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0 02:45:35

반딧불이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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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일 사토라레
실사 단편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극장판
[1] 기울임체 미개봉 영화
[2]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크래프트에서 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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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의 묘 (1988)
火垂るの墓 / Grave of the Fireflies
파일:external/975799b86efc30ee3f1eada958072dd411943ebcb2f80ba17d6cc8531ff5cedb.jpg
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전쟁
원작 노사카 아키유키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각본 타카하타 이사오
제작 하라 토오루
출연 다츠미 츠토무, 시라이시 아야노 외
음악 미치오 마미야
미술 야마모토 니조
작화감독 콘도 요시후미
제작사 파일:일본 국기.png 스튜디오 지브리
배급사 파일:일본 국기.png 도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에이원엔터테인먼트
개봉일 파일:일본 국기.png 1988년 4월 16일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4년 6월 19일
상영시간 89분
일본 흥행 수익 5억 9,000만 엔
대한민국 총 관객 3,674명
국내 등급 파일:12세 관람가.png 12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평가3. 상세4. 등장인물5. 원작과 작가6. 감독의 의도7.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관점
7.1. 다른 관점의 해석
8. 이야깃거리
8.1. 7,000엔의 행방은?
9. 제작 스텝 리스트(애니메이션 영화)10. 여담

1. 개요

4歳と14歳で、生きようと思った。
4살과 14살에, 살아 보자라고 생각했다.
1967년에 출간된 노사카 아키유키[1]의 단편 소설과, 1988년 개봉된 동명의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 가장 유명하다. 2005년에는 실사 드라마, 2008년에는 실사영화도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은 타카하타 이사오. 애니메이션은 원작 소설에서 생략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사를 포함해 원작 시간순으로 98% 충실하게 옮겼다. 드라마와 실사영화는 각색이 많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2014년에 개봉하였다. 무려 26년 후에 개봉하는 한국의 위엄. 일본 개봉 당시에는 노태우 정부 시대라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안 이루어졌던 때라 별 수 없었다.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 전, 1990년대 초중반부터 흥한 '시네마테크' (일본 등에서 가져온 비디오 테이프에 한국어 자막을 단 영상을 불법으로 상영하는 소규모 상영회)에서는 '반딧불이의 묘'가 아닌 '반딧불[2]무덤'으로 번역해서 소개했다. 그 이유는 원제인 '火垂るの墓'는 일본어로는 '호타루노 하카'로 읽는데, 이는 墓를 음독하면 보(ボ)=묘지만, 훈독으로 읽으면 하카(무덤)로 읽기 때문이다.
즉, 일본에서 읽는 이 영화의 타이틀 '호타루노 하카'를 최대한 정확하게 한국어로 번역하면 '반딧불이의 무덤'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떤 연유인지 이것을 굳이 한자 훈독으로 읽는 방식을 고집해서 '반딧불의 묘', 또는 '반딧불이의 묘'라고 번역한 이상한 타이틀이 정착하고 말았다. 그래서 일본의 어린이는 한자로 된 타이틀을 보지 않아도 "호타루노 하카"라고 말하면 아! '반딧불이의 무덤'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먹지만, 한국의 어린이는 묘(墓)가 한자어로 그 뜻이 무덤이라는 것을 모르면, 묘가 뭔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발생한다.
다행히도 최근에 번역한 소설 제목은 '반딧불이의 무덤'이라는 제목을 달고있다. "반딧불이의 무덤"과 "반딧불이의 묘" 어느 쪽이 독자와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인지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간략한 내용은 주인공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태평양 전쟁 중 겪는 피난생활을 그리고 있다.

2. 평가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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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만화)
종합 순위
1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3위 천공의 성 라퓨타
4위 기동전사 건담
5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6위 충사
7위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8위 이웃집 토토로
9위 강철의 연금술사
10위 공각기동대
11위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시리즈
12위 모노노케 히메
13위 AKIRA
14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15위 도라에몽
16위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17위 붉은 돼지
18위 은하영웅전설
19위 어른제국의 역습
20위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21위 카드캡터 사쿠라
22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23위 카미츄!
24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2
25위 기동전사 Z 건담
26위 별의 목소리
27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8위 은하철도 999
29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30위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
31위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
32위 반딧불이의 묘
33위 미래소년 코난
34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
35위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36위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37위 슬램덩크
38위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
공동 39위 기동전사 건담 SEED
개구리 중사 케로로
41위 톱을 노려라!
42위 도라에몽 극장판
43위 용자 시리즈
44위 카우보이 비밥
45위 사무라이 7
46위 기동전함 나데시코
47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48위 시끌별 녀석들
49위 철완 아톰
50위 루팡 3세
전문가 순위
1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2위 철완 아톰
3위 AKIRA
4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5위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
6위 기동전사 건담
7위 신세기 에반게리온
공동 8위 이웃집 토토로
사자에상
은하철도 999
도라에몽
마운틴 헤드
2006년 발표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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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tlogo.png
신선도 97% 관객 점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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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 평점 8.5 / 10
(IMDb Top 250 5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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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평균 별점 4.3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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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평균 별점 8.179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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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평균 별점 4.08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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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평균 별점 7.5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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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평균 별점 8.7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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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평균 별점 3.4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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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라이츠 지수 9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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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평론가 평점
8.25 / 10
관람객 평점
7.75 / 10
네티즌 평점
6.5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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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평점
없음 / 10
네티즌 평점
5.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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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평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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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평점 3.5 / 5.0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3. 상세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 등장인물

고베 출신으로 중학교 3년생. 작중 14살. 이 만화/소설의 주인공. 아버지는 일본 해군 장교(대위)로, 과거 회상씬이나 숙모의 말로 비추어 볼 때 원래부터 꽤 부유한 집안으로 묘사된다.
1945년 6월 5일의 '고베대공습'에서 먼저 대피한 어머니와는 니혼마츠(二本松) 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이 지나가고 집합 장소인 세이타가 졸업한 국민학교#에서 재회한 어머니는 상반신에 큰 화상을 입고 이윽고 사망. 여동생 세츠코와 니시노미야에 있는 먼 친척 아줌마네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친척 아줌마한테 구박을 받다가(이 부분은 세이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과 객관적 상황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 단락 참조) 집을 나와 근처 방공호으로 옮겨 산다.

사실 친척 아줌마가 구박했다고 해봐야 친척 남매들과 식사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부분과 잔소리를 듣는 수준이었다. 평화시에도 자기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하물며 어려운 전쟁통에 남의 아이를 맡아주는 상황이라면 그 정도 대우는 특별히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즉, 어려운 시절에 기여도가 없는) 세이타 남매에 대한 차등 대우는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3][4]

친척집을 나오고 처음 얼마 동안은 남매끼리 보금자리를 꾸려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곧 생활비가 떨어지자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세츠코가 영양실조에 걸리자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하려고 도둑질을 하다가 들켜서 실컷 얻어맞고 파출소에 끌려 가기도 한다. 그래도 친척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습 상황에서 빈집털이를 한다. 세츠코가 죽어간다는 것을 실감하고[5], 고베로 가서 어머니가 남긴 저금을 찾아와서 세츠코에게 수박을 먹이고 계란죽을 끓여주려고 한 날 세츠코는 결국 죽는다. 원작에서는 이미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연못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돌아와 보니 세츠코는 죽어있었다.

세츠코를 화장하고 방공호를 떠나, 이후 1945년 9월에는 산노미야역 구내에서 생활하는 부랑아가 되었다. 세츠코가 죽고 난 뒤 홀로 떠돌아다니다가 산노미야 역 근처 암시장의 음식 냄새에 이끌려서 암시장에 오게 되었고, 여기서 가진 물건들을 거의 다 팔아버린다.[6] 이윽고 가진 물건이 다 떨어지자 기차역 구내에서 눌러앉은 채 부랑아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거지꼴[7]이 되어 역 구내에 앉아 있는 세이타를 불쌍히 여겼는지 주먹밥을 놓고 갔으며 그걸로 배를 채우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돈이 다 떨어지고 난 뒤 굶주림에 시달렸고 영양실조로 인한 지독한 설사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기둥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인한 전신쇠약으로 객사한다. 이후 다른 죽은 부랑아들과 함께 화장된다.[8]

사실 죽음의 직접 원인은 폭격으로 인해 고아가 된 것이라기 보다는[9] 친척의 집을 나오고 자존심 때문에 버틴 것 때문이다.[10][11]한마디로 돈없이 깡만 믿고 가출하면 개고생한다.[12][13]

애니메이션에서는 여동생 세츠코와 함께 유령이 되어 높은 빌딩이 들어선 현재의 도시인 고베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작중 히로인. 5살도 안 넘겨보이는 유아로 오빠인 세이타를 따라다닌다. 세이타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세츠코에게 숨겼는데, 니시노미야 친척집으로 가서 살고나서부터 어느샌가 웬일인지 어머니를 찾지 않는다. 세이타는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된다[14].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유골함이 클로즈업된다. 그러다 결국 방공호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만다.

죽기 직전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고 눈에 생기가 사라진 상태. 세이타가 방공호로 돌아왔을 때 세츠코는 사탕 대신 하지키(御弾き)#[15]을 빨고 있었다. 그리고 돌멩이를 내놓으면서 오하기,오카라타이탄(콩비지 볶음)이라며 먹으라고 권한다. 원작에서는 의사가 영양분이 있는 것을 먹이라고 하니, 세이타는 "나의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마시게 할까? 손가락 하나쯤 없어도 괜찮으니까 손가락을 잘라서 그것을 구워서 먹일까?"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향년 4세.

세이타가 서리를 하다가 붙잡혀 실컷 두들겨 맞고 파출소에 끌려갔을 때, 어떻게 따라왔는지 파출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이타를 보고 "어디가 아파? 의사 선생님 불러서 주사 맞아야겠네."하는데 어머니가 평소 하던 말투를 흉내낸 것이라 세이타는 더 서럽게 운다.

