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5 15:31:55

국부

1. 國父; 한 나라의 아버지
1.1. 실존 국가
1.1.1. 실존하는 국가의 국부1.1.2. 멸망한 나라의 국부1.1.3. 창작물 속에 등장하는 나라들의 국부
1.2. 대한민국의 국부
2. 局部; 전체 중에 어느 한 부분을 이르는 말
2.1. 음부(陰部)를 칭하는 말
3. 國富; 국가의 자산4. 國府; 중화민국 국민정부

1. 國父; 한 나라의 아버지

Pater Patriae

사전적으로는 임금 혹은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이다. 창업군주나 독립운동가, 초대 대통령과 같은 나라의 건립자에게 이런 칭호가 붙는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업적으로 많은 존경을 얻고 있는 정치인에게 붙여주기도 한다.

사실 건국이라는 기준보다는 '체제'를 성립시키는데 기여한 사람을 지칭한다고 보는게 더 적절하다. 가령 폴란드레흐 바웬사는 건국과는 전혀 무관하지만[1] 공산주의 채제를 붕괴시키고 민주 체제를 성립시켰기에 국부 대접을 받으며 넬슨 만델라도 아파르트 헤이트를 무너뜨리고 신체제를 성립시켰기에 국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 대다수는 20세기 현대 인물들이다. 달리 말하면 체제가 바뀔 경우 도로 국부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는 얘기.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을 그 나라에 가서 무시하거나 욕하는 발언을 하면 다음날 뜨는 해를 못볼 수도 있다. 특히 북한. 하지만 국부가 그 나라에서 계속 존경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그 나라의 적국에 가서 무시하거나 욕하는 발언을 하면 재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

국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가령 대한민국, 일본,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물론 존경받는 위인은 많지만, 특별히 국부로 상정할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은 없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국부 대접받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정부에서 공인을 안한 것이기도 하지만[2]. 사실 국부란 개념은 개인숭배와도 교집합이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는 국부 개념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다.

다음은 국부로 인정받는 인물들의 목록.

