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5 23:40:46

야스쿠니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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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평화에 대한 죄
A급 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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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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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지정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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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기소 피의자, 재판 전 사망자 포함.
[2] 개별 사건의 중복 피고인까지 합계되었으며, 이 밖에 추축국 피점령지 내 부역자, 기소유예자가 포함된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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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靖國神社, ruby=やすくにじんじゃ, color=#FFF)]
야스쿠니 신사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51863_STD.jpg
소재지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구단키타 3-1-1
제신 2,466,532위
사격 구 별격관폐사, 칙폐사
건립 1869년 6월 12일
제례일 4월 22일(춘계)
10월 18일(추계)
주요행사 미타마 마츠리(7월 13일 ~ 16일)
야스쿠니신사 홈페이지(일본어, 영어)
각국이름
한국어 야스쿠니 신사 / 조슈신사
일본어 靖國神社 / 長州神社
영어 Yasukuni Shrine / War shrine

1. 개요2. 상세3. 역사4. 제신
4.1. 합사된 전범
5. 조직
5.1. 내부조직
6. 논란7. 방문 관련8. 기타9. 사건사고

1. 개요

도쿄 치요다구에 위치한 일본신사(神社)이자, 일본 우익들에겐 일본 제국주의와 국가신토를 상징하는 성지.[1] 신사본청과 함께 주변국들이 일본일본 신토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다. 신토의 신사에는 사당에 토속신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시는데, 여러 혼들을 함께 모실 때는 '합사(合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2019년에 '150주년'을 맞았다.

2. 상세

현재(?) 야스쿠니 신사는 영새부에 2,466,532명의 이름을 적어 합사, 봉안하고 있다. 시신이나 유골이 안장된 곳도 아니고,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도 아니고, (그들 기준의) 신들의 명단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문제는 이러한 합사자들 중에는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쟁 범죄자와 식민 제국주의 침략자가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에 의한 강제 징용자 등 합사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인 위키러 누군가의 조상이 일제에 징병되어 전사했는데, 오늘날 일본 극우 세력들이 당신 조상을 '대일본제국을 위해 목숨바쳐 희생한 우국지사'(...)로 기리면서, 끌려간 사람들조차 '전시 일본의 정당한 전시동원'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유족들은 계속해서 이러한 극단적 종교행위에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있으나 묵살당해 왔다.[2] 게다가 극동국제군사재판의 판결로 처형된 전범들은 전사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2차대전동아시아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상대로 침략 전쟁을 벌인 전범들까지 신으로 추모하고 있으며, 전범의 명부 축출 주장을 꾸준히 묵살하거나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각료가 참배하는 등 지금까지도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들의 반발을 일으키는 촉매제로 기능하고 있다.

일본 과거사 반성 문제의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논쟁의 주요 레퍼토리는 "일본은 사과를 했다!" vs "사과해놓고 뒤로는 일제 침략자들을 호국영령으로 기리는 곳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vs "자국 시설에서 평화를 빌고 전몰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일 뿐 전쟁을 미화할 의도는 없다" vs "전범 모셔놓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한번 혼령이 합쳐지면 못뺀다잖아 넌 그걸 믿냐 다른데서 추모해 식의 무한반복.[3] 일본은 한일, 중일 외교관계가 순항하거나 과거사에 긍정하는 태도를 취할 때에는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를 자중하고, 반대로 강경 모드에 돌입하거나 과거사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할 때에는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를 종교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방치하는 식인데, 과거부터 이곳에 일본 고위 관료가 참배할 때마다 대일정서는 급격히 냉각되어 왔다.

사실 미국과 전쟁한 전범자들을 대놓고 추모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미일 관계를 외교의 최우선으로 두는 현 일본 정부가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건 어찌보면 놀라운 일. 게다가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또다른 추모시설이자 실제 대체 공간으로 거론되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사설 종교 법인에 불과한 야스쿠니 신사가 유지되고 심지어 숭상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과 중국 등 일본의 전쟁범죄 피해국들에겐 대놓고 어그로다. 참고로 과거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미국 대통령들은 방일시 야스쿠니는 쌩까고 치도리가후치를 참배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 몇차례 주의를 줬는데도 저러는거 보면 참 이해가 안될 일. 정치의 종교화?

