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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왕실기 | 스웨덴 왕실 문장 |
<colbgcolor=#006AA7><colcolor=#fecc00> 스웨덴 국왕 King of Sweden Sveriges Konung | |
현직 | <colbgcolor=#ffffff,#1f2023>칼 16세 구스타프 |
즉위일 | 1973년 9월 15일 |
지위 | 스웨덴 왕국의 국가원수 |
관저 | 스톡홀름 왕궁 (공식) |
드로트닝홀름 궁전 (거주) |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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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국왕은 입헌군주국인 스웨덴 왕국의 국가원수이다. 현임 국왕은 베르나도테 왕조의 칼 16세 구스타프이다.1975년 이래 명목상의 권한조차 적다. 법안이 의회에서 가결되면 내각의 이름으로 공포되고 국왕의 재가가 필요하지 않으며, 총리도 의장이 임명한다. 다만 외국에 파견하는 대사의 신임장은 국왕 명의의 서명을 담아 작성되며, 자국에 파견되는 외국 대사도 나라를 대표하여 국왕이 신임장을 접수한다. 국왕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권한인 셈이다.
노벨상을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것도 국왕의 일이다.[1]
본래 국왕은 "스웨덴인, 벤드족과 기트족[2]의 왕(Sveriges, Göters och Venders konung)"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지만 현임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프 재위 시기에 왕호를 지금같이 "스웨덴 국왕"으로 간략화했다.
원래는 대대로 웁살라 대성당(Uppsala domkyrka)과 스톡홀름 대성당(Storkyrkan)에서 대관식을 치렀으나 1872년 오스카르 2세의 대관식을 끝으로 현재는 대관식을 치르지 않고 있다.
카뮤의 코냑[3]을 발주했었다.
역대 국왕 명단을 봐면 '칼'과 '에리크'라는 이름을 쓰는 국왕들의 호칭이 1세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에리크 14세와 칼 9세가 유사역사학적인 역사서인 <기트인들과 스웨덴인들의 모든 왕들의 역사(Historia de omnibus Gothorum Sueonumque regibus)>의 계보에 나오는 전설 속의 국왕들까지 포함해서 자신들의 세수를 정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에리크 6~13세,[4] 칼 7~8세는 편의상 에리크 14세와 칼 9세에서 역산해서 표기하는 것일 뿐이고 본인들의 생전에는 그렇게 지칭되지 않았다. 해당 사서는 기원전 2216년에 즉위한 노아의 손자이자 야벳의 아들 마곡을 초대 국왕으로 내세우고 있어, 누가 봐도 진위여부가 의심스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현대에는 스웨덴 왕실에서도 이런 왕사를 내세우지 않고 에리크 6세를 초대 국왕으로 본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의 후계자들이기 때문에 세수 자체는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2. 역대 국왕
재위 | 왕호 | 왕조 | 비고 |
970 ~ 995 | 에리크 세게르셀 Erik Segersäll | 문쇠 왕조 | |
995 ~ 1022 | 올로프 솃코눙 Olof Skötkonung | ||
1022 ~ 1050 | 아눈드 야코브 Anund Jakob | ||
1050 ~ 1060 | 에문드 노왕 Emund den gamle | ||
1060 ~ 1066 | 스텡킬 Stenkil | 스텡킬 왕조 | |
1066 ~ 1067 | 에리크와 에리크 Erik och Erik | ||
1067 ~ 1070 | 할스텐 Halsten | ||
1070 ~ 1075 | 아눈드 고르스케 Anund Gårdske | ||
1075 ~ 1079 | 호칸 뢰데 Håkan Röde | ||
1079 ~ 1084 | 잉에 1세 Inge den äldre | ||
1084 ~ 1087 | 블로트 스벤 Blot-Sven | ||
1087 ~ 1105 | 잉에 1세 Inge den äldre | ||
1105 ~ 1118 | 필리프 할스텐손 Filip Halstensson | ||
1105 ~ 1125 | 잉에 2세 Inge den yngre | ||
1125 ~ 1126 | 랑발드 크납회브데 Ragnvald Knaphövde | ||
