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23:31:57

김범수(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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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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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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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d00><colcolor=#000000> 카카오 초대 총수
김범수
金範洙|Kim Beom-su
파일:카카오_김범수.jpg
이명 브라이언 김 (Brian Kim)[1]
출생 1966년 3월 27일 ([age(1966-03-27)]세)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두정리[2]
거주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기업인
현직 카카오 총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경기도 스타트업 캠퍼스 초대 총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국립오페라단 이사장
학력 건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 86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 석사[3])
병역 전문연구요원 (삼성데이타시스템)
가족 아버지 김진용, 어머니 한상분
누나 2명, 남동생, 여동생
배우자 형미선(1968년생, 1993년 2월 결혼)
아들 김상빈(1993년생)
딸 김예빈(1995년 1~2월생)[4]
재산 60억 달러 (한화 약 6조 원)[5]

1. 개요2. 생애3. 창업4. 논란 및 사건 사고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카카오 창업주 겸 총수.

2. 생애

전라남도 담양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서민층 집안에서 2남 3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다섯 남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이사왔다고 한다. 김범수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작 김범수의 부모님은 한번도 뭘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노는 것도 마음껏 놀고, 공부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했다. 다만 '넌 잘하고 있다'며 항상 응원을 해줬다고. 훗날 김범수 본인은 그런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술회했다. 김범수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고, 다섯 남매를 다 대학에 보낼 수는 없어서 결국 김범수 혼자만 대학에 가게 됐다. 그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사혈기로 손가락을 따서 혈서를 쓰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진짜 힘들 때만 피웠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금연에 성공했는지 대학 합격 후에 2개비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6]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녔다. 보통 가정이 어려우면 공부를 독하게 할 법도 한데, 힘들었던 재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빠졌다.[7] 그렇다고 학업을 놓았던 것은 아니고 유급 없이 4년 안에 학사, 2년 안에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1992년 석사를 졸업한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팠다. 그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2.0, 유니윈98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SDS에서 평생 가는 동지들을 얻었다. 문태식 마음골프[8][9] 대표, 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 등이 대표적이다.[10]

사업 외에도 기부, 사회 기여 등 소셜 임팩트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다. 특히 사람에 투자하는데 관심이 많아 보이며 100명의 CEO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에 스타트업캠퍼스 초대총장으로 청년들이 직장이 아닌 업을 찾는 걸 돕겠다고 했고 사회혁신가를 찾아 지원하는 아쇼카코리아에 기부를 하기도 했다. # 이외에도 코로나19나 강원도 산불, 태풍 피해 복구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십억 원씩을 기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카카오 김범수, 장애인 고용 위해 사재 100억 내놨다 카카오김범수, 강원도 산불피해 복구에 개인주식 10억원 기부

2021년 2월에는 더 기빙 플레지에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평소 ‘성공이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이라는 에머슨의 시를 자주 인용한다고 한다. 재산 절반 기부 선언 후 이를 실행할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을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보통 기부 재단은 기금을 조성해 해당 기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다수인데 반해, 본 재단은 기부금을 즉각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한국의 게이츠재단 목표… 과학기술로 사회문제 접근”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은 한국에서 빅벳 필란트로피라는 방식의 기부를 처음 시도하고 있다. 빅벳 필란트로피란 ‘거액의 판돈’을 뜻하는 빅벳(Big Bet)과 ‘기부’를 뜻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가 합쳐진 말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치 베팅하듯이 큰돈을 내놓는 걸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빌 게이츠, 매켄지 스콧이 대표적이다. 2021년 2월 임팩트 그라운드라는 사업을 통해 재단 설립 이후, 21개 단체에 총 250억원을 기부했다. “세상을 위해 베팅하라”

2022년 3월 29일, 이사회 의장직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김성수에게 넘겨줬다. # 의장직 사임후에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으로서 카카오의 글로벌 사업 확장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 의장 내려놓은 김범수 “글로벌 사업 전념”

2023년 8월 1일 비상임직인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3. 창업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김범수는 현재 카카오 대표 남궁훈과 함께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창업한다. 법인명은 미션엔터테인먼트.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데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개업 6개월 만에 5천만 원을 벌 만큼[11] PC방은 승승장구했고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기고는 1998년 9월 삼성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인 1998년 11월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을 창업했다. #1 #2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이후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내던진다. NHN에서 나올 때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후,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곳으로 떠났다. 자녀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그렇게 가족과 놀기를 3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 탄생한다.

