당에서 검은 성모를 폴란드의 여왕이자 수호자로 "대관"했다. 현재 성화의 얼굴에는 두 개의 흉터가 있는데, 이 흉터에 관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온다. 1430년 후스파가 야스나 고라를 약탈할 때 이 성화도 가지고 가려 했다. 하지만 마차를 끄는 말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자 열받은 일당 중 하나가 이 성화를 땅에 매다 꽂고는 칼질을 두어 번 했는데, 세번째 칼질을 하려던 순간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었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이 흉터를 없애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이 칼자국이 다시 드러나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공산국가 시절에도 가톨릭의 힘은 막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불교를 장려한 라오스와 함께 공산권에서 몇 안되는 종교 장려 국가로 분류되었을 정도.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었을 당시에도 폴란드는 엄연히 공산주의 국가였다. 폴란드 공산정부는 국가 무신론을 제창했지만 교황이 폴란드에 오면 귀빈으로 모시는 등 가톨릭을 통해 인민들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폴란드의 가톨릭은 공산국가 시절 민주세력의 주요 일원으로써 탈공산화 및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폴란드에 사는 투르크 혈통의 타타르족들 역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슬람 대신에 가톨릭을 믿는다. 이 폴란드 타타르족들은 킵차크 칸국유럽 원정을 할 때 들어온 사람들인데 타 지역들과 달리 폴란드는 독립을 지켜서 그만 갇혀버렸고 이곳에서 워낙에 수가 적었던지라 금방 폴란드인에 동화되어 가톨릭을 믿고 폴란드어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 남부의 정교도 타타르인인 크라이센, 몰도바의 자치공화국 가가우지아의 가가우즈인, 사하 공화국의 사하인과 함께 몇 안되는 기독교를 믿는 투르크계 주민들이다.

폴란드 내에서 개신교에 대한 시선은 조금 복잡 미묘하다. 역사적으로 폴란드와 사이가 좋지 않은 독일, 특히 프로이센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처럼 부정적인 시각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소수 종교로서 최소한 이해는 해주자는 시각도 공존한다. 현지 개신교도들 입장에서 좀 억울하기도 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이들도 유대인을 보호해 주고 해외망명이나 피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저 밑에 있는 교회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칼뱅주의 교회는 약 2천여명 정도가 믿고 있다(2007년 조사 기준). 대부분이 옛 독일령 지역이 아닌 원래부터 폴란드였던 중앙부에 신자가 분포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50] 시대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옛 독일령 지역에 있던 루터교회들은 폴란드로 넘어간 뒤로는 사라지거나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폴란드인들이 무조건 개신교를 독일색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루터교인들도 나치 독일의 만행에 분노해서 레지스탕스를 이끌다 수용소에 끌려가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 중에는 목사도 있었다. 현재 폴란드의 루터교 신자 수는 약 5만 명 정도로 신자들의 대부분이 치에쉰과 실롱스크[51]에 몰려있으며 교단 명칭도 직설적으로 루터교회라 부르지 않고 '아우크스부르크 고백교회'라고 부른다.

가톨릭 신자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동유럽 쪽에 있다 보니 정교회 신자는 그나마 조금(50만 정도) 있으며, 독립교회가 설립되어 바르샤바 대주교가 폴란드 전체 대주교를 겸임한다. 10만을 간신히 넘는 개신교보다는 정교회 신자가 훨씬 많은 편.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폴란드에서 자국 개신교 신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너 독일빠지? 하는 것처럼 정교회 신자는 너 러시아빠지? 하는 시선도 아직 조금 있다.

불교는 극소수지만 여기도 신자들이 존재한다. 의외로 한국불교가 많이 퍼져 있는데, 숭산스님이 미국 다음으로 해외포교를 많이 한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수도 바르샤바에는 도암사(구 관음선종 동유럽 본사)가 위치하고 있으며, 폴란드 출신의 승려 우봉선사(본명 야콥 펄, 현재는 입적)도 배출되었다. 불교 전래 자체는 1910년대부터 전래되었지만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은 1991년부터이다. 가장 많이 퍼진 종파는 티베트 불교로 25개 도시에 법당이 있고 10개의 도시에 소모임이 있으며, 그 다음인 관음선종은 6개 도시에 법당이 있고 12개 도시에 모임이 있다.[52] 다른 가톨릭 주류 국가들에 불교가 거의 없는것을 생각하면 이례적.

