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의 소설가 주요섭이 1935년 12월 발표한 단편소설.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소설의 처음 부분을 보면 '아' 하고 떠올릴 사람이 제법 많을 것이다. 중학교 동아출판 국어교과서(전), 창비 국어교과서(이), 교학사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1인칭 관찰자 시점을 설명하기에 매우 좋은 소설. 화자가 어린 아이라 주인공의 심리를 놓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서 독자가 상상하며 읽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2. 줄거리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이구요. 우리 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소설 첫머리 부분에서
작품의 주요 내용은 현대의 사고로 보면 그다지 파격적이라 볼 수 없는 아이 딸린 과부의 사랑 이야기라고 축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옥희라고 하는 서술자의 등장 때문이다. 옥희는 전술한 과부의 6살짜리 여자아이이며,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 편견을 아직 잘 모르는 순수한 어린아이다. 덕분에 작가인 주요섭은 옥희의 어머니와 사랑 손님과의 사랑 이야기를 보다 중립적으로, 하지만 더 긴장감 있게 서술할 수 있었다.─소설 첫머리 부분에서
옥희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나이이기 때문에 신빙성 없는 서술자 혹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서술자로 분류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점은 아니며, 오히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잔뜩 화를 내고 있다.'라거나 하는 묘사가 가능하여, 읽는 독자에게는 '부끄러웠구만.', '좋을 때로구만.' 하는 식의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게 한다.[1] 이 외에도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나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라는 대사를 옥희가 하는데, 이는 과부라는 단어를 잘 모르는 옥희의 천진난만함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말하기 때문에 저렇듯 냉소적인 말을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비록 옥희가 손님과 어머니에 시점을 맞추어 서술하기는 하지만, 간간히 드러나는 심정 묘사에서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심리 서술들이 보이기 때문.TV문학관에서 당 소설을 각색하여 다룬 내용에 따르면, 과부의 딸이라는 것 때문에 주변 아이에게 놀림받는 묘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 소설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시대적 분위기상 충분히 가능한 묘사이다.
결국 어머니가 사랑 손님의 쪽지를 거절하는 이유는 옥희의 출생에 관련해서도 불륜의 사생아로 의심할 사회의 시선에 굴복하고 만 것이며, 때문에 옥희의 '우리 가족 같다.'라는 이야기를 적극 부정하기도 한다.
당시 재혼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여성은 기존 결혼의 해소나 취소일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에는 재혼할 수 없다는 단서만이 있었을 뿐이다.[2] 이는 재혼 후 태어난 아이가 누구의 친자인지 구별하기 위해 붙어있었던 것이지, 여성의 재혼 자체를 제약을 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별이나 이혼 후 바로 출산을 한 경우에는 6개월의 제약없이 재혼이 가능했다.
또한 사랑 손님은 큰오빠의 친구이자 죽은 남편과도 친구였다. 즉, 옥희 어머니 입장에서 사랑 손님은 자기 오빠와 사별한 남편의 친구로, 소설의 묘사를 봐도 이미 큰오빠가 자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어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공간적 배경은 지극히 폐쇄적인 분위기의 시골 마을이었다. 요즘에도 남편이 죽고 남편의 친구와 바로 재혼을 한다면 호사가들에 의해 "남편이 죽기 전부터 정을 통하던 사이가 아니냐?"라고 불륜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더구나 일제강점기만 해도 여성의 개가(재혼)는 치부이며 과부는 응당 수절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만연했다.
