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8:56:47

프리드쇼프 난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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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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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프리드쇼프 난센
Fridtjof Nansen
파일:Portrett_av_Fridtjof_Nansen,_1922.jpg
본명 프리드쇼프 베델야를스베르그 난센[1]
Fridtjof Wedel-Jarlsberg Nansen
출생 1861년 10월 10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스토레프뢰엔
사망 1930년 5월 30일 (향년 68세)
노르웨이 뤼사케르
국적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직업 탐험가, 외교관, 과학자
배우자 에바 난센 (1889년 ~ 1907년, 사별)
시그룬 문데 (1919년 결혼)
자녀 5명
수상 노벨평화상
성 올라프 훈장
다네브로그 훈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
성 스타니슬라오 훈장
컬럼 지오그래피컬 메달
베가 메달
콘스탄틴 메달
학력 오슬로 대학교
종교 무종교(무신론)[2]
서명 파일:프리드쇼프 난센 서명.png

1. 개요2. 탐험 활동
2.1. 그린란드 횡단2.2. 북극 탐험
3. 과학 활동4. 정치 활동5. 기타

[clearfix]

1. 개요

노르웨이탐험가, 정치가, 과학자.

본업인 탐험뿐만 아니라 과학, 정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은 노르웨이의 역사상 첫 국가영웅이다.[3] 그의 이름은 노르웨이 해군이 도입한 첫 이지스함함명으로도 붙여졌고, 이는 그가 자신의 모국에서 얼마나 높이 평가받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이하게 노벨과학상 외의 노벨상만을 수상한 과학자이기도 하다.[4]

2. 탐험 활동

2.1. 그린란드 횡단

1888년 난센은 그린란드 빙원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였다.

2.2. 북극 탐험

1893년, 자신이 설계한 '프람 호'[5]를 타고 북극점 정복을 시도했다.[6] 하지만 북극점 도달이 프람 호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동료 얄마르 요한센(Hjalmar Johansen)과 함께 걸어서 북쪽으로 향했다.

1895년 4월 북위 86° 14´ 지점에 도달했다. 이는 이때까지 인간이 도달한 지점 중 가장 북쪽에 간 것이다. 그러나 식량 부족으로 북극점을 밟지는 못하고 귀환을 선택, 바다코끼리북극곰을 잡아 연명하면서 남쪽으로 향하다가 프레더릭 조지 잭슨(Frederick George Jackson)의 영국 탐험대에게 구조되었다.

북극에서 돌아온 뒤에는 새로 독립한 조국 노르웨이의 정치 관련 일이 바빠지면서 탐험가로서는 은퇴하고, 후배 탐험가인 로알 아문센의 후원자가 되었다. 난센은 아문센에게 '프람 호'를 물려주었고, 자신의 동료 얄마르 요한센도 데려가게 했다.[7] 이것이 요한센에게는 오히려 불행이 되었지만…[8]

그 외에도 남극 탐험에 나서는 영국의 어니스트 섀클턴에게도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새클턴은 조랑말과 스노모빌 대신, 썰매개를 권한 난센의 조언을 무시했다가 결국 남극 탐험에 실패했다.[9] 그래도 새클턴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대원들을 살려서 귀환했다. 그러나 로버트 스콧은 섀클턴의 실패를 무시하고 난센과 아문센의 조언도 무시하며 고집을 부렸다가 비참하게 사망했다. 아문센 vs 스콧 항목에서 나오듯이 난센은 스콧을 무모하다고 비난했는데[10] 난센의 비난과 지적은 확실히 들어맞았다.[11]

3. 과학 활동

난센은 프람호를 이용한 북극 탐험에서 유빙을 따라 떠다니며 탐험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바람 방향과 유빙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이 연구 자료를 해양학자 에크만에게 전달하였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에크만은 후일 취송류 이론을 확립하게 된다.

또한 세계최초의 국제 해양학기구인 ICES(International Council of the Explonation of the Sea)의 멤버로서, 오슬로에 Standard Sea Water Service를 설립하였다.

4. 정치 활동

난센은 본래 공화파였으나, 외교관이자 작가였던 왕당파 시구르 입센(Sigurd Ibsen)[12]의 주장에 감화를 받아 당시 노르웨이와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던 스웨덴의 오스카르 2세로 하여금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의 차남인 칼 왕자가 노르웨이 왕위를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국민투표 결과 왕정론이 우세하여, 칼 왕자가 "호콘 7세"로 즉위하고 1905년 6월 7일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부터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만약 당시 노르웨이가 왕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독립했다면 난센이 총리 또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유력했다고 한다.[13]
[navertv(43996295)]
[다큐] 영상의 세기 PREMIUM 제10부 - 난민. 희망을 향한 여로中 [14]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연맹의 고등판무관으로서 난센은 국적이 없는 난민들에게 발행하는 "난센 여권" 사업을 시작했고[15] 이는 1942년까지 지속되어 총 45만 명의 난민을 구제했다. 그 공로로 그가 사망한 후인 1938년에는 난센 국제 난민 사무소가 평화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훗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남미를 비롯한 해외로 도주하려는 일부 나치 전범들이 난센 여권으로 자신의 책임을 피하는 데에도 악용된 어두운 역사 역시 존재한다.