11. 문화

12. 외교

12.1. 미국과의 관계

유럽에서 손꼽히는 친미 국가 중 하나다. 폴란드는 이라크 전쟁 당시 찬성은 물론이거니와 지상군을 파견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물론 이 부작용으로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대한 회의가 살짝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는 후술. 물론 유럽은 서방세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러시아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친미에 가깝지만, 폴란드는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각별히 중요시하고 있다. 미국 역시 폴란드를 유럽의 중요한 안보 파트너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바로 코앞에 있는 러시아 때문. 주지하다시피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 중 하나였는데(바르샤바 조약기구), 당시 소련과 적대하다가 몇 차례 피를 본 아픈 기억이 있다. 또한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서방 세계에서 추진한 동진 정책의 최우선 대상으로서 NATO에 편입, 안보를 보장받았으나 폴란드는 지정학적으로 여전히 對 러시아 전선의 최전방이다.[53]

이러한 역사적, 지정학적 이유로 폴란드가 러시아에 느끼는 안보 위협은 서북유럽 국가들에 비할 바가 아니고, 사실상 러시아를 상대로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미국 밖에 없다 보니 미국에 안보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확실히 한국과 비슷하다. 미국에 의한 안보 의존, 미국 입장에서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중요한 동맹국이다. 이런 이유로 어떻게든 최전선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자 우크라이나의 NATO, 유럽연합 가입을 가장 적극 지지한 것이 바로 폴란드였고,[54] 그리고 당연히 블라디미르 푸틴크림 반도합병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도 폴란드였다.

미국 주도의 MD 체제를 오래 전부터 희망해왔으나 러시아의 반발로 지지부진하다가 크림 사태를 계기로 다시 적극 추진 중이다. 폴란드의 정치 엘리트들은 이를 통해 자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물론 모든 엘리트들이 미국을 추종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대서양(유럽) 중시와 태평양(미국) 중시 중에 어느 쪽이 맞느냐라는 논쟁이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오랜 답없는 논쟁이기도 하다. 다만 서유럽 주요 강대국들이 대체로 상황이 좋지 않은지라 미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는 듯.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폴란드의 정치 엘리트들은 나라 자체가 지도상에서 지워지는 를 오래 겪으면서 강대국(러시아, 미국, 독일[55]) 사이에 낀 중견 국가로서 자신들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국가 안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이유 외에 다른 이유를 대자면 폴란드계 미국인이 많다는 것이다. 최초 미국 정착지인 제임스타운 시절부터 폴란드계 주민이 이주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세기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수많은 폴란드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미국에만 1,000만 명 가량의 폴란드계 미국인이 있다. 폴란드 인구가 4,000만명이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한 수치. 전국민의 4분의 1이 넘는 폴란드계 주민이 미국에 사니 폴란드인들로서는 미국이 좀 더 가깝게 여겨지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폴란드의 플래그 캐리어인 LOT 폴란드 항공은 유럽에서 보기 드물게 보잉을 좋아하는 항공사 중 하나다.

2018년에 독일과 러시아가 새로운 가스 수송관을 연결하려고 하자 폴란드측은 반대했고, 미군 영구 주둔을 추진하고 있다.#

12.2. 러시아와의 관계

위에서도 상술했듯이 폴란드와 러시아는 매우 안 좋은 관계이고 동시에 폴란드는 러시아를 제1의 가상적국으로도 규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러시아-폴란드 관계 참조.

12.3. 영국과의 관계

폴란드는 영국과 매우 우호적인 편이고 영국에도 폴란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영폴관계 참조.

12.4. 주변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러시아에 우호적인 벨라루스와는 사이가 좋지 않고, 한편 러시아에 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서부 한정으로) 역사적인 이유도 있고 동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도 폴란드에 대해서는 반폴란드 감정이 있는 편이다.

헝가리와는 제1의 우호국으로 거의 혈맹에 이를 만큼 가까운 사이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기술한다.

