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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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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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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진[1]
1. 소개2. 생애
2.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2.2.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 시절2.3. 왕립우주군2.4. 톱을 노려라!2.5.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2.6. 공백기2.7. 신세기 에반게리온2.8. 그 남자! 그 여자!2.9. 실사영화2.10. 에반게리온 신극장판2.11. 신 고지라2.12. 현재2.13. 기타 경력
3. 성격4. 오타쿠
4.1. 반(反) 오타쿠 성향?
5. 인간관계6. 작품 성향7. 작품 목록
7.1. 감독 작품7.2. 스태프로 참가한 작품 목록
8. 기타


庵野 秀明(あんの ひであき).
절대 안노 히데가 아니다.

1. 소개

이해하기 쉽다면 거기서 끝나버리는 것이죠. [2]
1960년 5월 22일 일본 야마구치우베시에서 출생. 키 180cm.[3][4]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의 작품을 제작한 오타쿠 출신 애니메이터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2018년 현재는 스튜디오 카라사장대표이사.[5]
▲ 제27회 도쿄국제영화제 "안노 히데아키의 세계" PV. 중간중간에 해괴한 것들이 몇 개 보일 텐데 안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 안노가 그린 작화의 주목할 점은, 뭐니 뭐니 해도 파편의 묘사.[6]

애니메이터로서 '인물'은 전혀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데포르메[7] 되어있는 그림체에, 평범한 수준이나 대신에 메카, 건물, 기계, 폭파, 파편 작화는 수준급으로 그려낸다. 애초에 자신이 사람을 못 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업계에 들어가서도 바로 사람은 못 그리지만 성공한 이타노 이치로의 집에 눌러 앉아서 기술부터 배웠다고 한다. 건물이나 거대 메카닉 작화는 지금도 업계 일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에야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현재까지도 몇몇 애니메이션에 작화로 참여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제작중인 에바 신극장판에 총감독 및 작화로도 참여하고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거신병의 등장/전투 장면이 그의 작품으로, 이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서 받은 영향이 커서 안노는 지금도 그를 "스승"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폭파 장면에 대해서도 일화가 있는데, 미사일이 발사될 때 연기와 불꽃을 리얼하게 그리기 위해 해외까지 나가서 직접 가서 보고 와서 그렸다고 한다.(가이낙스의 《왕립우주군》 제작시의 일화로, 우주선 발사 장면을 위해 직접 미국 NASA 견학까지 다녀왔다.)

위에는 애니메이터로서의 능력이고 연출가로서 콘티를 작성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쪽으로 활약한 작품의 경우엔 어차피 사람은 다른 작화가나 배우가 대신하니까 되니까 인물 묘사도 제대로 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캐릭터들이 꽤나 현실적으로 리얼하게 감정 묘사를 하고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못 생기게 그려서 그런 것이지 사람을 묘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연출가로서도 1세대 오타쿠 감독 중에서는 최고란 평가를 받고있다. 다만 본인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후로는 괴작만 연달아 만들어서 대중에겐 연출가로서 크게 부각되진 못했다.

2. 생애

2.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초딩 시절부터 만화와 텔레비전에 푹 빠져살았던 이른바 제1세대 오타쿠. 중딩 시절에는 쇼조망가(순정만화)에도 심취, 고딩 시절엔 미술부의 부장을 맡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고교시절엔 아마추어 특촬 모임에 들어간 적도 있었으며, 덕분에 재수한 끝에야 실기시험만으로 입학 가능한 오사카 예술대학에 들어 갔으나 학업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매진하는 길을 걷는다. 재학 시절에는 《돌아온 울트라맨》이란 패러디 특촬물에 《애국전대 대일본》 DAICON III, IV 오프닝 같은 작품의 제작에 참여해 관심을 받는다.

대학 시절, 동아리 시절에 만난 학우(가이낙스의 주축 멤버들)과의 인연으로 DAICON FILM의 멤버로, 오사카에서 열린 SF대회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특촬 영상 제작에 참가하게 된다.


위는 「서투른 대포도 많이 쏘면 맞는다!(へたな鉄砲も数うちゃあたる!)[8]」은 1979년(재수할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아마추어 애니메이터 집단 '그룹 SHADO'에서 취미활동으로), 「튼튼한 타이어(じょうぶなタイヤ!)[9]」은 1980년에 오사카 예대 재학 시절에 만든 것.[10]


DAICON III 오프닝


DAICON IV 오프닝 참고로 말하는데 둘 다 애초에 오프닝밖에 없는 작품이다.

DAICON IV 오프닝은 한국에선 여태 정식 공개된적이 없다가, 2008년 PISAF에서 《극장판 천원돌파 그렌라간 홍련편》의 상영뒤에 치뤄진 특별행사에서 상영되었다. 본편 BGM은 영국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줄여서 ELO)'[11]의 Twi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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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낙스의 초대 CEO였던 오카다 토시오가 운영하던 오타쿠 대상 굿즈 판매 가게 제너럴 프로덕츠의 홍보 포스터. 안노가 그린 DAICON FILM 포스터에는 중앙에 본인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DAICA FILM 시절의 아마추어 특촬 작품 《돌아온 울트라맨》, 안노 히데아키는 총감독 (제작을 질질 끌다가 이대로는 완성이 안 되겠다고 도중에 감독직은 아카이 타카미로 교체당했다)겸 주연인 울트라맨(그것도 본인이 고집해서 안경 쓴 민낯)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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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겼다

2.2.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 시절

위의 경험에서 만난 지인들과의 인연으로,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로 스튜디오 누에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원화를 그리거나[* 다이콘3에는 스튜디오 누에 팀(이들도 SF동호회 출신의 1세대 오타쿠들)이 왔었는데, 이때 만난 인연으로 프로의 애니메이터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스튜디오 누에가 만들고 있던 마크로스 TV판 작업에 견학을 갔는데, 이때 이타노 이치로가 느닷없이 컷봉투 원화를 주면서 이거 고쳐보라고...그렇게 메카반(班)에 들어가 3개월간 마크로스 원화를 그린다. 원래 애니메이터는 동화부터 시작해서 선긋는 연습부터 하고 원화로 들어가는데 안노는 선을 너무 지저분하게 여러번 긋는 버릇이 있어서 도저히 동화는 시킬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해서 그림을 못 그리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원화로 투입되었다.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은 동화를 그린 경험이 없어서 그림이 서툴다고 겸손을 떨었다.

그리고 잠잘 곳이 없던 안노는 이때 이타노 이치로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인연으로 나중에 마크로스 극장판에도 원화로 참가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의 거신병 장면의 원화를 담당하게 된다. 잡지 아니메쥬에 실린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화 스탭의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하여 응모할 때 가져간 원화를 미야자키가 보고 그 재능을 높이 평가받아 까다롭다고 여겨졌던 클라이막스의 거신병 등장 장면을 맡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데, 안노 말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스즈키 토시오 말로는 그런 어려운 씬은 젊은 애들에게 맡겨야 필사적으로 하니까 일부러 맡겼다고 밝힌 바 있다. 안노가 나중에 밝히길, 자신은 거신병 장면 타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야상'은 작화팀에 여유가 없어서 개봉일자에 못맞추니 그걸로 됐다고 하고[12], 거신병의 그림자도 색을 더 넣어서 거대한 입체감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야상으로부터 2색까지 늘리는 것은 허락하나 3색으로 늘리면 죽여버린다는 쪽지를 받았다고 한다. 안노는 스태프들 몰래 타임을 늘려 원화를 그려버렸지만, 지금도 "거신병이 무너져지기 전에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고개를 한바퀴 돌리면서 녹아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거신병이 녹아내리는 장면도 원화와 원화사이의 동화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동화 5장이면 된다고 지시했는데 동화 7장을 넣었어야 했다. 녹아내리는 것이 너무 빨라서 러시 필름을 봤을 때는 죽고 싶었다. 실패작이었다"고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그 이후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은 듣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3개월간 카나다 요시노리와도 함께 일했는데, 카나다는 애니메이션은 대충 할 곳은 대충해도 된다고 가르쳐줘서, 안노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전력으로 집중해야 할 장면과 힘을 빼야할 대목은 빼는 연출을 하게 된다. 정해진 예산이 100일 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까지 일일히 공을 들이면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낮아질 뿐으로, 보여주고 싶은 대목에 80을 들이고 나머지는 20으로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 가르침은 안노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드러난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가 그렇고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그렇다.

이후에는 주로 메카와 폭발 장면 등의 특수효과 애니메이션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시기 지브리에서 채용이 결정되고, 오사카 예대는 학비를 내지 않아 제적된다.

안노는 이 시절에 만난 이타노 이치로미야자키 하야오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기고[13]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써의 역할이 뭔가를 배웠다고 한다.[14]

작화보루에서도 안노의 80년대 및 비교적 최근의[15] 작화영상들을 볼 수 있다.

