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5:04:50

1960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1963년
연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60년
대한민국 42년
단기 4293년
불기 2504년
간지 기해년 ~ 경자
주체 49년
대만 민국 49년
일본 쇼와 35년
(황기 2620년)
이슬람력 1379년 ~ 1380년
히브리력 5720년 ~ 5721년
페르시아력 1338년 ~ 1339년
에티오피아력 1952년 ~ 1953년
인류세력 11960년
로마 숫자 MCMLX
1. 개요
1.1. 민주화 혁명의 해1.2. 아프리카의 해
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3.1.13. 일자불명
3.2. 가상
4. 사망
4.1. 실제4.2. 가상
5. 데뷔
5.1. 가수5.2. 만화계
6. 히트작
6.1. 영화6.2. 가요6.3. 베스트셀러
7. 출시 상품
7.1. 식음료7.2. 생활용품
8. 달력

1. 개요


1960년은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1.1. 민주화 혁명의 해

이 해에 대한민국에서는 3.15 부정선거4.19 혁명으로 격동이 몰아쳤던 해였고,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의원내각제(의회제)양원제[1] 국회를 채택하는 내용으로 개헌을 하면서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5대 총선으로 양원이 구성되고 윤보선 대통령[2], 장면 국무총리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장면 내각은 그리 튼튼하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이듬해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실각하여 대한민국 제3공화국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4.19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화도 결국 1년 간의 한때에 그치고 만다.

1960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태어난 해로 기록되어있다. 1,080,535명으로 100만명대 출생아수의 정점을 찍었다. 이들이 환갑이 지난 62세인 2022년 기준으로 83~84%인 약 90만 명 정도가 생존중이다.[3]

위에도 적었듯이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 선거가 두 번 치러진 해이다. 3.15 부정선거제4대 대통령 선거가 반년도 안 되는 텀을 두고 치러졌었는데, 3.15 부정선거는 무효화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무효화 된 적이 없으며 당선자가 사퇴 혹은 사망하여 사실상 없던 일이 된 것이다. [4]

이 해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서울대 60학번은 한국 문학사에서 매우 유명하다. 한국 현대문학에서 손꼽히는 작가들이 이 서울대 60학번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김승옥, 이청준, 김광규, 김지하 등이 이 서울대 60학번이다.

1.2. 아프리카의 해

아프리카에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들이 많이 독립하며 이 1960년을 아프리카의 해로 불리게 만들었다. 프랑스 치하에서만 14개국이 독립했다.

이상 17개국이 독립하고, 16개 국이 UN에 같은 해 가입했다.[6]

그 이전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는 원래부터 독립해 있던 남아프리카 연방,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제국리비아(51년), 모로코, 수단, 튀니지(56년), 가나(57년), 기니(58년)의 9개국에 불과했다.

61년에도 시에라리온, 탕가니카(61년, 후에 잔지바르(63년)와 연합해 탄자니아(64년)), 알제리(62년), 케냐(63년)가 독립했으며, 63년까지 아프리카에 30여 개국(현재는 53개국)의 국가가 독립하면서 제3세계가 두각을 나타내는 데 공헌했다.

냉전은 다시 열전으로 번질 위기에 처했다. 미국 정찰기 U-2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데 이어, 또 다른 미국 정찰기를 격추하기 위해 소련군 전투기가 출격하는 등 크고 작은 충돌과 긴장이 1년 내내 이어졌다.

2. 사건

2.1. 실제

2.1.1. 1월

  • 1월 1일
  • 1월 7일: 체신부는 시내 전보를 창설했다.
  • 1월 9일: 이집트나일 강 중류에서 당시로선 세계 최대 규모의 아스완 하이 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 1월 14일: 농림부는 <농촌 고리채 정리요강>을 작성했다.
  • 1월 24일: 민주당은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을 모태로 하여 각계각층의 인사가 참여하는 '공명선거 촉진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의하였다.
  • 1월 25일
    •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최악의 관제선거에 전 국민이 분기하여 독재와 투쟁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 민족주의민주사회당은 3월 선거에 반대하고 5~6월경에 선거를 실시하자는 요청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출하였다.
  • 1월 26일: 서울역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 1월 29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2.1.2. 2월