1.1. 실존 국가

1.1.1. 실존하는 국가의 국부

  •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아랍 공화국의 국부.
  • 과달루페 빅토리아: 멕시코의 국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에 세워진 멕시코 제1제국을 붕괴시키고 멕시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덕분에 지명 등 여러 곳에 그의 이름이 붙여질 정도였지만, 후술할 콰우테목에 의해 뒷선으로 밀려난 상태. 아래의 담딘 수흐바타르와 처지가 비슷하다(...).
  •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남아공의 양대 국부. 각각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과 남아공 최후의 백인 대통령이다.[3] 후자의 경우 백인이면서 흑인들의 권리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페드루 2세와 비슷하다.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의 국부. 1991년에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2019년 3월 말까지 독재자로서 철권통치한 사람이지만, 일단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고, 그의 집권 기간에 카자흐스탄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으며, 집권 마지막에는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지시하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를 국부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그의 퇴임 후에 카자흐스탄 정부가 수도인 아스타나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이라고 개명하고 카자흐스탄의 주요 대도시의 대로를 '나자르바예프 거리'라고 개명할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명실상부히 카자흐스탄의 국부로 대접받고 있다. 독재자인데 국부 대접받는다는 점에서 보면, 아타튀르크나, 피델 카스트로, 로버트 무가베, 호찌민와 같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4]
  • 다비드 벤구리온, 하임 바이츠만, 테오도르 헤르츨: 이스라엘의 국부.[5] 바이츠만은 아세톤의 대량 생산법을 개발한 화학자였는데 연합군의 폭약 생산에 기여하여 영국과 연합군 지도자에게서 팔레스타인을 할양받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고 유대인 위원장에 올라 귀향운동을 주도했다. 헤르출은 시오니즘의 제창자다.
  • 담딘 수흐바타르: 몽골 인민 공화국의 국부.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압제에서 몽골을 독립시키고, 아시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몽골 인민공화국을 세웠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붉은 영웅)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이름. 탈공산화 이후에도 칭기즈 칸과 더불어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다만 과거에는 확고한 국부였다면 지금은 국부를 넘어 신급이 되어가는 칭기즈 칸에 비하면 다음 선으로 밀려난 느낌.
  • 라몬 막사이사이: 필리핀의 국부. 아래의 호세 리살과 함께 숭앙받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군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을 수호하기 위한 의용군을 결성하여 싸웠던 전쟁 영웅이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통령 시절에 청렴결백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부정부패 척결과 복지 정책의 확충, 지주층에 대한 견제에 열을 올렸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필리핀의 기틀을 다진 영웅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6]
  • 레오폴드 1세: 벨기에의 국부.
  • 레흐 바웬사: 민주 폴란드(제3공화국)의 국부. 사실, 대통령 재임시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경제 문제와 공산당 독재 정권 시절의 적폐들을 수습,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치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투쟁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폴란드인들이 그의 공을 인정하고 있다.
  •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의 국부. 짐바브웨의 경제를 망치고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독재자이기는 하나, 짐바브웨인들조차도 국부인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 리콴유: 싱가포르의 국부.
  • 마리아 테레지아: 오스트리아의 국모. 비록 마리아 테레지아는 멸망한 신성 로마 제국의 국모이지만, 현재의 독일에 해당하는 영역에서의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오스트리아라는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증흥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국모로서 숭앙받는 존재가 되었다.
  • 마오쩌둥: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
