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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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of the United Kingdom
기본정보 (2015년) 출처(EFP: 유럽 영화 프로모션) | |
인구 | 6,480만 명 |
순수 자국생산 장편영화 | 124편 |
관객 수 | 1억 7,190만 명 |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 2.65회 |
자국영화 점유율 | 44.5% |
스크린 수 | 4,046개 |
1. 개요
영국 배우들이 세계 영화 지배한 이유 |
2. 역사
2.1. 시작 및 여명기
에디슨이 나왔던 미국이 같은 영어권 혈맹국이며, 영화를 발명한 프랑스의 옆나라다 보니, 영국 역시 거의 동시기에 영화가 들어왔다. 영상물로만 따지자면 프랑스인인 루이스 르 프린스가 영국 처가집에 찍은 영상이 세계 최초의 영상으로 남아있을 정도. 다만 영국인이 만든 첫 영국 영화로는 로버트 W. 폴의 Incident at Clovelly Cottage를 꼽는다.[1]일상을 다루는 영상물을 거쳐, 극영화가 등장했는데 당연하게도 영국 극문화 전통이 영화로 많이 수입되었다.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를 각색한 영화들이 많았다고. [2]
이미 거대 영화 시장을 형성한 고몽 같은 프랑스 회사들이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윌 베이커 주도하에 영국 영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일링 스튜디오가 설립된다. 일링 스튜디오는 게인즈버러 스튜디오나 고몽에서 만든 이즐링턴 스튜디오와 함께 1930년대 이어질 영국 영화의 황금기를 열어젖혔다.
고전기 영국 스튜디오 특징으로는 미국과 달리 스튜디오별로 장르 전담이 명확했다는 점을 들수 있다. 게인즈버러 스튜디오는 멜로 드라마로, 일링 스튜디오는 범죄 코미디 전담, 이런 식으로 명확했다. 그 유명한 해머 영화도 공포 영화 전담으로 유명해진 제작사다.
한편 이 시기부터 찰리 채플린이라던가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유명 영국 영화인들이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3]
2.2. 1930년대~1940년대: 짧은 전성기와 위기
영국 영화의 전성기는 보통 1930년 초중반으로 꼽힌다. 우선 히치콕이 너무 많이 안 사나이, 39계단, 젊음과 순수 같은 서스펜스 영화로 영국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한편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영화인들이 대거 해외로 망명을 했는데, 이때 영국에 정착한 해외 영화인들이 영화 영화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독일, 동유럽 내에 있는 유대인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고 그 중 영화인들도 많았다.
헝가리 출신 알렉산더 코르다는 감독과 유명 영화 감독들의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며, 역시 헝가리 유대인인 에머릭 프레스버거는 영국인 마이클 파웰과 함께 아처스 스튜디오를 결성해 기존 스튜디오들과 차별화되는 화려한 세트와 로맨티시즘으로 가득찬 영화를 만들었다. 스타들도 대거 등장한 시기이도 했다[4]
한편 존 그리어슨 같은 초기 다큐멘터리 영화 흐름이 발전해 영국식 사실주의 전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한 영국 영화계는 과거와 달리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 못하고, 미국 시장이 강해지면서 영국 영화계는 위기를 맞이했다. 1937년엔 그 많던 스튜디오가 1/32로 줄었을 정도다. 남아있던 스튜디오들이 버티는 와중에 히치콕은 할리우드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과 계약해 영국 영화계를 떠났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이 참전하자, 영국 스튜디오 역시 전시 선전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이 점을 활용해 걸작을 찍은 감독도 있다. 훗날 영국식 대하 영화로 유명해지는 데이비드 린은 노엘 카워드와 협업으로 전시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계에 데뷔했다.
2.3. 1950년대 ~ 1960년대: 전후 부흥기와 영국식 사실주의의 등장
전후가 되면서 영국 영화계도 사정이 나아졌다. 일단 꾸준히 활동해왔던 감독들이 전후 걸작들을 내놓았다. 1950년대 해머 영화사, 1960년대 키친 싱크-프리 시네마로 대표되는 영화 조류로 유명해졌다.[5]2.4. 1970 - 1980년대: 암흑기
이 시대는 영국 영화 최악의 암흑기인데, 가장 큰 이유로는 미국 자본이 대거 철수를 해버려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 결과 195-60년대에 데뷔한 영국 감독이나 배우들 모두 영국을 떠나 할리우드로 활동무대를 옮기거나 저예산으로 허덕여야 했다.그나마 위커맨이라던가 니콜라스 뢰그, 켄 러셀, 스탠리 큐브릭,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조셉 로지, 마이클 호지스, 몬티 파이선 시리즈가 두각을 보였지만 영국 영화계를 침체기로부터 부활시키지 못했다.
