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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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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경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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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8,483,957명 2014년, 세계34위
경제 규모(명목 GDP) 5,810억 달러 2018년, 세계23위
경제 규모(PPP) 1조,2710억 달러 2018년, 세계21위
1인당 명목 GDP 16,180 달러 2018년 기준; 세계55위
1인당 PPP 33,472 달러 2018년 기준; 세계46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50.6% 2017년
고용률 59.7% 2011년, OECD 27위#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A2 2013년, 6등급#

1. 개요2. 일당독재의 몰락과 민주체제 그리고 경제성장3. 기타4. 산업 구조5. 바깥 고리6. 관련 문서

1. 개요

Poland: The Capital Of Catching Up | Growth Of Polish Economy(2014. 6. 5)
제 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7월 22일 출범한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Polski Komitet Wyzwolenia Narodowego)의 후신인 폴란드 인민 공화국(Polska Rzeczpospolita Ludowa)은 폴란드 전쟁기간 동안 파괴된 바르샤바를 비롯하여 전쟁기간 동안 파괴된 수많은 폴란드의 도시와 산업시설들을 재건하는 데에 힘을 쓰는 한편[1], 전후 폴란드의 지도자이자 폴란드 통일노동자당(Polska Zjednoczona Partia Robotnicza)의 서기장으로 부상한 볼레스와프 비에루트(Bolesław Bierut)의 주도 하에 스탈린화 정책을 포함하여 강력한 공업화 정책과 농업집단화 정책[2], 경제의 중앙집권화 등 공산주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또한 소련에게 잃은 동부 영토에서 강제이주된 폴란드인들을 마찬가지로 독일로 강제이주된(...) 독일인들이 떠나간 구 독일 동부 지역에 정착시켰다. 하지만 초기에 마치 약빤 것처럼 포풍성장하던 폴란드의 경제는 얼마가지 않아 공산주의 경제 자체의 결함을 드러내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무리한 공업화정책으로 인해 정작 폴란드인들은 궁핍에 시달렸고 이는 반소 성향이 심하던 폴란드인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이후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요단강을 건너고 소련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주도 하에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지며 때마침 폴란드 내의 볼레스와프 비에루트도 1956년 3월 12일 모스크바 방문 도중 시의적절하게 요단강을 건너면서(...) 폴란드 내에 급속도로 진행되던 공산화도 정체를 맞게 된다. 이후 3달만인 1956년 6월에는 폴란드 서부의 핵심 공업도시인 포즈난(Poznań)에서 정부 당국에 반발하는 유혈 봉기가 발생했고[3][4] 결국 이후 폴란드 서기장에 취임한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Władysław Gomułka)[5]가 자유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폴란드인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 풀렸다.

70년대, 특히 78년 경에는 CIA연구를 포함해 적지 않은 사료에서는 폴란드의 명목 1인당 소득이 최소 4천 달러를 넘어가며 그에 따라 총 GDP나 GNP도 15위 안에 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CIA 등의 방법론과 관해서는 당시 이용할 수 있었던 정보의 제약도 심하고 데이터 산정시 공산국가의 소련의 공식 가격을 이용하거나[6] PPP방식을 사용하는 등 등 오류의 여지가 심각했던 바 이와 관해서는 중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이 수치는 공산권의 GDP 관련 수치를 뻥튀기한다 볼 수 있다.#, #[7]

소련 해체 이후 UN이나 IMF에서는 GDP를 산정하는 국제기준인 국민계정체계(SNA)에 따라 몇몇 공산권의 명목 GDP 등을 다시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70년대~80년대 초반의 폴란드 1인당 GDP는 1000달러~2000달러 수준으로 대한민국과 대체로 비슷했다는 결론이 나오며 총 GDP는 당시 터키와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다.[8][9][10]

1980년대엔 경제난이 극심하였다. 이에는 외화 운용 실수가 컸다. 70년대 초반 에드바르트 기에레크(Edward Gierek) 정부하에서 경제개방정책을 펼쳤는데 이 때 서구에서 거액을 빌려와서 공장을 짓는 것까지는 좋았다. 서구에서 폴란드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경제가 다시 급성장했다. 문제는 내적으로는 계획경제면서 외적으로는 서구식으로 운영했고, 거기에 오일쇼크로 수출이 위축된데다가 금리인상까지 겹치면서 거액의 외채를 떠안게 되고 결국 망했어요. 그래서 외채를 갚으려고 복지정책을 줄이다가 혼란을 자초했다. 대규모의 폭동과 반정부운동이 여러 번 일어나기도 하고[11] 마이너스 성장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치 체제 자체는 (적어도 1956년 로코솝스키가 쫓겨날 때부터 군부가 전면에 나서는 80년대까지는) 그다지 억압적이지 않았다. 동유럽 국가 치고는 정치를 제외하면 국민의 자유가 비교적 보장되었으며 인구 다수가 서구 유럽국가의 여행 경험이 있을 정도로 대외정보(서구사정)에 밝았다. 그래서 공산정권 붕괴 후에도 폴란드 공산당인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은 비록 인식은 독일과 피터지게 싸운 참전용사들 숙청해버리고 소련에 빌붙은 개쌍놈들이었다지만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의회주의를 도입하고 민주좌파연합(Sojusz Lewicy Demokratyczne)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 존속할 수 있었으며, 후에 집권도 가능했을 정도. 그러나 2004-2005년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해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졌고 2005년 총 대선에서 10%대의 득표율을 확보하는데 그치면서 수권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현재는 지지율 10% 미만의 정당으로 몰락하였다. 물론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선 친러반민족행위자들의 업보인 셈이지만...

