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25 23:30:46

반러

파일:러시아 국기.png 러시아에 대한 감정
반러 친러 러빠

1. 개요

러시아를 반대하는 사상. 소련 시기에는 반소(anti soviet)주의라고 불렸다. 다만 반러와 반소는 대체로는 겹치지만 완전히 동일한 사상은 아니며, 러시아 이외의 구소련계 국가에는 의외로 반러친소도 있다. 반러와 반대의 개념으로는 친러가 있다.

반러감정이 심한 지역은 주로 동유럽 및 발칸 반도 지역에 많은데, 러시아에게 많이 시달린 북캅카스조지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서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에도 존재한다[1]. 스웨덴에도 있다.

2. 관계

2.1.동구권 지역

우크라이나의 경우, 우크라이나 관련 항목들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그 이전에도 매우 심했다. 그 악감정은 2013년 후반 이후의 유로마이단크림 위기, 돈바스 전쟁까지 이어지면서 더더욱 심해졌다. 단 서부 한정이고 동부와 남쪽 크림반도는 예전부터 친러였다. 2014년 이전까지는 우크라이나 동서로 친러와 반러가 공존하고 있어서 대놓고 반러 국가는 아니었으나, 이후 친러지역이 실질적 통치지역에서 떨어져나가면서 결국 우크라이나에는 반러만 남은 꼴이라 우크라이나의 반러가 더 강해진 것이다.

몰도바에게도 반러 감정이 있다.

친러정권으로 한동안 있었던 벨라루스마저 요즘 들어서 반러감정이 조금씩 심해지고 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소련에게 강제로 점령당한 발트 3국의 경우도 반러 감정이 강한 지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의 발트 3국 역시 반러감정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오죽하면 구 소련의 구성원이었던 국가들이 모여 만든 독립국가연합에 이들 3국은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고, 되려 러시아가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훼방놓았던 유럽 연합북대서양 조약기구 등에 들어갔을 정도. 심지어 현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발트 3국의 구소련 시기와 관련해서, "발트 3국은 역사적 거스름돈" 발언도 발트 3국의 반러감정을 자극시킬만했다.

캅카스에 위치한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을 보면 말할 필요도 없고(...), 현재 러시아령인 북캅카스의 잉구시, 체첸 지역도 반러 감정이 심하다[2]. 옛날부터 캅카스 지역은 러시아에게 항쟁을 많이 했었고, 러시아에게 번번히 진압당하면서 앙금이 깊어졌다. 특히 체첸 전쟁을 계기로 일어나게 된 북캅카스 분쟁은 반러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어서 이곳의 반러감정이 사그러들기엔 힘들어 보인다. 단 캅카스 3국 중 아르메니아는 주변에 다른 원수가 너무 많아서 러시아와 상대적으로 친한 편이다[3].

발칸 반도의 경우에는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 정도에 한해 그나마 완전한 반러가 아닌 애증의 관계로 표현될 수 있다.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혈통 역시 같은 슬라브 계통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르비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었던 시절은 사이가 영 좋지 않은데, 그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들이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을 윤간했다고 주장하며, 또한 냉전 이후에는 소련이 티토주의를 내세운 유고연방과의 정치적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고 붕괴 이후에는 세르비아 한정으로는 친러로 돌아선 편. 불가리아는 유럽 연합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해서 러시아와 갈등이 아예 없진 않으나 그래도 역사적으로 불가리아의 독립을 도와주는 등 사이좋은 일이 그나마 많았던 편이라 반러가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볼 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에게도 분할당했고,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폴란드의 차별대우도 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는 독립되었지만 소련나치 독일에 의해 다시 분할당했으며, 소련은 폴란드에 카틴 숲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고, 폴란드 내의 반러감정이 더욱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서 40년 정도 소련의 위성국으로 지내기도 했다. 그 뒤 폴란드가 NATO유럽 연합에 연달아 가입하면서 반러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또한 유로 2012 때는 양국 서포터들끼리 싸우기까지 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더 일을 저질러서 러시아가 상대적으로 더 까이는 분위기다.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의 경우에는 폴란드보다는 그래도 낫지만, 이들도 역시 냉전시대에 자유화를 주장하다가 소련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앙금이 완전히 없다고 보긴 어렵고 특히 노년층들의 경우는 러시아를 좋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

루마니아도 역사적으로는 러시아와 사이가 좋은 관계가 아니다. 러시아의 지배와 소련의 간섭을 받아 역시 안 좋다.

2.2. 동아시아

중국의 경우는 대(淸代)에 러시아 제국과 접하면서 갈등이 생겼으며 제정 러시아는 연해주, 이리(일리) 등 한반도 10배나 되는 땅을 중국으로부터 탈취하고 만주, 내외몽골, 동투르키스탄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호시탐탐 러시아에 집어삼키려 하였으며 전쟁 위기로까지 심해진 계기는 중소분쟁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아무르 강경계로 정했던 중국과 소련은 영토분쟁과 더불어 서로 수정주의자라며 이념대립과 주장이 더 심해졌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르 강의 경우는 2007년에 사실상 해결되었고, 앙금이 아주 없진 않지만 대체로 중국-러시아 관계는 현재 많이 개선된 상황이다. 하지만, 공동의 적인 미국이 있어서 일시동맹을 맺을 뿐, 상황이 끝나거나 미국과의 대립이 장기화되면 양국관계의 균열이 일어나 총구를 겨눌지도 모른다[4]. 자세한 건 중러관계 참조.

