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8 11:50:30

교보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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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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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
한자명칭 敎保生命保險株式會社
영문명칭 Kyobo Life Insurance Co., Ltd.
설립일 1958년 8월 7일
대표자 신창재
업종명 생명보험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홈페이지

1. 개요2. 기업공개 문제3. 역사4. 기업 정신5. 사회공헌6. 경영진
6.1. 역대 임원6.2. 이사진
7. 본사 주소8. 건물9. 여담10. 계열사
10.1. 금융10.2. 비금융10.3. 산하 재단10.4. 해산/매각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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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대한민국의 금융 기업집단. 2018년 5월 기준으로 재계서열 30위. 대표적인 계열사로는 교보증권과 교보문고, 교보AXA자산운용 등. 한국 생명보험업계의 빅3(교보, 삼성, 한화) 중 하나로 비생명보험 부문까지 합친 총자산총계나 매출액에서 국내 보험 업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1]

독립운동가 집안의 신용호 회장이 1958년 8월에 세운 대한교육보험이 모태다. 저축 장려 방법의 하나로 정부 차원에서 보험이 육성되면서 같이 컸다. 영업 모델은 방문 판매가 주였다. 방판 영업 직원에게 줘야 할 커미션도 많았고 자기 자본이 작고 보험 레버리지가 높아 위태로웠지만 한국이 고도성장기라 버틸 수 있었다. 주진형한화증권 대표는 부친 주종환 교수가 신용호 회장이 창업하던 단계 때 불려갔다가 그냥 나왔었다고 말했다. 조그만 사무실 하나에 여직원 한 둘 놓고 교육보험을 만든다는 게 영 못 미더웠다고 회고할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고.

현재는 비상장기업으로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2016년 현재 자기자본 7조, 자기자본비율 11.06%로 생명보험사 3위다. 지급여력비율도 2015년 9월 기준 270%로 우량보험사 글로벌 기준 200%를 넘는 우량기업이다. 계열사인 교보문고 때문에 상장은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래 기업공개 문단 참고.

산하 공익재단으로는 문학 재단인 대산문화재단, 장학재단인 교보교육재단, 농업재단인 대산농촌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은 국내의 대기업 산하 재단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문학 전문 재단이며, 문학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맨부커 수상자인 한강(소설가) 등 유명 작가들이 대부분 대산문화재단의 문학진흥사업 이력을 갖고 있다. 대산문학상, 대산문학총서, 동북아 대장정 등이 유명하다. 교보빌딩에 크게 붙은 광화문 글판(세종문화회관 건너편)의 문구 선정도 하고 있다.

2018년에는 교보증권우리은행한테 매각하려고 하고 있다. 기사 교보생명도 3세 경영으로 넘어갈 때가 되면서 후계구도를 정리하고, 비핵심사업을 매각하려고 하는 것. 원래 2008년 세계금융위기부터 매각 의사가 있었다. 2008년 6월 매각 뉴스가 나가자 교보생명 주가(장외 가격임. 주의)가 8% 오른 19,800원대가 됐었다. 당시 매각 추정금액 6500억 중 절반이 영업권(영업 프리미엄)으로 평가될 정도로 교보증권의 미래에 대한 시장의 의문을 알 수 있던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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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지분은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이 33.78%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지분은 대부분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나눠가지고 있다. 이 FI들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가 불발될 경우 신창재 회장의 지분을 박탈할 수 있는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2. 기업공개 문제

교보생명은 은행 보험업 기준은 물론 재계 순위로도 명실상부한 대기업이다. 코스피에 당연히 상장돼 있을 것 같지만 금산분리 정책(2010년 개정 보험업법)에 막히고 있다. 교보그룹의 핵심인 교보문고 때문.

1980년 교보문고를 설립할 때에는 금산분리 규제가 없으므로 문제가 없었다. 2005년 교보문고에 대한 유상증자를 할 때에도 금융감독원에서 교보문고는 공익성이 강한 사업이라며 금산분리의 예외를 인정하여 증자를 허용했다.

