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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공화국 제32대 대통령 후안 마누엘 산토스 Juan Manuel Santo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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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1126><colcolor=#ffffff> 본명 | 후안 마누엘 산토스 칼데론 Juan Manuel Santos Calderón | ||
출생 | 1951년 8월 10일 ([age(1951-08-10)]세) | ||
콜롬비아 보고타 | |||
국적 | [[콜롬비아| ]][[틀:국기| ]][[틀:국기| ]] | ||
재임기간 | 제32대 대통령 | ||
2010년 8월 7일 ~ 2018년 8월 7일 | |||
서명 | |||
링크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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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형 엔리케 산토스 칼데론, 루이스 페르난도 산토스 남동생 펠리페 산토스 칼데론 | ||
배우자 | 실비아 론도노 (이혼) 마리아 무네라 (1987년 결혼) | ||
자녀 | 슬하 2남1녀 마르틴, 마리아 안토니아, 에스테반 | ||
학력 | 산 카를로스 고등학교 (졸업) 해군사관생도학교 캔자스 대학교 (경제학, 경영학 / B.Ec.)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경제학 / M.S.)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 (행정학 / M.P.A) | ||
병역 | 콜롬비아 해군 (1967-1971) | ||
종교 | 가톨릭 | ||
정당 | [[국민통합사회당| 국민통합사회당 ]] | ||
경력 | 초대 대외무역부 장관 (1991년 1월 16일 ~ 1994년 8월 7일) 제64대 재무세평부 장관 (2000년 7월 12일 ~ 2002년 8월 7일) 초대 국민통합사회당 대표 (2005년 8월 30일 ~ 2006년 11월 26일) 제24대 국방부 장관 (2006년 7월 19일 ~ 2009년 5월 18일) 제5대 국민통합사회당 대표 (2010년 3월 14일 ~ 2010년 7월 28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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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콜롬비아의 정치인으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소속 정당은 국민통합사회당이다.2. 생애
1951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산 카를로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도부터 1971년도까지 카르타헤나에서 해군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가 캔자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졸업 이후에는 영국 런던에서 커피회사를 운영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1]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가족이 엘 티엠포라는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미국 유학 시절 산토스 대통령은 이 회사의 부회장을 지낸 적이 있었다. 1988년 졸업한 이후 콜롬비아로 귀국했다.
3. 정치 활동
이후 콜롬비아 자유당에 입당했으며, 1991년 세사르 가비리아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외무역부[2] 장관으로 임명되어 1994년 가비리아가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1998년 안드레스 파스트라나가 집권하면서 정권이 콜롬비아 보수당으로 교체되었지만, 2000년 재무세평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파스트라나가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3] 아무래도 엘 티엠포가 보수당 산하의 언론이다보니, 이 인연 때문에 상대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자유당이 에르네스토 삼페르 정권을 시작으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보수당 또한 파스트라나가 별로 못한덕택에 둘 다 서서히 망하기 시작했다. 이 때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자유당을 탈당하고 콜롬비아 제일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하여 당선되었는데, 2006년 우리베가 재선에 도전하자 이를 1년 앞두고 산토스 대통령은 자유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국민통합사회당을 창당했으며 콜롬비아 제일과 연대했다. 어떻게 보면 철새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대한민국과는 달리 중남미에서는 당적 변경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어쨌거나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재임 중 일명 "위정 스캔들"이 터졌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우리베 정권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었다. 다만 우리베가 안보를 강조했던 탓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면했다.[4] 우여곡절 끝에 산토스 대통령은 2009년 장관직을 사임했고, 이 무렵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었으나, 본인은 고사했다. 당초 여론은 우리베의 3선을 원했고, 산토스 대통령 또한 이를 지지했기 때문.
하지만 3선은 법적으로 금지된 일이었다. 정 하고 싶으면 개헌이 필요했는데, 일단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만이 남았던 상황이었으나 문제는 그게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베 대통령은 이러한 헌재의 판결을 수용했고, 산토스 대통령은 이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0년 5월 30일 1차 투표에서 46.68%를 얻어 21.51%를 득표한 녹색당의 안타나스 모쿠스와 함께 결선에 진출했다. 당초 여론조사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상당수가 모쿠스의 승리를 점치는 등 누가 당선될 지 모르는 선거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산토스가 69.13%를 얻은 반면, 모쿠스는 27.47%밖에 득표하지 못 해 논란이 되었다. 어쨌거나 산토스 대통령은 큰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4. 대통령 임기
2010년 8월 7일경 취임하였다. 집권 초기 베네수엘라와 외교 마찰을 빚었지만, 이를 빠르게 해결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오죽했으면 우리베 대통령이 자당을 해체하고 국민통합사회당에 입당했을 정도.그러나 재직 중에 산토스 대통령은 FARC의 지도자 티모첸코[5]와 평화협상을 벌이기로 하면서 우리베 대통령과 마찰이 빚어지게 되었고, 결국 우리베 대통령이 2013년 탈당하고 민주중도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6] 그리고 2014년 대선이 다가오자 민주중도당은 오스카르 이반 술루아가를 후보로 내세우면서, 여권 전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상당한 초접전을 벌였으나, 술루아가를 가까스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7]
하지만 2기 때는 1기와는 달리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 했다. 2014년을 기점으로 원자재값 폭락으로 콜롬비아의 경제가 침체에 빠진데다가 1기 때부터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과의 대립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줄곧 강조했는데, 2016년 이를 국민투표로 부쳤으나 단 1% 차이로 부결되면서 앞날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일부를 수정한 평화안으로 대신 협상에 들어갔고, 이것이 기어이 성사되면서 산토스는 50년 이상 계속된 콜롬비아 내전을 끝내기 위해 확고한 노력을 해온 공로를 인정 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허니문은 오래 가지 못 했다. 평화 협상이 타결되자 민주중도당을 중심으로 크게 반발이 일어났고, 노르웨이에 석유 이권을 주고 노벨평화상을 샀다는 비판이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 등으로 확대되면서 여론도 썩 좋지 못한 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티모첸코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2018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중도당의 후보로 선출된 이반 두케 후보가 평화 협정 파기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불안감이 퍼지고 있는 상태. 거기에다가 FARC 내에서도 일부가 이탈하면서 현재도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진행중이며, 에콰도르 기자 2명이 FARC 이탈조직 단원들에게 피랍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그간의 공로도 깨지고 있는 상태.
