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22:13:48

KT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KT(동음이의어) 문서를, 이 회사의 요금제에 대한 내용은 KT/요금제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민국 체신부의 후신(後身)
체신부 체신부 정보통신부
(1994년 개칭)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기능 일부 이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전기통신공사 한국통신 KT

대한민국주요 이동통신사 (가입자순)
MNO
(목록)
파일:external/www.sktelecom.com/h1_logo.png 파일:KT 로고 (4K 해상도).png 파일:LG_Uplus_logo.png
MVNO
(목록)
헬로모바일 SK텔링크 freeT
코드모바일 유니컴즈 M모바일
아이즈비전 에넥스 티플러스
에스원 U+알뜰모바일

주식회사 케이티
Korea Telecom Corporation
파일:KT_CI.jpg
설립일 1981년 12월 10일[1]
형태 주식회사
업종명 유선통신업
상장유무 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98년 ~ 현재)
종목코드 030200
시가총액 7조 8,856억원 (2018년 11월 23일 기준)
매출액 23조 4,601억원 (2018년)
대표자 황창규
직원 23,524명 (2019년 3월 기준)
소재지 본사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정로 90(정자동)[2]
광화문 빌딩 East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3길 33(청진동)
광화문 빌딩 West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8(세종로)
연구개발센터 - 서울특별시 서초구 태봉로 151(우면동)
중앙연구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대로1689번길 70(전민동)
인재개발원 - 대전광역시 서구 갈마로 160(괴정동)
고객본부 소재지 보기
수도권강북고객본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 416(자양동)
수도권강남고객본부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중부대로 324(매탄동)
수도권서부고객본부 - 경기도 부천시 소향로 101(중동)
강원고객본부 - 강원도 원주시 원일로 269(학성동)
충북고객본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공항로150번길 73(율량동)
충남고객본부 -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북로 51(둔산동)
전북고객본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온고을로 29(서신동)
전남고객본부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82번길 16(서석동)
대구고객본부 -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로 61(봉덕동)
부산고객본부 -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공원로 23(범일동)
제주고객본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전농로 114(이도동)
시장 점유율 이동전화 31.51% 20,514,135명[3][4]
초고속 인터넷 47.7%[5]
유료방송 30.45%[6][7][8]
공식 홈페이지[9]
제1노조 홈페이지
새노조(제2노조) 홈페이지
1. 개요2. 상세3. 지배구조4. 역사
4.1. 민영화 이전4.2. 민영화 이후
5. 역대 경영진
5.1. 체신부 시절5.2. 공기업 시절5.3. 민영화 이후
6. 역대 슬로건7. KT 멤버십8. 기타9. 주요 서비스10. 노동조합11. 딜라이브 와의 합병12. 비판13. 사건사고
13.1. 1.25 인터넷 대란13.2. KT IDC 장애 사태13.3. KT 홈페이지 개인정보 유출 사건13.4. 아현지사 화재
14. 관련 문헌15. 관련 문서

People. Technology. KT

1. 개요

KT그룹 계열 통신회사이며, 유선 매출 1위(무선 2위[10]), 유선전화 99%[11], 무선 30%, 인터넷 40% 이상을 차지하는, 대한민국 최대 통신회사 이다.

2018년 7월 기준으로 재계서열 12위다.

2. 상세

기업 정책상 기업명인 kt는 대문자 표기가 우선이고, 소문자도 사용할 수 있다. KT는 Korea Telecom의 약자이다.

원래 정부기관공기업이었다가 2002년에 민영화되었다.[12] 보통 민영화가 아니다. 공기업(출신)포함 재계 서열에서 12위이다.

공기업이 민영화가 된 기업이다보니 그 포스는 가히 압도적이다. 물론 지금이야 여러 가지 경쟁 회사들이 치열하게 kt에 융단폭격을 붓듯이 경쟁을 하고 있지만, 지난날 이름값을 생각하면, 사실상 경쟁은 하나마나다.

KT가 설립된 해는 1981년이다. 재미있게도, KT는 해외 프로젝트 제안 서류에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자신들의 시작이며, 2019년 현재 134년이 된 회사라고 뻥을 까는 경우가 있다. 예시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한국의 역사를 명확히 모르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거짓말이다. 솔직히, 133년된 회사라고 하면 외국인들이 놀라긴 한다. ??? : 구라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나? 굳이 따지자면 한성전보총국보다는 1948년 발족한 체신부가 좀 더 적합하다. 2018년에 70년 되는 회사인 셈이지만, 사실 KT도 2011년에 KT 30년사라는 사사(社史)를 발간한 것을 보면 설립 연도가 1981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듯하다.

