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4 12:10:17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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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종적 특성3. 국민성과 문화4. 한국과의 관계
4.1. 재조선 일본인4.2. 재한 일본인4.3. 재북 일본인
5. 기타6. 행동방식7. 일본인 캐릭터

1. 개요

日本人 / Japanese people

좁은 의미로는 - 일본 국적인 사람의 총칭. 넓은 의미로는 아시아 특유의 종족적 특성들을 지니며, 일본이라는 국가의 사회적, 정신적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일원을 총칭한다. 한국과는 지리적으로 몹시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과 더불어 이웃 국가의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단 일본인=일본 민족이 아니란 점을 생각해둬야 하며 일본에는 외모, 문화에서 확연히 구별되는 아이누 민족이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아이누인은 조몬인의 후손으로 고대 중국, 한반도에서 건너와서 자리잡은 일본인(도래인)과는 다른 혈통에 뿌리를 둔 소수민족이다.[1] 일본 정부에서는 그들을 일본인으로 인정하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또한 문화적으로 본토와 구별되는 류큐인(오키나와 사람들) 또한 일본에 살고 있다.[2] 다만 외모는 본토 일본인과 많이 차이나지는 않는다. 야마토 민족이란 본토 일본인만을 지칭하는 전문적인 표현도 있으나 일상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일본이 아닌 일본인에 대해서 쓰는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도 꽤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때문에 일본인론 관련 서적은 항상 잘 팔리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일본인이라고까지 해가면서 자신들에 대해 알려고 안달복달 하는 사람들도 일본인들 뿐인데 자신들의 여러 요인에 의해 혼란스러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3] 가장 주요한 이유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파시즘나치즘의 영향으로 일본 또한 단일민족론을 강하게 내세웠으나, 패전 이후 일본 국민들의 전반적인 애국심이 크게 떨어지고 미국에 의해 국가주의의 해체를 강요당하는 상황을 겪었다. 이후 고고학 연구로 일본인이 혼혈 민족인 것까지 밝혀짐에 따라 국민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1권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우리나라 사람'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나라 기준으로 더 이상 일본을 '갈라파고스' 단일 민족국가라는 특수한 프리즘을 들이대기 힘들게 되었다. 일본은 2018년 기준 재류 외국인 숫자가 249만명에 달하고 있으며, 도쿄에 거주하는 20대 중 10%가 외국인인 것이 현실이다. 일본에 외국인이 많아졌다는 것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다. 이는 단기 체류나 불법체류자 숫자를 제외한 수치이다. 거기에 이것은 재일동포, 뉴커머 등도 상당수 누락된 숫자이다. 한국의 체류 외국인은 2017년 기준 200만명을 돌파했는데 이 중 절반이 조선족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고 본다면, 인구 비례로 볼때 일본과 한국에 체재(滯在)하는 이민족의 수는 엇비슷한 셈이다.

체류하는 외국인의 출신국가 분포의 경우 중국, 베트남, 네팔 등 아시아인들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한때 일본의 외국인 이민이 숫적으로도 매우 적고 그나마도 상당수가 브라질 등 남미에 편중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말.

아베 정부는 집권 중반기부터 저출산 대책으로 이민을 유입시키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4], 2018년 들어서는 2020년대까지 50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더 받아들이고, 이들이 가족을 동반하는 것은 물론 일본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출산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정책을 펼 예정이다. 비록 공문서에 이민, 출산 장려 등의 문구를 넣었다가 대중의 반발을 우려하여 도로 삭제하였지만 정책 기조 자체는 정부 차원에서 다문화 유치원의 설립을 지원할 정도로 적극적이며, 역사상 일본이 대량의 외국인을 노동력 수급 뿐만 아니라 '이민' 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이는 최근의 국제화 추세에 따라서 일본인을 더이상 '수천년 동안 섬에서 고립되어 독특하게 발전해온 하나의 민족'으로 정의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인종적 특성

만주족과 더불어 한국인유전적으로가장 가까운 민족이다.(2012년 11월 도쿄대 연구발표)[5][6] 하플로그룹/집단 항목의 o2b 단락을 확인해도 알 수 있으며 최근의 '악마문 동굴섬(Devil's gate cave)' 고인류 게놈 연구 결과에서도 한국, 일본인을 동아시아 인종 사이에서도 형제군으로 학계에서 분류할 정도로 유전적인 연관이 매우 깊은 편.(2009. 사이언스지 발표)2017. 02. 01. 고인류 게놈 학계 논문 내용 및 이미지 참조[7][8][9] 다만 한국인에 비해서는 전반적으로 원주민인 조몬계 형질에 영향을 받아 고아시아 계통 유전자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일본인의 특징인 하플로그룹 D계통 유전자는 일본 외에 티베트안다만니코바르 제도에서 발견된다.[10] 이런 연유로 한국인, 중국인에 비하면 이목구비가 다소 뚜렷하고 체모도 많다.[11]

서울대학교의 연구[12]에 의하면 한국인은 일본인과 중국인에 가까운 민족으로 중국인, 일본인과의 Fst값이 각각 0.01155, 0.11127로써 가까운 수치를 보였고 전 대륙을 대상으로 구성된 24개 SNP를 이용하였을 경우에는 한국인은 중국인과 가까운 Fst값을 보여 주었으나 O그룹의 세부 하플로그룹들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는 중국인보다 일본인과 가까운 Fst값-0.01757(중국인0.07269)을 보여 주었다.

일본인들은 치열이 고르지 못하거나 덧니가 난 사람에 대해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일부 선호하는 분위기마저도 있다. 최근에 들어서 미국, 한국과 같이 교정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는 추세이긴 하지만 몇년전만 하더라도 일반인뿐만 아니라 치열이 고르지 못한 연예인들조차 치아교정, 라미네이트와 같은 미용목적의 치료를 대부분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런 취향이 방송매체, 영화등을 통해 전달되면서 한국에 비춰지는 일본인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덧니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덧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친근함, 상징성 등이 있다. 덧니로 유명한 연예인은 이타노 토모미가 있다.[13]

일본인들은 가 작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는 한국인을 비롯한 같은 동아시아계 인종들과 비교했을 때는 부분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인들을 비롯한 남방계 동남아인들에 비해서는 평균 키가 더 크다. 통계 수치로 봐서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평균 키는 17세를 기준으로 남녀 모두 2cm 초중반 정도 한국인이 크다.2002년 조사 또 일본인 20대의 평균 키는 한국인 20대의 평균 키와 2cm~3cm 정도 차이가 난다.링크시도별 연령별 성별 평균 신장 분포 현황 그다지 큰 차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개인 간의 비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몇 천만 명의 평균으로 2cm~3cm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14] 이는 섬 왜소화와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는데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경우 섬을 비롯한 한정적 공간에서는 신장과 체구가 작아지는 유전적 특성이 있으며 실제로 일본인처럼 섬에서 살아온 영국인들의 경우 같은 게르만 계통의 서, 북유럽권 인종들 사이에서 가장 작은 평균키(176cm)를 갖고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게르만 계통의 유럽 백인들 평균키가 180cm를 전후로 하는 것에 비해 꽤나 작은 편. 태생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인 신대륙이라서 상대적으로 타 인종들과의 혼혈 비율이 높은 호주인이나 미국인에 비교해서도 작다. *

일본 서브컬쳐 캐릭터들의 키나 일본 아이돌들의 키가 한국인이 볼 때 꽤나 작은 편이라[15][16] 이런 인식이 퍼진 듯하다. 조금 작긴 하지만 완전 호빗은 아니라고만 알아 두면 된다.

그리고 골격 자체가 한국인의 뼈보다 일본인의 뼈가 더 얇아서 체격적으로 더 왜소해보이는 경향이 있고 일본인의 키 편차[17]는 한국보다 더 크기 때문에 체감상으로는 꽤 작게 느껴질 수 있다.

일본인의 키가 한국인의 키를 일정 기간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일본이 한창 경제 발전하고 있던 시절에 태어난 일본인들과 한국 전쟁 이후 배고픈 시절에 태어난 한국인들의 키를 비교해보면 동세대의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이 더 크다. 이런 키의 역전 현상은 2010년대 현재 50대부터 90대까지 수십 년 넘게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08년 한국 산자부와 일본 문부과학성통계 기준으로 당시 일본인 40대 평균 키는 171.1cm이지만 한국인 40대 평균 키는 168.6cm이다. 50대는 일본은 168.8, 한국은 166.1. 사실 성인 50대 - 90대까지 인구 통틀어서 키 평균을 내보면 해방 이후 2011년까지 계속 꾸준히 일본 남성이 한국 남성보다 키가 컸다.[18] 한국 남성이 일본 남성 평균 키를 다시 역전하기 시작한 50세 이하를 제외하고는 그 윗세대는 꾸준히 일본 남성 평균 키가 한국 남성보다 컸기 때문. 결국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후천적 요인이 유전적 요인을 뛰어넘은 셈이다. 하지만 여성의 평균 키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여성이 일본 여성보다 크다. 평균 체중도 일본인 쪽이 5kg가량 적다.[19]

그렇지만 그 일제강점기조차도 한국인들의 신장이 더 크다는 자료는 많다.
파일:attachment/일본인/japanese_korean_height_1937_colored.jpg

자료의 1937년이면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따른 쌀 수탈을 겪을 대로 겪었다는 것인데도 신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의 자료 뿐만 아니라 구글링을 조금만 해보면 굶어서 야윈 조선인 징용자와 상대적으로 잘 먹었을게 뻔함에도 조선인 징용 노동자보다 키가 작은 일본군 조종사가 같이 서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파일:attachment/77_09_2584_ddody11.jpg
이렇게. 왼쪽은 조선인 징용 노동자, 오른쪽은 일본군 조종사다.

그러니까 이를 해석해본다면 안 그래도 영양 상태가 나빴던 터에 한국 전쟁 후에 한국인들은 경제적 문제로 신장의 상승이 뒤쳐졌던데 비해 일본인의 영양 상태가 발 빠른 경제 성장 덕분에 풍족해져서 한 동안 평균 신장에서 앞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화 국가 중에서 일본이 2차 대전 이후(160cm에서 172cm로) 가장 많이 자랐다고 하니까. 경제 성장이 이뤄지고 영양이 충분하다 못해 과잉이 된 지금에 와서는 한국인의 20대 평균 신장이 일본인의 20대 평균 신장보다 더 크다.

