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도테 왕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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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aa7><colcolor=#ffcc00> 베르나도테 왕조 Maison Bernadotte | |
창립일 | 1818년 2월 5일 |
창립자 | 칼 14세 요한 |
現 수장 | 칼 16세 구스타프 |
국가 |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스웨덴 왕국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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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Ätten Bernadotte |
1810년, 프랑스 제국의 장군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가 스웨덴 국왕 칼 13세의 양자로 들어가 1818년 스웨덴 국왕 칼 14세 요한으로 즉위하여 시작된 왕가이다. 현재 국왕은 칼 16세 구스타프이다.
2. 신흥 왕가
나폴레옹 1세는 전성기 유럽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권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정복한 국가에 자신의 부하와 친척들을 국왕으로 옹립시켰다. 다만 나폴레옹이 직접 옹립한 다른 국가들과 달리 칼 14세의 경우 스웨덴 측에서 나폴레옹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먼저 국왕을 모시려고자하는 의사를 보였다. 그리고 정작 칼 14세는 스웨덴 귀족들의 반 나폴레옹 움직임에 동조하여, 결국 자신을 국왕으로 옹립시킨 나폴레옹을 퇴위시키는데 일조했다. 이런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나폴레옹에 의해 분봉된 왕조는 대부분 나폴레옹 몰락 이후 실각했지만 그중 유일하게 베르나도테 왕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왕가의 시조인 칼 14세의 출신은 프랑스 남서부의 평민 집안이었다. 아버지가 평범한 법률가[1]인 당시 프랑스에서 위세가 없던 집안이었다. 그런 가문의 평민에서 갑자기 왕실로 승격되었던 관계로 초기에는 기존 왕실과는 통혼하지 못했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출세한 다른 신흥가문과 혼인을 맺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1980년까지 귀천상혼 및 살리카법을 둘 다 매우 엄격하게 지켰다. 결과적으로 19세기 말 ~ 20세기 초까지 오면서 혈통상 왕실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기존의 스웨덴 왕가였던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는 스웨덴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계속 계승권을 주장했으나 시간이 흘러 남계후손은 끊겼고 여계후손만 남은 상태에서 1881년 계승권 1위였던 바덴의 빅토리아가 구스타프 5세와 결혼하면서 구세대 스웨덴 왕조와 신세대 스웨덴 왕조는 결합하게 되었다. 또한 빅토리아는 구 왕실의 마지막 후계자였기 때문에 그 이후의 국왕들은 이전의 스웨덴 왕가 혈통도 계승하게 되면서 스웨덴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2] 베르나도테 왕가는 스웨덴의 예전 왕조인 바사 왕조의 문장을 계승했다.
1905년에 노르웨이가 독립하기 전까지 동군연합 형태로 노르웨이 왕위도 겸했다. 독립에 대한 타협책으로 베르나도테 왕조의 칼 15세의 외손자이자 덴마크의 왕자였던 호콘 7세가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프리드쇼프 난센이 오스카르 2세를 설득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현임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와 왕비 사이에는 1남 2녀가 있는데, 이전에는 장자 상속이되 여자보다 남자를 우선했지만 1980년 세계 최초로 절대적 맏이 상속법을 도입해 지금은 남녀구분없이 무조건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다. 칼 16세 구스타프 본인은 외아들 칼 필립 왕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지만, 의회의 입법으로 빅토리아 공주가 왕세녀로 책봉됐다. 현 국왕이 사망하거나 퇴위하면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빅토리아 왕세녀가 스웨덴 역사상 4번째 여왕[3]이 된다. 빅토리아 왕세녀는 8년간의 열애 끝에 왕실로부터 결혼을 허락받아 2010년 6월 19일에 약혼자 다니엘 웨스틀링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부마가 된 다니엘에게는 다니엘 공,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 2012년 2월 말에는 빅토리아 왕세녀와 다니엘 공의 장녀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에스텔 공주가 태어났고, 2016년 3월에는 서열 3위 오스카르 왕자가 태어났다.
3. 현재 주요 구성원
2023년 |
왼쪽 윗줄부터 칼 필립 왕자, 소피아 왕자비, 마들렌 공주, 마들렌 공주의 남편 크리스토퍼 오닐, 실비아 왕비, 칼 16세 구스타프, 빅토리아 왕세녀, 다니엘 공, 에스텔 왕세손, 오스카르 왕자
4. 여담
- 왕실에 대한 지지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2010년 출간된 <칼 구스타프 16세 - 군주가 되길 원치 않은 군주>라는, 구스타프 왕에 대한 소문들을 추적 및 정리한 책에 의하면 "스트립 클럽과 불법 클럽, 그리고 모피 코트 속으론 알몸인 여인네들. 여자들은 그저 식후에 커피와 함께 제공되는 디저트용이었다." "구스타프 왕은 또 세르비아 갱 밀레 마르코비치가 스톡홀름의 국립 경찰청 아래 지하 클럽에서 베푼 파티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해 벌거벗은 여성들과 섞여 자쿠지를 즐기고 짝을 맞춰 '문에 이름표가 붙여진 방들' 즐기기도 했다."는 내용의 책이 나왔는데, 책이 나온 후에 80% 이상의 국민들이 왕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고 답변했으며, 50% 이상의 국민들이 왕가의 사생활을 조사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웨덴 왕실 이미지에 먹칠한 것은 사실이기에 칼 16세 구스타프는 조기 퇴위 압력을 받았는데, 마침 타이밍 좋게 현재 스웨덴 왕족들 중 가장 평판이 좋은 왕세녀가 에스텔 공주를 낳으면서 일단 입헌군주제 폐지는 없던 일로 돌아갔다.[4]
- 서양의 왕족, 귀족들은 성씨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는 관례라 따라 스웨덴 왕족들도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다. 여권에도 긴 이름과 함께 성씨 대신 정식 호칭만 붙는다.