그러나 최근 폴란드의 극우 정당 집권과 낙태 전면금지법 등의 극우적 정책이 계속되며 독일, 프랑스유럽 연합 주요국들과는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독일과는 역사적인 이유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 물론 서독 시절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 꿇고 사과하긴 했지만 국민감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그런데도 경제/문화적 교류는 많이 한다. 유럽판 한일관계인셈. 2018년 10월 28일에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독일이 아직 제2차 세계대전 침공에 대해 피해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2.5. 헝가리와의 관계

파일:Hungarian-Poland_Brotherhood.jpg

두 나라는 그들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격언이 따로 있을 정도로 친하다.[56] 서로를 제1의 우호국으로 보며 혈맹보다 진한 수준으로 맺어져 있는데, 이러한 관계는 서로 같은 국왕을 모시며 동군연합으로 묶인 적도 있고 민족계통은 달라도 문화가 비슷하며 오랜 기간 가톨릭 신앙을 공유해온 점, 그리고 국가 위기상황에서 여러 차례 서로를 도와준 점에 기인한다. 이처럼 단단한 두 국가의 우호관계는 약 70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데, 14세기부터 두 국가는 왕실 혼인을 맺어왔으며 1370년 ~1382년까지 헝가리의 러요슈 1세를, 1440년부터 1444년까지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3세를[57] 같이 왕으로 모시며 동군연합으로 묶인 바 있다. 또 16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헝가리의 귀족이었던 슈테판 바토리를 왕으로 선출해 모신 적도 있다. 1848년 헝가리 혁명이 터졌을 때는 폴란드인 장군들이 크게 활약하여 헝가리인들의 영웅이 되기도 했고, 1919년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터졌을 때는 헝가리 정부에서 30000명의 기병대 파견을 폴란드에 제의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헝가리는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기세에 눌려 차마 폴란드 편을 들어 참전하지는 못했으나 나치 독일군이 헝가리 영토를 지나는 것을 거부하고 폴란드 정부와 수만의 폴란드군이 헝가리 영토로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바르샤바 봉기때는 일부 헝가리인들이 폴란드인을 편들어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 1956년 헝가리 봉기때엔 약 11,000명의 폴란드인들이 소련에 저항하는 헝가리인들을 위해 헌혈을 했으며 44톤의 혈액을 헝가리에 공수해줬다. 냉전이 끝나고 두 나라 모두 그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뒤로 하고 평화를 찾자, 2007년 3월 12일 헝가리 의회는 매년 3월 23일을 헝가리-폴란드 우호의 날로 지정할 것을 만장일치로 의결했고 불과 나흘 뒤 폴란드 의회도 3월 23일을 같은 날로 지정할 것을 의결하며 화답했다. 전통적으로 두 나라는 카르파티아 산맥을 경계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가 슬로바키아 지역과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사실상 영구히 상실하고 폴란드의 영토도 스탈린에 의해 서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지금은 국경을 접하지 않는다. 어쨌든 지금도 두 나라의 우호관계는 굳건하며 서로에 대한 국민감정도 매우 좋은듯 한데, 유튜브의 폴란드/헝가리 관련 영상에는 꼭 "Greetings from your best friend, Hungary/Poland!" 같은 댓글이 달려 있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터키 관계와도 비슷하기도 하다.

