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10:30:37

대전차총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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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현실적인 경우
2. 탄생 배경3. 실전4. 응용 작전
4.1. 대전차 수류탄4.2. 대전차 수류탄 묶음4.3. 총류탄4.4. 공병용 폭약통4.5. 수류탄4.6. 총검 돌격
5. 기타 수단6. 계란으로 바위 치기7. 그 외
7.1. 가상 매체에 등장한 비슷한 예
7.1.1. 인터넷 속 도시전설7.1.2. 그외 다른 매체 인용/유사사례

1. 개요

/ [1]

일본 제국 육군의 자칭 작전의 신 츠지 마사노부할힌골 전투에서 창안한 대전차전술. 종 효과가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꼬기 위한 풍자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전술인 대전차오함마술과 달리, 이쪽은 일본 육군의 정식 교리로 채택되어 엄연히 실재했다.

전차를 상대로 총검 돌격하여 전차의 관측창에 총검을 찔러 넣어서 승무원을 살상한다는 개념인데, 물론 이를 실행하려면 전차의 정면에 달려들어야 한다. 즉 일본군은 진짜 전차에게 병사가 칼 한 자루 들고 정면으로 돌격하여 싸우게 하는 것을 전술이라 불렀다.

일본군의 막 나가는 대전차 능력(그 중에서 육탄 공격)에 대한 개별 문서가 딱히 없기 때문에, 이 문서에선 일본군이 전차에 어떠한 육탄공격을 했는지도 기술한다. 사실상 일본군의 대전차 육탄공격에 대한 문서로 봐도 무방하다.

만약 보병이 전차를 반드시 막아야 하는데 적절한 대전차화기가 없을 경우 임시방편으로 지뢰나 폭약 등을 들고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은 다른 국가에서도 자주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다른 적당한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적군 전차가 전선을 돌파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기 때문에 보병만으로 전차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급박한 상황이 붙는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반드시 적군 전차를 막는다는 조건이 붙어야 하며, 실행시에도 어디까지나 임기응변으로 단기간에만 한정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추가조건이 붙는다. 전차에 근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정예 병력은 상실할 경우 다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무의미한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병이 보유한 쓸만한 수준의 대전차 화력이 없다면 즉시 후방으로 후퇴시키고 전차나 대전차포등의 다른 수단으로 적군 전차를 저지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본군의 대전차총검술이 욕을 먹는 것은 원래는 전차를 반드시 저지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장병 개개인의 죽음을 각오한 희생이자 임기응변적인 전술을 정식 대전차 전술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병으로 적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선두에 세우고 일본군의 전차들은 일종의 히든카드로 취급해서 후방에 위치시키는 답없는 행위가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병참도 빈약하므로 보병들이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 폭발물을 휴대한 것도 아니라 말 그대로 총검을 들고 달려드는 경우가 꽤 많았단 점이다.

1.1. 현실적인 경우

대전차병기 없이 보병이 육탄돌격으로 기갑차량을 상대해야 한다면 대형 폭발물로 전차 자체를 날려버리거나 무한궤도나 주포 등 중요부위를 손상시켜서 무력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쉬우며 성공률도 높다. 진짜로 폭발물 없이 기갑차량과 싸워야 한다면 아래와 같은 방법들이 있다.
  • 대전차 소총, 기관총, 기관단총
    6.25 전쟁 시기에 중국 인민지원군UN군 전차의 포구에 기관단총을 난사하여 탄약수 사살/주포 무력화/포탄 유폭을 노린 사례가 있었고, 장전한 포탄이 잼을 일으켜 주포 무력화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이라크전 때는 기관총과 자동소총으로 M1 전차의 포신 배연기를 집중 사격해 주포 무력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 외에도 전차의 외부 관측장비를 파괴해 시야를 차단하는 방법이 있다. 전차를 완파하거나 격파할 수는 없으나 (특히 야간에는) 전투를 꽤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다. 만약 외부 관측을 위해 승무원이 해치를 열었다면 승무원 사살까지 노려볼 수 있다.
  • 화염방사기 / 화염병
    당시 전차들은 불에 취약한 가솔린 엔진이 많았기에 후면 엔진 덮개나 배기구 등을 노려 불붙은 인화성 물질이 엔진룸 안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면 화재를 유발시킬 수 있다. 관측창이나 전투실이 개방된 형태인 전간기 전차나 대전차 자주포라면 승무원들을 모두 불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 쇠지렛대
    쇠지렛대처럼 튼튼하고 쉽게 무한궤도나 현가장치나 보기륜같은 곳에 밀어넣을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면 전차의 기동력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전차가 일단 멈추게 되면 화염병이나 대전차 소총같은 추가 공격이 매우 정확하게 전차에 명중할 수 있기에 전차의 격파에 큰 도움을 줄다.

반면 총검으로 관측창을 쑤시는 건 육탄 돌격과 관측창 제압의 단점만 따온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육탄 돌격을 하기 때문에 적군 전차와 근접전을 수행하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도 모자라서 관측창을 제압한다고 전차가 무력화되는 것도 아니고 전차 승무원이 사살당하는 것도 아니라서 확실하게 전차 승무원이 사살당할 때까지 반복 공격을 해야 하는 사태까지 불러오기 때문이다.

2. 탄생 배경

전간기 시절의 전차는 아직 기술적 발달이 덜 된 상태라 할힌골 전투 당시까지만 해도 전차의 관측창은 직접 눈으로 보도록 되어 있는 구멍일 뿐인 데다가 방탄유리 등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전차의 주포와 기관총을 개나리 스텝으로 잘 피하고 무한궤도깔리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대전차 소총이 전차의 관측창을 노리는 것도 이 부분이 전차 내에 상시 뚫려 있는 몇 안 되는 부위인데다, 전차장 등 승무원 중 누군가가 상시 관측을 위해 얼굴을 들이대고 눈을 붙이고있는 곳이기 때문에 '잘하면' 내부의 승무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일본군이 대전차전을 한 상대가 하필이면 소련, 그것도 대숙청뒤 한참 군대 밑바닥이 무너진 상태의 소련군 상대였다는 점이다. 이때 소련도 아직 전차전의 개념이 정립이 되어있지 않은데다, 당시 주요 전차였던 T-26, BT-5 시리즈 전차의 고질적인 약점인 얇은 장갑과 가솔린 엔진이라는 문제점 때문에 화염병 공격이 의외로 먹혔다. 장갑을 뚫고 피해를 준 게 아니라, 그냥 밖에서 터진 화염병 불길에 과열된 엔진룸과 가솔린 탱크가 열기에 발화해 차체가 전소해버리는 것. 그때문에 할힌골에서조차 600여대의 전차를 투입해 승리하고도 저 화염병때문에 300여대의 전차가 전소했다. 그래서 전훈을 바탕으로 BT전차도 BT-7으로 넘어가면서 모두 관측창에 방탄유리를 장착하고 기본적으로 밀폐형으로 운용했다.

이런 식으로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군이 패배했으나, 관동군은 정신승리의 원조답게 전차는 전차로 잡는게 아니라 화염병으로 잡는다는 교리를 진짜로 믿어버렸다. 할힌골에서 졌음에도. 그러니 그런 문제점을 일찌감치 알던 미국의 전차,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한 후대의 소련 전차를 상대로 그때의 승리만 기억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군은 아군 전차나 대전차포에 의한 대응보다 이러한 자살성의 돌격이 소련군 전차를 상대로 더 효과적이더라는 나름의 내부 분석까지 내놓았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영국군을 상대로 할 때도 이를 사용했다. 물론 일반적인 지휘관이라면 조건부터 성공률까지 극악의 확률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말도 안되는 분석결과를 보고 자국 군대의 아찔한 기적의 논리에 탄식하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군에는 정상적인 지휘관 자체가 드물었으며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들은 한직을 전전하거나 작전에 관여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일본군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증명하는 부분이다.

3. 실전

(전략)...보병들은 이 전차 부대들이 지나가야 할 지역을 거쳐서 진격했지만 일본군을 정글에서 완전히 소탕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전차들이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의 오른쪽 측면의 카트몬(Catmon) 산에는 우회하고 넘어간 일본군의 대규모 거점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차를 보호할 보병이 전혀 배속되지 않았다.

(중략)

...일본군 장교는 뭔가를 잘못 알고 있었는지 자신만만하여 마지막 전차로 달려들었고 차체의 기관총군도로 힘껏 내리쳐 반쪽을 내려고 했다.[2] 그 장교는 곧바로 다른 전차의 기관총에 벌집이 되었다. 짧지만 요란한 교전이 끝나자 일본군은 후퇴했지만 계속해서 가까운 거리에서 경전차 소대를 소화기로 공격했다.