2.3. 왕립우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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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의 작업을 발판 삼아 1985년도에 같이 DAICON IV를 만들었던 사람들 (야마가 히로유키, 아카이 타카미, 오카다 토시오)과 가이낙스를 설립, 《왕립우주군》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 평론은 매우 호평이었으나 당시의 일반 대중은 재미없다며 외면했고 흥행을 대차게 말아먹게 된다.

당초 이 작품만 만들고 해산할 예정이었던 가이낙스는 빚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 방법을 궁리하여 여러 애니메이션의 하청작업과 간간히 만드는 오리지널 창작물로 회사의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2.4. 톱을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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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우주군》의 실패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전기였다. 가이낙스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는 짊어진 빚을 갚기 위해 잘 팔릴만한 노선으로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미소녀와 메카가 등장하는 각종 패러디로 버물어진 OVA SF 애니메이션 《톱을 노려라!》를 기획한다. 그 각본을 읽은 안노는 자신이 감독을 자청한다. 이 작품은 의외로 많이 팔렸고, 재능있는 작화가 정도로만 인식되던 그가 뛰어난 연출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고 이로서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실은 전설의 미소녀 게임 '몽환전사 바리스' 광고를 찍은 것이 실질적 프로감독 데뷔라고.

2.5.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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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왕립우주군》 이상의 대작,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NHK와 토호라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부터 넘겨받게 되지만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에게 상당한 좌절을 안긴다. 사실상 하청업체로서 버거운 스케줄을 감내해야 했으며 스폰서와의 잦은 충돌을 겪으며 가이낙스라는 조직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결국 《나디아》 종영 직후 오카다 토시오가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는 가이낙스를 등졌으며 [16] 마에다 마히로등의 인물들은 퇴사하여 곤조를 설립한다.

2.6. 공백기

《나디아》 이후 4년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말에 따르면 《에반게리온》의 기획이 오랫동안 승인되지 않았고, 안노는 스튜디오에서 이불을 깔고서 4년간 생활을 했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월급도 안 나왔다고(...) 안노는 이 시절 자신에게 있어서 멘토이자 목표이기도 한 토미노 요시유키를 찾아가 그의 아래에서 일을 하면서 비로소 초심으로 돌아와 다시금 자신만의 방향성을 추구하게 된다.[17]

《나디아》 종영 이후, 운동을 즐겨하며 몸에 체력을 붙였고 이 즈음 즐긴 취미는 스쿠버 다이빙. 그래서인지 《에반게리온》에서도 스쿠버 다이빙 장면이 나온다.

2.7. 신세기 에반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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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등장했고 온갖 은유, 오마주, 패러디음모론으로 점철된 이 작품은 이례적일 정도로 대성공을 이루었다.

안노에게는 4년 만에 겨우 잡은 작품으로, 당시 '전력을 다해서 그리고 있다'는 인터뷰 등을 보아서는 정말 사력을 다한 모양. 게다가 작품 제작 전도 힘들었지만, 에바의 제작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제작비에 치여 간신히 완성했다. 결국 TV판의 종영 이후 안노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 두문불출하다가, 사이가 벌어져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독려로 폐인 생활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미야자키의 '다시는 《에반게리온》에 손 끝 하나 대지 말아라'라는 조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작품이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있던 안노는 주변의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1996년에 있던 인터뷰에서는, 논란이 많던 최종화 두 에피소드[18]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만약 이상하다면 시청자 니들 잘못이라고 박박 우겼다.(…) (참고로 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이후 안노와 가이낙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의 제작에 착수하게 되고, 총집편 사도신생(국내에선 보통 데스 & 리버스라고 부르는 듯하다.)과 완결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내놓았다.

사도신생은 TV판 1화~24화의 단순한 총집영상.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본편의 25화와 26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에바 TV판의 결말이다. 파격적인 연출과 내용전개로 끝을 맺는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완전히 멘붕. 일설에 의하면 관람도중 구토를 했다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충격적 파국으로 에반게리온은 관련 논문까지 수 십편이 나왔다.

다만 이런 스토리텔링은 토미노 요시유키의 《전설거신 이데온》이 훨씬 앞섰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전체적으로 이데온의 극장판을 그대로 오마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토미노도 영미권에서 유년기의 끝에서 이미 선보인 것을 흉내낸 것이고 안노도 이 작품의 팬임을 몇번이고 밝혔지만 영상적인 부분과 그것을 시청자에게 선보이는 방식은 명백히 이데온을 참고했다.

씨네21에서 한 자체 인터뷰를 보면 안노는 '어릴 적에 건담 프라모델 다 만들어놓고 불태운 일이 종종 있었다'며, '완벽하게 끝낸다는 것 자체가 싫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담을 주선한 적이 있는데, 미야자키 감독은 안노를 옆에 두고, 그의 작품을 말하면서, "안노의 가장 큰 장점은 솔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에반게리온 같은 정직한 영화 만들어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렸지." 웃으면서 독설. 옆에 앉아 있던 안노의 표정은 미묘...# [19]

정리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입장에서는, 안노가 만든 에반게리온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TV를 보고 자란 '테레비 세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특촬물(울트라 시리즈, 가면라이더) + 아니메 거대로봇물(기동전사 건담,전설거신 이데온) + 인형극 썬더버드 + 영미 SF 소설(유년기의 끝)과 영화에서 이것저것 흉내낸 것(패러디오마쥬)일 뿐으로,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품을 스스로 소화해서 재창조한 철학과 사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친우인 오카다 토시오도 비슷한 논조로 에반게리온을 평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런 작품을 다시 구해보기 힘들었던 90년대와 2000년대까지는 "에반게리온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 라는 이유로 에반게리온 팬에게 외면받았으나 이런 작품의 영상과 책을 다시 구해볼 수 있게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결국 이 주장이 맞았다는 것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미야자키나 토미노는 안노와 비슷한 시대의 작품을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많이 보고 공부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니 만큼 이런 걸 이미 과거부터 느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8. 그 남자! 그 여자!

결국 에반게리온 구극장판의 여운이 가실 때 즈음인 98년, 에바에서의 독기가 빠진 순정만화 원작 《그 남자! 그 여자!》의 감독을 맡았다.[20] 여러 실험적인 연출로 나름 호평을 받고 상업적 성과도 나쁘지 않았으나, 막판 전개에서 자금 부족으로 여러 실험적 연출만 하다가 마지막화를 흐지부지 끝내버리게 되는데, 엄청난 항의를 받게 된다.

2.9. 실사영화

이후 안노는 한동안 애니메이션에는 손을 끊고[21] 《러브 & 팝》, 《식일》 같은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실험적 실사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평론은 좋지 않았다. 애니에서나 먹힐 기법을 무리하게 실사 영화에서 시도했다는 비평을 받았다.

또한 그러던 와중 오덕인증을 제대로 저지르는데 2003년에 연출한 《큐티하니》 실사영화판. 애니메이션스러운 연출법과 안노 자신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터라 B급을 넘어서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나가이 고 선생과 안노 자신도 특별출연했다. 흥행에도 실패해서 기울어가던 제작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쾌거를 이룬다. 이 큐티하니 실사판으로 이득을 본 것은 당시 무명이었던 코다 쿠미밖에 없다.

이 때의 일을 두고 사람들이 안노가 애니가 싫어져서 애니계를 떠났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공식적으론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다. 갖다 맞추긴 좋은데 근거가 없는 소리다. 오히려 본인은 2003년 뉴타입에서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애니에도 써먹어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이 시기에도 애니에는 꽤 긍정적이었다.

이 시기에 독립영화 제작이라는 현실을 배운 안노 히데아키는 후속작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서 독립영화와 동일하게 사재를 사용한 인디식 제작 방식을 도입하여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훗날 신 고질라라는 작품을 만들때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시기는 아니었다.

2.10.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가이낙스를 떠나 스튜디오 카라를 설립한 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를 내놓았다. 인터뷰에 의하면 같은 내용을 극장판으로 만들고 결말만 살짝 바꾸면 되겠다고 시작했는데, 파부터 필름의 유실등의 문제로 그냥 처음부터 만들어버렸다고.. 그래도 파까지는 어느정도 tva의 전개를 따라갔지만 세번째 작품에서는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를 펼쳤다. 후유증이었는지 우울증에 빠져서 1년간 회사에서 출근하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그의 소식을 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가 식사회를 마련했고, 바람이 분다의 성우역을 맡겼다. 같은 자리에 있던 토호의 프로듀서도 신 고지라의 감독직을 부탁하기도 했다. 몇 번을 거절한 끝에 결국 감독직을 맡았다.

