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4 16:31:42

시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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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지리적 의미의 시베리아시베리아 대부분은 시베리아 트랩이다.

1. 개요2. 이름에 관하여3. 이런저런 이야기
3.1. 지역구분3.2. 개발의 어려움3.3. 교통3.4. 자연환경3.5. 이동통신망3.6. 공포의 시베리아
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Siberia. 러시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지역. 대체적으로 우랄 산맥 이동, 연해주 이북까지의 영역으로 치며[1] 엄청나게 추운 기후로 유명하다. 사실 시베리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부 시베리아는 1년 내내 춥지 않고 여름에는 덥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시베리아가 워낙 대표적인 추운 지역으로 이미지가 박혀 있어 남북극처럼 1년 내내 추운 곳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면적은 1380만 ㎢[2]전체 러시아 면적 1707만 ㎢의 4/5을 차지하지만, 총인구는 3100만명으로 전체 러시아 인구의 1/5에 불과하다. 사실은 시베리아가 100%고 유럽이 40%라고 한다

2. 이름에 관하여

러시아어로는 сибирь(시비리)라고 한다. 어원은 튀르크 몽골계 국가인 시비르(Sibir) 칸국.[3] 시비르는 타타르 터키어로 ‘잠자는 땅’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비르 칸국이 수립되기 이전 이 지방은 항상 어둠에 둘러싸인 미지의 지방이라는 의미에서 암흑의 지방이라고 불렸다. 북한문화어는 러시아어의 영향을 받아 '씨비리'라고 표기한다. 우연의 일치로 러시아어로 ‘북쪽(северу)’을 뜻하는 단어의 발음과 비슷하다. 참고로 철자는 Север, 발음은 철자를 따라서 한국어로 옮기면 세베르에 가깝다.

거기에 헷갈린 혹자는 이게 원래 시베리아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 '시비르한'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있지만, 전혀 아니다. 북한 문화어 사전에도 “씨비리”라고 등록되어 있는 것은 그냥 러시아어 직수입이다. 반면 영어권에서는 '사이비어리어 혹은 사이베리어(saibíəriə)'라고 발음한다.

한편 여담이지만, 선비(중국어로 센베이)족이나 실위(중국어로는 스웨이, 스웨이를 러시아어로 발음하면 스베이가 된다)족의 이름의 발음에서 유래되었다는 추측, 가설도 있으나 이 설보다는 투르크계 시비르족, 시비르 칸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더 많고 유력하다.

3. 이런저런 이야기

3.1. 지역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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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구분. 붉은색은 시베리아 연방관구[4]이며, 진한 주황색은 지리적 의미의 "시베리아", 극동을 포함하는 밝은 주황색은 역사적 의미의 "시베리아"이다.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눈다. 면적 자체는 동시베리아가 가장 크지만 자원, 주거환경, 지정학적 가치는 서시베리아와 극동이 더 높게 평가받는다.

3.2. 개발의 어려움

시베리아는 인구가 매우 적었기에 러시아가 자국의 영토로 쉽게 편입할 수 있었다. 농사를 짓기 힘들다보니 에스키모튀르크족, 북시베리아계 종족, 만주족과 가까운 관계인 퉁구스계 종족이나 몽골계 종족 등 주로 수렵, 채집이나 유목을 하는 종족들이 살고있었는데 이들의 인구를 다 합쳐도 20만-30만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중국 대륙이나 중앙아시아 등지로 인구가 유출되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세력을 떨칠만한 중앙집권적 나라들이 나타나지 못했고, 몽골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러시아는 1천만이 넘는 인구수를 바탕으로 시베리아의 종족들을 죄다 복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개발이 잘 안 돼서 애를 먹어야 했는데, 러시아인들이 당최 시베리아로 이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 초기에 정주민들을 보내 개발을 해보려고 했지만 하나같이 "여기는 춥고 척박해서 도저히 사람 살 곳이 아님!"을 외치며 징징대는 통에[6] 개발을 할 래야 할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낸 묘안이, 정치범이나 정적 같은 사람들을 시베리아로 귀양보내는 '시베리아 유형'이다. 그래서 제정 러시아 혁명가 치고 시베리아 한 번 갔다 오지 않은 자는 드물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동료 여성 혁명가와 결혼했으며, 스탈린부터 수많은 혁명가들이 로마노프 왕조에 저항하다가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죄수들이 유형지에서 모여서 아예 마을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부분 짜르 시절의 정치범들이라, 유형자들 주제에 그 후손들의 교육 수준도 높았다. 제정 러시아 시절 끌려갔던 혁명가들은 러시아 혁명을 일으켜 자신들을 시베리아로 보낸 자들을 다 쓸어버리지만, 그들도 정권을 수립하자 반체제 인사들을 이곳으로 보냈다. 소련 시절 대표적인 유형 인사로는 반체제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있다.