만약 죽지 않고 살아남았더라도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8월에 접어들면서 세이타와 세츠코는 돈이 떨어져 가진 물건들을 팔아 먹을 걸 마련하고, 나중에는 그나마도 구하지 못해 개구리를 잡아먹고 심지어 공습 중에 도둑질까지 하는 등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게다가 남매의 유일한 희망이던 아버지도 죽은 것으로 밝혀져 친척집을 제외하고는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천애고아가 된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세이타는 친척집에서 스스로 뛰쳐나왔기 때문인지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고생하면서도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16] 따라서 나중에는 세이타와 같이 거리에서 부랑아 생활을 하다가 굶어죽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17]

참고로 세츠코(節子)라는 이름은 돌아가신 작가의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본판 성우는 5살 소녀가 연기했다. 타카하타 감독은 이 소녀가 있어서 제작이 매우 편해졌다며 고마워하고 높이 평가했다. 먼저 목소리를 녹음하고 거기에 맞춰 작화를 했다.[18]

  • 어머니
세이타에게 세츠코를 맡기고 니혼마츠 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으로 부상을 당한다. 나중에 세이타와 대피소에서 만나지만 이미 상반신에 전신화상[19]을 입어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20] 원래 심장이 좋지 못해 제대로 된 병원에 옮기려고 했으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포기했다. 공습을 당해 전신화상을 입은 시기가 6월 여름인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붕대만 감아놓은 상태로 누워있어야 했다.[21]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썩어 온 몸에 파리떼와 구더기가 들끓는 끔찍한 모습이 되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해 결국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의 유골함은 세이타 남매가 사는 곳을 옮길 때마다 옮겨서 소중히 보관했다.

  • 아버지
일본 해군 대위. 원작에서도 대위. 관함식(觀艦式)[22] 장면에서 아버지가 경례하는 장면에서 옷소매에 새겨진 계급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자의 아버지가 모델. 전쟁에 출전해 있기에 회상 씬과 사진으로만 출연. 애니메이션만 보면 순양함의 함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세이타와 세츠코의 나이와 아내의 나이를 봐도, 아버지가 그 나이에 함장급(적어도 대좌)의 높은 계급일 수가 없다. 패전 후에 세이타는 아버지가 승선했던 연합함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었다고 절망한다. 아버지가 타고있던 마야는 침몰했지만 구조된 인원도 있어서 정확히는 생사불명이지만, 작중 간간히 편지를 보냈음에도 답장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죽은 게 맞는 걸로 추정된다. TV 드라마판에서는 유복한 삶에 대한 현실성과 세이타의 자존심을 부각시키려 한 것인지 대좌로 변경되었다.

  • 아주머니
공습후 집합장소인 국민학교에서 만난 아주머니.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랑 친분이 있는듯. 잠깐의 등장이지만 남매를 걱정하고 챙겨준다.

고베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니시노미야 시에 사는 친척 아줌마. 세이타 아버지의 사촌 형제의 부인으로, 촌수를 따지자면 당숙모. 남편은 죽어서 지금은 미망인. 원작에는 미망인 또는 소모(小母)로 표기된다. 원작 정발판에서는 숙모라고 번역했다. 다만 일본에서는 친척 관계를 일일히 따지지 않고 친척 아줌마는 '오바상'으로 퉁쳐서 부르고, 작중에도 오바상으로 부른다. 원작에서는 만약의 경우 공습으로 집이 불타거나 피난을 가야 할 경우 서로 신세를 지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23] 세이타는 몰랐지만, 어머니가 기모노, 모기장 등 피난 살림을 옮겨놓았다.

왜인지 나쁜 숙모라고 서술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작중에서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를 특별히 학대한 적이 없다. 남매의 어머니가 처녀 때 입던 기모노로 바꿔서 흰 쌀밥을 며칠 주다가 곧 남매들에게는 멀건 죽만 준다지만, 남매를 은근히 구박하면서도 밥을 다 준다. 오히려 주인공 가족이 남긴 돈[24]을 가로채지도 않았고, 남매가 독립하려고 하자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물론 남매가 떠나겠다고 할 때 속으로는 쾌재였는지 붙잡지는 않았고, 애당초 진심으로 걱정했으면 뒹굴거리는 세이타에게 돈 벌어오라거나 잔소리는 할지언정 다른 친척들에게 가보라는 식으로 비아냥대진 않았을 거다.[25]

물론 시대상황을 감안했을 때 숙모의 행동 중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건 맞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남매들에게 잘 대해줬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이러나 저러나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 눈칫밥을 먹여도 할 말 없는 얹혀 사는 입장이라도, 애들 엄마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너무 대놓고 짐덩어리 취급이 심하긴 했다. 그러나 아직 4살 밖에 안 된 세츠코는 그렇다치더라도, 어느 정도 판단력이 있을 나이의 세이타마저도 친척집에 신세지고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감안 안 하는 철부지적 행동을 했기에[26] 세이타에게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작품이 세이타 남매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극중에서는 명확히 악역 포지션에 있긴 하다. 세이타는 어머니의 죽음을 동생에게 숨겨달라 부탁하지만 그녀는 세이타가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린다. 게다가 그 사실이 드러나는 게 세츠코가 울면서 죽은 반딧불을 묻어주는 장면인지라 빼도 박도 못하고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패망하기 직전인데다가 도쿄 대공습과 같이 곳곳에서 공습이 일어나 물자도 보급도 힘든 상황이라는게 작중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살아는 것은 에서는 막막할 뿐더러, 라디오와 대중매체에서 홍보하던 것과 달리 일본이 점점 패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국민들도 이미 깨달아 허탈함도 느껴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숙모 입장에서는 현실을 직시 못하고 철없이 구는 두 남매가 아니꼬울 수도 있다. 거기다 약간의 변호를 하자면 세츠코는 아직 어린애이긴 하나 앞으로 이런 막막한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서 어머니의 죽음을 알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27].

결국은 이 숙모님도 세이타의 어머니에게 미리 부탁받아서 일단 남매를 맡아주기는 했지만, 힘든 상황에도 예전에 잘 살던 시절 그대로 생활하려는 철부지 두 아이를 보살피려는 부담감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28], 그저 그 당시의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역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은 고작 14살과 4살밖에 안된 아이들이 몰래 가출을 한 것도 아니고 집을 나간다고 통보를 하고 나갔음에도 어디서 묵을 것인지 전혀 묻지도 않고 방임했다는 것이다. 세이타는 명예를 중시하는 군인집안의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으니 어린나이에 치기어린 자존심을 세우느라 어리석은 짓을 했지만, 그는 겨우 14살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고생한번 못해본 아이가 영리하게 상황을 해결해나가길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29]

하지만 숙모라는 사람은 피난시에 서로 돌봐주기로 약속까지 했음에도 아이들이 어디서 지내는지 묻지도 않고 찾지도 않았다. 잔소리와 편애는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가족의 아이까지 떠맡아야한다는 스트레스때문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행동이지만, 전시상황에 어린 아이들을 방임한 것은 나가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거처라도 물어보고 가끔 들러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확인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하지 않았다는건 부탁 때문에 맡아주긴 했지만 언젠가 부담되는 세이타 남매가 나갈 때만을 노리고 있었으며[30] 세이타 남매가 치기 때문에 나가자 내심 옳다구나 하고 바로 손절 각을 세워버렸다고밖에 할 수 없다. 세이타가 이러한 점에서 숙모는 비난받아 마땅한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 숙모를 악한 인물로 해석할 것인가, 특별히 선한 인물이라고 볼 정도는 아닐지언정 악인 역시 아니라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대 독자와 작중 당시의 시대상 사이에서 도덕적 기준선 자체에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평화롭고 풍요한 현대를 사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기에 이 숙모는 적극적으로 악행을 한 인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매몰찬 인물로써 악인으로 보일 여지가 크다. 하지만 패전 직전의 일본 사회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약속해 놓고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집을 나가자 얼씨구나 기다렸다는 듯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을 꺼버렸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는 분명 매몰찬 행동이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의 생존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패전 직전의 혼란기라면 개인의 품성을 떠나 아이들에게 신경쓰기 위해 필요한 자원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고, 약속을 지키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생활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노력, 자원을 할애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기본적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니라 특별히 선량한 행동의 영역에 들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적지 않은 독자들이 세이코와 세이타를 대하는 숙모의 태도가 "이해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차가운 박대였던 것은 사실" 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최근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연락이 두절된 아이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생각하면 최소한 아이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안정될때까지 어느 정도 기간이라도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을 참아주는 것이 어른스러운 행동일 것이며, 하다못해 폭격의 공포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세이타의 태도 역시 현대였다면 <전쟁과 폭격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은 청소년의 트라우마>로 충분히 이해와 배려를 받을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을 말살하고 집단을 절대시하던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문화, 그리고 패전 직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개인에 대한 배려 자체가 당연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서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자신이 <그 시대, 미망인이 말한 것쯤은 특히 냉혹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제작자 공인으로 미망인(숙모)가 그리 악한 인물이 아니라고 설명한 것. 그보다는 철없는 아이나 청소년이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 그것을 타이르거나 일깨워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사회(특히 주변의 어른들)의 책임이라면, 사회 자체의 역량이 약화된 극한상황에서는 사회가 질 수 있는 책임의 수준이나 기준 자체가 낮아진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말하자면 평화롭고 넉넉한 시기에는 당연히 해야 할 도리로 여겨지는 행동도 전쟁과 같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특별한 선의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31]. 따라서 <세상에는 나쁜 어른들이 많으니 아이들에게 세상 사는 방법을 조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쟁과 같은 극한상황에서는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된다(그러니 타국을 침략하여 전쟁을 벌인 것은 크나큰 죄이자 악의 원인이다)>을 작품의 주제로 해석하는 쪽이 더 적절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보면, 만약 평시라면 고아의 재산을 빼앗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법과 사회가 무서워서라도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고구마를 들고가다 떨어트렸을 때 어른에게 강탈당할까봐 두려워 해야 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자기 집안에 들어온 철모르는 아이들의 재산(그것도 극단적인 물가 폭등 상황에서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면서도 상당 기간 두 아이가 먹고살만큼 막대한 재산)을 가로채는 것은 손쉬운 일일 가능성이 높다. 전시 혼란기의 기준이라면 아이들을 보살펴준다는 핑계로 재산을 몽땅 가로채지 않고 아이들과도 나름 정당하게 거래했다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금도는 지킨 행동일 수 있는 것. 또한 이 면에서는 작중 숙모보다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친척집 딸이나 하숙인, 농부 아저씨 등)이 분명 나오기는 하지만... 정작 이런 사람들의 경우 비용이 들지 않는 조언이나 동정 이외에는 매몰찬 숙모보다도 이 남매에게 뭔가 해 준 것이 없고, 아이들을 돌봐줄 책임도 없던 사람들이다. 즉 감정적인 측면에서야 어찌되었건 최소한 숙모는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뭔가 해 준 것이 있고, 자신의 책임을 자발적으로 방기하지는 않았던 인물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는 것. 결국 숙모 캐릭터에 대한 평가는 나쁜 사람, 또는 나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단편적으로 이뤄지기 보다는 현대인과 당대인의 도덕적 기준 차이, 그리고 그런 차이를 발생시킨 원인이 무엇인가의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해석해 보아야 할 문제이며, 원작자나 애니판 감동 모두 최소한 숙모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려낸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이타와 이 인물의 관계는 초반 가족식사 장면에서 잘 묘사된다. 자기 아들에게는 국 밑바닥에있는 감자를 듬뿍 주지만 세이타가 국을 더 달라고 하자 감자는 하나도없고 국물과 파같은 건더기 몇개뿐이였다. 세이타는 감자없는 국을 건내받으며 흠칫놀라고 다음차례인 딸은 또 감자를 많이받자 그 국그릇을 힐끗 본다.[32]