한편 일본 지역 갈등의 쟁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 국내외를 통틀어 태평양 전쟁과 연관되어 언급되는 일이 잦아서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근본적으로 무진전쟁의 결과 태어났다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사족으로 그런 연유에서 태평양 전쟁 = 야스쿠니가 아니기 때문에 천황이 8월 15일에 야스쿠니 참배를 하라는 요구에는 근본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무진전쟁에서 관군과 싸우다 무너진 친막부측 진영은 역적이 되어 야스쿠니에 합사되지 못했다. 그에 해당하는 지역의 입장에서 보자면 껄끄러운 문제이기 때문에 합사를 시켜야한다는 시도도 적지 않았으나 좌절된 상태이다.

3. 역사

1867년 말 대정봉환이 일어나 에도 막부가 끝나고 메이지 유신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덴노가 이끄는 조정은 천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실제 국정에는 손을 놓았기 때문에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결여되었으므로, 거의 대부분 막부 시절의 인사와 조직이 실무행정을 맡았다. 또한 막부는 형식상으로는 대권을 덴노에게 반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교권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실제적인 권력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막부 세력과 반(反)막부 세력의 갈등이 점점 커졌다.

결국 1868년 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년 5개월에 걸쳐 무진전쟁이 일어난다. 이 때 메이지 덴노는 반막부 세력을 지지하였다. 결국 막부군이 패배하고 사쓰마 번 등 반막부 세력이 승리하여 새로이 조정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아직 무진전쟁 중이던 1868년 동정대총독(東征大総督) 아리스가와노미야 다루히토 친왕(有栖川宮熾仁親王)[4]은 에도 성을 접수하고 (음)4월에 자군 전사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

그해 (음)5월에는 교토의 태정관 명의로 포고령이 내렸는데, 1853년(흑선내항) 이래 순난자(殉難者)의 영혼을 제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포고령은 야스쿠니 신사 창건에도 영향을 끼쳤다.[5] 이 해에 메이지 정부는 신불분리령을 내려, 기존의 일본종교계에서 불교신토가 습합된 것을 강제로 나누도록 하였다. 이 시기에 일본 전역에서 많은 불상과 법구, 사찰이 파괴되었으며 승려들이 강제환속하였다.[6] 국가신토를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무진전쟁이 끝난 1869년 (음)6월 12일, 메이지 덴노는 나라를 위해 싸운(친덴노적인) 전사자들을 위해 (오늘날의 야스쿠니 신사 자리에) 쇼콘사(招魂社)를 세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달 29일에 야스쿠니 신사 자리에서 군무관지사(軍務官知事) 코마츠노미야 아키히토 친왕(小松宮彰仁親王)[7]이 제관이 되어 무진전쟁에서 사망한 정부군 사망자 3,588위를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 창건 당시에는 도쿄 쇼콘사(東京招魂社)라 이름하였다. 즉 혼을 불러[8] 진정케 하는 절이다. 사실 쇼콘(招魂), 즉 초혼(招魂)이란 단어는 음양도 계통에서나 사용할 뿐, 다른 곳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굳이 쇼콘이란 단어를 사용한 데에서 기존의 일본 종교시설과는 뭔가 다르게 하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일본 전통에서 일단 전쟁에서 승리하여 위령제를 지낼 경우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으나[9] 쇼콘사는 명백히 막부측 전사자를 배제하였다.

1870년, 메이지 덴노는 대교선포(大教宣布) 칙령을 내린다. 이는 국가신토를 일본의 사실상 국교로 삼겠다는 의사표명이었다.