2. 일당독재의 몰락과 민주체제 그리고 경제성장

(2000~2009) 폴란드의 명목 GDP와 국방비 흐름[12]
분류 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2005년2006년2007년2008년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추정치
전체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폴란드 전체 명목 GDP 171 190 198 216 252 303 341 425 529 431 469 515 490 517 552

일당독재체제가 붕괴되고 민주체제가 들어선 후에는 1989년 9월 신정부 출범과 함께 재무장관에 취임한 레셰크 발체로비츠(Leszek Balcerowicz)의 주도 하에 1990년부터 즉각적으로 '충격 요법'(Terapia szokowa)을 실시하여[13] 공산주의 정책을 완전히 버리고 기업들을 민영화하였으며, 자유 환율제 도입, 금융 시장 개방을 통해 해외무역과 투자유치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되었다. 그래서 1990년대 당시 폴란드의 경제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고 인구감소 문제와 외국자본들이 폴란드 기업들을 잇따라 잡아먹기도 했다. 그래서 구 공산당의 후신 정당인 민주좌파연합이 잠시나마 재집권하기도 했다. 물론 민주좌파연합도 정책을 완화하기만 했을뿐 정책기조는 지속적으로 이어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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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2013년)폴란드와 우크라이나PPP GDP 추이 비교

1996년에는 OECD에도 가입했으며, 2004년 EU에 가입할 당시 서유럽 경제에 완전히 잠식될지 모른다는 비관론이 팽배하였으나, 그 이후로 서유럽을 상대로 큰 수출량을 달성함과 동시에 EU 내에서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게 된다. 게다가 국토에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하기까지 하고 2010년대에는 체제전환 이후로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손꼽히던 실업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외자기업 의존도도 점차 낮아지면서 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공산주의국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한 성공적인 사례.

EU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중간시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 러시아는 폴란드의 가장 큰 경제 파트너이며, 독일과의 무역비중은 폴란드의 전체 수출입의 25%를 차지한다.

2003년 이후 3.6 ~ 6.8%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 경제 규모가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꽤나 잘 나가는 국가이다. GDP는 2010년 기준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과 비슷한 수준. 일인당 GDP는 한국보다 1만 4,409달러 가량 적은 수준(한국 약 2만 8,739달러, 폴란드 약 1만 4,330달러)으로 서유럽 선진국들에 비하면 낮지만 구 공산 국가들 중에선 높은 편이다. 사실 구 공산권은 냉전 종식 이후 대체로 고성장한 편이다. 오히려 러시아(어쩌면 우크라이나도)가 다소 예외적으로 성장이 지지부진한 거다.

하지만, 폴란드도 그닥 상황이 좋다고 보기 힘들다. 첫번재 자국 브랜드가 없다시피하다. 폴란드 경제는 전체적으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독일이나 프랑스의 하청으로 이뤄져 있으며 폴란드 경제는 이웃국가들의 경제에게 매우 종속되는 형태를 띄고 있다.[14]

두번째 하청국가다 보니까 서유럽과 임금격차가 심하다. 대표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대략 2900~3000유로에서 형성되고 있는 반면, 폴란드는 고작 1200유로 수준으로 선진국 치고는 비교적 인건비가 싸다는 지중해 유럽국가들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2200~2600유로에도 비해서도 한참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서유럽으로 고급인력의 유출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으며, 기술발전이 더뎌지고 있다. 기술발전이 없다 보니까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 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 하니까, 임금이 서유럽에 비해서 높지 못 하다 보니까 또 고급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든 폴란드의 경제 사정이 마냥 장미빛만은 아니다. 물론, 따른 EU국가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긴 하다.

3. 기타

2016년 기준으로 가처분소득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되었다.

근현대사가 좀 안습하고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대단하지 않은 나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19세기부터 동유럽에선 드물게 공업이 매우 발달한 곳이었고[15] 전간기 2공화국 시절에는 짧은 기간만에 산업화를 이룩하여 나름 강성한 산업국가의 면모를 보였다.[16] 냉전 시절에는 세계경제 20위, 최근엔 세계경제 30위권 안에는 꼽힐 정도로 의외의 경제대국이다. 2010년 기준 22위로 벨기에스웨덴 사이로, 인근의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경제규모를 합친 것보다 폴란드의 경제규모가 더 크다. 세계 경제에 따라 등락이 심해서 그렇지. 동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강력한 경제강국이다. 그래서 G20에 넣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도 3천8백만 명으로 한국의 80% 수준.1999년 3,860만으로 피크 찍고 감소추세에다가 2008년부터 다시 회복했다. 다만 출산율이 1.38명 정도로 여전히 낮은 편이고 국민소득도 낮아 이민 유치도 쉽지 않아서 2012년 다시 감소추세를 탔다.