선사시대에 여럿 루트를 통해 고대 아시안 북방계 계통의 수렵 민족이 일본 열도에 정착하였으나(조몬 문화),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중국, 한반도에서 대규모로 이주하거나 혹은 소수가 이주해서 대량으로 인구 증가된 야요이인과 같은 계열의 농경 정착민이 이들을 몰아내거나 흡수해서 현재의 일본인(야요이 문화와 그 이후)이 되었다는 학설이 우세한데 일본 내에서도 DNA 검사 결과와 일본의 전신인 야마토가 백제와의 교류를 통해 중국과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발빠르게 도입해서 일본내에 존재했던 수많은 연맹-부족국가들을 복속시켰고 도래인들을 대거 유입시키면서 인구를 증가시켰다는 역사적 기록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죠몬인들과 야요이인들의 혼혈이라는게 확인되었다. 실제 유전적으로 보면 일본 열도에만 발견되는 유전자 아형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https://ja.wikipedia.org/wiki/%E3%83%A2%E3%83%B3%E3%82%B4%E3%83%AD%E3%82%A4%E3%83%89
William White Howells ( 하버드 대학 인류학 교수)에 의한 황색 인종 구분지도. "Getting Here : The Story of Human Evolution"

일본어한국어의 유사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일본-백제-고구려 계열의 언어신라의 언어가 상이했는데, 삼국통일로 인해 신라어가 현대 한국어가 되었기 때문이란 설을 주장하지만, 백제 목간에 나온 수사법이 현대 한국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이아몬드의 가설은 틀린 것으로 결론났다. 백제와 일본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아 역관을 두었단 역사적 기록도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고구려어, 백제어-일본어의 관계는 현대 스웨덴어-핀란드어 관계처럼 언어동조대일 뿐이란 게 정설이다.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의 경우는 다소 흥미로운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역사시대 이전 한반도인들은 당시 일본 열도 토착민들을 밀어내던 일본인들[20]과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는데, 그들과는 다른 만주를 비롯한 북방 민족 집단의 한반도 침입에 의해 한반도에 남아있던 한국인들만 현대 한국어와 관련있는 언어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어서 설명하자면 고구려어와 일본어 사이엔 친족성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에 반해 한국어, 여진어, 만주어 사이엔 연관성[21]이 존재한다. 그리고 고구려 어족의 영향을 받은 백제의 영향권에 있던 서일본어가 백제어에 영향받은 증거는 찾았으나 동일본어에서는 찾지 못하였다. 이는 고구려어의 계승이라 할 수 있는 백제어가 일본어와 동계가 아니라는 의미이며, 일본 열도 전체에서 그 어휘들에 의미론적인 쌍에 해당하여 사용되는 어휘가 존재한다는 점을 들어 일본어가 이미 일본 열도에 광범위하게 퍼져서 분화된 상태에서 고구려 어족의 어휘들이 외래어로써 유입되었다는 증거이다.[22] 그에 의하면 초기 신라어에서는 일본어족과 관련성이 발견되었지만 만주 지역의 민족들(쉽게 말하자면 고구려, 백제)이 점차 한반도로 남하하여 압박[23]하면서 삼국의 언어(북방 계열의 언어 + 초기 신라어)가 서로 비슷하게 수렴하여 형성된 언어가 현대 한국어이다.

실제로 일본인은 한국인과 유전자가 상당히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꽤나 괴리가 있는 유전자들[24]도 있으며 일본인과 한국인의 부계는 출신이 다르지만 일본인의 구인의 모라 불리는 모계는 한국인과 거의 일치하는 편이다. 모계로만 보자면 만주족보다도 가깝게 여겨질 수도 있다. 간혹 Y 하플로그룹이 너무 달라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적 유사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지만 Y 하플로그룹만 유전자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의 경우에는 비슷한 편이긴 하나 애초에 한국인과 부계의 출신도 조금 다른 편이고 모계도 조금 다른 편에다 상대적으로 많은 민족이 혼합되어서 일본인보다 유전적인 거리가 더 먼 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동네 집단에서 출발하였고 여자 집단의 경우 서로가 동일하지만 한반도에 정착한 한국인에게는 A라는 남자 집단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왔고 일본 열도에 정착한 일본인에게는 B라는 남자 집단이 꽤 들어왔다. 중국인은 한국, 일본과는 엄연히 다른 근처 이웃 집단에서 출발하여 중국 대륙에 정착한 이후 온갖 집단의 사람들과 배틀로얄을 벌이다 그들을 흡수하였으며 지금도 흡수 중에 있다.[25]

3. 국민성과 문화

  • 1. 와(和) 문화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며, 마찬가지로 자신이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입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이것은 和(와)라는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일본의 정신 세계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게만 요약하자면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지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26] 이 때문에 얼굴에 가능한 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하고, 기분이 나쁘더라도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나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함이기도 하다. 만약에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얼굴에 미소를 잃고 표정을 찡그리고 다니면 그것은 자신 개인의 문제 때문에 그 문제와 관련 없는,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和(와)를 잃는 것을 뜻한다. 일본인들은 규칙을 깨는 사람을 경멸 수준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와(和)를 깬 사람은 그 일대에서 사회 생활이 힘들다.
외국인이 보기엔 '친절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 등 긍정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본인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일본에 관광을 온 외국인들이 길거리에서 자기 나라인 것처럼 큰 소리로 떠든다든가 쓰레기를 버린다든가 술을 벌컥벌컥 마셔서 와(和)를 깨는 행동을 하면 깜짝 놀라고, 나쁘게 본다. 기분이 나쁘다고 외국에 있을 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면,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기도 한다. 일본에 입국한 수많은 외국인 중 특히 한국인과 인도인, 중국인들이 와(和)라는 일본 사회의 약속을 잘 깨뜨리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다. 그 중 인도인은 좀 과하게 말해서 전 세계 모든 민족 중 최악으로 꼽힌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모로 평판이 그닥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심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별 것도 아닌 행동을 무심결에 했다가 경찰차 두 세 대가 오기도 하는데,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래서 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일본에 관광을 왔다가 법적으로 작게라도 연루되면 영구적으로 일본 여행을 올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강제 추방인데, 일본은 관광객이 문제를 일으키면 강제 추방을 시키고, 영원히 일본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법적인 조치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용서해 준다거나 하는 것이 없이 일본인들은 그 사람들이 이미 기회가 있었는데 깨뜨렸다고 생각한다.

어제까지 죽창을 들고 덤비던 일본 병사가 가이드를 맡아서 자신들을 친절하게 안내하자 한동안 불안해했다는 미군 병사들의 일담에서도 볼 수 있듯,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꽤나 불가사의한 국민성이다. 사실 한국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같은 동양권 사람들이 봐도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국민성이다. 아니, 심지어는 같은 일본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감정표현이 솔직하고 밝다는 인식이 강한 오사카후쿠오카 지역 주민들도 자기 나라 특유의 폐쇄성과 감정, 생각을 극도로 숨기는 문화가 이해 안 된다고 한다[27].

별도로 '와 문화' 자체도 지역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예로 도쿄 메갈로폴리스 권역이나[28] 교토 등지에 비해서 홋카이도, 오키나와, 후쿠오카, 오사카 같은 곳에서는 위에 서술된 것 보다는 비교적 느슨한 편이다. 또한 21세기 들어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의 주범이자 소자화(少子化) 현상의 원흉[29]으로 지목받고 있으며,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이런 성향 역시 점차 희석되는 추세에 있다.

와 문화에 대한 설명이 후술되는 메이와쿠와 뒤섞여 있어 보충하면 와 문화는 간단히 말해 전체 집단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일본에는 '공기를 읽는다'는 관용구가 있다. 한국식으로 하면 '눈치'나 '분위기'로 대응되는데,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하는 '눈치 좀 있어라' 수준이 아니라 이걸 국가의 법률 바로 다음갈 정도로 중히 여기며 사회적으로 암묵하에 강요한다. 개인이 조직을 위해 강제로 와를 맞추는 것이다.[30][31]

이게 안되는 사람은 '공기를 못 읽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데, 이 말은 '이 사람 싫은 느낌' 정도의 뉘앙스를 가지며 인간관계에서 치명적이다. 이니셜 만들기 좋아하는 현대 일본인들 답게 줄여서 KY라고도 하는데, '空気読めない'의 약어다. 와에 어긋나는 사람은 강제로 맞추려고 하고 그게 안되면 집단적으로 배제해버리는 일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마치 인체에서 백혈구가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메이와쿠는 와의 일부분이다.
  • 2. 메이와쿠 문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가는 일명 '메이와쿠(めいわく, 迷惑)' 문화가 있다. 일례로 전철이나 엘리베이터와 같이 낯선 사람들과 이용하는 곳에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않으며, 휴대폰 통화조차 삼간다.[32] 그래서 일본인이라고 하면 우수한 질서 의식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는 전국 시대, 에도 막부 시대부터 전해진 관습의 영향이 크다.[33]

특히 일본인 하면 다테마에(建前, 겉마음)혼네(本音, 속마음)가 유명하다.[34] 이것은 일본인 특유의 와(和)를 강조하는 사회성 등에서 비롯된 전통 사회 규범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이해하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일본의 전통 사회 규범은 개인의 주장은 최대한 억제하면서 집단 내에서 대립이 생기는 것을 피하고 개인의 욕구와 감정을 희생하여 원만한 대인관계와 집단의 단결을 강조하는데, 이때 사회 규범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다테마에를 정면으로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는다.

그 결과 대체로 상대의 진정한 마음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지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의식 구조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른 사람과 눈에 띄게 대접이 다르거나 목소리가 낮거나 하는 식으로 눈에 띄는 다테마에를 보이는 사람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인보다 더 곧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다테마에라는 것은 딱 부러지게 공격적인 말을 하는 것을 꺼리는 것 정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인은 진심을 털어 놓아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표면적인 원칙만을 강조하는 쪽을 택하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동안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규범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상대의 부탁에 대해 사실은 거절할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딱 잘라서 아니(NO)라고 분명하게 거절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따금 국제 사회에서 싫어도 싫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한 예로 외국에서는 일본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대답(다테마에)을 듣고 계약 성사가 눈앞인 줄 알고 희희낙락했다가 이후 확인 전화 시 "그런 대답은 한 적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배신감과 좌절을 느낀 적이 많다고 한다.[35] 한국에서 쇼핑하다가 마음에 안 들 때 "둘러보고 올게요." 하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항상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여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일본 사람의 대인관계의 습관이다. 또한 언어를 문화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으로 볼 때, 이러한 표현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며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오해를 유발하면서 발생한 문제로도 볼 수 있다. 90년대에 이르러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조금 조명을 받게 되면서 일본도 혼네를 감추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기는 어렵고 이해되기 어려운 것임을 느끼며 다테마에에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일본인들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 [36]

외국인이 볼때 가장 당황스러운 점은 특정한 주제나 영역, 그리고 공적이거나 외부인을 상대하는 등의 상황에서 일본인들이 취하는 태도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그렇다. 그리고 외부인 입장에서는 단편적인 것만 보고 '내가 가졌던 일본인의 이미지보다 개방적이더라', '일본인은 역시 속내를 읽을 수 없다'는 지극히 상반적인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건 설명하기 매우 미묘하고 어려운 부분으로, 일본인만의 감각이 작용한다는걸 부정할 수 없다.