애초에 소설의 묘사를 보면 사랑 손님은 옥희 어머니를 짝사랑하는 것으로 나오며, 그 이전부터 짝사랑한 것으로 암시된다. 옥희 어머니의 남동생이자 옥희의 작은외삼촌은 신식교육을 받은 학생으로, 자기 누나와 사랑 손님에게 "내외하느냐", "진작 마음이 있지 않느냐"고 재혼을 종용하여, 사랑 손님과 옥희 어머니가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옥희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이래 남편의 친구인 사랑 손님과 이성으로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옥희의 작은외삼촌과도 친분이 있을 정도로, 사랑 손님과 옥희 외가와는 상당히 왕래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옥희의 큰외삼촌, 옥희 아빠, 사랑 손님은 친구 사이이다. 정확히 옥희의 큰외삼촌과 사랑 손님이 먼저 친구 사이였고, 이후 옥희의 큰외삼촌이 옥희 아빠와 친구 사이가 돼서 사랑 손님과 옥희 아빠가 친구 사이가 된 것이다. 또한 사랑 손님이 옥희 아빠보다 옥희 어머니를 먼저 알게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옥희 어머니는 큰오빠의 친구라서 사랑 손님을 알게 되었고, 이후 남편의 친구라서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즉, 옥희의 작은외삼촌은 별 생각없이 "두 사람은 매형이 죽은 이래로 친분이 있었고, 내가 보기에 속으로 좋아하는 감정도 있으니, 재혼해도 되지 않느냐?"라는 것인데, 구식 결혼관에선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서로 이성으로 좋아하고 있었다면, 옥희의 아버지가 과연 누구이냐는 불륜의 사생아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기 때문. 옥희 어머니는 남동생의 말에 화를 내고 방으로 들어가, 죽은 남편의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펑펑 운다. 그리고 결정타는 옥희의 말[3]로, 이 말 때문에 옥희 어머니는 사랑 손님에게 나가달라고 하고, 옥희 어머니가 죽은 친구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아는 사랑 손님이 떠나는 결말로 이어진다.
물론, 손님이 어머니와 옥희를 데리고 서울이나 도시로 이주하면 그만이지만, 결국 어머니는 사랑 손님을 떠나보내는 쪽을 택했다. 결말은 사랑 손님이 떠나고 옥희네 집을 방문한 계란 장수에게, 어머니가 "이제 저희 집에는 계란을 먹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하자, 계란을 좋아하는 옥희는 심통이 나서 떼를 쓰려다가 어머니의 파래진 얼굴에 걱정돼서 떼를 쓰지 못하고, 어머니가 아플까봐 걱정한다. 예전에는 '옥희가 과부의 딸이라는 멍에를 벗어날 수 없는 결말'이라고 아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TV문학관에서 각색한 내용이다. TV문학관에서는 옥희의 작은외삼촌이 말하던 '큰형의 친구라서 오래 전부터 둘이 아는 사이고, 그때부터 호감이 있어 보이던데'라는 내용은 모두 삭제되었다. 이걸 다 넣으면 남편보다 남편의 친구를 먼저 알고 마음이 있는 것처럼 묘사돼서, 옥희 어머니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실제로 남편의 친구인 사랑 손님을 사랑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원작 소설이나 TV문학관이나 옥희 어머니가 사랑한 남자는 죽은 자기 남편이다. 원작에서 옥희 어머니가 남동생의 말에 자기 남편의 사진을 끌아안고 우는 걸 봐도, 남편을 사랑했지 사랑 손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며, 단지 오빠의 친구라서 남편보다 먼저 알았고 호감이 있는 정도였다가 남편이 죽고 하숙하게되고 자주 마주치면서 점차 발전된 상황이지 사랑으로 볼 수는 없다. TV문학관에서는 남편의 친구라서 알게된 것으로 각색되지만 역시 남편을 사랑한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옥희 어머니의 파래진 모습의 결말을 보면, 옥희 어머니가 아직 사랑의 단계는 아닐지언정 점차 사랑 손님에게 마음이 기울어가고 있는 것은 명백하기에,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옥희의 저 이야기는 참 가슴 아픈 말이라 생각하게 된다. 자기 남동생 말대로 옥희 어머니가 사랑 손님에게 마음을 품은 것은 사실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남편이 죽은지 얼마 안 된 상황과 남편보다 사랑 손님과 먼저 알고 지냈던 상황을 보면, 이렇게 헤어지는 게 가장 무난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랑손님의 경우에도 지금 플래그가 서서 당장 좋은 마음에 결혼할 수도 있지만, 서울이나 그 근교로 가서 그들끼리 완전히 잘 살기만 한다는 보장이 있는것도 아니며 과부와 결혼하려 한다는 것에 대해 자기 집안에서 질책할 경우[4] 이에 굴복해 옥희 모녀와 헤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사랑손님 역시 옥희 모녀에게 안정된 가정을 제공해줄 수 있는 구성원이 되리라곤 확신할 수 없는 존재였으므로, 옥희 어머니가 사랑손님을 거절했을 수도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한국 사회는 조선 후기 이후 여성의 재혼(개가)을 극도로 터부시하며 도리를 벗어난 것으로 여겼다. 