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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 에드워드 왕관(St Edward's Crown[1])은 영국 국왕의 왕관이다. 왕실 대관보기(Crown Jewels)의 하나로서 13세기 이래 잉글랜드와 영국의 역대 국왕들이 대관식에서 머리에 쓰는 관이었으며, 더 나아가 영국 국왕, 영국 왕실의 대권을 상징하는 표상이기도 하다. 평시에는 런던 탑의 왕실 보물고에 전시된다.왕관의 이름은 참회왕 에드워드(1003?-1066)에게서 연유하였다. 본디 성 에드워드 왕관은 1649년까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참회왕 에드워드의 묘소 옆에 보관되었는데, 1649년에 찰스 1세가 폐위당하고 왕정이 폐지되면서 보석들이 팔려나가고 금관은 녹여졌다. 오늘날의 왕관은 1661년에 찰스 2세가 왕정을 복고하면서 새로 제작한 것이다. 다만 1689년부터는 지나치게 무겁고 장식성이 강해 대관식에 잘 쓰이지 않다가 다시 1911년 조지 5세가 약 200여 년만에 대관식에서 착용하며 관습이 부활하였다.[2]
영국 국왕이 사용하는 왕관은 성 에드워드 왕관 외에도 영국 제국관(Imperial State Crown)이 있으나, 성 에드워드 왕관의 역사가 더 깊기 때문에 영국 임금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통한다. 왕실 문장의 경우 과거에는 현재는 소실된 '튜더 왕관(Tudor Crown)'을 추상화한 왕관 문장이 사용되었으나, 엘리자베스 2세가 이를 성 에드워드 왕관의 모습으로 변경한 이후 그의 치세 동안에는 왕실을 포함하여 정부 또는 영연방과 관련된 상징으로 성 에드워드 왕관의 문장이 두루 사용되었다. 다만 왕관 자체는 대관식 때에만 사용되었고, 대관식 이후 엘리자베스 2세는 더 가벼운 영국 제국관을 주로 사용했다.[3] 찰스 3세가 즉위한 이후에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대신하여 다시 튜더 왕관이 국왕과 정부의 문장에 들어가게 된다.
장 베델 보카사가 1977년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황제 대관식을 할 때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도 여러 대관식 중에서 참고를 했는데, 이 왕관에서 영감을 받아서 128면체로 세공된 8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1개를 포함한 엄청난 양의 보석으로 장식한 250만 달러짜리 순금 왕관을 만들었다. 왕관 상단은 진홍색의 비단 캐노피와 금으로 아프리카의 지도를 새긴 푸른 지구 모형으로 장식되었다.
2. 역사
잉글랜드의 국왕인 참회왕 에드워드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에 왕관을 썼다고 전해진다. 그가 1161년에 성인으로 시성된 이후, 그가 쓰던 모든 물건들은 성유물로 지정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성유물이 바로 그의 왕관이었다. 에드워드의 무덤을 지키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사들은 '꿈에 에드워드 왕이 나타나 후계 국왕들이 대관식을 치를 때 자신이 쓰던 왕관을 쓰게 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고, 왕실은 성인이 되어버린 왕이 꿈 속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데 뭐라 반박할 수도 없어 이를 그대로 따랐다.[4] 이로 인해 성 에드워드의 왕관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왕들이 대관식 때마다 대대로 물려주는 왕관이 되었고, 실제로 1220년에 헨리 3세가 대관식 때에 실제로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대관했다고 한다.대관식을 제외한 대부분 시기에는 왕관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경내에 보관되었으나, 1399년에 리처드 2세가 강제로 퇴위당할 적에 이 왕관을 런던 탑으로 가지고 와서 상징적인 의미로 헨리 4세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성 에드워드 왕관은 1533년 앤 불린의 즉위식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1547년의 에드워드 6세도 이 관을 착용했다. 그러나 1649년에 잉글랜드 내전으로 국왕이 쫒겨나고 왕정이 폐지되자 권력을 잡은 올리버 크롬웰은 왕관을 보고 '역겨운 군주의 상징'이라 혹평하면서 왕관에 달린 장식을 팔아먹고 금관을 녹여버렸다. 이후 1661년 찰스 2세가 즉위해 왕정복고를 하면서 새로 만들었다.
1671년에는 토마스 블러드라는 벼슬아치가 런던 탑에서 왕관을 훔쳐 숨겼던 적도 있다. 일부러 부피를 줄여 눈에 띄지 않게 하고자 망치로 두드려 납작하게 만들어버렸고, 이후 왕관을 다시 발견한 이후에는 복원작업을 해야 했다. 1689년에 윌리엄 3세가 대관식 때에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쓴 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역대 국왕들은 성 에드워드 왕관이 아닌 다른 개인 왕관들을 대관식 때에 사용했다. 다만 성 에드워드 왕관이 영국 왕권의 절대적인 상징임은 여전해서 대관식 내내 한쪽의 제단 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1901년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7세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직접 쓰고 대관식에 참여하려 하였으나, 당시 충수염 수술의 후유증으로부터 회복하는 중이어서 무거운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지 못하고 결국 더 가벼운 영국 제국관을 대신 착용하였다. 이후 조지 5세가 1911년에 즉위하면서 거의 200여 년만에 다시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대관을 받았다. 이때 왕이 직접 쓰고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2.4kg에 달했던 왕관의 무게를 줄이고 줄여 2.2kg까지 가볍게 만들었다.[5] 또한 원래 1900년대 이전까지는 왕관에 붙은 각종 보석들을 빌려오거나 왕실 수장고에 있던 것들을 임시로 붙였다가 대관식이 끝나면 아예 떼어버렸던 관습을 없애버리고 왕관에 붙은 모든 보석들을 영구적으로 왕관에 부착되게 하였다. 또한 진주와 백금으로 만들어져 있던 홍예(무지개, 아치) 장식을 현재 볼 수 있는 황금 홍예로 교체하였다고 한다. 현재 왕관에는 보석과 준보석 총 444개가 붙어 있다.