때문에 1940년대, 1950년대생 영국 감독이나 배우들 커리어를 보면, 1970년대부터 갑자기 공백기가 생기거나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되는 다국적 B급 호러 영화, TV 드라마/영화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존 허트나 마이크 리, 켄 로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6] 오죽했으면 1970년대 여성 영화 감독이 단독으로 만든 장편 영화가 제인 아든의 The Other Side of Underneath 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
영화사가들도 1970년대 영국 영화를 언급할 때는 웬만한 미국 TV 드라마보다도 돈이 없던 시절이라고 언급한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은 이탈리아로 넘어가 싸구려 호러 영화를 찍어야 할 정도였다. 피터 스트릭랜드의 버베리언 스튜디오는 당시 영국 영화인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1980년에 이르면 영국 영화 제작 편수는 31편으로 줄어들고 다음 해인 1981년엔 24편으로 줄어들었다.
2.5. 1990년대 ~ 현재: 회복 및 재도약
그러나 1980년대를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갱스터 영화인 롱 굿 프라이데이가 흥행하며 그나마 영국 배우들의 저력을 보여주었다.그리고 영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불의 전차나 리처드 아텐보로의 간디 같은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흥행해 간만에 산업에 활기가 돌아왔다. 그리고 영국 문학이나 영국 역사 관련 작품, 다큐멘터리 위주로 강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2년 창립된 방송국 채널 4가 신진 감독들에게 지원을 하기 시작하면서 데릭 저먼, 피터 그리너웨이, 켄 로치, 마이크 리, 스티븐 프리어스, 테렌스 데이비스 같은 감독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1980년대 로맨틱 코미디로 인기를 얻은 휴 그랜트, 콜린 퍼스나 엠마 톰슨 등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앞서 언급된 감독과 재작진들의 활약 덕에 영국 영화계는 이전의 침체기를 극복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리처드 커티스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 로맨틱 코미디를 시작으로 영국 영화계가 부흥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부터 영국 영화 시장 역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으며 다시 예전처럼 미국 영화와 같이 세계 영화 시장에서 강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판타지 소설 관련 영화, 맘마 미아!, 맘마 미아! 2와 같은 뮤지컬 영화, 킹스맨, 007 시리즈와 같은 블록버스터,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사회 비판적 영화, 킹스 스피치, 이미테이션 게임, 덩케르크, 우먼 인 골드, 철의 여인과 같은 역사 관련 영화 등을 다방면으로 갖추었다.
현재 영국 영화는 미국 영화에 이어 전세계 박스 오피스를 주무르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 중에서도 최고 흥행작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는 미국 영화를 제외하면 전세계 박스오피스 수익 1위 영화이다.
3. 영화 시장
2015년 기준으로 일본 영화 시장을 제치고 세계 3위의 영화 시장으로 복귀했었지만 현재는 다시 밀려 5위이다. 박스오피스 마켓 기준 20억 달러로 중국 영화 시장에 밀려 3위였던 일본 영화 시장의 19억 달러를 제친 것이다.영국의 영화관 스크린 수 역시 일본 영화 시장의 스크린 수보다 많은 788개 지점 4,194개 스크린을 나타내고 있다. 2016년에는 미국 영화 / 중국 영화 / 일본 영화 / 인도 영화 시장에 이어서 세계 5위이다.#
미국영화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영국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중국 영화, 일본 영화 시장에 이어서 인도 영화, 한국 영화, 프랑스 영화 시장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위의 그래픽에서는 북미 영화 시장(114억 달러)이 따로 표시되어있지 않은데, MPAA가 미국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만 표로 따로 나온 것이다.#
영화관 시장에서 영국은 상위 3개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체인 오데온시네마, 씨네월드, 뷰 시네마스 3사의 스크린 점유율이 70%를 넘는다. 한국의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개 체인이 전체 스크린 수의 93%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덜하지만, 그래도 영국 역시 굉장한 과점 시장이다.
그리고 4위에서 6위까지를 더 합치면 80%까지 달성한다. 영국 영화 시장의 절대 1위 영화관 사업체인 오데온시네마는 중국 다롄완다그룹의 완다시네마가 자회사인 AMC 시어터스를 통해 인수하여 2017년 12월 현재 중국계 기업이다.