전국적으로 기간통신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 인공위성을 위한 통신도 여기서 담당하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에 들어가는 인터넷 전용선도 대부분 kt가 서비스하고 있다. 산하기업인 kt서브마린은 대륙 간의 해저 케이블을 설치, 유지보수 가능한 기술력을 국내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데, 특히 도호쿠 대지진당시 지진여파로 해저 케이블이 끊어져버려 해외 다른 통신사들은 방사능 피폭이 우려된다며 모두 복구를 거부했을 때, 또 국내 다른 통신사들은 손놓고 장시간동안 가만히 있었을 때[13], kt 인터넷 이용자들은 kt의 빠른 대처로 평상시와 다름없는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또한 텔렉스, 국제전신과 같은 국제 전화망도 여기서 책임지고 있으며, 지난날 전화국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굳이 말이 필요없다. 특히 전국적으로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통신망을 보유하고 있어서, 다른 회사가 들어오지 않는 산간오지에서 인터넷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가입해야 한다.[14] 또한 해저 케이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해외서버에 접속할 때 가장 강점을 보인다.[15] 또한 NCP[16] 컨소시엄에 참여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직결되는 케이블의 사용권을 가지고 있다. 이 NCP는 2018년에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 지원 이동통신 서비스 : 3G WCDMA, 4G LTE-FDD., 5G(2019.4.3. 23시)
  • 지원 종료 이동통신 : 2G CDMA(a.k.a PCS)[17], 4G Wibro[18].

전신주 또는 분배기에 부착되는 사업자명 스티커 색은 파란색이다. [19]

3. 지배구조

2019년 7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국민연금 12.3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자사주 6.12%
파일:일본 국기.png NTT 도코모 5.4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우리사주조합 0.46%

4. 역사

4.1. 민영화 이전


한국전기통신공사 당시 광고(1987년). 광고 속 캐릭터는 당시의 마스코트다.

파일:external/m.hbs1000.cafe24.com/hbs1000_15937.jpg
한국통신 시절 공중전화 부스에 붙어있던 표식. 현재도 (좀 줄어들긴 했지만) 지하철역그리고 맨홀뚜껑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요즈음도 공중전화 박스 외면의 한국통신 표식은 그 자리에 kt로고 수정전의 kt링커스 로고가 붙어있는 표식으로 바뀌었으나 동전과 티머니를 사용하는 공중전화의 다이얼패드 옆 사용 안내 철판에 만은 한국통신 시절 로고가 박혀있다.

원래는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전무국(電務局)[20]이 전기통신서비스 사업을 관장했으나, 1981년 3월 14일 '한국전기통신공사법' 제정 후 12월 10일에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새로 출범한 후 이듬해 신정을 기해 정식 발족되었다. 우리가 아는 한국통신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1990년 12월이었다. 한통 출범 당시에는 기업이념을 '정보, 통신, 인간의 융화'로 정했다. 원래는 공기업도 아니고, 우정사업본부처럼 체신부 소속기관이었다보니 체신부 시절에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보고 입사하여 체신공무원 → 한통 직원(공기업) → kt 직원(민간 대기업) 테크를 두루 거치고 명퇴하신 분들도 계신다.[21] 정부부처 직속 기관에서 공기업으로 바뀔 때, 직원들은 자신의 직업이 공무원에서 일반 직장인이 되어버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고...[22][23] 한국통신 시절 영어 약칭은 KTA(Korea Telecom Authority)였다.

공사화 후 본사는 1983년 8월 국제자동전화(DDD) 서비스를 개시했고, 1984년 12월에 시외전화망을 개통한 후 이듬해 충북 보은에 제1위성통신지구국을 신설했다. 1986년 3월 우리 기술로 개발한 전전자교환기(TDX-1)를 개통하고 1987년 7월 전국 전화 광역자동화를 완수해내 '1가구 1전화' 시대를 개막했다. 1988년 10월 30일 전화가입자 수 1천만을 달성한 후 1989년부터 서비스-품질-경영 3개 혁신을 담은 '3I 운동'을 폭넓게 전개하였고, 1990년 12월 10일부터 '기업문화헌장' 선포와 동시에 새 CI를 공개한 뒤 20일엔 한국통신카드(주)를 세웠다. 1991년 9월부터 컴퓨터통신 '하이텔' 시범서비스를 실시한 후 11월 29일에는 TDX-10을 처음 개통함과 동시에 TDX 회선 400만을 돌파해냈다. 12월 1일에 한국경제신문사와 합자해 한국PC통신(주)를 세웠다.