12.6. 체코와의 관계

전통적으로 폴란드와 체코(보헤미아)는 역사적인 라이벌이었다. 두 나라 모두 국력이 고만고만했고 예나 지금이나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싸워댔다. 그런 한편으로 상대 나라가 외세에 의해 심각한 위협에 시달리게 되면 가끔씩 서로 돕기도 했고 문화적으로도 같은 서슬라브 문화권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관계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870년 경 체코인의 나라 보헤미아가 먼저 세워진 이후 약 90년 뒤 폴란드인의 나라가 세워졌는데, 폴란드가 세워지자마자 두 나라는 전쟁을 벌였다. 이후로 12세기 중반까지 두 나라는 수시로 싸워대다[58] 1137년 양국의 국경을 획정하며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1241년 폴란드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보헤미아는 대규모 원병[59]을 파병하기도 했다. 하지만 14세기 초반에는 보헤미아의 룩셈부르크 왕가에서 폴란드 왕위를 요구하는 바람에 다시 두 나라는 깊은 대립을 하기도 했는데, 1335년 폴란드가 보헤미아에 실레시아를 넘기면서 다시 화해했다. 그 뒤, 보헤미아의 후스파 왕 이르지가 교황에게 파문당하고 헝가리에 침공당하자 폴란드 왕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을테니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체코와 폴란드 모두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 폴란드 남부와 체코 모두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과거 두 나라의 국경이던 지방에서 민족간 이동이 활발해졌다. 따라서 두 나라가 1918년 독립했을 때 양국 국경의 민족분포가 애매해졌고 두 나라는 독립하자마자 다시 국경분쟁을 벌였다. 분쟁은 1919년 양측에서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국지전으로 번졌고 1938년에는 폴란드가 뮌헨회담에 끼어들어 잃어버린 영토를 찾아가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나라를 빼앗긴 두 나라의 망명정부는 런던에서 서로 협력하며 관계를 개선해 나갔지만 1943년 폴란드 망명정부의 수장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때 체코인 조종사는 살아남으면서 이상한 루머가 번져 다시 관계가 나빠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1968년 '프라하의 봄' 사건 때엔 폴란드군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관계는 극악으로 치달았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두 나라의 공식적인 관계는 나빴지만 양국 반공주의자들은 1970년대부터 서로 협력하고 있었다. 1978년 두 나라의 반공운동 지도자였던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과 야첵 쿠론(Jacek Kuroń)은 두 나라의 국경에 위치한 스네슈카 산 정상에서 회동을 가지고 공산당 붕괴 이후의 미래를 도모하고 미래의 양국 간 협력과 관계개선을 다짐했다. 1989년 두 나라의 인민정부가 모두 붕괴되고 스네슈카 산의 회동에서 만난 인사들은 모두 두 나라의 중요 인사가 되었기 때문에(바츨라프 하벨은 체코의 대통령이 되었다.) 반공운동의 동지였던 그들은 두 나라의 관계를 쉽게 개선할 수 있었다.

냉전이 끝나고 더 이상 왕위 계승에 관한 문제도, 국경분쟁도 없어진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 1991년 지역공동체인 비셰그라드 그룹을 만들었다. 2009년 9월엔 폴란드 카친스키 대통령이 1938년 뮌헨 회담에 폴란드가 끼어든 것을 '죄(sin)'라고 하며 과거사를 사죄했고 2010년 4월 카친스키 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체코 정부는 이틀간 국가 애도기간을 가졌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이제 두 나라의 관계는 대단히 좋으며, 2013년 경제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폴란드를 방문한 체코 총리가 두 나라의 관계는 완벽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국 국민감정도 꽤나 좋은 듯 한데, 유튜브의 폴란드/체코 관련 영상의 댓글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참고기사 ##2#3

12.7. 한국과의 관계

1989년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수교하게 되면서 관계가 시작되었다. 한폴관계 항목 참조.

12.8. 일본과의 관계

폴란드는 일본과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독도문제와 관련해서는 폴란드측은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고 심지어는 폴란드어 위키백과에도 독도라고 표제어를 정해놓을 정도이다.

12.9. 폴란드 대통령 사망 사건


2010년 4월 10일, 러시아 스몰렌스크 인근에서 대통령 전용 투폴레프기가 추락하여, 레흐 카친스키(Lech Kaczyński) 폴란드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수행원 전원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재정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중앙은행 총재, 그리고 각 부처의 차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가 고위 공무원단의 동시 사망이라는 미증유의 사고로 인해 폴란드는 몇 개월간 행정부의 활동이 정지되는 최악의 사태를 겪었다.

이 사건은 러시아와 폴란드의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게다가 카친스키 대통령 일행은 당시 카틴 학살 추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고,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폴란드의 MD 체제 참여 문제로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음모론이 나왔다. 즉 러시아가 음모를 꾸며서 비행기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선례가 있었기에 의심을 살만했다. 1943년 폴란드 망명 정부 수반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Władysław Sikorski)가 가족들과 함께 탑승한 B-24 폭격기가 갑작스레 추락해 체코인 조종사 한 명을 제외하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는데,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소련 정부와 윈스턴 처칠이 배후로 의심받고 있다.

