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0:31:09

알브레히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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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자]: 프리드리히 2세의 자매인 마르가레테의 아들 하인리히와 프리드리히
마르가레테의 두 번째 남편 보헤미아 국왕 오타카르 2세
프리드리히 2세의 조카인 게르트루드의 첫 번째 남편 모라비아 변경백 블라지슬라프
게르트루드의 두 번째 남편 바덴의 헤르만
게르트루드의 세 번째 남편 로만 다닐로비치
게르트루드의 아들 바덴 변경백 프리드리히 1세가 혈연 관계를 근거로 오스트리아 공작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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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d700><colcolor=black>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조 2대 독일왕
알브레히트 1세
Albrecht I
제호 알브레히트 1세 (Albrecht I)
출생 1255년 7월
신성 로마 제국 자유제국도시 라인펠덴
사망 1308년 5월 1일 (향년 52세)
스위스 아르가우 빈디슈
재위 독일왕
1298년 7월 27일 ~ 1308년 5월 1일
오스트리아슈타이어마르크 공작
1282년 12월 27일 ~ 1308년 5월 1일
배우자 케른텐의 엘리자베트 (1274년 결혼)
자녀 안나, 아그네스, 루돌프 1세[1], 엘리자베트, 프리드리히 1세, 레오폴트 1세, 카타리나, 알브레히트 2세, 하인리히, 오토, 유타
아버지 루돌프 1세
어머니 호엔베르크의 게르트루트
형제 마틸다, 카타리나, 아그네스/게르트루트, 헤드위크, 클레멘티아, 하르트만, 루돌프 2세, 유타

1. 개요2. 생애3. 가족
3.1. 조상3.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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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성 로마 제국독일왕, 오스트리아슈타이어마르크공작.

2. 생애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첫 독일왕(대관 받지 않은 황제)이 된 루돌프 1세와 호엔베르크의 게르트루트[2]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282년, 루돌프 1세는 아들 알브레히트 1세와 루돌프 2세에게 각각 오스트리아 공국과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을 물려주었다. 1283년 라인펠덴 조약에서 루돌프 1세는 알브레히트에게 슈타이어마르크까지 물려주었고, 대신 루돌프 2세에게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외 영지인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3]를 보상으로 주었다. 알브레히트 1세는 자신의 예속기사들과 함께 지방 귀족들의 저항을 진압하고 오스트리아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등 무난한 통치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루돌프 1세는 알브레히트에게 독일왕위를 안전하게 물려줄 수가 없었다. 보헤미아 왕이며 전대 왕 오타카르 2세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위인 바츨라프 2세[4]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290년에 헝가리라슬로 4세가 암살당하자 알브레히트를 헝가리 왕위 계승자로 만드려는 계획도 실패했다. 1291년, 루돌프 1세가 죽자 선제후들은 알브레히트 1세의 힘과 그의 세습 영지가 완성되는 것을 두려워해 나사우 백작 아돌프를 다음 독일왕으로 선출하였다. 다음에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에서 봉기가 일어나 알브레히트는 그의 적수가 가진 통치권을 인정하고 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알브레히트 1세는 왕위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않았고 아돌프가 튀링겐마이센에서 자신의 힘을 키우려고 하자 그의 행동에 질린 제후들에 의해 결국 1298년 독일왕으로 선출되었다. 두 왕은 괼하임 전투에서 마주쳤고 결국 아돌프가 패배하여 전사했다. 알브레히트 1세는 영향력이 큰 제후들에게 광범위한 약속을 하고 안전하게 지원을 얻어내 1298년 7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열린 황제선거에서 독일왕으로 선출되었고 8월 아헨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알브레히트 1세는 근엄했지만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지 않은 공정성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나 당시 독일왕 가운데 현실적인 지성을 소유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는 도시를 격려했고 사적인 전쟁에 대항해 포고를 내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칙령을 집행하기 위해 제후들과 동맹을 맺었다. 농노들은 이 근엄한 군주를 친구로 맞았고 알브레히트는 경멸당하고 박해받는 유태인을 보호했다. 빌헬름 텔 전설에서 묘사되는 스위스 주들에 대한 탄압과 잔인함에 대한 이야기는 16세기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지금은 전설로 여겨진다.

알브레히트는 유럽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탐지했다.

그러나 1308년 3월 1일에, 슈바벤의 빈디슈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를 진압하는 도중에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에 대한 적합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여긴 조카 요한 파리키다에게 암살당했다. 알브레히트 1세가 빈티투어에서 개최한 연회에 참석하고 호프부르크로 귀환할때 근위대와 떨어진 틈을 노려 암살자들을 이끌고 공격했다. 이 때 알브레히트 1세의 호위병은 소수에 불과했던 터라 당할 수밖에 없었고, 알브레히트 1세는 요한과 암살자들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요한의 공격에 머리가 쪼개져 사망했다. 요한은 이로 인해 존속 살인자(Parricida)란 악명을 얻었으며 알브레히트 1세의 3남 레오폴트 1세가 복수를 위해 군대까지 동원하여 그를 찾아내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요한은 영영 종적을 감췄다. 이탈리아 반도 피사까지 도망쳤다고 하나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는 남은 기록이 없다. 여담으로 이 사건은 빌헬름 텔에도 나온다.