그 외에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올림픽 통신주관기관으로 활약하였고, 1993 대전 엑스포 때 '정보통신관'을 열었다. 1994년에 국내 최초로 상용 인터넷 서비스 'KORNET' 개통 후 1995년에 '무궁화위성 1호'를 쏘아 우주통신시대를 열었고, 1996년에 '무궁화위성 2호'를 쏘아 국내 위성방송 시대를 열게 했다. 그해 6월에 PCS 사업권을 따낸 후 12월 27일에 한국통신프리텔(주)를 세웠고, 1997년 5월에 '전환기 관련 특별대책'을 수립해 경영혁신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여 10월 1일, '공기업 경영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투자기관으로 전환했다.

1980년대까지는 이용자들이 별다른 불만이 없었지만, 1990년대 PC통신이 일반화되면서 대차게 욕을 먹기 시작했다. 이때의 PC통신은 전화선을 이용하여 모뎀으로 접속하는 방법이 대다수였다. 문제는 전화요금이 3분당 몇 십 원씩[24][25] 나가는 일종의 종량제였던 것. 따라서 이때는 PC통신에 심취했다가 몇 십만 원 단위의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PC통신이 일반화되면서 이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1997년 4월 1일 정액제 요금도 출시했는데 24시간 무제한이 아닌 일정시간만 정액제가 적용되는 제한 요금제였다.(일명 야간정액제[26]) 당연히 이것도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식으로 대차게 까였다.

거기다 하나로통신이 출범하면서 ADSL을 전면에 내세우자 한국통신은 ISDN2라는 것을 내세우는데, 이건 기존에 서비스되던 ISDN을 아무런 개선 없이 이름만 바꾼 것이었다.[27] 이것도 당연히 대차게 까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통신의 ADSL(하나포스)에 가입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몇 년동안 시범서비스만 하던 ADSL(메가패스)을 내놓게 된다. 한마디로 민영화 전의 움직임을 보면 답이 없던 회사.

그나마 까이지 않았던 건 2000년에 PPP서비스인 POWWOW[28]의 인터넷 접속 요금을 분당3월/월 4,000원으로 조정한 것인데 ADSL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때라서 별 의미가 없었다. 또한 2001년 6월 1일에 할인시간 정액제[29][30]가 IDSN[31]/PSTN 종일 정액제로 바뀌었지만 역시나 별 의미는 없었다.[32]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전화 안내멘트(다이얼이 늦었거나, 잘못 걸었거나 등)의 BGM으로 Earl Klugh의 'Across the sand'가 쓰였다. (38초경부터 들으면 된다.) #

4.2. 민영화 이후

2002년 5월에는 정부지분 완전매각에 따라 완전 민영화 되었고, 기존의 전화국을 '지사'로 개편했다. 8월에는 이용경 KTF 사장이 민영화 1기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2005년 12월 28일 북한 개성공단에 남북한을 잇는 통신망을 개통하고 지사까지 세웠다. 2007년 SC제일은행으로부터 제일FDS도 인수했다.

사실 2009년 말 아이폰을 내면서 일부 사용자에게 잠시 이미지가 개선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에는 데이터 통신 요금이 너무 비쌌고[33], 외제 단말기도 국내에 들어오면 Wi-Fi 기능이 삭제되어 꼼짝없이 통신사의 데이터 통신을 써야했던 시절이 있었다.[34] 그러다 kt에서 아이폰을 아무런 수정없이 그대로 출시하면서 국내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릴 것이 암시했고, 데이터 통신 요금은 많이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통신사 차원에서 Wi-Fi도 열심히 설치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기에 이 시기에 kt의 이미지는 잠깐 좋았던 적이 있었다. 거기다 그때 SKT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내놓은 스마트폰이 악명높은 옴레기였던데다, SK텔레콤이 이 시기에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터트리면서 반대급부로 이미지가 좋아진 것도 있다.[35][36]

2009년 6월 1일 이동통신업체인 KTF와 합병, 초거대 통신회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때 KTF 건물에서 F자만 떼면 통합 KT 간판이 되니 돈이 별로 안 들어갔으나#, 2009년 7월 신CI를 적용하면서 이마저도 헛짓이 되었다.

한편 가입자 몰래 정액제로 가입시킨게 들통나 몰래 kt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 # 또 2G 서비스를 종료시키기 위해 무분별한 DM발송과 집요한 연락을 하였으며, 심지어 집전화를 끊어 기사가 방문하게끔 만들어 2G 휴대폰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

2011년 유아교육용 소형로봇 '키봇'을 출시했고, 2012년 2월에는 삼성 스마트 TV의 인터넷을 끊었다.한국일보 하지만 차마 ★★★과 싸우기는 힘들었는지 5일만에 취하.아시아경제

그리고 2012년 7월 즈음에 변칙P2P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DPI(심층패킷검사, Deep Packet Inspection)를 도입했다. 예전의 삼성 스마트TV 트래픽논란과 유튜브 속도제한 논란의 연장선으로 최종적으로는 총량제(누적 트래픽 총량 제한)나 종량제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 kt에서는 종량제가 목적은 아니라고 한다만 글쎄다. 미디어오늘 네이버뉴스

2012년 1월부터 LTE 서비스를 시작했다. 브랜드는 LTE WARP. 다스 베이더를 이용한 WARP 광고가 잘 먹히지 않자 버스커 버스커를 긴급 투입한 빠름~ 빠름~ 빠름~ 광고로 대체하였다. 하지만 LG유플러스의 약진으로 인해 LTE 꼴지로 밀려났고, LTE 꼴지 신세를 면하기 위해 베가 레이서 2, 갤럭시 R 스타일 등 쟁쟁한 폰들을 한자릿수 가격에 풀었다!