그래서 탈출도 쉬웠다. 당연히 아무 준비 없이 탈출하면 얼어 죽고 굶어 죽었겠지만, 제정 러시아 시대의 유명한 혁명가 치고 시베리아 유형 안 가 본 사람이 드물고, 탈출에 실패한 사람도 드물다. 탈출 방법도 '가장 가까운 역에 가서 가짜 신분증으로 기차에 탄다'거나 '마차 썰매를 준비해서 올라타고 광활한 시베리아를 질주한다' 등…왠지 몹시 당당하다. 즉, 탈출이 쉬웠다는 건 단순히 빠져나가기 쉬웠다는 이야기뿐 아니라, 탈출 과정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지 않고 장거리를 이동할 준비를 갖추기도 쉬웠다는 뜻이다.[7] 그러나 전직 탈출범 스탈린 집권기에는 얄짤 없이 탈출 못 했다

아무튼 그 덕분에 시베리아의 많은 인프라들은 대개 죄수들의 작품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노동자보다는 죄수들이 주가 되어 깔았다. 한 마디로 북대륙의 기상. 철도공사는 1891~1892의 2년간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897년 일부가, 1905년 전부 개통되었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 일가 역시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가 총살로 인생을 마쳤다. 그것도 선조의 이름을 딴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인구면에서도 철도 개설 이전 시베리아 총인구는 제정 러시아의 인구[8] 가운데 고작 500만에 지나지 않았고, 오늘날처럼 시베리아 땅에 도시가 들어선 것은 철도 부설 이후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진 편으로 러시아 제3의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와 제4의 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가 모두 시베리아에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사실 예카테린부르크는 유럽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나마도 시베리아의 도시농촌 인구 비율은 7:3이다. 그나마 좀 늘어난게 지금의 3천만. 근데 이 인구도 시베리아 면적을 감안하면 여전히 적다.

3.3. 교통


교통은 철도항공기에 의존하며, 도로 교통은 사정이 매우 좋지 않다. 시베리아의 대부분 지역은 사실상 도로를 통해서 접근할 수 없다. 이는 시베리아의 기후 때문인데, 영구동토층이 아닌 지표면은 겨울에 얼었다가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면 땅이 풀리면서 이게 도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진흙탕이 된다. 따라서 항구적인 도로 건설이 불가능하다. 다만 지표면이 얼어서 단단해지고, 눈이 오는 겨울에는 제설차가 쌓인 눈을 다져서 임시도로를 만드는데, 이를 짐닉[9]이라고 부른다. 근데 이 짐닉을 해도 통행이 불편하다.

여기를 지나는 철도가 바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다. 러시아 철도에서 운영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노선으로 유명하다. 적백내전체코출신 군인들의 진격 루트가 되기도 했다.

3.4. 자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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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도 있고이런 곳도 있으며도시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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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산다. 다만 추울 뿐.
하도 춥고 척박해서 개발이 진척되지 않다 보니, 자연경관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곳이 많다.