영화 시장은 1960년대에 연 20~30%씩 급성장하여 일본 영화판을 제치고 세계 2위였다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굉장한 침체기였다. 일단 영국은 영어권이고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물론 영국 경제가 나아지면서 영국 드라마 인력과 영화 인력이 교류하면서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1990년대까지는 영화관 투자도 느려서 일본 영화 시장한테는 물론 한 때 프랑스 영화 시장보다도 작아져버린 바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이 크게 대박을 내고, 엠마 톰슨, 휴 그랜트, 콜린 퍼스 등 최고의 배우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영국 영화 시장은 다시 부흥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로 인해 영국은 미국과 같이 영어권과 전 세계의 영화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2015년 연말에 일본마저 제치고 세계 3위로 복귀했다. 지금은 시장 규모는 다시 일본 영화 시장보다 작아졌지만 영국은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 세계 영화 통계에서 영국 영화시장은 아일랜드와 몰타의 영화 시장을 포괄한 영국 - 아일랜드 - 몰타 시장을 가리킨다. 세르비아 - 몬테네그로의 영화시장을 세르비아 영화시장으로 축약시켜 표현하는데, 영국 영화 시장 역시 영국 - 아일랜드 - 몰타 시장을 포괄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영국 영화 시장이라는 표현 하나로 표시하는 중이다.
4. 영국의 영화
연극과 공연, 음반, 신문, 방송 등 미디어 산업 전반이 크게 발달한 영국 문화 시장답게 영화감독과 배우, 성우, 마케팅 분야 인력, 심지어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과 채권 시장을 구축하며 금융 시장도 크게 발달한 영국에서 사람과 돈을 구하는 일은 매우 쉽다. 그리고 영어가 모국어라는 것도 큰 장점이다.그러한 유무형의 인프라, 소프트 파워 강대국인만큼 영국은 영화나 드라마 시장에서 미국과 같이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미국 영화 시장이 압도적이다보니 작아보이긴 하지만 영화 시장 규모 치고는 상당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어권 내에서 미국과 같이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고 출판, 드라마, 대중문화에서 강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같은 문화권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지만 영국 영화는 자체 제작보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합작 비율이 높다.[7]
해리 포터 시리즈, 맘마 미아!, 맘마 미아! 2, 킹스맨 시리즈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도 많이 만들지만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등 영문학 고전, 역사적 내용 등을 각색한 영화도 많이 만든다. 그리고 적은 비용과 적은 시간을 들여서 가성비 높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뛰어나다.
특이한 점은 보통 영국 영화를 제작하면 대부분 자국 영화 시장에서 먼저 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영화 및 한국 영화 시장에 먼저 개봉을 시키고 영국 본국에는 나중에 개봉하는 것 혹은 미국 영화 시장 개봉 일자와 맞춰서 개봉하거나 영국 영화 시장 개방을 한 뒤 일주일 뒤 반응 보고 미국 영화 시장에 개봉하는 것이 정착해있다. 왜 뜬금없이 한국이 나오냐면, 보통 한국 영화사들은 미국 영화 시장에 개봉한 작품을 사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국 영화다 보니 미국 영화를 수입하는 것보다 비용도 싸게 들고, 영국 영화사들 역시 한국 영화 시장이 세계 6위나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정작 영국에 개봉하기 전에 베타테스트 형식으로 한국에서 개봉시켜 보는 영화가 굉장히 많다. 애니메이션 영화나 공포 영화는 미국 영화 시장과 한국 영화 시장에 먼저 개봉한 후에 영국 본토에서 개봉하는 것이 2011년부터 정착해 있다.
바다 너머 프랑스 영화계하고도 협업이 많다. 프랑스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카날은 영국 영화계에서도 큰 손으로 유명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의 경우 스튜디오 카날 등 프랑스 영화 회사들의 투자를 많이 받았다.
이외 영국 영화 협회라는 국영 영화 기관으로 유명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더불어 시네마테크에 큰 영향을 끼쳤던 곳으로 한국영상자료원도 이 영국 영화 협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BBC나 채널 4 등 공영 방송국들도 욍국 영화의 중요한 제작자들이다.
다만 2차 세계 대전 이전 영국 영화는 은근 프랑스 영화 평론가들에게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앨프리드 히치콕과 대담 도중 영화가 탄생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시간의 시험과 공간의 테스트를 거치고 살아남은 감독이 찰리 채플린과 당신 밖에 없다는 사실은 다소 기이하기까지 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디스하고 로베르 브레송과 장뤽 고다르도 비슷한 이유로 영국 영화를 대놓고 무시했을 정도.