(중략)

...마침내 C중대에서 다른 중형전차 소대가 도착했다. 일본군은 격퇴되었고 부대 전체가 중대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조금도 진격을 할 수 없었다. 전차 1대[3]를 상실했다. 전차들은 383보병연대에 도착하지 못했다.

Committee 16, Officers Advanced Course The Armored School, Armor in Leyte >: Sixth Army Operations, 17 Oct-26 Dec 44, (1949). pp.94~97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이 만난 영국군미군의 전차는 이미 장갑도 강화된 데다가 관측장비는 프리즘을 이용한 잠망경식으로 바뀌었고 관측창에 방탄유리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방탄유리는 인간의 완력으로 내지르는 총검 찌르기 정도에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그것도 미군/영국군보다 체격적으로 왜소하며 더욱이 보급난과 막장 병영 운영으로 거의 매일 굶고 지내며 부조리한 내부 분위기 때문에 정신도 피폐하던 일본 군인의 완력이 영향을 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방탄유리를 사용한 관측창을 파괴하려면 최소한 대전차 소총이 발사한 직격탄이 필요하며, 실제 전장에서 그렇게 정확한 명중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육박전으로 전차 위에 올라간 보병이 방탄유리를 파괴하려면 영거리 사격으로 소총탄 동일 부위에 반복적으로 명중시켜야 하거나 아예 곡괭이같은 특수장비를 들어야 하는데 전자는 총기를 연사하다가 도탄으로 인해 보병이 먼저 죽기 딱 좋고, 후자는 무거운 곡괭이같은 중장비를 미리 휴대한 다음에 불안정한 위치인 전차 위에서 정확한 동작으로 큰 타격을 관측창에 날려야 하는 곡예의 연속을 수행해야 하니 실전에서는 불가능하다. 애초에 이런 문제 때문에 대전차포를 비롯한 각종 대전차화기가 등장한 것이다. 당장 저 위의 상황도 대전차포나 그에 준한 수단만 사용했으면 전멸할 수도 있을 정도로 취약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일본군의 어이없는 전술 중 상당수가 대전차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은 20세기 초 당시에 있었던 신기술의 급작스런 개발과, 그에 따라갈 자원도 군비도 없이 신속히 적응해야만 했던 일본군의 좌절감 + 사령부의 인명경시가 드러나는 일면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 제국은 메이지 유신 선포 이후에도 대내외적으로 전쟁을 거쳤으며, 이 덕분에 제1차 세계 대전까지는 베테랑 병사들이 많아 개개인의 전투력이 매우 높았고 대보병 전술에 있어서는 상당한 발전을 거친 이후였다. 그러나 기관총과 전차, 항공기라는 신무기가 전장에 도입된 이상 이제는 대보병 전술만으로는 육상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전차장비의 보강, 지원도 없이 천황폐하가 하사한 장비는 단 하나도 손실해서는 안 된다면서[4] 좌우지간 막으라고 위에서는 쪼아대니 가뜩이나 부조리한 분위기 속에 이런 상황 변화에 갑자기 적응하려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람이 떼로 달려들어서 막는 수 밖에 없었으므로 이런 참사가 연이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일본도 전차 국산화를 위해 치하 중(형)전차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서방 열강이 다루는 전차와 비교하면 오히려 경전차급 스펙이었으며 화력과 기동력도 딸렸다. 대전차포도 일본이 자국 기준 중형전차 스펙이라고 오해한 스튜어트 경전차를 무력화할 수 있는 선에 그쳐버렸다. 이는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 이전까지 상대한 미군, 영국군의 전력이 2선급 전력이어서 그 상대로 승전을 거두며 자만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근거없는 자신감을 갖고 전차에 칼질을 한 건 어이가 없지만 서방의 2선급 전력을 상대로 승전하면서 상대전력을 오판한 것도 있고 만약 오판을 안 했어도 급격한 공업화로 열강에 비해 기술력이 딸려 만들지도 못 하거나 만들더라도 양산이 힘들거나 조악했다. 할힌골 전투때의 폐급 소련군한테도 털릴 정도로 대전차병기가 빈약하거나 내구도가 낮아 보통 미국이나 영국이였다면 성능업을 기준으로 대안이라도 모색했는데 일본은 당시 정신력과 필사의 각오로 이길수 있다는 광신도급 사상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4. 응용 작전

일본의 자기희생, 1945: '전차 한 대에 10명'
Japanese Self-Sacrifice, 1945: 'Ten Men For One Tank'
파일:10 Man for 1 Tank.jpg
대상전차 75mm 주포 장착형 M4A3
(대전차 육박공격 대응용 장비 장착)
번호 공격방법
1 99식 파갑폭뢰 투척
2 99식 파갑폭뢰 묶음 부착
3 총류탄 사격
4 공병용 폭약통 설치
5 전차포탑 해치 내부로 수류탄 투척
6 총검 돌격
기타 수류탄 투척
(전차의 시선을 끌기 위한 양동 작전)
물론 일본군은 대전차총검술만 수행하지 않고 위 그림과 같은 다양한 대전차 자폭공격술을 동시에 구사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미군 전차를 향해 다양한 공격을 하면 성과가 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보병이 구사한 대전차전 전술이 워낙 허접하고 효율이 낮은지라 현실에선 전차 하나 잡는 데 열 명이 희생된 것도 진짜 적게 죽은 것이라 할 만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위의 일러스트도 '일본의 자기희생: 전차 한 대에 열 명'이라며 까고 있다.

당장 위의 그림은 보병이 기갑을 잡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으로 보병의 동행없이 전차 혼자 돌아다니는 건 그냥 전차병들 전원이 자살하려는 것과 같다. 이오지마 전투오키나와 전투에서 보병의 보호를 받지 않고 M4 셔먼만 투입했다가 매복한 1식 기동 47mm 속사포나 47mm 전차포에 초근거리에서 M4 셔먼의 측후면 장갑에 포탄이 명중당해 손실된 경우가 발생했다. 아무리 전차가 우월해도 보병의 지원이 없으면 전차는 시가전, 정글전과 같이 근접전, 매복에 당했을 때 위험에 빠지기가 쉽다. 나치 독일도 보병이 없으면 5호 전차 판터로 미군을 추적해 잡으러 가는 걸 포기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당연히 기계화보병이나 전차를 직접 호위하는 보병이 있었을 것이고, 저렇게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도 않았다. 실제 전투에서는 미군은 전차 하나당 보병이 최소 열 명은 붙어 다닌다. 만일 전차만 다니는 상황이라고 해도 적어도 2대 이상은 같이 움직이도록 해서 서로의 사각(死角)을 막아주고, 6.25 전쟁에서 센추리온 전차가 밀려오는 중공군에게 사용한 것처럼 전차가 보병에게 육박공격을 당하더라도 전차에 장비한 기관총으로 서로를 사격함으로서 전차에 붙은 보병을 제거해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가급적 빨리 현지에서 전차에 호위보병을 붙여서 전차가 혼자 다니는 일이 없도록 조치한다.

게다가 삽화에 그려진 부조종사용 차체기관총 말고도 주포 옆에 공축기관총이 존재한다. 전차가 고속으로 전진하면서 전차포탑을 360도 회전하며 기관총을 난사하면 전차에 가까이 붙은 일본군들은 벌집이 되거나 전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전차에서 멀리 떨어지게 된다. 기관총을 피하기 위해 무리해서 전차에 올라타려고 하다가는 무한궤도에 깔려 몇십 톤이 넘는 전차 무게에 압사당할 수도 있고 올라타더라도 포탑이나 포신에 부딪혀 차체에서 떨어지고 무한궤도에 밟혀 육편덩이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전차포탑의 선회로 주포의 포구의 좌우방향을 조절하기 때문에 수십톤에 달하는 포탑이라는 쇳덩어리를 전기모터같은 동력원으로 고속회전시키므로 생각보다 회전하는 포탑의 운동에너지는 매우 높다. 보기엔 그냥 느린 속도로 슬슬 회전하는 것 같지만 포신에 맞게 되면 맞은 부분은 뼈가 부러지고 전차에서 추락해 바닥에 나동그라지면서 추가적으로 크게 다치게 된다. 실제로 정비중 회전하는 포신에 맞아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그리고 전차포도 75mm 구경 수준이면 근처에서 폭발하는 고폭탄 위력이 만만치 않으며 M4 (105)같은 대보병용 돌격포 계열은 고폭탄 화력이 더 크기 때문에 전차에 근접하다가 고폭탄 폭발 및 파편세례를 맞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기 딱 좋다. 퓨리의 후반부 전투씬에서 알보병으로 전차를 상대하는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표현했다.