  • 2월 2일: 장택상, 서상일 등을 중심으로 한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이 결성되었다.
  • 2월 5일: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정/부통령 선거에 장택상과 박기출을 선정하였다.
  • 2월 6일: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공명선거추진위원회(가칭)'를 발족키로 결정하였다.
  • 2월 7일: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범국민 운동단체인 공명선거추진위원회에 전 국민이 총궐기하여 참여를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2월 9일: '공명선거추진 전국학생위원회(이하 공명학생위)' 발기인 대회가 개최되었다.
  • 2월 11일: 중국인도간의 첫 국경충돌이 발생해 인도군 12명이 숨졌다.
  • 2월 13일
    • 반독재민주수호연맹 대통령 후보 장택상은 강력한 대 자유당 투쟁을 선언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제2차 반독재민주수호연맹 정/부통령 후보 등록방해 테러사건'이 발생하였다.
    • 프랑스가 사하라 사막에서 핵실험에 성공, 4번째로 핵보유국이 되었다. (프랑스의 핵개발)
  • 2월 14일
    • 민주당은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각자가 선거인 명부를 열람하자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전날의 등록 방해가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이고 공포분위기 조성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사망했다.
  • 2월 25일: 유석 조병옥 박사의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 2월 28일
    • 경북 대구의 경북고생 수백여 명이 많아지는 일요등교 조치에 항의하며 가두 시위를 벌였다(2.28 학생민주의거). 이로 인해 학생 5~6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 민권수호국민총연맹과 민주당 등 각계각층 2백여 명이 '공명선거추진 전국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2월 29일
    • 민주당은 2.28 봉기에 대한 경찰의 폭행을 규탄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며 최인규 내무부장관에게 강력히 항의하였다.
    •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경찰과 문교당국을 강력히 규탄하고 민권 탄압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모로코 아가디르에서 지진이 발생해 약 15,000명이 사망하고 12,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2.1.3. 3월

  • 3월 1일: 공명선거추진 전국위원회 산하 학생특별위원회는 이날 열린 3.1절 경축식장에서 "3.1정신 받들어 대구시민 성원하자"와 "공명선거 촉진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3월 2일
    •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 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최인규 내무부장관은 민주당이 학생을 선거운동에 이용한다고 비난하였다.
    • 공명선거추진 전국위원회는 자유당의 공포 분위기 조성을 지적하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 공명선거추진 학생위원회는 "공명선거운동에 총궐기하자"는 내용의 격문을 배포하였다.
  • 3월 3일: 민주당은 자유당의 경찰공무원 선거대책 비밀공문에 관한 정보를 폭로하였다. 이에 자유당 측은 낭설이라고 반박하였다.
  • 3월 9일: 민주당 여수시당 재정부장 김용호가 괴한에게 피습 뒤 사망하였다.
  • 3월 10일
    •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여수 민주당 간부가 집권당의 조종을 받은 괴한에 의해 피살당한 사건은 부정선거를 입증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당원 이상철이 반공청년단 오세열에게 살해당했다. 이때 경찰은 민주당 광산군 부위원장을 구속하였다.
  • 3월 11일: 이강학 치안국장은 개전의 정이 없는 시위 학생들을 입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3월 12일
    • 반공청년단은 이틀 전 '광산 사건'의 가해자 오세열은 반공청년단과 관계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 박승준 검찰총장은 학생들의 위법 시위행위를 엄단하겠다고 경고하였다.
  • 3월 15일
  • 3월 16일
    • 이승만 대통령은 '마산 사건'의 배후 관계를 조사해 의법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 정부는 마산 시위 관련자를 형법과 국보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마산 사건'의 배후에 민주당 혹은 공산당의 사주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 공명선거추진위원회는 "3.15 선거는 민주주의를 생매장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주의민족사회당은 3.15 선거가 불법/폭력이 자행되었으므로 무효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통일당은 "3.15 선거는 대담한 부정"이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의 선거 폭동에 유감을 표했다.
  • 3월 17일
    • 부산지검은 3.15 마산 시위와 관련된 학생 23명을 구속하였다.
    • 민주당 의원들이 총사퇴를 검토하였다.
    • 이강학 치안국장은 마산 사건 자체가 공산당의 수법과 비슷하고 공산당 배후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이날부로 마산시내 중고생 등교 중지령이 내려졌다.
  • 3월 18일
    •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마산시위와 관련해 "총은 쏘라고 준 거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 국회는 단독으로 이승만과 이기붕의 정/부통령 당선을 공표하였다.
    • 민주당은 국회에서 3.15 선거무효 선언문을 낭독한 뒤 도보를 행진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사표를 제출하였다.
  • 3월 19일
    •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은 마산 시위의 주동자를 의법처단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이강학 치안국장과 이성우 내무부 차관이 사표를 제출하였다.
  • 3월 21일: 제3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가 실시되었다.