스튜디오 카라 홈페이지에 개인 블로그가 있으나 신작 프로모션 외엔 일절의 이야기도 안 올라오고 있는 듯 하며 시사회같은 곳에서는 츠루마키 카즈야가 안노를 대신해 나온다고 한다. 다만 작품 기획, 사업 전개, 디자인 등 일은 꾸준히 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선 몇 안 되는 인디로 독립해서 성공한 인물인지라 업계에서 꽤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2.11. 신 고지라

이후 고질라 극장판에 손을 대겠다고 선언했는데, 그전에 신 에바 극장판 때 많은 분들께 실례를 저질렀었고, 본인도 많은 신경증과 스트레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업계를 떠나 있었다고 하며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고질라 극장판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회사의 열정에 감동하여 감독을 맡게 되었다고 할 만큼 마음 고생이 많았던 듯 하다. 그렇다고 에바에 손을 떼거나 애착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커진 부담감 때문에 에반게리온 쪽에 신경을 쓸 여력이 안됐다는 얘기다.

토호 영화사로부터 오리지널 고지라 시리즈의 신작인 신 고지라를 맡게 되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에바 팬들 사이에서는 "하던 거나 제대로 끝내라"는 악평이, 고지라 시리즈 팬들한테는 "고지라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라는 의견이 많았다. 공개된 고지라의 모습이나 예고편은 '초대 고지라로 돌아왔다'는 호평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2016년 7월 19일 가진 발표회견장에서 "제 작풍은 완전히 무에서부터 다시 만드는 타입인데, 에바 신극장판에서 그걸 세 번이나 해 버려서 다시는 작품이라는 걸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까지 궁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신 고지라의 감독직 제안이 들어와서 구원받았다는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며,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면서 심신을 재충전했기 때문에 에바를 계속 만들 수 있겠습니다. 에바를 기다리신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고지라 영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에바 팬들한테 사과한 것인데, 그 순간 회견장 분위기가 무척 어색해졌다고... 이 때문에 에반게리온 팬들이나 고지라 시리즈의 팬들 할 것 없이 큰 비판을 받았다.# 안노: 미..미안... 관객: 그걸 왜 여기서...

다행히 개봉된 신 고지라는 여러 웹진에서 극찬에 가까운 평을 받고있다. 감독 덕에 먹지 않을 욕도 먹고있으니 기껏 간만에 고향 온 고지라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다만 여지껏 실사영화에서 좋지 않은 평을 받은 안노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안노에게도 의미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공동 감독이자 특수촬영 감독인 히구치 신지, 주인공 아구치 란도 역의 하세가와 히로키와 함께 홍보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해 생애 첫 내한을 할 예정이였지만...안타깝게도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을 위해 불발되었다. 대부분의 팬들은 안노가 대중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고 이전에도 홍보를 위해 다른 나라들을 방문한 적이 없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거나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에 안도감을 표했으나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2.12. 현재

상술했듯 신고지라에서 비평과 흥행 둘 다 크게 성공했지만 에바팬들에게 반발이 컸는지 에반게리온 후속작을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원래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끝내는 적이 많지 않았던 감독인데다가 Q에서 제대로 망쳐버린 스토리, 6년이나 미뤄진 제작에 대한 너무 큰 기대감에 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처럼 이상한 곳으로 폭주할 가능성이 너무 높은 것도 사실. 제작진도 성우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에 사실상 극장판 4편이 에반게리온에 제대로 완결을 지을 수 있는 기회지만 어려울 듯 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현재 팬들 사이에서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또한 안노 자신을 위해서라도 어서빨리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가 제작되어 개봉하기를 바라고 있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2018년 7월, 일단 개봉년도는 2020년으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2019년 안노가 신 울트라맨의 제작 요청을 수락했다는 이야기가 일본 주간지에서 나왔다. 아직 루머에 지나지 않지만 츠부라야 프로덕션과 안노는 한 번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아 에반게리온 완결이 또 늦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사람은 울트라맨을 만들라고 한다면 에반게리온도 그만두고 달려갈 정도로 울트라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안노 히데아키는 이런 우려를 잠재우려는 것인지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4부는 각본이나 콘티는 다 완성했다고 말하며 에바가 먼저 나올 것을 암시하고 있다.

2.13. 기타 경력

안노의 엑스트라 경력은 엄청나게 화려한데, 그 출연 목록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들(가령 러브 & 팝, 식일, 큐티하니)부터 아내의 만화가 원작인 사쿠란, 지인 히구치 신지가 연출한 일본침몰 등등등...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의외로 부드럽고 온화한 편이라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편으로 평소 거침없는 성격과 터프한 외모와 갭이 느껴진다는 평.

야애니크림레몬 시리즈 중 스타트랩에 참여했다.

에반게리온 드라마 CD에서는 사도 성우로서 활약하더니,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 역 성우를 맡게 된 것.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려 했지만 지브리, 특히 미야자키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승낙했다고 한다. 지브리 측에서는 말이 빠르고 단어 발음이 정확해서 적합하다 판단했다고. 안노 曰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대사가 별로 없는 과묵한 역이라고 들었었기에 쉽겠거니 했는데 정작 대사는 잔뜩에다 독일어프랑스어에 노래까지 하는(…) 하드코어한 배역이었다는 모양이다. 깨알같은 평가. 신세기 성우게리온 미야자키 감독의 말로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고 있는 사람의 존재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모양.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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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바코에서 칸노 미츠아키로 등장한다. 잠깐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3. 성격

완벽주의자여서 감독 데뷔작 《톱을 노려라!》에서는 외부로 발주한 그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리테이크 해달라고 하자, 하청의 미술감독이 시간도 없고 못해먹겠다며 거절하자, 안노는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근처의 책장에 머리를 꽝꽝 찍으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チクショー!チクショーッ!!(젠장! 젠장!!)" 하면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보다못한 그 미술감독이 우는 놈은 못 이긴다면서 철야작업으로 수정해 준 일화가 있다. (작화감독이었던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회상)[23]

에바Q 제작 당시의 에피소드도 있는데 극중 초반 우주에서 사도를 쫒는 신에서 안노가 무려 49번의 리테이크를 냈다고 한다. 49번째의 리테이크신을 보더니 안노는 "7번째 컷으로 하지."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49개의 컷을 전부 기억하고 사소한 차이를 눈에 담아두고서 결정했다는 말이다.

또한 우주에서 로켓이 분리되는 장면에 무수한 부품이 산개되는 장면은 3D CG로 그려졌는데, 그걸 혼자서 담당한 3D CG 애니메이터가 해당 장면을 그린 다음 안노의 완벽주의에 질려서 퇴사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별별 루머가 있는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제작 당시 소위 '무인도 편' 때에 한국에 작화를 의뢰했었다가 그 완성도가 나빠서 격노했다든가,[24]그 남자! 그 여자!》 제작시에는 TV 방송국과의 알력싸움으로 감독 강판당했다든가...

이렇게 완벽주의 성향과 맞물려 워낙 제1세대 오타쿠로 유명해서, 폐쇄적인 오타쿠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몇몇 일화들, 루머들로 성격도 괴팍한 사람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 말로는 의외로 인싸라 주변에 사람이 늘 많다고 한다. 가이낙스의 창립멤버이자 초대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대학 다닐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항상 여자친구가 있고, 헤어져도 바로 새 여자친구가 생겨서 여자가 없던 적이 없는 리얼충이었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서고도 업계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 처세를 잘한다고 한다. 가이낙스 시절, 제작이 없을 때는 안노는 다른 스튜디오의 작품을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는데, 가이낙스 작품을 만들 때는 이때 사귀었던 스탭들을 데리고 와서 "지원군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의기양양했다고 한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에 참여하는 스타 애니메이터 군단이 다 안노 히데아키 개인 인맥이다. 인맥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있는 점. 이런 인생을 살고있기 때문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폐쇄적인 오타쿠나 아싸들에게 "밖에 나와서 사람도 만나고 그래라" 라고 하는 메세지를 내놓는 것이다.

평소의 성격은 '나디아'에 나오는 주인공 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안노의 절친 히구치 신지가 연출한 나디아의 '섬'편에 나오는 나디아의 캐릭터는 히구치 신치가 옆에서 관찰한 안노를 투영하고 있다. "나 오늘 다시 태어났어!"라는 나디아의 대사는 실제로 안노가 한 말이고, 나디아의 이상한 식성(채식주의도 아니라 심각한 편식)은 안노가 육고기나 물고기는 안 먹으면서도 쇠고기 바베큐맛 스낵은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나디아의 식성은 안노에게 물어보고 정했다.(안노에게 계란은 먹느냐고 하니까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안 먹는다.'라며 계란은 먹는다고 해서 나디아가 계란은 먹는다는 설정 등) 아내인 안노 모요코말로는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보니 컵라면에 감자칩 같은 정크 푸드만 먹고 살고 있어서 경악했다고. 채식이 반드시 건강한 건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인물이다. 사실상 채식주의가 아닌 편식이지만. 이밖에도 나디아와 비슷하게 아야나미 레이도 채식을 한다는 설정이지만 고기 육수로 만든 라멘은 먹는 장면이 있다.