원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과 하숙인이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딸과 하숙인만 등장. TV 드라마판에서는 딸이 많은 집안에 막내아들을 뒀다는 설정이 추가되었으며, 남편은 육군으로 징집되었다가 전사했다는 설정이 붙었다.

여학생. 세츠코에게 게다를 사주고, 세이타 남매를 걱정하는 듯한 말도 한다. 나름 세이타 남매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인듯.[34] 어머니가 국밥을 나눠주면서 하숙인과 자신한테는 냄비에서 밥과 건데기가 가득한 국밥을 떠주고, 세이타와 세츠코에게는 위에서 국물만 떠주는 것을 알아채고 얼굴을 붉힌다.[35]

  • 친척 아줌마네 집의 하숙인
세이타 남매를 가엾게 여기기는 하지만, 하숙인이라는 입장이라 내색을 안 한다. 잔정이 있다는 점에선 세이타네 숙모의 딸과 비슷하다.
원작에서는 고베 세관에서 근무한다. 암시장 사정을 잘 알아서 쇠고기, 물엿 등을 아주머니에게 선물하면서 호감을 사려 한다. 친척 아줌마의 딸에게 연애감정(짝사랑)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작중에선 하숙인(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이타 남매의 숙모에게 취급이 은근 좋은데[36] 아무래도 그가 세이타 남매의 숙모에게 잘 보이는데 성공했다는 증거일지도(...)[37]

세이타 남매에게 반찬거리가 될 만한 야채를 (돈 받고) 파는 아저씨. 세이타 남배를 불쌍히 여겨 자신도 없는 형편에서 먹을 것을 판다. 선술했듯이 작중에선 꽤나 친절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집 나온 남매를 걱정해서 "친척 아줌마집으로 돌아가서, 도나리구미(隣組)에 들어가서 배급을 받으라"고 충고한다. 이 말이 맞는 게, 도나리구미에 속하면 방화 예방작업 등을 하고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 빗길의 행인
세이타 남매가 농부 아저씨와 해어진 후 어느 비 오는 날 마주한 행인. 처음엔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세츠코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만 나와서 약간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세츠코가 빗길에 감자를 실수로 떨구자 이를 주워주려는듯 손을 뻗어줬다. 허나 그가 감자를 채갈지도 모른다 의심했던 세이타가 먼저 감자를 주워버리고 도망치듯 세츠코를 데리고 떠난다. 다만 세츠코는 그 행인을 의심하지 않았는지 가볍게 인사를 했으며,[38] 행인은 그런 둘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등장 종료.

영양실조에 걸린 세츠코에게 설탕물을 먹이려고 사탕수수를 훔치려는[39] 세이타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세이타를 마구 두들겨 패고는 파출소로 끌고 갔다.[40] 하지만 세이타를 동정한 파출소장이 너무 심하게 때렸다며 미성년자 폭행과 상해죄 얘기를 꺼내자 당황하고, 알아서 하라는 말과 함께 달아나다시피 파출소에서 나간다. 원작 소설에서는 감자를 훔치려다 지키고 있던 밭 주인에게 실컷 얻어맞고 전쟁 중에 서리는 중죄라며, 돼지우리(감옥)에 갈 거라며 세이타를 파출소로 끌고 갔다.

세이타를 감싸 준 파출소장. 어깨에 달린 구(旧) 일본 경찰 계급장을 보면 경부보(警部補). 세이타를 동정해서 집으로 돌려보낸다. 원작에서는 나이나 외모 묘사는 없고, 계급도 순사로 나온다. 세이타에게 설교를 하고 곧 돌려보낸다.

세츠코가 죽은 후, 세이타가 구역소에 가서 신고하니 "화장터는 예약이 밀려서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는데, 배급계 공무원으로 세이타에게 쌀을 배급했던 이 아저씨가 특별 배급한 을 주면서, 세츠코를 어디 절 한 구석에서 화장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무심하게 "오늘 날씨 참 좋네."라고 말하는데, 전쟁으로 사람의 목숨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됐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이다.

  • 행인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산노미야 역에서 생활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로, 패전으로 각박해진 인심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거지꼴을 한 세이타와 다른 전쟁고아[41]들이 역 구내에 기둥마다 몇명씩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미군들이 보면 안 된다, 더럽다, 죽었나 등등 말을 하며 지나간다. 중간중간에 세이타 또래의 여학생들이 지나가는데, 부랑아가 되어 앉아 있는 세이타의 모습과 대조된다. 어떤 아주머니는 지나가다가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은 세이타를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주는데, 부랑아가 된 세이타가 왜 산노미야 역에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 역무원들
세이타가 죽은 뒤 등장. 역 바닥을 청소하다가 굶어죽은 세이타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또 죽었냐"고 한다.[42] 세이타와 비슷한 처지의 부랑아들이 역 구내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하며 역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이는 부랑아들의 모습과 행동이 사실상 거지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인데, 세이타의 경우만 봐도 세츠코가 죽어 방공호를 떠난 뒤 거리를 떠돌면서 한 달 가까이 씻지 못해 몸에서 악취가 풍겼고 옷에서는 온통 이가 들끓는 등 지저분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43] 게다가 옷차림을 보면 입고 있던 옷은 다 해져 누더기가 되었고 맨발로 다니는데 이렇게 남루하고 지저분하며, 악취를 풍기는 아이들이 수십 명씩이나 역 구내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으니 역무원들 입장에서는 보기에 좋지 않았을 것이다.[44][45] 세츠코의 유골이 담긴 사탕통을 발견하고, 그냥 던져서 버려버린다.

  • 기둥에 기댄 소년
세이타가 영양실조로 쓰러져 죽은 뒤에, 역무원들이 세이타의 유품을 뒤지다가 세이타가 앉아 있던 기둥 뒷편에서 발견한다. 비중은 거의 공기이지만 전쟁으로 각박해진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세이타보다 어린 나이의 소년이며, 대부분의 부랑아들처럼 헐벗은 모습을 하고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다. 역무원이 다가가서 잠깐 보더니 "눈빛이 흐리멍텅해서 이제 글렀다"고 한다. 한마디로 굶주림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가 돼서 눈빛이 초점을 잃었고, 머지않아 세이타처럼 쓰러져 죽을 거라는 뜻이다.[46]

  • 부랑아들
애니판과 원작에서는 단순히 언급만 되지만, 드라마판에서는 부랑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약간 묘사되어 세이타가 어떻게 생활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들은 친척 아주머니와 딸이 산노미야 역에 가는 씬과, 세이타가 죽어가는 씬에서 등장한다.[47] 처음 등장하는 부랑아 소년은 자신의 앞 쪽으로 지나가는 어떤 아주머니가 넘어지면서 짐을 흘리자 재빠르게 훔쳐 달아난다.[48] 다음으로 세츠코와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아이와 중간 나이대의 소년, 그리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역 기둥에 기대어 같이 앉아 있다. 역 기둥에 기대어서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앉아있는 소년도 나오는데 역무원들이 청소하는 과정에서 역 밖으로 쫓아낸다.[49] 마지막으로 쫓겨난 소년 옆에서 엎드려 있던 다른 소년도 역무원들에게 내쫓긴다.[50]
그리고 세이타가 부랑아 생활을 할 때 산노미야 역에서 같이 생활하는 다른 부랑아들의 모습도 보인다. 대부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초점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51] 마지막으로 세이타도 나오는데, 남루해진 옷차림을 한 채 맨발로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으며 허공을 바라보다가 앉은 채로 죽고 만다.[52]
부랑아가 된 세이타는 이미 돈이 다 떨어진 상태라 가진 물건을 다 팔고, 어머니의 유품까지 팔았지만, 그걸로는 보름 정도밖에 못 버텼고, 그 이후에는 사실상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53]

