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00:18:56

펠리페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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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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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스타마라 왕조 압스부르고 왕조
이사벨 1세 후아나 1세 펠리페 2세
트라스타마라 왕조 압스부르고 왕조
페르난도 5세 펠리페 1세 카를로스 1세
압스부르고 왕조 보르본 왕조
펠리페 3세 펠리페 4세 카를로스 2세 펠리페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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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1세 펠리페 5세 페르난도 6세 카를로스 3세
보르본 왕조 보나파르테 왕조 보르본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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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2세 아마데오 1세 알폰소 12세 알폰소 13세
보르본 왕조
후안 카를로스 1세 펠리페 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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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6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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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1세 엔리케 3세 후안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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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2세 엔리케 4세
<rowcolor=#000,#fff> 레오노르 엔리케 후아나 알폰소
엔리케 4세 이사벨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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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1세 후아나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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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1세 펠리페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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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4세 페르난도 7세 이사벨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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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오 1세 알폰소 12세 알폰소 13세
<rowcolor=#000,#fff>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이사벨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알폰소 13세 후안 카를로스 1세 펠리페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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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스페인의 방송국 안테나3가 스페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후안 카를로스 1세 미겔 데 세르반테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아돌포 수아레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펠리페 6세 파블로 피카소 예수의 테레사 펠리페 곤살레스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이사벨 1세 세베로 오초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호세 사파테로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16위17위18위19위20위
살바도르 달리 안토니오 가우디 엘 시드 알폰소 10세 페르난도 알론소
21위22위23위24위25위
프란시스코 데 고야 프란시스코 프랑코 안토니오 마차도 미겔 인두리안 미카엘 세르베투스
26위27위28위29위30위
로라 플로레스 펠리페 2세 카를로스 1세 로시오 주라도 그레고리오 마라뇬
31위32위33위34위35위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사벨 판토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미겔 데 우나무노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36위37위38위39위40위
비센테 페레르 카밀로 호세 셀라 페드로 두케 다니 페드로사 파우 가솔
41위42위43위44위45위
다비드 비스발 라파엘 나달 카마롱 데 라 이슬라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 후안 라몬 히메네스
46위47위48위49위50위
산티아고 카리요 안토니오 반데라스 이냐시오 데 로욜라 페드로 알모도바르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51위52위53위54위55위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미겔 에르난데스 후안 마누엘 세라 로페 데 베가 엘 그레코
56위57위58위59위60위
아구스티나 데 아라곤 호아킨 사비나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앙헬 니에토 마누엘 아사냐
61위62위63위64위65위
조르디 푸졸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알레한드로 산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에르난 코르테스
66위67위68위69위70위
카를로스 사인츠 파퀴리 텔모 사라 몽세라 카바예 마누엘 데 파야
71위72위73위74위75위
이삭 페랄 플라시도 도밍고 미겔 길라 루이스 부뉴엘 엘 코르도베스
76위77위78위79위80위
프란시스코 피사로 마리아노 바울바시드 라울 곤살레스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오초아
81위82위83위84위85위
아만시오 오르테가 마놀레테 에두아르도 칠리다 페란 아드리아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86위87위88위89위90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호아킨 로드리고 에밀리오 보틴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프란시스코 헨토
91위92위93위94위95위
세바 바예스테레스 이삭 알베니스 페데리코 바하몬테스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카르멘 아마야
96위97위98위99위100위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스 마누엘 산타나 알리시아 코플로비츠 안토니오 루이스 솔러 자코네로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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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대한민국
1963년 12월 5일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
1967년 6월 23일 육영수 영부인 대한민국
1979년 12월 7일 최규하 대통령 대한민국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 12월 7일 홍기 영부인 대한민국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전두환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이순자 영부인 대한민국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김옥숙 영부인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손명순 영부인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이희호 영부인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권양숙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김윤옥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김정숙 영부인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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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7일 틍쿠 인탄 자하라 왕비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5일 장제스 총통 중화민국
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대통령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튀르키예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2023년 7월 13일 안제이 두다 대통령 폴란드
2023년 11월 21일 찰스 3세 국왕 영국
2024년 11월 16일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 페루 }}}}}}}}}
<colbgcolor=#c70243><colcolor=#fff>
스페인 보르본 왕조 제13대 국왕
펠리페 6세
Felipe VI
파일:2hP6xkjDWjFV5BmxXrjg7D-1024-80.jpg.webp
출생 1968년 1월 30일 ([age(1968-01-30)]세)
스페인국 마드리드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로레토 병원
재위기간 스페인 국왕
2014년 6월 19일 ~ 현재
서명 파일:펠리페 6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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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c70243><colcolor=#fff> 가문 보르본 가문
이름 펠리페 후안 파블로 알폰소 데토도스 로스산토스 데 보르본 이 데 그레시아
(Felipe Juan Pablo Alfonso de Todos los Santos de Borbón y de Grecia)[1]
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1세
어머니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공주
형제자매 엘레나, 크리스티나
배우자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2004년 결혼)
자녀 장녀 레오노르, 차녀 소피아
종교 가톨릭
신체 197cm[2] }}}}}}}}}
1. 개요2. 작위
2.1. 생애2.2. 재위 이후
3. 결혼4. 가족관계
4.1. 조상4.2. 자녀
5. 여담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스페인 보르본 왕조국왕. 1746년 펠리페 5세 국왕이 세상을 떠난 지 268년 만에 탄생한 펠리페라는 이름을 쓰는 국왕이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육군, 해군, 공군 사관학교에서 3년 동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3]