오카다 토시오는 톱을 노려라!에서 안노가 감독직을 자처할 때만해도 애니메이터로서만 평가받던 인물이라 아무도 안노에게 그런 연출 재능이 있는 줄을 몰랐고, 당시 안노는 가이낙스내에서는 '최종 병기(핵폭탄; 보여줘야 할 이 장면을 맡기면 틀림없이 해 내지만, 제작비용을 초과하게 만들어서 적자를 각오하게 만드는 등 후폭풍이 어마어마한)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잘 모르는 팬들이 많은데 인터뷰에서의 까칠한 모습들과 터프하고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듯 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종영 이후 어느정도 회복한 이후, 당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서 힘들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송에서 자신이 졸업한 모교, 초등학교에 방문하여 애니메이션 제작 기초 교육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안노의 고향집 및 부모님이 출연하는 것은 둘째치고 아이들과 친근하게 소통하고 질문에도 하나하나 답해주며 하나하나 챙겨주면서도 칭찬도 잘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웃는 모습까지 자주 보여주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긴장한 모습을 보였으나 점차 안노와 소통하며 마지막에는 무섭고 깐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무 좋은 사람이였다, 친근한 동네 아저씨같은 느낌이였다, 이대로 계속 선생님으로 있어주시면 안 되냐는 등, 아쉬움을 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안노의 몇 안되는 인간미를 볼 수 있는 훈훈한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4. 오타쿠

  • 상당한 수준의 밀덕후다. 자위대에 체험입대한 적도 있고 홍보 영화를 찍기도 했다. 《반딧불의 묘》에서는 원화를 그리는 아르바이트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주인공의 아버지가 승선한 순양함의 관함식 장면을 맡고, 자료조사를 아주 열심히 해서 창문 숫자까지 극사실주의로 디테일하게 그렸다. 하지만 작화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는 굳이 화려한 장면은 필요없다며 디테일을 뭉개버리고 순양함은 까맣게 칠하고 실루엣 처리를 해버렸다. 결국 그의 덕심은 《신 고지라》에서 빛을 발했다. 전직 방위성 대신(국방장관) 이시바 시게루가 봐도 적절히 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잡지 기사를 통해 정통 밀덕임을 인증했다.#
  • 또 《마크로스》의 '이타노 서커스'를 비디오에 녹화해두고 프레임 단위로 반복해서 보며 연출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에반게리온: 파》 초반의 에바 2호기 전투씬은 훌륭한 이타노 서커스.
  • OVA 《기동전사 건담 MS IGLOO》도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포교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동일 작품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팬의 한 사람으로서 등장하여 기동전사 건담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고 있다. 《기동전사 V건담》도 좋아해서 감독이었던 토미노와 V건담 관련 대담을 나눈적도 있다.
  • 그밖에도 다른 로봇물도 좋아해서 스폰서 문제 때문에 슈퍼로봇대전에 참전시키기 어려웠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참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도 했었다. 세가는 참전 안시키려고 일부러 감독 핑계를 댔는데 정작 안노는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콜(...). 이후 테라다 타카노부의 증언에 따르면 슈로대에 참전하는 에바에 대해 물을 때마다 안노가 상세하게 조언을 해준것은 물론 아예 직접 테라다를 찾아가서 의견을 제시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작중 통곡의 벽 수준인 AT 필드를 거의 안뚫리게 설정하자니 사기가 될것같고, 그렇다고 일정 데미지를 줘서 뚫리게 만들면 필드 중화니 하는 고급 설정들이 다 날아가 안노의 심기를 거스를 가능성이 있어, 초전자 스핀의 예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그런 무식한게 꼴아박히는데 안 뚫리겠습니까? 뚫리죠." 라는 쿨한 답변을 제시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스텝이 이의를 제기하자, "게임이잖아. 적당히 하자고. '우리가 짱이다.' 무조건 이런 식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안 봐줘(...)." 하고 다독여줬다고. 그래서 AT필드의 방어력을 적정선에서 합의할 수 있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빨갛다는 이유로 에바 2호기에 샤아를 태우자거나 뿔을 달아보자는 안노의 의견은 덤. 그리고 결국 신극장판에서 기어코 2호기에게 뿔을 달았다 F에서 테라다 감독에게 부탁해서 신지가 브라이트한테 얻어맞고 "아버지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를 외치게 만든 것도 유명한 에피소드.
  • 건담, 특히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제작 때 가이낙스의 스탭들을 이끌고 거의 반 자발적으로 참여한 전적이 있다. 해당 작에서 등장하는 네오 지온계열의 함선[25]들이 안노의 작품이다. 퍼스트 건담에다 판넬만 달아놓은 수준의 뉴 건담의 초안을 제시한 적도 있지만 당연히 토미노 감독에게 대차게 까이고 채용되지 않았다. 이때 토미노 감독은 울면서 "넌 대체 뭐하고 싶은 거냐! 확 나가서 뒈져버렸으면 좋겠네!"하고 좍좍 찢어버리는데 안노는 싱글벙글하고 있었다나 뭐라나.
  • 특촬 작품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 중 울트라 시리즈의 왕팬으로서 알려져 있다. 특히 《울트라맨》, 《돌아온 울트라맨》에 열심이라고 한다. 후년에 고 히데키를 맡은 주연배우분과 올나이트상영회까지 가진 적이 있었다. # 2013년 말에 하이비전 방송기념으로 다시 재회해서 돌아온 울트라맨에 대한 팬심을 보여주었다.# 대학 시절에 '울트라맨' 8미리 영화를 독립 제작한 것으로 유명. 그리고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팬이기도 하고 아래 서술된 감독부적격 속 내용에 따르면 지인에게 《가면라이더 파이즈》의 변신벨트인 파이즈 드라이버 컴플리트 셀렉션 버전을 선물받았다고 하며 그 후 반다이를 통하여 이러저러한 벨트들을 선물받았다는 듯.
  • 수도 도쿄에 정기적으로 괴수가 출몰, 그 괴수를 물리치기 위한 조직이 있어서 긴급 출동한다는 '울트라맨' 시리즈의 특징적인 설정과 전개가 그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어져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고질라'나 '가메라'의 영향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 또한 가장 많이 본 영화로서는 《격동의 쇼와사~오키나와 결전》을 꼽고 있다.
  • 특촬에 대한 사랑은 여전해서, 2012년 도쿄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람회(특촬박물관)용 이벤트 특촬 단편영화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巨神兵東京に現わる)#의 기획과 각본을 맡았다. 기자회견에서는 특촬이라는 것이 앞으로는 없어지게 될거라며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남겨두고 싶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다.[29]
  •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하고도 관계가 깊은데 학생 시절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 철야 행렬 당시에 현장에 밤새고 줄서서 봤던 당사자이다. '야마토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다'라는 말을 공석에서 하기도 한다. 톱을 노려라, 나디아, 에반게리온 등 그의 작품 대부분에선 야마토 패러디가 어떤 형태로든 들어가 있다. 다만 2008년에 플레이보이에서 한 니시자키 요시노부와 안노의 대담에서 니시자키는 안노에게 야마토 리메이크의 감독을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안노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이유는 "나는 전쟁 체험 세대가 아니라 야마토 같은 작품은 만들 수가 없다"라고.[30]
  • 일본에서 열린 배틀스타 갤럭티카 이벤트에 지인 히구치 신지와 참가해 둘 다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전개에 대해 아낌없는 비판을 가해 "과연 안노!"라는 소리를 듣기도(…)
  • 2011년 12월호 뉴타입에선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극장판 제작 소식에 축하 코멘트를 남겼다. 큐베마녀, 음악이 좋단 식의 정상적인 코멘트에 이어 10화의 호무호무 그림이 좋았다라는 말을 남겼다.근데 하필이면 Q 개봉에 앞서서 Q베를 언급해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31]
  • 철도 동호인이기도 하다. 안노의 작품에서 기차레일, 철도 건널목이 작중 심리묘사의 도구로 많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 어릴 적 철길 옆에서 자라서 철도가 좋다고 인터뷰로 밝혔다. 실사영화 식일(式日)에 철도와 소녀(鉄道と少女)라는 단편영화가 포함되기도 했으며, 신 고지라에서는 후반에 전동차가 중요하게 활약하기도 한다. 신칸센 500계 전동차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라며 가장 좋아하는 열차라고 밝히기도 했고, 신칸센과 에반게리온을 콜라보한 에반게리온 신칸센이 산요 신칸센을 운행중인 500계 전동차에 낙첨되기도 했다. 본인은 철도 매니아라기보다는 철도가 좋을 뿐이라고 라이트한 철덕임을 나타냈지만, 꼭 그런것도 아닌 모양이다. 부인인 안노 모요코가 그린 만화 감독부적격에서도 일화가 나오는데, 안노의 꿈은 '집에서 N게이지 철도 모형 디오라마를 깔아놓고 기차와 노는 것'이라고, 또한 리니어 신칸센 시승행사에도 부부가 참석했다는 일화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상술한 신 고지라 개봉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철도 모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과 함께, 인터뷰 말미엔 "자신은 노리테츠(乗り鉄:열차 시승 중점)도 아니고 토리테츠(撮り鉄:열차 촬영 중점)도 아닌 철도 모형 덕후(模型鉄)"라고 인증해 버렸다.