2.1.4. 4월

  • 4월 6일: 민주당,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3자 합동으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 4월 11일: 제2차 마산 시위가 발생하였다. 같은 날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 주일 후...
  • 4월 14일: 국회 마산 사건 위원회가 현지 출발하였다. 같은 날 등록방해로 대통령 입후보 등록을 하지 못한 한기도가 대법원에 3•15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 4월 18일: 고려대학교 4.18 학생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날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대학생들이 정치 깡패들에 의해 피습당해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 4월 19일: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4.19 혁명의 시작이었다. 정부는 급히 5개 주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였다.
  • 4월 21일
  • 4월 23일: 장면 부통령이 사임하였다.
  • 4월 25일: 서울에서 전국 대학교수단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문구가 씌어진 플랜카드를 들고 가두 시위를 벌였다.
  •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며 시위대에 항복했다.
  • 4월 27일
    •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에 외무부장관이었던 우양 허정이 임명되었다.
    • 경향신문이 복간되었다.
    • 토고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4월 28일
    • 이기붕 일가 피살사건이 일어났다.
    • 조용순 대법원장이 사표를 냈다.
    • 허정 과도내각이 수립되었다.
  • 4월 29일: 대구지역 교사 60여 명이 '교원조합 결성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는 교원노조 운동의 첫 신호였다.

2.1.5. 5월

  • 5월 1일
    • 과도정부는 3.15 부정선거의 무효를 확인하였다.
    • 서울지역 47개 중고교 및 3개 국교 교사들이 '교원조합 결성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미국의 신형 고고도 정찰기 U-2소련 상공을 정찰 비행하던 도중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다.
  • 5월 2일: 새 국회의장에 곽상훈이 선출되었다.
  • 5월 3일
    •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퇴를 선포하였다.
    • 3.15 부정선거 중요인물 중 하나인 전 내무부 장관 최인규가 구속되었다.
    • 국무회의는 학도호국단 해체를 결의하였다.
    • 김기옥 위원장 등 대한노총 어용 간부진들이 총사퇴하였다.
  • 5월 4일
    • 과도정부는 일본인 기자의 무제한 입국을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13일 뒤, 일인 기자 15명이 입국하게 되었다.
    • 전 치안국장 이강학이 경찰에 자수하여 비밀 경찰조직을 만들었다고 자백하였다.
  • 5월 5일: 전북 전주에 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7일: 대구지구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9일
    •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정계 은퇴를 골자로 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 대구교수협회가 결성되었다.
  • 5월 10일: 학도호국단 규정이 폐지되었다.
  • 5월 11일
  • 5월 21일: 해방 이후 최초의 민주 교원노조 연합체인 '대한교육노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5월 22일: 칠레에서 무려 M9.6 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진이 일어났다.
    • 5월 27일
    • 서울 등지에 적용된 비상계엄이 해제되었다.
    • 4월혁명 유족회가 결성되었다.
  • 5월 29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2.1.6. 6월