2005년 7월 의결된 금산법 개정안은 부칙 경과 규정을 둬서 초과 지분에 대한 강제 처분은 법 개정 이후에만 적용하고 이전에 취득한 주식은 의결권만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는 교보문고의 증자 승인을 한 바 있다. 기업 공개만 아니라면 교보문고 지분 보유는 현행 규정 상 문제 없다.

교보생명은 2001년, 2005년, 2009년, 2015년, 2017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 그나마 상장 가능성이 가장 높았으나, 한국거래소상장예비심사 사전협의 때 교보문고 금산분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상장을 포기했다. 교보문고를 끝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신창재 회장의 의사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25%까지 내려갔던 교보문고 지분 역시 2009년 상장을 포기하고 2010년 되사들여서 2018년 현재 교보생명이 100% 보유하고 있다. 2009년 당시 교보문고와 교보핫트랙스를 먼저 상장시켜 지분율을 내려놓고 교보생명을 상장시킨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나돈 바 있다.
보험업법 제109조(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 제한)
보험회사는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출자지분을 포함한다) 총수의 100분의 15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다만, 제115조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승인(신고로써 갈음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받은 자회사의 주식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전문개정 2010. 7. 23.]

그런데 서적판매업을 영위하는 교보문고가 2010년 개정 보험업법에서 규정한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자회사의 주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2010년 개정 보험업법이 통과되면서 정부에서 제시한 유권해석이 변경되어 버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2010년 개정 보험업법으로 인해 교보문고에 대한 금감원의 출자 승인이 철회되었다. 그래서 교보생명은 2010년부터 교보문고의 소유 자체가 불법 상황에 놓인 것이다. 상장하지 않으면 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고 신고만으로 되므로 유상증자는 된다. 그러나 교보생명의 상장은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보험업법 개정으로 인해 금산분리 강화가 도입되어 금감원에서 승인을 내줄 수가 없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금융위 금감원은 교보문고의 경우 보험업법에 따라 승인받은 교보생명 자회사로 명확히 보고있다. 아래 기사는 일요신문의 오보로 보인다. 애시당초에, 교보생명교보문고의 최대주주인 것은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수준인데 대한민국 2~3위권 굴지의 생명보험회사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을 하고 있다면 정부가 간과할리 없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교보생명 상장 심사과정에서 교보문고 지분과 관련해 어떠한 방침을 정할지 주목된다. 현행법상 규정대로라면 교보생명은 교보문고를 매각하거나, 교보문고 보유지분을 15%까지 낮춰야 한다. 상반기 현재 교보생명 자본금은 17억 원 규모이므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개인 돈으로 매입하는 방안도 해소 방안으로 거론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교보생명, 삼성카드 ‘금산분리’ 논란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진짜 속사정

신용호 회장의 유언은 '경영 혁신 계속하라'로 교보문고에 대해 따로 남긴 말은 없었다. 전적으로 회사 사정이다.[2] 상장만 되면 대기업 순위는 물론 코스피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2018년 3월 15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대주주 심사 요건을 현행 대주주 1인에서 최대주주 전체 및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 전체로 넓힌다는 것으로 대주주 적격 심사를 강화한다는 내용. 기설립된 금산법 위반 회사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아울러 교보생명의 상장은 교보문고 등 저촉 요소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힘들 전망이다.