4.1. 반(反) 오타쿠 성향?

《에반게리온》 TV판의 종영 이후부터 제기되어 왔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나온 문제의 장면 때문에 확산된 설이다. 《왕립우주군》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패러디와 미소녀로 점철된 작품에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던 오타쿠들에게 염증이 난 안노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오타쿠를 비판했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

실제로 안노는 《에반게리온》 종영 이후로 오타쿠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자주 했는데, 보통은 오타쿠 문화의 소비적인 풍토에 대한 비판을 했다. 이 정도라면 업계 중진님의 질책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끔은 정도가 심해 "애니메이션 팬들은 자존심이 없는 현실 도피자들"같은, 야마칸이 생각나는 발언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32]

한국에서는 과거 에반게리온 팬덤의 거대한 축이었던 세븐 아이즈(현재는 폐쇄됐다.)와 초창기 네이버 지식인이 만들어낸 오해의 확대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에 세븐데이즈에서는 에반게리온의 가사를 끼워맞추며 반 오타쿠 작품이라는 농담식의 게시물이 있었는데 네이버 지식인 등지에서 이런 글을 퍼가며 에반게리온은 반오타쿠작품이라는 곡해된 인식을 만들어낸 것이 확대되어 지금에 이른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나디아》를 오타쿠 색이 없으며 《나디아》의 실패가 또 안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사실 《나디아》도 안노가 자신이 좋아한 여러 작품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잔뜩 집어넣은 오타쿠 색이 강한 물건이다. [33] 안노 본인이 인터뷰에서 그런 작품이라고 언급하는데 어떻게 이게 오타쿠 색이 없단 말인가.

오타쿠에 대한 그의 시각은 이전에 각종 영화 매체 등에 그의 인터뷰가 수록된 바 있으나(애니 관련 매체에서는 이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함) 현재는 구해보기가 쉽지 않다. 현재 가장 구해보기 쉬운 안노 본인의 견해는 그의 부인 안노 모요코가 그린 《감독부적격》 부록으로 인터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즉 오타쿠의 긍정적인 면은 인정하되 오타쿠의 폐쇄성을 경고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람이 작품에서 하고싶은 말은 "나는 오타쿠지만 이걸로 창작도 하고 인싸처럼 살아서 행복하게 살고있다.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봐라" 라는 것으로 오타쿠 비판이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아싸 비판에 가깝다.

5. 인간관계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소리를 듣는 위치가 되었지만 그도 역시 젊은시절에는 유명인사들 밑에서 하청받고 공부하며 지냈다. 그 중에서 특히 토미노 요시유키미야자키 하야오와의 관계가 유명하다.[34]

5.1. 토미노 요시유키

토미노 요시유키를 매우 존경한다고 하며 건담 시리즈의 제작에도 몇 번 참여했다.[35] 학창시절 기동전사 건담을 너무나 좋아했고 집에 비디오가 없어서 본방 1~43화를 모두 녹화해서 수십번 돌려봤다고 한다. 모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2위로 기동전사 건담을 뽑았을 정도. 심지어 3위는 역습의 샤아, 4위는 전설거신 이데온이다. 그야말로 1세대 건덕후이자 토미노덕후.[36]

또한 V건담 제작 당시 토미노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을 무렵 '역습의 샤아 친구 모임' 동인지를 출판했을 정도. 이 책에는 유우키 마사미(만화가), 미키모토 하루히코(일러스트레이터), 키타즈메 히로유키(애니메이터 & 일러스트레이터), 이쿠하라 쿠니히코, 스즈키 토시오(프로듀서) 등의 호화 멤버가 참가했고 안노와 오시이 마모루, 토미노 요시유키와의 대담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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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건담 당시 존경하던 토미노와 대담을 나누는 안노

해당 서적에서는 후일 만들어진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안노의 생각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를 깊게 알기 위한 텍스트로서도 중요한 책이다. 다만 《전설거신 이데온》을 대놓고 모방한 에바 극장판에 열이 뻗치신 토미노 감독은 브레인 파워드를 통해 안노를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안노가 토미노를 따라간 행적은 "(중딩이) 이런 퀘스 파라야의 검열삭제를 핥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냐고?!"라는 명대사(…)를 그대로 따라할 시추에이션을 만들어 그대로 따라해 버린 것을 비롯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로봇애니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 후 성공에 의한 파장에 염증을 느껴 기존작을 파괴해버리는 후속작을 만들어 그걸로 자기 주관이나 투영해내고 이후 그 작품 자체에서 등돌리는 것 자체가 기동전사 건담에서 제타와 역습의 샤아에 이를 때까지 토미노가 보여줬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37] 너무 존경하는 나머지 인생 자체가 패러디가 되어가는 건지도. 게다가 슈퍼로봇대전 F에 에반게리온이 참전하였을때 제작진에게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퍼스트 건담 때 아무로가 수정당한 거처럼 브라이트 노아에게 수정당하는 이벤트를 직접 넣어달라고 부탁해서 게임 이벤트 중 신지가 에바타고 탈영해서 찌질대다 브라이트에게 수정펀치를 맞고 갑자기 뭐에요! 아버지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라는 대사를 그대로 찌질대기까지 했을 정도니 이건 뭐...[38]

'역습의 샤아' 제작 당시 스탭으로서 첫출근(?)하게 되었을 때 평소 씻지도 않고 지저분한 용모(위 사진 참조)로 뒹굴던 인간이 깨끗하게 목욕과 면도를 하고 머리도 올백으로 다듬고는 아끼던 외출복으로 치장하고 나와 같은 가이낙스 스탭들이 무지하게 놀랐다는 일화가 남아있다(뉴타입 100% 시리즈 '역샤' 단행본에 당시의 깔끔한 모습의 사진이 있다.). 이 정도면 거의 구루로 숭배하는 수준이 아닐지...

이 때 뉴건담을 디자인해달라는 토미노 감독의 의뢰를 받고 다른 쟁쟁한 디자이너들과 디자인했는데...안노가 낸 디자인은 RX-78-2 그 자체였다. 물론 토미노 감독은 엄청나게 화를 내며 "안노, 이 멍청한 놈. 캭 디져버렸으면 좋겠네"라고 말했다고...이런 말까지 듣고 존경하다니 안노도 참.... 게다가 안노 본인은 이런 욕을 듣고도 싱글벙글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빡 도는 것이 정상이다... 안노의 이런 디자인은 '뉴건담 따위는 필요없고 아무튼 퍼스트 건담이 짱이다'라는 무언의 주장이었고, 그걸 알아챈 토미노가 벌컥 화를 낸 거라는 해석도 있는데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아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그의 리즈시절

토미노 영감님은 2010년 방한 당시에도 "에바에서 '뭐시기짱'(아야나미 레이)이 붕대 감아놓은 건 고통을 표현한 게 아니고 그냥 패션"이라 말하며 안노를 깠다. 하지만 안노를 싫어하냐는 질문에는 "그냥 아는 사이 정도다. 그런데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런가 후배가 잘 되니까 배가 아프다. (웃음)" 정도로 반응.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토미노는 안노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유명함에도 정작 안노는 토미노에게 연출 공부를 제대로 사사받지 못했다. 둘이 크게 싸우진 않았지만 성격이 잘 맞지 않았던 것도 있고 안노가 토미노와 함께 일하게 됐을 때는 이미 안노는 너무나도 미야자키 하야오 식 연출법에 몸이 물들어 있었다. 안노는 토미노가 되고싶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를 깔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토미노의 영향이 짙다.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캐릭터의 표정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려는 경향과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해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다 2016년, 안노의 신 고지라가 흥행을 하게 되고, 결국 너의 이름은.과 함께 토미노가 가장 질투하는 두 가지 작품으로 지목되었다.

