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25 09:09:27

노벨평화상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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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노벨평화상
Nobel Peace Priz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fff,#000 '''주최 및 장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노르웨이 파일:노르웨이 국기.png 오슬로
#fff,#000 '''상금''' 900만 SEK
100만 달러[1]
(2018년 기준)
#fff,#000 '''첫 시상년도''' 1901년 12월 10일
#fff,#000 '''최근 수상자''' 아비 아흐메드 알리 파일:에티오피아 국기.png
(2019년 기준)
#fff,#000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노벨평화상 이야기
2.1. 논란2.2. 개인만 받는가?2.3. 한국의 수상자
3. 역대 수상자

1. 개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시상하는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

수상 기준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노벨상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상이다.[2]

다른 노벨상들과는 달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노벨이 평화상은 노르웨이에 권한을 이임했기 때문이다. 1901년의 첫 수상자는 적십자를 창립한 스위스의 앙리 뒤낭과 국제 평화 연맹을 창설한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파시이다. 또한 학문적 성취와 무관하게 탈 수 있는 노벨상이기도 하다. 물론 전 세계가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학문적 성취에 준하는 국제적 업적을 달성해야 하지만...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려면 노르웨이 국회의원 최소 1인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2. 노벨평화상 이야기

1948년 마하트마 간디는 노벨 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였으나 수상자 발표를 얼마 앞두고 암살당했다. 따라서 간디 역시 당연히 수상했을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죽는 순간 노벨상을 받을 기회도 영영 날아가기 때문에, 그 해 노벨상은 이례적으로 아무에게도 수여되지 않았다.[3] 아돌프 히틀러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받은 적 있다. 하지만 브란트는 나중에 '웃자고 한 일'이라며 후보 추천을 철회했다. #

전두환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상을 받을 수는 없어도 추천까지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입법부의 의원이면 누구나 추천할 수 있다. 하도 독재 인사를 추천하는 것 때문에 2001년부터 노르웨이 국회의원으로 추천 가능 인원이 제한됐다. 노르웨이 국회의원한테 접촉해서 노벨상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쿠르드족 학살을 명령한 윈스턴 처칠조차 자신이 노벨평화상 후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다른 노벨상과 달리 2010년대부터의 개인수상자가 유독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 수상자가 많다. 그 만큼 평화와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지역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2.1. 논란

다른 노벨상들과는 달리 논란이 매우 많은 상이다. 근본적으로 '평화'라는 주제로 상을 주는 것은 각 국가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모호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치적 수장들의 수상은 여러번 논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되어 상을 받은 헨리 키신저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으로 상을 받은 양쪽 수장[4]의 수상에 대한 비판이 많다. 1978년 안와르 사다트[5], 메나헴 베긴[6]의 경우도 비슷하다.

1906년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러일전쟁의 원활한 해결'에 대한 공로를 내세워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동아시아의 어느 반도국가의 자주독립이 평화상 수상자를 포함한 강대국들의 야합으로 이웃 섬나라에 빼앗기는 것을 대가로 했다.

1974년에는 일본의 전 총리 사토 에이사쿠가 비핵 3원칙을 확립했다며 수상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가 정적 사토를 회유하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설도 있다.

우드로 윌슨민족자결주의국제 연맹을 제창했다는 이유로 1919년 평화상을 받았다. 물론 민족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패전국에 합병됐던 나라에게만 해당됐던 얘기지, 승전국의 식민지(예를 들어 인도, 한국[7])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문서 참고.