2012년 9월 보조금 대란 때 통신3사가 갤럭시 S III를 정신나간 가격에 풀어서 KT도 LTE 가입자를 대량 유치했다. 그런데 주말에 어마어마한 양의 번호이동이 들어오고 또 나가면서, 첫 영업일인 9월 10일에 전산이 터졌다. 그것도 KT만! 들어오는 사람도 못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도 못 나가는 막장 상황에, 기다리다 못한 일부 LG유플러스 판매자는 KT에서 오는 번호이동을 폭파시키기까지 했다. 공식적으로는 12일에 다 복구했다고는 하는데 전혀 믿을 수가 없는 게, 13일에도 개통이 안 된 번호이동건이 수두룩하다. 덕분에 이 주에는 보조금 잔치가 아니라 번호이동 전산 터진 걸로 기사가 잔뜩 나갔다. 특히 KT가.

여담이지만 KT LTE의 만족도는 영 좋지 않다.# 2G 가입자들을 헌신짝처럼 쫓아내서 가뜩이나 이미지가 안 좋은 판에 주파수 문제[37]로 LTE 서비스 개시가 6개월이나 지연되어 2012년 1월 기준 KT LTE가 서울에서 첫 시작할 당시 LG유플러스는 이미 84개 시에서 LTE 서비스를 제공 중이었다.
거기다 멀티캐리어 주파수인 900MHz 도 혼선이 되고 있어 통화품질 저하현상이 일어났다. 결국 주파수를 이동하여 혼선을 피해 멀티캐리어 서비스도 가장 늦게 제공 중.
KT 가입자 800만 명의 개인정보가 털린 것이 확인되었다. 네이버 뉴스링크
kt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뜨는 팝업창에서 자신의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유출되었으나 전부 회수하였습니다"라는데 그딴 걸 누가 믿을까?

그런데 2014년 3월 6일 또 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건 1,200만 명과 전건 800만 명을 합쳐 도합 2,000만여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시켜버렸다. KT 홈페이지 개인정보 유출 사건 문서 참고.

2014년 6월 13일까지 해외망 보수 공사중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로 인해서 그런지 유튜브 재생이 원활하게 안 되는 현상이 제기되는데 KT측에선 이에 대한 언급이나 공지사항이 전혀 없었다.

2014년 10월 20일 초고속 인터넷보다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을 출시하면서 하루용량 일 100GB 초과 시에는 인터넷 속도를 100Mbps로 제한하는 만행을 해버렸다. 하루에 100기가라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그 정도의 트래픽을 소모할까 싶지만 잘 생각해보자. 그 회선을 혼자 쓰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보급되면서 자취를 하지 않는 이상은 한 가구에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서너대쯤은 될 텐데, 거기에 4K를 위시한 각종 고해상도 컨텐츠가 늘어나면서[38] 일반 사용자가 하루 사용량을 넘어갈만한 상황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토렌트나 서버를 돌리는 헤비 유저들을 막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하더라도 업로드 속도를 제한했었더라면 일반 사용자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헤비 유저들을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루 100기가라는 용량에 묻혀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사용 트래픽이 누적되는 기준이 100Mbps를 초과해서 쓰는 트래픽만 누적되는 게 아니라 100Mbps 미만의 속도로 소모되는 트래픽도 하루 사용량으로 계산된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하루 100기가라는 제한이 지금 당장은 대부분의 사람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충분히 부족할만한 용량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왔을 때 과연 kt가 하루 이용량을 순순히 늘려줄까?