2. 작위

파일:스페인 국왕 휘장.svg
<rowcolor=#FFF> 문장[4]
공식 칭호는 스페인의 왕(Rey de España), 카스티야·레온·아라곤·양 시칠리아·예루살렘·나바르·그라나다·톨레도·발렌시아·갈리시아·마요르카·세비야·사르데냐·코르도바·코르시카·무르시아·하엔·알가르브·알헤시라스·지브롤터·카나리아 제도·동인도 및 서인도 제도 그리고 대양의 섬들과 대지의 왕(Rey de Castilla, de León, de Aragón, de las Dos Sicilias, de Jerusalén, de Navarra, de Granada, de Toledo, de Valencia, de Galicia, de Mallorca, de Sevilla, de Cerdeña, de Córdoba, de Córcega, de Murcia, de Jaén, de los Algarves, de Algeciras, de Gibraltar, de las Islas Canarias, de las Indias Orientales y Occidentales, y de las Islas y Tierra Firme del Mar Océano), 오스트리아의 대공(Archiduque de Austria), 부르군트와 브라반트·밀라노·아테네 및 네오파트라의 공작(Duque de Borgoña y de Brabante, de Milán, de Atenas y de Neopatria), 오리스타노의 후작(Marqués de Oristano), 합스부르크·플랑드르·티롤·바르셀로나·루시용·세르다냐 및 고샤노의 백작(Conde de Habsburgo, de Flandes, del Tirol, de Barcelona, del Rosellón, de la Cerdaña y del Gocíano), 비스케이와 몰리나의 영주(Señor de Vizcaya y de Molina)이다.[5]
  • 스페인의 인판테 펠리페 전하 Su Alteza Real el Infante Felipe de España (1968년 1월 30일 ~ 1977년 1월 22일)
  • 아스투리아스 공 전하 Su Alteza Real el Príncipe de Asturias (1977년 1월 22일 ~ 2014년 6월 19일)
  • 국왕 폐하 Su Majestad el Rey de España (2014년 6월 19일 ~ 현재)

2.1. 생애

2.2. 재위 이후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건강 악화 및 사치스러운 행동에 대한 국민의 비난에 책임을 지고 2014년 6월 18일 퇴위하여, 6월 19일 0시를 기해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제 위기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 등[6] 국가적 악재 때문에, 화려한 축하 행사는 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대관식[7] 등 전통적인 가톨릭 예식도 배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왕위 승계와 왕정 유지에 반대하는 공화파 시위가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인 솔 관문 광장을 비롯한 스페인 전국에서 터졌고, 이 과정에서 3명이 연행되면서 결과만 보면 즉위 첫날부터 반대파 정치범에 탄압을 가한 국왕이 되어버렸다.[8]

그럼에도 펠리페를 향한 기대감은 꽤 큰 편이었기에 한 조사에서 국민들로부터 66%의 지지를 얻었다. 추문으로 왕실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입헌군주제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는 와중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지지다. 기본적으로 낡은 왕실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펠리페 자체가 가진 소탈하고 수더분한 매력이 많은 호감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즉위 직후 첫 공식 외국 방문지는 바티칸으로 결정되었으며, 6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이어 다음 달 7일에는 모로코를, 14일에는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등 주변국을 잇달아 찾았다.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스페인의 2015년~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힘을 보탰다.