그리고 전차가 있더라도 상대방 전차가 더 강력해서 전차포로 파괴하기가 어렵다면 적군 전차 1대 수준의 소량의 병력에게 진격로가 가로막히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독소전쟁의 라세이냐이 전투에선 KV-2[5] 단 1대가 독일군 1개 사단을 막은 사례가 있다. 독일군은 전차까지 포함된 사단인데도 불구하고 소련군 전차 1대를 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위 그림처럼 상황에서도 10명으로 셔먼 전차 한 대를 잡을 수 있다는 건 적게 죽은 게 맞다.

4.1. 대전차 수류탄

일반적인 대전차 수류탄RPG-43처럼 막대형 수류탄 형태를 가지며 가볍게 투척이 가능한 형태이지만 1번으로 나오는 방식은 대전차 수류탄의 일종인 99식 파갑폭뢰를 들고 전차에 근접해서 장갑에 붙인 후 터뜨리는 것이다. 일본 제국 육군은 대전차 수류탄은 폭뢰(爆雷)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99식 파갑폭뢰는 대전차지뢰처럼 생겼지만 본체 측면에 자석이 있어서 전차 장갑에 붙이고 터뜨리는 대전차 수류탄 계열의 무기가 맞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전쟁 초기에 성형작약 관련 기술력이 크게 부족해서 99식 파갑폭뢰는 그냥 폭약덩어리로 폭발력만으로 전차를 공격하는 무기인지라 전간기 시절의 경전차처럼 장갑이 20mm 이내의 전차만 효과적으로 공격이 가능했다. 따라서 M4 셔먼을 공격하기에는 1발로는 부적당하다.

전쟁 초기에 대전차수단이 부족했던 독일군이 원조인 흡착지뢰를 사용했지만 그쪽은 성형작약탄을 사용하므로 후기형의 관통력이 180mm다. 이 정도면 상대가 T28처럼 수백mm 떡장갑을 둘둘 바른 초중전차 수준의 괴물급이 아닌 이상 전차의 어느 부위에 흡착지뢰를 붙이더라도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위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고, 무엇보다 일본과는 자석의 질이 달라 일본군처럼 딱 붙여도 붙질않는 상황은 거의 없었다.[6]

하지만 흡착지뢰를 잠수함을 통해 일본에 전파해줬더니 낮은 기술력과 부족한 자재로 인해 자돌폭뢰라는 이름으로 작대기에 성형작약탄을 장착하고 보병이 전차에 돌격해서 창으로 찌르는 동작으로 공격하는 무기가 만들어졌으며, 99식 파갑폭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사용될 수 밖에 없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Zimmerit_Tiger_II_2_Bovington.jpg
치메리트 코팅을 적용한 티거 2
치메리트(Zimmerit) 코팅은 독일군이 연합군도 이런 전술을 사용할까봐 쓴 장갑이다. 그러나 연합군은 흡착지뢰를 노획품을 긴급시에 사용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결국 폐지되었다. 무엇보다도 흡착지뢰에 쓰이는 자석을 예방하려 붙인 치메리트 코팅은 자석이 충분한 힘을 발휘하면 그대로 붙기도 했다.

연합군이 이런 전술을 쓰지 않은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합군은 이미 충분한 대전차화기(바주카, PIAT)와 M10 GMC(후에 90mm를 장착한 M36 잭슨으로 교체), 파이어플라이(17파운더 장착) 등 다양한 전차, 그리고 독일 전역을 폭격하던 공군이 있어서 굳이 보병을 갈아넣어야 하는 작전을 써야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긴급한 경우에는 구리스로 절인 낡은 양말에 폭약을 넣어 전차에 붙이는 급조방식의 점착폭탄을 경우가 있기는 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태평양 전선의 미군 기갑들은 99삭 파갑폭뢰를 사용하는 일본군의 육탄 돌격을 방어하는 상황을 자주 겪었다. 하지만 이들은 치메리트 코팅보다 훨씬 간단하게 야전에서 나무 판자를 전차 위에 덧대는 것으로 해결했다. 효과도 더 좋았고, 전차의 생산 공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도 없었다. 따라서 치메리트 코팅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전차의 특수한 증가장갑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클라우제비츠의 빠돌이였던 히틀러가 공격무기가 있으면 반드시 대응되는 방어무기를 갖춰야 한다는 전략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4.2. 대전차 수류탄 묶음

2번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위의 99식 파갑폭뢰를 묶어서 집속수류탄처럼 더욱 강력한 폭탄을 만들었다. 하지만 저렇게 파갑폭뢰를 여러 개 묶어버리면 너무 무거워져서 근거리에서도 파갑폭뢰를 던질 수가 없기에 직접 다가가서 붙여야 했다. 당연히 무거워 속도가 느려져 난이도가 올라가는 데다가 덩치마저 크니 전차병들 눈에도 잘 띄어 가장 먼저 사살된다.

여기에 더해서 기본적으로 99식 파갑폭뢰는 그냥 폭약덩어리에 불과해서 여러 발 묶었다고 해서 성능이 크게 향상되지 않는다. 집속수류탄도 전쟁 중반부터 전차의 장갑이 증대되며 화력의 상대적 저하를 겪으면서 대전차화기로는 긴급시 급조용 2선 무기로 지위가 하락했는데, 99식 파갑폭뢰를 저렇게 묶느니 그냥 공병용 폭약을 비슷한 양을 사용하는 편이 위력이 더 좋을 정도였다. 가방 폭탄이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99식 파갑폭뢰 묶음보다 가벼우면서 내장된 폭약이 많아서 위력이 더 좋고, 영구자석이나 신관같은 부위의 소모가 없거나 매우 적으므로 비용이 덜 들어가고 생산성도 좋다.

마지막으로 해당 방식은 폭탄 조끼의 선구자 같은 방식으로 자폭병에게 폭약을 휴대하고 전차에 돌격해서 자폭하는 대전차 자폭조의 발상에 큰 영향을 준다. 99식 파갑폭뢰를 계속 양산하기에도 일본 제국의 생산력이 부족해졌던 것이다.

4.3. 총류탄

3번의 방식이자, 가장 정상적인 방법으로 총류탄을 발사한다.

유탄발사기를 만들기엔 기술적 한계가 있었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무기로, 역할은 유탄발사기와 동일하다. RPG-7에 사용하는 탄두처럼 총류탄은 탄두가 발사기 밖으로 나오는 형태가 많기 때문에 위력에 영향을 주는 구경의 제한이 적기 때문에 상황과 목적에 맞춘 다양한 종류의 탄종이 있었고, 그 중에는 성형작약탄을 넣은 대전차용 총류탄도 있어서 대전차 로켓이 나오기 전인 제2차 세계 대전 초중기에 독일과 미국 등 다양한 나라가 사용했다. 바주카라케텐판처뷕세가 나온 후에도 가격이 저렴하므로 경전차나 장갑차를 상대할 목적이나 벙커 파괴용으로 대전차 총류탄이 자주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경우라면 다 좋았을 방법이지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일본에서 만든 총류탄은 성능이 열악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총류탄의 탄두로 사용되는 M9 대전차 수류탄은 40mm, M9A1은 60mm였고출처[7], 독일군의 SS-Gewehrpanzergranate 61의 경우 120mm였다. 그에 비해 일본군의 2식 대전차 수류탄의 관통력은 30mm형의 경우 30mm, 40mm형의 경우 50mm출처밖에 되지 않았기에 40mm형으로 측면이나 후면에 수직으로 발사하지 않는 이상 관통은 어려웠다.

반대로 일본군의 치하는 미군의 대전차 총류탄에 포방패를 제외한 모든 부위에 관통되었다. #

4.4. 공병용 폭약통

4번으로 나오는 방식(폭약통)인데 방법은 공병용 폭약통을 주포에 집어넣든지 전차 하부에 설치 하든지 해서 폭약통을 설치한 후 그 동안 전선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이후 스위치를 눌러 기폭하는 것인데 전차가 공병이 폭약통을 다 설치하고 발화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리 없다.

원래는 벙커같은 구조물을 폭파하는 어뢰형 폭약통을 대전차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라서 이동목표에는 매우 부적절한 공격방식이기도 하다.