일본의 경우는 러일전쟁이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러일전쟁과 적백내전 때 일본에게 패배를 당했던 러시아는 소련 이후에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사할린 절반을 되찾았고, 일본의 영토인 쿠릴 열도를 집어삼켰다. 러시아는 승전국이 되면서 사실상 복수를 갚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북해도를 삼키려 획책하고 일본에 공산주의 영향력을 뻗치려 하였다. 그래서인지 일본 극우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러시아에 대해서도 영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두 나라는 아직도 제2차 세계 대전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다. 자세한 건 러일관계 참조.

한국의 경우는 현재도 중소 국경분쟁등으로 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 최대의 가상적국이자 역시 오랜 숙적으로 냉전까지 치른 미국과 달리 대한민국과는 소련 시절 이데올로기 대립과 1983년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5]스탈린시절 연해주 고려인들의 수십만 명 중앙아시아 강제이주[6], 625전쟁 당시 소련군의 개입 및 소련군 진주 이후 북한 점령시의 만행 등을 생각하면 러시아가 한민족이 가까이 지낸다고 하기엔 어렵다고 할 수는 있으나 앞으로의 변화무쌍한 국제관계를 생각하면 러시아를 이용해볼 수는 있을 듯하다. 오히려 한반도에서는 러시아가 그렇게 말썽을 부리지는 않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더 나은 셈.

소련 시절에는 일제 식민지 조선에서 이주해온 고려인에 대해서는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행위를 자행했는데 1937년 스탈린시절 연해주 고려인 17만 2481명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우즈베키스탄 7만6526명, 카자흐스탄 9만5256명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1938년까지 4만 명이 사망했다.[7] 그러면서 아시아를 유린하고 침략전쟁을 저지른 일본제국과는 스탈린의 소련이 모스크바에서 일소불가침조약(일조중립조약)을 체결하여 일제 식민지인 조선인에 대해서는 학살을, 일본제국에 대해서는 대등한 중립조약을 맺으며 강약약강식의 소련의 철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8]
냉전 시기에는 소련과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있었다. 특히 소련군 진주 후에 북한을 점령하고 나선 만행을 저지른 바가 있고, 6.25 전쟁 당시에는 비공식적으로 소련군도 참전했기 때문에 적국이었다. 또한 1983년에는 소련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있었다.

1988 서울 올림픽때는 미국과 소련의 경기에서 대학생 응원단들이 소련을 응원했던 일화가 있었을 정도. 그러나 기본적으로 친서방이나 소련시절 고려인에 대한 만행과 소련군의 북한 진주시 벌어진 만행등등으로 반러 성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특히 반북,반중,반러가 슬로건인 우익 및 극우 성향을 가진 한국인일수록 이런 성향이 강하다.냉전 시절 북한을 만들고 북한을 도와주는 모습에 불만을 가지는 반소에 더 가깝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6.25 전쟁 당시 상호간에 적국으로 싸웠던 것만 봐도[9]...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기성세대와 일부 반공 보수성향의 한국인은 러시아를 적국처럼 대한다. BBC Pew Research Center의 여론조사 자료에선 한국 국민들의 러시아의 대한 감정은 긍정 46%, 부정 46%, 중립 11%로 긍정과 부정이 같게 나왔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크게 엮였던 적은 없는지라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빙상연맹의 개삽질로 안현수빅토르 안이 된 뒤 좋은 성적 및 국가적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자 한국 대신 러시아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피겨 스케이팅 여성 종목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김연아의 금메달을 강탈해갔다!"란 소리가 나온 판정논란이 일어나서 러시아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 이후로는 더더욱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10] 하지만 5년도 지난 일인데다 그래도 한국 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반일감정이나 반중감정보다는 이제는 좀 덜한 편이다.

그렇지만 2019년 러시아 군용기 독도 영공 무단 침범 사건으로 새롭게 반러감정이 대두될지도 모른다.

2.3.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군주정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사회주의 체제의 권위주의 독재자들이 나타났는데, 시리아, 리비아, 알제리, 이라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독재자들은 반서방반미를 주장했고, 대체로 러시아(당시에는 소련에 속했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독재자가 사라진 몇몇 중동의 나라들의 경우 러시아를 불신하는 성향이 있거나 반러가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러시아, 중국은 카다피 측을 지원하거나 독재 축출을 반대했고, 이로 인해 리비아에서는 잠시 반러, 반중 등이 있었다. 물론 러시아와 중국이 카다피를 포기하면서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국민들은 러시아, 중국 등을 못 믿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좀 있다. 시리아의 경우는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고 시리아를 폭격하면서 시리아를 비롯한 대다수 중동 여러 나라들의 시민들의 반러가 심해진 편이다. 아프가니스탄1979년 부터 1989년까지 일어났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반러감정이 있는 편. 물론 아프가니스탄은 반러국가는 아니다.