교보생명은 신창재회장과 FI간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상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현재 지분구조로는 상장요건 중 하나인 주식분산을 충족하지 못하고, 주식분산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신창재회장이 경영권을 지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2018년 다시 한 번 기업공개를 위해 RFP를 발송했다. 기사 이번에는 과연 가능할 지 두고봐야 할 듯. 2018년 8월 24일 NH투자증권크레디트스위스를 상장주간사로 선정했다. 기사 이전까지 교보생명이 상장예비심사까지는 몇 번 간 적이 있기때문에 주간사 단계에서 아직 IPO가 확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018년 10월 교보생명에 대한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더 이상 교보생명의 IPO를 기다릴 수 없다며 신창재 회장한테 풋옵션행사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 때문에 교보생명은 다시 2018년 11월 20일 이사회를 열고 기업공개 추진 의사를 결의하겠다고 했지만, FI들은 지나치게 느리다면서 풋옵션 행사를 철회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신창재에 대한 풋옵션이 행사되면 교보생명은 신창재 회장 일가와 IPO를 요구하는 FI 간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다. 안 그래도 복잡한 교보생명의 IPO 문제가 더욱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꼬여버리는 것이다. 신창재 회장은 33.78%를 보유하고 있는데, FI가 보유한 풋옵션은 신창재 회장 지분의 2/3인 23%이다. 즉, 풋옵션이 행사되는 순간 신창재 회장은 교보생명에 대한 경영권을 상실한다.

3. 역사

창업주 신용호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으로, 부친 신예범은 지주들에 대항해 소작쟁의를 일으켰고 첫째 형 신용국은 독립투사로 옥고를 치렀으며, 둘째 형 신용율은 소작쟁의를, 셋째 형 신용원(납북됨)은 전일본클래식콩쿠르에서 1등한 피아니스트로 군국주의 찬양가 <우미유카바(海行かば)>를 거부해 고문까지 받았다고. 넷째 형 신용복은 일제 때 민족계 보험회사인 조선생명의 지점장을 지냈다. 육형제 중 너무 어렸던 막내 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립운동과 관련돼 있다. 다섯째가 교보그룹을 탄생시킨 신용호다.

일제 형사들에게 찍혀 생활이 어려웠다고. 신용호는 '나라도 돈을 벌자'며 1936년 중국으로 떠나고, 수완을 발휘해 만주에서 '북일공사'라는 양곡수송회사를 설립하고 큰 돈을 번다. 그는 이육사 시인과 친분을 맺고 민족 자본을 키워야 겠다고 결심하는 한편 독립 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광복 후 바로 귀국한다.
신용호는 1958년 '오늘 담배 한 갑을 안 피우고 그 돈을 저희에게 맡겨두시면, 몇 년 후에 댁의 자식들은 모두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오' 라며 교육 보험을 팔기 시작한다. 창업 당시 회사명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였는데 해가 넘어가기 전 '대한교육보험'으로 바꾸고 영업을 계속했다. 국가가 보장하지 못하는 부문을 메꿨을 뿐 아니라, 국민 저축과 교육을 장려하려는 정부의 목표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초창기 3년은 한국이 너무 가난하다보니 영업이 안돼 문을 닫을 뻔했다. 간부들이 이제 접자고 말할 정도였다. 그들을 모두 내보내고 후불제 임금도 괜찮은 사람을 임원으로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다. 교보생명에서 처음 내놓았던 상품은 '진학보험'이었다.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교가 바뀔 때마다 학자금을 돌려주는 상품이었다. 또 '화랑계약'이라고 해서 군인 가정을 공략했다. 결국 1964년 폐업된 협동생명 보험계약 일부를 인수한 후 1967년 육군과 170억 계약을 맺고 대상을 해군, 한전 등으로 늘려가는 등 파죽지세였다. 업계 6위로 출발한 교보생명이 단숨에 업계 1위로 도약하는 해였다.

창업 10년 째가 되던 1967년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라왔다고 생각한 신용호 씨는 회장이지만 경영에선 손을 떼고 CEO를 고용해 경영했다. 사장 평균 근속이 1.7년일 정도로 자주 바꿨다고. 문제는 자본이 충분하지 않았고 방문 판매 때문에 영업 직원에게 높은 수수료가 나간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고도 성장기 한국에서 유치한 자본을 성공적으로 재투자해 사업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1974년 업계 최초로 모든 업무를 전산화 하는 등 선구적인 노력을 계속해갔다.

