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09:43:24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
Nürnberg
파일:Bandera_de_Núrnberg.svg.png
뉘른베르크의 문장
국가 독일
바이에른
인구 515,201명 (2017)
시간대 UTC+1 (서머타임 준수)
(한국과 -8 시차)
서울까지
파일:20190130_151530.jpg
1. 개요2. 표기3. 역사4. 유명한 것5. 교통6. 시설7. 여담8. 파생 고유명사
8.1. 축구 구단8.2. 경순양함8.3. 영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C3%BCrnberg_panorama.jpg
뉘른베르크 정경
Nürnberg

1. 개요

뉘른베르크는 독일의 도시로 186.38㎢의 면적에 바이에른주에서 마인강의 지류 페그니츠강 우안의 해발고도 3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뮌헨 다음의 규모를 자랑하며 독일 유수의 상공업도시이기도 하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로 오랜 제국도시로서 옛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환상성벽과 역사적인 탑, 재건된 성이나 교회가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2. 표기

'-g'를 '그'로 잘못 옮긴 '뉘른베르그', 'r' 뒤에 'e'가 있는 걸로 오인한[1] '뉘렌베르크', '뉘렌베르그' 등의 표기 예가 있다.

프랑스어로는 Nuremberg[nyʁɛ̃bɛʁ](뉘랭베르)[2]라고 한다. 묘하게 'e'가 들어갔고 'n'이 'm'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프랑스어에서는 저 자리에 'n'이든 'm'이든 비모음화돼서 별 차이가 없기는 하다. 그런데 영어에서 이 표기를 그대로 따라가서 영어에서는 [ˈnjʊərəmbɜːrɡ](뉴어럼베르그)와 같이 [m]으로 발음된다.

3. 역사

11세기 중엽 하인리히 3세가 뉘른베르크 성을 건설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12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도시가 되어 제국의회가 열렸으나, 이후 영주에 대한 독립투쟁이 일어나 1427년 시(市)에 성을 매도하였고, 16세기까지 예술과 과학의 최성기로서 알브레히트 뒤러, 조각가 아담 크라프트, 바이트 슈토스, 황동 주조공 비셔, 시인 한스 작스 등이 활약하였다.

1525년 종교개혁 때에는 프로테스탄트 쪽에 섰으며, 1532년에는 '뉘른베르크의 종교회의'를 체결하는 등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미 인구 수만 명을 보유한 도시였고 30년 전쟁이 완전히 끝난 1683년에도 인구가 40,000명으로 유지되었다.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바이에른 왕국에 편입되었다. 이 당시에는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려 1804년에는 전쟁으로 인구가 30,000명으로 줄었는데 수백년 동안 이렇게 인구가 줄어들었을 시기가 없을 정도였다.

1919년 독일 제국이 무너지면서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하에서 바이에른 자유주의 일부가 되었고, 1933년 10일부터 16일까지 독일 국민 50만명이 참가한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1930년대 초반만 해도 군소정당이었던 나치스는 중소도시 뉘른베르크에서 진행된 보궐선거에 온 당력을 쏟아부어 선거에 압승하도록 총력전을 펼쳤고, 괴벨스는 이 결과를 적극 왜곡하여 마치 독일 국민들이 나치스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처럼 선전전을 펼쳤다. 이후 뉘른베르크 및 독일 남부 지역은 마치 나치스의 본진처럼 여겨졌으며,[3] 이 때문인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열렸다.

4. 유명한 것

문화적으로는 옛 고도이기에 카이저부르크 성, 장크트 세발트 성당 등의 많은 유적지가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희가곡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로 유명해졌다. 카논으로 유명한 요한 파헬벨이 이 곳 출신이다.

나치의 발상지이기도 해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한 나치 전당대회장과 전당대회장이 건축되기 이전 전당대회가 열린 체펠린 비행장이 있다. 이중 전당대회장은 전쟁중 시공이 중단되었기에 파사드만 완성된 무한성 상태이다가 현재는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6세기 무렵에는 시계공업 등 정밀 기계 공업의 중심으로 뉘른베르크의 달걀(Nürnberger Ei)이라고 불리던 회중시계나 오토마톤이라는 자동인형으로 유명했다. 독일어 위키백과 근대부터는 공업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기 대문에 교외에 금속·전기·기계·자동차·광학기계·완구·문방구 등의 공장이 많으며 그 연안을 따라 새로운 공장지대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완구박람회가 열리는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또한 마인강과 페그니츠강 사이에 운하를 개통하면서 상업 또한 활발하다.

지역 특산물로는 아무래도 뉘른베르크 소시지가 꼽힌다. 일반적인 독일 소시지와는 다르게 약간 얇은 두께와 비교적 작은 크기가 특징. 먹어보면 약간 딱딱하고 퍼석퍼석하게 씹히는맛이 다른 소시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역 특산물 치고는 상당히 유명해서 타 지역에서도 구하기 어렵지 않은 편이고 맥도날드에도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베이스로한 메뉴가 있을정도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먹는 생강과자인 뉘른베르크 레브쿠헨(Nürnberger Lebkuchen)도 잘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거행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유명하다.

5. 교통

대중교통으로는 버스와 트램도 있지만 의외로 U반이 다니는 도시다. 슈타트반(경전철) 주제에 U반 행세하는 타 도시의 유사전철과는 다른 진짜 전철 맞다. 노선이 3개밖에 안되지만 뉘른베르크 시내 자체가 크지않아서 그다지 불편하진 않다. U반이 다니는 만큼 S반도 있다.