와, 그리고 메이와쿠 문화 탓에 정치권이던 회사던 토론이나 회의 등 의사 결정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고, 간부나 높으신 분들은 사전교섭으로 사실상 이의제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네마와시(根回し, 뿌리 솎아내기)라 부른다.

혼네를 평소에는 꽁꽁 숨겨두다가 특정한 공간에 있을 때에만 한꺼번에 털어버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단골 이자카야오뎅집, 꼬치구이집 등에서 지인이나 주인과 뒷담화 하는 일은 단순히 만화나 애니상의 상상이 아니며, 현실에서도 꽤 존재하는 풍경이다.
  • 3. 역사상에서 드러나는 대외관계에서의 잔악함과 이중적 면모
1, 2번 문단이 무색할 정도로 일본인들은 해외로의 전쟁과 약탈에서 상대국 혹은 상대민족에게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잔인한 면모들을 보였다. 중국과 한반도의 국가들에게 일본인들의 침략은 고대와 중세,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고 그 잔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37]

삼국시대부터 기록된 왜구의 침략과 잔인성은 고려 시기 기록에 잘 나와있다. <고려사 : 변안열전>에 의하면 왜구들은 한반도에 상륙하여 제일 먼저 고려 여자 아이들을 잡아다가 배를 갈라 장기를 끄집어내어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해준 것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쌀을 약탈하여 배로 가져가는데 흘러서 땅이 온통 흰쌀로 하얗게 보였다고 할 정도. 살육과 강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삼강행실도>에는 왜구의 겁탈에 저항하다 순절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잔인성이 사실상 고려 전국에서 지속되었다니 시달린 우리 조상들에게 묵념할 일이다. 임진왜란에서 보이는 코와 귀무덤은 왜군의 잔인성을 잘 알려주는 사례다. 중국 역시 중세의 왜구의 침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명의 척계광이 쓴 기효신서와 절강병법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일본인의 잔인성은 지속되어서 한일병합에 이르기까지 남한 대토벌 작전 등을 통해 수많은 조선인들을 죽였고 3.1 운동 과정과 간도 참변, 관동대지진에서의 조선인 학살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고문을 당했다. 일본군 위안부, 조선인 강제 징용 문제 역시 일본인들의 간악함을 볼 수 있는 경우이다. 중국 역시 난징 대학살, 충칭 대공습 등 현세의 지옥들을 일본군을 통해 겪은 바 있고, 일본군을 상대한 미군 역시도 마닐라 대학살이나 바탄 죽음의 행진, 치치시마섬 식인 사건 등과 같은 잔혹함을 겪은 바 있다. 동남아시아 역시 일본군의 침략을 받으면서 상당한 수의 일본군 위안부와 침략피해를 당했다.

이는 고대시절부터 전근대에 이르기까지 구축해온 일본인들만의 독특하고 치밀한 본인 집단중시와 '일본인'이 아닌 이외의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강한 경계심과 배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권 의식과 글로벌 사회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여타 문명권 역시 타 문명권을 배척하거나 경계하거나 침략하는 행위는 수두룩했다.

다만 유독 일본인만이 본인들 이외의 타 문명권, 국가를 상대로 도가 지나친 잔혹한 행위들을 반복한 것은 위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특정 집단 내에서의 집요할 정도로 '와'를 중시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말 그대로 이 '와'의 정신이 전근대의 일본에서는 일본인들 사회에서만 통용되었다는 말이다. 즉 다른 문화권과 국가의 사람들은 '일본인'이라는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았기에 '와' 정신을 지킬 필요가 없었으며 본인 집단 규격외의 것들은 따돌리고 배척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유독 극심하다보니 자연스레 공격성까지 비치게 된 것이다. 특히나 '일본인' 자신들이 상대에 비해 수적으로나 양질적으로나 우세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이 공격성은 지나칠 정도로 가열화되고 조직의 분위기나 암묵적인 룰을 닥치고 따르는 습성이 있어 '일본인'이라는 조직 내부의 어느 한 명도 이를 제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재에도 잠재적으로 남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따돌림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지메'문화이다. 한 명 한 명의 일본인은 집단 내에서의 '와'를 무의식적으로 중시하기에 기본적으로 얌전하고 예를 갖추는듯 하지만 조직 내부 혹은 아예 본인들의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고 튀는 상대적 약자, 소수세력에 대해 '내가 속한 조직에 반대되는 자이고 이런 자들은 우리 조직의 분위기와 룰을 흐트리기에 배척하고 공격해야 마땅하다'라는 무의식적인 인식으로 이지메가 시작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위와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전시에 돌입한 군인들의 정신상태는 대다수의 일반 민간인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과거 왜군, 일본군들의 잔악한 사례들은 타국군에서 잘 찾아볼 수가 없는 전대미문의 것이 많다는 점, 그 군인들이 침략, 약탈을 끝낸 후 귀국하면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점에서 단지 군인이어서 저런 짓들을 저질렀다는 일반화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2차 대전기의 강간마 짓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전후 귀환해서도 일본 국내에서 연쇄강간살인을 저지른 고다이라 요시오 같은 자도 있다. 게다가 왜구들과 전국시대의 일본군인들은 일회성 약탈 또는 전쟁이 아닌, 주업에 맞먹는 일이 약탈과 전쟁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전근대 일본의 징병 연령대 남성들은 인생의 대부분에서 상당한 잔혹성을 내포했던 셈이다.[38] 이런 기이한 측면은 6번 종교문화를 참고해도 좋다.

8번 문단에 간략히 언급되어 있듯이, 현재도 일본 극우 세력들의 망언과 만행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한 혐한적, 정치적인 구호 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 '한국인들을 강간하자!'와 같은 중범죄성 발언이 심상찮게 튀어나온다는 점은 걱정거리다. 물론 이런 발언을 내뱉는 일본 극우종자들은 극우세력 내에서도 소수이며 다른 일본인들에게조차 비판을 받고 있으나, 이들이 존재하며 극우정권의 묵인 아래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잔악함까지는 아니지만 겉으로 얌전한 모습과는 다르게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일본에서 1970년대까지 시민 의식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을 때에는 포이스테(ポイ捨て)라 하여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마구 버리는 일이 매우 잦았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현재진행형으로도 시부야 밤거리나 오사카 골목길처럼 대도시권 기준으로 보면 더러운 곳이 많다. 사진 링크 첨부. 물론 한국, 미국, 유럽권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권은 더러운 경우가 일반적이라서 일본의 경우가 특이 케이스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전 세계적인 기준에선 최상위권으로 깨끗한 편이다.

미나마타병, 카네미 유증 사건같은 사람들의 무책임한 면모로 인해 발생한 각종 산업재해도 1950년대 - 1960년대에 꽤나 빈번하게 벌어졌던 일이다. 이 부분은 일본이 선진화되고 환경오염이 사회 논쟁거리가 되면서 개선되었지만 이게 해외로 불똥이 튀어서 1960년대 여행자유화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는 일본인들이 어글리 재패니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세계에서 매너가 안 좋기로 유명했다. 여하튼 어글리 재피니즈라는 이미지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에 대대적인 개도 캠페인으로 일본인 여행자들이 그런대로 좋은 평을 들을 정도로 개선되었으며 현재 일본 특유의 깨끗한 길거리나 도시 풍경의 이미지를 갖기 시작한 때도 이 시기부터이다. 이것을 1990년대에 한국인이 이어받다가(때마침 한국이 여행자유화 되었던 시점과 맞물린다.) 2000년대 와서는 중국인이 이어받았다. 시민 의식과는 별개로 2000년대 이후 현재, 세계에서 짝퉁이라며 악명이 높은 메이드 인 차이나처럼 1960년대까지는 메이드 인 재팬이 악명이 높았다(...)
  • 4. 애매한 개인주의
개인주의더치 페이가 당연시되고 있다. 실제로도 일본인은 식당에서도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켜서 먹는 경향이 강하며, 애초에 이 사람들의 식사 문화를 설명하는 단어가 이치닌마에(一人前, 각자의 몫)일 정도이다. 한국사람이 자기 나라 사람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자주 부르는 것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 사람을 '일본인'이라 객관적으로 칭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서도 이를테면 터키그리스 같은 남유럽계 국가나 중동 및 동남아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는 지역에서는 자신의 나라를 부를 때 우리나라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문화가 많이 개인주의로 변질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나 권위에 대한 저항권까지 폭넓게 허용하는 서양권과 비교했을 때 개인주의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오히려 서양인들은 일본이 아직도 공동체주의 사회라 여긴다. 개인이 뭘 하던 상관은 안 하지만 공동체가 약속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던지, 혹은 저항하는 순간 바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오타쿠히키코모리 같은 사회 문제도 일본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다. 이렇게 '고립될 자유'를 허용하는 예시는 캡슐호텔이나 외톨이 식당의 사례로도 나타난다.

즉, 유럽인의 개인주의는 공동체라는 개념이 없이 상대방을 개인으로서 서로가 동급으로 보는 시각의 개인주의이지만, 일본인의 개인주의는 공동체사회의 규율(서열 등)에 따르는 이상, 서로를 간섭하거나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각의 개인주의이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유럽식 개인주의는 커다란 집합 틀이 없는 상태에서 수많은 교집합을 만드는 식, 일본식 개인주의는 커다란 집합 안에[39] 온전히 들어가 있으면서 서로간은 교집합 없이 떨어져 있는 모습으로 그릴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계율이나 분위기, 유행에 철두철미할 정도로 충실한 것이 특징.

결국 이 역시 와 문화의 영향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는 서구권의 개인주의와는 같은 것으로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 설문을 해봐도 정작 한국인들 스스로가 더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
  • 5. 목욕 문화
위생 관념이 보편화된 요즘은 그렇게 특이할 것도 없지만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게 당연시되던 옛날에는 목욕이 습관화된 일본인들이 상당히 특이하게 비쳤다는 말이 있다.