1979년 광화문에 24층짜리 교보빌딩을 짓게 되는데 신용호는 서울 한복판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점이 하나쯤 필요하다며 지하 1층을 다 도서기업 교보문고로 만든다. 당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신 회장에게 직접 '생각만 하던 일을 실제로 해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자서전에까지 칭찬하는 글이 있을 정도.[3] 교보문고의 대한민국에 대한 기여와 의의는 해당 문서 참조.

그렇지만 훗날 교보문고 때문에 교보생명그룹은 우리은행 인수 협상을 접는다. 금산분리법 상 제조/서비스 기업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 만약 우리은행을 인수했더라면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성공해 기업 가치를 몇 배 늘릴 수 있음은 물론, 보험업계의 트렌드인 방카슈랑스[4]를 할 수 있어 큰 시너지가 기대됐다. 그러나 교보생명그룹은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어 교보문고를 매각하지 않는다. 2018년말 기준 총자산이 107조에 불과한 교보생명은 애시당초에 총자산이 400억에 달하는 우리은행을 살 돈이 없다. 규모가 4배나 큰데다가, 은행 등 금융회사를 매수하는 돈은 차입으로 조달할수가 없어 쌩 현금이 있어야 한다. 반면 우리은행이 갖고있는 현금만 5.7조원으로, 교보생명 지분 100%를 현금매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누가 누구를 산다는 것인지 코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격차다.

교육보험은 생명보험의 일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신선한 시도로 평가돼 신용호는 1983년 국제보험회의로부터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다. 그 전까지 교육보험에 주력하던 교보생명은 80년대 이후 사교육이 성행해 교육보험이 다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일반 생명보험 업무를 주로 하기 시작했다. 1988년 교보투자자문을 세우고 1994년 서울신탁은행으로부터 대한증권을 인수한 후, 1995년 회사명도 대한교육보험에서 교보생명으로 바꿨다. 그리고 삼성생명으로부터 한국전산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고객 자산을 굴리기 위해 부동산 투자회사인 교보리얼코 등 9개 계열사를 늘렸다. 1998년 퇴출생보사 BYC생명의 보험계약을 인수했다.

큰 위기도 있었는데, 1996년 의사였던 신창재 회장이 이사회 부회장으로 처음 경영을 맡고 얼마안가 IMF 사태가 터졌다. 2000년 당시 연 2500억원에 이르는 적자와 2조 4천억의 자산손실 등 회사가 빈사 상태에 빠졌었다. 그러나 악성 계약을 그만두고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 2005년 35조 규모까지 총자산을 키웠다. 2018년 3월 공시된 바로는 총자산 규모가 97조, 순이익 6천억이다.
신용호 교보생명그룹 창업주는 2003년 암 투병 중 타계했는데, 창업주 집안의 윤리 경영은 이 때도 화제가 됐다. 상속세 1천 9백억을 단 한 푼도 빼지 않고 모두 납부한 것. 이는 LG그룹 구광모의 9215억에 이은 두 번째로 많은 액수이다.[5] 창업주의 현금 자산에 주식 및 현물을 더해 상속세를 완납했고, 2018년 현재 정부 소유의 교보 그룹 지분은 남아있지 않다. 한국수출입은행이 5.85%를 소유하고 있으나 상속세와는 관련없다. 아울러 교보생명은 비상장이나 기업공개 떡밥때문에 몇차례 감정평가를 해서 공정가치가 부여는 되어 있다. 다만 수출입은행은 교보생명 주식을 공정가치가 아닌 취득원가(액면가)로 기재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금융회사들이 IPO를 전제로 한 교보생명 증자에 참여한 바가 있어서 유한회사 형태로 교보생명 지분에 참여중인데, 이들은 액면가가 아닌 공정가치로 평가중이다. 대략 주당 4~5만원 선으로 평가중인듯.