1871년, 도쿄 쇼콘사가 황실의 문장국화 문양을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1879년(메이지 12년) 6월, 국가신토의 상징답게 신사로 개편하면서 이름도 야스쿠니(靖國), 즉 나라를 평화롭게 한다는 뜻으로 바꾸었다. 신불분리령, 대교선포 칙령도 내렸는데 불교스러운 이름을 사용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확실히 신사(神社)스러운 이름으로 바꾸었다. 야스쿠니(靖国)는 춘추좌씨전에서 유래한 단어로,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뜻의 야스쿠니(安国)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安国이 사찰 이름로 자주 쓰이는 등 불교적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좌씨전에서 나온 야스쿠니(靖国)란 말을 사용한 것이다.

1887년, 신사의 관할주체가 육해군성으로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육해군성 뿐만이 아니라 내무성까지 3자가 공동으로 관할하였다.

패전 이전까지 일본의 신사는 관폐대사(官幣大社), 국폐대사(国幣大社), 관폐중사(官幣中社), 국폐중사(国幣中社), 관폐소사(官幣小社), 국폐소사(国幣小社) 순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다.[10] 여기서 관폐사와 국폐사가 나뉘는데 천황가에서 유지비를 대고 신에게 폐백을 바치는 곳이 관폐사, 일본 정부 차원에서 유지비를 대고 폐백을 바치는 곳이 국폐사였다. 당연히 격은 관폐대사가 가장 높고 국폐소사가 가장 낮았다.[11] 드물게 이런 체계에 잘 맞추기 힘든 신사가 있었는데, 그런 곳을 별격관폐사(別格官幣社)로 나누어 관리하고 관폐소사에 준하여 대우했다. 야스쿠니 신사도 이러한 별격관폐사였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 1년이 지난 1946년 2월, 종교법인령이 공표되어 국가신토가 제도적으로 사라졌다. 그해 9월에 야스쿠니 신사는 민간종교법인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신사본청(神社本庁)의 관할을 받지 않는 특수한 신사로 남았다.[12] 1947년에 평화헌법이 공표되면서, 헌법의 종교자유 조항에 따라 일반 신사들은 압류된 재산 등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하여 지방의 호국신사들은 제외되었다.

GHQ가 해산되고 일본이 다시 독립국이 된 1952년 10월에 쇼와 덴노 부부가 패전 이후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다. 일본 유족회는 패전 이전 야스쿠니 신사가 별격관폐사였을 때처럼 정부에게 예산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였다.[13] 또한 일본 유족회는 오모토에서 갈라진 신흥종교 생장의 집(生長の家), 신사본청 등 관련 종교단체는 물론 우익단체까지 끌어모아 야스쿠니 국영화를 도모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GHQ 시절에 철거된 충혼비 등을 복구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스쿠니 신사와 자위대가 서로 노골적으로 결탁하는 등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1967년 일본 자민당에선 야스쿠니 신사의 종교성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유는 헌법이다.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의 원칙 때문에 종교단체 야스쿠니를 국영화할 수 없다면, 종교단체가 아니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나 신사본청이나 유족회가 극렬하게 반대하여 이 또한 무산되었다.

자민당은 방책을 조금 바꾸어 1968년부터 1973년까지 5번에 걸쳐 야스쿠니 신사를 특수법인화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는 평화헌법에서 정교분리를 규정하기 때문에 민간종교단체 야스쿠니 신사를 국영화할 수 없다면, 특수법인으로 만들어 국영화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반대세력[14], 종교계에 의해 뜻을 접어야 했다.