4.5. 수류탄

5번 방식으로 전차 위로 올라가 해치 안에 수류탄이나 폭발물을 넣는 방법. 어디까지나 별다른 대전차 무기가 없는 하에 사용했던 방법이다. 전간기까지의 초기형 전차들은 전차 내부로 들어가는 해치의 구조가 간단하고 잠금장치도 부실해서 의의로 외부에서 쉽게 열 수 있기에 수류탄 투입 공격에 취약했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간에 수류탄같은 폭발물이 전차 내부에 들어가서 작렬하면 전차 승무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기본이며, 종종 내부의 전차포용 탄약이 유폭하면서 전차가 완파되는 일이 흔했다.

실제로 연합군이건 추축군이건 대전차 무기가 없고, 적 전차를 빨리 막아야 할 상황이면 다들 한 번 정도는 시도했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디파이언스, 퓨리에서도 이런 전술이 나온다.[8] 대한민국 국군6.25 전쟁 초창기에 전차 수나 대전차 전력 부족으로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경우 대전차 무기가 없는데 교전을 못 피하는 상황에서야 "최후의 시도"로만 쓰여 교리조차 없었던 것에 반해 일본군은 이게 육군정식교리라는 것에 큰 차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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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육박공격 방지용 대책을 장착한 M4 셔먼
유럽 전선의 연합군 전차병들은 대전차포나 판처파우스트 같은 상식적인 대전차전이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존 전차에 굳이 속도나 시야를 방해하여 전차의 생존률을 높이는 임시 개조를 할 필요가 적었지만[9], 태평양 전선의 연합군 전차병들은 정신력을 믿고 돌격하는 일본군 보병들이 이런 비상식적인 대전차공격을 하려고 저글링처럼 달려들어 피해를 입자 이런 일본군 보병을 막기 위해서 기존 해치 위에 철망 등으로 조잡한 가짜 해치를 추가하거나, 위 사진처럼 해치와 그 주변에 못과 철사 등을 가득 용접해서 해치를 쉽게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쯤이면 미군의 거북전차라 해도 과언이 아닌게, 과거 조선의 거북선 상판의 못들이나 위 사진의 전차에 용접된 못들이나 적이 위에 달라붙어 내부를 파괴하려는 걸 막기 위한 조치라는 점이 같다. 심지어 그 적군이 일본군인 것까지도 똑같다. 이쯤 되면 일본군은 못에 질릴 만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반부터 오늘날까지의 전차들은 해치의 구조를 강화하고 잠금장치도 충실하게 설치해서 안에서 해치를 닫고 들어가면 밖에서는 못 연다. 밖에서 해치를 닫는 걸쇠와 안에서 해치닫고 잠그는 걸쇠가 따로 있으며, 조종수 해치는 아예 밖에서는 여닫지 못한다. 설사 이런 장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해치 자체가 쇳덩어리로 되어 있어 쉽게 열 수 있는 물건은 절대 아니다. 즉 전차 혼자 돌아다녀도 내부 승무원이 해치를 연 상태가 아닌 이상[10] 불가능하다.

4.6. 총검 돌격

6번으로 나오는 방식. 전차 관측창에 총검을 찔러서 적 승무원을 공격한다. 앞서 언급한 그야말로 전차를 상대로 하는 대전차총검술이다.

하지만 전간기 전차면 모르겠으나 전쟁 중후반기의 전차들은 대부분 잠망경 방식 관측창을 채택한데다 관측창에 쓰이는 유리가 방탄유리여서 총검 정도로는 뚫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기 때문에 사실상 목숨을 내다버리는 행동이었다.

5. 기타 수단

전차의 총안구를 노리는 공격도 존재한다. 총안구는 포탑 옆같은 부위에 구멍을 뚫어서 전차병의 개인화기로 전차에 달라붙은 보병을 사격하기 위한 구멍이다. 물론 평소에는 내부에서 막을 수 있지만 관측창에 비해서는 밀폐성이 약하다. 따라서 총안구를 노리고 시안화칼륨이 가득 담긴 1식 가스 수류탄을 던지는 일이 있었다. 해당 수류탄은 말이 수류탄이지, 실은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유리병에 가까웠다. 다만 이는 결국 화학 무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라, 일본군은 미군의 화학전 보복을 우려하여 개발 및 일선 배치까지 해 놓고도 연합군에게 들키지 않거나 들키더라도 능력이 부족해서 보복위험성이 적은 국민혁명군같은 경우에만 사용했다.

그리고 독일의 흡착지뢰를 바탕으로 해서 막대기 끝에다 성형작약탄을 달아놓은 자돌폭뢰라는 물건을 만들었다든가, 포신만이라도 부수려고 갈고리 폭탄을 제조하거나, 심지어는 곡괭이를 들고 잠망경이나 기관총 등을 부수고 해치를 깨서 승무원을 사살하려고 했다는 정신나간 사태에 대한 증언도 있다.

땅을 파고 구덩이에 폭탄을 안고 들어가 대기하고 있다가 전차가 자기 위를 지나가면 자폭하는 복룡이란 것도 있었다. 비록 실제 역사와 차이가 있지만 영화 마이웨이에서 일본 육군 보병들이 전차를 상대로 자폭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 소련도 보병용 대전차 수단이 부족하니 비슷한 대전차 견이라는 것을 운용했지만, 이름처럼 이건 개로 하여금 자폭하게 한 것이었고 저건 그냥 사람에게 폭탄 쥐어주고 자폭하라고 한거니...

심지어는 쿠르스크 전투에서 간혹 목격되었던 전차 박치기를 넘어선 전술도 구사했는데, 일본 육군 제14 방면군 사령관 야마시타 토모유키(山下奉文)의 지시하에 계획된 전차 특공(戦車特攻)이라 불리던 전술을 실행한 바 있었다.#

95식 경전차 하고와 97식 중형전차 치하 이렇게 2대를 특공전차로 개조했는데, 1945년 4월 16일, 필리핀 바기오에 있던 일본 14방면군 사령부가 미군에게 포위당할 위기에 놓이자, 그나마 남아있던 95식, 97식 전차 4대에 충격신관을 장착한 폭발물을 장착한 특공대를 조직,공격에는 성공해서 미군 전차 2대를 기동불능으로 만들어 미군의 진격루트를 막아버렸고 14방면군 사령부는 퇴각에 성공해 일본 항복전까지 루손 인근 산 속에서 저항하다 항복하였으며 공격에 나서 동행한 보병 11명 중에서 단 1명만 살아남았다.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의 BT 전차들을 상대로 톡톡히 재미를 본 화염병 투척이 있었으나, 태평양 전쟁에서는 썼다는 사례가 극히 드물게만 나온다. 대표적인 시도 사례는 가부투 전투에서 스튜어트 전차의 무한궤도에 쇠지렛대를 쑤셔넣어 기동을 막은 후 화염병을 던진 것이 있다. 하지만 구조상 스튜어트 전차의 엔진부는 외부에서 이물질 주입이 어려운 구조고 방열 구조도 양호했기 때문에 피해가 미미했을 뿐만 아니라 전차병들도 반격을 시도하며 37mm 주포로 산탄을 발사하고 공축기관총인 기관총을 갈기며 저항하여 42명이 갈려나가 실패했다.

6. 계란으로 바위 치기

위에 열거한 방식은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가장 효과적인 대전차 공격 방법이긴 하지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실전에 들어가면 이미 작전부터 정신나갔는데 손에 쥐어주는 장비가 전차도 못부수는 대전차화기라면 병사만 죽어나가고 전차는 격파하기는커녕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당연하지만 상대가 전차 웨이브를 하는 상황에서 이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군, 맞전차, 혹은 대전차포 등으로, 상대보다 우월하거나 적어도 동등함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병사 손에 쥐어주는 장비의 열악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나치 독일에서는 그래도 동맹국이니 판처파우스트판처슈렉과 같은 보병 무기를 일본측이 자체 생산해서 사용 할 수 있도록 연합국의 살벌한 경계망을 뚫고 잠수함으로 참고로 할 완제품과 설계도까지 보내주었는데, 기술력이 독일보다 훨씬 부족했던 일본이 복제품이라고 하기도 곤란한 쓰레기만 만든 것이다.

일례로 독일군의 흡착지뢰를 모방해서 자돌폭뢰를 만든 적이 있는데, 자살공격용이라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독일제는 제대로 된 지연신관을 갖추고 180mm가 넘는 장갑 관통력을 보이는 데 반해, 일본제 초기형은 150mm, 양산형은 고작 60mm의 장갑 관통력을 보이며 신관도 지연신관을 못 만들어서 발화 즉시 폭발하는 충격신관을 사용했고 성형작약탄 특성상 7-8할의 폭발력은 사방으로 분출되어 사용자에 중상을 입히기 때문에 사실상 쓰레기에 가까웠다. 이러니 독일에서 무기까지 대량으로 직수입하기 전에는 무기를 제대로 된 것으로 교체할 수 없던 것이었다.