5.2. 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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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맨 포즈를 취하는 안노와 그걸 가리키며 해탈한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가 안노에게 끼친 영향력 또한 결코 적지 않다. 아니, 토미노 요시유키는 안노의 워너비 스타에 가깝고, 진짜 스승은 오히려 이쪽이다. 이건 애초에 안노 스스로도 밝힌 사실. 안노가 인터뷰에서 스스로 말한 자신의 스승 두 명은 이타노 이치로와 미야자키 하야오였다. 실제로 안노가 토미노에게서 받은 영향력은 암울한 세계관, 장중하면서도 무겁게 짓누르는 스토리 등인데 이런 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써의 기술적인 역량'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부분이다. 저런 건 소설가도, 시나리오 작가도, 만화가도 토미노에게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감독이 해야 할 역할과, 레이아웃같은 연출 방법과 세세한 기술적인 면은 미야자키에게 배운 게 많다. 특히나 레이아웃, 화면 내 구성 요소를 어떻게 배치해야 할 지에 대한 철학과 노하우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써 기술적 역량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안노는 하야오의 레이아웃 노하우를 많이 흡수했다.

레이아웃의 연출에 있어서 안노가 하야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수도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작인 에반게리온을 통해서 보면 우선 작품의 도입부에서 익스트림 롱샷으로 주변 환경을 비추며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와 배경을 설명한다. 에반게리온의 경우 수몰된 도시를 보여주는데, 이것을 통해서 시청자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다소 어둡다는 것을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연출은 하야오가 즐겨 사용, 아니 거의 매 작품마다 사용하는 연출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모래바람이 부는 황야, 모노노케 히메는 안개가 낀 숲, 이웃집의 토토로는 낡은 트럭이 굴러가는 일본의 시골 등을 보여주며 작품의 배경과 앞으로 전개될 작품의 톤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알려주며 시작한다.사실 하야오뿐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상당히 많이 쓰이는 도입부 연출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클래식한 연출을 하야오도 안노도 고집한다.

또 하야오의 작품에서 첫 번째로 맨얼굴이 드러나거나, 첫 번째로 얼굴 위주 클로즈업 샷이 들어가는 인물은 그 작품의 주인공이다. 시작부터 관객에게 '얘 잘 기억해두세요' 하며 눈도장을 찍고 가는 것이다. 이 역시 상당히 클래식한 연출이긴 하지만, 하야오는 이 연출을 즐겨 사용하며 에반게리온 역시 이 연출을 그대로 사용한다. 에반게리온 1화에서 가장 먼저 얼굴에 클로즈업이 들어가는 캐릭터는, 말 안해도 알겠지만 이카리 신지다.

비유로 예를 들면, 안노가 기타리스트 학생이었던 시절 기타의 운지법과 악보 보는 법 등 기술적 요소를 가르친 것은 포크송 기타리스트인 미야자키였지만 안노가 되고 싶었던 것은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였던 토미노였고 실제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가는 방향은 달라도 기술적인 면에서 안노의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토미노보다는 하야오라는 것.

사이가 안 좋아보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미야자키가 생긴 것과 다르게 토미노 요시유키, 오시이 마모루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직설적으로 뱉어 버리는 사람이고 [39] 안노의 성격도 결코 유순하진 않다 보니 인터뷰를 보면 저 사람들 정말로 친한게 맞나고 오해할 수가 있다. 저 위에 나온 '안노의 장점은 솔직함. 에바 같은 걸 만들어서 솔직하게 안에 든 게 없음을 인증하는 용기' 같은 인터뷰도 그렇고 안노의 '미야상도 늙었다' 등의 발언 등도 그렇고. 하지만 오히려 친하기 때문에 서로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둘이 친해진 계기는 밀리터리에 관련해서 서로 통하는 점이 있어서라고 한다. 한 번 얘기하면 몇시간씩 밀리터리 토크를 한다고 한다. 안노 뿐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주변 인맥들은 오시이 마모루도 그렇고 대부분 밀덕이었다. 반면 토미노의 경우는 밀덕과 거리를 두는 편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시절 거신병 앞에 사람을 그려넣어야 했는데, 안노가 거신병은 잘 그린 반면 사람은 도저히 잘 그리지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에반게리온 이후 지쳐 있던 안노를 다시 재기할 수 있게 용기를 준 것도 미야자키고, 결혼식 주빈 참석이나 바람이 분다의 성우를 맡겼다.

5.3. 안노 모요코

2002년 만화가 안노 모요코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다룬 《감독부적격》이라는 만화를 안노 모요코가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11살. 도둑 그야말로 레알 이카리 겐도다.[40] 게다가 《감독부적격》에서는 스스로를 기저귀 찬 아기로 그려놨지만 상당한 미녀다. 이전에 안노 히데아키는 성우 히다카 노리코에게 청혼한 적이 있지만 거절당했다. 근데 히다카가 이때 거절하면서 자신은 업계 관련인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는 이후 라디오에서 알게 된 연하의 디렉터와 결혼했다.얼마나 안노가 싫었으면...

감독부적격》을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중증 오타쿠인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생생 자타공인 극렬 오타쿠 관찰 일지. 《현시연》에 등장하는 풋사과같은 대학생들은 비교도 안된다. 안노 모요코도 기본적으로 오덕이라 잘 맞는 듯 하고 결혼식장에서 동인지를 돌렸다고 한다.(…) 흠좀무.

결혼 후 잉꼬부부이자 애처가가 된 영향인지는 몰라도 성격이 상당히 온화해지고 패션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으로 그 예로 2006년에 그가 출연한 일본 자동차 기업 닛산의 광고를 보면 의외로 패션이 괜찮아서 흠좀무하게 된다. 결혼 이후 결혼은 자신의 진정한 터닝포인트라고 자주 언급하고는 하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결혼 안 했으면 어쩔 뻔 했냐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41] '닛산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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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V 프로그램 정열대륙 2004년 2월 22일자 화면 캡처. 감독부적격에 나온 감독군과 120% 닮았다. 부인 안노 모요코의 닦달에 똥배가 없어진 것이 특징.

한동안 모요코가 병에 걸린 바람에 침울했다고 한다. 지금은 신작 연재도 하고 남편과 합동으로 일러스트도 그리는 걸 보아하니 어느정도 회복된 듯 싶다.

6. 작품 성향

연출 분야에서는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오시이 마모루와 함께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 연출 복사기라 할 수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토미노 요시유키, 데자키 오사무, 카나다 요시노리, 이타노 이치로, 짓소지 아키오같은 거장들이나 하는 연출을 구사할 수 있다. 문제라면 자신이 창시한 연출은 딱히 없다는 것. 안노 최대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42] 하지만 남들은 하기도 어려운 여러 거장의 연출법을 모두 습득했다는 점에서 현시점에서 안노를 따라갈 연출자는 많지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안노가 새로운 걸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해도 만약 자신이 죽으면 그 뒤를 이어줄만한 인물로 지목하기도 했다. 왜냐면 안노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능가하진 못해도, 따라하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에반게리온》 이후로 명확한 성공작이 없다는 비판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 비판에는 반박될 여지가 있다. 본래 안노는 자신의 작품이 성공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만 자기 맘대로 만드는 사람이다. 안노는 《그 남자 그 여자》 이후 스폰서의 간섭을 피해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 영화판에서만 소규모로 놀면서 다른 작품의 연출을 도와주며 살고 있었다. 내놓은 작품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에바 이후 성공작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노가 상업성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대표적으로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캐릭터 디자인 당시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피규어 잘 팔리게 그려"라고 주문했다는 일화도 있고, 안노의 대표작들인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등에는 거대로봇, 미소녀 등 당대에 인기 있던 코드가 많이 투입되어 있으며 대중에게 익숙한 왕도적인 전개도 다수 사용되었다. 그 요소들 중에는 스폰서가 요구한 것도 있지만 안노 본인이 넣은 것도 꽤 된다.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성공했던 것도 그의 작품이 상업성을 띠기 때문이다. 단지 스폰서가 자신에게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자유로운 창작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폰서와 대립을 빚은 일이 많을 뿐이다.[43] 상업적인 작품 만들기를 싫어해서 스폰서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아서 잘 팔리게 할 건데 왜 나한테 참견해"에 가깝다.

에반게리온이 워낙 유명하고 특유의 세카이계 포스와 당시 청소년들이 보기엔 좀 잔인한 장면도 있기에 안노 감독이 어둡고 비희망적 작품을 자주 만드는 감독이라고 오해하는 신세대들이 있다. 아무래도 에바의 선입견 때문인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밝은 희망을 그리고 외치는 성향이다. 톱을 노려라!의 주제[스포]와 에반게리온의 주제[스포2]를 생각하면 의외로 정말 희망찬 감독이란 걸 알 수 있다. 나디아는 아예 확 밝은 분위기로 시작해 최종적으로도[스포3]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에비츄는? 오히려 어두운 비극적인 감독은 오시이 마모루가 더 가깝다.