추가적으로 후임인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대통령의 경우, 관저의 십자가를 떼고 친 러시아 정책을 펼쳐 논란이 많았다(2010년 8월 기준). 폴란드는 슬라브계 민족이지만, 정교회를 믿는 다른 대부분의 동유럽권 국가들과 달리 국민의 95% 이상이 가톨릭가톨릭 국가다. 대한민국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게다가 폴란드가 러시아 점령 시절 종교 박해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해의 수준이 아니다.

물론 이 십자가 건만 가지고 친러파로 매도하는 건 옳지 못한 소리다. 이렇게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국가라 해도, 이전 세대에 비해 더 세속화된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 보수적인 가톨릭에 반발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그 여론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폴란드에서 위급상황을 제외한 낙태는 금지되며, 동성결혼에 관해서도 반대하는 등 현대 세대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보일 수 있다.

이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직접 사고 조사위원을 맡아 폴란드와 협조하는 한편, 애도일을 선포하여 카친스키 대통령의 사망을 애도했다.

참고로 레흐 카친스키는 쌍둥이 형제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쌍둥이 형 야로스와프 카친스키와 공산화 붕괴 후 형제가 함께 정치 활동을 하며 알려졌다. 레흐 카친스키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몇 달 지나 총리가 사임하자 쌍둥이 형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총리로 임명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쌍둥이가 총리와 대통령을 동시에 맡은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란성 쌍둥이라 외모까지 비슷하여 많은 혼동을 주기도 했다. 폴란드에서 엄청난 이슈가 될 정도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가 결국 총선에서 패하여 1년여 만에 물러났다. 그 후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쌍둥이 동생이 사망한 후 후임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나섰으나 당선되지 못했다.

다만 실제 사고 원인은 무리한 착륙 시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13. 여담

한국에서 잘 알려진 바는 아니나, 세계 최고층 구조물을 두고 있던 나라였다. 1973년에 완공된 바르샤바 라디오 송신철탑이 바로 그것. 하지만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저런 아쉬움만 가득했고 1991년 일련의 실수로 무너졌으며, 이후로 재건계획이 세워졌지만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백지화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름은 "바르샤바"라지만, 실제 위치는 바르샤바에서 멀리 떨어진 콘스탄티노우.

등산이 매우 희귀한 취미에 속한다. 국토의 80%가 인 한국과는 정반대로 폴란드는 국토의 90% 가량이 평야다. 고지대는 남부 끄트머리에 있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일부인 하이 타트라 지역이 전부이다.[60] 이 지역의 자코파네(Zakopane)는 폴란드 내에서 가장 붐비는 휴양지로 꼽히며, 주변에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하이 타트라가 유럽에선 상당히 높은 산맥인지라, 이 지역에 있는 폴란드 최고봉 리시(Rysy) 산은 높이가 2503m나 되며, 다른 2000m가 넘는 고봉들도 많다. 하지만 전체 국토에서 이 산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매우 작기 때문에 대부분의 폴란드인들은 살면서 산을 볼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등산인구가 매우 적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예지 쿠쿠츠카라는 희대의 먼치킨 산악인이 나오기도 했다.[61]

동유럽 국가가 대체로 그렇지만 (황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비교적 심한 나라다.[62] 러시아, 우크라이나보다는 낫다지만 독일, 프랑스에 비해서는 이런 게 넘사벽으로 존재.[63] 한국인 배낭여행객이 여관에 투숙을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직접 가본 한국인 여행자들 반응을 종합해서 보면 '아주 친절하고 매력적이었다' or '폴란드 개X레기'라는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곳이 바로 폴란드다. 그렇기는 해도 폴란드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매력적인 관광지이니, 동유럽의 미술이나 문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폴란드에 가보길 바란다. 다만 최근에는 폴란드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꽤 있어 호의적인 반응을 찾아볼 수 있다.

