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국의 작위 요구자를 다루는 문서.2. 등재 기준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작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현재 영국의 작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3.1. 국가
3.1.1.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관련 칭호 |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인도 황제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 |
계승 실패 원인 |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 1922년 연합왕국 해체 |
3.2. 잉글랜드
3.2.1. 도싯 후작
관련 칭호 | 도싯 후작 |
작위 요구자 | 존 마이클 에드워드 시모어 |
전임자 | 퍼시 해밀턴 시모어 |
후임자 | 세바스찬 시모어 |
계승 실패 원인 | 제인 그레이 폐위의 여파로 도싯 후작가 몰락 |
3.2.2. 랭커스터 공작
관련 칭호 | 랭커스터 공작 | |
작위 요구자 | (하노버 왕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스튜어트 왕조) 프란츠 폰 바이에른[3]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 막스 폰 바이에른 |
계승 실패 원인 |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스튜어트 왕조)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하노버 왕조) |
3.2.3. 요크 공작
관련 칭호 | 요크 공작 |
작위 요구자 |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 |
전임자 | 마이클 에드워드 애브니-헤이스팅스 |
후임자 |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
계승 실패 원인 | 1485년 공국 멸망 |
3.2.4. 잉글랜드 국왕
관련 칭호 | 잉글랜드 국왕 프랑스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프란츠] 아일랜드 국왕[프란츠] 바이에른 국왕[프란츠] 요크 공작[사이먼] | ||
작위 요구자 | (자코바이트파) 프란츠 폰 바이에른[8] | (요크 왕조)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 | |
전임자 |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마이클 에드워드 애브니-헤이스팅스 | |
후임자 | 막스 폰 바이에른 |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 |
계승 실패 원인 | 1485년 왕조 교체(요크 왕조)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07년 스코틀랜드와 통합,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스튜어트 왕조) |
요크 왕조의 왕위 요구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485년에 장미 전쟁에서 랭커스터 왕조 지지파가 승리하여 요크 왕조가 멸망한 이후 요크 왕가 후손들은 대대로 요크 왕조의 왕위를 요구하고 있으며, 현 왕위 요구자는 초대 클래런스 공작 조지의 후손인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다.
제인 그레이의 짧은 재위기간 및 요절로 인해 단명한 왕조인 그레이 왕조는 원래대로라면 제인 그레이의 방계 후손인 서머싯 공가가 이론상의 왕위 요구자 가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제인 그레이가 자신의 폐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본 문단에는 없다.
3.2.5. 컴벌랜드 공작
관련 칭호 | 컴벌랜드 공작 테비엇데일 공작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9] |
계승 실패 원인 |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
3.2.6. 테비엇데일 공작
관련 칭호 | 테비엇데일 공작 컴벌랜드 공작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0] |
계승 실패 원인 |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
3.3. 스코틀랜드
3.3.1. 스코틀랜드 국왕
관련 칭호 | 스코틀랜드 국왕 잉글랜드 국왕 아일랜드 국왕 프랑스 국왕 바이에른 국왕 |
작위 요구자 | 프란츠 폰 바이에른[11] |
전임자 | 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후임자 | 막스 폰 바이에른 |
계승 실패 원인 |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07년 잉글랜드와 통합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 |
3.3.2. 올버니 공작
올버니 공작 문장 | |
관련 칭호 | 올버니 공작 |
작위 요구자 | 후베르투스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전임자 | 에른스트 레오폴트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12] |
후임자 | 제바스티안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계승 실패 원인 |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독일 제국 산하 작위를 계승한 영국 왕족들의 영국 내 작위 박탈 |
3.4. 웨일스
3.4.1. 귀네드 국왕
관련 칭호 | 귀네드 국왕 웨일스 공작 |
작위 요구자 | 에반 본 앤윌 |
계승 실패 원인 | 1283년 왕국 멸망 |
물론 영국이나 (독립 가능성은 희박하지만[14]) 향후 독립된 웨일스 안에서 그가 귀네드 국왕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게 해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3.4.2. 웨일스 공작
관련 칭호 | 웨일스 공작 잉글랜드 왕세자[막스][마커스] 프랑스 왕세자[막스][마커스] 스코틀랜드 왕세자[막스] 아일랜드 왕세자[막스] 바이에른 왕세자[막스] 요크 공세자[마커스] 하노버 왕세자[에른스트] 브라운슈바이크 공세자[에른스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왕세자[에른스트] 인도 황태자[에른스트] 노르망디 공세자[에른스트][막스][마커스] | |||
작위 요구자 | (독립 공작) 러웰린 존스 | (하노버 왕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자코바이트파) 막스 폰 바이에른 | (요크 왕조)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30] | 프란츠 폰 바이에른[31] |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32] | |
후임자 | 벨프 아우구스트[33] | 조피 폰 바이에른[34] | ||
계승 실패 원인 | 1284년 공국 멸망(독립 공작) 1485년 왕조 교체(요크 왕조)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07년 스코틀랜드와 통합,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스튜어트 왕조)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 1922년 연합왕국 해체(하노버 왕조) |
이와는 별개로, 하노버 왕조 측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위를 주장하는 관계로, 이 작위의 요구자의 후임자는 자동으로 웨일스 공위 요구자가 된다. 잉글랜드의 왕위를 요구하는 자코바이트 계열과 요크 왕조의 후계자들도 마찬가지다.
