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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 Łódź Lodz, Lodsch독일어[1] | |||||
시기 | 휘장 | ||||
Ex navicula navis Z łódeczki łódź 배에서 배로 | |||||
우치의 위치 | |||||
행정 | |||||
국가 | 폴란드 | ||||
시간대 | (UTC+1/+2) | ||||
주 | 우치키에 | ||||
인문환경 | |||||
면적 | 293.25km² | ||||
인구 | 655,279명[2] | ||||
인구밀도 | 2,245명/km² | ||||
홈페이지 | |||||
정치 | |||||
시장 | 안나 즈다노프스카 | | |||
폴란드 하원 | 7석 [[법과 정의|]]3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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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 내에서 인구 규모 4위인 도시. 폴란드의 맨체스터라고 불렸을 정도로 과거 섬유 산업이 크게 발달한 엘베 강 동안 중부유럽에서 가장 일찍, 대규모로 산업혁명에 뛰어든 지방이었다.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655,279명이며 인접 지역까지 포함하면 110만여명이다. 폴란드인들은 크라쿠프가 폴란드의 중세를 상징하고, 바르샤바, 지금은 폴란드 손에서 벗어나 더욱 애틋한 르부프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시기 근세의 영광을 상징한다면 우치는 열강의 분할통치기란 가혹한 현실에서도 근면하게 산업화, 경제성장을 이루던 폴란드의 가슴아프면서도 역동적이었던 근대를 상징하는 도시라고 표현하고는 한다.원래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러시아 제국시기 섬유 공장들이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산업도시로서 섬유 산업이 크게 발달하여 바르샤바[3]의 뒤를 잇는 제2의 도시로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민주화되면서 산업도시로서의 역할은 축소되어 쇠퇴기를 걸었다. 유럽 연합 가입 이후 주력 산업을 섬유 제조업에서 영화 산업으로 바꾸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2019년 이후 우치의 최대 산업은 도시 GRDP의 무려 20%를 독차지하는 영화산업이 되었다. 폴란드 영화의 80%가 우치 지역에서 촬영되고, 우치 영화학교는 동유럽 최고의 영화 전문대학이 되었으며 [4], 한국의 영화의전당에 해당하는 폴란드 영화 박물관도 우치에 있다. 미국 영화나 영국 영화, 프랑스 영화 등 다른 나라의 영화들도 폴란드에서 촬영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우치에 와서 촬영한다. 그 정도로 동유럽권에서 손꼽히게 영화 기반이 잘 닦여 있다. 동유럽판 할리우드.
비제프 우치, ŁKS 우치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2. 이름
폴란드어 | Łódź(우치)[5] |
이디시어 | לאָדזש(로지)[6] |
독일어 | Lodz(로치)[7] |
폴란드어 철자가 'Łódź'인데, 폴란드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도무지 '우치'로 읽을 수가 없다(...).[8] 한국에서 이 도시가 언급된 영어나 독일어 책을 번역하면 십중팔구는 '로드즈', '로지' 등으로 옮긴다. 이 짧은 단어 하나를 읽으려면 폴란드어 읽는 법을 완전히 익혀야 하고,[9] 때문에 폴란드어 관련 밈에서 폴란드어의 악명 높은 발음을 대표하는 단어로 자주 등장한다. 일례
폴란드어로 우치(Łódź)는 배(船)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를 상징하는 문장에 배가 그려져 있다.
3. 인구 추이
우치 인구추이 [2000-2019년] | |
2000년 | 793,217명 |
2005년 | 767,628명 |
2010년 | 737,098명 |
2015년 | 700,982명 |
2019년 | 679,941명 |
과거에만 해도 인구 80만을 넘을 정도로 폴란드 부동의 2위 대도시였으나, 공산정권 붕괴 이후 섬유산업의 몰락과 이민 및 다른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로 인하여 현재는 인구 70만 선이 무너졌을 정도로 인구의 감소가 심각하다. 인구감소에 크라쿠프의 부상이 겹치며 2위 자리도 크라쿠프에 내준지 오래고, 2020년대에는 브로츠와프에 3위 자리조차 뺏기고 4위로 내려갔다.