2016년부터 '올레'라는 브랜드보다 kt라는 이름을 더 밀어주고 있다. '올레 스퀘어'가 'kt 스퀘어'로 바뀐 것을 시작으로 광고에서도 올레 대신 kt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현재 kt 측에선 "올레 스퀘어의 경우, 최근 내·외부 리뉴얼(새단장)을 하면서 회사 명칭인 kt가 더 부각되도록 명칭을 바꾼 것일 뿐"이라며 "기존에 사용하던 '올레' 브랜드 명칭을 인위적으로 바꿀 계획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kt는 이미 앞으로 출시되는 신규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더 이상 '올레' 표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또한 일부 olleh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추노마크를 olleh에서 kt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또한, 단말기에 표시되는, 통신사 캐리어명도 2016년 3월을 기점으로 일부 기지국에서는 기존의 olleh가 아닌 kt로 캐리어명이 표시된다. 2017년 3월 17일 오후쯤부터 대부분의 기지국에서 kt로 표시하는 걸로 보아 기지국 업데이트를 한 모양이다. 그리고 테스트한 결과 일부 선박에는 olleh라고 아직도 캐리어명이 표시된다. 또한, kt wiz의 응원가에서 올레가 들어간 건 죄다 바뀌거나 없어졌다. 특히 오정복선수의 응원가는 앞부분 올레부분이 생명이었는데 이게 없어져서 콱갤에서 모기업은 엄청 욕을 먹는 중이다. 이후 항의가 심했는지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olleh 표기를 없애는 이유에 대해 황창규 회장이 이석채 전 회장의 색채를 지우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있다. 같은 해 개성지사도 개성공단 폐쇄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결국.. 언더케이지 갤럭시 J5 / J7 2016 출시 관련기사에서 J7 뒷 커버 통신사 로고가 olleh에서 kt로 변경되었고 휴대전화에서 잘 보면 통신사 캐리어도 kt로 변경되었다. 노트7부터는 부팅로고에서도 올레가 아닌 kt로 변경되었다. 고작 대문자에서 소문자로만 변경되는데 무려 3번이나 바꿨다. 그런데 올레 브랜드는 버리지 않는다고 보아 SK텔레콤처럼 올레라는 브랜드는 일부 상품과 지사 등 kt 본사 직속 지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리점에서만 olleh 브랜드를 그대로 둘 가능성이 높아졌다.[39]

그러던 2017년 7월 경 갑자기 올레닷컴의 사이트 배너가 결국 kt로 바뀌었다. 남아있던 olleh의 상징을 사실상 버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olleh로 표기한 대리점 간판을 최근들어서 kt로 교체되기 시작하였다.[40]

2017년 9월 18일, 점점 모든 것이 2016년을 기점으로 olleh에서 kt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변경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olleh.com → kt.com 전환도 확정되어 사이트 주소가 10월 1일을 기점으로 변경될 예정이며 잠정적으로 며칠 동안 사이트 이용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공지사항과 메인화면에 게재되었다. 물론 올레샵(olleh shop)도 KT Shop으로 전환되었다. 공지사항 글 내용 관련 공지 이미지

2018년 5월 10일에 '남북협력사업개발 TF'를 발족하여 개성공단 등 남북통신 인프라 복구를 추진코자 했다.

5. 역대 경영진

5.1. 체신부 시절

  • 전무국장
    • 이재곤 (1946~1948/1949~1952/1956~1957)
    • 황갑성[41] (1948~1949)
    • 이규성 (1952~1954)
    • 김재규 (1954~1955)
    • 홍순성 (1955~1956)
    • 임남수[A] (1957~1958)
    • 윤태은 (1958~1960)
    • 신용철 (1960~1961)
    • 박희성 (1961~1962)
    • 이춘화 (1962~1963)
    • 오세관 (1963~1964)
    • 진근현 (1964~1968)
    • 이우연 (1968~1970)
    • 강유원 (1970~1971)
    • 최병권 (1971[43])
    • 정규석[A] (1971~1974)
    • 장기익 (1974~1975/1979~1980)
    • 신서우 (1977~1979)
    • 김정렬 (1980~1981)
  • 전무기획국장
    • 장기익 (1975~1977)
  • 전무사업국장
    • 가재남 (1975~1976)
    • 배호원 (1976~1977)

5.2. 공기업 시절

  • 이사장: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정 이후 1997년까지 이사장제가 존재하였다.
  • 사장
    • 초대 이우재 (1981~1988)
    • 2대 이해욱 (1988~1993)
    • 3대 조백제 (1993~1995)
    • 4대 이준 (1995~1996)
    • 5~6대 이계철[46] (1996~2000)
    • 7대 이상철 (2001~2002)

5.3. 민영화 이후

2009년부터 CEO의 호칭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바뀌었다.

6. 역대 슬로건

  • 발전하는 전기통신 다짐하는 친절봉사 (1982)
  • 언제나 정성을 다하는 한국전기통신공사 (1983~1990)
  • 정보, 통신, 인간의 융화 (1990~1991)
  • 세계 첨단기업에 도전하는 한국통신 (1991~1997)
  • 21세기 정보통신의 선도자 (1997~1998)
  • 편안해요- 한국통신 (1998~1999)
  • Cyber World Leader (1999~2001)
  • Let's KT (2001~2005)
  • Life is Wonderful (2005~2009)
  • All New KT (2009)
  • olleh kt (2009~2016)
  • People. Technology. KT (2017~ )

7. KT 멤버십

구 올레클럽. KT에서 운영중인 멤버십. 해당 항목 참고.