2017년 들어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자체독립 투표를 실시하고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제가 불거지자 국왕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 스페인 왕실의 입장은 "스페인 헌법에 위반되기에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용인될 수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에 '자치권 몰수'라는 강경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2019년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다시 커지자 가족들과 직접 바르셀로나에 방문하였다. 특히 왕위 계승자인 맏이 레오노르 공주가 펠리페 6세 국왕이 수여하는 청년공로상 시상식에서 카탈루냐어로 연설하는 등 반독립 여론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에 겹쳐 8월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각종 비리 문제로 국외 망명을 떠나면서 분노한 국민들의 왕정 폐지 여론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 펠리페 6세에게도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찾아온 상태이다. 펠리페 6세는 아버지 유산의 상속을 포기한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국가 연금도 취소했다.

2021년 3월 25일. 스페인 국왕으로 역사상 첫 안도라 공식방문이 이뤄졌다.#

2024년 10일 말에 발렌시아 주에 기록적인 홍수가 닥쳐 2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났다. 이에 10월 31일 펠리페 6세는 공식 담화를 통해 스페인 국민에 대한 위로를 전했다. 11월 3일날, 레티시아 왕비, 산체스 총리와 함께 홍수로 재해 현장(파이포르타)을 방문했다. 무능한 정부 대처로 성난 군중이 국왕에게 흙더미를 던졌지만 겁내는 모습 없이 의엿하게 이재민의 성난 목소리를 들어주고 현장을 떠났다.BBC

3. 결혼

펠리페는 유럽에서 인기있는 남성 왕족 중 한 사람이었다. 197cm의 큰 키에 믿음직한 외모, 스포츠로 다져진 몸매, 거기에 더해지는 '스페인의 왕세자'란 타이틀은 그를 20살 무렵부터 인기인에 꼽히게 했다. 그렇다 보니 연애도 늘 화제가 되었다. 그간 스페인 귀족 출신의 이사벨 사르토리우스, 미국 조지타운대 유학 시절 만난 여대생 지젤 하워드, 노르웨이속옷 모델 에바 새넘 등과 차례로 교제했다. 하지만 국적과 귀천을 가리는 왕실과 보수층의 벽에 막혀 새넘과의 결실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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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결혼식
현재 아내인 4살 연하의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와는 1년 남짓한 연애 끝에 2004년 5월 22일결혼했다. 레티시아는 원래 스페인 국영방송에서 앵커를 했던 언론인으로, 펠리페와 결혼하기 전에 나이 많은 고등학교 철학 교사와 결혼했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첫 남편과 10대 때부터 사귀며 동거했던 게 드러나 더 논란이었다. 이혼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인 시절에 미국인 유부남과 불륜 관계였다고 하고, 낙태마약 복용 같은 좋지 못한 과거가 있다는 주장을 그녀의 친척이 제기하여 파문이 일기도 했다.

사실 결혼식 때 있었던 진짜 큰 문제는 1946년 왕정 존속 투표에서 패하여 왕정이 폐지된 이탈리아 왕국 사보이아 가문의 다툼이었는데 사보이아 가문 수장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사보이아아오스타 공작 아메데오가 진짜로 주먹다툼을 벌여 파문이 있었다. 아들의 결혼식에서 몸싸움이 벌어진 것에 대노한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다시는 왕실 행사에 사보이아 가문을 초대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정도였다.

