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1 00:27:15

프리드쇼프 난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노벨평화상 수상자
{{{#!folding 20세기
{{{#!wiki style="margin: -1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16px"
1901년1902년1903년1904년1905년
장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윌리엄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1906년1907년1908년1909년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1911년1912년1913년1914년1915년
토비아스 아서르
알프레트 프리트
일라이휴 루트 앙리 라퐁텐 수상자 없음
1916년1917년1918년1919년1920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수상자 없음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1921년1922년1923년1924년1925년
칼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프리드쇼프 난센 수상자 없음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도스
1926년1927년1928년1929년1930년
아리스티드 브리앙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수상자 없음 프랭크 켈로그 나탄 쇠데르블룸
1931년1932년1933년1934년1935년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
수상자 없음 노먼 에인절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년1937년1938년1939년1940년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난센국제난민 사무국 수상자 없음
1941년1942년1943년1944년1945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코델 헐
1946년1947년1948년1949년1950년
에밀리 그린 볼치
존 모트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
영국 퀘이커 봉사협회
수상자 없음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1951년1952년1953년1954년1955년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C. 마셜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수상자 없음
1956년1957년1958년1959년1960년
수상자 없음 레스터 B. 피어슨 도미니크 조르주 피르 필립 노엘 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1961년1962년1963년1964년1965년
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사 마틴 루터 킹 유엔아동기금
1966년1967년1968년1969년1970년
수상자 없음 르네 카생 국제 노동 기구 노먼 볼로그
1971년1972년1973년1974년1975년
빌리 브란트 수상자 없음 헨리 키신저
레득토 (수상 거부)
숀 맥브라이드
사토 에이사쿠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년1977년1978년1979년1980년
베티 윌리엄스
마레드 코리건
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년1982년1983년1984년1985년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1986년1987년1988년1989년1990년
엘리 비젤 오스카 아리아스 유엔 평화유지군 14대 달라이 라마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년1992년1993년1994년1995년
아웅산수지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퍼그워시 회의
1996년1997년1998년1999년2000년
카를루스 벨루
조제 하무스 오르타
지뢰금지국제운동
조디 윌리엄스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없는의사회 김대중 }}}}}}
{{{#!folding 21세기
{{{#!wiki style="margin: -6px -11px"
2001년2002년2003년2004년2005년
유엔
코피 아난
지미 카터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국제원자력기구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년2007년2008년2009년2010년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
앨 고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마르티 아흐티사리 버락 오바마 류샤오보
2011년2012년2013년2014년2015년
엘런 존슨 설리프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
유럽연합 화학무기금지기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2016년2017년2018년2019년2020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드니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
}}}}}}


파일:external/storseth.files.wordpress.com/nansenfridtjof4.jpg

Fridtjof Wedel-Jarlsberg Nansen (프리티오프 베델-얄스베르그 난센)

1. 소개2. 탐험 활동
2.1. 그린란드 횡단2.2. 북극 탐험
3. 과학 활동4. 정치 활동5. 기타

1. 소개

1861년 10월 10일 ~ 1930년 5월 13일

노르웨이탐험가, 정치가, 과학자이자 범국민적인 영웅.

노르웨이어 이름인 Fridtjof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프리드쇼프'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 노르웨이어 발음은 /fɾɪtjɔf/ 이기에 '프리티오프'로 표기해야 한다.

탐험, 과학, 정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은 노르웨이엄친아로, 그의 이름이 노르웨이 해군의 첫 이지스함이름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그의 노르웨이 내 지위를 보여준다. 특이하게 노벨과학상 외의 노벨상만을 수상한 과학자이기도 하다.[1]

2. 탐험 활동

2.1. 그린란드 횡단

1888년 난센은 그린란드 빙원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였다.

2.2. 북극 탐험

1893년, 자신이 설계한 '프람 호'[2]를 타고 북극점 정복을 시도했다.[3] 하지만 북극점 도달이 프람 호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동료 얄마르 요한센(Hjalmar Johansen)과 함께 걸어서 북쪽으로 향했다.