  •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찬드라 보세: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민족과 종교 지도자적 성격이 큰데 비하여 네루 수상과 수바스 찬드라 보세는 좀더 정치가적 성격이 강하다. 각자 이러니 저러니하는 흠은 있어도[7] 인도인들에게는 오늘날까지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 모하마드 진나: 파키스탄의 국부. 인도 내 이슬람인들을 따로 독립시킨 나라 파키스탄의 건국을 주도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파키스탄 헌법 초안도 그가 만들어냈다. 간디와 처음에는 같은 인도 독립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결국 서로 갈라졌다. 그의 탄생은 파키스탄 공휴일이며 바바에쾀(국부)이란 애칭으로 존칭받는다.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의 국부. 성 '아타튀르크'는 터키어로 '터키인의 아버지', 즉 '국부'라는 뜻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망한 이후 열강에 의해 사분오열될 뻔한 나라를 터키 독립전쟁을 통해 구하면서 그리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화국을 건국하여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해 세속주의와 정교 분리, 경제 발전을 추진하고[8] 종교의 정치화를 억제했으며, 터키의 모든 공공 건물에는 아타튀르크의 초상이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 등, 거의 알라 다음으로 신적인 존재로 숭배를 받는다. 그리고 현행법에 의해 공공장소에서 아타튀르크를 모독하면 경찰서 정모도 갈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으로 터키내에서 이슬람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 바실 레프스키: 불가리아의 국부.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서 불가리아의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운동을 주도했으며 비록 살아생전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보지 못 하고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럼에도 불가리아에서는 독립을 이끈 해방자이자 국부로 존경받는다.
  • 바츨라프 하벨: 체코의 국부.
  • 블라디미르 레닌: 구 소련과 현대 러시아 연방의 국부.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리즈시절에 해당되는 기간인 소련을 탄생시킨 인물이자, 이후의 러시아 역사에서 공화정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한 일등공신이라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 빌리 브란트: 독일통일의 국부. 서독 시절 총리를 지내면서 서방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동방정책으로 동독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과 꾸준히 교류를 한 덕분에 제2차 대전 패전 후 연합국에 의해 동서로 분단됐던 독일을 다시 통일하는데 큰 공헌을 한 지도자다.
  •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의 국부.
  • 샤를 드 골: (제5공화국이 들어선) 프랑스의 국부. 히틀러로부터 조국을 지켜냈고 제5공화국 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
  • 수카르노: 인도네시아의 국부.
  • 수파 누웡: (공산정권이 들어선) 라오스의 국부. 왕자[9]의 몸으로 왕국을 뒤엎고 공산국가를 세웠다. 수파누봉 공(公)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스탬퍼드 래플스 : 싱가포르의 국부. 래플스 본인은 싱가포르인이라 보기엔 좀 뭣하지만[10], 싱가포르라는 도시의 역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인지라, 리콴유와 함께 당당하게 국부로 대접받고 있다.
  • 시몬 볼리바르: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의 국부. 일명 남 아메리카의 조지 워싱턴. 위의 다섯개의 국가를 해방한 뒤 그란 콜롬비아라는 거대 국가를 세워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사후 분열되었지만 각국은 여전히 볼리바르를 국부로 추앙한다. 볼리비아라는 국명은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니 설명이 필요없다.
  • 쑨원 : 중화민국(대만)중국의 국부이자 영웅. 국공내전 전후로 오랫동안 서로 거짓 정부 취급하던 두 나라 대표가 만났던 이유가 (1981년) 쑨원의 부인 쑹칭링의 장례식을 합동으로 치르기 위해서라고 할 정도로 칭송받는다. 중국에서 최초로 공화정 체제를 세웠던 인물이기에 전제주의봉건주의를 멸시하던 대만으로 도피하여 살아 남은 중화민국 정부,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 모두 쑨원을 칭송하는 것이다.
  •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의 국부.
  •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의 이란의 국부. 하지만 이란이 현 신정체제에서 터키처럼 세속주의적 공화정으로 바뀐다고 해도 부패한 팔레비 왕조를 혁명으로 몰아내고 오랜 기간 군주정 치하에 있던 이란에 공화정을 이식했다는 점을 감안할때 현 신정 체제 정부 이후에도 국부의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도 크다.