5. 원작과 작가

소설은 1967년 잡지 올(all) 요미모노(オール讀物) 10월호에 게재, 같은 시기에 발표한 단편 <아메리카 히지키(アメリカひじき)>와 함께 제58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 2002년, 2003년, 2006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내용은 사실상 작가 본인의 자전(自傳)으로 실제로 기아로 여동생을 잃었던 체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 덕에 원작 소설은 애니메이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주의가 더 강하다.[54] 굳이 예를 들자면 노벨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양철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참고로 노사카 아키유키는 고베 공습으로 양아버지[55]를 잃고, 이어서 피난을 갔던 후쿠이현에서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 이때 여동생을 구하지 못한 속죄를 위해 소설로 쓴 것.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지만, 노사카 아키유키는 살아남아 방황하다가 친아버지가 다시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종의 참회록으로 쓴 소설이지만,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의 세이타는 상냥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여동생(1년 4개월)의 먹을 것을 뺏어먹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잔혹한 오빠였다. 여동생을 때려서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 적도 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일기를 공개하는 것 같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자신을 치장(미화)하는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읽지 못한다. 또 이 소설로 돈을 벌고, 애니메이션화가 되어서 인세를 받는 것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애니메이션이 완성되고 마련한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감정이 북받쳐 도중에 퇴장한 일화가 있다.

노사카의 다른 단편중에는 '고추잠자리'도 있는데 이게 일각에 도시전설처럼 와전되듯 알려진 "카미카제 대원이 훈련기 몰고 자폭하려다 콕핏에 앉은 벌레를 보고 순간 생명의 귀중함을 깨달아 적함까지 갈 남은 연료를 무인도 가는데 써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뒤로 그뒤 어떻게 되었는지 모름" 이라는 일화의 원전이다.

무엇보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던 인물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 등의 일본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며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원고에서는 "이 나라가 과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시기로 다가가고 있음이 확실하다."라는 섬뜩한 경고까지 남겼다.기사 1 기사 2

그에 대하여 그가 극우라고 잘못 알려졌는데 김세완은 90년대 후반, 유니텔 만화동호회에서 이러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당시 누이동생이 죽은 걸 미군 탓으로 여겼다든지 빵이나 서구풍 음식을 먹으면 굴욕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서술한 적도 있었다.

6. 감독의 의도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반전 작품 같은 게 절대 아니다. 그런 메시지는 일절 실려있지 않다'고 했으나 반전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누이가 둘만의 가정생활을 이뤄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공생을 거절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모습이 현대에도 통한다고 해설하고 고등학생과 20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참고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그 시대, 미망인이 말한 것쯤은 특히 냉혹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이타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 방공호로 옮겨살 것을 결심하고 세이타는 말한다. "여기서라면 아무도 없고, 세츠코와 둘이서 마음대로 할 수있다." 그리고 생각없이 '순수한 가정'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 수 없으니까 세이타는 세츠코를 죽게 만들었다." - 아니메쥬 1988년 5월호. 타카하타 감독 인터뷰에서[원문]

미국판 DVD에 수록된 타카하타 감독의 인터뷰 영상. 1999년 유튜브 영상(영어 자막) 요약하면, "일본인 관객의 다수가 세이타에게 동정심을 가져서 나로서는 의외였다. 나도 전쟁 체험자이지만 당시 다들 힘들게 살아남았다.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숙이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세이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었더라면 좋았다."

7.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관점

주인공의 대사 중 "무적의 일본 함대"라는 대사가 있다거나, 군함행진곡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일본이 스스로를 피해국가로 인식시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만든 홍보성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1990년도 당시 9시 뉴스에서 우익 애니메이션이라고 비난한 적도 있다.

참고로, 주인공들이 '무적의 일본 함대~'어쩌구 하는 대사를 하는 이유는 작중 주인공들의 아버지가 일본군 해군의 순양함(타카오급 중순양함) 에서 근무하기 때문.

그런 탓에 한국에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평에 따르면 영화 자체에 일본인=피해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으며, 관람자에게 그 이데올로기를 전염시키고, 아주 감동적이기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간 수탈 받은 피해자가 옆에 있는데 침략국인 일본이 마치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작품이라는 게 비판론의 주된 요지. 일부 감상문에서는 어느 주부가 자신의 딸이 "일본인 아이들이 불쌍하다"라는 말에 경악을 했다고 한다.

즉, 감독이 의도한 주제와는 별개로 등장인물을 어린 아이들로 설정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미성숙함에서 비롯된 고집과 어리석은 행동들은 구 일본제국을 상징하며 이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측은함과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자존심 하나 지키려다 자신은 물론 어린 여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보면서 주인공을 어리석고 끔찍한 인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보단 어떻게든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여동생과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거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전범국에서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일이며, 이는 이 작품이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 외에도 작품의 외적인 부분, 즉 반딧불의 묘를 이용하는 방법이 문제라는 의견이 있다. 일본의 매년 8월은 원폭 희생자를 추도하는 달이며 8월 15일은 종전 기념일이다. 매년 8월 즈음에는 반딧불의 묘를 방영할 뿐 아니라 <소년A> 나 <24개의 눈동자>같은 전시를 살아가던 일반인의 시점을 다룬 작품들을 방영한다. 당시 폭주하던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범국의 국민들이 '자신들도 피해자' 라고 오판하기 충분한 내용들이며, 이는 의도한 바이기도 한 것이 그들에게 8월은 피해자 추모의 달이기 때문이다. 주변 국가를 침공했지만 우리도 같은 피해자라 주장하고 패전했지만 종전이었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런 것들이 주변 아시아 국가에 좋게 보일 수가 없다.

7.1. 다른 관점의 해석

이와 관련된 리뷰 참고
https://m.blog.naver.com/psh960/221363843527
이 영화는 멍청한 남주인공 때문에 개고생하고 멍청한 남주인공 때문에 죽는 개인의 이야기이다.

간단히 말해서 일본의 과거 행적을 대놓고 보여주며 비판의 선상에 놓는 작품은 아니지만, 정작 작품 자체를 보면 극우나 일본의 피해자 행세와도 거리가 멀다는 의견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 남매가 죽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요컨대 작품에서 주인공의 사망 원인은 자존심 때문에 친척집을 나온 탓에(...) 작중 일본의 행적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내용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두 명의 개인 이야기에만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친척 아주머니집을 나와서 살 때 남매에게 채소를 팔던 농부 아저씨조차 친척 아주머니집으로 돌아가 배급받으면서 살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부유했던 집안이 부모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몰락한 것과 친척 아주머니 집에 얹혀산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에 친척 아주머니가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던 세이타가 결국 여동생을 데리고 가출한 것이 컸다. 방화예방 활동을 하면서 배급을 받고 살았더라면 오히려 굶어죽지는 않았을텐데 전술한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비극이다.

친척 아주머니는 주인공 남매를 학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매 가족의 재산을 약탈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의 기모노를 판 것뿐인데 당시엔 남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죽은 상태였다.[57] 이미 입을 사람도 없고 놔둬봤자 자리만 차지하는 짐일 뿐이며, 팔면 귀중한 돈 및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당시 남매 가족의 재산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자립을 하고 꽤나 쌀밥을 먹으며 버틸 만큼 상당했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는 주인공이 자립하려 할 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아줌마가 본심으로는 주인공을 걱정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주인공 남매는 아주머니를 자신을 구박하는 적으로만 보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워 집을 떠났다가 죽었다. 친척집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세이타가 거지가 되어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꼽자면 바로 주인공인 세이타일 것이다. 주변이 변하고 환경이 변했으니 이젠 그 자신이 환경과 주변에 맞춰서 살아야하는데 여전히 환경과 주변이 자신에게 맞춰줘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해 그야말로 민폐가 되어버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의 근대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한순간에 몰락을 경험한 주인공이 온갖 설움과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나와 내 가족들은 어떻게든 살리리라'는 마음 하나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짜리가 무슨 수가 있겠으랴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다못해 자질구레한 일을 해주면서라도 목숨을 연명할 방법은 있었다. 옆동네 히로시마의 맨발의 겐도 근성으로 악착같이 살아남는데 그것도 싫고 주변에서는 자신과 여동생을 구박(?)만 해대니 못 견디겠다면서 나왔다는 것은 주인공의 미숙함을 다시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러므로 피해자 행세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전쟁의 피해자인)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개인의 국적과 국가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58].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당시 비참했던 일본인 개인을 내세워 전범행위를 한 일본을 덮으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집단의 잘못을 덮을 때 집단 내의 피해입은 개인을 내세워 동정심을 일으키는 것은 흔한 수법이다.