1125 ~ 1130 | 망누스 1세 Magnus Nilsson | ||
1130 ~ 1156 | 스베르케르 1세 Sverker den äldre | 스베르케르 왕조 | |
1156 ~ 1160 | 에리크 9세 Erik den helige | 에리크 왕조 | |
1160 ~ 1161 | 망누스 2세 Magnus Henriksson | 스텡킬 왕조 | |
1161 ~ 1167 | 칼 7세 Karl Sverkersson | 스베르케르 왕조 | |
1167 ~ 1195 | 크누트 1세 Knut Eriksson | 에리크 왕조 | |
1196 ~ 1208 | 스베르케르 2세 Sverker den yngre | 스베르케르 왕조 | |
1208 ~ 1216 | 에리크 10세 Erik Knutsson | 에리크 왕조 | |
1216 ~ 1222 | 요한 1세 Johan Sverkersson | 스베르케르 왕조 | |
1222 ~ 1229 | 에리크 11세 Erik Eriksson | 에리크 왕조 | |
1229 ~ 1234 | 크누트 2세 Knut Långe | ||
1234 ~ 1250 | 에리크 11세 Erik Eriksson | 에리크 왕조 | |
1250 ~ 1275 | 발데마르 비르예르손 Valdemar Birgersson | 폴쿵 왕조 | |
1275 ~ 1290 | 망누스 3세 Magnus Ladulås | ||
1290 ~ 1318 | 비르예르 망누손 Birger Magnusson | ||
1319 ~ 1364 | 망누스 4세 Magnus Eriksson | ||
1356 ~ 1359 | 에리크 12세 Erik Magnusson | [5] | |
1362 ~ 1364 | 호칸 망누손 Håkan Magnusson | [6] | |
1363 ~ 1389 | 알브렉트 Albrekt av Mecklenburg | ||
칼마르 동맹: 덴마크와의 동군연합. 덴마크 국왕 참조. | |||
1521 ~ 1560 | 구스타브 1세 바사 Gustav Vasa | 바사 왕조 | [7] |
1560 ~ 1568 | 에리크 14세 Erik XIV | ||
1568 ~ 1592 | 요한 3세 Johan III | ||
1592 ~ 1599 | 시기스문드 Sigismund | [8] | |
1599 ~ 1611 | 칼 9세 Karl IX | [9] | |
1611 ~ 1632 | 구스타브 2세 아돌프 Gustav II Adolf | ||
1632 ~ 1654 | 크리스티나 여왕 Kristina | ||
1654 ~ 1660 | 칼 10세 구스타브 Karl X Gustav | 팔츠츠바이브뤼켄 왕조 | |
1660 ~ 1697 | 칼 11세 Karl XI | ||
1697 ~ 1718 | 칼 12세 Karl XII | ||
1719 ~ 1720 | 울리카 엘레오노라 Ulrika Eleonora | ||
1720 ~ 1751 | 프레드리크 1세 Fredrik I | 헤센카셀 왕조 | |
1751 ~ 1771 | 아돌프 프레드리크 Adolf Fredrik |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 | |
1771 ~ 1792 | 구스타브 3세 Gustav III | ||
1792 ~ 1809 | 구스타브 4세 아돌프 Gustav IV Adolf | ||
1809 ~ 1818 | 칼 13세 Karl XIII | ||
1818 ~ 1844 | 칼 14세 요한 Karl XIV Johan | 베르나도테 왕조 | |
1844 ~ 1859 | 오스카르 1세 Oscar I | ||
1859 ~ 1872 | 칼 15세 Karl XV | ||
1872 ~ 1907 | 오스카르 2세 Oscar II | ||
1907 ~ 1950 | 구스타프 5세 Gustaf V | ||
1950 ~ 1973 | 구스타프 6세 아돌프 Gustaf VI Adolf | ||
1973 ~ 현재 | 칼 16세 구스타프 Carl XVI Gustaf |
바사 왕조가 시작되면서 첫번째 왕조인 문쇠 왕조의 혈통은 끝났으나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부터 바사 왕조와 문쇠 왕조의 혈통이 모두 이어졌고, 베르나도테 왕조 때 혈통이 잠시 끊겼으나 칼 15세부터 바사 왕조의 혈통을 잇기 시작했고, 구스타프 6세 아돌프부터는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의 혈통이 섞여 바사 왕조와 문쇠 왕조의 혈통을 모두 외가로 잇고 있다. 스웨덴 왕실 계보도
3. 역대 표어
왕이 바뀔 때마다 표어를 새로 만든다.사용기간 | 국왕 | 표어 |
1521 ~ 1560 | 구스타브 1세 바사(Gustav I Vasa) | 모든 권세는 하느님의 것(All makt är av Gud) |
1560 ~ 1568 | 에리크 14세(Erik XIV) | 하느님께선 원하시는 자의 소원만 들어주실지니(Gud giver åt vem Han vill) |