1937년에 즉위한 조지 6세, 1953년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모두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대관식에 참여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특히 성 에드워드 왕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는데, 즉위 이후 종래 '튜더 왕관(Tudor Crown)'에 기초하여 도안되어 있던 영국 왕실 및 영연방의 문장을 재도안하면서 자신이 사용했던 성 에드워드 왕관의 모습으로 바꾸었고, 찰스 3세가 다시 튜더 왕관 도안으로 바꿀 때까지 사용되었다.
2013년 6월 4일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 60주년을 기념하여 런던 탑의 수장고에서 나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전시되었다. 1953년 이래 처음으로 왕관이 런던 탑의 쥬얼 하우스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한다.
2023년 5월 6일로 예정된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준비하기 위해 런던탑에 있던 성 에드워드 왕관이 모처로 옮겨졌다. 찰스 3세의 머리에 맞게 정밀한 보정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찰스 3세 역시 대관식에서 해당 왕관을 착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의 로열 애너그램은 엘리자베스 2세의 것과는 달리 과거의 튜더 왕관을 왕권의 상징으로 박아넣은 버전으로 공개되었고#, 이후 왕실문장원은 찰스 3세 시대에는 튜더 왕관이 성 에드워드 왕관을 대신하여 국왕과 정부의 문장에 왕권의 상징[6]으로써 삽입될 것이라고 확인했다.[7]
3. 모습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쓴 찰스 3세 |
왕관을 쓴 엘리자베스 2세 | 엘리자베스 2세의 로열 모노그램[8] | 왕관을 든 여왕의 모습[9] |
성 에드워드 왕관이 영국의 공식 대관보기이자 왕관이기는 하지만 1661년에 찰스 2세 때 복원된 이래 오직 7명의 국왕들만이 이 왕관을 쓰고 즉위했다.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 조지 5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찰스 3세가 이 왕관을 쓰고 대관식에 참석했다. 조지 1세, 조지 2세, 조지 3세, 윌리엄 4세는 조지 1세가 따로 만든 왕관을 물려받아 사용했고, 조지 4세는 따로 만든 개인용 다이아몬드 왕관을 썼다. 빅토리아 여왕과 에드워드 7세는 성 에드워드 왕관의 지나친 무게 때문에 대관식 때 이를 쓰지 않고 제국관을 대신 썼다. 성 에드워드 왕관이 영국 왕권의 상징이었던 탓에 왕위 계승자가 대관식에 직접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지는 않을 때에도 항상 왕 곁의 제단에 올려놓기는 했는데 오직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에서만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치세기간 동안 성 에드워드 왕관 문양은 영국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들에 대부분 포함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문장에 들어가있고, 영국의 국장, 잉글랜드의 국장에도 포함되었었다. 그 외에도 잉글랜드와 웨일스 경찰들의 문장, 영국 해안경비대의 문장, 영국군, 영국 육군, 영국 공군, 영국 관세청, 영국 왕립우편국에도 모두 성 에드워드 왕관의 모습이 들어갔었다.
[1] 공식 표기가 'St Edward's Crown'이며, 'Saint Edward's Crown'이나 'The Crown of Saint Edward' 등은 통칭이다.[2] 원래는 조지 5세의 부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때 부활할 예정이었으나, 대관식 몇달 전에 받은 수술 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왕이 2kg에 달하는 왕관을 쓰기에는 무리하고 판단하여 보다 가벼운 제국관을 착용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3] 엘리자베스 2세는 이 왕관의 무게에 언급한 적도 있다. "It weigh's a ton."이라고 BBC와 한 인터뷰에서 표현했다. 장갑 낀 시종이 매우 조심스럽게 여왕 앞에 옮겨놓는데, 여왕이 맨손으로 막 흔들어보고 휙휙 옮기는 모습이 대조적.윗사람 것 vs 자기 것[4]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성 에드워드 왕관을 보관하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수사들이 일부러 자신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여긴다.[5] 성 에드워드 왕관은 거의 200년이 넘게 실질적인 왕관의 기능을 하지 않았기에 왕관보다는 장식물의 성향이 강했고, 이 때문에 갈수록 보석이나 장식을 덧붙여 무거워졌다.[6] 영국법상 영국 정부의 권한도 결국 국왕에게서 나온다. (관습법에 따라) 왕권을 대신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당연히 그 공식 휘장에도 왕관이 들어가야 하는 것.[7] 다만 새 파운드 스털링 지폐의 경우 왕의 모습만 변경하게 되어 성 에드워드 왕관이 계속 유지된다.[8] 위의 왕관이 성 에드워드 왕관이다.[9] BBC와의 다큐멘터리를 찍던 도중 왕관을 들어올리는 모습이다. 성 에드워드 왕관은 오직 국왕과 캔터베리 대주교, 왕실 보물 담당관만이 만질 수 있다.[10] 프랑스의 백합 문양[11] 왕관 위쪽의 구형 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