석탄이나 석유천연가스와 같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러한 지하자원들은 미국의 삽질과 석유-원자재 가격 상승의 바람을 등에 업으면서 활발하게 개발이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이라는 타이가가 여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벌목지로도 유명하다. 북한도 외화벌이를 위해서 벌목공들을 이곳에 파견하고 있다.

폭풍은 이곳에서 콧바람이라 카더라

3.5. 이동통신망

현재 시베리아 전역에서 러시아 대표 통신사급인 비라인, 메가폰3G/GSM으로 서비스중이다. 물론, 미개척지가 워낙에 넓어서, 근처 마을이 없는 곳은 기지국이 없어 전파 수신이 약하다.약한 게 아니라 아예 안 잡힌다
하지만 비라인의 경우 비개척지 오지를 가도 길이 있는 곳 어디를 가도 이 통신사만을 잡혀서 시베리아 모바일 네트워크라는 별명이 있다. 만약 시베리아를 여행할 예정이 있다면 로밍은 비라인으로 하는걸 추천한다.

옛날에는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통신감도가 나빠졌다. 큰마을도 아니고 조그만 마을이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2분정도 정차하는 기차역에서도 전화가 잘 안터진다. 같이 탄 러시아인들도 밖이 좀 마을 같다 싶으면 전화하기 바빴다. 그냥 위성전화를 개통하자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많이 개선되어 통화가 끊기는 경우가 없고, 심지어 웬만한 큰 마을에서 비라인LTE가 터진다.
전파가 약해져봤자 2G이하로는 떨어지는걸 목격하기 힘들고 아예 도로가 없고 미개척지를 가야 전파가 끊길 정도로 시베리아 지역에 광활한 네트워크 커버리지를 두고 있다.

3.6. 공포의 시베리아

  • 앞에서 말했듯 죄인을 귀양보내는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형벌이 아주 유명하다. 좀 더 자세히 보면...
    •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을 받은 데카브리스트(Dekabrist)들은 쿠데타 실패 후 동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다. 이때 상당수가 이르쿠츠크로 유배당했는데, 덕에 그로부터 도시의 문화가 크게 부흥하여 무려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나.
    • 독소전쟁에서는 패전한 잔병들을 전부 시베리아에 강제 이주시켰는데 당시 강제 이주된 패잔병들 중 약 50%만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어떤 비범한 독일군 포로의 경우 소련 최동단인 베링 해협 근방에 있는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중앙아시아를 찍고 소련-이란 국경을 넘어서 탈출하기도 했다.
    • 고려인들과 유대인 등 소수민족 상당수가 강제 이주되었다. 고려인은 서로, 유태인은 동으로 모두 함께 시베리아에 정착.[10] 홍범도 장군도 이런 신세가 되었다.
  • 1908년 6월 30일 퉁구스카 강 인근 숲에 원인 미상의 대폭발이 발생했었다. 폭발 지점이 지상이 아닌 공중이라는 점 때문에 폭발 원인을 우주로부터의 낙하물로 보는 추측이 많다. 폭발 규모로 미루어 시베리아가 아닌 유럽이나 미국, 중국 등의 대도시였다면 수천만 명이 죽어나간 대참사가 빚어졌겠지만, 천만 다행히도 이곳은 남극대륙과 자웅을 가리는 불모지였기 때문에 별다른 인명피해는 집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폭발 지점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축 1500마리가 타죽었다는 보고는 있었다. 2013년 2월 15일에도 운석우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 수백억의 재산피해를 냈다.
  • 맨 위의 지도에 표시된 시베리안 트랩은 바로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것으로, 이게 바로 페름기 대멸종의 원인이라는 설이 대세다. 이 대멸종은 ‘모든 멸종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이때 거의 모든 생물이 죽었다. 데본기 말기에 일어난 대멸종도 시베리아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4. 기타