하층민이나 서민 계급일 경우 오히려 여기에서 자유로운 면이 있었으나 양반 계급에서는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옥희네는 죽은 아버지가 문인인 점, 어머니의 남성 형제들이 식자층인 점을 고려할 때 중류층 이상의 집안이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문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거나[5] 사랑 손님을 전에 알았고 아니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옥희가 불륜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은 굳이 더 나아가서 사정을 이것저것 따져볼 때야 불거지거나 말거나 할 문제이고, 그 전 단계에서 중류층 여성의 재혼 자체가 구설수이자 스캔들이고 그 자녀에게도 내려올 정도의 흠결인 것이다. 사랑 손님이 처음 본 남성이라 해도, 또는 재혼처가 중매로 들어온 것이라 해도 옥희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은 여전했을 것이다. 일부종사를 못한 것 자체가 비난받아 마땅하고 체면을 해치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는 중류층 여성이 재혼을 하더라도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를 데려가 양육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몹시 어려웠으며 거의 상상되지 않는 일이었다. 전 남편 가족과 새 남편 가족의 용인이 필요하며,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연결되지 않은, 즉 성이 다른 아이가 유교적 가부장제의 관점에서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옥희를 외가나 친가에 남겨두고 재혼가정을 이룬다면 옥희를 직접 키울 수 없을 뿐더러 옥희는 버려진 아이로 취급받고, 옥희의 어머니는 남자 때문에 아이를 버린 여자가 되어 외부의 비난 뿐 아니라 죄책감 역시 감당해야 한다. 옥희를 재혼가정에 데려갈 수 있더라도 사회적 시선은 '과부 딸'에 비할 수 없이 따가워지며 재혼 남편의 집안에서 눈칫밥을 먹게 된다. 이는 모두 옥희의 아동청소년기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게다가 옥희는 딸인데, 당시 여성의 혼사를 논할 때 어머니의 재혼과 그로 초래되는 양육환경은 어느 쪽이든 꼬리표가 되어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컸다. 특히 일반적으로 좋은 혼처로 여겨지는 중상류층 이상의 집안이라면 그러한 조건을 더욱 엄격히 따질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옥희의 곁에 남아 행복과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 것이다.
한편 옥희 어머니는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매일 기도를 외우고 주기도문을 암송한다. 당장에 옥희를 안고 자면서 기도를 하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라는 문구를 외우다 주기도문을 다 외우지 못하고 '시험에 들지 않게' 라는 부분을 되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험'이란 사랑 손님 그 자체와 사랑 손님에게 점차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것에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다. 당시 시대적인 문제를 떠나 사별한 전남편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사별한 남편과는 연애결혼이었다. 오빠의 친구인 남편의 구애를 받아 결혼한 것이기 때문. 그런데 남편 친구와 재혼하면 남편의 시가와는 남이 되고, 남편과의 추억도 모두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다.
3. 등장인물
- 박옥희
이 이야기의 서술자.[7] 여섯살 남짓의 순진무구한 여자아이로 이제 막 유치원에 입학했다. 과부 어머니와 두 외삼촌,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8]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나기 한달 전 사망해 유복녀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하며 나이에 걸맞게 순진하여(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성이 났다고 생각한다든지) 이후 어머니와 계란 장수의 대화에서 사랑 손님이 선물해준 인형에게 "어머니가 왜 이제 계란을 안 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얘기를 나눈다. 어린이답게 매우 순진하고 천진난만해서, 어른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설명해준다.