폴란드도 8월 15일이 공휴일이다.[64]

14. 창작물에서의 폴란드

※ 해당국 작품 제외.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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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영국과 유럽연합은 현재 탈퇴 협상을 마무리했으며, 합의안이 영국 의회와 유럽연합 의회에서 비준될 경우 그 즉시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한다. 비준과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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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함있는민주주의[2] 북한이 폴란드를 부르는 공식 명칭이다.[3] 폴란드는 이탈리아영국보다 넓으며, 유럽 인구 순위상 폴란드보다 작은 나라들의 인구는 루마니아를 제외하고 모두 폴란드 인구의 1/2인 1,900만명 이하다.[4] 이것도 엄청 성장한 것으로, 과거에는 중국보다 조금 낫고 멕시코와 비슷하던 시절이 있었다.[5]유고슬라비아는 인구는 되었지만 국가가 산산조각나면서 별 볼일 없는 국가들로 쪼개져 버렸고, 우크라이나도 인구는 많지만 경제력은 형편없다(물론 지하경제의 규모가 큰 것도 있다). 또 폴란드보다 잘 사는 체코나 발트 3국은 인구가 훨씬 적다.[6] 원래도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기는 했지만 성향이 확 깨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재집권 후로는 꽤나 골때리는 법을 통과시켜서 EU와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다만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있고 경제도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라 구 사민당 성향 지지층을 대거 흡수한 덕택에 지지율은 나름대로 높은 편이다.[7] 그런데 슬라브어파에 속하는 체코어는 이렇게라도 안 하면 폴란드어보다 더 심각하게 자음이 겹친다.[8]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폴란드는 유럽 지역 언어 및 소수언어 헌장에 서명했고 폴란드의 소수 언어에 러시아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9] http://www.warsaw.climatemps.com/precipitation.php[10] 북쪽에 있는 것은 러시아와 리투아니아가 공유하는 쿠로니아 사주, 쿠로니아 석호이며, 길이가 약 95km에 달한다.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11] 발트해 근처에서 지류인 마르트바 비스와 강이 형성되어 그단스크로 흘러 들어간다. 이 강이 내륙으로 살짝 들어간 그단스크에 항구 기능을 부여한다.[12] https://www.azomining.com/Article.aspx?ArticleID=126[13] 예로부터 폴란드는 유럽의 주요 소금 산지였는데, 1978년부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비엘리츠카(Wieliczka) 소금 광산이 유명했다. 이 광산은 700년 넘개 채굴된 뒤 1996년 채산성 감소를 이유로 폐광하고 지금은 폴란드의 주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이 광산 외에도 이노브로츠와프(Inowrocław) 등에 현재까지 채굴하는 소금 광산이 여럿 있으며 2012년 기준으로 폴란드는 425만톤의 소금을 생산해 전 세계 소금 생산의 1.5%를 차지했다.[14] 폴란드어로 보예부츠트보(Województwo).[15] 포비아트(Powiat)[16] 그미나(Gmina).[17] 독일 슐레지엔의 서부 및 중부. 이후 슐레지엔 행정구역이 분할되었을 때는 그대로 니더슐레지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18]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동부 혹은 노이마르크(Neumark).[19]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갈리치엔(Galizien) 서부.[20]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오스트프로이센(Ostpreußen) 남부.[21]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포젠(Posen) 남부.[22] 폴란드어로는 '포모제 자호드니에'.[23] 독일에서는 그냥 포메른이었던 곳이다. 독일에서 의미하는 서포메른은 현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 속한 포어포메른(Vorpommern). 다만 현재 폴란드는 독일에서의 포메른을 서포메른으로, 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이었던 곳을 포메른으로 부른다.[24] 독일에서는 슐레지엔 동부지방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에 우선적으로 뜯겼던 카토비츠(Kattowitz) 일대의 오버슐레지엔 남부기도 하다.