게다가 위의 사진에 나오는 경우는 전차가 보병의 엄호 없이 혼자서 뚝 떨어져 있는, 전차를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최상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현실에서는 보통 전차 옆에 호위용 보병이 반드시 있거나 동료 전차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저런 짓거리를 하다가는 접근도 하기 전에 맞아죽는다. 상기한 미군 일지에서 일본군 장교가 옆에 있던 다른 전차의 기관총 세례에 끔살당했단 이야기가 이래서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군은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보병과의 합동전술을 개발한 데다 전장에서 보병과 전차병은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 신뢰관계가 있었고 애초에 전장에서는 서로 보호해주지 않으면 전사하기 때문에 저런 식의 자살공격이 더욱 먹히지 않았다. 일례로 기습을 당해 보병이 소수만 남고 그나마도 부상당한 상태에서 전차의 사각을 끝까지 지켰다든지, 반대로 보병들이 위험에 처하자 전차가 위험을 무릅쓰고 돌격해 구했다는 미군 기록들이 다수 존재한다.

반면 일본은 미군처럼 유기적인 형태인 보병-전차 간 합동작전 개념이 없었고 방어력이 빈약한 중형전차 치하는 47mm 주포를 장착한 개량형이더라도, 경전차라서 37mm 주포를 장착한 스튜어트 전차를 상대하기도 벅찬 상황인지라 75mm 주포를 장착한 미군 셔먼이나 대전차화기에 곧바로 격파당했기 때문에 합동전투 자체가 힘들었다. 그 결과 일본군 지휘관은 자포자기 수준의 대전차총검술을 더욱 강요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군의 희생만 커졌다.

이에 더해서 순수 보병 전술상으로도 이는 인적 자원의 낭비였다. 카미카제와 동일한 문제로 당장 위와 같은 육탄 돌격을 성공하려면 당연히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고 각종 은엄폐를 통해 전차에 최대한 접근해서 무거운 폭발물을 성공적으로 장착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당연히 매우 유능한 보병을 필요로 한다. 담력, 감투 정신, 은엄폐 능력, 체력을 모조리 갖춘 용사가 말이다. 이런 인적 자원을 일반 보병전에 돌리면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군은 소수의 이런 인재들을 겨우 대전차총검술에 낭비시켰고, 결과는 전체 보병 전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11]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접근에 성공했더라도 열악한 장비 탓에 타격을 주지도 못했다.

인적자원을 순수하게 자원으로 보더라도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전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령을 18세로 볼 경우 그 개개인의 육성비용은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굉장히 범용성 높은 자원인지라 무가치하게 소비시킬 수 없다. 당장 현대 미국이 군인 한 명의 희생을 막기위해 고가의 장비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병력의 육성 비용이 더 많이 깨지기 때문. 아무리 인명경시풍조가 심각했더라도 인적자원만큼 보충이 제한적인 자원을 마구 낭비한 것이 일본군의 패인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전차의 교전거리 자체는 밀림이나 시가전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길다. 근접을 하려면 잘 매복해 있다가 근처에서 한꺼번에 튀어나와야 전차 옆에 붙을 수 있을까 말 까한데 애초에 지형조건을 까다롭게 가리는데다가 전차에 호위 병력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보통은 전차에 근접하려던 보병이 전차를 호위하는 적군 보병들에게 벌집이 될 뿐이다.

7. 그 외

6.25 전쟁 초기 북한의 기습 침공을 당한 국군이 사용한 전례도 있다.(#) 물론 이 경우도 정식 교리는 절대 아니었고, 개전 초기 전차는커녕 장갑차도, 대전차화기도 제대로 구비할 수 없었던 국군이 북한군의 진격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아득바득 달려든 결과물로, 이 역시 상기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최후 수단의 사례 중 하나이다. 즉, 어디까지나 타 국가들의 상황들처럼 육탄 돌격 이외의 효과적인 대전차수단이 없었던 상황이라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임기응변이었다는 것. 이러한 분전에도 불구하고 전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큰 차이와 기습공격의 충격력 때문에 제6보병사단과 같은 몇몇 예외를 불구하고 전방사단은 패배하여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의정부 방면을 방어한 7사단, 2사단, 5사단, 3사단, 수도사단은 이와같은 육탄돌격을 시도하였지만 적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1사단, 6사단, 8사단은 북한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개전 초기 춘천-홍천 전투에서는 육탄 11용사가 적 자주포와 전차 10대를 파괴하거나 노획하기도 했다. 이때는 아군의 대전차포의 적절한 엄호가 있었고 일본군처럼 무작정 돌격하지 않았다. 좁은 지형을 이용해 맨 앞 전차를 무력화시키고 따라오던 전차들이 멈춰설 수밖에 없게 만든 후, 적 전차장이 상황 파악을 위해 해치를 여는 순간 달려들어 전차를 제압하기를 반복한 결과이다. 즉, 무작정 달려든 것이 아닌,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 아래 진행된 전술이다. 또한 위의 육탄 11용사는 모두 생존했다. 1949년 적 토치카에 육탄공격을 가한 육탄 10용사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반면 기록에 의하면 개성 송악산 고지를 재탈환한 육탄10용사 전원은 전사하였다.

미군이 제공해서 한국군이 개전 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2.36인치(약 60mm) M9A1 바주카M1 57mm 대전차포로는 T-34-85 전차의 장갑을 뚫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M1 57mm 대전차포는 철갑탄 사용시 320m부터 관통이 되기는 하는데 실전에서 전차에게 그 정도로 근접했다가는 선제발견당해서 전차포와 공축기관총의 공격을 받고 대전차포가 격파당한다. 그리고 미군은 영국이 개발한 분리철갑탄은 명중률이 낮다고 라이선스를 안했기 때문에 사용가능한 철갑탄은 경사장갑에 명중하면 포탄이 깨지면서 탄두붕괴현상이 일어나며 장갑을 관통하지 못하는 구식 철갑탄이라 320m 이내로 근접해도 장갑관통이 불가능했다. 덤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보유한 포탄의 대부분이 대보병용 고폭탄이라 철갑탄 수량 자체가 크게 부족했다.

M9A1 바주카는 구경이 60mm로 소구경이라 기본적인 관통력이 낮았고 포탄의 결함도 있어서 착탄시 탄두가 약간 튕기는 도탄현상이 일어난 후에 발화하므로 메탈제트가 허공으로 분출되면서 그나마 가진 위력까지 격감했다. 오산 전투에서 T-34-85의 후방부에 22발을 명중시켜도 전차가 전혀 무력화되지 않았으며, 나중에 노획한 T-34-85 전차를 대상으로 사격할 때 최대한 90도 정타를 때리도록 후방에서 사격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차보다 4.5m (15피트)나 높은 곳에서 사격하는 비실전적인 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포탑은 90도 정타로 명중한 것이 아니면 포탄이 다 튕기며 90도 정타의 경우에도 포탑에 관통구멍만 뚫고 끝났고 차체 전면장갑은 아예 관통불가 판정이 났으며 차체 후부를 정타로 명중시키거나 보기륜 사이의 차체 측면 하단을 노려야 격파가 가능했는데 그나마 후방 공격은 변속기 파손 정도로 마무리되었으며 측면 하단도 보기륜이나 크리스티 현가장치에 명중하면 관통불가 상태가 된다는 참담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60mm 기본형 바주카로는 정상적인 교전시에 북한군의 T-34-85 전차를 제대로 격파할 수 없다는 것이다.#3

M3 105mm 경곡사포의 경우에도 105mm 고폭탄으로는 포탄의 포구초속이 느리고 폭발위력도 좋지 않아서 T-34-85를 상대로는 무한궤도 정도만 끊는 수준에 불과했고, 관통력이 최소 102mm 에서 최대 183mm에 도달하는 105mm M67 대전차고폭탄은 한국군에 지급되지 않았다. 전쟁 초반에는 미군도 105mm M67 대전차고폭탄이 크게 부족해서 오산 전투에서 고작 6발을 사용가능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대전차지뢰나 폭약, 수류탄을 들고 돌격, 그 후에 터뜨리는 전술을 마지막 수단으로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105mm 견인곡사포 자체가 수량이 부족했거니와 일반적인 포격지원에 자주 사용되었으므로 대전차전에 쉽게 끌어쓰기도 곤란했다.