감독 자신도 극우는 커녕 오히려 대척점에 있는 일본 공산당 당원이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헌법 9조의 회' 결성집회에서 애니메이션 팬들이 전쟁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던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반전 요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소수의 일본 국민들은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며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평화헌법을 옹호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일본의 독립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가 기고한 기사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링크
감독이 2015년 1월 1일자 가나가와 신문에 기고한 글이 우리나라 블로그에 번역되어 올라왔는데 참고로 읽어보자.링크

게다가 해당 내용을 한국 블로거가 번역해서 게시해도 되는지 문의하자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소리를 자신이 평소 해왔는데 그 내용도 첨가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할 정도. 저 코멘트에 따르자면 본인의 입장에서도 반딧불의 묘는 불완전한 반전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 논란이 있는 영화이며 외적으로 오용되지만 나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영화초반 공습장면에, 시민들이 폭격에 맞아 사망하고, 부상당하며, 참호 밑으로 대피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와중에 한 일본 군인이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일본군부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수 있다.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는 작중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습이 문학적으로 당시 일본 국민과 지배층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는 것도 있으니 참고할 것. 사실 작품을 꼼꼼히 보면, 주인공 남매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도 아니다. 주인공 남매가 겪은 고난과 빈궁은 엄밀히 말하면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평균적인 상황[59] 과는 좀 다르다. 1944년에 설탕 절임 복숭아를 먹었다거나, 게 통조림을 먹었다는 대목도 있고,심지어는 음식을 상한 것도 아니고, 단 게 싫다고, 냄새가 이상하다고 버렸다는 대목도 있다. 게다가 은행에는 7,000엔의 저금이 있었고 폭격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면서 바리바리 싸간 것이 우메보시, 버터, 치즈, 기모노, 풍금... 이것들이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사치품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불쌍하게 여기라고 만든 인물이 아니다. 작품 초반부에 나오는 역 구내에서 부랑아가 된 세이타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난 뒤인 1945년 9월의 모습이다. 즉 최소한 친척집에 있을 때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척 아주머니에게 천대받기 싫다는 여동생의 징징거림에, 아직 어린 오빠가 빡쳐서 자기들이 독립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가는 바람에 그 꼴이 난 것. 물론 그 친척 아주머니가 아주 잘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치밥은 좀 먹여도 상당히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는데 말이다.[60]

작중 남매의 가출이 왜 문제냐면, 이는 곧 토나리구미(隣組)를 비롯한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편성된 식량 배급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으로 암시장에서 식량을 사 와서 남매끼리 재미있게 살았으나, 돈이 다 떨어지고 가진 걸 다 팔아치운 뒤 더 이상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후 여동생이 영양실조로 먼저 죽은 뒤 혼자 남은 오빠는 산노미야 역에서 거지처럼 생활하다가 죽게 된 것이다[61]

앞에서 설명한, 남매가 그동안 누렸던 풍요로움이 이들의 인격형성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부족함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기에 한순간에 자신들이 누리던 특권을 모두 잃어버리면서 밀려드는 상실감을 버틸 수가 없었던 것. 오늘날로 말하면 갑의 입장에서 누리던 것을 잃고 을의 입장으로 내려왔었을 때 이를 수용할만한 포용력이 모자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철부지같은 행동을 하게 된 것.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오빠가 판단력이 더 미숙한 여동생이 투정부리는 것을 적당히 달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여 친척집을 나가버린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세이타, 세츠코가 아직 미성년자로 판단력이 미숙한 게 정상이라는 점을 염두해둔다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냉정히 생각하면 세츠코 한정으로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고작 4살의 철부지 유아는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중학교 3학년 학생인 오빠 세이타는 마음만 먹으면 세츠코와 같은 어린아이를 달래고 바로잡아주어야 할 정도의 판단력과 능력은 갖출 수 있는 나이니까.

그리고 1940년대에 세이타 나이(14세)면 그리 어리다고도 볼 수도 없다. 미국이건 일본이건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그리고, 2차대전 시작 이전에 일본이 다른 동양 국가들에 비해서 여유로운 상황이었던 점이나 전쟁에 돌입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여동생 세츠코는 일본 민중을 은유하는 것, 오빠 세이타는 일본 지도부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전후 일본이 겪은 고난은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또한 발간 당시 '전쟁은 국가지도층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고, 일본 민간인은 오히려 지도층의 무모한 야욕에 희생되었을 뿐이다'라는 역사관이 유행하던 것이 비추어 생각한다면 결국 지배층은 어떤 식으로든 다수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고, 전후의 참상은 결국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대가를 스스로 치룬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적의 일본 함대 운운하는 대사 역시 세이타의 시점에 가깝게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대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주인공(그리고 당시의 일본 대중)의 무지를 상징하는 대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불쌍한 애들을 괴롭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쯤으로 묘사되는 친척 아주머니 역시,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리 나쁜 인물도 아니다. 어머니의 기모노를 대신 내다 팔아준다고 하더니 자기들에게는 고작 쌀 한 단지 주고 말았다고 남매가 서러워하는 부분도, 사실 암시장 거래의 위험성이나 아이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적절한 분배 비율에 대한 이견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기모노와 바꿔온 쌀 중에서 자기 가족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남들은 다 농사일이나 대피훈련 등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방에서 종이를 오리거나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여동생과,[62]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는 오빠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고...[63]

즉,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태도가 마치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 가능한 셈. 작중에서의 묘사에서 그러한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런 의도가 드러난 부분이 있다. 작중에서 숙모가 주인공 남매가 부모님 돈으로 밥을 사먹자 섭섭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집을 떠날 때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또한 숙모가 주인공 남매의 재산을 뺏는 장면도 없다. 작중에선 물가가 극단적으로 올라가는데, 주인공 남매가 물건을 한번에 사지 않고 천천히 쓰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돈이 엄청났다는 증거인데, 이걸 뺏지 않은 것만 해도 과연 악인일지 의문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세이타와 세츠코는 희생자인 동시에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고(세츠코는 아직 유아이니 어느 정도까진 봐줄 여지가 있지만.)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기에는 석연찮은 인물임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아이들이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계급이던 해군 장교의 자식들로써, 남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은 작중에서 명확히 묘사된다.

이러한 비평적 해석과는 별개로 적지 않은 독자나 시청자가 이 작품을 일본인의 자기연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고[64], 이는 오롯이 작가나 감독이 책임져야 할 영역인 것 역시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시청자는 드물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남매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연민에 빠지는 연출이 의도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제대로된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의도된 결과다.[65] 원작에서 나오는 표현조차 생략해 가며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행세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감독 자신이 전쟁 개시 전부터 일본 국민들이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며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에 당시 일본 국민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주장한 바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는 있다. 전쟁의 광기에 대해 그 국가 구성원인 국민 자신들 역시 명백한 책임이 있다는 전제에 따라 본다면, 이와 같은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일본의 좌파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흔히 박혀있는 책임회피의식[66]에 대해서 꾸준히 비판해왔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이렇게 꾸준히 일본의 전쟁 책임을 꾸준히 주장해온 사람으로 이런 사람이 피해자 행세물을 만드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67]

8. 이야깃거리

원제인 火垂るの墓의 火垂る는 반딧불을 뜻하는 蛍(ほたる)의 어원으로 추측되는 말 중 하나다.[68] 물론 영제가 Grave of the Fireflies이며, 작품 내에서 반딧불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제의 火垂る도 당연히 반딧불을 뜻하는 게 맞다.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는 고베로, 애니메이션 마지막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내려다 보는 도시도 현대의 고베다. 세이타가 아사한 곳은 고베의 산노미야역. 작중 초반의 공습장면은 고베 공습 중 피해가 컸던 1945년 6월 5일 공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제작 스탭중 안노 히데아키가 있었는데 순양함의 원화를 맡겼을 때 밀덕후답게 신이 나서 극사실주의로 원화를 그려내 왔더니 정작 작화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는 관함식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실루엣만 보이게하고, 흑백영화처럼 어두운 색으로 처리해 버렸다. 색칠한 장본인은 안노의 절친 히구치 신지의 부인 타카야 노리코.[69]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와의 대담에서 반딧불의 묘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스즈키 토시오 (이하 스즈키): 그리고나서, 반딧불의 묘 때에 다시 나타났었지?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그렇죠. 취직 활동이죠. 일거리가 없어서요. 미야상한테가서 뭐 일거리 없습니까 물어보니, 토토로의 오프닝을 하던지, 타카하타상 쪽의 뭐랄까 전함 그릴 사람이 없다는데, 그쪽을 하든지 어디할래? 그래서 미야상하고는 전에 (같이)해 봐서 타카하타상하고 일을 해보고 싶었죠.
스즈키: 그래.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전함에 일루미네이션(여기서 웃음 터짐)하고 불꽃.
안노: 네. 일루미네이션과 불꽃입니다. 실은 전함이 아니라 순양함(巡洋艦)입니다. 전함이 아니라.
스즈키: 그래서 그 다음엔가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있으니까 "라고 말하던데...
안노: 한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압니다.

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반딧불의 묘'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썼을까요' 라는 숙제를 받아 오자, "마감에 쫓겨서, 헥헥거리며 썼다.(締め切りに追われ、ヒィヒィ言いながら書いた)"라고 대답해 줬다고 TV방송에서 밝혔다는 일화가 유명하며, 이는 최승호 시인의 일화와 함께, 인터넷에서 문학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으로, 작가의 딸이 개인 블로그에서 아버지가 할 것 같은 말이지만(いかにも父が言いそうなことではありますが) 사실무근(全くの事実無根)이라고 직접 도시전설임을 인증했다.(출처) 이 가짜 일화는 일본어판 위키백과에도 2007년부터 2018년까지 구체적인 방송 이름과 방영 날짜 등의 정보 없이 사실인 것처럼 실려 있었으며, 처음에는 손녀딸이라고 쓰여 있었다가 중간에 딸로 슬쩍 내용이 바뀌었다. 이 일화는 위키백과에 실리기 전부터 2ch 등의 일본 사이트에서 도시전설처럼 회자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언급은 2003년의 2ch 영화작품·영화인 게시판의 어떤 스레드인데, 여기에는 숙제를 제출해서 틀렸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본에서 첫 개봉시 같은 제작사의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상영으로 공개되었는데[70]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상영하고 반딧불의 묘를 뒤에 상영해버리는 바람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이어서 나오는 반딧불의 묘 때문에 순식간에 관객들의 기분이 암울해져, 어이없게도 이웃집 토토로의 이미지가 꽤 안 좋아진 일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보다보면 은근히 토토로와 비슷한 구도의 컷이 나오며, 토토로와 대치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미지도 나오며(우산, 조력자)서사 구조도 대조적으로 채용하고 있었던 탓도 있다[71].