물론 반론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영국 문화에 깊숙히 뿌리 박은 극 문화가 영화 매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평이 의외로 흔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많이 수그러든 편이다.[8]
영국 영화만의 특성을 꼽으라면 사회파 사실주의 경향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영국적인 개성을 내세워 유명해진 영국 영화들은 개별차는 있지만 사회파 사실주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에드가 라이트 역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장르 영화와 결합하면서 유명해졌다.
또한 영국 영화계의 특징으로, 상류 계층이나 중상층 위주의 엘리트주의가 강하다. 이른바 '금수저' 위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는 영국의 연극계에서 비롯한 것으로 영국 연극계는 상류 계층이나 중상층 위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 특성이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당수가 상류층 집안 출신이고 어린 시절부터 명문 학교에서 연기와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엘리트들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히들스턴 등이 상류층 출신이다. 그리고 휴 그랜트, 엠마 톰슨 등 명문대 출신이거나 콜린 퍼스와 같이 연극 학교에서 훈련 받은 사람들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RP 구사 능력이 캐스팅하는 데 매우 유리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아온 상류층이나 중상층 출신들이 주연 등 매우 중요한 배역을 받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하층 계급 출신의 배우들은 아예 캐스팅의 기회도 잡기 힘들 정도이다.[9]
그래서 하층 계급 출신의 성공한 영국 배우들은 대부분 이런 엘리트 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한 미국 영화 등의 다른 국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예가 헬렌 미렌, 게리 올드만 등이다.
그리고 캐나다인, 호주인, 뉴질랜드인 등이 유입되는 케이스도 많은데, 크리스토퍼 플러머도 사운드 오브 뮤직 이전에는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다. 단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 당시에는 셰익스피어 고전 전문 배우였다.
4.1. 공포 영화 강국
그야말로 가성비 높은 영화에 특화된 나라다 보니, 공포 영화에서 한 끗발 하는 국가이다. 해머 영화사가 이 나라 스튜디오고, 47 미터도 한국에서 개봉하여 꽤 인기를 끈 영국의 공포 영화이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제인 도, 쳐다보지 마라 등 유명 공포영화들이 엄청나게 많다.4.2. 유명 영화감독
영국 영화계 중심으로 활동해서 유명해진 감독으로는 파웰과 프레스버거, 마이크 리, 켄 로치, 피터 그리너웨이, 린 램지, 에드거 라이트, 대니 보일, 가이 리치, 매튜 본, 마이클 윈터바텀, 안드레아 아놀드, 앤드류 헤이, 리처드 커티스, 톰 후퍼, 필리다 로이드[10], 케빈 맥도널드 등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영국 영화계에서 유명해진 후 할리우드로 건너간 경우도 있다.크리스토퍼 놀란[11], 리들리 스콧, 샘 멘데스 같은 경우는 영국인이지만 영국 영화계에서 유명해진 것이 아닌 완전히 할리우드를 통해서만 유명해진 케이스다. 다만 멘데스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왔다.
4.3. 유명 영화 배우
- 게리 올드만
- 구구 음바타로
- 그리어 가슨
- 글렌다 잭슨
- 나디아 파크스
- 나오미 와츠
- 나오미 해리스
- 니콜라스 홀트
- 다니엘 래드클리프
- 다니엘 크레이그
- 다이애나 리그
- 데이비드 테넌트
- 데이빗 듈리스
- 데이지 리들리
- 데브 파텔
- 도널 글리슨
- 도미닉 쿠퍼
- 레이첼 바이스
- 레이프 파인스
- 로버트 패틴슨
- 로저먼드 파이크
- 루크 에반스
- 루퍼트 그린트
- 리처드 매든
- 리처드 아미티지
- 리암 니슨
- 릴리 제임스
- 릴리 콜린스
- 마이클 갬본
- 마이클 쉰
- 마이클 케인
- 마크 게이티스
- 마크 스트롱
- 마틴 프리먼
- 맷 스미스
- 밥 호스킨스
- 베네딕트 컴버배치
- 보리스 칼로프
- 브렌단 글리슨
- 비비안 리
- 빌 나이
- 사이먼 페그
- 샘 라일리
- 실베스터 맥코이
- 안소니 홉킨스
- 안젤라 랜스버리
- 알란 릭맨
- 애디왈레이 애키누에이아그바제이
- 애런 테일러존슨
- 앤드류 가필드
- 앤드류 스콧
- 에디 레드메인
- 에드먼드 그웬
- 에밀리 블런트
- 엠마 왓슨
- 엠마 톰슨
- 오드리 헵번
- 올랜도 블룸
- 올리비아 콜먼
- 올리비아 허시
- 윌 폴터
- 이안 맥켈런
- 이완 맥그리거
- 이안 홈
- 잭 로던
- 제나 콜먼
- 제이슨 스타뎀 - 영국에서는 코크니 억양으로 꽤 유명하다.