일본인은 집에 욕조(風呂)가 없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워 할 정도로 좋아한다. 그것도 반신욕 같은 것이 아닌 푹 담그는 것을 선호하기에 욕조의 깊이가 타국의 것보다 1.5~2배는 깊은 엄청난 모습이 일반적. 일본은 쓰시마 난류의 영향으로 연중 강수량이 고르므로 씻을 물이 매우 흔하고, 온천도 아주 많기에 목욕문화가 많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했다.
  • 6. 종교 문화 (신토)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오랜 기간 불교와 전통종교인 신토를 일상적인 신앙으로써 근대 이후로도 끈질기게 유지했기 때문에 범신론 혹은 다신론적인 성향이 훨씬 강하다. 그리고 언어도 전체적으로 불교의 색채가 매우 짙다. 한국이 조선 시대에 불교가 한동안 배척당했고 중국은 한족 왕조가 대개 유교를 강조한데다가 결정적으로 공산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불교 어휘가 덜 쓰이게 된 데 비해 일본은 불교 어휘가 더 자주 쓰이고 많이 쓰였다. 특히 범어는 더욱 그렇다. 일본어의 경우를 보면 칙쇼라는 욕도 기원이 불교 용어인 축생이다. 축생, 아수라, 사바, 왕생[40], 꼬맹이를 속되게 이르는 가키나 코조도 불교 용어인 아귀동자승이라는 뜻이고, 여성을 속되게 이르는 아마라는 단어도 비구니를 일본식으로 훈독한 단어이다. 이렇듯 불교 용어가 일본어 곳곳에 있으며 유교적인 느낌이 강한 한국어[41]중국어와는 다르다. 이러한 종교 문화 때문에 일본이 해외 문화를 수입할 당시에도 잘못 변질하여 받아들일 정도로, 할로윈이나 성탄절이 공휴일도 아닌데 불구하고 그냥 케익이나 치킨 먹으며 노는 날(...)로 인식하는 정도이다. 심지어 할로윈이 무슨 의미로 있는 날[42]인 건 물론, 성탄절이 누구의 탄신일인지조차 모르는 건 기본이며 서양과 한국에서는 비종교인들도 아는 부활절의 존재는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성탄절을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때문에 도덕관, 생사관도 특이하다는 평가가 있다. 과거 일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오래된 돌이나 나무, 심지어 숲이나 집, 가족, 영웅들이나 악인들 조차도 신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의 신은 유일신이 아닌 신토에서의 신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이 관용어로 쓰는 '카미'는 한국어로 직역되어 '신'으로 일컬어지고 그 때문에 유일신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나 그 본질은 '혼령'인 셈이다.

문제는 이 카미는 선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연 그 자체라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설령 대량 살인마라 할지라도 죽어서 혼령이 되고 자연에서 어딘가에 깃든다고 보았다. 선인, 영웅, 애국자, 악인, 요절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을 일본인들은 카미로 모셨다. 혼령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저주나 축복을 내릴 수 있으며, 산 자들이 죽어서 혼령이 되는 것이기에 결국은 산 자 죽은 자를 막론한 모든 만물을 존중해야한다는 것이 신토의 가르침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일본인들은 죽음을 혼령이 되어 자연에 깃드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며, 현세의 행동에 따라 사후에 모종의 후과가 있다는 믿음은 약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 특유의 죽음에 대한 미학적 접근과 숭배, 자살에 대한 미화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신토천황, 야스쿠니 신사[43] 등 관련 문서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적지않은 일본인들에겐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이나 애국자 또는 억울하게 요절한 이들'이 합사되어있는 신사로서, 단순한 메모리얼 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그들의 혼령을 잘 모시는 것이 국가와 개인에게 축복을 가져다주거나 재앙을 막아주는 등으로 보답받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상술했듯 신토에서의 혼령이란 개체뿐 아니라 숲이나 가족, 영웅들 또는 악인들처럼 집단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합사된 이상 죽은 사람 하나하나를 구분해낼 수는 없다고 본다.

기복신앙은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신정에 신사나 절에 가서 참배하는 인파만 봐도 그야말로 답이 없는 수준.
  • 7. 국가를 자신들의 요람으로서 생각한다.
일본인의 개인주의가 서구인의 개인주의와 다르듯, 일본인들의 국가관이나 애국이라는 개념의 형태는 매우 특이하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국가관은 우리의 공동체 주의를 확대한 것과 같고, 중국인의 국가관은 중화 사상을 오래 유지해 온 만큼 때때로 자신과 국가를 일치시키기 까지 하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이 남다른데, 일본인은 이들과 엇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본이 고대엔 섬이라서 주변국의 침략을 받지 않았고, 타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먼데다 남북전쟁 시대에 제국주의 테크를 타서 식민지가 되는 것을 피했던 근대 제국주의 시절, 높은 경제력으로 타국의 경제력에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것을 피한 현대에서까지 철저히 국내를 방어해오며 일본인들을 지켜주었기에, 일본인들의 국가관은 한국인이 민족주의 사상으로 물든 개발독재 시대를 지나기 전까지 유지해왔었고, 별종인 독일인을 제외한 유럽인들의 국가관에 가까운 국가관인 '우리 가족이랑 우리 이웃사촌들, 그리고 이들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과 땅은 우리가 지켜야지, 내가 안지키면 누가 나 대신 이들을 지켜주겠어?'와는 사뭇 다른 '이 열도가 아니면 우린 결국 침략에 항상 노출되고 말 거야. 우리가 계속 평화와 번영을 누리도록 이 곳을 지켜 내야 해!'에 가깝다. 일본 땅이 조국 땅이니까 지킨다기 보단, 자기들이 안전히 숨을 수 있는 성과 같은 땅덩어리니 잃기 전에 나서서 지킨다는 것. 애초에 일본인은 역사관 자체가 개인과 국가, 그리고 역사를 별개로 생각해 어떤 정치적 사상이나 이념 자체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항이 있다. 군국주의 시절이 유독 이레귤러였던 것.
  • 8. 과거사에 대한 시각
일본인들은 2차대전 패전 직후 민주주의와 함께 평화주의를 강제로 이식받았는데[44], 이것이 반세기동안 현대 일본 사회에서 생각보다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자위대가 있다 하지만) 기존의 일본군이 강제 해체되고 징병제가 금지되었으며, 문민통제도 예상 외로 꽤 철저하게 지켜지는 등 일본 사회는 2차대전 전과 비교했을 때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이루어 냈다. 사실 징병제로 대다수의 남성이 병역을 이행하고, 한민족인 북한과 반세기가 넘는 기간동안 체제대결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에 비해, 현대 일본인들은 전쟁, 과거사, 국가관에 대해서 무감각하다고 봐도 좋다.

물론 일본에서 극히 소수를 차지하는 신우익주의자들은 전후부터 현재까지 준동해오고 있으나 대중의 무관심과 일본 공안의 감시로 큰 사고는 못치고 있다. 미시마 사건이 그나마 한 예외라고 할 것이다.

2000년대 초까지도 일본인들은 오히려 한국인보다 훨씬 평화주의적인 성향이 많았고 호전적인 사람들은 일부 우익단체 등 아주 극소수에 그쳤으나, 2010년대 들어 정세 변화,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의 부상과 맞물려 우익세력이 다소 증가하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일본인들 대다수는 상술한 이유로 진지한 관심 자체가 적고, 한국 등과 달리 역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민족정서를 가질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크게 보도되는 극우시위 현장을 가보면 시위대들이 경찰들에게 고립되어있고 일반 시민들은 그들에게 눈길도 안주고 지나쳐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차별을 반대하는 시위가 더 동조를 받으면 받지... 하시모토 도루마저도 헤이트 스피치 금지, 반전을 내걸고 있는게 현실이다. 한국에서 크게 보도된 새역모 등의 역사왜곡 교과서 논란만 보면 일본의 과거사 부정이 점점 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십상이나,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일본은 2차대전과 전쟁범죄에 관한 역사교육을 안해왔는데, 탈구입아를 하는 판에 이러다보면 아시아 주변국들에게 외면받을 수 밖에 없는 추세에 따라 점점 중립적으로라도 교육을 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어가고 있다. 또한 일본은 단카이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강한 편이다. 위안부 문제가 이렇게 큰 국제적 이슈가 된 데에는 김학순 할머니의 용감한 증언과 우리나라 정부의 노력도 있지만, 일본 아사히 신문 등 일본의 양심있는 진보 지식인들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일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일본회의' 등 일부 우익계열에서는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회복시키는 것이 '일본을 되찾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역사 수정주의적인 관점을 내비치고 있고 아베 내각도 그런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동시에 이 세력은 자민당 내에서도 우려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친미 성향이면서도[45] 친이민, 친경단련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 우익의 이미지인 신우익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4. 한국과의 관계

국제적으로 이웃나라 국민끼리 사이가 좋은 경우는 적다. 한일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일본 내지는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은 50대 60대 장년층들일수록 강하며 30대 이하의 젊은층은 일본의 문화가 개방되면서 상당히 완화,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경도되어 나아가버리는 경우도 있는 편.

이는 이전부터 있었던 역사 때문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경술국치로 식민지 경험을 한 굴욕적인 역사가 희석되기에는 시간이 아직 덜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일본인들 사이에 그러한 어두운 과거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지 않은 탓이 매우 크다. 일본 극우들은 여전히 '강한 일본'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중에도 과거사 교육을 받지 않아 무념무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한국에서의 일본 문화 개방이나 일본에서의 한류 붐으로 인해 문화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한일 커플들이 맺어졌었고 특히 일본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들의 수가 1995년경엔 2842건에 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46] 그러나 일본은 1억 2천만명 이상의 사람이 사는 곳이며, 국민성을 떠나서 개개인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니, 지나친 환상이나 지나친 선입견은 옳지않다는 것을 유념하자.