- 왕의 자녀와 손주는 출생과 함께 공작위, 또는 여공작위를 받는다.
- 영화 <몰락>에 등장하는 비스보리 백작 폴케 베르나도테가 바로 이 집안 출신이다. 다만 아버지 오스카르 왕자(오스카르 2세의 차남)가 소설가와 귀천상혼해서 낳은 자식(2남 3녀 중 막내)이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은 없었다. 나중에 UN에서 일하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재하던 도중 1948년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테러리스트 조직인 레히에게 암살당했다. 국제법을 공부할 때 UN의 국제법상 법인격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베르나도테 사건이 이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 창업군주인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의 형제는 프랑스에서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1966년에 가문의 대가 끊겼다.
5. 역대 국왕
국왕 | 탄생 | 사망 | 나이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칼 14세 요한 | 1763.01.26. | 1844.03.08. | 81세 | 1818.02.05. | 1844.03.08. | 26년 38일 | |
오스카르 1세 | 1799.07.04. | 1859.07.08. | 60세 | 1844.03.08. | 1859.07.08. | 15년 125일 | [5] |
칼 15세 | 1826.05.03. | 1872.09.18. | 46세 | 1859.07.08. | 1872.09.18. | 13년 76일 | |
오스카르 2세 | 1829.01.21. | 1907.12.08. | 78세 | 1872.09.18. | 1907.12.08. | 35년 88일 | [6] |
구스타프 5세 | 1858.06.16. | 1950.10.29. | 92세 | 1907.12.08. | 1950.10.29. | 42년 336일 | [7] |
구스타프 6세 아돌프 | 1882.11.11. | 1973.09.15. | 90세 | 1950.10.29. | 1973.09.15. | 22년 327일 | [8] |
칼 16세 구스타프 | 1946.04.30. | 생존 중 | [age(1946-04-30)]세 | 1973.09.15. | 재위 중 | [age(1973-09-15)]년째 | [9] |
[1] 당시 프랑스에서 법률가는 신흥 계급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2] 칼 14세의 왕비인 데지레 클라리도 프랑스 평민 출신이었으므로 오스카르 1세까지는 프랑스 혈통이었다.[3] 이전에는 마르가레타 발데마르스도테르, 크리스티나,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있었다.[4] 현 국왕과 왕비는 쇼윈도 부부고, 1남 2녀 중 장녀 빅토리아 왕세녀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이 사생활이나 결혼 상대가 문제가 있다보니 빅토리아 왕세녀 부부의 지지도가 나머지 왕실 구성원 지지도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높다. 왕세녀의 남편인 다니엘 공이 너무 평범하다고 까였지만, 일단 사회적으로는 떳떳한 직업을 가졌었고 결혼 후에는 사고치는 것 없이 부부 사이와 자녀 양육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인식이 격세지감 수준으로 바뀐 것.[5]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자[6] 칼 15세의 동생. 1905년 6월 7일, 노르웨이 왕위를 상실했다.[7] 오랫동안 스웨덴을 통치하면서 양차대전의 위기에서 스웨덴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은근슬쩍 나치에 협력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독일 출신인 아내 바덴의 빅토리아가 친독 성향이라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사생활적으로도 동성애 스캔들에 휘말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8]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왕세자였던 1926년에 경주를 방문해 서봉총 발굴을 참관했다. 당시 발굴 작업을 도왔던 일제가 "전하의 이름을 이 무덤에 붙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자, "그렇게 하면 천년 왕국을 욕보이게 된다."고 거절했고, 스웨덴의 한자 음차인 서전(瑞典)의 앞 글자와 무덤에서 발견된 금관에 장식되어 있던 새(봉황)를 합쳐 서봉총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9] 베르나도테 왕조 역대 국왕 중 최장기 재위중.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손자로, 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는 그가 1살 때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의회의 헌법개정으로 1980년에는 왕위계승법이 절대적 맏이 상속제로 정해졌고, 이에 따라 칼 16세 구스타프의 맏딸인 빅토리아 왕세녀가 현재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