4. 가족관계

파일:spanish-royal-family-christmas-4.jpg
<rowcolor=#FFF> 2024년 가족사진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펠리페 6세
(Felipe VI)
후안 카를로스 1세
(Juan Carlos I)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Infante Juan, Count of Barcelona)
알폰소 13세
(Alfonso XIII)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지니 공녀
(Princess Victoria Eugenie of Battenberg)
부르봉양시칠리아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공주
(Princess María de las Mercedes of Bourbon-Two Sicilies)
부르봉양시칠리아의 카를로스 왕자
(Prince Carlos of Bourbon-Two Sicilies)
오를레앙의 루이즈 공주
(Princess Louise of Orléans)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공주
(Princess Sophia of Greece and Denmark)
파블로스
(Paul)
콘스탄티노스 1세
(Constantine I)
프로이센의 조피 공주
(Princess Sophia of Prussia)
하노버의 프리데리케 공주
(Princess Frederica of Hanover)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Ernest Augustus, Duke of Brunswick)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
(Princess Victoria Louise of Prussia)

4.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1녀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 2005년 10월 31일 ([age(2005-10-31)]세)
2녀 스페인의 인판타 소피아 2007년 4월 29일 ([age(2007-04-29)]세)

슬하에 두 을 두고 있다. 장녀는 2005년 10월에 태어난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이며 차녀는 2007년 4월에 태어난 인판타 소피아다. 현재 스페인 왕실은 남자 우선 왕위승계법을 두고 있지만,[10] 현재 펠리페에게 아들이 없기 때문에 후안 카를로스 1세 재위 시절부터 장녀인 레오노르가 차차기 왕위계승권자였다.