8. 기타

여담으로 아이폰을 먼저 시작해서 그런지 아직도 SK텔레콤보다 아이폰에서는 강세를 보이는 듯 하다. 이는 KT가 먼저 런칭한 아이폰 3GS와 아이폰 4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SKT와 KT가 동시에 출시한 아이폰 4S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던 것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아이폰 5는 SKT와 KT가 동시에 출시하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에서 훨씬 우위에 있는 SKT가 유리할 것이라는 평이 출시 전에는 대세였는데, 요금할인반환금[48]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결과적으로 KT가 가입자를 더 많이 확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폰 5 출시 시기가 SKT는 이미 위약금3를 적용했는데 KT는 아직 적용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이폰 5 + 위약금3 미적용 효과로 어느정도 고객을 확보했다.

KT는 SK텔레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제휴해서 소프트뱅크 한국지사 직원들에게 아이폰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KT는 자사 직원 공급 및 본사 직영 대리점 판매용 한정으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이패드추노마크가 박혀서 나온다.

여러모로 한국에서 외산폰[49]을 쓰기 적합한 통신사다.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는 전화기, 즉 국내에서 사업을 하다 철수한 HTC, 블랙베리[50], 모토로라, 마이크로소프트 루미아나 정식 출시는 안 했지만 국내에서 인기가 생긴 샤오미 등등 중국 회사 전화기들이 대부분 kt의 주파수를 지원[51]하고, SK텔레콤은 지원한다 해도 멀티캐리어 주파수로 지원해서 kt에 비해 통화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도시 외곽에 사는 사용자들에게는 여러모로 불편하다[52]. LG U+는 이제까지 외산폰의 사용이 안 됐었으나 최근부터 주파수가 같고, VoLTE만 지원하면 사용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2015년 1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은행업 예비인가를 받아 인터넷전문은행 (가칭)케이뱅크를 만든다고 한다.

디시인사이드KT 마이너 갤러리가 있는데 사실상 KT 롤스터의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이 통신사의 데이터 요금제인 범국민 데이터 요금제[53]는 국내 최초로 광고를 한 (피처폰용) 데이터 요금제이다.[54]

9. 주요 서비스


즉, 집에선 쿡하고, 밖에선 쇼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정리되었다. 통합KT 홈페이지 팝업창으로 공지하는 내용이다.

2011년 1월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브랜드 QOOK과 SHOW를 통합하여 olleh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2월부터 올레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리고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통신사업자 표시도 어느순간부터 KT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몇몇 브랜드와 상품명이 변경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상술된 내용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서비스도 하고 있다.
  • 시외전화(DDD) - 식별 번호는 081. 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인 1위.[57]
  • 001 - 국제전화 브랜드, 하지만 다른 상품에 캐발리고 있다. 물론 전화 받는 데가 정말 산간 오지라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 1541 - 콜렉트콜 브랜드. 역시 국제전화랑 같은 위치.
  • PPP/SLiP - 접속번호는 01410, 01411, 01412. 쓰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그렇지 아직도 개방형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있었으나 2017년 8월 31일에 종료 됐다.

10. 노동조합

  • KT노동조합(1노조): 1982년 창설. 1994년 한국노총 탈퇴 후 이듬해 민주노총에 소속되었다가 2009년 탈퇴 후 한국노총 IT사무서비스노련에 소속됨.

11. 딜라이브 와의 합병

KT는 현재 케이블 방송 (SO) 딜라이브 인수를 추진 중이다. KT 가 딜라이브 를 인수하게 된다면 KT&스카이라이프&딜라이브의 유료방송 점유율은 약 37% 에 이르게 된다. 다만, KT 와의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있는 딜라이브 노조들과 인수가, 그리고 유료방송 전체 점유율 33.3% 를 못 넘게 하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이 상당히 변수이다.

2018년 12월 들어 물밑 접촉을 통해 인수가 협상에 나섰다는 설이 있다. 인수의향서는 이미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딜라이브 측은 KT 와의 합병을 위하여, 인수가를 낮추려는 목적으로 자회사인 iHQ, 큐브엔터테인먼트 의 분리매각을 시도 중이라고 한다.

2019년 2월 8일, LG U+CJ헬로 인수가 확정남에 따라, KT 의 딜라이브 인수작업도 분주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2019년 2월 11일, 인수 주체를 KT스카이라이프 에서 KT 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KT 본사에서 직접 나서 딜라이브 인수를 시도한다.

딜라이브 는 올해 7월 차입금 만기로 인하여 다른 통신 기업에 매각될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9&aid=0004316174&sid1=001 2019년 3월 들어서 KT 가 딜라이브 인수합병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보인다.