그 외에도 전쟁포로의 환송이나 전쟁의 피해로 고통받는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는데 특히 1921~1922년에 러시아 내전으로 발생한 러시아 대기근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서로 잡아먹는 참상이 벌어지자 사재를 털어 구호소를 설립했다. 이미 참혹한 피해를 입었지만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이 공로로 그는 192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또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그 무렵에는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으로 발생한 수십만 명의 아나톨리아 출신 그리스인 난민을 목격하고 그리스와 튀르키예, 양측에 서로의 영토에 살고 있는 그리스인과 터키인을 교환하자는 인구 교환을 제안하여 그것을 성사시켰다. 또한 경제적 사정으로 난민을 정착시키는데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 정부를 위해 자금을 지원하였다. 인구 교환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난센은 전쟁 이후 튀르키예군의 보복을 받을 것이 분명했던 1백만이 넘는 그리스인의 목숨을 살렸다. 이후에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서 생존한 아르메니아인 난민의 재정착 운동을 지원하였다.

5. 기타

노르웨이 해군의 이지스 호위함의 1번함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따 프리드요프 난센함이라 명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노르웨이의 파시스트인 비드쿤 크비슬링이 젊은 시절 난센의 비서로 일했다. 일할 당시 아르메니아인 난민의 소련 정착 사업에 관여했다.

급격히 도래한 빙하기로 절멸하기 직전의 인류 문명을 다룬 게임 프로스트펑크에서도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국가가 멸망하고 그나마 덜 추운 북극[16] 근방에 최후의 도시가 건설되자 본인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수많은 피난민들을 이끌어 주인공 도시까지 인도하는 데 성공한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정황상 -150도에 달하는 폭풍을 조사하러 태풍의 눈까지 간 거 같은데 그 무서운 대폭풍 중심으로 뚫고 가는 도중에도 포경선원들을 난센의 폭풍 연구기지에 숨겨 구한다. 이후 DLC 시나리오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난센은 -150도의 추위에서도 살아남고 대폭풍 이후의 기후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여러모로 위버멘쉬적인 사람인 듯 하다.


[1] 노르웨이어 이름인 Fridtjof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프리드쇼프'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 노르웨이어 발음은 '[ˈfɾɪ̂tːjɔf\](프리티오프 혹은 프리트요프)'에 가깝다. 덴마크-노르웨이어에서 유성음(l,r,n) 뒤나 치음/치경음(s, t) 앞의 파열음(d,t)은 자주 탈락한다. 이 묵음 d,t는 앞의 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하라는 표시이다.[2] "Fridtjof Nansen", ffrf.org[3] 넓게 따져봐도 노르웨이에서 전세계적인 업적을 쌓은 사람은 지구의 두 극점 최초 정복자인 로알 아문센,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 정도가 끝이다.[4] 후보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는 파브르 곤충기를 써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장앙리 파브르도 있다.[5] 이름의 뜻은 '전진'. 배의 바닥이 둥글린 형상이였는데. 이는 유빙이 압박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위로 미끄러져 나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프람 호의 자세한 구조[6] 이때 난센은 "몇 년간 표류하다 보면 알아서 북극점에 도달하겠지."라는 비범한 생각으로 8년치 연료와 6년치 식량을 싣고 갔다.[7] 이때 아문센이 남극 탐험 계획을 밝히며 난센에게 조언을 구하자 나이만 좀 젊었으면 나도 따라가는 건데 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물론 난센이 일행에 합류하는순간 리더가 바뀌게 될 것이므로 현실성은 전혀 없었지만.[8] 물론 대다수의 문제는 요한센 본인이 자초한 것도 있긴 했다.[9] 물론, 섀클턴이 스콧처럼 무작정 무시한 건 아니고, 나름의 계산으로 조랑말을 택했던 것이다. 문제라면, 남극이 섀클턴의 예상 이상으로 극한지대였다는 것.[10] 앞서 탐험가들이 극지방 탐험에서 사용한 개썰매를 두고 "잔인한 동물학대"라고 비난하는 스콧의 면전에서 "그러면 사람이 썰매를 끌게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데요?"라고 받아쳤다.[11] 물론 스콧도 마냥 대책없이 아무튼 개썰매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서 남극점 정복때 조랑말과 설상차 심지어 개썰매까지 동원했지만 조랑말과 설상차는 너무 무거웠으며 심지어 조랑말은 너무 추워서 얼어죽고 설상차도 물에 빠져 고장나는 등 도움이 안 되었고 개썰매마저 베이스캠프를 세우는데는 썼지만 정작 남극점 탐험때는 안 썼다.[12] 그 유명한 헨리크 입센의 아들이다.[13] 공화국인 유럽 국가들은 대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체제를 택한 나라들이 대부분이어서 대통령보다 총리의 권한이 강하다.[14] 2018년 8월 11일 방영. 영상 매체의 탄생 이후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기록된 "난민"을 주제로 세계 각국의 영상 기록 보관소에서 수집한 영상으로 편집한 다큐[15] 가장 처음으로 난센 여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적백내전 당시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던 백군 측 군인이나 귀족들의 가족이었다.[16] 추워 죽겠는데 북극이 왠말이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냉기가 남쪽으로부터 온다는 정보가 있기 때문. 그리고 북극은 이미 추운 지방이라 그곳의 동물들도 어느정도 추위에 적응되어있어,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