  • 아웅 산: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도 아웅 산 장군의 묘지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미얀마의 정치인 아웅 산 수 지는 이 사람의 딸이다.
  • 아웅 산 수 지: 민주주의 정부 출범 이후의 미얀마의 국모로, 위의 아웅 산의 딸이다. 비록 미얀마가 민주화된 이후에 정치가로서는 논란이 많긴 하지만 어쨌거나 대내외적으로 미얀마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꼽히고 있는 관계로, 오늘날까지 미얀마인의 국모로서 추앙받고 있다.
  • 아흐마드 샤 마수드: 아프가니스탄의 국부. 대통령은 아니었으나 그의 저항이 아니었으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을 물리칠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후 현실은...
  • 에밀리아 플라테르 백작부인: 폴란드, 벨라루스, 리투아니아의 국모[11]. 리보니아 지역의 귀족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리보니아 지역을 러시아프로이센과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차지하게 되자, 이에 반발하는 반러시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24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했다. 하지만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벨라루스는 그녀의 영웅적인 행적을 기려 자국의 국모로 숭앙하고 있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그리스의 국부.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의 지배에 맞서 그리스의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그리스가 독립한 이후에는 총리직을 맡은 적도 있었다.
  • 에이먼 데 벌레라: 아일랜드의 국부. 아일랜드의 독립을 이끈 인물이다. 파리 강화 회담에서 아일랜드의 독립을 결의시키는 데 실패하자,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내어 아일랜드의 독립을 성공시켰던 비범한 인물이었다.[12]
  • 오라녜 공 빌럼 1세: 네덜란드의 국부. 오라녜(oranje)는 네덜란드어로 오렌지(orange)다. (국내에선 상당히 오랫동안 저 인물을 '오렌지 공 윌리엄'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오렌지색인 것.
  • 요시프 브로즈 티토: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 국가들의 국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성립시켜 수상 겸 대통령에 올라 복잡한 유고의 민족과 공화국들의 갈등을 조정하였다. 비록 티토 사후 유고는 급속도로 붕괴되어 총 6개의 국가(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로 쪼개졌지만 이들 유고 연방에 속해있었던 각국은 여전히 통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티토를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 우겐 왕축: 부탄의 국부. 창업군주다.
    • 지그메 싱계 왕축: 민주화된 부탄의 국부. 국민들이 민주화에 반대했는데 국왕이 이를 무릅쓰고 자국을 민주화시킨 특이케이스로 유명하다.
  • 장제스: 중화민국의 국부. 중화민국 내에서 쑨원 다음으로 '제2의 국부'(國父)로 불린다. 다만 이는 외성인 한정으로, 본성인들에게는 자신들을 탄압한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 조모 케냐타: 케냐의 국부. 케냐 독립 운동인 마우마우 운동에 참여했으며, 독립 이후 총리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다만 14년에 이르는 그의 제왕적 통치와 부족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재 케냐의 모든 주화와 지폐에는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 조지 워싱턴: 미국의 국부. 사실 미국은 The Founding Fathers(건국의 아버지들)라고 해서 독립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묶어서 존경하지만 그 중에서도 워싱턴만 Father of his country, 즉 국부라고 따로 부른다.
  • 주세페 가리발디, 주세페 마치니, 카밀로 카보우르: 세 사람 모두 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에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 원래는 당시의 이탈리아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포함되었으나, 왕실이 폐지된 이후로는 국부의 지위를 잃었다.
  • 줄리어스 니에레레: 탄자니아의 국부.
  • 칭기즈 칸: 몽골 제국몽골의 국부. 칭기즈 칸이 몽골을 최초로 통일했으며 이 시대에 몽골이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칭기즈 칸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던 아픈 과거가 있지만 그 반작용인지 탈공산화 이후에는 재평가에 재평가를 거쳐 현대 몽골인들에게 이미 이 사람은 국부 급을 넘어선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 핀란드의 국부. 핀란드 내전, 겨울전쟁, 계속전쟁 3번이나 핀란드를 독립시키고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자신이 독립시킨 나라를 사랑했기에 나라를 위해 떠났다. 히틀러를 먹튀하고 스탈린을 엿먹인 비범한 인물.