  • 한국호랑이라고 불리는 호랑이는 시베리아호랑이라는 호랑이의 아종명이 있으나 정작 호랑이도 춥고 척박해서 시베리아엔 살지 않는다. 시베리아 호랑이의 주 서식지는 만주와 연해주 근처다.
  • 오늘날 시베리아에는 네네츠족, 돌간족, 부랴트족, 사하족, 셀쿠프족, 에네츠족, 예벤키족, 응가나산족, 케트족 등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소수민족이 살아간다. 그야말로 민족의 영지
  • 역사를 알고 싶으면 북아시아 문서의 역사를 참고. 실제로 시베리아 남부 지역은 몽골, 만주 내륙지역과 더불어 유목민(특히 돌궐이나 위구르 등 투르크계 칸국들)들이 살았던 수렵 및 유목민 문화권에 속했던 곳이었다.
  • 일본에선 카스테라 사이에 양갱을 넣은 과자를 시베리아라고 부르는데, 러일전쟁때 만들어져서 그렇단 설이있다.
  • 춥다는 이미지에서 착안하여 정말 추운 동네를 X베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철베리아, 춘베리아가 있다. 심지어 현지인들마저 거리낌없이 쓴다.
  • 인천국제공항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는 거의 시베리아 상공을 지난다. 과거 김포국제공항만 있던 시절에 비하면 비행시간이 단축된 셈.

5. 관련 문서


[1] 캄차카 반도는 넣는건지 안 넣는건지, 즉 극동인지 시베리아인지 대략 모호하다. 일단 베링해협 같은 이야기 할 때 보면 넣는 것 같기도 하고... 연해주를 뺀 "극동" 자체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다.[2] 중국(960만㎢) + 일본(37만㎢) + 한반도(22만㎢) 땅덩어리를 다 합쳐야 1019만 ㎢를 넘는다. 즉, 건륭제때 전성기 청나라(1315만㎢) + 일본(37만㎢) + 한반도(22만㎢) + 사할린 섬(8만㎢)에 캄차카 반도(27㎢)까지 합쳐야 겨우 시베리아의 면적이 나온다.[3] Khan의 자음 발음이 K보다는 X(영어의 x가 아니라 - 이 쪽은 IPA 발음기호에서는 그냥 ks로 표기한다 - 독일어의 ch 발음. 흔히 말하는 "가래 끓는 소리")에 가까워서 ‘한’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고 실제 현대 터키어는 한이라 발음한다.[4] 여기만 따져도 무려 아르헨티나를 통째로 넣을 수 있을 만큼 넓다.[5] 투르크계인 야쿠트 인들(45.5%. 러시아인 41% - 하지만 러시아어 사용자는 25%)의 땅으로 세계의 행정구역 가운데 가장 넓은 땅이기도 하다. 인구는 고작 95만이 살지만 총면적은 310만 제곱키로미터로 한반도의 15배나 된다. 4400km의 레나 강이 흐른다. 수도는 야쿠츠크. 딴건 상관없고 세계에서 가장 춥기로 유명한 땅이다.[6]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만 해도 겨울에 오질나게 춥다고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실제로 1883년에 무려 -35.9°C를 기록했고 2월 평균 기온이 -5.8°C이다. 위도가 훨씬 낮은 모스크바나 블라디보스토크 등보다는 따뜻했는데도 이랬다. 그런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춥다고 할 정도니 말 다 한 셈.[7] 탈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한 감시를 받은 네차예프 같은 인물이 있긴 한데, 이 경우는 간수를 패서 독방에 처박힌 경우라 애초에 개발 사업에 투입도 안 됐다.[8] 20세기 초반 1억 3천~1억 6천 추정. 이미 1890년 1억 1천으로 1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9] 임시로 만든 길이기 때문에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고,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짐닉을 이용할 때는 관할 경찰서에 필히 신고해야 한다고 한다.[10] 다만, 고려인과 유대인의 강제 이주의 이유는 다르다. 유대인의 경우에는 추축국으로부터 보호하는 차원이었으나, 고려인은 일본인과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소련 내에서 일본과 내통하는 스파이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아니 그러면 대 일본 정보부대로 복무시키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