TV에서 PC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오는 큰 흐름이 있었다. 거기서 스마트폰 시대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원론적 질문을 주고받았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답을 얻게 됐고 전방위적으로 여러 앱을 출시한 뒤 어떤 게 성공하는지 지켜보려 했다. 딱 2개월 뒤 카카오톡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카카오톡에 올인했다.”

카카오톡은 PC메신저 일색인 시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채팅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 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신저는 글자수 제한이 있었던 건 둘째 치고 별도의 통신비를 엄청 지불했어야 했다.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후에 출시한 이모티콘과 부가 기능들이 유명세에 불을 붙여 흥행을 이끌었다.

2014년까지도 경쟁사들의 성장이 더딜 때라서 김범수 의장의 시장 선점이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를 보면 매우 과감하고 급진적인 투자이고 사업이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 또한 통신망 투자를 한 상태에서 수익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데, 카카오톡은 그것을 무료로 해주었던 것. 사용자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가 공짜여서 좋기는 한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톡 입장에서는 매달 10억 원 이상의 서버 투자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김범수는 카카오톡 초창기에 단 한푼의 수익도 없이 서버 투자로 매달 10억 원 이상씩 돈만 쓰고 있었다. 다만 SDS와 한게임 등을 통해 인터넷 사업을 영위해온 그간 경험에서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신념만을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후 김범수 개인 돈마저 고갈되고,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메신저 렉 걸린다고 아우성이 들리는 상황이 되고, 결국 중국 텐센트에서 투자금을 지원받아 지속적으로 투자를 넓힌다.[12] 다만 김범수의 막대한 돈, 텐센트의 투자금 계속 비용이 발생될 무렵, 카카오톡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메신저로 수익이 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는데, 카카오 게임을 통해서 메신저 사업에서 수익 창출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로는 선물하기 기능 등등. 이후 김범수의 전략대로 인터넷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카카오톡의 성공 모델을 보고, 네이버는 라인을 기반으로 한 메신저를 재빨리 론칭했고, 중국은 QQ를 만들었다.

이후 2014년 다음과 합병한다. 카카오는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을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이 되었다.

2021년 6월, 시가총액 3위를 달성했다. 코스피 시총 2위 자리를 놓고 SK하이닉스와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카카오의 시총 3위 등극은 예정돼있던 일이란 평가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융합돼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 "SW 플랫폼 기업"이 주목받게 되었고, 산업구조 변화에 의한 시총 역전 현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

4.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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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2020년 완공된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이 서울을 제외한 개인저택 공시지가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13] 전력도 자체적으로 생산하며 30여 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고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등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1 #2
  • 카카오프렌즈 최고 인기캐릭터 라이언과 닮았다. 사실 라이언의 모델이 실제로 김범수 의장이기도 하다. 카카오는 수평적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직원들끼리 별명(영어 이름)을 부르는데,[14] 김범수 의장의 별명이 브라이언이다.
  • 자신의 아내, 자식들에게는 각각 6만 주의 주식을 증여했고, 친인척들에게도 각 집마다 2만 5천 주씩 증여했다. 총 33만 주를 가족 및 친인척들에게 증여한 것. # 대충 계산해보면 가족들에게는 각각 250억씩, 친인척들에게는 집당 100억 원씩 주었다.
  • 이사회 의장이라 경영에 직접적인 참여는 없지만 CEO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실제로 임지훈 前 카카오 대표에서 공동 대표 체제로 바꾼 게 김범수다. 다만, 기업 인수 같은 경우에는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음원 서비스 기업 멜론 인수이다. 당시 카카오는 멜론을 1조 8700억 원에 인수했는데, 너무 비싸다는 주위의 우려가 있었으나 김범수 의장이 밀어붙였다고 한다.[15]
  • 2021년 2월 8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정확한 금액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김 의장의 재산이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 1,250만 주[16] 등 총 1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최소 5조 원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기부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에서 역대 최다 기부자가 된다. 다만 해당 발언이 자녀들에 대한 대규모 증여 및 케이큐브홀딩스에 대한 뉴스가 뜬 이후에 이루어진 점, 기부라는 명목으로 대규모의 재단을 설립 후 이를 자식에게 넘기는 방법이 전세계 부유층의 가장 흔한 탈세 루트라는 점 등으로 인해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해당 기부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다.[17] 과거부터 김범수 의장이 기부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계속 기부를 해왔었기 때문에 케이큐브홀딩스 관련해서 계속 언론에 오르내리자 계획했던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대한상의(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SK그룹) 회장의 추천으로 2021년 2월 대한상의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 서울대학교는 재수해서 들어갔다. 재수를 해서 그런지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1학년때 온갖 게임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내가 안 되는 것은 내가 열심히 안했기 때문이야"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라며, 청년들에게 너무 치열하게 살지 말라고 조언해 준 적이있다.
  • 김범수의 모교인 건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에는 김범수의 이름을 딴 김범수홀이 있다.
  • 기부를 많이 하고 있다. 김범수 센터장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해 20억원,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10억원, 2022년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 집중 호우 피해 복구를 위해서도 각각 10억원 상당 개인 보유 주식을 기부했다.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에서 발생한 대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카카오가 27억원, 김범수 센터장이 개인 자격으로 10억원 상당 개인 보유 주식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였고, 2023년 강원도 산불과 이재민 피해 복구를 위해 카카오가 10억, 김범수 센터장이 개인적으로 10억원 상당 개인 보유 주식을 기부했다.