  • 콰메 은크루마: 가나의 국부. 아프리카 최초의 독립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다만 독립후에 통치를 잘하지 못해서 쿠데타로 쫒겨난 뒤에 해외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고, 1980년대까지 푸대접받았다가, 90년대 이후에 독립운동 시기의 업적이 재평가되면서 다시 국부자리에 오른 것.
  • 콰우테목: 멕시코의 국부.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멕시코에서는 주로 외세에 저항한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멕시코의 또다른 국부인 과달루페 빅토리아는 사실상 2등으로 밀려났다. 몽골칭기즈 칸이 있다면 멕시코에는 콰우테목이 있다
  •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의 국부이자 현대 독일연방공화국의 국부. 경제부흥으로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할 기반을 마련했다.
  • 크리스티안 10세: 덴마크 민주화의 아버지이자 구국영웅. 즉위 초기에는 전제 군주로서 야당을 탄압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의 보호령이 되어버린 덴마크[13]저항운동의 상징이였다.[14]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덴마크를 민주화시키기도 했다.
  • 토마스 상카라: 부르키나 파소의 국부. 부르키나 파소라는 국명을 만든 사람이고 국기와 국가도 새로 제정했으며 부패척결에 힘쓰고 인두세 폐지와 토지개혁 정책을 펼쳐 경제력 증진에 있어서 성과를 낸지라 쿠데타를 일으켜 토마스 상카라를 살해하고 권좌에 오른 콩파오레[15]도 부르키나 파소라는 국명을 이전의 오트 볼타로 되돌리지 못하고 국기나 국가도 그대로 냅둘 정도.
  • 툰쿠 압둘 라만: 말레이시아의 국부. 영국일제의 지배를 받던 시절 말레이시아를 이들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투쟁했던 사람이다. 물론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인종과 종교를 불문하고 국부로서 존경받고 있다.
  • 폰살마깅 오치르바트: 몽골 민주화의 아버지. 몽골의 마지막 국가주석이자 초대 대통령이며 몽골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고 민주주의로 전향했다. 몽골이 현재까지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켜내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라고 볼 수 있는 인물. 그 고르바초프의 나라다들 알다시피...
  • 프리드쇼프 난센: 노르웨이의 국부. 북극 탐험에 큰 공을 세워 같은 나라 사람인 로알 아문센북극점[16] 남극점을 정복하는 업적을 남기는 데에 있어서 토대를 쌓았던 먼치킨 탐험가이자, 해외 난민들의 지위 향상과 안전 보장에 힘썼고 신생 독립국이었던 노르웨이의 기초를 다진 훌륭한 정치가였다. 그래서 노르웨이가 독립을 앞두고 한동안 공화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그를 신생 노르웨이 공화국 정권의 초대 대통령이나 초대 총리로 추대하자는 주장도 있었을 정도였다.[17]
  • 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공산주의 쿠바의 국부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너무 오랫동안 집권한 탓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쿠바의 국부라고 하면 피델만 떠올리는 데, 그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도 역시나 국부로 숭앙받는 사람이다. 북쪽어느 돼지과는 달리 둘이 형제 사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형의 권력을 물려받은 것이다.[18] 다만 피델의 이미지가 넘사벽이라서 라울은 다소 콩라인으로 밀려나 있다. 이 점은 체 게바라도 똑같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체 게바라는 원래 쿠바인이 아닌데도[19], 쿠바인들에게서 국부로 대우받는다는 것이다.
  • 호세 리살: 필리핀의 국부. 위의 라몬 막사이사이와 함께 필리핀인들의 존경을 받는 존재이다.
  • 호세 안토니오 라바예하: 우루과이의 국부. 500일 전쟁을 주도했으며 결국 브라질로부터 우루과이의 독립을 쟁취해냈다.
  • 호세 데 산 마르틴: 아르헨티나칠레의 국부.
  • 호치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부. 독립 쟁취에 공헌이 컸으며 조국통일에도 공헌이 컸지만, 생전에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호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후안 카를로스 1세, 아돌포 수아레스: 각각 스페인 제3왕국의 초대 국왕과 초대 총리이며 스페인 민주화의 주역이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혼란에 빠진 스페인을 안정시켰는데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에서 끝내 실패한 체제가 되어버린 전제군주정, 공화, 섭정군주정을 대신할 입헌군주정을 도입하여 스페인을 민주화시켰으며, 아돌포 수아레스 또한 입헌군주정의 총리로서 민주화된 스페인을 잘 이끌어나갔다. 다만 후안 카를로스 1세는 2014년에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아프리카로 코끼리 사냥 여행을 가는 바람에 이미지가 실추되어 결국 장남 펠리페 6세에게 살아서 왕위를 물려줬으며, 아돌포 수아레스 또한 본인이 이끄는 민주중도연맹이 보수파에 의해 분열되고 그의 정책이 경기 침체와 불투명성으로 비판받자 1981년에 사임하였다.
  •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짝퉁 아타튀르크이자 자칭 투르크메니스탄의 국부.