일본 대중 문화가 금지되었던 90년대초에 신촌 모처에서 애니메이션 동호회 주관으로 열린 상영회에서는 아키라와 함께 상연되었다.[72] 본편 상연 중 주인공인 애들이 죽는 장면에서 누군가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놈들이니까) "꼴 좋다!" 라고 외치자 괸객들 반은 웃고 반은 화를 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국에서는 대원방송을 통해서 더빙 방영을 했다. 세이타 역에는 김일이 맡았다. 그렇다, KBS판 세일러문에서 남주인공이라고 할 턱시도 가면을 맡은 그 성우다.. 세츠코는 김서영.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가끔씩 방영하는 편이며 성우 김일이 한국어로 읊는 "대일본제국이 졌다고요?"라는 대사는 충공깽. 덕분에 한번 방영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엔 부모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왜 이런 애니를 방영하냐며 항의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그래서 요샌 방영을 못한다고 봐야하나? 한국에서는 원작의 지명도가 낮다 보니 원작소설의 작가인 노사카가 우익이라는 출처불명의 루머가 돌고 있다.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인 아치 에너미의 곡중 The Day You Died는 이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작품 속에서 세츠코가 즐겨 먹던 캔 상자안에 든 사탕[73]은 '사쿠마식 드롭스'라는 상품으로, 1988년에는 작중 배경인 전시에 판매된 상품을 디자인과 내용물을 복각한 상품이 나오기도 하였다. 복각판은 아니지만, 2008년에는 실사 영화 공개 기념으로 세츠코가 캔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사탕을 찾는 모습이 그려진 제품이 발매되기도 했다.[74]

세이타와 세츠코가 풍금을 연주하면서 "호니하니 호이토 호호호하니"하는 대목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도레미파솔라시를 금지하고 대신 일본어로 '이로하니호헤토'[75] 로 바꾼 것이다. 영미를 악(귀축영미 鬼畜英美)으로 규정하고 영어 사용 금지, 서양 문화를 금지한 정책이었다.[76]
반딧불의 묘는 2005년 2시간 30분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요코가와 세이타 역: 이시다 호우시 요코가와 세츠코 역: 사사키 마오

8.1. 7,000엔의 행방은?

어머니가 저금해 둔 7,000엔이면 당시 가치로는 엄청난 거금이다. 1940년대 일본의 교사나 은행원 초임 월급도 100엔이 채 안 되던 상황,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200만 원이 좀 안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단순계산으로 1억 4천만 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이타는 그 큰돈을 어림잡아도 한 달 반밖에 안 되는 사이에 다 날리고 여동생 세츠코를 영양실조로 보내고 자신도 부랑아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만다. 세이타가 죽은 이유가 자기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러나 세이타가 7,000엔을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바람에 다 쓴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부에 세츠코가 영양실조로 쓰러진 후 세이타가 맛있는 것을 사다주겠다고 은행으로 가서 남은 저금 3천엔(위의 계산을 토대로 6000만원 정도)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고작 음식 조금 사온다고 이런 거금을 찾는 것이 의아할 텐데, 전쟁 전에야 거금이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졌던 것이다.

타카하타 감독도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리 돈이 있어도 물자 자체가 극심하게 부족한 상황이라 물건을 살 수 없었다. 특히 식량은 더해서, 원작에 따르면 계란 1개에 3엔, 기름 1되 100엔, 쇠고기 100돈(刄 약 375g) 20엔, 쌀 1말(18리터) 25엔 패전 직전에는 더 올라 1되(升 1.8리터) 40엔 , 이것도 암시장에서 겨우 살 수 있고, 쌀은 (화폐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상황인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해서, 국가에서도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극 중에서도 쌀을 시장에서 사지 못하고 어머니의 유품인 옷 몇 벌을 물물교환으로 쌀 1말(18리터)을 구한다.[77]

작중 세이타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 동생을 위해 계란죽을 끓여주려고 하는데 그 계란 하나가 구하기도 어렵고 비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 또 세츠코가 다시 먹고 싶어하던 '사쿠마식 드롭스'는 아무리 돈이 있고 구하려고 노력해도 물건 자체가 없어 살 수가 없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 설탕 공급이 중지되어 사탕 생산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업정비령(企業整備令)으로 인해 1945년에는 회사가 폐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9. 제작 스텝 리스트(애니메이션 영화)

  • 제작, 기획 - 사토 료이치
  • 음악 - 마미야 미치오
  •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콘도 요시후미
  • 레이아웃, 작화보좌 - 모모세 요시유키
  • 미술감독 - 야마모토 니조
  • 촬영감독 - 코야마 노부오
  • 음량감독, 음량연출 - 우라카미 야스오
  • 원화 - 오오타니 아츠코, 안노 히데아키, 카와치 히데오, 오쿠야마 레이코, 우메츠 야스오미, 오가와 히로시, 타나카 아츠코, 키가미 요시지
  • 동화 - 동화공방, 오! 프로덕션, 드래곤 프로덕션, 그룹 라이너스, 스튜디오 포켓 외
  • 배촬 - 히라타 슈이치, 히구치 노리코, 스도 에이코, 히시야마 토오루, 히라카와 에이지 외
  • 특수효과 - 카오루지 타니후미
  • 캐릭터 색채설계 - 야스다 미치요
  • 임상 - 스튜디오 키리, 스튜디오 딘, 타츠 프로덕션, IM 스튜디오, 토레스 스튜디오 M, 포비 기획, 스튜디오 OZ, 스튜디오 샤프트, 스튜디오 엔젤, 스튜디오 톰캣, 셀 아트 스튜디오 외
  • 촬영 - 럭키 모어
  • 편집 - 세야마 타케시
  • 음량효과 - 오히라 노리요시, 이토 미치히로
  • 제작비조 - 우에다 신이치로
  • 제작 데스크 - 오시키리 나오유키
  • 연출조수 - 스도 노리히코
  • 녹음제작 - 오디오 플래닝 U
  • 녹음 스튜디오 - APU 스튜디오
  • 현상 - 토쿄현상소
  •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 프로듀서 - 하라 토오루
  • 각본, 감독 - 타카하타 이사오

10. 여담

  • 타가하타 이사오 감독은 스태프진에게 이와사키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의 그림책 [ 戦火のなかの子どもたち]를 읽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어린이를 순간의 귀여움이 아니라, 내면을 지니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 게임 큐키요미를 자세히 보면 두 남매가 나오는데 그 남매가 바로 이 남매이다.
  • 명암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포스터 제목 뒤에 폭격중인 B-29이 있다.