미군도 상황은 마찬가지라서 75mm M20 무반동포도 무용지물인지라 결국 대전 전투에서 긴급하게 미국 본토에서 공수된 89mm M20 슈퍼 바주카를 들고 사단장이 직접 T-34-85 전차를 격파하는 등 고난의 연속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6.25 전쟁 초반의 대전차육박전은 어쩔 수 없는 긴급사태에 대응한 임기응변으로 평가받는다.

추축국인 이탈리아 왕국도 대전차 육박전용 무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폴고레 공수사단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효율적으로 대전차 육박공격용 무기를 사용했으며 이탈리아 왕립 육군에게는 M13/40처럼 일단 전차전이 가능한 전차가 있었고, 늦게나마 P26/40같은 전차도 만들었기에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탈리와 왕국군용 대전차 수류탄은 2가지다. 첫번째는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노획한 영국군의 점착폭탄인 No.74 S.T. Mk.1 HE 수류탄의 복제품이다. 물론 복제품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점착폭탄 기능인 끈적이는 부분과 유리구를 제거한 후 그냥 폭약을 많이 넣은 구체형 폭약 방식의 대전차 수류탄을 만들었다. 투척하기에는 무거워서 유효사거리가 10m - 15m 정도로 짧으며 브레다 및 OTO사에서 제한된 수량으로 제조되었고 모델 42 수류탄으로 명칭이 붙었다. 중량은 1kg이며 내부작약은 574g의 플라스틱 폭약 폭발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형태는 영국 No.74의 모양을 모방했다.[12]

두번째 대전차 수류탄은 그냥 시제품만 만들어졌다. 독일의 흡착지뢰와는 달리 영구자석을 사용하지 않고 배터리로 작동하는 전자석을 사용한 대전차 수류탄이다. 탄두는 종 모양의 성형작약탄을 사용했으며 너비가 30cm 정도이고 직사각형 배터리와 강철 프레임 끝에 두 개의 큰 전자석이 붙은 구조다. 발상 자체는 참신해서 독일의 흡착지뢰와는 달리 강력한 영구자석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며, 강력한 자기장을 가진 무기를 휴대하고 다님으로 인해 불필요한 금속의 부착이나 나침반의 혼란같은 일을 겪지 않아도 되며, 전차에 해당 무기를 부착한 후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폭발할 때까지 전자석이 폭탄의 부착을 유지해준다. 그러나 배터리와 전기 회로가 필요해지는 등 구성이 복잡해질 뿐더러 사용법이 흡착지뢰에 비해 전자석 발동의 절차가 추가되는 등 복잡해진다. 1943년에 적어도 1개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지만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붕괴되면서 모든 개발이 중단되었고 사진 1장만 남았다. 실전에서 사용된 적은 없다.

소련군은 개를 이용한 대전차 전술이 있었다. 대전차 견 문서 참조. 소련이 대전차 전술 방면에서는 인간의 목숨을 이용한 방어전술을 구사했던 일본군보다는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집속수류탄흡착지뢰를 사용했고 영국과 미국은 끈끈이 폭탄을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이 둘은 쓰기가 힘들긴 해도 사용하면 효과는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전장 중반부터는 라케텐판처뷕세, 판처파우스트, 바주카, PIAT를 사용가능했기에 대전차 육박전용 무기는 긴급시에나 사용하는 2선급 무기가 되었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 영국군 공수부대 장교인 앨리슨 '딕비' 태덤와터(Allison Digby Tatham-Warter)[13]는 가지고 다니던 우산을 독일군 장갑차 관측창에 찔러 넣었는데, 이때 우산이 조종수의 눈을 찔러 장갑차를 무력화시킨 일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연합국과 추축국을 가리지 않고 대전차지뢰IED를 활용한 전차 육박전술은 존재했다. 구체적으로는 대전차지뢰 측면에 설치된 부비트랩용 신관 연결부위에 수류탄용 지연신관을 설치한 후에 전차에 접근해서 포탑링이나 전차 하부같은 취약부에에 대전차지뢰를 밀어넣고 수류탄용 지연신관을 작동시킨 후에 재빠르게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폭약량이 많아서 제대로 공격이 먹히면 전차를 완파시킬 수 있으나 폭발위력이 높고 범위가 넓어서 시전자도 같이 휩쓸리는 경우가 많은 위험한 전술이다. 급조폭발물도 비슷한 원리를 적용해서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타국에도 대전차 육박전용 무기와 전술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사용하는 임기응변이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저게 정식 교리였다. 할힌골 전투 이후 대전차 능력에 대한 보강이 요구되었지만 일본군은 그때 그 수준에서 별로 발전하지 않았고,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태평양 전쟁에서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주 전략 공세 작전에서 전문적인 대전차자폭조가 등장하는 등 오히려 점점 교리 자체가 악화일로를 걸었다.

전차를 상대로 대전차총검술을 사용하는 와중에, 연합군 군함과 상륙함을 상대로는 이른바 후쿠류(伏龍)라고 불리는 대함창봉술을 시전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오해가 없도록 첨언하자면 절대로 적 함선에 올라타서 적 선원들을 상대로 창봉술을 한다는 게 아니다. 징집병들을 잠수부로 훈련시켜서 막대기에다 기뢰를 꽂은 물건을 준 뒤 들고 찌르게 한다는 얘기다. 일본 측의 공식 기록으로는 결국 실전 투입이 되지 않았다. 미군 측의 기록으로는 상륙함 일부가 이런 부류의 잠수부들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지고 미군에게 포위된 팔라우 지역에서 벌어진 일로 후쿠류용 장비를 보급받을 수 없기에 현지에서 자체적으로 자폭공격용 잠수부를 조직해서 활용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7.1. 가상 매체에 등장한 비슷한 예

7.1.1. 인터넷 속 도시전설

아래 이야기는 한국 웹에서 주로 검색이 되는 상황이며 #,# 해당 관련서지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 #
1962년 전차장 출신 전차병 조나단 웰스(Jonathan Welles) 병장이 출간한 회고록 《Realms field》에서는 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쪽바리[14]가 총검을 들고 우와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그리고 그 예리한 총검 끝이 내 시야에 와서 박힌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는다. 그 직후 쪽바리의 표정이 보고 싶어서.

쪽바리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다. 총검이 관측창의 방탄유리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쪽바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린다. 전차 궤도에 깔렸기 때문이다.

흙먼지보다 고약한 것은 쪽바리의 으깨진 시체가 무한궤도 구동축에 들러붙는 것이다. 물도 부족한데 마른 솔질로는 떨어지질 않는다. 하지만 귀찮아도 떼어내야 한다. 안 하면 1마일 안에 있는 파리 떼는 다 몰려든다. 몇몇 미군 병사들은 레어 햄버거[15]가 들러붙었다며 욕을 했다.

7.1.2. 그외 다른 매체 인용/유사사례

  • 2011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전쟁영화 마이웨이에서는 이 전술이 처음 적용된 할힌골 전투가 재현되었다.

    영상 출처

    이 영화에서도 일본군은 이 무모한 짓을 정식 교리로 채택하고 사용한다. 화염병, 대전차지뢰, 대전차 자폭트럭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대전차총검술은 등장하지 않았다.[16] 작중 대전차포들도 등장하나, 이동 중이었는데다 은/엄폐할 곳도 없는 평지였는지라 등장하자마자 BT 전차들에 의해 개박살 나 버린다. 그 이후 전개는 위에 쓰여진 대로다.