1.1.2. 멸망한 나라의 국부

1.1.3. 창작물 속에 등장하는 나라들의 국부

1.2. 대한민국의 국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부 집단에서 국부로 추앙 하는 은 있지만 범국민적인 지지를 얻는 현대사의 인물은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치 견해 차이가 극심하고 일제강점기나 전쟁까지 겪었던, 너무 혼란스러웠던 근현대사 시기 인물들에 대해서는 누구를 국부로 삼는 영웅주의적 시각에 차츰 회의적인 사람도 늘어서 애초에 국부가 꼭 필요한가 하는 시각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선 국부가 들어갈 만한 자리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등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이 존경받는 근대 이전의 인물들이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중국인들이 강희제를 존경하듯이.) 심지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6.25 전쟁 미군 파병 등으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기에 농담삼아 국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이 독립선언문 서명에 참여한 사람들을 The Founding Fathers에 묶어 포함시키듯, 우리나라도 정부 수립 당시 중요한 인사들 중 자격이 될 인사들과 임정 창립인들을 묶어 Founding Fathers로 불러볼 수도 있겠으나, 딱히 논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2. 局部; 전체 중에 어느 한 부분을 이르는 말

'국부 마취' 하는 식으로 쓰인다.

2.1. 음부(陰部)를 칭하는 말

2번에서 의미가 파생됐다. 특정한 어떤 부위(…)를 직접 거론하기 꺼려져서 국부라는 점잖은 말로 돌려 쓰다가 아예 이런 의미가 추가된 케이스이다. 이러한 국부라는 단어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아베 사다 사건의 보도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부라는 용어를 쓰진 않더라도 비슷한 용법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의 특정 부위를 더듬은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 특정 부위가 어디인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잘 모르겠다. 어딜 말하는 거야?[33]

성별에 관계없이 쓰인다. 사진에서 그 부위를 (…)으로 가리면 건전한 짤도 야짤이 된다. 고간이라고도 한다.

3. 國富; 국가의 자산

국부(國富, 영어: National wealth)는 토지, 부동산, 건물, 금융 등 국민 전체가 보유한 총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純) 자산 국가경제력을 뜻한다. 자연재해전쟁 등의 사건에 의해 자산이 감소하는 것을 "국부 손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다룬 책으로 애덤 스미스가 지은 국부론이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땅값이 급상승함에 따라 국부도 크게 증가해서 비생산자산에 속하는 토지 자산이 국부의 53%를 차지한다.
순위 국가 GDP(10억달러) 비고
1 미국 84,784
2 중국 23,880
3 일본 20,172
4 영국 14,150
5 독일 12,419
6 프랑스 11,891
7 이탈리아 9,973
8 캐나다 7,564
9 대한민국 6,586
10 호주 6,428
11 인도 4,987
12 스페인 4,396
13 스위스 3,478
14 대만 3,199
15 브라질 2,537
16 네덜란드 2,412
17 벨기에 2,293
18 스웨덴 1,994
19 러시아 1,888
20 인도네시아 1,769
국부라는 표현이 위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자산을 증식시키는 기관을 국부펀드라고 한다.