90년대에만 해도, 안노는 왕립우주군의 실패 이후 상업성을 극히 증오하다가 에반게리온이라는 상업성에 거스르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사실처럼 돌았다. 이것은 에반게리온은 기존의 잘 팔리기 위해 제작된 애니메이션과 다르다는 논조로, 에반게리온이 작품 자체로서 깊이가 있다는 감상을 강조하기 위해 9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루머일 뿐이다. 이는 이후 안노의 수많은 인터뷰로 부정되었다. 안노의 취향 및 창작 스타일을 보고 알 수 있듯, 이 사람은 부정할 수 없는 상업적 창작물의 오타쿠다. 에반게리온에도 상업적 요소는 넘치도록 많다.

또한 안노의 기본적 창작 성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재조명하고 오마주하기이다. 에반게리온에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 장면들 중 상당수는 울트라맨, 우주전함 야마토, 데빌맨, 이데온, 고질라 등에 등장하는 장면을 오마주한 장면이다. 나디아만 해도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타임보칸, 우주전함 야마토를 오마주한 장면이 대단히 많다. 안노 아니면 모를 법한 B급 영화의 오마주도 굉장히 많다. 그가 좋아하는, 실존하는 밀리터리 병기나 군함 등도 그의 작품에는 반드시 어딘가에 등장한다. 그러한 장면들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하거나 안노가 직접 만든 창조적 장면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으나 100%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작품을 알고 있는 안노와 동세대의 오타쿠들은 그런 해석을 보면 어이 없어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이런 것도 고려해서 평가가 이루어지지만 [47] 일본이 아닌 지역에는 안노와 같은 세대이면서도 같은 문화 환경에 노출되어 온 사람이 극히 드물다. 그리고 안노가 영향을 받은 서브컬처에 정통한 사람이 해외에서는 얼마 없기 때문에, 안노가 만든 작품에 대해 종교적이고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패러디 및 오마주를 자주 하기는 하지만, 실험 정신 또한 정말 투철해서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넘나들려는 시도까지 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는 도중에 실사 영상을 집어넣기도 하고, 《그 남자! 그 여자!》에서는 원작 만화 장면을 그대로 넣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는 실사 영화 사업에까지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장면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 있기에, 이 부분에서 안노의 실험 정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평가되고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장면에서 기승전결을 저버리지는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 사람은 일본 애니메이션 계의 쿠엔틴 타란티노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던 작품의 재조명이나 패러디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작품의 완결성 및 상업성도 신경 쓰는 모습 등이 놀라울 정도로 쿠엔틴 타란티노와 일치한다. [48]