    단, 영화에서 BT전차들이 이 반자이 돌격 아니 육탄공격에 다수의 피해를 입는 건 실제라기보단 영화적 연출에 가깝다. 실제라면 아무리 BT 전차 주변에 지원할 보병이 없었다 해도 은엄폐할 공간이 하나도 없는 평지에 보병들이 달려가봤자 적 전차를 부수지도 못하고 이동하는 표적만 될게 뻔한 일이다. 그 원작 내용에 해당하는 소설 D-Day에서는 대전차 총검술만이 묘사되고 BT-5의 철망을 총검으로 찢어 엔진부에 화염병을 던지는 식으로 묘사된다. 이게 그나마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보병부대가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나마도 전차를 싸웠던 부대의 4할 정도만이 살아남았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이후, 전차부대가 트럭에 실린 보병들과 함께 공격을 개시하면서 총검과 화염병을 이용하는 대전차전은 더이상 무용지물이 되고 대식과 요이치는 포로로 잡히게 된다.
  • 중국 반전영화 퍼플 선셋의 오프닝에서 1945년 개떼같이 몰려오는 소련군의 T-34 부대 앞에 일본군 치하가 맞서 나갔다가 개털리고 이어서 자폭부대가 돌격하는 장면이 묘사된다.[17] # 결국 전멸당하기는 하지만 의외로 소련군 전차를 꽤 부순다.
  • 만화 펌프킨 시저스901 ATT는 이 짓만 하는 특수부대다. 정말로 총검으로 관측창을 찌르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전차에 달라붙어서 대전차 권총의 영거리 사격으로 전차의 상판을 관통시킨다던가, 절단기로 해치 연결부를 뜯어내거나, 윈치로 자신의 몸을 전차 표면에 고정시키는 등, 전반적으로 대전차 총검술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펌프킨 시저스 세계관에는 기관총, 반자동소총이 실험단계의 물건이고, 보병용 대전차 화기[18]도 존재하지 않는 아주 기형적인 무기개발사를 지니고 있다. 더불어 주인공 란델이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던건 호위 보병없이 전차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해서인데, 이건 펌프킨 시저스 세계관의 전차가 카타프락토이의 계보를 잇는 존재로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기병의 계보를 잇다보니 보병없이 전차만으로 부대를 이루고 다니는게 이 세계관에선 당연시 되어 있다.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기술, 전술이 헛점 투성이다 보니 적어도 이런 무모한 전술이 통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초인급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행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901 ATT 부대의 목적은 적 전차의 격파가 아니라 이런 미친 명령을 수행해서 얻는 인체실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차 한 대를 파괴할 때마다 란델의 몸은 너덜너덜해져 사람이 할 짓이 아님을 보여준다.
  • 미니어처 게임 워머신의 세력 중 카도르 제국의 병종 중 하나인 강철송곳니 장창병이 사용하는 '발파 장창'이란 무기는 여러모로 자돌폭뢰를 연상케 하는 컨셉이다. 하지만 이쪽은 설정상 2백년 넘는 전통과 함께 튼튼한 중장갑옷과 커다란 방패로 무장하고, 엄격한 훈련과 놀라운 전우애를 가진 부대다.[19]
  • Warhammer 40,000오크 진영의 소속 병종 중 하나인 탱크버스타는 그야말로 대전차총검술의 달인급에 다다른 오크들로 편성되어있는 병과로서 '탱크해머'라는 물건을 사용하고 있는데 오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본군과는 다르게 매우 파괴적인 화력을 자랑한다. 페럴 오크들도 뱅스틱이라는 이름의 폭발물 달린 막대를 사용한다. 또 임페리얼 가드 진영에도 러프 라이더라는 토착 생물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기마대가 쓰는 사냥창이라는 일회용 대전차 무기가 있다. 이건 놀랍게도 폭탄이기 때문에 보병 뿐 아니라 차량에도 효과적이며 아머 세이브를 무시하고 대미지가 들어가는 굉장한 무기이다. 결정적으로 사용자가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20] 물론 다이스 갓의 저주를 받으면 탱크 쇼크 룰에 따라 그대로 밟혀서 쥐포가 되는 것도 충실하게 구현되었다. 멜타 폭탄을 소지하여 근거리에서 투척할 수 있는 병과도 있다.(택티컬 스쿼드, 세라핌 스쿼드 등) 이런 병과를 적의 뒤에 배치해서 근접하여 차량을 터뜨리는 기동은 패스트 멜타라 부르는 기본 전술 중 하나이다. 물론 이런 무기는 확실하게 차량을 손상시키거나 터뜨릴 수 있고, 근거리에서 폭탄을 터뜨린다고 해서 사용자가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 그래도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꽤나 정신나간 일이라는 것을 한 유저 캠페인 전투에서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 소설 풀 메탈 패닉!에서 등장하는 소련제 암 슬레이브인 Rk-92 새비지가 사용하는 HEAT 해머는 자돌폭뢰와 유사한 컨셉의 무기이다. 다만 여기에선 화약이 엄청 많이 들어간 무기란 설정이여서 맞으면 대부분의 암 슬레이브가 박살난다.
  •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킹 브래드레이가 직접 칼과 수류탄을 들고 보병은 모조리 베어죽이고, 기관총은 칼로 튕겨내고, 포탄은 썰어버리고 북방군이 중앙사령부 공성용으로 가져온 중전차에 달려들어 맨 위에 언급된 정석적인 전술인 관측창을 찔러서 탱크 안에 있는 관측수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캐터필러를 잘라버리고 깨트린 관측창에 수류탄을 까넣어[21] 탱크를 무력화시키는 기술을 보여주었다. 물론 브래드레이는 인간이 아니라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호문쿨루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 MBC 드라마 왕초에서도 김춘삼이 탱크의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투하해 무력화시켰다.
  • 배틀필드 4게임이기 때문에[22] 위 같은 일이 흔하다. 흔히 '피자배달'이라는 대전차지뢰 갖다 붙이기, C4를 붙인 ATV나 오토바이를 적 전차에 충돌시켜 터트리는 일명 'C4카', C4 직접 붙이기, 비행기로 탱크 들이받기 등 공병이 딱 달라붙은 뒤 수리도구로도 부수고 좀 실력이 늘면 분대원끼리 오토바이로 붕붕 날아다니며 로켓과 지뢰로 탱크를 몰이 사냥하기도 한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서 광전사공성 전차를 쉽게 잡아낸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공성 전차의 공격력 자체는 강하지만 공격 방식이 광전사같은 소형 유닛에게는 공격력이 반감되는 폭발형인데다 광전사의 맷집이 만만치 않아서 상성상 광전사가 우위에 설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상성은 마찬가지지만, 공격·방어 방식이 유닛의 크기에서 장갑 등으로 변화되는 등으로 인해 상성이 줄어들었다. 설정에서도 광전사를 비롯한 프로토스 종족의 육체는 인간보다 훨씬 우월하다.[23]
  • 플래닛사이드 2에서도 미래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기 때문에 배틀필드 같은 일이 흔하다. 그나마도 C-4로 전차를 부수러 가는 건 보통 제트팩을 사용해 초월적인 기동력을 자랑하는 라이트어썰트 병과다. 그리고 이 게임 전차들은 공축기관총도 없기 때문에 보병이 근접하면 대응이 매우 어렵다. 정신머리 박힌 전차장이면 애초부터 보병부대 한가운데로 뛰어들지 않고, 보병도 적 전차부대가 돌아다니면 정신 나갔다고 그 안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참고로 이 게임, 중장갑 차량 상대로 데미지를 입히는 칼이 진짜로 있기 때문에 칼만으로 전차를 상대하는 바보같은 행동이 진짜 가능하다. 물론 미미한 데미지가 박히기 때문에 전차가 액셀 밟고 튀거나 칼질하던 보병이 죽는다만. 어차피 설정상으로도 죽으면 부활하는 세계관이니 알 게 뭔가.
  • 메탈기어 솔리드 V 그라운드 제로즈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에서도 일반적인 대전차 화기 외에 C4나 수류탄 등으로 전차 혹은 장갑차 등을 파괴할 수 있다. C4를 바닥에 깔아 대전차지뢰처럼 쓸 수도 있지만, 잘 접근해서 전차에 붙이고 터뜨려도 된다. 단, 전차의 주포에 맞으면 거의 끔살이므로 접근할 때 주의해야 한다. 사실 풀톤 회수 장치를 접근해서 몰래 붙이면 한 술 더 뜬 대전차 헬륨풍선술도 쓸 수 있다. 다만 정차중인 자량에만 사용 가능하다. 우습게도 교전 중에도 정지만 하면 연막탄 까고 후방으로 돌아가서 유유히 풍선 붙이고 튈 수 있다. 사실 이 게임에서도 플레이어를 발견하고 교전 중인 전차를 농락하며 이럴 수 있는 건 의식의 사람같은 고인물 플레이어들이고, 웬만해서는 전차의 시야에서 벗어나서 경계 단계를 낮추거나, 보병들이 없는 상황에서 연막을 까고 접근하거나, 아예 야간에 들키지 않은 채로 붙이고 튀거나 보병들을 상대하는 게 낫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탱크의 수십배 사이즈의 거대로봇병기를 맨몸으로 박살내는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전설의 군인이다.
  • 스파이 액션 영화 트리플엑스(XXX)2에서는 자동차 개조 등이 소재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의 자동차 팀이 M1 에이브람스를 기계로 허공에 띄우고 포탑 회전을 무력화시킨 다음 해치를 절단기로 따서 전차를 하이잭한다.
  • 프로토타입의 최종 능력인 블레이드는 그야말로 대전차총검술의 로망을 집대성한 능력으로, 장갑차나 전차를 칼질 몇 번에 썰어제끼며,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내려찍기 기술(블레이드 에어 슬라이스)는 아예 한 방에 터뜨려버린다. 뿐만 아니라 군인이 탑승한 탱크에 올라타서 하이잭한 다음 본인이 타고 다니는 것도 가능. 프로토타입 2에서는 하향되어 이전만한 강함은 아니다.[24]
  • 1인칭 액션 영화 하드코어 헨리에서는 카타나 한 자루로 전차 승무원들의 목을 따버린다. 물론 여기서 주인공은 사이보그다.
  • 헤일로 시리즈에서는 탱크 해치를 따고 안에 수류탄을 까넣는 짓을 한다. 물론 이쪽은 강화 병사고, 강화복을 입었다는 설정이지만... 이 설정때문에 해치 안에 수류탄을 까넣는 방법 외에도, 엔진 쪽 철판을 뜯어 주먹으로 엔진을 박살내는 방법도 있다. 물론 이 방법은 탱크가 폭발하며 시전자도 같이 폭사한다.
  • 메탈슬러그 미션 4, 5에서 모덴군들이 진짜 이 짓을 한다. 높은 곳에서 점프해서 메탈슬러그에 달라붙어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넣어 내구도를 깎거나 몸으로 주포를 막거나 망치로 발칸을 떼어낸다. 발칸이 떨어지면 캐논과 자폭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메탈슬러그는 현실의 전차와는 달리 1인승 초소형 전차라 보병 서너 명만 달라붙어도 충분히 무력화될 수 있다.
  •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는 전통적으로 창병 vs 탱크 떡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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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유닛인 창병을 반만년간 수련시키거나 온갖 전투력 버프를 덕지덕지 발라오면 현대 유닛인 탱크를 이길 수 있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이런 경향이 약해졌지만 최신작인 6편에서도 여전히 이론상 불가능하지는 않다.