이오시프 스탈린제2차 세계 대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내용으로 1945년과 1948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80, 90년대에는 레흐 바웬사(1983), 데즈먼드 투투(1984), 달라이 라마(1989), 미하일 고르바초프(1990), 아웅 산 수 지(1991), 넬슨 만델라(1993), 류샤오보(2010), 드니 무퀘게&나디아 무라드(2018)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마다 적절하게 상이 주어졌다. 동티모르독립운동가들과 아일랜드 평화 협상을 타결한 사람들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그리고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루마니아 태생 유대인계 미국 작가 엘리 비젤(1928~2016)도 논란이 컸다. 홀로코스트를 고발한 책자와 수기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시오니즘을 옹호는 그렇다고 쳐도 팔레스타인 학살을 두둔했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해 제2차 세계 대전 전사자 추모 무덤을 참배한 걸 나치 독일 참배라고 비난하다가 강제 징집자 전사 무덤 참배를 나치라고 하면 서독 모두가 나치라는 주장이라는 비난으로 까였다. 늘그막에는 같은 유대인인 버너드 매도프에게 사기로 많은 재산을 잃었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자세한 건 아래 '한국의 수상자' 문단 참고.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상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빌 클린턴을 제외한 지미 카터 이래 모든 민주당 행정부의 지도자들은 평화상을 한 번씩 받게 되었다. 그래봐야 카터와 오바마밖에 없지만.[8] 그런 것 때문에 노벨평화상은 신뢰를 잃고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특히 버락 오바마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바마가 당선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걸 받음? 뭘 했는데?" 라고 반응할 정도로 미지근했다. 오바마 본인도 조금 당황한 듯하다. 혹자는 "eh, he got rid of bush(에이, 쟤가 부시를 쫓아냈잖아)"로 모든 걸 설명하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의 말로는 "아직 한 일의 결과도 안 나왔는데 받아도 너무 이르게 받았다" 라는 듯. 논문 발표도 안 했는데 노벨상 받는 거랄까.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그렇게나 멸시 천대를 받던 흑인종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이 하나만으로도 인종평등에 대한 커다란 상징이 되었기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오바마가 신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체결하는데 성공하여 평화상을 받아간 밥값은 충분히 했기 때문에[9]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선후가 뒤집히긴 했어도 대충 납득하고 넘어가는 분위기(...).

2010년에는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인사인 류샤오보가 수상했다. 그런데 이분은 감옥에 있으며, 앞으로 나오기도 힘든 상황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못 믿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실제로 확정되어 버리자 중국 공산당이 뒤집어지고 중국의 높으신 분들 위주로 난리가 났으며, 수상 발표가 난 뒤 '우리는 이번 노벨평화상을 인정할 수 없다.' 라면서 국제문제로까지 만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참류가 수상한 이후 중국에서 류의 가족, 친지, 지지자 등 2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출국금지 크리를 먹였는데 그 이유는 노벨상을 대신 받는 걸 못하기 위해서라고.

2010년 12월 10일. 중국 정부류샤오보 본인은 물론, 류샤오보의 모든 가족, 친척들과 인권운동가 등 수백여명을 출국금지를 시켰기 때문에, 결국 노벨평화상 수상은 공석으로 진행되었다. 노벨위원회 측에서는 타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인권 운동가에게 대리수상을 시켰을 수도 있지만, 특별히 상징적으로 빈 의자에다 노벨평화상 메달을 수여하였다. 빈 자리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1935년 나치 히틀러 시절 카를 폰 오시에츠키 수상자 이후 처음이며, 현장에 참여했던 인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3분 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게다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2012년 12월에 발표된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류샤오보가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부터 26개월째 아무런 법적근거도 없이 아내를 가택연금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화, 인터넷도 모두 차단한 채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게 하고 있고, 24시간 10여명의 건장한 감시자들에 의해 철통같은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연금은 2017년 류샤오보가 사망[10]한 후에도 풀리지 않고 있다.

중국 민간단체가 공자평화상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국제적으로 무시당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대만에서조차 무시당한다. 결국 이 상은 중국 정부에 의해 폐지. 자세한 것은 공자평화상 문서 참고.

2012년에는 유럽 연합이 수상했는데, 유로화 사태 등으로 인해 유럽 전체가 분란에 휩싸인 가운데 유럽연합 자체에 대해 적대적인 여론이 점점 커지는터라 부적절한 수상이라고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2020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홍콩 시민들과 시위를 이끄는 민간인권전선이 추천됐다고 한다. 기사

2.2. 개인만 받는가?

한 개인이 아닌 집단이 받는 경우도 있다. 1910년의 국제 평화국, 1963년의 국제 적십자사,1977년의 국제앰네스티, 1999년의 국경 없는 의사회, 2001년의 UN, 2007년의 IPCC(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2012년 유럽연합, 2013년 화학무기금지기구(OPCW(Organis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2015년의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등이 좋은 예이다.

