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09:52:25

나사우 가문

1. 개요2. 언어별 표기3. 기원
3.1. 공통 가계3.2. 발람계
3.2.1. 역대 수장
3.3. 오토계
3.3.1.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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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룩셈부르크네덜란드 왕가의 뿌리가 되는 유럽의 주요 귀족 가문이다.

이름은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나사우 성(Burg Nassau)에서 유래했다.

2. 언어별 표기

독일어 Haus Nassau
룩셈부르크어 Haus vun Nassau
네덜란드어 Huis Nassau
프랑스어 Maison de Nassau

3. 기원

과거 동프랑크 왕국부족 공국 중 하나였던 프랑켄 공국에서 출발하며 시조는 라우렌부르크의 디도(Dudo von Laurenburg ?~1124)로 여겨진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호엔슈타우펜 왕조가 몰락하고 대공위시대에 접어들면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255년 하인리히 2세(Heinrich II. "der Reiche" von Nassau 1180~1251?)의 아들 발람과 오토가 나사우를 분할하면서 2개의 가계로 갈라졌다. 발람 2세(Walram II. von Nassau 1220~1276)의 후손들이 발람계, 오토 1세(Otto I. von Nassau 1224~1290)의 후손들이 오토계가 되었는데 발람의 후손들이 오늘날 룩셈부르크 대공 가문이고, 오토의 후손들이 오늘날 네덜란드오라녀나사우 왕조의 뿌리이다.

나사우 가문은 이후 여러 가계로 갈라졌는데 1783년 가문의 구성원들끼리 가문 협정(Nassauischer Erbverein)을 체결해 발람계와 오토계 둘 중 하나가 멸족되면 다른 한쪽이 이어받기로 했으며 준살리카법을 채택해 남성 후계자가 없을 경우 여성의 계승을 인정했다.

3.1. 공통 가계

디도 루프레히트 1세 루프레히트 2세
발람 1세 하인리히 2세 발람 2세[1]
루프레히트 5세
오토 1세[2]
요한
루프레히트 4세
아르놀트 1세 하인리히 1세
루프레히트 3세 헤르만

3.2. 발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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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대관식을 받은 적이 없는 로마왕이지만 사실상 황제였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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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샬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라마 10세 투포우 6세
왕위 계승자 · 대통령 및 총통 · 공산국가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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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은 이쪽을 말한다. 1255년 발람 2세와 오토 1세가 체결한 프리마 디비소(Prima divisio)에 따라 발람 2세의 후손들은 나사우바일부르크 백작이 되었다. 주로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활동했으며, 발람 2세의 아들 아돌프오스트리아 공국 합스부르크 가문알브레히트 1세에 맞서 황제선거에서 독일왕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4~15세기에는 4명의 마인츠 선제후들을 배출하기도 했다.[3]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1816년 나사우-바일부르크 빌헬름(Wilhelm I. von Nassau 1792~1839)이 초대 나사우 공작이 되었다. 빌헬름의 아들 아돌프 공작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벌어지자 오스트리아 제국 편을 들었으나 전쟁이 프로이센 왕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나사우 공국을 빼앗겼고 독일 제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여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먼 친척인 네덜란드 국왕 빌럼 3세가 딸 빌헬미나만 남기고 사망하면서 네덜란드와 동군연합이었으나 살리카법을 따르던 룩셈부르크 대공국대공으로 즉위했다.

아돌프의 아들 기욤 4세는 딸만 두었고, 장녀 마리아델라이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샤를로트 여대공부르봉파르마의 펠릭스 공자[4]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보르보네파르마 가문(Casa di Borbone di Parma)으로 넘어가는 듯 싶었다. 하지만 1987년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수장 카를로스 우고(Carlos Hugo 1930~2010)[5]장 대공의 아들들의 결혼 문제로 귀천상혼을 들먹이자 대판 싸우고 나사우바일부르크 성씨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6]

3.2.1. 역대 수장[7]

3.3. 오토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라녀나사우 왕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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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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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에서 활동한 발람계와 달리 오토계는 저지대 국가에서 주로 활동했다. 오토 1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하인리히는 나사우지겐, 차남 에미코는 나사우하다마르, 3남 요한은 나사우딜렌부르크를 물려받았다. 나사우딜렌부르크를 물려받았던 요한은 자녀 없이 죽어서 하인리히의 후손들이 나사우딜렌부르크를 물려받았는데, 하인리히의 증손자인 딜렌부르크 백작 엥겔베르트(Engelbert I. Graf von Nassau-Dillenburg 1370~1442)는 부르고뉴 공국으로 건너가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을 섬겼고 그 대가로 브레다 백작의 상속녀 요한나 반 폴라넨(Johanna van Polanen 1392~1445)과 결혼했다. 네덜란드의 국부 침묵공 빌럼은 엥겔베르트의 5대손이며, 현재 네덜란드 오라녀나사우 왕조의 시조 빌럼 1세는 이 침묵공 빌럼의 동생 요한 6세(Johann VI. von Nassau-Dillenburg 1536~1606)의 후손이다. 침묵공 빌럼의 가계는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을 겸한 윌리엄 3세메리 2세와의 사이에서 후사를 얻지 못해 단절되어서 본가인 나사우딜렌부르크를 계속 다스리던 요한의 후손들이 네덜란드를 이어받아 통치했다.

3.3.1. 출신 인물



[1] 나사일바일부르크 계통 조상[2] 오라녜나사우 계통 조상[3] 마인츠 선제후는 선제후 가운데 최고 서열로 황제선거에서 마지막으로 투표할 수 있는 캐스팅보드의 권한이 있었다.[4] 파르마 공국의 마지막 공작 로베르토 1세의 아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 치타의 동생이다.[5] 펠릭스 공자의 형 보르보네파르마의 사베리오의 맏아들. 네덜란드 율리아나 여왕의 차녀 이레너 공주와의 결혼으로 네덜란드 헌법 위기를 불러왔으며 카를리스타를 이끌면서 스페인 보르본 왕조, 네덜란드 오라녀나사우 왕조와 반목하는 등 생전 여러모로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이다.[6] 비록 1995년 장 대공과 부르몽파르마 가문 사람들이 화해하긴 했으나 왕실 이름은 계속 나사우바일부르크를 쓰기로 했다. 한 번 싸운 앙금이 쉽게 풀리지 않기도 하고.[7] 룩셈부르크 대공 아돌프 이전은 직계만 작성[8] 남계 단절[9] 여기서부터 남계로는 부르봉파름 가문으로 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