3.5. 영국 본토 밖
3.5.1. 맨 섬 영주
관련 칭호 | 맨 섬 영주 | |
작위 요구자 | (영국 왕실 직할령 맨 섬)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독립 영지 맨 섬) 그레이스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데이비드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6세 | |
계승 실패 원인 | 1765년 영국 왕실 직할령으로 편입(독립 영지 맨 섬)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하노버 왕조) |
3.5.2. 지브롤터 영주
관련 칭호 | 지브롤터 영주 영국 국왕 하노버 국왕 | 스페인 국왕 아라곤 국왕 네오파트라스 공작 | 스페인 국왕 에트루리아 국왕 파르마 피아첸차 공작 | 양시칠리아 국왕 칼라브리아 공작 | 프랑스 국왕 나바르 국왕 앙주 공작 부르봉 공작 | |||
작위 요구자 | (하노버 왕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 (현직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 (카를로스 정통주의) 식스토 엔리케 데 보르본-파르마 이 보르본-부세트 | (카를로스주의) 카를로스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오란지-나사우 | (압스부르고 왕조) 도미닉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카를로스주의) 페드로 후안 데 보르본 도스-시실리아스 이 오를레앙[35] | (자유주의)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이 마르티네스-보르디우 | |
전임자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 후안 카를로스 1세 | 하비에르[36] |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37] | 안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38] | 카를로스 마리아 알폰소 마르셀로 | 알폰소 2세 |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39] | 레오노르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40] |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 | 잔도어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하이메 | 루이스 데 보르본 이 바르가스 | ||
계승 실패 원인 | 1700년 영국의 지브롤터 합병(스페인 국왕) 1901년 왕조 교체(하노버 왕조) |
지브롤터는 유럽 본토에 위치해있지만, 스페인을 제외하면 국제사회에서 영국 영토로 인정되므로, 이 지역에 관련된 지위를 요구하는 사람은 영국의 작위 요구자가 된다.
[1]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들.[2] 성씨에 Königlicher Prinz von Großbritannien und Irland를 추가했다. 당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과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나누어져 해체된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성씨에 추가한 말에 Nordirland(북아일랜드)가 아니라 그냥 Irland(아일랜드)가 들어갔다는 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로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족을 자칭하는 이들은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 뿐인 셈이다.[3]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프란츠] [프란츠] [프란츠] [사이먼] [8]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9]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들.[10]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들.[11]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12] 후베르투스의 아버지.[13] 이전에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위 요구자인 안드레아스로 나와 있었지만 영국의 작위는 귀천상혼 여부 상관없이 철저한 장자상속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3남의 장남인 안드레아스는 정통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만일 작위가 박탈되지 않았다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위와 올버니 공작위는 카를 에두아르트가 죽으면서 분할 상속되었을 것이다. 영문 위키백과에서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위 계승 권리만 잃었을 뿐 올버니 공작위 부활을 위해 영국 왕실에 요청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나와있다.[14]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함께 영국의 구성국들 중에서는 독립 여론이 가장 낮은 곳이다. 매우 오래 전에 잉글랜드에게 정복당한 역사가 있어서, 같은 켈트계 국가인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보다도 잉글랜드와 국민정서상 더 가깝게 여기는 편이다.[막스] [마커스] [막스] [마커스] [막스] [막스] [막스] [마커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른스트] 아우구스트[막스] [마커스] [30]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버지.[31]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32]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의 아버지[33]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들.[34] 막스 폰 바이에른의 장녀이자 리히텐슈타인 공세자빈[35] 페드로 후안 마리아 알레요 사투르니노 이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도스-시실리아스 이 오를레앙[36]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데 브라간사[37] 하비에르의 장남. 카를로스 하비에르의 아버지.[38]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39]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의 아들.[40] 펠리페 6세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