7. 작품 목록

7.1. 감독 작품

7.2. 스태프로 참가한 작품 목록

8. 기타

1999년에 발견된 소행성 1994 VY이 9081 Hideakianno로 명명되기도 했다. 발견자이자 명명자는 그의 고교시절 급우 나카무라 아키마사로 에바 때문에 집중 포화를 받고 있던 안노에게 힘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을 신청했다고. 역시 친구는 잘 사귀고 볼 일이다.[53]
[1] 돈벌고 결혼도 하면서 부인한테 관리를 받아 저 정도지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나 오타쿠요"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몰골이었다. 바로 위에 있는 99년 당시 사진만 봐도.[2] 2018년 SAPPORO 생맥주 광고에서, 그의 작품이 (이해하기) 어려움을 추구하는 이유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광고 처음에 엘리베이터가 58층으로 되어 있는데 그의 나이를 표현한 듯.[3] 네이버에는 155cm로 등록되어 있는데 네이버 인물에서 영화 관련 인물은 주로 imdb 정보를 참조하는데 imdb에 5'1"로 1이 하나 빠졌다. 상술했듯 원래는 5피트 11인치(180cm)이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이유로 155cm라고 나오게 된 것. 졸지에 난쟁이행 구글에 타 성우들과의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그정도의 단신은 아닌 것이 확연히 나온다. 오히려 상당한 장신인 셈[4] 사실 통통해보이는 것과 달리 큰 키에 비해 덩치가 상당히 빈약하긴 하다.[5] 자잘한 직함을 붙이자면 더 많다. 감독한 작품의 각본도 썼으니 각본가이며, 자기가 만든 특촬물에 직접 출연했으니 배우라고도 할 수 있고, 《바람이 분다(애니메이션)》에서는 우정출연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 성우를 했으니...[6] 요즘처럼 CG로 작업하는 환경이 아닌 1980년대 셀 애니메이션에서, 1코마에 9장의 셀을 겹쳐 찍고, 3초에 동화 250매를 사용하는 등 피를 말리는 꼼꼼한 수공예 작업의 결과물은 지금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카나다 요시노리의 섬광, 이타노 이치로의 미사일 서커스, 나카무라 타카시의 바위 깨뜨리기에 비견될 만한 '이팩트 애니메이션' 표현의 업적이다.[7] 데포르마시옹.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 묘사에서 이것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기법. Super Deformation(흔히 말하는 SD캐릭터의 그 SD, 인물의 특정 부위를 과장 시키는 카툰에서 파생된 회화기법)[8] BGM은 《기동전사 건담》의 명브금 From Sleep의 후반부.[9] BGM은 고지라 시리즈의 "괴수대전쟁 행진곡. 신 고질라의 '야시오리 작전' 장면에서도 등장하는 곡이다.[10] 이 두 작품은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자신의 오사카 예대 재학시절을 모티브로 그리는 만화 《아오이 호노오》(안노 등 실제 인물도 등장)에 전 컷 실려있기도 하다.[11] 비오덕들에겐 Midnight Blue와 Mr. Blue Sky, Last Train To London으로 유명하다.[12] 본래 그림 콘티에는 거신병과 오무가 직접 대결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제작일정상 삭제되었다.[13] 실제로 아니메를 직접 가르쳐 준 사람은 이 두 사람이라고 공언했다. 미야자키는 두 번째 스승이라고. 작화 기술면에서는 이타노, 감독&연출면에서는 미야자키, 사상과 스토리면에서는 토미노 요시유키를 더해서 3으로 나누면 안노가 나온다[14] 안노가 미야자키를 의식하게 된 것은 《미래소년 코난》으로 여동생과 채널 싸움을 해서 이겨서(NHK에서 하는 거니까 봐야한다는 논리로 설득, 여동생이 보고 싶어했던 아니메는 오프닝만 보면 되는 허접이라고 눌러내리고) 닥본사했단다.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극장에서 2번 연속 봤다고...(동시상영이어서 다른 영화할 때는 로비에서 기다려서)[15] 다만 추정(persumed)이다.[16] 오카다 토시오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너무 일을 안 해서 쫓겨났다는 정황이 많다.[17] 또 한 사람의 멘토라 할수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상당히 사이가 벌어진 상태였다. 에바 종영 이후에야 화해했다고.[18] 마지막 26화에서 주변 사람들이 뜬금없이 신지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박수치자 신지가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나디아의 생일을 알게된 친구들이 박수치며 생일 축하한다고 하자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과 똑같다.[19] 이때 안노는 이때의 건이 약간 불쾌했는지 미야자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본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다고 넘겼는데, 나중에 스즈키 토시오와의 대담에서 레이아웃이 별로였다. 미야상이 어떻게 그런 레이아웃을 오케이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미야상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평했다.#[20] 후반부는 에반게리온 TV판 같이 연출된 오픈 엔딩이다. 원작자는 안노의 이런 모호한 엔딩 처리 행태에 열받아 단행본 말미에서 안노를 깠다고 한다.[21] 나중에 말하길 아니메계에 실망해서, 애니메이션은 하고 싶지 않았고, 실사영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22] 일본에서 미야자키가 안노의 3배는 되는 흥행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므로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해외에서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안노의 입지도 무시하기 힘들다. 실제로 미야자키 작품은 철저히 동양의 정서에 의존해 서양에선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아서 IMDBMyAnimeList 같은 서양 리뷰 사이트를 참조하면 지브리 작품이 에반게리온 심지어는 나루토,블리치,마크로스그렌다이저 같은 작품보다 평점이 떨어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23] 출전 : 最初は、外注に出した美術にキレたんですよ。ガイナックスにも美監(美術監督)はいたんだけど、スケジュールの都合で外部に出したら、それがちょっと不本意な仕上がりだった。でも、リテイクする為のお金が無いわけ。それで美監に頭を下げて「直してくれ」って頼むんだけど、「時間も無いし、やってられないよ!」と断られてしまったんです。そうすると庵野は、しばらく下を向いてたかと思うと、急にブルブルって全身が震え出した。で、いきなりその辺の本棚に頭をガンガンぶつけ出して、涙をボロボロ流しながら「チクショー!チクショーッ!!」と叫び始めたんです。そしたらとうとう美監が根負けして、「泣くヤツには勝てねえよなあ」って(笑)。その後、全員が徹夜で直すっていうような状況でしたね」(太田出版『スキゾ・エヴァンゲリオン』より.[24] 단 이 사건은 '실력이 없는 한국에 하청을 줘서 망친 것'이 아니라 스케줄 등 여러 트러블이 겹쳐 하청 이전에 '도저히 정상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정설인 듯 하다. 사실 무인도 편을 보면 단순히 작화 퀄리티 운운하기에 앞서 콘티 혹은 시나리오 자체부터 망가져 있는 에피소드가 부지기수였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무인도편은 일본에서 한국에 하청한 분량이 너무 많아 한국에서 하청 들어온 물량을 다른 나라의 회사에 재하청을 했었다고 한다. 그 사정이 이렇다. NHK는 기획회의 단계에서 오카다 토시오에게 일본에서는 원화만 그려주면 나머지는 한국이 다 해줄 거라고 (물론 제작비 절감 차원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에게 하청) 호언장담을 했고, 순진한 오카다는 이것을 가이낙스 사원회의에서 말하고, 안노의 반응은 "정말이야?"라고 시큰둥. 애당초 안노는 당시의 한국 애니업체를 믿지도 않았다.(이미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TV판에 참여해서 한국측의 작화 붕괴에 쓰디 쓴 경험을 맛본 적이 있었다) 결국 그의 예상대로, 한국 업체에 맡긴 작화는 개판이었고, 당시의 사다모토 작화감독은 한국에서 날라온 저질 작화 고치는 것에 지쳐서 뚜껑이 열려서, 성질내고 오토바이 타고 쌩까고 가버렸을 정도다. 오카다 토시오는 이 후 혐한 성향이 되어 버렸다.이건 좀... 자세한 내막은 여기로... 여담으로 이타노 이치로는 동화맨 시절 첫 임금이 한 달 5천엔이었고, 일에 익숙해지고 나서도 한 달에 1000장 그리면 원화가로 승격시켜 준다고 해서 밤낮없이 코피를 쏟아가며 그려도 한 달에 800장이 한계였다고 한다.[25] 무사카, 레우루라[26] 그래서 토미노 요시유키는 이 점을 비판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감독이었기에 더더욱 안노의 이러한 표현법을 탁탁치 않아 했다.[27] 에반게리온 작품 구상 작업 도중에도 TV 방송시간이 되면 작업을 내팽겨치고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세일러문 보러간다고(...) 했을 정도[28] 상술했다시피 본인이 원화작업으로 참가했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R 극장판을 보고 치바 마모루의 소년시절 성우로 나왔던 오가타 메구미의 목소리를 듣자마다 당시 구상중이었던 에반게리온의 신지 역을 맡겨야겠다고 사다모토에게 제안했다.[29]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거신병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것이라서 당연히 허락을 맡아야 했고,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찾아가 부탁하자, 그 즉시 흔쾌히 승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우시카는 안된다고 한다.[30] 우주전함 야마토 2199 제작에 참여하긴 했으나 오프닝 영상을 그려줬을 뿐이지 작품 내용엔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31] 그리고 이 코멘트에 대한 몇몇 덕후들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에반게리온: Q 참고.[32] PREMIERE 97년 5월호[33] 사실 나디아는 보다보면 확 눈에 띄일 정도로 천공의 성 라퓨타,우주전함 야마토,타임보칸 등의 패러디가 넘쳐나는 작품이다. 나디아가 나오던 당시는 공중파 방영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구해서 보기도 힘들었고 사람들도 구할 수 없는 작품엔 별 관심도 안 가졌기 때문에 이런 패러디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있지를 않아서 이런 루머가 퍼져나갔다. 지금은 구글 인터넷에 나디아 패러디라고만 치면 주르륵 정리된 걸 볼 수 있어서 이런 소리는 사라졌다.[34] 안노와 동세대 명감독인 오시이 마모루와의 대담기록도 있지만 둘의 관계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안노의 후배이자 국내에서도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신카이 마코토와의 기록은 없다. 다만 이들보다 훨씬 선배데자키 오사무와의 관계는 깊지는 않으나 안노측이 매우 존경하는 듯 하다. 실제로 데자키 감독이 오랜 공백을 깨고 애니계에 복귀한 1988년에 그의 작품을 통째로 패러디한 톱을 노려라!를 발표하는 등.[35] '역습의 샤아'에서 전함 디자인과 일부 메카의 원화를 담당했다. 0080에서는 변명을 써서 역시 일부 메카의 원화를 그렸다고. V건담에서는 가이낙스 스탭를 끌고나와 자원봉사까지 했다.[36] 참고로 1위는 우주전함 야마토였다.[37] 이 때 토미노가 무슨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안노는 '토미노 선생님이 알몸으로 춤추는 것 같았다'라는 발언으로 표현한 바 있다.[38] 기각된 기획안 중에는 에바 2호기에 뿔달거 샤아를 태우는 것도 있었다. 물론 제안자는 안노(...)[39] 일본에서도 망언 제조기라고 할 정도이다.[40] 에반게리온에서 겐도와 유이의 나이차이가 10살이다. 이쪽은 1살 더 많다![41] 단적으로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게스트 출연해서 그 이유를 말했는데, 아내가 나 때문에 부끄러워지면 안되니까라고 한다. 예전의 무신경함이 다 사라진 듯...[42]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를두고 "안노 넌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라고 평가하기도 했다.[43] 사례를 들면, 신 고지라를 제작했던 시점에 토호 측과 자기가 생각한 스토리의 괴리 때문에 몇 번이고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스포] 사람의 마음의 힘으로 우주의 수만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기적을 만들어낸다[스포2] 상처받고 나약해진 사람들이라도 자신을 아끼며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품고 다시금 세상에 나갈 수 있다[스포3] 과거와 배경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을,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라[47] 오카다 토시오의 평가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오카다는 안노와 함께 가이낙스에서 일했고 동시대의 서브컬처를 지켜봐 온 일본의 애니 평론가이다. 그가 안노 작품을 평가할 때에는 이러한 패러디 및 오마주가 얼마나 작품에 잘 녹아들었는지를 포함해서 평가한다. 그러므로 그가 출연한 방송이나 집필한 글을 보면, 안노가 만든 작품 속 요소에 특정한 유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안노의 독창성이 발휘된 부분인지에 대한 이해가 빨라진다. 이 사람은 "안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떠오르는 대로 여러 개 만들어놓고 그걸 자연스럽게 엮는 사람이다"를 전제로 삼고 안노의 작품을 평가하고 있으며 에바 평론을 할 때 반드시 데빌맨을 언급한다.[48] 완결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는 것이 안노의 작품은 기승전결에서 등장인물이 성장해서 결론을 내리는 '결' 부분만을 묘사하고 이후의 이야기를 뚝 잘라버리고 후일담을 묘사하지 않는 성향이 강해서 사람에 따라서는 완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애니메이션의 허무한 마지막화에 작가가 자신의 단행본에서 항의까지 했을 정도다. 에반게리온 TV판까지야 제작환경의 열악함으로 쉴드라도 칠 수 있지만 업계에서 최고의 애니메이터와 기술진들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온 지금도 똑같다는 건 발전이 없거나 애초에 이런 사람이라는 얘기. 다만 안노도 이야기의 주제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결말을 지어놓고 작품을 끊는 편이며 타란티노도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결 부분만을 짧게 회수하고 이후의 에필로그나 후일담 등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고 관객에게 해석을 넘기는 성향이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둘은 상당히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타란티노의 경우는 2000년대 이후 후기작에선 이런 부분이 많이 개선되었고 안노는 여전히 이런 열린 결말의 작품을 많이 만들고 있다.[49] 전함 마크로스가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안노 작품[50] 오시이 마모루가 TVA시리즈 총괄을 맡으며 오시이 자신의 출세작이 된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도 극찬하던 애니이며 안노가 참여 했던 시점에서는 감독이 야마자키 카즈오로 변경되었고 오시이의 조언에 원화로 참여하게 된다.[51] 이때의 인연으로 세일러 우라누스 역의 오가타 메구미신세기 에반게리온이카리 신지 역으로 캐스팅하였다.[52] 이 때문에 6화는 사실상 안노 작품처럼 보인다.[53] 나카무라 아키마사는 지금까지 111개의 소행성을 발견했는데, 안노 이외에도 도고온천, 타카스기 신사쿠, 히로시마 카프(...), 호빵맨(...), 가면라이더(...), 도련님, 언덕 위의 구름(...) 등 하나같이 기괴한 이름들을 붙였다. 뭐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