4. 제신

제신 내역
전쟁명, 사변이름 위수[15] 내용
보신 전쟁, 메이지유신 7751위 메이지 덴노가 유신을 단행하면서 신정부군 편에서 싸우다 죽은 군인(창의대, 신선조 포함됨) [A]
세이난 전쟁 6971위 정부군만 포함[B]
타이완 침략전쟁(정대의 역) 1130위
운요호 사건 2위
임오군란 14위
갑신정변 6위
청일전쟁 1만 3619위
의화단 운동 1256위 유슈관에는 북청사변이라고 하였다.
러일전쟁 8만 8429위
제1차 세계대전 4850위
청산리 전투 11위
제남 사변 185위
우서 사변
나카무라 대위 사변 19위
만주사변 1만 7176위
중일전쟁 19만 1250위
대동아전쟁 213만 3915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사한 군인이 포함된다.
246만 6584위

4.1. 합사된 전범

파일:external/310b16191c85002e5a626a705a621ac3f1615a0f92ea6011bb2bc1d3a5596726.jpg
자세한 것은 전범 항목을 참조할 것. 아래는 A급 전범만 나열.[18] 도쿄 전범 재판에 따르면 국제조약을 위반하여 침략전쟁을 기획, 시작, 수행한 사람들(평화에 대한 죄)이다. 스가모 형무소에서 수감되었으며 8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표시는 순국7사묘와 중복 합사된 전범이다.
  1. 도조 히데키⚠️(1884.12.30.~1948.12.23.) : 일본 제40대 총리이자 결정적으로 진주만을 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주범.
  2. 이타가키 세이시로⚠️(1885.1.21.~1948.12.23.) : 만주사변을 기획하였으며 일제의 중국 침략에 관여하였다.
  3. 도이하라 겐지⚠️(1883.8.8.~1948.12.23.) : 관동군 사령관(1938~1940). 중국의 화북분리공작에 관여하였으며 포로 및 피억류자들에 대하여 야만적으로 대우하였다.
  4. 마쓰이 이와네⚠️(1878.7.27.~1948.12.30.) : 1937년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당시 난징대학살을 자행했다고 하는데, 이쪽은 억울할 수도 있다. 왜냐면 그 당시에는 폐결핵으로 누워 지냈으며, 오히려 난징대학살 당시 충격받고 자기 부하들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5. 기무라 헤이타로⚠️(1888.9.28.~1948.12.30.) : 왜 야스쿠니 신사가 그토록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는 항목. 그나마 다른 전범들은 그래도 제노사이드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지만, 이 자는 제노사이드를 직접 주도했다. 관동군 참모장(1940~1941), 육군대신(1941~1943), 육군최고고문(1943), 버마 파견군 사령관(1944~1945). 그냥 사람이 아니다.이 놈이 저지른 학살은 난징대학살, 싱가포르 학살, 바탄의 행진, 산다칸 행진, 마닐라 대학살을 다 더해도 모자를 지경. 오죽하면 같은 A급 전범들한테도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참고로 이 자의 별칭이 '버마의 도살자'다.
  6. 무토 아키라⚠️(1892.12.15.~1948.12.30.) : 중국파견군 참모장(1937), 육군성 국무국장(1939~1942), 수마트라의 일본군 사단장(1942~1943), 필리핀 방면군 참모장(1944~1945). 광범위한 지역의 침략과 난징대학살을 포함한 중국의 일련 사건들까지 폭 넒은 책임을 물었다. 다만 침략전쟁에 앞장선 죄는 있으나 마쓰이 이와네와 마찬가지로 학살 혐의와는 관련이 없다.
  7. 우메즈 요시지로(1882.1.4.~1949.1.8.) : 관동군 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등을 지냈고, 전후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의 미주리호 선상에서 시게미츠 마모루와 함께 항복 문서에 서명한 인물이다.
  8. 마츠오카 요스케(1880.3.3.~1946.6.26.) : 일본 제국의 전 외무대신(1940~1941). 국제연맹의 탈퇴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1937년 남만주철도 총재,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와의 삼국동맹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1941년 소련-일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였지만 대 소련 개전을 주장하였다. 대미정책에서도 강경론을 주장하였으며 도쿄 전범 재판 진행 중 병사하였다.
  9. 히라누마 기이치로(1867.9.28.~1952.8.22.) : 추밀원 의장(1936, 1945), 수상(1938.1~8), 내무대신(1940.12.~1941.7.)을 지내며 히로히토의 고문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가신토를 장려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국가주의 우익 단체 국본사를 조직하였다. 복역 중 1952년 초 석방되었으나 그 해 병사하였다.
  10. 나가노 오사미(1880.6.15. ~ 1947.1.5.) : 일본제국 38대 해군대신 당시에 진주만 공습을 승인한 사람으로 체포는 되었지만 스가모 형무소에서 판결전에 폐렴으로 인한 폐결절으로 사망했다.
  11. 도고 시게노리(1882 ~ 1950) :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 참고로 이 인물은 전쟁을 반대했다는 점, 아내가 유대인이라는 점, 그리고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의 후손이라는 점 등 때문에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되레 명단에서 빼라고(...) 요구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5. 조직