[1] 1930년 출생, 2015년 12월 11일 타계.[2] 예전에는 반딧불과 반딧불이는 동의어로 썼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반딧불’을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과 ‘반딧불이’의 동의어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반딧불’은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 ‘반딧불이’의 동의어로 쓰였다.[3] 당시는 전시 배급 체제라 도나리구미에 속해서 방화활동 등을 하면 구청에서 나온 배급계에서 쌀이나 식량 물품을 암시장보다 훨씬 싼 값으로 살 수 있었다. 배급이라고 해서 공짜는 아니었고 배급표와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러니 친척어른 입장에서 보자면, 4살밖에 안 되는 세츠코는 그렇다치고 이미 중학교 3학년인데도 아무것도 안하는 세이타가 얄미울만도 하다. 다만, 애니와 다르게 원작에서는 세이타는 방화활동에 참여한다. 감독의 의도적인 생략.[4] 사실 영화나 애니에서 이런 류의 캐릭터는 대부분 소년소녀가장 속성을 지닌(즉,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이 바짝 든 애어른 캐릭터)인 반면에, 세이타는 그렇지 않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철없는 중학생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며 이런 묘사가 현실적인 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 역시 지속적으로 구박은 해도, 밥을 따로 먹는 상황에서도 세이타가 안치우고 그냥 둔 설거지를 궁시렁 대면서 하는 등 아예 나쁘게 대한다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입이 늘어난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계속 쪼아댄 것으로 봐야한다.[5] 세츠코를 목욕시키려고 옷을 벗기니 영양실조로 인해 온통 종기가 나 있고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해 돌멩이를 음식이라고 하면서 먹는 상황까지 간다.[6] 세이타는 여기서 처음에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기모노를 팔아서 보름 정도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이 다 떨어지자 입고 있던 교복 윗도리와 각반에, 신발까지 팔아치우고 마지막으로 남은 바지마저 팔려고 했지만 차마 팔 수 없었던지 계속 망설였고 그러는 사이 어느 새 산노미야 역 구내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7] 작품 맨 첫 부분에 산노미야 역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는 세이타의 모습이다.[8] TV 드라마판에서는 전쟁고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날에 죽었다는 설정이 추가되었다.[9] 친척 아줌마가 세이타 남매를 약간 박대하긴 했으나 남매가 그만큼 도움 안 되게 생활해서였고 (실재로도 쇠고기 등의 물자를 암시장에서 구해온 하숙인은 엄연히 남남인데도 친척 아줌마에게 취급이 좋았다. 이는 그가 그녀의 집에서 밥값은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는데 성공했기 때문) 그런 철부지적 생활을 유지하는데도 친척 아줌마가 적어도 굶기거나 쫓아내진 않았다. 그러니 남매 중 그래도 어느 정도 자란 세이타라도 눈치껏 일하는 시늉이나 친척 아줌마의 말을 잘 따르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최소한 그 집에서 지내기야 할 수는 있었을거다.[10] 저 아래 부랑아 문단의 각주에도 나와있긴 하지만, 웃기게도 세이타는 집 나오고, 세츠코도 잃은 후 자기 상황이 위급해지자 그리 소중히 여기던 어머니의 기모노를 비롯한 자기 물건들도 팔아치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돈들도 얼마 가지 못했다. 결국 입고 있던 옷과 신발까지 다 처분한 세이타는 남아있던 바지까지 팔까 망설이는 처지가 되어 헐벗은 옷차림을 하고 맨발로 다니며 역 구내에서 비참하게 살아간다. 사실상 친척집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부랑아 생활을 선택한 셈이다.[11] 참고로 친척집 말고도 도나리구미라는 차선책도 분명히 존재했고, 제법 잘 알고 지내던 농부 아저씨도 도나리구미에 들어갈 것을 추천하기까지 했지만 세이타는 대체 무슨 똥고집인지 그마저도 거절하고 부모의 재산으로만 버티려 했다. 아무리 세상물정 모르고 치기어린 때인 14세라고 해도 주변에서 친척집 가던가 도나리구미에라도 들어가라고 하는 조언까지 다 걷어차고 저러는 걸 보면 이뭐병이 아닐 수가 없다![12] 진즉에라도 고개를 숙이고 친척집에 들어갔거나, 늦게라도 도나리구미에 들어갔다면 적어도 자존심은 꺾여 상처를 받을지언정(...) 그래도 굶어죽지 않을 수라도 있었을거다. (도나리구미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작업들을 하면 그 대가로 배급을 지급해주기 때문에, 친척집에서 사는 것만은 못해도 당일치기식 식량이라도 꾸준히 제공받는게 가능했다) 그러나 세이타는 둘 다 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폭망. 친척집에 안 돌아갔다는 것에 대해선 친척 아줌마(숙모)를 못 믿어서라는 추측이 있긴 하나 도나리구미에 안 들어간 이유는 불명. 거기까진 생각이 안 닿았던걸지도...아니면 그 와중에도 일은 죽어도 하기 싫었거나[13] 웃긴 건 작품 중 어디를 살펴봐도 세이타가 부랑아가 된 이후로 구걸을 하여 먹을 걸 구했다는 내용은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진 물건을 다 팔아버리고 난 뒤 행인들이 동정심에 놓고 가는 음식과 역 구내에서 아무나 마실 수 있는 물로 배를 채울지언정 자신이 직접 구걸을 하여 먹을 걸 얻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돈 한푼 없는 처지가 되어도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다른 부랑아들이 하는 것처럼 구걸을 하여 살아남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가 끝내 누가 주고 간 주먹밥까지 스스로 먹질 못하고 역에서 굶어죽는 지경에 도달했으니, 결국 하잘것없는 자존심 지키려다가 동생 목숨은 물론 자기 목숨까지 잃은 셈.[14] 숙모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말해준 것.[15] 하지키는 우리나라 식으로 치자면 납작한 유리구슬같은 것이다. 흔히 납작구슬 혹은 납작유리구슬, 아니면 원예용 유리자갈이라 파는 그것.[16] 당시 세이타 나름의 오기와 자존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친척 아주머니가 세이타 남매를 안 찾는 걸 보면 이제 와서 돌아간다고 해도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아서 안 돌아가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17] 향년 4세니 아직 몸도 쉽게 약해질 수 있는 연령대였는데 무리하게 집을 나와서 제대로 된 보금자리도 식사도 없이 살았으므로(물론 잠시 돈을 탕진해서 식사를 즐기긴 했으니 당연히 한순간이었다. 이 연령대 아이들에겐 지속적이고 제대로 된 영양공급이 필요하다.) 얼마나 갈진 안 봐도 비디오였다. 게다가 아픈 상황이라고 쳐도 병원에 제대로 갈 상황도 못됐으므로...[18] 애니메이션 감독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기존의 어른 성우에게 어린이 배역을 맡기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가식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그렇다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쓰려고 하면 긴장해서 연기가 안 되는 점이다. 다행히 이 소녀는 휼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수십 번이나 반복하는 리테이크에 지쳐서 칭얼대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 지친 상태의 감정이 목소리 연기에 반영되어서 상승 효과가 나왔는지 모른다.[19] 눈과 코, 입 부분을 제외한 상반신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곳곳에 피가 스며나와 있었다.[20] 영화판에서도 (분명 붕대를 다 두르긴 했지만) 비위 약한 사람은 흠칫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걸 꽤 적나라하게 묘사해놨다.[21] 사실 세이타는 다음 날 인력거를 불러 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이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인력거 기사가 돈 받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버렸다.[22] 국가의 원수 등이 해군 함대를 검열하는 의식. 군함의 장비와 병사들의 사기(士氣) 등을 살핀다.[23] TV 드라마판에서는 이 장면을 집어넣었다.[24] 참고로 이 돈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남매들끼리 꽤나 음식을 사서 한동안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큰돈이였다. <반딧불의 묘>가 일본의 피해자 행세물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다.[25] 다만 그 비아냥이 나온 이유가 남매의 어머니가 입던 기모노를 판 이후에 나온 얘기인데, 기모노를 팔은 후, 쌀을 샀을 텐데도 세이타 남매한테 밥을 적게 준다는 이유로 다투다 나온 것. 누나와 하숙인은 싫은 소리도 안 하고 오히려 걱정해 주었고, 숙모 역시 짐짝 취급은 했을지언정 그 어려운 시기에 자기 집에서 살게 해줬는데, 밥을 적게 준다고 불평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얹혀 사는 입장인데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세이타가 철이 없어서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힜다는 얘기가 된다.[26] 다른 상황도 아니고, 무려 전시라는 위기상황에서 남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니 세이타가 최소한 집안일이라도 돕는 시늉이라도 좀 해야하고 동생이 철없이 굴거나 하면 자기가 타이르는 시늉이라도 해서 덜 밉보일 필요가 있는데, 그마저도 안 하고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사실 전쟁중에는 친척끼리도 인심이 각박해지기 쉽다는걸 생각해보면 세이타의 태도가 안일하긴 했다. 게다가 세이타는 현재 돌아갈 집도 없어진 상황이니 더더욱 숙모에게 잘 보여야했는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집안사정이 더 어려워지면 숙모가 쫓아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완전히 거꾸로 해버린 셈.[27] 물론, 아직 유아에게 그런 사실을 가르쳐준 것은 잔인하긴 하다.[28] 아이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자기의 아이라도 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그나마 친척이니 야단치는 걸로 끝났지, 남 같았으면 내쫓았을 것이다.[29] 극 중에서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들에만 치중하여 판단을 내리는 모습은 세이타가 아직 미성숙한 '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이들 곁에는 현명한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나쁜숙모' 같은 사람이 만연하니 세상을 사는 법을 아이들에게 조언하기 위해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는지도 모른다.[30] 양심의 가책이나 책임감 정도야 그간 맡아주지 않은 건 아니니 하고 퉁쳤을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31] 위에서는 거처라도 물어보고 가끔 들려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야 했다고 쉽게 말하지만, 당장 전쟁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언제 잃을지도 모르는 위협이 상존하고, 자기 가족이 삶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시기에 아이들에게 계속 신경쓰고 혹시 어려운 상황이면 적절하게 도와주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32] 사실 이 장면에서 숙모가 마냥 이유없이 차별한 아닌게 숙모네 집에 도움이 되는 하숙인의 경우[78] 숙모의 딸처럼 건더기를 많이 받았다. 남의 자식이라고 차별했다기보단 도움 안 되고 놀기만 하는걸 고집했던 세이타 남매의 태도가 고까워서 그랬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 숙모의 딸은 일단 포지션이 딸이어서 우위에 있긴 하나, 최소한 세이타처럼 팽팽 논다는 묘사까지는 없고(...)[33] 세츠코와 중복.[34] 밥을 따로 해먹는 세이타 남매를 보고, 자기 엄마가 심한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장면.[35] 근데 그녀는 일단 세이타 남매의 외숙모의 딸이며, 하숙인은 세이타 남매의 외숙모에게 먼저 도움이 될만한 일(암시장에서 물자를 구해다준 것)을 해서 호감을 샀던 반면 세이타 남매는 하숙인처럼 호감을 사려는 시도조차 안 하고 철부지처럼 구니 당연히 취급이 차이날 수밖에 없긴 했다.[36] 딸도 친척도 아닌 그에게 세이타 남매의 숙모가 밥과 건데기가 가득 든 국밥을 떠주는게 그 증거.[37] 사실 하숙인 쪽이 먼저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귀한 물자들을 제공했으니 세이타 남매의 숙모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 판단해서 잘 해줬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물자가 귀한 이런 상황에서 물자를 얻어올 능력이 있는 사람을 잘 붙드는건 매우 중요하므로.[38] 이 시점에서 행인은 세츠코의 손에 들린 감자에 전혀 관심을 들이지 않고 세츠코를 쳐다만 본다. 세이타가 지레 의심하고 도망갈 때도 뭐라 하지도 않고 감자를 탐내지도 않으며 둘을 바라보기만 한다.[79] 그를 향한 세이타의 의심이 빗나갔다는걸 알 수 있다.[39] 겨우 한 대의 사탕수수만 뽑았다.[40] 세이타와 실갱이를 하던 도중 여태 서리하던 녀석이 너지? 하고 추궁하는데, 이를 볼 때 먹을 것이 부족하고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구 뛰는 괴랄한 시장 상황 때문에 서리를 하는 사람들이 그 동네에도 있었던 걸로 보인다.