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8 10:40:48

룩셈부르크어

게르만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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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ëtzebuergesch[1]
룩셈부르크어
언어 기본 정보
주요사용국 룩셈부르크
원어민 약 39만 명
어족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어파
서게르만어군
엘베게르만어군
고지 독일어
중서부 독일어
중부 프랑코 독일어
모젤프랑켄 독일어
룩셈부르크어
문자 로마자
언어 코드
ISO-639-1 lb
ISO-639-2 ltz
ISO-639-3 ltz
주요 사용 지역
언어별 명칭
독일어 Luxemburgische Sprache
룩셈부르크어 Lëtzebuergesch Sprooch
영어 Luxembourgish (Language)
프랑스어 Luxembourgeois
1. 개요2. 현황3. 글자4. 역사

1. 개요

룩셈부르크에서 쓰이는 게르만어파 언어의 일종. 독일어, 프랑스어와 함께 룩셈부르크의 세 공용어 중 하나이지만 사실상 독일어 방언의 일종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며, 그나마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어휘가 조금 많다는 것이다.

벨기에 뤽상부르 주 등 룩셈부르크 주변 지역에서도 일부 쓰인다.

2. 현황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룩셈부르크어'라는 개념이 성립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언어가 사실상 독일어와 큰 차이가 없는 언어이고, 문어(文語)로는 오랫동안 프랑스어를 써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어휘량이 부족하기에 비전문적이고 짧은 일상대화 위주의 사용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룩셈부르크어가 룩셈부르크의 공용어로 지정된 것도 1984년으로 얼마 되지 않았으며(그 전에는 프랑스어독일어만이 공용어) 정작 룩셈부르크에는 룩셈부르크어로만 구성된 신문이 없다. 아울러 유럽연합 공용어도 아니다.

관광객들이 접할 수 있는 룩셈부르크어 낱말로는 Judd mat Gaardebounen[2]이란 요리 이름 정도이다.

3. 글자

당연히 로마자를 쓰며, 흔히 알려진 26자 로마자 이외에 diacritics가 붙은 é, ä, ë가 쓰인다. 프랑스어, 독일어에 붙는 diacritics 역시 프랑스어/독일어 유래 어휘에 대해 쓰인다.

4. 역사

독일어 안에서도 상호 소통이 힘든 방언이 많아서, 이들과 비교할 때 특별히 언어학적으로 룩셈부르크어를 독일어와는 '다른' 언어라고 정의해야 할 근거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런 식이었다면 '독일어' 역시 여러 방언들의 모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룩셈부르크어가 독일어와 구분되는 이유는 언어학적 이유보다는 그들의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815년 독립했을 시기 독일어권과 프랑스어권의 경계였던 룩셈부르크 지방에는 각각의 언어 사용자를 구분하는 개념이 있었는데 독일어계는 도이치룩셈부르거(Deutschluxemburger),[3] 왈롱계로, 프랑스어 위주 화자는 벨쉬룩셈부르거(Welschluxemburger)로 지칭했으며 각각 동쪽과 서쪽의 비등한 수의 언어그룹이었다.