4. 國府; 중화민국 국민정부

1928년~1949년까지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대륙을 통치한 중국 국민당일당제 정부인 국민정부의 줄임말이다. 이들이 거느렸던 중화민국의 국군인 국민혁명군 역시 국부군(國府軍)이라고도 불렸으며,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천도한 것을 국부천대(國府遷臺)라 부른다. 국공내전 전까지는 자주 사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사용빈도가 크게 감소하였다.
[1]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폴란드 공화국을 건국하는데 일익을 담당했지만, 일단 폴란드 공화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제1공화국 시절부터 존재했다. 이 폴란드 공화국의 계보는 제2공화국을 거쳐 2차대전 시기의 망명 정부로 이어진다. 나치-소련의 폴란드 분할점령 후 런던에 수립되어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이 망명정부의 군대인 자유 폴란드군은 25만명의 병력을 갖춰 연합군 중 병력 4위에 달했을 정도다. 문제는 소련이 연합국에 합류하고 폴란드 전 영토를 점령해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세우면서 소련 눈치를 보던 서방 국가들에게 버림받아 수십년간 미승인 망명정부로 연명했다는 거... 바웬사의 폴란드 공화국은 이 폴란드 망명 공화국의 적통을 이었으며 국새, 국장, 대통령기를 인계받았다. 폴란드 제3공화국을 건국했다고 할 순 있겠지만 유사하게 역사상 시기를 제n공화국으로 구분하는 국가에서도 제1공화국 이후까지 일일히 건국으로 취급하진 않는다.[2] 대표적인 예가 캐나다 역사상 최고의 총리로 꼽히는 피에르 트뤼도와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최고의 총리로 꼽히는 존 커틴이다. 실질적으로 캐나다인호주인들에게 국부로 대접받지만, 그 나라 정부가 이들을 국부로 공인한 바가 없다.[3] 아파르트헤이트가 너무 악랄한 정책이었던지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백인들이 흑인들의 표를 받기가 무척 어렵다. 근데, 남아공 인구의 70% 이상이 흑인들이고 백인이나, 혼혈인, 기타 인종들은 한줌도 안 되는 수를 차지해서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급의 훌륭한 백인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 한 백인 대통령이 다시 나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나름 네임드라는 백인 정치인들도 아파르트헤이트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하는 또라이들뿐이라서, 더더욱 백인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4] 다만, 로버트 무가베자국 경제싹 말아먹었으니, 무가베보다는 차라리 아타튀르크호찌민과 비교하는게 온당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는 여당인 누르오탄당의 부정부패를 묵인한 전과가 있어서 본인은 물론 측근들과 집권정당인 공화인민당, 베트남 공산당의 부정부패를 좌시하지 않는 청렴한 사람이었던 아타튀르크나 호찌민과 비교하는 것도 무리수다. 무가베와 아타튀르크·호찌민의 중간 정도에 나자르바예프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5] 벤구리온이 초대 수상, 바이츠만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바이츠만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한 주요 열강들의 외교적 지지 확보에 공헌했고, 벤구리온은 건국 후 초대 정부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참고로 이들과 공로가 같았던 골다 메이어가 이 셋과는 달리 국모로 섬겨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엄청난 백인우월주의자여서 그렇다. 어느 나라건 간에 자국민들에게도 히틀러 취급받는 사람을 국모로 섬겨줄 리가 없다.[6] 필리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호세 리살이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탄생시킨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면, 막사이사이는 '독립국 필리핀의 기틀을 다진 사람'으로서 여겨지고 있다.[7] 마하트마 간디인도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이던 퍼라이어무슬림, 시크교기독교, 불교 신자 등을 끝까지 안고 가려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결국 힌두교 근본주의자에게 살해당하였지만, 정작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한 사회적인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 두고두고 지적을 받는다. 이 점에서 자와할랄 네루인도 사회의 문제를 좀더 정확하게 짚어내는 현실주의자라는 점이 높이 평가를 받지만, 에드위나 마운트배튼 백작부인과의 불륜 이야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다지 가정에 적극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무진장 까이고 있다.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퍼라이어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적인 인물로, 오늘날까지도 퍼라이어들 사이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여겨지지만, 정작 불교 신자를 자처하면서도 거의 나이롱이었던게 문제가 되고 있다. 찬드라 보세는 자국의 독립을 위해 영국을 대상으로 군사적으로 직접 저항운동을 벌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를 위해 손잡은 대상이 하필이면 추축국이라서 인도인들이 대놓고 존경을 표하지는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8] 가공업, 제조업 등 2차 산업을 육성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농업 중심의 1차 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펼쳤다.[9] 루앙프라방 부왕(副王)의 아들이었다. 다만 평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10] 싱가포르동남아시아 최고의 중계무역항으로 만든 건 래플스이지만, 그는 싱가포르에만 머문 게 아니라 동남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큰 활약을 했다.[11]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에 해당하는 나라들이 국모로 섬기고 있다.