12. 비판

KT/비판 참조.

13. 사건사고

13.1. 1.25 인터넷 대란

1.25 인터넷 대란 문서 참조

13.2. KT IDC 장애 사태

KT IDC 장애 사태 문서 참조

13.3. KT 홈페이지 개인정보 유출 사건

KT 홈페이지 개인정보 유출 사건 문서 참조

13.4. 아현지사 화재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 참조

14. 관련 문헌

  • 한국전기통신 100년사(, ) - 체신부. 1985.

15. 관련 문서


[1] 이것은 통신공사의 법인출범일이고, KT의 역사 자체는 체신부(국가 기관) - 한국통신공사(공기업) - KT(민간기업)으로 이어진다.[2] 원래 광화문에 본사가 있었는데, 1999년 당시 정부의 공기업 지방 이전정책에 의해 본사를 옮겼다.(당시에는 서울 시계 밖으로만 이전하면 지방 이전으로 쳐줬던 듯.) 다만 민영화 후인 2015년, 구 본사옥이었던 광화문빌딩 옆에 신 사옥을 지어 이 두 빌딩으로 대부분의 부서가 이사오게 되어 사실상 회사 조직의 대부분은 다시 광화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다만 이전에도 실질적인 본사는 광화문 사옥이었다. 1981~2008년까지 체신부/정통부, 2008~2013년까지 방통위와 같은 건물에서 동거했다.[3] 알뜰폰 포함[4] 2018년 10월 기준[5] 2017년 2월 기준[6] KT IPTV(19.92%)+KT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10.53%)[7] 2017년 상반기 기준[8] 딜라이브 인수시 약 37%[9] 2017년 10월 1일부터 고객을 위한 올레닷컴과 회사소개를 위한 kt.com이 kt.com으로 합쳐졌다.[10] 1위는 SK텔레콤[11] 나머지 1%는 LG U+SK브로드밴드가 나눠먹고 있다. 정부정책상 통신사업을 독점화시키지 않았기 때문. 물론 1990년대 얘기긴 하지만.[12] 민영화 당시 분사계획이 있었으나 취소된 대신 정책적으로 KT의 통신요금을 비싸게 책정해 소비자들이 다른 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kt의 수익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13] 타사에서 깔아놓은 해저 케이블의 일부분을 빌려서 쓰는 형태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14] 다만 이 경우에는 공익적인 목적이 크다. 다른 인터넷 사업자들이 수익성 문제로 인하여 산간지역에서 서비스를 하지 않을 때 보편적통신사업자로 지정되어 있는 kt는 무조건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요가 안 되는 지역이라고 해서 요금을 더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kt 입장에선 엄청난 손해가 된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망 운용 비용을 3사가 분담하게 된다.[15] 실제로 타사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은 300ms 이상 나올때 KT 사용자는 혼자 190ms가 뜨기도 한다.[16] New Cross Pacific Cable System[17] 2012년 3월 서비스 종료.[18] 2018년 12월 서비스 종료.[19] LG U+ 는 흰색, SK브로드밴드 는 초록색, 드림라인 은 주황색, 세종텔레콤 은 노란색 등이다.[20] 1975~1977년까진 전무국이 전무기획국/전무사업국으로 분할됨.[21] 공사로 전환되면서 국민연금 대상자에 강제 편입되는 바람에 공무원 연금을 받지 못한다. 본래는 공무원으로 시작했다가 민영화 등으로 강제 민간인이 된 경우 공무원 연금 불입 연수에 따라서 민영화 이후에도 연금을 수령하는 경우는 있으나(대표적으로 철도청), 여기는 그 기간이 짧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다.[22] 요즘같으면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이 이어졌을 정도의 사안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서울대학교 법인화 사건을 보더라도 답이 나온다.[23] 현재 우정직 커트라인이 일행직에 비해 낮고 일행직과 별개로 뽑는 건 KT의 사례와 무관하지 않다.[24] 이게 처음에는 20원이었으나 이후 전화요금 현실화라는 이유로 30원, 35원, 40원, 50원... 이렇게 단계적으로 올라갔다.[25] 단 014XY는 요금 인상에서 제외되었다.[26] 적용시간은 월 2만 원 요금제는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4만 원 요금제인 할인시간 정액제는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공휴일은 전일) 적용된다.