1999년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인 일본인이 기고한 한국인의 일본비판에 대한 글이다. 한국인의 일본비판을 비판하면 1999년 미국인 교수 로버트 파우저씨가 기고한 기사에서는 "일본의 공무원들이 공항에서 한국인 방문객에게 반말로 대한다"는 기고문을 실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한일관계 대등한가

대일문화개방이 있은 뒤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악감정들은 꽤 사그라들고 있는 추세지만, 여러 의미에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정말 잘 맞는다. 하지만 비즈니스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사업 파트너로 높게 평가한다.[47] 장인정신, 성실성, 신용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상호 신뢰를 갖고 뭔가를 해보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공들여 깊은 관계를 쌓아야한다는게 부담스럽다는 평가도 있다.[48] 또한 전반적인 산업 분위기가 일본은 보수적인 측면이 강한데, 20세기가 끝남과 동시에 발전도 멎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였다. 1억에 달하는 내수시장이라는 고인 물에서 안주하다가 경쟁력을 잃은게 많다. 때문에 그 외국인들이 사업하기 어렵다는 일본에 최근들어 경쟁력이 강한 외국 기업들이 많이 밀고 들어갔다.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등도 이 점을 잘 이용해 여러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K팝 등 한류 문화의 흥행도 그 맥락.

일본은 서구권을 모방, 응용해서 한때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경제적 번영을 누렸을 시기에, 특히 한참 전성기의 피크를 찍었던 80년대 중후반에는 'Japan As Number One (세계 제일 일본)',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등의 자국에 대한 자신감이 대중적으로 널리 자리잡게 되었다.[49] 자신들이 미국과 거의 우열을 가리는 일류 선진국이고 더이상 외국을 모방하거나 그쪽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소비자들에게 통하면 외국에서도 바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50] 소비자들 또한 일본제가 무조건 제일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신감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것이 당장 중국의 부상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다음의 경제규모를 자랑했고[51], 음반시장 규모는 바로 최근까지도 세계 2위에 달했기 때문.[52] 어쨌건 이러한 콧대 높은 인식은 버블경제 붕괴로 말미암은 기나긴 헤이세이 불황과 함께 결과적으로 일본에 독이 되었다.

일본에서 보는 한국 또한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발언이 결정타였는데, 이때 친한 성향의 일본인들이 상당수 등을 돌리기도 했다. 또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상당한 타격을 줬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불신을 표출하고 있으며, 양국의 통화스왑도 2017년에 연장 협상을 중단한 상황. 한국인 또는 한국계에 대해서는 일본인에 비해 허풍이 심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툭하면 사죄 보상 타령하며 시비를 붙인다는 편견도 있다. 그러나 문화 교류는 늘어나고 있는 편으로 K팝이나 우리나라의 패션, 화장품, 음식에 대한 관심은 00년대 초중반경 소위 '한류 붐' 시절에 주로 중년층 여성들이 열광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일본의 젊은 층도 사로잡으면서 대중문화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여전히 한국의 대일무역적자가 상당한 것도 사실이고, 소위 '일본 중소기업이 거래 끊으면 삼성은 망한다'라는 말과 같이 자신들보다는 한수 낮은 2류국가로 보는 인식이 강했으나 한국의 기업들이 국제적인 궤도에 오른 2010년대 중반부터는 애써 그렇게 보려는 정신승리적인 양상도 강해지는 추세. 그런 분위기가 잘 정리된 기사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재일교포에 대한 고정관념도 큰데다 자기들이 잘나가고 한국은 군사정권 하의 빈국일 때의 철 지난 감각이 아직도 있기 때문에 한국을 무시하는 편이나, 젊을 수록 한국에 대해서 보다 대등하면서도 긍정적인 인식이 많은 편이다.

일본의 장년, 노년층 중에는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를 비슷하게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살펴보면 상당히 일리있는 관점이다. 일단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일본인이 다 잘 살았던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대다수의 일본인들 역시 당시 체제하에서 심하게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53]. 당장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은 한국의 군사정권 같은 힘든 시기였다. 당장 카미카제같은 군사독재 제국주의 당시 일본의 미친 짓만 봐도 당시 일본 군부는 정상이 아니었다. 무기를 만들기 위해 젓가락이나 부엌칼을 포함해 철이란 철은 죄다 수탈해가고 자국의 식량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남자들은 군인, 노동자로 징용당해 끌려가 가정이 무너지곤했다는 묘사가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그런 군부가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 서민들 삶이야 좋을 수가 없었다.[54] 또한 각자 전쟁을 겪은 이후 비슷한 시기에 GHQ, 미군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으며 시기는 비록 달랐지만 중노년층들이 젊은 시절 산업화를 이끌어 황폐화된 인프라를 재구축하고 자국의 고도성장을 지켜봐온 부분에서도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는 듯 하다.

일본 제국 당시의 비참했던 대다수 일본 서민들의 삶을 덧대어 설명하자면 정치는 명목상 민주주의 체제였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장식일 뿐, 치안유지법 때문에 사실상 귀족 중심의 독재와 지역연고 코드인사로 굴러가며 실질적으로는 전근대적 봉건체제나 다름없었다.[55] 그리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2.26 사건 이후 도조 히데키 등이 장악하는 군부 독재 체제로 바뀌면서 더욱 막장으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전쟁을 일으켜 식민지를 수탈한 돈은 모조리 군부와 재벌 호주머니속으로만 들어가다 보니 서민들은 지속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았다. 특히 서민들은 만주, 몽골, 중국, 한국 등지의 개척단에 반강제로[56] 끌려나갔고,[57] 태평양 전쟁에서는 결국 패망하게 된다. 일본 서민들, 특히 여자들은 내선일체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인과 원치않는 강제 정략결혼을 한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패망하고 식민지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국적이 반강제로 박탈당하며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많다. 현재도 생존자가 국내에 남아 있다. 그나마 한국은 국교 정상화가 빨라서 60년대, 중국은 국교 정상화가 된 80년대에야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 있는 잔류 일본인들은 생사조차 불분명해졌다. 미군의 폭격으로 본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1945년 이후에는 GHQ 군정 하에서 1958년 전쟁 전 경제수준 회복선언을 할 때까지 반식민지 상태를 13년 정도 경험한다. 미국이 일본을 농업 국가로 만드려다가 한국전쟁 덕분에 계획을 취소했다.[58]

일제강점기 당시였던 1910년 이후부터는 식민지 및 속령지역이었던 한반도에 일부 일본인들이 이주를 해오며 살았던 적도 있었고 넓게는 중국 대륙까지 이주하여 '왜인촌(倭人村)' 이라는 집단촌까지 형성했다는 일설도 있었다.[59] 그리고 이들은 한반도의 지배계층으로 군경(軍警)까지 주둔했지만 1945년 8월 15일 한반도가 해방이 되면서 거의 대부분이 본국으로 쫓겨났고 보복도 꽤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부 일본인들은 조선에 남아있을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죄다 일본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어떤 일본인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이 식량을 나눠줘서 고마웠다고 수기에 쓰기도 하였였다. 그러나 일부 일본으로 돌아가던 일본인은 높은 비율로 일본인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에 움직이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했다고 한다. 당시 돌아가지 못한 일부 일본인은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눈치 때문에 아예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 행세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망절씨 항목 참고) 이 역시도 케바케로 일본인 처 모임이 각 지역별로 있음. 이 할머니들은 일본국적을 유지한 채로 계속 한국에 살고 있다.

4.1. 재조선 일본인

19세기 말에 한반도에 일본인은 수백명 수준이었으나 1945년 일제의 패망 직전에는 60만이었다. 일본이 패하자 이들은 미군정에 의해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런 이들을 히키아게샤라고 불렀다. '조선을 떠나며'를 읽어보면 일본이 8.15 광복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반응을 묘사한 단원을 읽어보면 상당수가 한시바삐 조선을 떠나야한다는 심정이었지만 그들이 낳은 자녀들, 특히 조선에서 출생해서 터전을 잡고있던 다수 재조선 일본인 2세들은 자신들이 왜 떠나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원산지역에는 일본인 촌이 있어서 자체 치안은 물론이거니와 학교등의 편의시설이 들어있어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모여사는 지역이 있었는데. 광복이 되어 많은 조선인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조선인들이 이렇게나 많았나?"(...)라고 할 정도로 분리된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게다가 미군정이 이들이 반출할 수 있는 재산을 제한했기 때문에 대부분 야반도주 하듯이 조선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일본에 돌아와서도 냉대를 받아야 했던 것이 전시동안의 궁핍한 생활과 공습에 대한 대피로 피폐해진 본국인들과는 달리 그래도 식민지에서 태어나 삶의 터전을 일구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던 재조선 일본인들은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고 그나마 갖고들어온 재물 상당수를 여러가지 명목으로 떼여야 했으며 특히 그들의 자녀들은 놀림감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자녀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자며 보채는 것을 달래야 했었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본국의 경제상황이 막장이었는지라 구직도 불가능했고 이러다보니 임시거처였던 수용소가 영구거주지로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여기에 '인과응보'라고 빈정대는 본국인들의 경멸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4.2. 재한 일본인

패망 후 대부분의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한일 혼혈이나 일본인 아내 등이 일부 남았다. 한국전쟁 당시 해상보안청GHQ의 지시로 소해정을 파견했고 보안청 직원들이 상륙하기도 했고 노무자들이 항구 등에서 미국의 군사물자를 나르기 위해 들어왔다.

한일 수교 전에 양국은 대표부를 설치했고 일부 일본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1965년에 한일수교가 이뤄지면서 일본인 외교관과 상사 주재원 등이 들어왔고 관광 목적으로 들어오는 일본인도 생겼다. 2000년대 이전부터 한국에 살던 일본인들은 통일교 소속으로 영주권을 얻은 경우가 많다.

2013년 8월 31일 대한민국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민정보과 월보에 따르면 일본인 유학생은 2,781명(유학 1,714명/한국어 연수 1,067명)이며 한국인의 배우자(결혼이민자)[60]는 12,104명(남성 1,174명/여성 10,930명)이며 취업자격 체류자 1,782명(불법체류자 2명 포함)이며 단기체류자 23,462명[61](불법체류자 499명 포함)이며 등록외국인[62] 23,194명(불법체류자 363명)이다. 체류 일본인의 숫자는 47,443명(불법체류자 875명)이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이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이촌로를 중심으로 1,000명 이상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다. 말하자면 재팬타운이기는 하지만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많다는 점 등을 제외하면 딱히 일본 문화가 특징적인 곳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용산구는 일본인 말고도 온갖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기 때문에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4.3. 재북 일본인

패망 후 한국과 상황이 비슷했으나 별 탈 없이 일본으로 돌아간 한국의 일본군과 달리 재북 일본군인은 소련군에 의해 끌려가 포로가 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부 한일혼혈이나 일본인 아내가 잔류했다. 이들은 잔류 일본인이라 부른다. 이들의 규모는 약 1400명 수준이었다.

그 외에 북한 공안 당국에 의한 납북 일본인[63]이 있고 재일교포 북송 당시에 한국인 남편이나 아내를 따라간 일본인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지닌 혼혈아 등이 북한에 있다. 일본인 배우자의 숫자는 약 1,800명으로 추정한다.