야스쿠니 신사는 시립신사로 신사본청과 포괄적인 관계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수호신사며, 언젠간은 국가에 반환될 것이며, 특정한 종교법인의 포괄적인 관리 하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는 야스쿠니 신사-신사본청 쌍방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한다.

5.1. 내부조직

야스쿠니 신사에는 2005년 1월 기준으로 총 108명이 재직하고 있으며, 조직에는 부서도 있다.
  • 제무부
    • 제의과
    • 조사과
  • 총무부
    • 총무과
    • 인사과
    • 관리과
    • 광보과(흥보과)
  • 선덕부
    • 숭경봉찬과
    • 선덕과
  • 경리부
    • 경리과
    • 사업과
  • 유슈칸부
    • 사료과
    • 전시과
    • 문고실
  • 사무실습생

6.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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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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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방문 관련

파일:yasukuni1.jpg
땅값 쩌는 도쿄 중에서도 비싸디 비싼 치요다구에 떡하니 위치하고 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야스쿠니 신사의 원래 목적을 보면 왜 거기 있는지 이해가 간다. 황거(고쿄)[19]도 코앞이고. 야스쿠니 신사 건너편에는 일본무도관이 있다. 또한 근처에는 꽤 유명한 가톨릭계 명문 여학교인 도쿄 시라유리(白百合) 여학원이 있으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본부와도 꽤 가깝다.

교통편으로는 쿠단시타역이 가장 편리하고, 이다바시역, 이치가야역에서 가까운 편이다. 사실 JR그룹노선 역에서 걸어가기엔 꽤나 멀어서[20], 쿠단시타역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쿠단시타역에서 나와서 입구로 들어가면 길 가는 동안에 정말 커다란 토리이 몇 개가 서있다. 길 가운데에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인 쇼콘사의 제안자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을 지나면 횡단할 수 있는 작은 길이 있는데 가끔씩 그곳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극우 트럭들이 줄줄히 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물론 극우라고 해서 개개인의 관광객에게 일일히 간섭하거나 터치하진 않는다. 작은 길을 건너면 본전 앞으로 갈 수 있는 토리이가 있다.

본전에서 오른쪽 방면으로 가면 유슈칸(遊就館)이라는 전시관이 존재한다. 위 사진에서 본전이 있는 토리이 안쪽을 관람하는 게 꺼림칙하다면 유슈칸만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되도록이면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하는데, 일본 근현대 전쟁 역사에서 실제 쓰였던 전쟁 물품이나 방대한 기록서적이 남겨져 있어 일본의 전쟁미화와 군국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꽤 일으킬 수 있다. 카드 결제가 가능하며, 입장료는 1,000엔이다. 전시실 내부가 꽤나 방대하므로 분단위로 코스가 나뉘어져 있는데 슥 둘러만 봐도 최소 30분이며 꼼꼼하게 둘러본다면 최대 3시간 정도 관람시간이 소요된다. 다큐 영화까지 본다면 한나절은 걸린다.

