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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stkNO | |||
<colbgcolor=#4b92db><colcolor=#ffffff> 출생 | 1905년 7월 16일 | ||
스웨덴 왕국 옌셰핑 | |||
사망 | 1961년 9월 18일 (향년 56세) | ||
로디지아 은돌라 | |||
재임기간 | 제2대 유엔 사무총장 | ||
1953년 4월 10일 ~ 1961년 9월 18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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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웁살라 대학교 (법학 / 학사) 웁살라 대학교 (경제학 / 석사) 스톡홀름 대학교 (경제학 / 박사) | ||
종교 | 개신교 (루터교) | }}}}}}}}} |
공식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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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그 함마르셸드 |
2. 생애
그의 가문은 17세기부터 스웨덴에 충성하여 영지를 받은 귀족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도 1914년부터 3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와 그의 가족은 웁살라 성의 소유자였고 그의 어린시절도 성에서 생활하며 보냈다. 그는 웁살라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30년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톡홀름으로 이주했다.3. 공무원 생활
그는 중앙정부의 실업위원회에서 일했으며 1933년부터 3년간 스톡홀름 대학교 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에는 스웨덴 중앙은행에서 근무하며 12년간 경영위원회에 소속되어 요직을 수행했다. 또한 그는 OECD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에서 스웨덴 대표를 맡았다. 1949년부터 1951년까지 외무장관을 지냈다가 물러났고 유엔사무총장 취임까지 스웨덴 국무위원으로 있었다.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논의에 활발히 참여했으며 마셜 플랜을 수립한 파리 회의의 대의원이었다. 1950년에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 간의 경제 협력을 증진시키는 공동체인 UNISCAN의 스웨덴 대표가 되었다 그는 1951년 스웨덴 유엔 총회 대표단 부위원장, 1952년 뉴욕에서 열린 총회에서 스웨덴 대표단 의장이 되었다.
또 1954년 12월부터 스웨덴 한림원에서 아버지의 비서로 활동했다.
4. 유엔 사무총장 선거
1952년 11월 10일 트뤼그베 리는 유엔 사무총장직 사퇴를 발표했다.[1] 후계자 피어슨에 대한 합의는 순탄치 않았다.그들은 정치와 이념 문제에 휘둘리지 않는 노련한 행정가를 원했고 최종 후보 결정을 위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11개국 투표에서 찬성 10표 기권 1표로 선임되었다.[2] 4월 7일 회원국 투표가 실시되었고 찬성 57표 반대 1표 기권 1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또한 5년 후에 있었던 다음 회기 투표에서는 만장일치로 연임이 결정되었다.
5. 사무총장 재임
함마르셸드는 사무총장 당선 직후에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모든 유엔 부서를 방문해 최대한 많은 수의 구성원들과 악수하고 구내 식당에서 자주 식사했으며 사무총장의 개인 엘리베이터를 모든 직원이 사용하도록 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관리자 4000명을 선발하여 총장 사무국을 구성하고 내부 규정을 만들었다.그는 UN 구성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졌다.[3]임기 중 함마르셸드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관계를 중재하는 일에 매진하였으며 1955년 6월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중국에 억류되어 있던 공군 조종사 11명을 석방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1956년 UN 평화유지군이 설립되는데도 기여했으며 수에즈 위기를 UN 사무총장으로서 잘 대처했다는 평이 있다.
1956년부터 UN 조직에 유대인의 참여가 시작된 것을 그의 업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1960년 독립한 콩고[4]와 신생 국가 카탕가국은 콩고 내전(Congo Crisis)을 해소하기 위해 유엔 원조를 요청했다. 함마르셸드가 콩고를 4번 방문했으나 소련으로부터 아프리카의 탈식민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1960년 9월 소련은 콩고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사무총장의 사임, 그리고 유엔 대표자의 직제를 3인 과두제로 할 것을 요구했다.
6. 사망
1961년 9월 18일 1961년 은돌라 유엔 DC-6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위에 언급된 콩고 내전은 콩고의 모이스 촘베가 레오폴드빌 콩고[5] 지역에서 남아공과 벨기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카탕가국을 만들고 독립을 선언했으나 UN의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촘베의 카탕가국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루뭄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사부부와 대립하면서 내전이 일어났고 당시 카탕가국과 콩고지역에 파견된 아일랜드 유엔평화유지군이 충돌하고 있었다.로디지아측의 공식적인 수사 결과는 조종사의 실수라는 것이며, 이후에 있었던 UN 측의 조사에서도 비행기 내에서의 폭탄 폭발이나 지대공 미사일, 하이재킹과 같은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사망한 승객들을 부검한 결과 총상이 발견 되긴 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수집한 모든 총알들에서는 발사 시의 회전의 흔적이 전혀 없었기에 추락시 폭발로 인해 탄창이 터지면서 생긴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정비 문서에 엔진에 총알이 뚫고 간 흔적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으나 이전 도착지에서 생긴 일이었고 수리가 완전히 마무리 되었다는 확인도 있었기에 추락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공식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해당 비행기에는 조종석 녹음 장치와 같은 블랙박스가 탑재되어 있지 않았고, 유일한 생존자였던 경호원도 제대로 증언을 하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면서 추락 원인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휴전을 제안하러 레오폴드빌로 가던 DC-6 비행기가 카탕가국 공군의 기관총 사격을 받아 추락했다는 설이나, 심지어는 그의 죽음에 짜여진 각본이 있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여기에 사건 발생 후 수십년 후에 NSA나 키프로스의 영국군 기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해당 지역 인근에서 활동하는 반군의 지시를 받던 조종사[6]가 이 비행기를 포착한 후 격추했다는 내용의 교신을 감청했다는 증언을 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UN은 공식 재조사를 시작했다.
재조사 중에 여전히 생존한 현지 주민들이 2대의 비행기가 오가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을 했지만, NSA가 가장 결정적일 증거가 될 감청 자료의 제공을 거부하면서 이러한 증언을 확인하는 것은 결국 불가능해졌다. 대신 승무원들이 15시간 이상 근무를 해서 피곤한 상태였고, 조종사에게 제공된 주변 지형 차트에서 시계에 큰 영향을 주는 산이 누락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활주로를 시야에 놓쳐서 고도 설정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증거가 없는 터라..
1959년 작성된 유언장에 따라 그의 개인 문집이 스웨덴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고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의 문집은 유엔의 창설과 냉전기 유엔 회원국들의 정치 관계를 조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1961년 노벨 평화상을 사후 수상했는데, 이는 수상 시점에 생존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수여받는 노벨상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다.[7]
7. 기타
스웨덴 1000크로나 지폐의 인물이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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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뤼그베 리는 1950년 여름 한국에 UN군 파병이 의결된 이후 공산권 국가 대표들의 반발에 시달렸다.[2] 함마르셸드가 중화인민공화국을 긍정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중화민국이 기권표를 던졌다.[3] UN 내부에 명상실을 만든 것이 함마르셸드이다.[4] 구 벨기에령 콩고[5] 현 콩고민주공화국[6] 2014년에 벨기에계 영국인 파일럿 얀 판 리세험이 미국의 외교문서를 분석한 가디언지에서 사무총장을 격추시킨 유력한 범인으로 보도되었다. 2007년 사망한 그는 당시 카탕가 주에서 용병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었다.[7] 한 보기로 1948년 노벨평화상 수상이 유력했던 인도 독립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가 발표 직전에 피살당하자, 그해 수상자를 아예 발표하지 않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