5. 기타

한국의 신문 만평 등에서는 일본인을 대머리나 빡빡머리에 뻐드렁니(+콧수염, 안경)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2차대전 시기 미국에서 도조 히데키를 희화화한 것이 원조다. 구글에서 'tokio kid'라고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영어로 일본인을 비하하는 명칭은 Japs이며 이 단어는 공습하다, 몰래 공격하다라는 뜻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주만 공습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 때문인지 나라 이름을 로마자 머릿글자로 쓸 때도 KOR, FRA, AUS, BRA처럼 웬만해선 앞의 3글자를 따서 쓰는 것과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JAP라고 안 쓰고 JPN이라고 쓰고 있다. 2차 대전 중에는 Tojo[64]라는 명칭도 쓰였으나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덤으로 2차 세계대전 즈음의 여러 미국산 프로파간다에서는 일본인들이 말끝마다 Please, please를 연발하는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65]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일본인이 경어를 표현하기 위하여 please를 여기저기 집어넣어 말하던 버릇을 과장해서 비꼰 듯.[66]

고래를 잡아먹는 야만인이라는 인식이 환경보호단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67] 멸종할 수 있으니 먹지마라고 그렇게 말해도 듣는 척도 안해서 그런 듯(...). 근데 일본에서 먹으려고 잡은 고래보다 서양에서 기름 짜려고 죽인 고래가 더 많다는 주장도 있다. 애초에 고래 잡아먹는 게 야만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사회에 따라 먹는 음식과 안먹는 음식이 다를 뿐이다. 결국 남는 건 멸종 위험성인데, 이건 논란이 좀 있어서(...). 포경 문서를 참조하자.

매운맛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강한 향신료가 별로 없는[68] 일본 요리의 특성에서 유래한 점이라 카레도 상당히 부드럽고 달게 만드는 편이다. 다만 모든 매운맛에 약하다는 편견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매운맛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 한국음식에서 많이 쓰는 미각적인 매운맛인 고추 및 캡사이신 등에는 정말 약하지만 와사비나 양파처럼 후각적인 매운맛에는 강한편이다.

마술마법과 동의어로 사용하며, 무대마술은 테지나(手品)라는 말로 따로 부른다. 태진아?

타 국가 사람들보다 비교적 목소리 톤이 높다는 이미지가 있다.[69] 물론 죄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보니 애니메이션 더빙에서도 귀엽고 앵앵거리는 목소리가 많은데 한국인이나 서양인을 비롯한 타국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싫어하는 감이 꽤 있다.

아무튼 이 때문에 톤의 높음이 좀 심해서 한국어 더빙판뿐 아니라 그 외 외국 더빙판들을 보면 '캐릭터들 목소리가 일본 원판보다 5살 많아보이는 건 기본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라별로 언어, 발성이 다 다른 탓이지 성우 목소리가 캐릭터 연령대에 아주 심각하게 벗어나지 않은 이상 단지 원판보다 비교적 성숙해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미스캐스팅으로 치부해버리는 건 좋지 않다.

외국에서는 일본인 관광객은 아시아에서 제일 친절한 민족, 착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말하며 반일본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당한 아시아 피해국들도 역사와는 별개로 시민의식과 친절함에 대한 칭찬이 잦다. 서비스하는 곳에서 손님을 대하는 국민들의 예의와 역사와는 별개이기 때문. 그래서 손님으로서의 일본인과 전쟁으로서의 일본인을 아예 따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는 편이다. 사실 크게 놀랄 것도 없는 것이 과거사와 현대 일상생활은 아주 미묘한 차이라는 게 존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굳이 시민의식 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 자체(주로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는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사를 기억하긴 해야겠지만, 비판할 건 비판하고 칭찬할 건 칭찬하면서 배워야 할 점 등 얼마나 다방면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단순히 일본 만화같은 거 뿐만이 아닌 대한민국보다 더 나은 생활상, 사회적 제도 때문에 선호하는 사람도 있어서 역사에 대해서만 생각할게 아니라 현실과의 차이도 크게 고려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다만 일본인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사실 1960년대 중반부터[70] 1980년대까지는 어글리 재패니즈라고 해서 국제적으로 매너가 없기로 악명이 높았다(...). 예를 들면 필리핀에서 섹스관광을 가서 자피노를 낳으면서 애기 엄마한테 양육비를 안 준다든지, 호텔에서 훈도시 차림으로 나돌아다닌다거나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매너교육 자체가 부실했던데다가 아무래도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산다는 건 물론 미국 바로 다음가는 경제대국이라는 선민의식도 있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갑질을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다 보니 평판이 떨어졌던 것이다. 여하튼 이런 일들로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 자체가 영 안 좋아지고 일본내에서도 무매너 여행객들의 행태에 대한 자성이 일면서 1980년대부터 시작된 개도 캠페인과 시민 의식의 향상으로 개선된 예다.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 초판에도 개인주의공동체주의를 언급하면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인, 특히 일본 연예인에 대한 우익 논란이 유난히 많이 제기된다.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해서 제기된 경우(일본 제국의 제국주의적 정책 및 일본군의 전범행위에 대한 옹호발언 등)도 있지만, 대체로 한국인 입장에서 단지 불쾌해서 제기되는 경우(하시마 섬에서의 영화 제작발표회, 우익 논란이 있는 원작자와 관련 작품에 출연한 배우,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질의 시 묵묵부답 또는 답변 회피 등)가 많다. 또한 전후 맥락이 잘린 채 한국인을 자극할 만한 부분만 강조되어 의혹 제기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A에게는 우익이라고 주장하다가 B에게는 침묵하는 이중잣대인 경우도 제법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유명 연예인 중에는 우익 논란이 한 번이라도 제기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6. 행동방식

일본/문화 문서 참고.
몇 가지 예를 들자면
  • 을 먹기 전에 합장한다.
    • 이와 살짝 다르게, 진심으로 부탁할 때 합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만화애니에서 이런 묘사를 많이 한다.
  • 인남캐의 경우에는 손을 세로로 코 앞에 든 후 '와루이'나 '고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7. 일본인 캐릭터

국가별 캐릭터 유형
한국인 캐릭터 일본인 캐릭터 미국인 캐릭터 중국인 캐릭터 영국인 캐릭터 독일인 캐릭터 프랑스인 캐릭터 이탈리아인 캐릭터 러시아인 캐릭터 아일랜드인 캐릭터
당연히 일본에서 제작된 일본 배경 작품의 캐릭터는 제외한다.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이라도 작중 배경이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가 되거나[71] 일본 국적의 캐릭터가 적어서 캐릭터의 특징이 일본인인 경우를 작성한다. 이 경우 이름 옆에 ★로 표시했다.