[1] 김범수가 사내에서 수평적 문화를 강조하면서 붙인 영어식 이름이다. 각종 자료와 공식 행사에서도 이 표기를 사용한다. 영상 게시물 물론, 단독 대한민국 국적이기에 법적으로 존재하는 이름은 아니다.[2] 기사[3] 석사 학위 논문 : PC통신시스팀의 성능평가를 위한 모형화 및 분석 (1992)[4] 오빠와 한 학년 차이인 것을 보면 빠른년생으로 추정된다.[5] 2023년 9월 포브스 기준. 대한민국 부자 순위 7위.[6] 86학번[7] 훗날 게임사업에 진출할 때 도움이 되었다. 최초로 창업한 회사가 '한게임'이다.[8]카카오VX[9] 엔플루토의 후신인데, 엔플루토는 NHN에서 독립한 회사이다.[10] 문태식 대표는 한게임 창업을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끈끈한 절친. 문태식은 연세대 전산과학과 89학번이다.[11] 소비자물가지수 변동에 의한 화폐가치 계산에 따르면 2022년의 8,790만원 상당. #[12] 이때 투자한 중국 기업 텐센트는 당시 투자를 통해 메신저 운영 노하우를 익혀서, 문자 메신저 QQ를 통해 중국의 국민 메신저 회사로 발돋움하고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페이, 인터넷 게임회사, IT 투자회사 그리고 마침내 중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되었다. 텐센트 창업자도 중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시작이 카카오톡 벤치마킹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텐센트가 카카오에 투자해서 명분을 확보했기 때문이지 안그랬으면 짝퉁 이미지로 떳떳하지 못했을 것이다.[13] 그전에는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의 성남시 분당구 개인저택이 144억 원으로 최고가였다. 성남시 분당구청은 김범수 개인저택의 공시가격을 147억 원으로 평가했다. 만약 매물로 나온다면 시세는 300~400억 원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한다. 2021년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의 개인저택이 163억 원으로 공시가격이 올라 다시 1위를 탈환했다.[14] 집사부일체에서 한 번 소개된 적이 있다.[15] 몇 년 후, 음원 서비스가 인공지능(AI) 생태계의 핵심 콘텐츠로 등장하자 결국 SK텔레콤 회장은 직원들에게 멜론을 매각한 것은 실수였다면서 음원 서비스 기업 Flo(플로)를 다시 만들어서 키우고 있으나 멜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16] 전날 종가 기준 5조 7,000억 원[17] 부유층이 기부를 명목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이렇게 부유층이 해당 재단에 재산을 몰아준 후 자녀나 친인척을 재단 소유주에 임명한 후, 재단 규모에 비해 생색내기 수준의 재단 활동만 하면서 기업 지배 구조를 유지하거나, 상속세를 회피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수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