- 제임스 매커보이
- 조디 코머
- 조디 휘태커
- 조지 맥케이
- 주드 로
- 주디 덴치
- 줄리 앤드류스
- 찰리 채플린
- 카렌 길런
- 카야 스코델라리오
- 캐서린 테이트
- 케네스 브래너
- 케이트 베킨세일
- 케이트 윈슬렛
- 켈리 맥도널드
- 크리스토퍼 리
- 키이라 나이틀리
- 킬리언 머피
- 콜린 퍼스
- 크리스찬 베일
-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 태런 에저튼
- 토마스 브로디 생스터
- 토바이어스 멘지스
- 톰 글린카니
- 톰 엘리스
- 톰 히들스턴
- 톰 하디
- 톰 홀랜드
- 티머시 돌턴
- 틸다 스윈튼
- 프레디 하이모어
- 패트릭 스튜어트
- 피터 카팔디
- 헨리 카빌
- 헬레나 본햄 카터
- 헬렌 미렌
- 휴 그랜트
5. 영화 목록
영화 관련 정보 참조.6. 영화관
- 오데온시네마: 영국 아일랜드 영국과 아일랜드를 담당하는 영국 영화관 최대 체인. 1930년에 세워졌다. 완다그룹이 돈을 부어 AMC 시어터스에 인수되었다. 이로써 중국계 영화관이 유럽까지 들어가게 된 셈으로, 완다가 인수한 이후 오데온에서 중국 영화를 자주 상영했으나 뱅가드 사에 매각 후 현재는 다른 나라의 영화를 많이 상영하고 있다.
- 씨네월드: 홈페이지 영국 2위의 영화관 체인.
- 뷰 시네마스: 홈페이지 영국 3위의 영화관 체인.
- 쇼케이스 시네마스: 홈페이지: 영국 4위의 영화관 체인. 미국의 내셔널 어뮤즈먼트, 즉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모회사가 영국에 낸 자회사이다.
- 픽처하우스: 홈페이지 영국 영화 시장에서는 5위로 꽤나 메이저 플레이어 행세를 하지만 영국 전체에 23개 지점밖에 없다.
- 엠파이어 시네마: 홈페이지 영국 영화 시장 6위.
7. 관련 문서
[1] 뤼미에르 형제의 Workers Leaving the Lumière Factory와 공개 시기가 몇개월 차이나지 않는데, 연계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는게 좋다.[2] 셰익스피어 무성 영화 같은 경우, 남아있던 필름을 가지고 만든 무성시대의 셰익스피어라는 제목의 앤솔로지 영화로 일부 확인 가능하다. 다만 영국 영화 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다른 나라 셰익스피어 무성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3] 다만 채플린은 배우 데뷔 전 조금 유명해지자마자 할리우드 진출을 해버려, 영국 영화와 큰 연이 없다. 말년에 매카시즘 때문에 돌아와 작업한게 전부.[4] 다만 기록상으로는 아처스 스튜디오는 그 애매모호한 장르 때문에 당시 영국 영화계에서는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5] 유명 감독으로는 토니 리처드슨과 존 슐레진저, 린지 앤더슨이 있다. 현재는 이 시절 데뷔했던 켄 로치가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6] 문서가 등록되어 있진 않지만, 대니 보일 등 영국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알란 클라크 역시 안정된 제작환경 때문에 방송국에 눌러앉아서 작품 활동을 했을 정도다.[7] 그래도 미국, 프랑스, 튀르키예 등과 같이 자국 영화의 비율이 높은 곳이 영국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반대로 미국, 영국의 영화, 드라마 비중이 높다.[8] 현재 일본 영화의 만화 실사화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변 편할 것이다.[9] 노동 계급 배우나 일반인을 캐스팅하는 켄 로치와 안드레아 아놀드는 그 점에서 상당히 급진적인 편에 속한다.[10] 맘마 미아!, 철의 여인의 감독[11] 데뷔작 미행만 영국 영화로, 메멘토 부터는 확실한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