4. 역사
우치에 대한 기록은 1332년 처음 역사책에 등장했으며 17세기까지 슐레지엔[10] 지역의 주요 무역도시로 기능했다. 이후 1793년 폴란드 분할에 따라 프로이센 왕국에 귀속되었으나 1815년 빈 회의의 결과로 다시 러시아 제국에 귀속되었다. 19세기 중반 섬유 산업이 이곳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우치는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이 다시 성립됨에 따라 우치는 신생 폴란드의 도시가 되고 여전히 폴란드의 주요 도시의 지위를 누렸다.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에 따른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우치는 나치 독일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나치당원 칼 리츠만의 이름을 붙인 리츠만슈타트로 불렸고, 이곳에 살던 많은 유대인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었다. 1945년 1월 18일 소련군이 독일 국방군을 몰아내고 이곳을 점령했고 도시 이름도 다시 우치로 돌아왔다. 영국이 지지한 폴란드 공화국의 수도인 바르샤바가 바르샤바 봉기로 인해 재기불능 수준의 피해를 입으면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우치는 소련이 지지한 폴란드 공화국의 임시수도였다. 소련의 개입으로 공산당이 집권해 사회주의 체제로 헌법을 개정한 1952년 이후에도 우치는 섬유 공업 도시로 기능하였으나 계획 경제의 한계 속에서 그 명성은 계속 쇠락했다.[11] 동유럽 혁명과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가 사라진 이후로는 현지 시정부는 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도시 부흥에 힘쓰고 있다.
5. 대중매체
- 폴란드 영화계의 거장 안제이 바이다가 1975년에 제작한 '약속의 땅(Ziemia obiecana)'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19세기 러시아령 폴란드 시절의 고증과 급부상하는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급간의 갈등, 탐욕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꿰뚫는 치밀한 묘사가 일품이다. 참고로 감독이 나온 영화학교도 이 도시에 있다.
- 영화감독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고향이라, 폴란드 초기 3부작 (신원 미상, 부전승(영화), 장벽)은 여기서 찍었다.
[1] 나치 독일 지배 시기엔 리츠만슈타트(Litzmannstadt)로 불렸었다.[2] 2023년 6월 30일 기준.[3] 바르샤바와의 거리는 전철을 타면 1시간 30분 정도 된다. 서울-천안/세종 정도 거리.[4] 한국인 유학생도 몇 있다. 송일곤이 여기 출신.[5] [wut͡ɕ\][6] [lɔd͡ʒ\][7] [lɔt͡ʃ\]. 폴란드어에 가깝게 로츠가 아닌 로치로 조음하며 Lodsch(로치)로 표기하기도 한다. 나치 독일 점령기에는 Litzmannstadt(리츠만슈타트)로 불렸다.[8] 이 철자의 음가에 대해 설명하자면, 폴란드어에서 Ł은 영어 w와 같은 발음을 내는 문자이다. 그리고 ó는 u와 같은 발음을 나타내고(어원에 따라 구분), dź는 원래 유성음 /d͡ʑ/에 대응하는 철자이나 폴란드어에서 어말이나 무성 자음 앞에 오는 유성 자음은 러시아어와 동일하게 무성음화되기 때문에 /t͡ɕ/ 발음이 나게 된다. 때문에 이 표기가 폴란드어 철자법상 '우치'에 가깝게 발음되는 것이다.[9] 물론 다소 생소한 형태의 철자가 일부 존재할 뿐, 폴란드어 철자법이 매우 난해한 것은 아니다. Łodź가 '우치'에 가깝게 발음되는 이유를 폴란드어 철자법의 일반적인 규칙 내에서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폴란드어 철자법은 상당히 규칙적인 편이다. 2개의 동음이형자(u-ó 및 ż-rz)를 제외하면 모든 철자와 음소가 1:1로 대응하고 여기에 추가적인 음운변화로 슬라브어에 흔한 어말 무성음화가 따라붙는 정도라 어느 정도 음성학적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철자와 음소 간의 대응표를 살펴본다면 전체적인 폴란드어 철자법을 파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10] 폴란드어로는 실롱스크(Śląsk)[11] 산업도시로 기능했기 때문에 브로츠와프나 크라쿠프처럼 관광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쇠락의 한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