2.3. 한국의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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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인이 받은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상이다.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학살된 사건을 APEC 등의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으로 막을 것을 건의해 결국 학살을 막아낸 것도 수상의 이유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 때문에 동티모르에서는 아직도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즉, 남북화해분위기 조성의 공 외에도 수상사유에는 DJ가 젊은 시절 펼친 민주주의 운동부터 재임시절의 업적까지 총망라되어 있는 것.[11]

이 노벨상 수상에 대해 로비가 있었다거나 그 반대의, 그러니까 수상하지 못하게 로비가 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밝혀진 바는 없다.

우선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군나르 베르게가 "난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말라고 한국인들에게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상에 널리 퍼져있는데, 이는 근거나 출처가 확인된 적이 없는 내용이다.

또 노벨위원회 부위원장인 군나르 스톨셋은 2016년 인터뷰에서 국정원 주도로 노벨상 로비가 존재했음을(그러나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음을) 언급하였다. 다만 다른 위원회 관련자의 증언이나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며, 스웨덴 내부 기준으로 군나르 스톨셋 혼자의 증언이기 때문에 교차검증이 불가능하다.

당시 한나라당 이신범 전 위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원외위원장들이 오슬로에까지 가서 김대중 노벨상 저지 시위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나라의 위신이 깎일 수 있는 당내 일부의 모난 행동이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1987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사민당 동료의원 80여명과 함께 김대중을 추천한 뒤 줄곧 해외의 여러 유력인사로부터 총 15번이나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겨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이후 벌인 로비 하나로 수상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애초에 위의 군나르 스톨셋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쳐도 결국 그다지 결정적인 영향은 주지 않았다고 언급하였고 말이다.

노벨평화상은 노벨상 부문 중에서도 노벨이 상을 만들게 된 의지와 가장 가까운 중요한 상이었던데다, 김대중이 받은 2000년은 새천년 최초수상자이면서 전세계적 관심이 집중되던 노벨상 100회 수상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시대적 상징성이 있는 수상을 일부의 음해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100년 역사상 최초로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다.[12]

노벨평화상 로비설이 잘 먹히지 않자 아예 노벨평화상 자체를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비록 노벨평화상의 기준이 논란이 있고 친서방적이라는 비판도 있을지언정, 어쨌든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권위있고 저명한 시상식이다.

한편 2017년 10월 8일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을 벌였으며, 사전 공작으로 라프토 상 수상을 취소시켜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하게 하려던 정황 역시 포착되었다.# 국정원은 한 보수단체 간부를 통해 서신을 작성해 노벨위원회에 부치기까지 했다. 이 과정 중에 사용된 비용은 전부 세금으로 충당됐다. 그 전에도 보수단체가 수상을 방해하는 로비를 행했다는 주장은 꾸준히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보수단체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정보원이 계획적으로 행한 작업이었다.

당연히 DJ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은 분기탱천하여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수 정당들의 경우 자유한국당당연히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지만, 바른정당은 사실이라고 믿기 싫을 정도로 저급한 행동이라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정의당쪽에선 어떤 반응도 없었는데 이쪽은 민주노총이 일을 벌였기 때문. 김대중은 민주노총 합법화와 민주노동당의 제약없는 활동을 인정해 주었지만, 폭력적인 시위로 인해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고 은행 파업을 공권력으로 해산시켰단 이유로 민주노총은 자신들이 탄압을 받았다며 노벨위원회에 면담을 신청해 김대중의 수상 반대를 위해 움직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리뉴얼되기 이전, 광화문점 입구에는 여러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캐리커처를 국가별로 진열해놓고, 한 자리는 "한국인 수상자를 기다립니다"라는 문구를 써 놓고 비워뒀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김대중의 캐리커처가 들어가게 되었고 '다음 수상자를 기다립니다' 라는 문구가 다시 써졌다.

최초의 한국인 수상자 김대중 이후 한국에선 지속적으로 노벨 평화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선 2007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2010년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노리고 최초의 대한민국 주도 국제기구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를 창립하였으나 불발되었고 결국 그해 평화상은 류샤오보가 받았다. 이 일화는 이명박 대통령 퇴임 후 한참이 지난 2018년에서야 기사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GGGI 자체는 후임 박근혜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잘 운영되고 있다.