- 어머니
이야기의 주인공. 스물네살의 젊은 나이에 과부로 살고 있다. 1930년대답게 어린 나이에 시집왔는데, 옥희가 여섯살이고 얘가 태어나기 1달 전 남편과 사별했다고 하니 결혼한 나이는 열여덟살이나 그 이전, 그리고 열아홉이라는 젊다못해 어린 나이에 그야말로 청상과부가 된 셈이다. 오빠와 죽은 남편의 지인인 사랑손님과 약간의 플래그가 있었지만 현재의 가치관에 수긍하고 사랑 손님과 헤어진다. 이후 계란 장수가 계란을 팔러 오자 더 이상 계란을 팔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사랑손님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소설은 어린 옥희의 관점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서인지 집안은 썩 넉넉하지 않은 모습이 나온다. 죽은 남편이 물려준 땅이 조금 있지만 그것만으론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어서 삯바느질을 한다고. 사랑손님이 온 이유도 하숙을 받아서 생계에 보태려고 한 것이다.[9]
- 아버지
옥희의 아버지. 옥희가 태어나기 한달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이다. 옥희의 큰외삼촌의 친구이자 사랑 손님의 지인이기도 하다. 사망 원인이 작품에서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병사와 사고사도 거론되지만 작중에 옥희의 아버지는 문인이었다고 나오며 친구 사이인 큰외삼촌과 사랑 손님 모두 당대 지식인으로 나오며 작가인 주요섭이 독립운동가에 문인이었다는 점으로 독립운동을 해서 사망했을 것으로 보는 평가도 있다.
- 사랑 손님
옥희의 아버지· 큰외삼촌과 친구이다. 교사로 발령받은 동네에 있는 옥희의 집 윗사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옥희의 말에 따르면 삶은달걀을 좋아한다고 한다. 옥희 어머니를 사랑하게 됐지만 옥희 어머니의 거절로 결국 마음을 접고 방학을 맞아 다시 서울로 떠난다. 이때 옥희에게 마지막 선물로 인형을 준다. 죽은 친구의 아내를 짝사랑했지만 사회적 인습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랑을 포기한, 전통적인 윤리에 순응하는 소극적 성격이다.
- 외삼촌 2명[10]
옥희의 큰외삼촌[11]과 작은외삼촌[12]으로 큰외삼촌은 대학생으로 서울에서 지내서 비중이 매우 적고 친구인 사랑손님에게 조카 옥희를 소개하는 것으로 잠시 등장하며, 작은외삼촌은 근처 중학교에 다니는 중학생이다. 여기서 큰외삼촌의 지인[13]인 사랑 손님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 외할머니
작품 내 위치는 공기. 옥희의 아버지가 옥희의 탄생 1달 전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 정도가 등장의 전부인데, 하술하는 박형서의 작품에서는 결론을 내는데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4. 기타
- '사랑 손님'의 사랑은 사랑방을 의미한다. 중의적인 의미로 채택한 제목일지도. 아울러 서울 사투리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문학 작품 중의 하나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현대 표준어로 바꿔서 실을 때도 많다. ex)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야요. →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에요. 그러나 "과연 서울 사투리일까?"라고 의문을 품는 측도 존재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작가 주요섭의 고향은 김일성의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이고, 소설 속 옥희의 집은 서울이 아닌 시골이므로 서울 사투리가 사용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평안도 사투리가 서울 사투리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기에 나오는 주장이다.
-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사투리는 진남포 지역의 말투보다 서울말에 가깝다. (평안남도 민속놀이 기록) 진남포, 평양 등 서울에 가까운 평안도 조차 전주 쯤의 거리와 비슷하니 구분되는 사투리가 있다. 훨씬 가까운 남한의 강화도, 교동도도 사투리가 있다. 안창호도 진남포 옆 강서 출신이지만 서울말과 사투리를 섞어 말한다는 것이 구분될 정도다. 북한 표준어인 문화어가 차용한[14] 평안도 사투리인 '-라요', 김일성도 쓴 '-이가' 같은 어미가 등장하지 않고, 봉산 같은 더 가까운 황해도에서 쓰이는[15] '기래'라는 말은 옥희는 아예 '그래'라고 한다. 그나마 평안도의 특징이라 볼 수 있는 말투는 경기도의 사투리와도 겹친다. 더군다나 서북 방언 문서에서 보듯 실향민끼리는 진남포 옆 평양도 사투리가 나름 심하다고 본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형인 주요한 스스로 사투리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평양은 문화적으로 뒤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평양 출신의 문화인이나 예술가는 평양보다는 경성(서울)을 무대로 하고 활약해야 할 줄 압니다.”라고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 일제가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표준어를 강요해서 방언을 쓰던 사람들은 지역에 무관하게 그 말투를 낮게 보는 인식이 있었다. 채만식의 소설 등에도 묘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 앞 부분이 번역되어서 1980년대(4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중국어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 사회적 압력에 의해 어머님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된 건, 러시아 희곡 벚꽃 동산(안톤 체호프, 1904)에서 라넵스카야의 양딸 바랴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신흥 상인 로파힌을 사랑하는 듯 하지만 여자가 고백하면 저평가받는다는 분위기에 의해 결국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
4.1.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 영화로도 1961년, 1978년 2차례 제작되었으며 영화 제목은 모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진지하게 소설의 내용을 영화로 옮겼다. 자칫 1인칭 관찰자 시점이 흐트러져 평범한 B급 영화가 될 위험성이 있는 작품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옥희의 시점과 전체시점을 번갈아가며 묘사하여 명작으로 끝마친다. 1961년 작품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데 시간나면 봐도 좋다.