1568 ~ 1592 | 요한 3세(Johan III) | 우리의 보호자 하느님(Gud vår beskyddare) |
1592 ~ 1599 | 시기스문드(Sigismund) | 정의와 국민을 위해(För rätten och Folket) |
1599 ~ 1611 | 칼 9세(Karl IX) | 나의 위로이신 하느님(Gud min tröst) |
1611 ~ 1632 |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 하느님과 승리의 팔로(Med Gud och segrande vapen) |
1632 ~ 1654 | 크리스티나 여왕(Christina) | 지혜는 왕국의 버팀목(Visheten är rikets stöd) |
1654 ~ 1660 | 칼 10세 구스타브(Karl X Gustav) | 내 안의 운명의 신이-그가 하실 것이다(I Gud mitt öde - Han skall göra det) |
1660 ~ 1697 | 칼 11세(Karl XI) | 주님은 나의 보호자 되실지니(Herren är vorden min beskyddare) |
1697 ~ 1718 | 칼 12세(Karl XII) | 하느님의 도움으로(Med Guds hjälp) |
1719 ~ 1720 | 울리카 엘레오노라(Ulrika Eleonora) | 하느님은 나의 희망(I Gud mitt hopp) |
1720 ~ 1751 | 프레드리크 1세(Fredrik I) | |
1751 ~ 1771 | 아돌프 프레드리크(Adolf Fredrik) | 국가의 복지는 나의 복지(Statens välfärd, min välfärd) |
1771 ~ 1792 | 구스타브 3세(Gustav III) | 조국(Fäderneslandet) |
1792 ~ 1809 | 구스타브 4세 아돌프(Gustav IV Adolf) | 하느님과 국민(Gud och folket) |
1809 ~ 1818 | 칼 13세(Karl XIII) | 국민의 복지는 나의 최고의 법(Folkets väl min högsta lag) |
1818 ~ 1844 | 칼 14세 요한(Karl XIV Johan) | 국민의 사랑은 나의 보상(Folkets kärlek min belöning) |
1844 ~ 1859 | 오스카르 1세(Oskar I) | 정의와 진실(Rätt och sanning) |
1859 ~ 1872 | 칼 15세(Karl XV) | 법에 따라 건설되는 국토(Land skall med lag byggas) |
1872 ~ 1905 | 오스카르 2세(Oskar II) | 형제 민족의 복지(Brödrafolkens väl) |
1905 ~ 1907 | 스웨덴의 복지(Sveriges väl)[10] | |
1907 ~ 1950 | 구스타프 5세(Gustaf V) | 국민과 함께 조국을 위해(Med Folket for Fosterlandet) |
1950 ~ 1973 | 구스타프 6세 아돌프(Gustaf VI Adolf) | 무엇보다도 의무(Plikten framför allt) |
1973 ~ 현재 | 칼 16세 구스타프(Carl XVI Gustaf) | 스웨덴을 위해-시대와 함께(För Sverige – i tiden) |
4. 관련 문서
[1] 노르웨이에서 수상하는 평화상은 제외.[2] 고트족과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3] Camus hors D'age[4] 왕위 경쟁자인 에리크와 에리크는 제외하고 칼마르 동맹의 국왕인 포메른의 에리크를 스웨덴의 에리크 13세로 친다.[5] 망누스 4세와 공동[6] 망누스 4세와 공동, 알브렉트의 대립왕[7] 1521~1523년 섭정[8] 1587~1632년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지그문트 3세[9] 1599~1604년 섭정[10] 노르웨이와의 동군연합 해체 후 새로 정한 표어, '형제 민족'은 노르웨이인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변경이 불가피했다.[11] 북유럽 신화의 일부인 윙글링 사가(Ynglinga saga)에는 스웨덴 왕실의 시조가 오딘이라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마테라스 여신의 직계 자손이 일본 황실이 되었다는 일본 신화의 내용과 비슷한 유형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현 왕조는 이 신화와는 무관한 나폴레옹의 부하였던 프랑스 출신 장군이 세운 왕조다. 오히려 노르웨이의 하랄 1세 하르파그리가 윙글링 왕조의 후손이라고 한다.#[12] 스웨덴과 덴마크의 국왕이었다고 하는 전설상의 바이킹 왕. 역사적으로 실재가 확인되는 스웨덴의 첫번째 왕인 에리크 세게르셀(승리왕 에리크)은 이 사람의 아들들 중 한명인 굳센 비요른(Bjǫrn Járnsíða)의 후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