[1] 실상 이미 수천년간 혼혈이 진행되었기에 이들 사이에서 유전적으로 매우 큰 차이는 없다.[2] 문화 뿐만 아니라 유전자도 좀 다른 편인데, 일례로 하플로그룹D2b는 본토 일본인이 20~40%(지역마다 편차가 큰데 규슈, 간사이를 비롯한 서일본쪽은 10~20% 내외로 적은 편이고 간토지방을 비롯한 동일본의 경우 30~40%로 상대적으로 많은 편), 홋카이도의 아이누인은 90%, 오키나와의 류큐 민족은 70%를 지니고 있다. 다만 오키나와의 인구는 140만명이고 심지어 아이누족의 경우 20만명으로 1억 2천만 인구인 일본 전역의 스케일의 비하면 1/10은 커녕 1/100도 안되는 소수점의 비중이라 이들의 유전적인 특이성을 가지고 일본인 전체의 유전성을 대표하는 것은 무리가 크다. 연구시에도 이들을(본토 일본인, 아이누, 류큐) 구분해놓은 이유 역시 이런 특이성을 감안했기 때문.[3] http://www.focus.kr/Event/Election/general_election/2016/view.php?key=2016090100110213872[4] 2018년 기준 인구의 20% 이상이 70세 이상 노인이다. 이전부터 기업들을 주축으로 한 경제단체들과 친기업 성향 정치가들은 노동력 수급을 위한 이민 완화를 주장해왔었지만, 아베는 반대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임박한 일본 노동가능인구의 1억선 붕괴와(아베의 공약이 '1억총활약사회'였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 측근들의 설득으로 2018년 연초에 이민 정책 수립 및 외국인노동자 확대를 결단한 것으로 알려진다.[5] 2개의 해당 링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조몬인의 직계혈통이자 하플로그룹 D를 가장 큰 비율로 물려받은 아이누족과 본토 일본인의 유전적 유사성보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유전자 유사성이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말인 즉슨 일본인의 유전적 비율을 조사했을때 아이누(조몬인)의 유전자인 하플로그룹 D 특성보다 한국인, 만주인의 유전자인 하플로그룹 O 계열의 비중이 일본인에게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아이누족의 인구는 고작 20만명에 불과하여 그들의 유전적 특성이 1억 2천만 인구인 일본인의 유전자풀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도 쉬이 알 수 있다. 즉 북쪽 홋카이도 위주로 유전자 검사를 한것은 아이누족에게 편중된 결과이기에 정확치 않다는 것이다.[6] 두번째 링크 도쿄대학교 학술지 5번째 항목에 本土人は集団としては韓国人と同じクラスター(注2) (번역 : 본토인은 집단으로는 한국인과 동일한 클러스터 (주 2)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 참조[7] 과거 2017년도에 한국인, 일본인 유사성 부분 삭제를 주장하는 토론 발제자와 이에 동의하는 참여자들이 반박할 만한 타당한 근거를 더 이상 입증하지 못하여 이미 나무위키에서도 해당 토론 결과값이 존치로 확인된 부분이다 https://namu.wiki/thread/XR3HomxmcKZjEeptpjMFcS[8] 참고로 위 자료들은 개개인의 단순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연구학계에서 결과적으로 공표한 과학적 사실(사이언스지 연구자료의 경우 아시아 10개국을 포함한 국제적으로 표본이 마련된 포괄적인 자료.) 이미 수차례 연구결과를 통한 법적, 사회적으로 공신력있는 자료들이다.[9] 덧대어 설명하자면 동아시아권 인종들 사이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유전자적으로 유사성이 가장 높다는 말이지 동일하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일본인만의 유전자적 특성(조몬계와의 혼혈로 인한 외적 특성)이 존재하며 이는 아래 내용에서 충분히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 즉, 단순 외적 형질이나 모습의 차이를 가지고 유전적으로 거리가 멀다고 단정짓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해석에 불과하다.[10] 한국에서는 대체적으로 0.1~2%가량 발견되는 수준이며 없다봐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일본 열도 선주민인 조몬인과의 혼혈로 인해 생긴 유전적 케이스이기 때문이며 이미 한반도를 거친 도래인이 일본에 들어간 후에 이들과 혼혈이 된 것이기에 이것만으로 한국인과의 유전적 연관이 거의 없다는 논리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11] 간혹 초기 도래인으로 추정되는 야요이인이 중국에서 일본을 향해 다이렉트로 왔으며 한반도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주장은 이미 위의 제시된 유전적 유사성 학계 발표만으로도 깔끔히 반박되지만 더 디테일하게 반박하자면 중국계 야요이인의 주요 이동경로 세 가지인 1. 중국 화남지방에서 전파, 2. 화중지방에서 전파, 3. 산둥반도에서 전파. 이 세 가지 모두 현재 학계에선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선 전파가 불가하다는 것이 학계 주류이다. 특히 산둥반도에서 전파된 경우는 지리상으로 한국의 황해와 바로 맞닿아있고 육로로도 한반도 북부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에 한반도를 절대적으로 거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야요이 시대가 기원전 5~3세기 경에 시작한 일본 역사시대 이전의 청동기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항해술과 선박 제조술이 당대 기술력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고도로 발달하여 한반도를 수백년간 황해~남해~동해안을 쭉 거치며 절묘하게 계속 피해갔다는 지나치게 비약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를 거쳤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다. 참고로 일본이 그런 선박기술을 그 옛날 청동기 시대에 갖고 있었다는 사료는 전무하다. 즉, 한반도 토착민이 도래인으로서 일본 열도에 진출했다는 명확한 경로를 유전적 유사성을 넘어서 역사적, 지리적으로도 확실히 입증해준다.[12] https://synapse.koreamed.org/Synapse/Data/PDFData/0018KJLM/kjlm-36-34.pdf[13] 그런데 교정해서 지금은 덧니가 없다.[14] 여담으로 일본을 가르키는 단어인 '왜' 가 왜소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신빙성은 낮다. 원래 일본을 가리키는 말인 는 '키가 작다'는 뜻과는 상관없이 고대 일본어의 1인칭 대명사인 '와'를 음차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옛날 일본에서는 자국의 덴노를 대외적으로 드높여서 호칭할 때 '대왜왕'이라는 칭호를 쓰기도 했고,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이 자국을 가리키는 말인 야마토한자를 이 왜로 쓰기도 했다.[15] 각종 서브컬처에서조차 여성 캐릭터들의 프로필만 봐도 한국과는 달리 170cm 이상의 캐릭터는 거의 천연기념물 급이다. 나와도 외국계라든지, 운동계라는 설정이 자주 붙어 있다. 현실에서는 평균 키 170cm 이상의 여성 아이돌 그룹이 한국에서는 몇몇 있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지극히 희귀하다. 하지만 어지간한 한국 여자 아이돌들의 키를 쌈싸먹는 일본 여자 아이돌 같은 예외도 있다. 남성도 서브컬처의 남성 캐릭터나 현실에서 남성 아이돌들의 신장을 살펴보면 172cm 내외가 다수로 티가 충분히 날 정도로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16] 이는 문화적인 부분의 영향도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봤을때도 키나 체격이 있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아담하고 슬림한 체형의 미소년/미소녀 계열의 연예인을 선호하는 편. 실제로 일본 연예계 전역을 둘러봐도 북미나 유럽권의 대세인 근육질의 건장한 남성, 육감적이고 늘씬한 글래머 여성연예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근육질이거나 키, 체격이 있는 연예인의 경우 일본 방송에서 타 출연진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는 리액션이 종종 있다. 최근들어 여리여리한 미소년 계열 연예인을 선호하는 한국조차도 일본에 비하면 확실히 체격적, 비주얼적으로 더 건장한 편.[17] 의외로 180cm에 육박하는 장신도 한국 못지 않게 많지만(일본 남성 기준 상위 7%, 한국 남성 기준 상위 14%), 165cm 이하 남성이 훨씬 더 흔하다(일본 남성 기준 상위 80%, 한국 남성 기준 상위 94%).[18] 일본은 20대 연령층 청년과 40대 중후반인 중년이 같이 서 있으면 별로 차이가 없는 편이다. 링크에 따르면 일본 20~24세 청년층의 평균 키는 172.0cm. 중년층은 171.1cm. 반면, 한국은 20대 남성 평균 키 173.7cm, 40대 남성의 평균 키는 168.6cm으로 차이가 크다.[19] 하지만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작은 편이었다는 것은 맞다. 일제 때 신체 조사를 보면 한국인 어린이가 가슴둘레는 더 적었지만 키가 5~7cm 더 컸다고 나온다(출처 역사신문 6권, 사계절출판사.). 또한 구한말 조선과 일본을 여행했던 영국 여행작가 비숍 여사 역시 저서에서 '한국인중국, 일본과 비교해서 키가 더 크고 잘 생겼다'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을 일으켰던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한 술 더 떠 "조선인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피부가 희고 키가 큰 걸 보니 백인의 후예인 듯."이란 개드립도 했다. 물론 일본인들이 유전적으로 한국인보다 키가 작으니 그 영향을 받았겠지만, 과거 사회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했는데 일본은 불교 도입 이후 육식금기가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무려 천년 가까이 육식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 필연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부족해지는 바람에 일본인들의 성장이 더뎌졌고, 그러다가 근대부터는 육식금기 해제로 다시 키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6.25 전쟁 이후에 일본 경제가 고성장을 기록하면서 영양 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어지게 되자 오히려 한국인들의 키를 앞서게 되었다는 얘기다.[20] 편의상 일본인이라 칭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민족 의식이나 개념이 없었을 확률이 크다. 매우 오래전 상고시대의 도래인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21] 이런 식으로 적으면 여진어와 만주어도 한국어와 똑같이 여기기 쉬우나 언어는 사는 곳을 따라가는 사례도 많아서 유목민족이던 그들은 한반도와 점접이 적어서 그런지 한국어와는 다르게 여겨지며 실제로도 다르다. 역사적 사례로도 베트남이나 태국 등으로 이동한 중국인들이 왕이나 정복자 출신을 배출하기도 하였으나 점차 중국어 대신 그쪽 동네 계열 언어로 바뀌었는데, 당연하게도 영향은 주었지만 기존의 중국어와는 확실히 달랐다.[22] 쉽게 말해서 현대 일본어에서 즐겨쓰는 변형된 재플리쉬 표현들을 가지고 '일본어가 영어에서 비롯되었다' 또는 '영어와 일본어는 같은 계통군이다'라고 절대 말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즉, 외래어의 유입 정도인 셈[23] 신라도 초기에는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속국화 및 침략을 당하여 전 국토가 그들 영향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백제의 침략에 유린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고구려 속국 시절에는 물리치기는 했지만 고구려의 일부 병력에 의하여 그대로 합병당할까봐 두려워하던 기록도 있다.[24] https://www.huffingtonpost.kr/2016/07/11/story_n_10923514.html?utm_hp_ref=naver 일본인은 체취에 관하여 남방계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과 분포가 더 비슷한 편이다.(그래서 일본도 디어더런트 사용률이 높다) 대체로 북방계의 체취가 적은 것으로 보아 한반도의 경우는 북방계 민족의 침입이 있었을 수 있다. 중국 대륙의 경우는 한족을 형성하게 되는 북방계 민족들이 남방계 민족들을 몰아내며 저런 유전자들을 제거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록들도 남아있다.[25] 농담이 아니라 한족 중에서도 서로 다른 집단이 있고 소수 민족 집단의 인구풀도 꽤 거대하여 그들을 제거하지 않고 흡수하다 보면 유전적 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다.[26] 흔히 말하는 메이와쿠가 그것을 반영한 것이다.[27] 표현 방식에서 상인과 서민층 위주로 발전한 오사카 사람들과 귀족 문화 및 종교 문화의 중심지였던 교토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28] 사실 도쿄에서도 전통적으로 '시타마치'라 불려온 동부 지역 사람들은(특히 '에돗코'라 불리는 토박이들) 어지간히 직설적이고 성질 급하단 이미지가 있다.[29] 워낙 보수적이고 온갖 것을 맞춰야 하는 분위기라 아이를 키우기에 워낙 제약이 많다는 것.[30] 이 부분이 상당히 잘 드러날때가 바로 사과의 말을 전달할때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과라는 것은 내 자신이 전적으로 타인에게 큰 실례를 범하거나 확실히 잘못을 끼쳤을때 정중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확실한 잘못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공기를 읽지 못한것'만으로도 타인에게 큰 민폐를 끼쳤다 여기며 수시로 사과한다. 