- 2006년에는 이 작품의 일부 설정과 제목을 패러디한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라는 코메디 영화가 나온 바 있다. 옥희 역은 고은아, 어머니 역은 김원희, 사랑 손님 역은 정준호.
- 컬투의 김태균이 정립시킨 옥희 성대모사는 "아즈씨 아즈씨, 아즈씨는 삶은 달걀 좋아하우?"와 그 기괴한 웃음을 통해 하나의 컬쳐 소스로 이 작품을 정립시켰다. SNL Korea에서도 패러디되었다.
- 네이버 웹툰 실질객관동화 19화에서 패러디되었다. 아저씨에게 엄마가 보낸 편지에서 드러나듯, 사실은 엄마가 아저씨에게 푹 빠져서 딸내미고 뭐고 야반도주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원작과 달리 하드보일드한 옥희가 이미 아저씨에게 재테크를 포함한 자산상황 및 은퇴 후 미래 계획을 물어본 뒤였다. 이 과정에서 옥희는 아저씨의 변변찮은 대답을 듣고는 "이 남자는 엄마의 남편감으로는 글렀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결국 엄마의 편지를 전달하는 도중에 글씨를 베껴서 아저씨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처럼 위조한다. 그래서 스토리는 원작대로 흘러가고, 옥희는 좌절하는 엄마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위로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막상 옥희는 후일담에서 "엄마, 나 세탁소 오빠랑 살 거예요. 사랑에 조건이 있나요!"라고 쪽지를 남기고 가출한다. 이때 엄마 왈. "왜 이렇게 억울하지?"
4.2. 패러디 작품
- 이 작품에 대한 가장 파격적인 마개조로 박형서란 작가가 쓴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라는, 논문의 형식을 빌린 패러디 작품(2006년, 단편집 "자정의 픽션"에 수록)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21회나 등장하는 삶은 달걀을 남성의 체액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옥희는 사실 6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프로이트류의 심리 메타포까지 드립치면서 이 이야기 자체가 손님과 모계로 이루어진 회귀 과정이라는 결말로 달려갔다. 작가의 후기에서는 '이런 실험적 방식의 글쓰기를 할 때 나는 극단을 추구한다. 쉽게 말해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다. 내 글을 읽고 설득당한 내 멍청한 친구 몇이,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음란 소설로 규정하자 기분이 좋았다'라고 표현한다. 작가가 처음부터 노렸다는 얘기다.
- 본 소설을 6.25 전쟁 학도병 이슈와 함께 재해석하여 전형섭 시인의 '소녀는 배가 불룩했습니다' 의 결말에 이어 붙인 만화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카연갤루리웹 내용인 즉슨, 소녀는 한 소년과 사랑에 빠지면서 서로 몸을 섞게 되고, 그 결과 소녀는 임신을 하게 되는데, 태기가 드러나기 전 소년은 학도병으로 참전, 겨울에 전사하게 되고,[16] 이후 그렇게 낳은 아기가 바로 이 소설의 박옥희라는 것. 물론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본 소설과 시기상으로 맞지 않지만 굉장히 절묘하게 이어붙여진 전개인지라 나오고 나서 명작 평가를 받게 되었다.