3. 가족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알브레히트 1세
(Albrecht I)
<colbgcolor=#fff3e4,#331c00> 루돌프 1세
(Rudolf I)
<colbgcolor=#ffffe4,#323300> 합스부르크 백작 알브레히트 4세
(Albrecht IV, Count of Habsburg)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2세
(Rudolf II, Count of Habsburg)
슈타우펜의 아그네스[5]
(Agnes of Staufen)
키부르크의 헤드비히
(Hedwig of Kyburg)
키부르크 백작 울리히 3세
(Hartmann III, Count of Kyburg)
체링겐의 안나
(Anna of Zähringen)
호엔베르크의 게르트루트
(Gertrude of Hohenberg)
호엔베르크 백작 부크하르트 5세
(Burkhard V, Count of Hohenberg)
호엔베르크 백작 부크하르트 4세
(Burkhard IV, Count of Hohenberg)
아이헬베르크의 빌리피르크
(Wilipirg of Aichelberg)
튀빙겐의 마틸데
(Mathilde of Tübingen)
튀빙겐 궁정백 루돌프 2세
(Rudolf II, Count Palatine of Tübingen)
론스베르크 가문 하인리히 변경백의 딸
(a Daughter of Margrave Heinrich of Ronsberg)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부인 안나
(Anna, Margravine of Brandenburg)
1275년 1327년 3월 19일 브란덴부르크잘츠베델 변경백 헤르만
슬하 1남 3녀
브로츠와프 공작 헨리크 6세
슬하 3녀
2녀 헝가리 왕비 아그네스
(Agnes, Queen of Hungary)
1281년 5월 18일 1364년 6월 10일 언드라시 3세
1남 루돌프 1세[6]
(Rudolf I, King of Bohemia)
1282년 1307년 7월 3일 또는 7월 4일 프랑스의 블랑슈[7]
폴란드의 릭사 엘즈비에타[8]
3녀 로렌 공작부인 엘리자베트
(Elisabeth, Duchess of Lorraine)
1285년 1353년 5월 19일 로렌 공작 프레데리크 4세
슬하 1남 1녀
2남 대립 독일왕 프리드리히[9]
(Friedrich, anti-king of Germany)
1289년 1330년 1월 13일 아라곤의 이사벨
슬하 2녀
3남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1세
(Leopold I, Duke of Austria)
1290년 8월 4일 1326년 2월 28일 사보이아의 카테리나
슬하 2녀
4녀 칼라브리아 공작부인 카타리나
(Katharina, Duchess of Calabria)
1295년 1323년 1월 18일 칼라브리아 공작 카를로
4남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2세[10]
(Albrecht II, Duke of Austria)
1298년 12월 12일 1358년 7월 20일 피르트의 요하나
슬하 4남 2녀[11]
5남 오스트리아 공작 하인리히
(Heinrich, Duke of Austria)
1299년 1327년 2월 3일 비르네부르크의 엘리자베트
6남 오스트리아 공작 오토
(Otto, Duke of Austria)
1301년 7월 23일 1339년 2월 26일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슬하 2남[12]
보헤미아의 안나[13]
5녀 외팅겐 백작부인 유타
(Gutta, Countess of Öttingen)
1302년 1329년 3월 5일 외팅겐 백작 루트비히 5세


[1] 보헤미아 국왕으로서는 루돌프 1세,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 공작으로서는 루돌프 3세이다.[2] 호엔촐레른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이다. 다만 당시 호엔촐레른 가문은 뉘른베르크 성주라는 한미한 직책에 불과한 지방 귀족 가문이었다.[3] 현재의 독일 슈바벤 지역과 프랑스 알자스 일대에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월경지. 알자스의 영토는 지속적으로 프랑스에 갉아먹혔고, 슈바벤의 영토는 나폴레옹 전쟁 중인 1805년 프레스부르크 조약으로 바덴 대공국뷔르템베르크 왕국에게 할양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 제국빈 회의에서 이 지역을 포기한 대가로 받아간 곳이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4] 루돌프 1세의 막내딸이자 알브레히트 1세의 여동생 유타와 결혼했다.[5] 호엔슈타우펜 가문과는 관련이 없는 별개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6] 오스트리아 공작으로서는 루돌프 3세이다.[7] 필리프 3세의 딸이다.[8] 프셰미수 2세의 딸이다.[9] 오스트리아 공작으로서는 프리드리히 1세/3세이다. 프리드리히와 알브레히트 1세의 조카인 바이에른 공작 루트비히동시 선출선제후 제도의 확립에 영향을 미쳤다.[10] 다른 형제들이 장성한 부계 후손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모두 알브레히트 2세의 직계 후손이다. 독일왕 알브레히트 2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증조부이기도 하다.[11] 오스트리아 공작 루돌프 4세, 명목상 오스트리아 공작 프리드리히 3세,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3세,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3세 등[12] 명목상 오스트리아 공작 프리드리히 2세, 명목상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2세[13] 얀 루쳄부르스키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