1839년 네덜란드 왕국에서 벨기에 독립 후 질서를 논의한 런던회의에 의하여 아르덴 숲 지역과 아를롱(불:Arlon 룩,독:Arel)을 위시로한 서쪽의 절반이 벨기에에 넘어갔고[4] 남은 건 도이치룩셈부르거들의 동쪽 룩셈부르크뿐이었다. 그런 인식은 그런 구분이 있었다 수준에서 유지되다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개전 이후로 사실상 희미해졌는데 독일 제국의 팽창을 보며 도이치룩셈부르거란 개념이 그러한 정책에 맞물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룩셈부르크어는 그때까진 별개의 언어적 특성이 관찰됐건 말건 모젤프랑켄 독일어 방언 중 하나로만 취급되었는데, 나치 독일이 기어코 중립국을 표방하던 룩셈부르크를 하루만에 점령했고 40년대에 이르러서는 도이치룩셈부르거란 개념을 내세운 나치 독일에 점령되고 국민들이 징집당한 경험까지 생겨 점차 독일인과 구별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알자스-로렌과 같이 문화/인종/언어적으론 독일과 유사할지 몰라도 정체성만은 그렇지 않았다고[5] 주장하지만 룩셈부르크인이 독일인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나치가 패망하고 난 후로 보인다. 룩셈부르크는 1815년 독립했을 시기부터 독일 연방에 참여하기도 했고, 1842년에는 독일 관세 동맹[6]에 참여하였다. 1848년 유럽전역의 독일민족 민중이 모두 모여 혁명 한 번 일으켜보려던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에 룩셈부르크 출신 의원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알자스-로렌 지방과 스위스에서도 독일민족 통합에 동조했던 세력이 있던 만큼 그 당시 전유럽적으로 불었던 민족주의적 움직임을 고려하면 달리 볼 여지도 있기는 하나, 룩셈부르크는 저 관세 동맹에 1842년[7]에 참여하였고 독일 제국의 영토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망한 1919년까지 관세동맹 안에 있을 정도로 독일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에 비해서 독일 민족주의가 느슨했던 알자스-로렌은 보불전쟁의 결과로 독일 제국에 병합되면서 1872년 독일 관세 동맹에 강제로 가입당하고, 스위스는 당연히 참여 자체를 안했다.

룩셈부르크 지역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제국에게 합병당했는데, 광범위한 자치권을 보장받는 것만으로 별다른 독립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이탈리아, 독일의 파시스트들의 영향을 받아 독일민족주의에 열광하여 자원입대하는 룩셈부르크 젊은이들도 있었으나, 나치는 패망했을뿐만 아니라 천하의 개쌍놈이란 점이 포인트라서, 전후에는 룩셈부르크인들이 나치 독일을 상대로 저항을 했던 점만 부각했다. 룩셈부르크의 국어가 독일어에서 룩셈부르크어로 인식이 바뀐 것도 그 이후로, 1976년에 룩셈부르크어의 정서법이 확립되고 행정분야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84년에는 룩셈부르크어는 독일어, 프랑스어와 함께 사법분야에서도 사용되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은 2004년 독일어 표준어를 제정하는 국제기구인 독일어 맞춤법 위원회(Rat für deutsche Rechtschreibung)에도 자국언어인 룩셈부르크어는 독일어가 아니므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8] 재미있는 점은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어 사용국의 모임인 프랑코포니와 프랑스어 표준어 국제기구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국이란 것이다.

[1] [ˈlətsəbuə̯jəʃ\](러처부어여시).[2] 돼지고기와 콩을 함께 삶은 것.[3] 도르트문트에는 이 이름의 행정구역이 있다. Deutsch-luxemburger-Strasse.[4] 오늘날의 벨기에 왈롱의 뤽상부르 주다. 네덜란드의 왕은 그 당시 룩셈부르크의 대공이기도 하였다. 빠져나간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마스트리흐트가 포함된 마스강 유역의 림부르크 공국이 독일 연방에 참여하게 된다. 네덜란드 왕이 림부르크 공국의 공작이기 때문이기도 해서.[5] 문화/인종/언어적으로 옆동네 라인란트, 자를란트 지방과 유사하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개신교의 비중이 라인란트-팔츠가 44.6%, 자를란트가 19.6%인것과 달리 룩셈부르크에서 개신교는 공기취급이다(1.8%).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던 것.[6] 오늘날 독일 영토와 얼추 맞아 떨어진다. 반토막난 프로이센은 빼고.[7] 현재 독일의 주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보다 가입이 빨랐다.[8] 2012년부터 의원자격이 아닌 협력파견자으로서 룩셈부르크인 1명이 위원회 의원명단에서 소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