-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초창기에 진행된 코너 라디오 극장에서는 컬투 사단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패러디했다. 정찬우가 아저씨, 김태균이 옥희, 서동균(→강성범)이 해설, 서훈이 부엉이, 리마리오가 느끼한 손님, 전금선이 옥희 엄마를 맡았다. 이 코너가 히트친 후 김태균은 여러 코너에서 옥희 캐릭터를 다시 보이곤 했다. 안타까운 얘기가 있다면 학업과 코미디 활동을 병행하던 전금선의 언니가 살인사건에 휘말린 것, 범인은 그 정남규였다.
- 에로 비디오 제목 중에는 '사랑방 손님들과 어머니'도 있었다고 한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3com&logNo=80010476257
[1] 신빙성 없는 화자의 또 다른 예로는 채만식의 《치숙》이 있다. 이 경우는 마르크스주의에 빠진 고모부를 디스하는 철없는 화자를 통해 친일파를 에둘러 깐다. 이와 동시에 경제력이 부족함에도 가족에 얹혀살고 있는 고모부를 디스하기도 한다.[2] 일본 민법 제733조.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후 민법 제811조로 계수되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고 2005년에 폐지되었다. (일본 민법733조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아이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위한 취지였기 때문에, 바로 아이를 출산한 경우에는 6개월의 경과없이 재혼이 가능하도록 단서 조항이 붙어 있었다.) 일본의 경우 2015년에 최고재판소에서 일부위헌 결정을 받고 100일로 단축되어 시행중이다. 6개월 재혼 금지 조항은 일본 메이지시대인 제정된 조항으로, 여성이 바로 재혼해 아이가 태어날 경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임신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정한 것이다.[3]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겠다.[4] 요새는 재혼가정이 많긴 하나 당시만 해도 과부가 재혼하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니, 과부와 재혼하려는 남자 집에서도 당연히 아이까지 있는 과부가 자기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질색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새도 애딸린 편부/편모와 재혼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싶다. 이 작품보다 한 세대 뒤에 (1948년 작)나온 최인욱 작가의 <개나리>를 보면, 과부가 재혼하는 것까지는 완화됐지만 아이까지 딸린 과부가 주인공이라 그녀와 재혼하는 남자가 "아이는 친정집에 놓고 오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다. 결국 여주인공은 갈등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위해 비정하게 아들의 곁을 떠나게 된다.[5] 남편이 죽은 직후의 상황도 아니다. 옥희는 유복자로 아버지 얼굴도 모른다.[6] 한국 전래동화만 보아도 아이 입장에서 계모는 자주 나오는 반면 계부는 극히 드물게 등장한다.[7] 서술자일 뿐이지 주인공은 아니다.[8] 정확히는 작은외삼촌과 외할머니는 옆집에 사시는 것이다.[9] 다만 일제강점기에 자녀를 유치원에 보낸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지역에서는 먹고 살 만하며 교육 받은 집에 속한다. 실제로 극중에서도 옥희가 말하기를 당장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삯바느질과 하숙비는 부식거리, 간식거리, 옷 등 부가적인 지출, 즉 그때 그때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거라고 나왔다.[10] 사랑 손님은 아버지와 큰외삼촌과의 지인이고, 옥희 집에는 아직 중학생인 작은외삼촌이 같이 살고 있다.[11] 옥희 어머니의 오빠.[12] 옥희 어머니의 남동생.[13] 옥희의 아버지의 지인이기도 하다.[14] 일반적인 단어는 물론 어미의 가장 많은 부분을 서울말에서 빌려왔으나 북한에서는 이것을 평양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성격의 주장이라 이에 반하는 주장을 북한이 싫어한다. 이것 때문에 서울말과 평양말이라는 문화어가 비슷하다는 주장과 방언 차로 표준어와 문화어가 차이가 심하다는 모순된 주장이 돌고 있다.[15] 김동엽(1938) 문서 참조. 황해도 봉산 출신 야구 감독이다.[16] 한국군이 겨울에 눈 맞아가며 싸웠던 전투는 1950년 말에서 51년 초,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한 후퇴 및 반격기, 그리고 그 이후의 지리멸렬한 고지전 가운데 겨울 시즌이 최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