    문명 시스템상 탱크는 기병으로 분류되며 창병은 기병분류 유닛을 상대할 때 보너스를 받는다. 거기에 방어태세를 갖추고 일정 턴수가 지나면 추가적으로 전투력에 보너스를 받고 해당 문명특성과 진급, 제도 업그레이드 등에 따라 추가적인 보너스를 받게 된다. 지형 역시 습지, 강 타일에 있는 유닛은 페널티를, 숲이나 언덕에 있는 유닛은 방어시 보너스를 받게 된다. 또한 강가 너머의 적을 공격할 때는 공격자에게 추가적인 페널티가 부여되므로 갓뽑은 비전투 문명의 전차가 지형페널티를 받으면서 방어태세와 각종 진급 보너스, 정책카드 보너스와 지형 보너스를 받는 창병에게 들이박으면 전투력 차이로 터질 수 있다.
  • 나, 스탈린이 되었다?!에서는 영국군이 인도게릴라가 운용하는 소련제 전차를 파괴하지 못하자 일본군에게서 배운 대전차 총검술을 현지인들에게 시킨다.

[1] 대전차특공, 일본어위키피디아 서술명[2] 아마도 총열을 베려고 했겠지만 기관총 총열은 기본적으로 강철이다. 공랭식 기관총의 경우에는 지속 사격에 유리하기 위해서 총열을 무지 두껍게 만든다. 총열을 얇게 만들면 쉽게 열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랭식이 됐든 수랭식이 됐든 어떤 기관총이라도 구조상 튼튼한 내구도는 당연히 요구되는 사항이라 알량한 일본도, 사람의 근력 따위로 벨 수 있을 리도 없다.[3] 이 전차는 중략된 기록 중 일본군의 자돌폭뢰에 맞아서 무력화됐다.[4] 심지어 일본군 상층부는 현장에 뛰는 군인들도 치하 중전차의 장갑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영국군, 미군들은 전차 정면, 측면에 모래주머니를 달아 방호력과 생존성을 높인 것을 보고 자신들도 이를 반영했더니 "감히 천황이 하사하신 장비를 멋대로 훼손하다니"라고 외치며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물론 일본군이 모두 바보는 아니라서 장갑이 뚫리는 걸 막으려 장착한 모래주머니를 사용하는 경우는 많았고, 임팔의 제14전차연대의 치하 3대는 차체 하부에 추가장갑을 덧대어 운용하긴 했다. 노획한 M3 스튜어트의 엔진부 장갑으로 만든 이 추가장갑은 유사시에 탈착이 가능했으며, 총 25mm 두께를 가지고 있으며 탈착식 장갑이라는 특성상 15mm의 공간장갑 효과까지 내어 이론상으로는 6파운더까지 방어해 낼수 있었다. 물론 규칙준수를 위해 검사시에는 추가장갑을 도로 분리하고 무한궤도나 모래주머니를 대충 떼어놓았다가 점검 후 다시 부착한다는 꼼수같은 걸 쓰는 대책이 필요했다.[5] 혹은 KV-1[6] 그런데 웃긴 건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영구자석이었던 알니코 자석을 처음 개발하고 생산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기술을 먼저 개발했음에도 덜떨어진 공업능력 때문에 제대로 활용을 못한 셈. 비슷하게 야기-우다 안테나만 봐도...[7] 해당 출처에, 동일 수류탄의 관통력이 101mm라는 서술도 있음.[8]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 콜 오브 듀티에서 적 전차를 파괴할 때 다수의 아군들이 전차 위로 올라가서 해치 따고 수류탄을 밀어넣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고스트에선 주인공이 직접 장갑차 위로 올라가서 열려있는 해치에 수류탄을 집어넣어 파괴하는 장면이 나온다.[9] 조지 S. 패튼도 기동성 저하를 이유로 자신의 3군단 소속 전차에 모래주머니 같은 추가장갑을 두르는 것을 금지했다. 대신 수직장갑인데다가 얇아서 취약한 측면장갑을 보호하기 위해 옆면에 매트리스, 무한궤도 여분, 통나무 등을 붙이는게 성행했다.[10] 시야가 너무 안 좋아서 승무원이 직접 해치 열고 바깥을 관측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11] 이는 똑같은 뻘짓인 카미카제와 유사한 단점이다. 당장 카미카제를 성공시키려면 미군의 대공포화를 뚫고 절묘하게 함선의 약점을 파고 들어야 한다. 당연히 이는 매우 고난도의 조종술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런 고난도의 조종술을 가진 조종사라면 그냥 일반적인 폭격을 가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그리고 이런 실력 있는 파일럿을 후방으로 돌려 교관을 시키며 후진 양성을 시키는 게 전력향상에 도움이 된다. 연합군은 이런 방식을 통해 파일럿들의 노하우를 전수시키며 병력 전체의 질적 향상에 힘을 쏟았다.[12] 출처: Talpo.it[13] 전장에서 중산모를 쓰고 우산을 들고 다닌 기행으로 유명했다.[14] Japs, 일본인을 지칭하는 비하어.[15] 깔아뭉개 으깨진 일본군 장병의 육편이 전차에 들러붙은 모양을 비유한 표현이다.[16] 기관총을 쏘는 소련군 전차병을 일본도로 찌르고 베는 장면은 나온다.[17] 이 치하는 SU-76M을 개조한 물건이다.[18] 쏘는 무기는커녕 대전차지뢰, 폭뢰도 없다. 이리 된 건 전차가 귀족/기사의 상징이나 다름없다보니, 귀족들이 평민 위주인 보병이 전차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소유하는 걸 꺼려서이며, 전쟁에서 구닥다리 기사도 정신이 아직도 통용되는 세계관이라 지뢰같은 비열한 방법론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19] 애초에 여긴 기관총은 최신기술에 실험적인 무기고, 관절부라는 취약점을 지닌 보행병기를 대상으로 하니 무척 효과적일수 밖에 없다.[20] 애초에 이걸 사용하는 오크들은 비실거리는 일본군과는 다르게 맨손으로 사람정도는 쉽게 찢어죽이고 팔다리가 잘려도 돌팔이 의사 오크가 다시 붙이면 멀쩡해지는 괴물들이다.[21] 원작 버전. TV판에선 캐터필러 절단 후 해치를 열고 상반신만 내민 전차장을 죽인 다음 수류탄을 넣었다.[22] 이런 FPS 게임들은 보통 보병의 움직임이 현실보다 훨씬 빠르다. 현실적인 수준을 보려면 ARMA 시리즈가 좋다.[23] 애당초 설정 상 광전사는 베테랑일 경우 홀로 울트라리스크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니 홀로 선 채 사각을 노출한 탱크를 잡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24] 전차에다 대고 휘두르면 데미지가 약해지고 튕겨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