피상속인의 지분 대부분은 장남 신창재에게 상속됐다.(2018년 현재 33.78%를 보유 중) 30년 간 형님을 도와온 신용희 씨(2012년 작고)가 명예회장에 오르는 대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신창재 씨가 회장이 됐다. [6] 현재 신창재 오너 일가는 일절 경영에 관여하지 않으며 부인과 두 아들 모두 그룹에 단 한 주의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창재 회장은 2010년 첫부인 정혜원 봄빛문화재단 이사장과 사별한 후 2013년 재혼했다. 현재 부인 박지영씨는 이화여대 대외협력처에서 10년 근무했고, 현재는 평범한 주부로 대외노출을 극히 꺼리고 있다. 재계 30위의 그룹사임에도 불구하고 정략 결혼 따위는 하지 않았다. 회장 일가는 물론 친척들도 사치를 모른다는 업계의 평판이 있다.

4. 기업 정신

  • 창업이념: 국민교육 진흥, 민족자본 형성
  • 비전
    • VISION 2010: 사원에게는 꿈을, 투자자에게는 만족을, 사회에는 신뢰를 (2000~2001)
    • VISION 2010: 고객의 Needs를 반발짝 앞서가는 회사, 신바람나는 일터를 제공하는 회사,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회사 (2001~2010)
    • VISION 2015: 고객보장을 최고로 잘하는 보험사(고객보장 No1.) (2011~2015)
    • VISION 2020: 상품/채널 No.1 생명보험회사 (2016~ )

5. 사회공헌

교보생명은 계열사 전반에 걸쳐 윤리경영을 주문하고 있고 그 흔한 정치 자금 스캔들 한 번 없이 사업전개 중이다. 계열사 및 관계사는 하나같이 연봉, 복지, 사내문화 등 모든 면에서 업계 최고 수준과 의식을 자랑해 '가장 일 하기 좋은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으로 손 꼽히는 기업. 2016년 투명경영대상 시상식에서 ‘가장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펼친 기업’ 으로 선정되어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국민교육/문학진흥/농촌살리기에 뜻을 두었던 대산 신용호 창립자 뜻으로
- 문학인 발굴 및 저술 활동을 지원하는 대산문화재단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대산문화재단이 영국 출판사에 번역 자금을 지원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LG 못지 않게 일 안하는 교보 홍보팀...)
- 해외 선진 농업기술 연구 및 농촌 진흥사업 등을 펼치는 대산농촌재단
- 장학사업 및 교육자 시상 사업을 펼치는 교보교육재단

이상 그룹 산하 3개 재단을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사회공헌사업에 쏟아붓는 중. 이런 좋은 이야기를 딱히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걍 묵묵하게 일하는게 교보 스타일인듯...
삼청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삼청터널 명판에 교보생명이 기증했다고 적혀있다.(1970년 12월 완공) 교보정보통신 건물도 그 옆에 있다. 1970년 창업주 신용호 회장은 동작동 3만 6천 평의 자기 땅을 국립묘지 부지로 국가에 넘기면서 대신 성북동 10만 7천평을 받은 바 있다.

6. 경영진

6.1. 역대 임원

  • 명예회장
    • 신용호 (1975~2003)
  • 회장
    • 이연 (1960~1961/1962~1965)
    • 신용호 (1967~1975)
    • 신용희 (1975~1994)
    • 이도선 (1994~1997)
    • 신창재 (1999~ )
  • 부회장
    • 이도선 (1985~1989)
    • 이강환 (1989~1990/1992~1994)
    • 김영석 (1990~1992)
    • 이중효 (1997)
  • 대표이사 사장
    • 신용호 (1958~1967)
    • 조준호 (1967~1969/1972~1973)
    • 황호영 (1969~1972)
    • 배민홍 (1973~1975)
    • 최봉열 (1975)
    • 김동준 (1975~1977)
    • 박성복 (1977~1982)
    • 이도선 (1982~1985)
    • 이강환 (1985~1989/1990~1991)
    • 김영석 (1989~1990/1992~1994)
    • 신평재 (1991~1992)
    • 이중효 (1994~1997)
    • 이만수 (1997~1998/1999/1999~2000)
    • 김재우 (1998~2000)
    • 최정훈 (1999~2000)
    • 권경현 (2000~2002)
    • 장형덕 (2002~2003)
  • 대표이사 부사장
    • 권경현 (2000)
    • 박성규 (2004~2006)
  • 대표이사 전무
    • 권경현 (1999~2000)