2.4. 몽골

이곳은 서로 복수를 한 관계라고 보면 될 듯하다.(...) 몽골 제국에게 짓밟힌 기억이 있던 러시아는 훗날 러시아 제국이 되면서 시베리아를 정복했고, 몽골과도 접했으며, 한 때 몽골을 점령해서 지배하기도 했다. 여기서 부랴트를 비롯한 바이칼 호 유역 등을 빼았았고, 그곳의 몽골인, 몽골계 유목민들을 지배했다. 외몽골이 독립되어서 몽골 인민 공화국이 되었으나, 소련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명분으로 소련의 위성국이 되면서 소련의 간섭을 받았고 러시아로부터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몽골은 몽골의 영웅이었던 칭기즈 칸조차 나쁘게 묘사하며, 칭송을 할 수 없었다. 냉전이 끝나고 몽골도 민주화가 성공되어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좀 악화된 적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딱히 반러성향이 심하진 않고 서로 협력해가면서 발전하는 중. 몽골 입장에선 아래쪽 중국을 '훨씬' 싫어하기 때문에 위쪽 러시아와 상대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편인 것도 있지만,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목적으로 미국과 교류를 많이한다.

2.5. 서유럽북유럽

이 동네라고 해서 동구권 및 미국과 사정이 별반 다른 것도 아니다. 서유럽과 북유럽에도 러시아에 대해서 반러 감정이 꽤 남아 있는 편이다.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2차대전 시기 소련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핀란드도 국민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반러감정이 남아 있다. 독일, 영국 등도 남아 있고, 네덜란드돈바스 전쟁 때 여객기가 피격당한 일로 인해 반러감정이 심하다. 또한 러시아의 성소수자 박해를 비롯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 반러감정이 강한 편이다.

2.6. 미국

자세한 건 미러관계 참조.

2.7. 그 외

퓨 리서치 센터의 2015년 조사에 의하면, 세계 40개 국가 중 러시아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던 국가는 요르단(80%)과 폴란드(80%)였으며, 이스라엘(74%), 일본(73%), 우크라이나(72%)가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

에리트레아의 경우에는 러시아가 에티오피아를 도와준 것이 원인이 되어서 러시아에 대해서 반감이 있는 편이다. 소말리아도 소련이 에티오피아를 도와준 것이 원인이 되어서 에리트레아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해선 반감이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국민당 정권 당시에는 소련과 매우 적대적이었지만, 90년대에 국민당 정권이 붕괴되면서 러시아와의 외교관계가 복원되었고 지금은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1] 러시아/외교 문서만 봐도 바로 알 수 있겠지만, 러시아는 인도중남미 지역을 제외하면 먼 나라 및 이웃나라들과 사이좋은 케이스가 별로 없다.[2] 다게스탄 제외.[3] 다만, 아르메니아는 주변 이웃나라인 이란조지아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4] 당장에 삼국시대 당시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맞서 나제동맹을 맺었다가 장수왕, 문자명왕 이후 고구려의 세력이 약화되자 동맹이 깨지고 다시 적대관계가 되어 전쟁을 벌인 신라백제의 관계를 생각해보자.[5]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6] 1937년 고려인 17만 2481명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고(우즈베키스탄 76,526명, 카자흐스탄 95,256명), 1938년까지 4만 명이 사망했다.[7] 고려인의 강제이주[8] 1941년의 일소중립조약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소련에게 큰 도움을 제공했다. 만약 독일과 일본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협력했다면, 소련이 패배했을지도 모르고, 추축국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중립 덕분에, 소련의 극동지역은 소련의 서부전선에 1941년과 1944년 사이에 25만명의 병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조약은 또한 소련이 미국의 무기대여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일본도 이 조약을 통해 큰 이익을 보았다. 미국과의 전쟁 동안, 일본은 소련으로부터 4천만톤의 석탄, 1억4천만톤의 목재, 5천만톤의 철, 천만톤의 어류 그리고 시베리아와 소련 극동지방의 금을 공급받았다. 소련과의 무역이 미국과의 일본의 전쟁을 도왔던 것이다. 소련-일본 중립 조약[9] 다만, 대규모로 전투병력을 파병하지 않고 소수 공군 병력만 몰래 지원한 정도였고, 전쟁 발발 전에는 김일성의 남침 승인 요구를 스탈린이 48번이나 거절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계속해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였고, 결국 스탈린은 마지못해 승인해주면서 전쟁이 발발하고 만 것이다.[10] 그러나 대한민국은 김재환에게 전세계 최초로 도핑전과자 MVP를 준 나라이기 때문에 도핑 문제로 러시아를 욕할 자격이 눈곱만큼도 없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