  • 6월 1일
    • 과도정부는 부정축재 자수기간을 20일까지로 설정하였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삼성 등 9개 재벌기업의 탈세 86억 8,200만 환을 신고받았다.
    • 동아대 학생들은 허위 보도에 항의하며 부산일보 본사를 습격하였다.
    • 4월혁명부상동지회가 발족되었다.
    • 조흥은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일: 구국청년당이 '사회혁신당'으로 개칭되었다.
  • 6월 5일: 서울지검은 부정선거 혐의가 있는 전직 각료 9명과 자유당 기획의원 13명을 구속하였다.
  • 6월 6일: 한국청년당이 결성되었다.
  • 6월 8일: 민주학생총연맹이 결성되었다.
  • 6월 10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 6월 11일: 한일은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2일: 민주민족청년동맹이 결성되었다.
  • 6월 15일
    •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국회 통과와 동시에 제정되었다.
    • 경북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었다.
  • 6월 16일
    • 이날 정부는 시국수습대책회의에서 시위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하였다.
    • 한국무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7일
    • 새 헌법에 따라 곽상훈 국회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 연합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8일
    • 사회대중당 총무위원 서상일은 남북한 문화교류를 제의하였다.
    • 제일생명보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9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집단방위강화책 등에 대해 상의하였다.
  • 6월 20일
    • 허정 수반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조와 미국의 경제원조 등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세네갈말리가 "말리 연방"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6월 21일: 경찰관 1천여 명은 의사당 앞에서 경감을 구타한 김선태 의원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사상 초유의 경찰 시위였다.
  • 6월 22일
    • 곽상훈의 사퇴로 허정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다시 맡았다.
    • 4월혁명유족회는 '4월 영령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 4월혁명학생동지회는 '4월혁명 순국시민 합동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 문교부는 교원노조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및 교육공무원법 위반이므로 해체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 마산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 6월 23일
    • 대한교원노조연합은 문교부의 교원노조 해체 지시에 반박하며 이병도 장관의 사임을 권고하였다.
    • 부산지구교원노조 소속 교사 2천 1백여 명은 '교련해체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하였다.
    • 일본에서 미일안전보장조약 신조약이 효력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여기에 반대하는 큰 규모의 시위인 안보투쟁이 일어났다.
  • 6월 24일
    • 체신, 철도 등 공무원노조는 교원노조를 지원키로 결의하였다.
    • 대전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성토하며 '조합원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국회는 군정법령 55, 88호를 폐기하고 신문 및 정당등록 법안을 통과시켰다.
  • 6월 25일
    • 부산지구교원노조 소속 교사 5백여 명은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하고 교원노조로 단결할 것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마산 피학살 유족 관련자인 노현섭, 김용국 등은 "정부는 양민 처형의 내용을 밝히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마산시내에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 6.25 전쟁 10주년.
  • 6월 26일
    • '인천지구중등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전남교원노조 도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전국노협은 교원노조와 공동투쟁을 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영국소말리아(소말릴랜드)가 독립했다. 5일 후, 이탈리아령 소말리아도 독립하여 합류한다.
    • 마다가스카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6월 27일: 정부는 5대 민의원 및 초대 참의원 선거일자를 7월 29일로 공고하였다.
  • 6월 28일: 혁신계 세력들은 연합공천에 실패하여 사회대중당, 혁신진영선거대책협의회, 사회혁신당 등 세 갈래로 분열되었다.
  • 6월 29일
    • 부산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대한교원노조연합과 전국노협은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노동조합법 위반으로 고발하였다.
  • 6월 30일
    • 문교부는 교원노조 해체가 정부 방침이라고 거듭 밝혔다.
    • 철도노조는 이날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을 대폭 개선한 뒤 임금인상과 감원방지 등을 결의하였다.
    • 벨기에령 콩고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2.1.7. 7월

  • 7월 1일
    • 이날부로 7.29 총선 민/참의원 후보 등록이 마감되었다.
    • 사회혁신당은 총선을 전면 보이콧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전북교원노조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김천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성토하였다.
    • '서울대 문리대 국민계몽대'가 결성하였다.
    • 대한민국 민사소송법이 시행되었다.
  • 7월 5일: 3.15 부정선거 주모자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 7월 6일
    • 사대당은 연설회에서 통일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립국감시안과의 절충안을 제의하였다. 이에 민주당 측은 사대당의 주장에 대해 용공성 통일이라고 비난하였다.
    • 경남 울산의 고교생 2백여 명은 교원노조를 지지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 서울대 국민계몽대가 결성되었다.
    • 서울대 신생활운동반은 신생활운동의 일환으로 '국산품 애용 운동'을 전개하며 세종로에서 양담배를 소각하였다.
  • 7월 7일
    • 서울대 국민계몽대는 계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각 지방으로 출발하였다.
    • 서울시내 각 대학생 대표들은 '대한민국대학생총연합회'를 구성하였다.
  • 7월 9일: 대한변협은 교원노조 해체에 대해 불법이라고 질의에 회답하였다.
  • 7월 12일
    • 사대당의 서상일은 북한과 문화, 경제, 인사 면에서 교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마산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었다.
  • 7월 13일: 민주당은 서상일의 발언에 대해 한국의 현실을 도외시한 발언이라고 비난하였다.
  • 7월 14일: 허정 국무총리는 교원노조가 불법이라고 밝혔다.
  • 7월 15일: 경북지구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었다.
  • 7월 17일: 한국일보사가 <소년한국일보>를 창간하였다.
  • 7월 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가 개시되었다. 이때 13개 선거구에서 투표함 파괴/소각 등이 발생하였다.