위의 사진에도 잘 보면 참배하는 곳 바로 옆에 일본 경찰이 지키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신사를 노린 일련의 범죄 행위를 막는 것이 목적이긴 하나, 실상은 참배하는 참배객들이나 관광객들의 야스쿠니 반달 행위를 제지하는 게 주 업무인 듯 하다. 보통 신사 안쪽을 정면으로 사진 찍거나 도리이 안쪽에서 물 마시고 취식하는 행위를 제지하고 있다. 특히 신사 주위에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데 2인조 경찰이 항시 돌고 있다. 일부 시간대를 제외하면 워낙 인적도 드물고 핵심 시설 주변이라 그런지 꽤나 보안에 신경쓰는 듯한 인상을 받으니 참고하는게 좋다.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하다가는 괜히 불심검문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노린 방화나 폭발 테러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이 근방 지역을 여행할 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날고 기는 극우 세력들이 종종 결집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인데다가 본 신사를 참배하는 극우 일본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봉변 당할 위험성도 커졌다. 특히 이 근처를 지나는 한국,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에게 별 이유없이 달려들어 시비를 거는 일도 종종 생겨 관광시에도 웬만하면 이곳엔 접근하는 것을 삼가는 게 좋다. 외교부에서도 "일본 지역에 거주하시는 우리 국민들, 일본 지역을 방문할 예정인 우리 국민들께서는 야스쿠니 신사 및 일본 우익들의 시위 현장에의 접근 자제, 불필요한 대응 자제 등 신변 안전에 최대한 유의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라는 문구로 해당 신사에 접근하는 걸 자제토록 권고하고 있다.

8. 기타

일본 극우하면 생각나는 검은 트럭에 '천황 폐하 만세' 문구를 새기고 욱일기를 꼽고 달리는 사람들이 입구에 많이 죽치고 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극우들이 중요시하는 그 천황은 쇼와 덴노조차도 해당 신사에 전범 위패가 안치되는 순간부터 방문을 거부했고 그 이후 아키히토 상황도 퇴위할 때까지 절대로 가지 않았으며 나루히토 덴노도 그러한 의지를 받아서 참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파일:external/thumb.mt.co.kr/2010120909594480449_1.jpg
2010년 12월 카미카제(神風)라는 이름의 유물 특별 전시회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 내 유물 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 1층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갑옷과 투구를 전시했다. 조선시대 갑옷에는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고 투구에는 군최고통수권자인 '元帥(원수)'라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고려시대 갑옷에는 용, 기린 등이 새겨져 있어 왕의 갑옷으로 추정된다[21]. 이들 옆에 敵國降伏(적국항복)'이라는 글을 내걸고 있다.
  • 日 야스쿠니 신사, 조선시대 갑옷. 투구 소장 확인#
  • 고려 갑옷·투구도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
바다이야기, 장미아파트 공경비의 작가 박병규가 야스쿠니 신사 방명록에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내용의 그림을 남기고 온 적이 있다.#[22]

일본에는 '다 같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의 모임'이라는 명랑한 이름의 초정당 단체도 있다(...)#

또한 서브컬쳐 관련해서는 소니애니이것과 관련된 요소를 넣어서 국내 방영사인 애니플러스가 방영중지를 하는 등 논란이 꽤 있었다.

위구르 족의 대모로 불리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바가 있던 독립 운동가 레비야 카디르 여사가 2012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1980년대에 달라이 라마도 이곳을 참배한 전적이 있는 걸 보면, 단지 전몰자들이 모셔져 있다는 것 때문에 이곳의 진상을 모르고 참배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식으로 참배했을 가능성도 있다.

2010년대 저스틴 비버도 이곳을 참배하고 SNS에 올렸다 욕을 먹기도 했다.(...) 비버도 이곳이 극우들의 성지인 걸 모르고 평범한 신사로 생각해 참배한 것이지만, 그동안 어그로 끈 점도 있고 이래저래 안티들에겐 먹잇감.(...)

