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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 | 국장 | |
| Honor i Ojczyzna 명예와 조국 | ||
| 상징 | ||
| 국가 | 폴란드 국가 | |
| 1939년~1945년 | ||
| 성립 이전 | 해체 이후 | |
| 폴란드 제2공화국 | 폴란드 인민공화국 | |
| 역사 | ||
|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 1939년 9월 27일 폴란드 지하국 결성 1945년 7월 1일 폴란드 지하국 해산 | ||
| 수도 | 바르샤바(명목상) | |
| 언어 | 폴란드어 | |
| 민족 | 폴란드인 | |
| 정치체제 | 공화제 | |
| 국가원수 | 대통령 | |
| 정부수반 | 총리 | |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때 폴란드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자치정부로서 폴란드 망명정부의 본토 지부였다.2. 활동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한 달 만에 폴란드가 독소 양국의 협공으로 패망하자, 프랑스 파리에 자리잡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명령에 따라 폴란드군의 장교단이 나치 독일군이 점령한 직후의 폴란드 본토에서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그리고 반독 무장조직을 통합하여 국내군(Armia Krajowa)으로 재편성했다. 전성기 때 폴란드 국내군은 반독 항쟁을 벌이던 여러 저항군 중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고, 바르샤바 봉기도 국내군이 주축이었다. 또한 지하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망명정부를 대리해 폴란드 국내에서 자치정부의 역할을 수행했다.그러나 1944년 봄부터 소련군이 빌뉴스와 르부프 및 비아위스토크와 루블린에 진주하고, 1945년 폴란드 인민군이 바르샤바와 포즈난 및 우치와 크라쿠프에 진주하자, 폴란드 임시정부의 박해를 맞이한 지하국과 국내군은 나치 독일의 패망 직후에 해산을 결의했다. 그 때까지 살아 남은 국내군 대원들의 절반 이상은 소련군과 스메르시 및 GRU와 NKVD에 잡혀가 처형되거나 옥고를 치렀고, 잔존 국내군은 각종 파생 단체를 조직해 반소반공 투쟁을 계속하다가 소멸했다. 이후 폴란드 인민공화국 연간에 국내군은 반동분자로 몰려 잊혔다가 민주화 이후에 복권되었다.
3. 주요 조직원
- 스테판 로베츠키: 국내군 제2대 지휘관. 1943년에 독일군에게 처형됨.
- 타데우시 코모로프스키: 바르샤바 봉기를 지휘. 봉기 실패 후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가 전후 영국에서 여생을 보냈다.
- 레오폴트 오쿨리츠키: 코모로프스키가 체포되자 국내군 지휘관을 승계, 소련군과 인민군이 폴란드에 진주하자 국내군을 해산했으나 1946년에 옥사함.
- 아우구스트 에밀 피엘도르프: 국내군 부사령관. 전후 공산정권에게 처형됨.
- 비톨트 필레츠키
- 타데우시 페우친스키
4. 기타
- 국내군의 상징인 코트비차는 독일의 강점 초기에 바르샤바 근처인 바베르에서 독일군 부사관 2명이 죽은 보복으로 폴란드인 114명이 학살당한 바베르 학살을 추모하는 그래피티로, 국내군 단원인 안나 스몰렌스카[1]가 만들었고 Pomścimy Wawer(바베르 학살의 복수)에서 P와 W를 합친 닻 모양이다.
- 소련에 병합된 벨라루스 및 우크라이나 서부는 제2공화국 연간에 폴란드 영토였기 때문에, 국내군 중에서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던 부대는 현지 민족주의자 파르티잔[2]과 반목했다.
- 전후 공산화된 폴란드에 남아 반공·반소 투쟁을 벌인 국내군 장병들을 폴란드에선 저주받은 병사들이라고 부른다. 1963년에 사살된 유제프 프란착의 일대기가 폴란드에서 영화 '저주받은 병사'로 제작되었다.
- 2011년부터 폴란드에서는 매년 3월 1일을 저주받은 병사 추모일로 기리고 있다.
[1] 독일의 침공 당시 미대생이었고 1943년에 아우슈비츠에서 옥사했다.[2] 친독 및 반독 포함. 특히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반란군들중 극단주의적인 이들은 우크라이나인으로만 이루어진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두고 있었기에 폴란드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일삼았다. 일부 국내군 세력에서 타협 차 사절을 보내도 이들은 사절까지 죽이기 일수였기에 폴란드인 파르티잔들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보복학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르샤바 봉기 진압 때도 투입된 동방부대들을 폴란드 저항군 측에서 모두 싸잡아 우크라이나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악명이 자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