2.1.8. 8월

  • 8월 1일
    • 경찰은 7.29 총선사건 관계자 322명을 방화 및 소요죄로 구속하였다.
    • 한국일보사가 <서울경제신문>을 창간하였다.
  • 8월 2일: '경남지구교원노조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8월 3일: 니제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8월 4일
    • 민주당 구파는 신파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대한노총과 철도노조가 결별을 선언하였다.
  • 8월 5일: 부르키나파소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8월 6일
    • 민주당 구파는 다음날 열릴 의원총회를 거부하고 분당 선언을 재확인하였다. 이로써 민주당은 구-신파로 분열되었다.
    • 쿠바 사회주의 정부가 쿠바 내 미국 자산을 전면적으로 압류하여 양국 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 8월 7일 : 코트디부아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8월 8일
    • 제5대 민/참의원이 개원되면서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 서울시민 2백여 명이 반혁명 세력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 8월 11일: 차드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8월 12일: 민/참 합동회의는 해위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 8월 13일
  • 8월 14일: 북한의 김일성은 해방 15주년 경축대회 연설에서 남북 연방제를 제의하였다.
  • 8월 16일: 윤보선은 민주당 구파의 김도연국무총리 서리로 지명했으나, 장면이 국무총리로 인준되어 부결되었다.
  • 8월 17일
    • 한국교원노조, 철도노조, 전매노조 등은 '공무원노조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최후까지 극한투쟁을 결의하는 내용의 투쟁성명을 발표하였다.
    • 가봉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8월 19일
    • 민의원은 새 국무총리직에 장면 전 부통령(신파)을 인준하였다.
    • 장면 신임 총리는 균형내각 구성, 경제건설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당 구파는 분당을 결정하였다.
    • 전국노협은 경북교원노조의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8월 20일: 이날 경북 대구에서 3천여 명의 교사들이 모인 가운데 '교원노조 탄압반대 전국조합원 총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8월 22일: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는 서울 종로국민학교에서 제2차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이후의 투쟁 계획을 토의하였다.
  • 8월 23일
    • 민주당 신파 중심의 장면 내각이 성립되었다.
    • 윤보선 대통령은 정부의 강력한 시책과 국민의 협력을 요망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민주당 구파는 민/참 양원 의원총회를 열어 야당의 입장에서 투쟁키로 결의하는 한편, 장면 총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동지회'라는 명칭으로 원내교섭단체 등록을 할 것을 결정하였다.
  • 8월 24일
    • 장면 국무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신파 일색의 내각을 조만간 개각하겠다고 밝혔다.
    •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는 법무, 보사, 문교부 장관에게 불법인사 철회 등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 8월 25일
  • 8월 29일: 이날 4.19 발포사건 결심공판에서 류충렬, 곽영주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 8월 30일: 4.19 발포사건 결심공판에서 홍진기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 8월 31일: 동지회(민주당 구파)가 원내교섭단체로 등록되었다.

2.1.9. 9월

2.1.10. 10월

  • 10월 1일: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10월 8일: 서울지법은 발포명령 사건 등 6대 사건에 대해 류충렬을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확정하였다.
  • 10월 11일: 4.19 유족, 부상자를 비롯한 학생과 시민들은 3일 전 판결에 항의하며 민의원 의사당 단상을 점거하였다.
  • 10월 12일
    • 민주반역자 처리 법안이 민의원을 통과하였다.
    • 일본사회당의 아사누마 이네지로 당수가 극우 청년에게 살해당했다(도쿄 찌르기 사건). 그리고 범인인 야마구치는 11월 2일 소년원에서 치약으로七生報国 天皇陛下万才[7]라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목을 매 자살하였다.
  • 10월 23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자국에서 개최된 AFC 아시안컵에서 전승무패로 대회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것이 우리 대표팀의 아시안컵 마지막 우승이었다.
  • 10월 25일: 제5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 회담은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다.
  • 10월 30일: 부산 밀수깡패들이 경찰관을 납치하여 집단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10월 31일: 새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다.