[25] 독일의 도시명이기도 했고, 슐레지엔이 분할되었을 때 분할된 오버슐레지엔(Oberschlesien)전기 주도이기도 했다. 지역적으로는 슐레지엔 동부.[26] 독일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 남부와 포젠(Posen) 북부가 합쳐져 있다.[27]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이 지명을 따로 쓰지는 않았다. 지역으로는 갈리치엔(Galizien) 중부.[28] 독일이 이 지역을 부르던 명칭은 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이다. 독일 시절 포메른은 폴란드에서 포메른으로 부르는 중.[29] 독일 브란덴부르크 동부, 특히 노이마르크의 중심도시였다.[30] 베스트프로이센의 주도였다.[31] 독일 슐레지엔, 이후 니더슐레지엔의 주도였던 도시다.[32] 독일 포젠의 북부 중심도시였다.[33] 독일 폼메른의 주도이자 베를린의 외항이었던 도시다.[34] 독일 오스트프로이센의 남부 중심도시였다.[35] 독일 슐레지엔 서부의 주요도시였다.[36] 독일 슐레지엔 동남부의 국경도시이자 부유한 공업도시로 소문났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로 떨어져 나갔고,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재점령했을 때는 오버슐레지엔의 후기 주도를 맡기도 했다[37] 오스트리아-헝가리 갈리치엔의 주요도시였다.[38] 독일 베스트프로이센의 주요도시였다.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기도 하며, 그의 이름을 딴 코페르니쿠스 대학이 이곳에 있다.[39] 독일 포젠의 주도였던 도시고, 또한 포젠 주 지역을 의미하기도 한다.[40]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헤벨리우스가 방패자리를 만들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소비에스키의 방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한다.[41] 현재 쓰이고 있는 88개의 공식 별자리들 중 육분의자리, 방패자리, 작은사자자리, 사냥개자리, 도마뱀자리, 살쾡이자리, 여우자리가 그가 탄생시킨 별자리들이다.[42] 특히 폴로늄은 폴란드에서 이름을 따왔다.[43] 한국 가톨릭 신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세례명을 짓는 경우가 많다.[44] 잘 알려진 퀴리 부인도 결혼 전의 성은 스쿼도프스카였다. 이름은 마리아.[45] http://stat.gov.pl/files/gfx/portalinformacyjny/pl/defaultaktualnosci/5515/2/9/1/rocznik_statystyczny_rp_2014.pdf[46] 2011 기준, http://www.pewforum.org/2011/12/19/table-christian-population-as-percentages-of-total-population-by-country/[47] 2011 기준, https://www.dzs.hr/Eng/censuses/census2011/results/htm/E01_01_10/e01_01_10_RH.html[48] 이 때문에 폴란드공은 만화에서 가톨릭 광신도로 자주 묘사된다. 해당 문서 참고[49] 사제수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50] 그래서 리투아니아에도 의외로 개혁교회 예배당이 좀 있다.[51] 지역 루터교단이 따로 존재하며 예배도 실롱스크 방언으로 진행된다.[52] 참조링크.[53]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국경선은 러시아의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가 있으며, 러시아 본토 국경선으로는 벨라루스를 통해 한 다리 건너야 하지만 벨라루스는 대표적인 친러국가다.[54] 그러나 이는 돈바스 전쟁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55] 역사적으로 폴란드의 전통적인 위협 대상 중 하나였다. 독일이 1990년에 통일되고 이후 서방세계에 적극적으로 일원이 되면서 안심했을 뿐.[56] 폴란드에서는 Polak, Węgier, dwa bratanki, i do szabli, i do szklanki(Pole and Hungarian brothers be), 헝가리에서는 Lengyel, magyar – két jó barát(Pole and Hungarian, two good friends)라 한다.[57] 이 연합은 그 유명한 바르나 전투에서 브와디스와프 3세가 무모한 돌격 끝에 전사하면서 깨진다.[58] 특히 실레시아 지방을 놓고 크게 싸웠다.[59] 하지만 보헤미아 군이 당도하기 직전 폴란드군은 레그니차 전투에서 완패하고 말았다.[60] 하이 타트라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이기도 한데, 하이 타트라의 대부분은 슬로바키아에 속한다.[61] 예지 쿠쿠츠카는 하이 타트라에서 북쪽으로 약 130km떨어진 광산도시 카토비체에서 태어났다.[62] 특히, 중국인베트남인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좀 심한 편이다.[63] 하지만 그 독일, 프랑스도 동양인을 무시하는 풍토가 만연해있는 편이다.[64] 가톨릭 신자라면 알겠지만 이 날은 성모승천대축일이다. 폴란드와 같이 해당일에 휴일인 나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