[41] 산노미야 역 구내에는 세이타 말고도 수십명의 갈 곳 없는 부랑아들이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42] 그만큼 부랑아들이 산노미야 역에서 매일 많이 죽어나가는 상황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역 구내 기둥마다 수십명의 부랑아들이 자리잡았으며, 대부분이 세이타처럼 굶주림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43] 세이타가 부랑아 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니는 시기가 8월에서 9월 사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해당 기간 동안 세이타는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똑같은 옷을 한달 내내 입고 다녔다. 역에서 생활할 때 세이타의 얼굴은 볕에 타고 때가 묻어 한달은 씻지 않은 모양새였으며 입고 있던 옷은 온통 이로 들끓고 있었다. 게다가 한여름 무더위 속에 씻지 못했으니 온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44] 부랑아들이 거리를 떠돌다가 기차역에 올 정도면 이미 가진 돈은 물론이고 물건, 심지어 옷도 다 팔아버린 뒤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더 이상 먹을 걸 구할 방법이 없으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기차역에 오게 되는 것이다. 이미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가진 물건조차 다 팔아버린 부랑아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맨발에 누더기옷을 걸친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45] 대부분의 부랑아들은 돈이 다 떨어지고 난 뒤에는 산노미야 역 구내에 눌러앉았으며, 세이타도 마찬가지로 역에 한번 들어오면 기둥에 기대어 자리잡고 아예 뿌리를 내렸다. 이미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 역 구내에 하루종일 죽치고 있는것도 모자라서 하루에도 몇명씩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니 시체를 수습해야 하는 역무원들이 좋아할 리 없다.[46]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가는 아이들을 보고 오히려 이제 죽을 때가 됐다는 말이나 하는 비정한 모습은 전쟁으로 인해 각박해진 인심을 보여준다.[47] 드라마판은 약간의 각색이 이루어졌는데, 친척 아주머니의 딸과 세이타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이며, 세이타가 세츠코와 집을 뛰쳐나간 뒤에도 찾으려고 해서 산노미야 역까지 온다.[48] 부랑아들이 도둑질을 하여 연명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49] 역무원들이 와서 더럽고 지저분하다며 미군들이 보기에 부끄럽다고 빗자루로 쳐서 쫓아낸다. 사실 이 소년을 포함한 부랑아들의 모습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닌데, 하나같이 맨발로 다니며 헐벗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이타도 예외가 아니라 수 차례 역무원들에게 내쫓겼다고 작 중에서 언급된다.[50] 자세히 보면 계속 엎드려서 구걸을 하고 있는데 가진 물건과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수 있다. 돈도 다 떨어지고 가진 물건조차 없으니 별 수 없이 거지가 되어 역 구내에서 구걸을 하는 것이다.[51] 세이타를 포함한 부랑아 대부분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다. 세이타의 경우 돈이 다 떨어지고 난 뒤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일어날 때 다리에 힘이 빠져 기둥에 기대어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부랑아들도 마찬가지라 산노마야 역에 부랑아들이 모인 이유가 비록 배는 고프더라도 물은 얼마든지 마실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온다.[52] 나중에 역무원들이 죽은 세이타의 유품을 살펴보다가 세이타의 일중 모자를 보고 놀라는 묘사가 있다. 일중에 다니는 소년이 부랑아가 되어 굶어죽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세이타가 얼마나 멍청한 선택을 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53] 사실 세이타가 자존심을 버리고 친척집에 돌아가면 다 해결됐을 문제이다. 웃긴 건 정작 부랑아가 된 뒤에는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을 다 팔아치우고, 거지꼴을 한 채 산노미야 역 구내에서 생활한다. 자신이 돈이 다 떨어지자 숙모가 팔자고 했을 때 안 팔려고 했던 어머니의 기모노는 물론이고 입고 있던 교복에 신발까지 팔아치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봤을때, 애초에 친척 아주머니를 안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54] 노사카 아키유키의 데뷔작인 '에로 선생님들' (이 소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인류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은 포르노 감독을 주인공으로 욕망에 충실한 전후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요컨데 냉소주의와 풍자, 골계미적 성격이 강했던 작가.[55] 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 및 이혼으로 인해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다.[원문] 「あの時代、未亡人のいうことぐらい特に冷酷でもなんでもなかった。清太はそれを我慢しない。壕に移り住むことを決断して清太はいいます。『ここやったら誰もけえへんし、節子とふたりだけで好きに出来るよ。』そして無心に”純粋の家庭”を築こうとする。そんなことが可能か、可能でないから清太は節子を死なせてしまう」/『アニメージュ』1988年5月号の高畑監督インタビューより[57] 웃긴 건 나중에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고 난 뒤 어머니의 기모노는 물론이고 자신의 옷과 신발까지 다 암시장에서 팔아치운다는 것이다. 막상 본인이 굶주리는 상황이 오자 암시장에서 다 팔아버리고 결국 그마저도 다 떨어지자 맨발에 누더기차림으로 산노미야 역 기둥 한 구석에 자리잡는다. 게다가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정심에 던져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물로 배를 채워가며 연명한다. 물론 이것도 임시방편이라 세이타는 굶어죽고 만다. 이미 옷과 신발까지 다 팔아치웠는데, 돈은 다 떨어졌고 더 이상 팔 것도 안 남았으니.[58] 작품 자체가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를 중심으로 그 주변인물들과의 관계와 갈등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당시의 일본사회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되기때문에 약간 불편한 장면도 없진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주요화자는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다. 그리고 이들이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어느 인간사회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59] 단적으로 작품 초반부에 나오는 산노미야 역 구내에 있던 다른 부랑아들은 세이타처럼 스스로 친척집에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의지할 곳 없는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세이타처럼 받아줄 친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부랑아 생활을 하는 경우와는 다르다.[60] 잘 알겠지만 세이타가 성숙해서 칭얼대는 여동생을 달래고 방화조에 들어가던 하다못해 친척 아주머니 집안일이라도 돕는 것으로 밥값을 하려고 노력했다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은 될 수 있었다.[61] 세이타가 판단력이 미숙하다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나는데, 여동생마저 굶어 죽은 상황이라면 친척집에 돌아가는게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부랑아 생활을 하며 암시장에서 가진 물건을 다 팔아치운다. 입고 있던 옷에 신발까지 팔아버리고 난 뒤에도 친척집에 돌아가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산노미야 역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세이타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만들어낸 모습이다.[62] 애초에 어린 아이인데다 폭격에 의한 공포로 인해 생긴 행동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 소리도 시끄러운 데다 전시에는 공간을 차지하기만 하고 쓸데가 없는 가구인 피아노를 얘 때문에 팔지도 못하니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기는 하다.[63] 하다못해 공부라도 하라는 숙모의 말에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는데, 친척 형, 누나들은 공부하러 나갔다(더구나 세이타는 중학교 3학년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보다 학업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것). 거기다가 숙모가 알아서 해먹으라고 쌀을 줬을 때도, 먹고 나서 뒷처리도 안했다. 숙모 입장에서 이 남매는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밥벌레나 다름없는데 내쫓기는 커녕 구박하면서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줬다.[64] 사실 주인공 남매가 상징하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였다 하더라도, 남매들을 동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감성적 연출이 비판론 측에서 삼는 문제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비판적 의견을 대변하는 데 평론이 인용되었던 정성일 평론가도 이 해석은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갔다.[65] 일단 어린 소년소녀 남매가 주인공이니 관객들은 일단 이들의 입장과 관점에 서서 작품을 감상하며 자연히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으니, 연민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긴 하다.[66] 전쟁은 당시 지도자들의 책임이며 자신들은 그에 쓸려갈 뿐이었다는 논리[67] 물론 스폰서 때문에 감독 의향과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는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회사로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는 작품에 대해서 거의 간섭을 안 하는 걸로 유명하다. 즉 이 작품은 타카하타 이사오 개인의 메세지가 온전히 담겼다는 것이다.[68] 그 외에는 〈火照る〉〈星垂る〉〈火太郎〉 등이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69] 안노가 나중에 감독한 톱을 노려라!의 주인공의 이름을 제공한 인물이다.[70] 그런 이유로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하게 되면 반딧불의 묘는 절대로 일본 피해자설을 주장하는 작품으로 해설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83~85쪽 참조[71]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토토로 항목에서 6.2. 반딧불의 묘와의 관계를 참조할 것[72] 가정용 타이틀의 단체 상연은 따지자면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인식도 없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참고로 두 작품 모두 반전 코드를 담고는 있지만 분위기가 워낙 달라서 보던 사람의 기분이 이상해었졌다.[73]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세이타가 세츠코에게 입벌려보라고 하면서 사탕을 먹인 것으로, 실사영화 판에서는 친척 여자아이들이 캔 안의 사탕을 늘어놓으며 세츠코에게 사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아니메 판의 경우에는 세츠코가 좋아하고 드롭스를 다시 먹고 싶어한다.[74] 약간의 혼란이 있는거 같은데, 이 두 제품은 동일한 디자인이다. 한쪽 면은 원래의 디자인을 복각한 형태고, 다른 면은 그 디자인 위에 세츠코의 모습을 겹쳐서 프린트한 제품이다. 그와는 별개로 동일한 깡통에 조금 밝은 디자인을 넣은 현행 제품도 존재한다.[75] 한국어로는 가나다라마바사. '가장조', '사단조'할때 '가~'가 이거다. '도레미파...' 순서대로는 '다라마바사가나(하니호헤토이로)'.[76] 당시 일제 치하인 국내에서 나온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일본식인 '이로하니호헤토'로 계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도레미파.. 는 영어가 아니고 이탈리아어이고, 이탈리아는 일본 제국과 동맹이었던 나치 독일과 함께 자기 쪽 편이었는데? 이유는 서양 문화 규제 및 금지 정책 때문.[77] 비슷한 시기를 다룬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서도 주인공 스즈가 암시장에서 배급보다 50배나 비싼 가격으로 설탕을 구입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78] 그는 암시장 쪽으로 손길이 좀 닿은 사람이어서 거기서 이런저런 생필품들을 구해다줄 수 있는 수준의 능력자였다. 물자부족과 인플레이션이 횡횡한 전시엔 꼭 필요한 사람.[79] 전시라 쳐도 코흘리개 애들의 감자까지 훔칠 정도로 사정이 급했다면 뒤에 나오는 밭 주인처럼 가차없이 빼앗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