2013년-2014년 당시 일부 보수단체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근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건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2013년여의도 순복음교회조용기(...) 목사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건의했다는 기사가 떴었다. 또한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역시 임기가 거의 끝나가던 2016년에 노벨평화상 수상 유력 후보로 많은 국내외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었으나, 결국 수상이 불발되었다.

2017년에는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건의하려는 프로젝트가 서울시 주도로 추진되었다. #

2018년에도 국제적인 불량국가인 북한이 전격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꾸준히 한반도 평화를 주장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온 적이 있다. 4월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급속도로 진전되자 영국의 공식 도박업체(...) 래드부룩스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공동 수상 배율을 1.67배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해서 문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가 이러한 덕담을 건네자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밝혔다.[13] 이 때문에 노벨평화상을 발표하는 (한국시간)10월 6일을 전후해서 '노벨 평화상', '노벨 평화상 후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렸다.

물론 문재인/김정은/트럼프의 수상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2018년 노벨평화상의 후보 추천은 2018년 2월에 마감했으므로 이후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의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당장 그 북미간 핵협상도 완료된 게 아니고 말이다. 결국 2019년, 북한에서 다시 미사일을 쏘기 시작하며 대남도발 수위를 높이고 몇 건의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놓고 마치 남북관계의 큰 전진이나 이룩될 것처럼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민심에 대한 기만이며 동족에 대한 예의와 도리도 없는 행위라고 대놓고 조롱하는 등 다시 분위기도 바뀌어버렸다. 결국 2019년 노벨 평화상은 이웃국과의 국경 분쟁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를 한 공로로 에티오피아 총리 아비 아머드가 받았다.

애초에 어느 대통령이건 대통령이 된 이후 행보 몇 가지만 가지고 노벨상을 받을까말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의 행보 말고도 그 전까지의 민주주의 운동 등의 업적 등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걸 명심하자.

3. 역대 수상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노벨평화상/수상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attachment/teresa.png
79년 수상자 마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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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수상자 아웅산수지 여사.[14]

파일:attachment/mandela.png
1993년 수상자 넬슨 만델라남아공 대통령과 드 클레르크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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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수상자 김대중대한민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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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수상자 류샤오보. 본인이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되어 있는 상태여서 상징적인 의미로 빈 의자를 놓고 수상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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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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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자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15]

[1] 한화 기준 약 10억 6,680만 원.[2] 아웅산수지 여사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민주화 투사에서 끔찍한 독재자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고, 2009년 수상한 버락 오바마 또한 퇴임 이후 업적이 재평가되면서 왜 상을 받아야 했는지 논란이 많다. 2013년 수상한 화학무기금지기구의 경우 시리아에서의 화학무기 폐기에 공헌했다는 수상 사유가 무색하게 시리아 정부군은 아직도 화학무기를 공공연히 쓰고 있다. 2012년 수상한 유럽연합도 공감을 못 얻기는 마찬가지.[3] 다만, 당시는 아직 식민지를 가진 국가들이 많아서 간디에게 수상한다는 것은 이들 나라를 모욕하는 일이므로, 죽지 않았어도 수상했을 지는 미지수이다.[4] 야시르 아라파트,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5] 군부 독재자로 이집트에서 악명이 높았다.[6]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좋게 평가될 수 없는 인물이다. 또한 극단적 시오니즘 테러 단체인 이르군(Irgun)간부이기도 했다.[7] 3.1 운동이 바로 이 민족자결주의 선언에서 영향을 받은 운동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승전국인데다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었다.[8] 다만 클린턴 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가 2007년에 수상했다.[9] 인류 역사상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감축하는데 성공한 협정은 START I과 New START 밖에 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맞다.[10] 사망 직전 석방되어 군 병원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생을 마쳤다.[11]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외국에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운동가로 상당히 이름을 날렸다.[12] 당시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라고 언급했다.[13] 이에 대해선 단순히 겸양의 표시가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외교적 의도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많이 나왔다. 트럼프에게 노벨상을 양보함으로서 한반도 평화 체제의 구축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구상. 자세한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외교 문서 참고.[14] 수상 당시 아웅산수지 여사는 미얀마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였고, 가족이 대신 수상했다. 사진 속의 모습은 수지 여사가 복권된 후인 2012년.[15] 노동계 대표인 총노조, 산업계를 대표하는 산업·무역·수공업연맹 시민단체인 인권연맹 법조계의 변호사회 등 4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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