[12] 당시의 세계 최강대국이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기는 하나, 그래도 미국이 영국의 국력을 거의 따라잡고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했을 시기에 자신들의 독립을 돕게끔 만든건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이걸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독립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13] 덴마크 보호령[14] 그가 궁에 걸린 나치 독일기를 한 군인이 내리겠다고 하자,독일측에선 그 군인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그러자 "그 기를 내리는 군인이 바로 짐"이라고 한 일화가 있다.[15] 1987년부터 2014년까지 부르키나 파소의 대통령직을 역임한 인물로, 경제개발 실패와 부정선거, 부정부패 등으로 인한 국민의 반발과 군부의 불만으로 축출되었다.[16] 흔히 북극점의 최초 정복자가 로버트 피어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아니다. 피어리의 실체를 좀 아는 사람은 피어리 탐사대의 일원이던 매튜 핸슨이 북극점의 최초 정복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도 북극점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는 아문센이 북극점에 먼저 도달했다. 자세한 건 로버트 피어리로알 아문센 항목 참조.[17] 하지만 이 주장은 난센 스스로가 거부해서 실현되지 않았고, 대신 덴마크 왕실의 제안으로 덴마크 왕자를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옹립하는 방안이 성사되어, 노르웨이는 왕국으로 독립한다.[18] 즉, 피델 카스트로라울 카스트로가 형제가 아닌 남남이었어도 어차피 라울이 권력을 이어받았을 것이 분명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만일 체 게바라가 오래 살았으면, 라울 카스트로 대신에 체 게바라가 피델의 권력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19] 체 게바라아르헨티나인이다.[20] 디미트로프 영묘는 1998년 철거되었다.[21] 당시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던 미국백인계 및 혼혈인으로 구성된 필리핀 기득권층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원주민계의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탓이 크다. 그래서 비(非) 혼혈인에 대한 차별 정책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누엘 케손 본인도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서 혼혈인이 아니라고 차별하는 일도 없었으니, 기득권층의 인종차별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뽑히는건 시간 문제였다.[22] 하지만 로마 제국의 시스템을 원로원 중심에서 황제 중심으로 변화시킨 키케로의 정적 카이사르와 그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현재 쓰는 국부의 의미에는 더 가까울 것이다. 키케로는 살아서는 카이사르의 가장 큰 정치적 라이벌이었지만(군사적 라이벌은 폼페이우스) 키케로가 죽은 이후에 로마 제국의 운명에 미친 영향은 국부라 불리기에는 부족하다. 게다가 키케로가 막은 카틸리나의 반란 계획은 그 이전까지 로마가 겪어온 수많은 위기를 생각해본다면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하여간 키케로 본인은, 원래 자뻑 기질도 심했다 보니, 자신이 쓴 글들에서 저 칭호 받은 걸 엄청 자랑해 댔다(...).[23] 흔히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만행들은 모두 베니토 무솔리니의 잘못이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다 당시의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비호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24] 북마케도니아가 현재의 국명을 채택한 이후에는 정부 차원에서 국부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북마케도니아의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25] 사실 그리스의 공영방송인 Skai TV에서 실시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을 선정하는 설문조사에서 1위로 뽑힌 사람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인 만큼, 현대 그리스에서도 비공식적인 국부 대접을 받는다.[26] 예나 지금이나 필리핀의 최상류층들은 말레이-스페인계 혼혈인인데, 필리핀 제1공화국 시절에는 아예 이들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지는 막장스런 상황이 벌어졌다.[27] 마르코스필리핀을 망친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는다면, 아기날도는 대통령을 자칭하면서 생쇼를 했다가 망해버린 아오안격 인간 대접을 받는다(...).[28] 물론 남부연맹이 정말로 독립에 성공했으면 정말로 제퍼슨 데이비스가 국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29] 당장 오늘날에도 남부연맹기 자체가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서 퇴출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노스캐롤라이나주와 같이 아예 공식 석상에서의 게양을 금지한 주까지 있는 판국이다. 지금 상황에도 제퍼슨 데이비스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간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혀서 매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30] 톈진 갸초 본인이 더 이상의 환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티베트 임시 정부는 현재 입헌군주제를 도입했으며, 그의 사후에 곧바로 공화정으로 전환할 계획이다.[31] 향후 티베트가 독립하면 위의 실존한 나라의 국부가 될 것이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멸망한 나라의 국부로 분류되는 이유는 일단 티베트가 독립국이었던 시절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32] 건국하긴 했지만 그래도 선거를 해서 대통령으로 뽑혔다고 한다.[33] 그곳, 거기, 거시기 등의 단순한 지시대명사가 그러한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듯. 드립을 이해하지 못한 각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