2018년에 폴란드는 일손이 부족해지자 필리핀으로부터 이주노동자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4. 산업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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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폴란드의 경제 구조. 파란색이 제조업, 분홍색이 의약-화학관련 산업, 노랑색이 과일 등의 농업, 진한 갈색이 제철업, 붉은색이 건설 재료[17]

폴란드는 구공산권 국가(동독 제외)들 중 체코와 함께 공업이 발달한 나라이며, 풍부한 광물자원과 발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주로 외국의 투자 수혜를 집중적으로 받은 자동차 공업이 번성하고 있다. 유명한 기업으로는 정유 분야의 PKN 오를렌(Polski Koncern Naftowy Orlen) 등이 있다. 이외에도 제너럴 모터스, 폴크스바겐, 피아트 등 외국의 여러 자동차 회사가 폴란드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농업이 발달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한데, 호밀귀리 생산은 세계에서 각각 2위, 5위를 차지하기도 하며, 각종 과일 수확도 세계 수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나라가 2차 세계대전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전멸[18]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폴란드 국토의 42%가 경작지라고 하며, 특히 남동쪽이 비옥하다. 또한 폴란드 전 국토의 90%가 평야지대로, 폴란드의 많은 농업 생산은 이런 유리한 지리적 환경에서도 기인한다. 현 폴란드 농업의 문제점은 비교적 낮은 생산성인데, 이 낮은 생산성은 농지가 각 가옥마다 과도하게 잘게 쪼개져 있는 데서 기인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공산정권에서 집단화 정책을 펼치려 했지만 폴란드 농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딫혀 실패했는데, 이 구조가 현재까지 이어져온 것. 2백만 호가 넘는 농가가 농지를 갖고 있으며, 각 농가마다 평균 8헥타르 정도만 보유하고, 일부는 그마저도 이리저리 걸레조각처럼 쪼개져 있다.

최근에는 석탄 산업 중심 정책에 따른 대기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19]

5. 바깥 고리

Economy of Poland

6. 관련 문서



[1] 바르샤바의 경우 그 피해가 워낙 심각하여 1948년까지 우치가 폴란드의 임시 수도를 떠맡아야 했을 정도였다.[2] 단 이는 폴란드 농민들의 저항이 워낙 완강하여 결국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로 편입된 독일 영토에서 제한적인 농업집단화 정책을 실시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지 못했다.[3] 안 그래도 궁핍에 시달려 울분에 차 있는 포즈난 노동자들에게 폴란드 당국이 약속한 보너스 임금 지급을 거부했고 이게 노동자들의 신경을 정말 제대로 건드려줬다.[4] 한국에는 보통 이 봉기가 '반공 봉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는 꽤 거리가 있다. 봉기에 참여한 폴란드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임금 인상 및 보너스 지급과 노동자 평의회 설치였지 공산주의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애국가가 울려퍼진 것처럼, 폴란드 노동자들이 부른 것은 다른 노래도 아니고 인터내셔널가였다. 한마디로 폴란드 노동자들은 관료화된 공산당 엘리트를 상대로 계급투쟁을 벌인 것.[5] 원래 폴란드 민족주의자라는 이유로 권력에서 숙청당했다가 폴란드인들의 지지를 얻고 복귀했다.[6] CIA도 바보는 아니라 보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하진 않았다.[7] 소련의 경우 공식 환율은 시기나 학자들의 연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시장 환율의 1/10, 공식 가격은 시장 가격의 1/2~1/3 수준이었다.[8] IMF의 자료#, #[9] UN의 1인당 GDP 자료#[10] UN의 총 GDP 자료#[11] 특히 1956년의 포즈난 폭동과 1980년대에 이어진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은 경제는 물론 폴란드의 정치체제를 뒤바꾸기도 했다.[12] (2000~2014) 폴란드의 명목 GDP 흐름[13] 발체로비츠의 이름을 따서 '발체로비츠 계획'(Plan Balcerowicza)이라고도 한다. 발체로비츠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두 번째로 재무장관을 지낸 후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14] 심지어 폴란드 대기업 순위에 LG가 들어가 있다(...)[15] 다른 한곳은 보헤미아, 지금의 체코.[16] 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gdp 766억 달러로 세계 10위였다. 당시 11위였던 스페인이 511억이었으므로 무려 스페인의 1.5배. 생각외로 당시의 폴란드는 꽤나 힘좀 쓰는 지역강국이었다. 다만 국토 양옆에 세계2,3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소련과 독일이 나란히 있었기에(...)[17] 참고[18] 농지의 1/3, 소와 양의 2/3, 돼지의 5/6을 잃었다고 한다.[19]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10250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