포켓몬 GO가 일본에 출시 되면서 중국인 트레이너가 이곳과 일본 국회의사당을 2200-2400대 망나뇽으로 점령했다가, 한국인 플레이어가 ABEISASSHOLE이란 이름의 망나뇽으로 탈환한 바 있다.

9. 사건사고



[1] 일부에선 야스쿠니 신사의 '신사'를 '紳士(Gentleman)'로 오해하기도 한다. 2013년 SBS 8시 뉴스의 야스쿠니 신사 관련 보도에서 취재 도중 인터뷰에서 실제로 나온 발언이다. 참고.[2] 제위 축출 문제에 대해서 야스쿠니 신사 측에서는 "영새부에 이름을 적으면 그 혼령이 여타의 혼령과 합쳐져서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므로, 한번 봉안된 이름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 특이한 방법으로라도 좀 빼[3] 사실 이건 일본 보수 세력 내에서도 의견이 갈려서, 요미우리 신문 회장 겸 주필을 지낸 와타나베 츠네오 등은 일본 정계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대놓고 디스하기도 했다.[4] 이 사람은 걸판의 성지 오아라이 이소사키 신사 도리이에 있는 현판을 쓰기도 했다.[5] 이 포고령에 의하여 교토의 히가시야마 산(東山)에 순난자들을 기리는 신사를 세웠는데, 오늘날 교토 료젠 호국신사(京都霊山護国神社)이다.[6] 흔히 폐불훼석(廢佛毁釋)이라고 하는데, 1871년까지 극심했고 1877년쯤 되어야 끝났다.[7] 寺宮嘉彰親王이라고 쓰기도 한다.[8] 국어에도 혼을 부른다는 의미로 똑같이 초혼(招魂)이란 말을 사용하며, 김소월의 시 '초혼'이 잘 알려졌다. 비슷한 단어로 청신(請神) 등이 있다.[9] 원한을 품은 영혼이 세상에 재앙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군의 전사자라도 원한을 품으면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 당연히 같이 위령제를 지내야 한다.[10] 지방의 작은 신사 중에는 아무 격도 받지 않은 곳도 있었는데 그럴 경우 무격사(無格社)라 하였다.[11] 이세신궁은 너무 존엄하다 하여 아예 이런 등급을 매기지 않았다.[12] 여타의 어지간한 신사들은 신사본청에 소속된다.[13]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단체가 있는데 바로 일본 유족회이다. 당시에는 일본유족 후생연맹이라 하였다. 전몰자 군인을 기리고 유족의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14] 주로 좌익 세력으로 일본 공산당, 반 천황 연합,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일본군 성노예 및 강제연행피해자문제 대책위원회하고도 연계) 등이였다.[15] 일본에서는 귀신이나 신령을 세는 단위로 柱를 쓰지만, 한국에서는 위(位)를 쓰므로 '위'라고 하였다.[A] 단 막부군과 오우에쓰 열번 동맹의 군인은 제외.[B] 사이고 타카모리와 사쓰마군은 대상외.[18] 평화에 대한 죄. A급 전범이 B, C급 전범보다 나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분류 기준이다. 즉, 어쨌든 A급·B급·C급 모두 전범이고, 내용을 살펴보면 B급과 C급은 학살이나 살해에 관한 죄라서 죄질이 상대적으로 더 나쁘다.[19] 고쿄가 지요다구 한가운데 있다. 위치상으로 보면 고쿄의 북서쪽으로 일본무도관이 있고 도로를 경계로 북서쪽에 야스쿠니가 위치해 있다.[20] 도보로는 대략 15~20분 정도.[21] 고려 갑옷으로 보는 것에 이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밑의 기사 참조.[22] 지금은 비공개 처리되었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방명록 노트 위에 야스쿠니 신사와 거대한 로봇을 합성한 일러스트를 그리고 NO!! WAR!!! NO!!! YASUKUNI!!!라고 그 아래에 크게 적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