[27] ISDN은 64Kbps의 속도였고, 2회선을 사용하면 128Kbps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요금적용이 전화요금과 똑같은데다 2회선을 사용하면 전화요금의 2배가 들어갔다. 거기다 ISDN2라고 나왔을 때의 모뎀 속도는 52Kbps로 ISDN 1회선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용할 필요가 전혀 없는 서비스였다.[28] 접속번호 01412(56k)[29] 적용시간은 22→20시~8→9시, 12~13시, 공휴일은 24시간 요금은 40,000원→30,000원→25,000원.[30] 야간 정액제는 적용시간(23~22시~8~9시)이 그대로지만 요금은 2,000원→18,000원→12,000원으로 인하되었다.[31] 이쪽은 2000년 5월 1일[32] 단 ADSL을 깔 수 없는 도서산간지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33] 그러나 Fimm 240요금제가 150MB를 제공할때(프로모션시 테더링 포함 무제한) june 250은 75MB를 제공했고 Fimm 650이 1GB를 제공할 때 june 500은 250MB를 제공했다.[34] 물론 요금제도 있었다. 하지만 범국민 데이터요금제를 제외하면 홍보를 안 했다. 그나마 어느정도 알려진 알요금제는 데이터통화료가 합산돼서 소진됐었다.[35] 물론 kt 역시 가입자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외제를 들여왔기에 나당연합군이라는 비난을 받았다.[36] 물론 국내 경쟁사들의 행보를 보면 정말 쓸데없는 비난.[37] 2G에서 사용 중인 1.8GHz를 LTE로 이용할 계획이어서 2G서비스를 종료할 때까지 LTE 서비스를 시작할 수 없었다.[38]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GTA 5 용량이 65기가에 달하고 넷플릭스에서 4K 영상을 스트리밍한다고 하면 1시간에 무려 19기가를 잡아먹게 된다. 기본 20기가는 나가는 현세대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39] 예전에 SK텔레콤도 2007년 부터 T라는 브랜드를 내세웠다가 2014년 부터 버리기 시작하더니 2015년에 갑자기 SK텔레콤으로만 쓰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는 모습이 지금 바뀐 kt 광고와 비슷하다.[40] 아직까지는 기존 대리점을 바꾸기 힘드니 먼저 신규 출점 대리점과 CS점만 바꾸고 차차 기존 대리점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41] 1950년 6.25전쟁으로 북한군에 의해 납북됨.[A] 훗날 체신부 차관 역임.[43] 이듬해부터 체신부 차관으로 임명됨.[A] 훗날 체신부 차관 역임.[45] 전 체신부 우정국장 및 차관.[46] 전 정보통신부 차관.[47] 후에 대림대학교 총장을 맡음[48] 속칭 위약3. 유선인터넷에서 보던 그 할인반환금이다. 중도해지할 때 할인받은 금액을 납부해야 하는 제도다. 이전에도 인터넷요금을 계산해봤다면 알겠지만, 가입기간이 길어질수록 위약금이 쌓인다.[49] 외국 브랜드 뿐만 아니라 국내 브랜드 한국 미출시 폰 포함.[50] 단 안드로이드 기반 블랙베리의 경우로 한정된다. 과거 클래식 블랙베리(9100, 9900)등은 SKT를 통해서만 정발되었고 BIS요금제도 SKT에만 있었다. 또한 OS10모델도 대다수의 모델이 SKT 주파주를 지원하는 버전을 가장 쉽게 구할수 있다.[51] KT가 2G에 사용 중인 주파수에 LTE를 하려는 이유가 이 중 하나다. 많은 국가들이 1.8GHz를 LTE에 사용하고 있어 외산폰을 들여오기 쉽고, KT 휴대폰 로밍 지원 국가도 많아질 수 있다.[52] 현재 SK텔레콤도 1.8GHz LTE가 전국적으로 깔려있지만, 지하주차장이나 승강기 등에서는 불통지역이 많다. 신호가 약해지면 주력 주파수인 800MHz LTE로 바로 연결하기 때문에 체감상 느끼기엔 힘들지만, 광대역 LTE만 지원하는 구형 LTE폰은 지하주차장이나 승강기에선 LTE 속도가 느려지는 걸 느낄 것이다.[53] 월 5,000원만 내면 20,000원까진 무료 통화가 적용되며 초과시 60%활인, 최대 28,000원(26,000원, PCS2000 1x/EV-DO 한정) 까지 부과된후 무제한 구간이 적용되는 데이터 요금제.(하지만 프로모션 기간이 종료되면서 28,000원까지 도달하면 차단되었다.)[54] 애초에 Fimm이나 DATA 이월같은 요금제는 광고를 하지않아서 심취해 있거나 웹사이트를 유심히 본 사람이 아니면 눈치채거나 알기 어려웠다.[55] 2016년 10월 1일 서비스 종료[56] 올레닥터 이전에는 메가페스PC보안이라는 유료 서비스로 하우리백신+방화벽 기능이 있는 제품을 제공 했었다.[57] 과거에는 KT가 독점으로 사업을 했었고, 그 영향으로 이후에도 KT가 쓰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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