5. 여담

  • 역대 여느 왕보다 수더분하고 진솔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아이들이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아내와 어머니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린 두 딸과 스스럼 없이 시간을 많이 보내며, 동물원을 함께 가거나 학교에 직접 데려다 주고 그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한다. 딸들이 지나치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도,[11] 사생활이 없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 풍성한 턱수염이 특징으로, 2014년 즉위식 무렵에 잠시 깎았으나 다시 기르고 있다. 수염을 깎으면 어머니 소피아 왕대비와 비슷하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더더욱 닮아가고 있다. 스페인 왕실이 소피아 왕대비의 유전자가 강한지라 엘레나, 크리스티나, 펠리페 뿐만 아니라 손주들의 대부분이 소피아 왕대비와 닮았다.
  • 레알 마드리드의 팬인 후안 카를로스 1세와는 달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이며 명예 회장이기도 하다. 도시 내 더비 경기가 극성으로 유명한 마드리드에서는 마드리드 더비 하는 날 시내에서는 레콜레토스 대로라는 같은 큰 도로에 있는 시벨레스 동상[14]과 넵튠 동상[15] 사이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경계로 빈 맥주병들이 서로 날아 다닐 사이 시외에 있는 사르수엘라 궁전[16]속에도 전선이 그인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 국왕이 된 직후 스페인의 자동차 회사인 세아트에 찾아가서, 자신이 세자 시절에 타던 이비자를 리스토어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만 리스토어가 되자 리스토어가 된 본인의 차량을 가져가지 않고, 세아트 사의 자동차 전시품으로 맡겼다.#
  • 한국을 두 번 방문하였다. 첫 번째는 왕세자 신분이던 1988 서울올림픽 당시 누나 크리스티나 공주의 요트 경기를 참관하기 위한 방문이었고, 두 번째는 2019년에 수교 70주년을 기념하여 방문했다. 해당 방한에서 레티시아 왕비와 함께 10월 24일 서울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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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소 왕조
빌럼알렉산더르 하랄 5세 프레데리크 10세 레치에 3세
테멩공 가문
앙리 한스아담 2세 이브라힘 이스칸다르 알베르 2세
모하메드 6세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프란치스코 필리프
볼키아 왕조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하사날 볼키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칼 16세 구스타프
펠리페 6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 조안엔리크 비베스 이 시실리아 에마뉘엘 마크롱
들라미니 왕조
음스와티 3세 찰스 3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
노로돔 왕조
압둘라 2세 나루히토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노로돔 시아모니
미샬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라마 10세 투포우 6세
왕위 계승자 · 대통령 및 총통 · 공산국가 지도부
총리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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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번째 이름인 펠리페는 스페인 보르본 왕조 시조인 펠리페 5세에서, 두번째 이름인 후안은 친할아버지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에서, 세번째 이름인 파블로는 외할아버지 그리스 왕 파블로스(Παύλος Α΄ της Ελλάδας)에서, 알폰소는 친증조할아버지 알폰소 13세에서 따왔고, 마지막으로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de Todos los Santos)는 스페인어로 '모든 성인'이라는 뜻이다. 성씨 보르본 이 그레시아는 부계와 모계의 성씨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2] #[3] 당시 룸메이트가 1살 위의 외사촌형인 그리스의 마지막 왕세자인 파블로스였다고 한다.[4]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스티야 왕국, 레온 왕국, 나바라 왕국, 그라나다 왕국, 아라곤 왕국의 깃발. 가운데는 보르본 왕가의 문장.[5] 거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달고 있었던 것들이다. 스페인 국왕은 타 유럽 군주와 달리 과거 보유했던 칭호들을 현실과 상관없이 유지하는 관습이 있으며, 칭호를 남겨둔다고 해서 진지하게 그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당 국가들과는 정상적으로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6] 참고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1954 스위스 월드컵, 1958 스웨덴 월드컵1970 멕시코 월드컵,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의 4개 대회를 예선탈락으로 나가지 못한 것 외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탈락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조별라운드 탈락은 국가적인 충격이었던 셈. 더욱이 메이저 대회 3연패를 기록한 팀이자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 2연패로 조기 탈락하였기에 충격이 더했다.[7] 다만 스페인은 1379년 카스티야 연합 왕국후안 1세 이후로는 대관식을 하지 않았다. 아라곤 왕국으로 범위를 넓혀도 1414년 페란도 1세가 마지막이었으며, 나바라 왕국은 1484년 카탈리나 1세호아네스 3세가 마지막으로 대관식을 치렀다.[8] 사실 치안 문제를 비롯한 스페인의 국가 행정 대부분은 법적으로 행정부의 책임이지, 의 책임은 아니긴 하다. 스페인은 엄연히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이지, 전제군주제가 아니기 때문. 그러나 군대, 경찰, 사법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스페인 보수 우익 세력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부터 각종 혼맥과 인맥으로 결속되어 있는데 이들의 구심점에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다. 따라서 왕실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간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이지만, 국정의 많은 부분이 사적인 이해 관계로 움직이는 나라 스페인에서 그 사적 이해 집단의 중심에 바로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는 것이다.[9] 결과적으로 새넘이 펠리페와 결혼하는 데 실패한 이유는 호콘 왕세자하고 메테마리트와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입은 드레스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도 아니고 로열 웨딩에서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어서 당시에도 욕을 엄청 먹었고, 지금도 최악의 로열 웨딩 하객 패션으로 꼽힐 정도.[10]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에게는 큰 딸인 엘레나 공주와 작은 딸인 크리스티나 공주가 있었지만, 남자 왕족 우선의 왕위 승계법상 왕위 계승자 지위는 아들이자 막내인 펠리페 6세에게 넘어갔다.[11] 실제로 펠리페는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그는 가지 못했는데, 생일을 맞은 친구의 부모가 왕실에 어떻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 그때의 경험 이후 자신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꺼린다고. 그래서 유럽의 명문대학이 아니라 미국의 학교로 유학을 떠난 것도, 펠리페가 스페인 왕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립심을 키우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12] 요르요스 1세 기준으로 7촌이며, 크리스티안 9세 기준으로는 10촌, 빅토리아 여왕 기준으로는 10촌(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나 외조부 파블로스 쪽으로) 또는 11촌(외조모 프레데리카 왕비 쪽으로)이다. 즉, 부계 쪽으로 가나 모계 쪽으로 가나 결국 빅토리아 여왕이 조상이다.[13] 또한 러시아 황실인 로마노프 왕조 후손들 중 한 명인데, 두 사람 모두 니콜라이 1세의 손녀 올가 왕비의 후손이기 때문이다.[14]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상징[16] 현 스페인 왕실의 일상 거주지[17] 스페인 카탈루냐, 발렌시아, 발레아레스 제도 지방들의 공용어이며 아라곤 지방 일부에서도 쓰인다. 사실상 스페인의 제 2언어.[18] 펠리페 6세가 고등학교 시절 유학한 캐나다프랑스어영어가 공용어이다. 미국 생활까지 했으니 영어는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도 통역없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