2.1.11. 11월

2.1.12. 12월

  • 12월 1일: 부산~하카타 간 한일 정기 해상항로가 휴전 이후 처음 취항하였다.
  • 12월 9일: 영국 ITV에서 TV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가 첫 전파를 탔다.
  • 12월 10일: 신앙촌 신도들이 동아일보 본사를 습격하였다.
  • 12월 12일: 첫 서울특별시 및 도의원 선거가 개시되었다.
  • 12월 26일: 전국 시/읍/면의원 선거가 개시되었다.
  • 12월 29일: 첫 서울특별시장 및 도지사 선거가 개시되었다.
  • 12월 30일: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하였다.
  • 12월 31일: 부정선거처리법 및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이 제정되었다.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1.1. 1월

3.1.2. 2월

3.1.3. 3월

3.1.4. 4월

3.1.5. 5월

3.1.6. 6월

3.1.7. 7월

3.1.8. 8월

3.1.9. 9월

3.1.10. 10월

3.1.11. 11월

3.1.12. 12월

3.1.13. 일자불명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5. 데뷔

5.1. 가수

5.2. 만화계

  • 강철수 - <명탐정>
  • 김수연 - <독립군>, <풀피리>
  • 박문윤 - <인조인간 XO>
  • 유표 - <오뚜기>
  • 이우정 - <무정도시>
  • 이향원 - <의남매>
  • 한희작 - <달나라로 달려>
  • 허어

6. 히트작

6.1. 영화

6.2. 가요

  • 이미자 - 열아홉 순정
  • 한명숙 - 노란 샤스의 사나이

6.3. 베스트셀러

  • 광장 - 최인훈 저.

7. 출시 상품

7.1. 식음료

  • 동양제과공업
    • 오리온 풍선껌
    • 오리온 오색껌
    • 오리온 담배껌
    • 오리온 무지개껌
  • 삼강유지화학
    • 3월: 삼강 마아가린

7.2. 생활용품

8. 달력

1월2월3월
12 123456 12345
3456789789101112136789101112
101112131415161415161718192013141516171819
171819202122232122232425262720212223242526
242526272829302829 2728293031
31
4월5월6월
121234567 1234
3456789891011121314567891011
101112131415161516171819202112131415161718
171819202122232223242526272819202122232425
24252627282930293031 2627282930
7월8월9월
12 123456 123
34567897891011121345678910
101112131415161415161718192011121314151617
171819202122232122232425262718192021222324
2425262728293028293031 252627282930
31
10월11월12월
1 12345 123
2345678678910111245678910
91011121314151314151617181911121314151617
161718192021222021222324252618192021222324
2324252627282927282930 25262728293031
3031



[1] 사실 헌법상으로는 이미 1952년의 발췌 개헌 당시부터 양원제는 포함이 되었던 조항이다. 다만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상원인 참의원을 구성할 선거를 미루면서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다.[2] 현재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었기에 실권은 없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일본의 천황, 또는 독일의 대통령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3] 출생 기대수명은 55~60세 정도였으나 의학의 발달로 환갑이 넘어도 6명 중 5명이 생존해있으며, 이들 중 약 8%는 5세 이하에 사망했다. 여담으로 76~82세 정도가 절반이 생존해있다.[4] 참고로 두 번째로 대통령 선거가 많았던 적은 1971-1972년으로 1971년1972년 사이에 10월 유신이 공포되어 71년 대선을 치르고 1년만에 다시 치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979-1981년도 1979년, 1980년, 1981년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대선을 치렀다. 모두 체육관 선거였으며, 79년 대선은 전무후무한 현직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80년 대선은 5.17 내란 이후 현임 대통령 사퇴로, 81년 대선은 8차 개헌으로 인한 선거였다.[5] 원래는 독일 제국 식민지이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에 분할(위임통치). 그래서 남부는 영국령하에 있었는데 1961년 독립되면서 북쪽에 합병되었다.[6] 모리타니는 1961년에 가입했다.[7] 칠생보국, 천황폐하만세. 원문을 보면 세(歲) 대신 재(才)자라 되어 있는데 일본에선 이 둘의 발음이 같아 기왕이면 획이 적은 재(才)자로 대신 쓰는 경우가 있다.[8] 엄석대가 몰락한 해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주인공 또래는 6학년이었다.[?] 1955년 4월 29일이라는 설도 있다.[10] 프로필 상의 9월 9일은 음력 생일.[11] 86회 이바돔감자탕 지갑 잃어버려서 신분증 출생 발견[12] 전부 화장/세탁비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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