1895년 4월 북위 86° 14´ 지점에 도달했다. 이는 이때까지 인간이 도달한 지점 중 가장 북쪽에 간 것이다. 그러나 식량 부족으로 북극점을 밟지는 못하고 귀환을 선택, 바다코끼리북극곰을 잡아 연명난 센 남자, 북극곰 따윈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일 뿐하면서 남쪽으로 향하다가 영국 탐험대에게 구조되었다.

북극에서 돌아온 뒤에는 새로 독립한 조국 노르웨이의 정치 관련 일이 바빠지면서 탐험가로서는 은퇴하고, 후배 탐험가인 로알 아문센의 후원자가 되었다. 난센은 아문센에게 '프람 호'를 물려주었고, 자신의 동료 얄마르 요한센도 데려가게 했다. 이것이 요한센에게는 오히려 불행이 되었지만…

그 외에도 남극 탐험에 나서는 영국의 어니스트 섀클턴에게도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새클턴은 조랑말과 설상차(스노모빌) 대신, 썰매개를 권한 난센의 조언을 무시했다가 결국 남극 탐험에 실패했다.[4] 그래도 새클턴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대원들을 살려서 귀환했다. 그러나 로버트 스콧은 섀클턴의 실패를 무시하고 난센과 아문센의 조언도 무시하며 고집을 부렸다가 비참하게 사망했다. 아문센 vs 스콧 항목에서 나오듯이 난센은 스콧을 무모하다고 비난했는데 난센의 비난과 지적은 확실히 들어맞았다.

3. 과학 활동

4. 정치 활동

난센은 본래 공화파였으나, 외교관이자 작가였던 왕정파 시구르 입센(Sigurd Ibsen)의 주장에 감화를 받아 당시 노르웨이와 동군연합을 이루던 스웨덴 왕국의 오스카르 2세로 하여금, 덴마크 프레데리크 8세의 차남인 칼 왕자가 노르웨이 왕위를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국민투표 결과 왕정론이 우세하여, 칼 왕자가 "호콘 7세(Haakon VII)"로 즉위하고 1905년 6월 7일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 부터 독립하였다. 만약 당시 노르웨이가 왕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독립했다면 난센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 것이 유력했다고 한다.[5]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의 고등판무관으로서 난센은 국적이 없는 난민들에게 발행하는 "난센 여권" 사업을 시작해했고 난센 여권은 지속되어 42년까지 45만명의 난민을 구제하기에 이른다 그 공로로 38년에는 난센 국제 난민 사무소가 평화상을 받게 된다 난센은 38년엔 이미사망했다
그 외에도 전쟁포로의 환송이나 전쟁의 피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왔는데 특히 1921~1922년에 레닌의 수탈 정책으로 발생한 러시아 대기근으로 인해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살아남은 사람도 가족을 서로 잡아먹는 참상이 벌어지자 있는돈 없는돈 죄다 털어서 구호소를 설립, 이미 참혹한 피해를 입었지만 그나마 피해를 줄일수 있었다. 이 공로로 192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5. 기타

노르웨이 해군의 이지스 호위함의 1번함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따 프리드요프 난센함이라 명명되었다.

노르웨이의 대표 매국노 비드쿤 크비슬링이 난센의 조수로 일한 적이 있다.

급격히 도래한 빙하기로 절멸하기 직전의 인류 문명을 다룬 게임 프로스트펑크에서도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국가가 멸망하고 그나마 덜 추운 북극 근방에 최후의 도시가 건설되자 본인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수많은 피난민들을 이끌어 주인공 도시까지 인도하는데 성공한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1] 후보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는 파브르 곤충기를 써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장 앙리 파브르도 있다.[2] 배의 바닥이 둥글린 형상이였는데. 이는 유빙이 압박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위로 미끄러져 나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3] 이때 난센은 "몇 년간 표류하다보면 알아서 북극점에 도달하겠지."라는 비범한 생각으로 8년치 연료와 6년치 식량을 싣고 갔다.[4] 물론, 섀클턴이 스콧처럼 무작정 무시한 건 아니고, 나름의 계산으로 조랑말을 택했던 것이다. 문제라면, 남극이 섀클턴의 예상 이상으로 극한지대였다는 것.[5] 실제로 공화국인 유럽 국가들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체제를 택한 나라들이 대부분이어서 대통령보다 총리의 권한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