한 마디로 내 자신이 더 피해를 보거나 오히려 명백히 사과를 받아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피해자가 '내가 더 피해봤지만 나 역시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으니까' 먼저 사과하는 엉뚱한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31] 눈치나 분위기를 살피는 경우도 한국인과 다소 다른 점을 볼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인간관계, 상황에서의 분위기를 지키는 것을 중시한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 절친들 사이에서도 서로간의 침범하지 말아야 할 부분, 예의범절을 극도로 중히 여기며 개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심지어 연장자나 상급자도 사적으로 굉장히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자기보다 아래인 사람에게 최대한의 예를 갖춘다. 한마디로 모든 분위기를 읽고 거의 모든 상대에 최대한 맞춰주는 것이 완전히 보편화된 경우. 하지만 한국의 경우 동일한 연령대의 '친구'를 제외하곤 나이, 직급과 같은 집단 내부 서열에 따라 분위기와 예를 갖추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대체로 연상이거나 상급자의 경우 초면일 때를 제외하고는 상대방을 마치 자신의 친동생이나 자식, 직속부하처럼 맘편하게 대하지만 아랫사람만큼은 예를 갖춰서 윗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한 마디로 서열에 의해 예를 갖추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타입이다.[32] 단, 후쿠오카오사카는 예외다. 또한 수도권에서도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점점 안 지킨다. 현대에 들어서는 큰 소리로 떠드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33] 이러한 모습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지메부락민 등이다.[34] 먼나라 이웃나라 7권에서도 언급됨.[35] 사실 몇몇 일본인조차도 이런 문화를 답답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오사카나 후쿠오카 주민들이 그쪽에서 별종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중국 상인에 대한 속설로도 존재하니 일본인의 특징이라 볼 수 있는지는 더 검토가 필요하다.[36] 상술했듯 현대 일본의 젊은층 중심으로 이런 문화가 깨지는 추세이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37] 나치들까지도 경악했을 정도. 실제로 일본 제국과 나치의 만행은 인종적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똑같다. 단지 일본 제국에겐 인종 말살이, 나치에겐 식인 행위가 없었다는 미세한 차이만 있었을 뿐.[38] 같은 시기 조선의 백성들이 함경도의 여진족을 대비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거의 군역이 유명무실해져서 전쟁을 모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39] 상위 집합은 있을 수 있다. 즉, A집합(나)과 B집합(너)이 서로 교집합이 없지만, U라는 집합(우리)으로 묶이고, 그 위에 W라는 집합(너희)과 교집합 없는 상태로 싸그리 Z(사회)라는 집합으로 묶이는 식. 유럽식에는 '우리'라는 개념이 굉장히 희박한 편.[40] 예를 들면 사소한 일에 집착하여 쉽게 체념하지 못하는 경우에 쓰는 말로 왕생할 때가 나쁘다(往生際が悪い)가 있다. 속세에 미련을 버려야 극락왕생 하는데, 그걸 못하고 미련을 가지니 얼른 포기하라는 뜻이다.[41] 심지어 '요단강 익스프레스 건넌다'는 관용구를 비종교인들까지 쓸 정도로 기독교적인 요소까지 첨가된 언어가 한국어이다.[42] 할로윈 다음날인 만성절(all saint's day)은 한국의 추석, 일본의 오봉처럼 조상의 영혼을 추모하는 날이다.[43] '일본 영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혼령을 모신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44] GHQ에서 신문, 방송 등 문화부문까지 검열한 결과다.[45]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일본을 되찾으려다 보니' 전후 일본을 안보, 경제, 정치적으로 꽉 쥐고 있는 미국에게 당분간 굽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대단한 친미파가 되어버렸다. 또한 일본의 소위 우경화문제에 있어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중국의 부상이라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일본에게 있어 미국은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으로부터 자국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아군이 되어버렸다.[46] 위키백과 일본어판에 일본의 한국인과 결혼통계를 참고하자. 일본인 여성과 남성의 한국인과의 연도별 혼인건수 비율이다 일본의 국적별 혼인통계이다.[47] 특히 인종의 용광로 미국에 이러한 현상은 더더욱 두드러진다. 반면 비즈니스 쪽 종사자들이 꼽은 최악의 비즈니스 상대는 개인차는 있지만 아르메니아인을 최악의 비즈니스 상대로 많이 꼽는다.[48] 일본인은 위 단락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낯선 타인에 대해서 경계심이 많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며 단기간에 신뢰를 주지 않는다. 즉 진심으로 깊게 친해지는데 꽤나 오래 걸린다.[49]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고도성장을 누리던 한국도 신토불이 열풍으로 국가적 자존심이 매우 높았던 것과 비슷하다.[50] 이때의 영향으로 아직도 일본에서만 제일이면 그걸로 끝이라는 식의 신념이 남아있는 경우가 꽤 있고, 한국 기업들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곤 한다.[51] 사실 1억이 넘는 규모의 인구수가 되면서 전반적으로 고루 잘사는 나라는 2019년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 미국, 일본 정도다. 유럽은 EU라는 단일경제공동체로서만 경제규모에서 일본을 넘는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각의 개별 선진국가만 따지더라도 일본의 인구수 1억 2천만명에는 한참 못미치는 인구 규모이다.[52] 이것이 한국 아티스트들이 일본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이 되니까. 동방신기배용준만 봐도...[53]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중산층이 자리잡은건 1960~70년대 고도성장기에 출현한 것이지, 패전 이전까지 일본 국민 대다수은 최저임금도 안되는 빈곤층이었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도 적용되는데 과거 18세기~19세기 유럽권과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미국만 보더라도 당장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기의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동자로서 심하게 착취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54] 그러나 상대적으로 일제시기 시절 지배민족이었던 일본인이 식민지인보다 우대를 받았던 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인이 열악한 상황에 처한 군인이나 노동자 정도였다면 한국이나 중화권 식민지 출신들은 그냥 '노예'였다고 보면 편하다.[55] 주요 요직들은 구 사쓰마, 조슈 번 출신들이 독점했다.[56] 지역마다 인원을 할당해서 할당된 인원을 채우지 못할 경우 세금 감면을 안해주거나 자치단체 보조금을 깎았다.[57] 이 때 떡밥으로 내건 것이 세금 감면, 농토 지원(물론 식민지로 만든 조선이나 대만의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군 면제였다. 하지만 패색이 짙어진 1943년 이후에는 농토 지원 그런 거 없고, 개척단이고 뭐고 얄짤없이 다 강제 징집해갔다.[58] 사실 냉전 당시 제 1세계 대부분의 공통점이 미국으로 인해서 부활한 것이다. 유럽마셜 플랜으로 일본한국 전쟁으로 한국베트남 전쟁으로 공교롭게도 이 모두 다 공산주의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즉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위해 재건되었다는 공통점.[59] 일부는 일본 패망 후 잔류하여 일본계 중국인이 되었다.[60] 당연한 얘기지만 결혼 이민자들은 대부분 등록외국인이다. 일본인 결혼 이민자 가운데 600명 정도가 귀화했으나 이들은 외국인으로 취급되지 않는다.[61] 90일 미만 체류자.[62] 90일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으로 지문 날인을 해야 한다.[63]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미귀국 납치피해자는 12명이고 행방불명자는 470명이다.[64] 당연히 도조 히데키 때문에 생긴 비하어이다. 콜 오브 듀티 5에서도 일본인들을 Japs가 아닌 Tojo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65] 발음을 '플리즈'가 아닌 '푸리즈'에 가깝게 하면 더욱 완벽(...).[66] 정작 please는 한국어나 일본어의 경어법과 100% 대응하는 표현이 아니다. 부탁을 목적으로만, 그것도 잘 안 들어줄 것 같은 내용을 부탁할 때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표현.[67] 사우스 파크에선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떨군 게 돌고래라고 뻥쳐서 이걸 믿고 돌고래나 고래들을 죄다 학살하는 등신들이라고 묘사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근데 트레이 파커 부인은 일본인이다(...).[68] 사실 고추나 후추의 재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재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주로 교역품으로 취급했던지라 잘 쓰이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고추냉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고급요리에만 쓰였던 상황이고[69] 반대로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목소리가 꽤 낮고 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일본 구글 검색창에 '한국인 목소리'(韓国人声)라고 치면 허스키(ハスキー)가 자동 연관검색어로 뜬다(...)[70] 일본에서 여행자유화가 시행된 시기가 1963년이다. 다만 여행자유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해외여행비가 몇년치 봉급은 쏟아부어야 할판인지라(...이때에도 일본은 아시아에서 이미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처음부터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니라서 1960년대 당시에는 연간 수십만 정도가 여행갔던 수준이었다. 본격적으로 해외여행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던건 제트여객기가 보급된 70년대 와서였다.[71] 단, 가상의 국가라도 분위기를 비롯한 특징이 일본풍이라면 마찬가지로 제외한다.[72] 일본 국내에서는 야마다가 대표적이다. 관공서나 은행의 서식 예시에 한국에서 홍길동/성춘향이 널리 쓰이듯, 일본에서는 야마다 타로(山田太郎)/야마다 하나코(山田花子)가 많이 쓰인다.[73] 재일 한국인이다.[74] 한일 합작이며, 작중 배경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콘셉트로 하였다.[75] 이 둘은 혼혈이다.[76] 일본 더빙판 설정에서 '오밍 키사라기' 라는 풀네임이 설정되었다.[77] 몸만... 자세한 건 항목 참조[78] 73화 등장으로 우에하라 아이를 모티브로 했다.[79] 닌자+사무라이 컨셉으로 영화 설정상으로는 재일교포로 설정되어있다. G.I. Joe의 콜라보 캐릭터로 2014년 8월에 6개월간 등장하다가 2015년 2월에 하차했다.[80] 일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일본계+스페인계 혼혈아로 출신지가 아르헨티나다.[81] '이상기후에서 살아남기' 편에 등장.[82]미스터 초밥왕》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가 모델. 그외에도 초반부분의 밥관련 에피소드에서나 복어 관련 에피소드에서 동명이인의 스즈끼란 인물들이 등장한다.[83] 예외라 함은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인 캐릭터를 말한다. 이 경우는 대체로 우호적인 캐릭터로 나온다.[84] 신연예인지옥 외전2나 신연예인 지옥 외전6 모나크 1부에 등장한다. 정지혁 병장은 그를 딸딸이 부대라 부른다.[85] '불법 또또' 편에 처음 등장하는 학생이다. 직접적으로 일본인이라 하기엔 드물지만 한자 이름 小路(중국어판에 공개)를 일본어 음독인 こうじ으로 표기했다거나 코지라는 일본식 이름이 있다.[86] 서양권에서 만들었다.[87] 이 문서로 들어가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원작에서는 본인의 아버지의 이름이 일본인이며 본인 또한 설정상 일본인이다. 다만 애니메이션 접지전사에서는 본인이 일본인이라는 언급이 없으며 심지어 애니메이션 기준 본인의 아버지가 맹주임이 드러나는데 맹주가 일본인이라는 언급 또한 없다.[88] 이쪽은 따지고 보면 검은늑대라는 뜻의 ‘헤이랑(黒狼)’이라는 중국어 성씨랑 ‘로우’는 중국어 이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어 중국과 관련이 있거나 중국인이라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에 애매하지만 애초에 늑대 속성의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늑대 랑(狼)' 한자의 일본어 독음인 ‘ろう(로우)’가 모티브일 것으로도 보여 대략 일본인(정확히는 중국계 일본인)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즉, 원작에 없었고 배경은 일본이 아니며 일본인이 거의 없는 애니메이션에만 있는 캐릭터이니 적어도 설정상 유일하게 일본과 관련이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89] 일본어를 사용 한다.[90] 출생지가 오사카다.[91] 프랑스 파리 출생지로 일본계 혼혈로 복수국적자다.[92] 프랑스 애니메이션. 한국에서는 애니맥스에서 잠시 방영되었다.[93] 126화, 127화, 130화, 131화에 재익이랑 주희랑 일본을 방문할 때 재일 교포 학생이나 야쿠자 두목이 등장한다.[94] 유도선수다.[95] 대놓고 일본인이라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름이나 그 외 캐릭터 특징은 일본인에 가깝다.[96] 한국에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