도시 북부에 공항(뉘른베르크 공항)이 있으며, 시내 중심과는 U반(U2호선)으로 연결되어있다. 활주로는 길이 2700m짜리 1개만 있으므로 장거리 노선이나 대형 기종 취항은 어렵다. 우리나라로 가는 직항편은 없으며, 에어프랑스(파리 환승), KLM(암스테르담 환승), 루프트한자(프랑크푸르트 환승), 터키항공(이스탄불 환승) 이용시 1회 환승으로 올 수 있다.

6. 시설

교육기관으로는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가 있다. 바이에른 주에서는 뮌헨 대학교에 이어서 둘째가는 규모.[4]

전시장으로는 뉘른베르크 메세가 있다.

7. 여담

파일:attachment/뉘른베르크/17.jpg
뉘른베르크 중앙역 식당가에 히다마리 스케치 캐릭터를 붙인 케밥[5] 가게가 있었다. 해당 짤은 2009년 자료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미지 검색 결과를 보면 널리 알려진 건 2012년 경인 듯하다. 다만 2017년 기준으로도 가게는 없어진 지 좀 됐다고 한다.#[6]

8. 파생 고유명사

8.1. 축구 구단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FC 뉘른베르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 경순양함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3. 영화

알렉 볼드윈이 주연한 리메이크 영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브라이언 콕스가 헤르만 괴링 역을 맡아서 열연했는데, 뉘른베르크 재판 시절의 괴링은 나치 독일 시절의 괴링과 달리 상당히 멀쩡했던 것도 그렇고 가히 진주인공으로 아주 멋있게 카리스마 넘치게 나온다.(...)[7] 그야말로 간지폭풍을 보여준다.제정신이 몇년만 일찍 돌아왔으면 아마 천수를 누렸을지도(...)

연합군을 매우 통렬하게 질책하며 특히 폴란드를 침략하고 유태인을 박해한 나치스를 추궁하는 미국 판사에게, 미국은 멕시코를 침략해 거대한 영토를 빼앗았고, 흑인을 제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느냐며 자신의 죄는 오직 전쟁에 패한 것밖에 없고 이런 재판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들먹이면서 물타기를 했다. 그런데 선제 공격을 한 쪽이 누구였는지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타당하진 않다.

호방한 성격과 입심으로 그를 전담한 미 육군 소위[8]와 친해져서 나중엔 그의 도움을 받아 음독자살한다. 이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괴링과 친해진 소위가 괴링의 부탁을 받고 독약인줄 모르고 독약을 건네준 설을 보여주는데 영화의 해석상 괴링과 친해졌던 소위가 알고 줬다고 암시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1] 독일어 한글 표기에서 중립 모음 슈와 [ə\]는 'ㅔ'로 적기 때문에, 모음이 없는 뉘른베르크의 경우에도 슈와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ㅔ'로 적는 실수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2] 2음절과 3음절의 모음의 음가는 같으나, 프랑스어 외래어 표기법 규정상 비모음 [ɛ̃\]는 '앵', [ɛ\]는 '에'로 적게 되어있어 이를 따랐다.[3] 밴드 오브 브라더스 제9화에 이와 관련된 분위기가 잘 묘사되어 있다.[4] 참고로 이 학교는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도 해외 캠퍼스가 있다.[5] 다른 독일 도시와 마찬가지로 터키인이 많으니 케밥 가게가 있는 것까지는 자연스러운 광경이다.[6] "Den Laden gibts nicht mehr, das Foto ist ziemlich alt(가게는 없어졌고, 사진은 꽤 오래되었습니다.)"라는 2017년 8월 6일 댓글이 달려있다.[7] 괴링은 맥주홀폭동당시에 하필이면 낭심에 부상을 입고 스웨덴에서 치료를 했는데, 이때 진통제인 모르핀에 중독되어 대전기간동안 찌들어 살며 여러 실책을 저지르며 수많은 나치인사들을 적으로 돌렸다. 전범재판을 앞두고 감옥에서 마약도 끊고 식사조절 및 운동으로 체중도 줄어들고 정신도 맑아져서 그야말로 미중년으로 회춘을 했다(...). 다만 감옥에 들어올 때 금지된 모르핀 대신 법에 허용된 각성제(정황상 당시엔 합법이었던 필로폰같지만)를 2만여 정이나 들고 들어와서는 아침저녁으로 20알씩 복용했는데, 결국 군의관들이 하루에 한 알 씩 줄이는 방식으로 끊게 했다.[8]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연합국은 주요전범 한사람에 1명씩 미육군위관급장교들이 붙어 그들의 고충을 듣고 상부에 보고해 관철 또는 거부하거나 하는 역할을 맡곁다. 이들과 전범들간의 관계는 제각각이었는데, 괴링의 경우처럼 이들과 굉장히 친밀해진 경우도 있었고, 딱히 적대적이지는 않았지만 사무적인 딱딱한 관계에서 끝나기도 했으며, 종종 담당전범을 은근히 괴롭히고 무시하는 유형도 있었다. 영화 뉘른베르크재판에서도 처음에 괴링을 전담한 이는 괴링에게 모욕을 주고 방청소를 지시했다. 괴링은 이에 대걸레를 바닥에 팽개치며 거부하다가 발작하며 쓰러진다. 이후 수감자들의 자살 및 자살미수사건이 발생하며 미육군장교들이 1명씩 붙었는데, 괴링과 친해진 소위는 이 때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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