여하튼 2기 집권기 내내 지지부진한 경제적인 상황도 있고해서 3선 금지 조항에 따라 2018년 8월 7일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다. 국민통합사회당은 차기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고, 대신 무소속 후보인 헤르만 바르가스 예라스를 지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초반만 해도 희망으로 불리던 바르가스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한때 지지할 것으로 보였던 자유당의 움베르토 델 라 카예의 지지율은 끽해봤자 5% 내외에 그치면서 망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파와 좌파 성향 유권자들이 각각 민주중도당의 이반 두케 후보와 보고타 시장을 지낸 무소속 구스타보 페트로로 쏠리면서 결선에 진출했고, 이반 두케 후보가 약 54%로 여유있게 당선되었다. 이반 두케 후보는 결선에 오르면서 평화협정 자체를 파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2018년 8월 4일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암살당할뻔한 일이 벌어지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괜히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의 음모로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말을 해서 후안 마누엘 산토스를 벙찌게 했다.[9] 이에 대해 후안 마누엘 산토스는 베네수엘라가 망하든 말든 잘되든 말든 아무 신경 안쓰며 베네수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손녀의 세례식이 더 중요하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10]
[1] 공공정책 전문대학원[2] 2002년 무역산업관광부로 확대·개편되었다.[3] 2000년 8월 7일부터 2002년 8월 7일까지 재직했는데 정확히 2년이다. 보통 장관은 임명 문제 등이 걸리기 때문에, 저렇게 정확히 몇 년을 지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4] 사실 우리베는 현대 콜롬비아에서 반군소탕을 목적으로 이런저런 인권탄압이나 야당인사를 불법적으로 사찰하는 짓거리를 벌여서 이래저래 인권단체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은 대통령이었고, 다른 국가에서 마약소탕전을 벌인다고 콜롬비아에 대한 지원을 해주었을때 우리베가 지원의 일부를 야당인사를 사찰해서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가거나 정부군과 정부와 협력하는 민병대 소속에 불리한 증언을 할만한 인물들을 살해하는데 썼던탓에 미국조차도 이런 행각에 경악을 금치못해서 임기말에는 지원을 끊을 정도였다. 다만 국제적으로 우고 차베스나 룰라가 더 언급되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언급이 덜했던데다가 비록 과정이 더럽기는 했어도 치안이 어느정도는 괜찮아진건 사실이었었고, 복지를 빵빵하게 해주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원자재값 상승으로 경제도 나름대로 괜찮아지기는 했기 때문에 임기말에도 인기는 높았고, 퇴임후에도 여러모로 구설수가 많기는 해도 이때 다져놓은 지지층들이 많기때문에 입지를 지킬수있었다.허나 그럼에도 위낙 한짓이 많아서 2018년 이반 두케의 취임을 앞두고 대법원에서 위증과 학살사건에 대해서 조사를 받을 위기에 처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이 각하되어서 겨우 입지를 지킬수있었다.[5] 티모첸코는 별명이고 본명은 로드리고 론도뇨 에체베리(Rodrigo Londoño Echeverri)이다.[6] 이름만 보면 중도 정당처럼 보이겠으나 실제로는 극우에 가깝다.[7] 참고로 한때 산토스가 소속되어 있던 자유당은 이 대선에서 창당 이후 사상 처음으로 후보를 내지 않았는데, 대신 국민통합사회당과 연대했다. 그만큼 자유당이 망한 것.[8] 레닌 모레노는 라파엘 코레아의 지지층의 반절 이상을 흡수하면서도 야권과의 대화로 야당 지지층을 상당수를 흡수한 덕택에 효율적으로 라파엘 코레아의 정치생명에 타격을 입히고 있는 중으로 라파엘 코레아의 고정 지지율 자체는 20% 가량으로 적지는 않지만 레닌 모레노가 야권 지지층 상당수의 지지를 확보한데다가 에콰도르의 정치환경이 콜롬비아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보면 2:1로 우월한 상황이다.[9] 다만 후안 마누엘 산토스 본인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재제를 주장하고, 임기 막판에 나토가입에 앞장섰다는 점이나 콜롬비아 마피아들이 베네수엘라 산 석유나 생필품을 값싸게 밀수하는 일에 대해 단속을 하나마나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앙금이 쌓일 일이 충분히 많기는 했다. 물론 콜롬비아 입장에서야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값싸게 구입할수있기 때문에 어차피 콜롬비아의 일이 아니기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국부가 유출되는건 그 다음이지만.[10] 그럴만도 했던게 퇴임직전에 라파엘 코레아가 RT에서 진행하는 토크쇼에 멀쩡히 출연했기도 했을정도로 좌파 성향의 대통령들하고도 아주 절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