6.2. 이사진

7. 본사 주소

교보생명 본점의 자랑 중 하나가 주소(종로 1번지)다. 도로명주소로도 지번주소로도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이라고 쓰면 된다.[13] 청와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조차도 도로명주소와 지번주소가 제각각이다.

본사지번주소 기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교보생명빌딩에 위치해 있다. 교보문고가 있는 그 광화문 교보빌딩 맞다. 도로명주소로는 세종대로 소속이었지만(세종대로 162번을 임시로 받았었다.) 종로구와 중앙 정부징징스킬을 시전하여 정문을 갈아치웠다. 이 때문에 세종대로변에 접한 지상 출입구가 아니라 교보문고[14]로 바로 들어가는 지하 출입구가 정문으로 인정되어버린다. 그 결과 본사도로명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

교보생명 빌딩을 지은 80년대에는 교보생명, 교보문고를 마케팅할 때 종로 1번지임을 활용하기도 했으며, 그래서 교보생명 입장에서는 종로 1번지라는 명칭이 회사의 명운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로 초입에 있다보니, 이 건물 자체가 보신각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표 간선도로 종로의 상징, 종로 그 자체로 대접받고 있다.

엘리베이터 관리번호인 승강기 고유번호[15] 0000-001번도 바로 이 건물에 있다! 기사 -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 행정안전부가 도입한 엘리베이터 고유번호 부착 시연회 기사다. 종로1번지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교보빌딩을 0000-001로 지정하였다. 건물내에 승강기가 22대 있는데 따라서 승강기번호 0000-001부터 0000-022까지 부여되었다.

8.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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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나토 구에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의 원본인 주일미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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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 있는 교보빌딩들은 거의 대부분 본사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이 때문에 원 설계자인 시저 펠리가 화가 나 교보 측에 저작권 소송을 걸 정도였다.

하여튼 저 빌딩이 교보의 상징적인 건물이라는 인식을 주는데는 성공하였고 본사는 광화문을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다. 여러 국가의 외교 공관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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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교보타워는 스위스 루가노(이탈리아어권) 출신의 건축가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등을 지은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다. 관련 기사

교보그룹 사옥들의 특징 중 하나가, 건물 외벽에 간판 다는 것을 무지 싫어하는지 입주회사들 간판이 하나도 없다.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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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명문가 기업답게 대한민국 역대 상속세 납부 1위를 현재까지 지키는 중이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1800억원 상속세 납부는 당시에도 전례에 없는 사상 최대의 액수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원래 최초의 신고납부액 금액은 이보다 500억 정도 낮은 1340억 원대였으나, 국세청 과세 실사 과정 중 비상장주식의 가치 평가액이 산정액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고 거기에 특수관계인 지분 기준으로 인한 할증까지 적용되면서 상속세가 무려 500억 정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사실 교보생명 측에서는 무척 억울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유족들은 비상장주식 물납등을 통해 부과액을 모두 완납하는, 흔치 않은 모범 사례를 남겨 사회의 본보기가 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는 오뚜기가 1,500억원을 상속세로 납부하여 2위가 되었다.

2018년 연말이나 2019년 초에 LG그룹구광모 회장이 2018년 사망한 구본무 회장에게 상속을 받으면서 약 7,000억원을 상속세로 납부할 예정이므로 구 회장의 상속세 납부가 완료되면 교보생명은 2위를 차지하게 된다.

여담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한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대로에 있는 대규모 빌딩 중 거의 유일하게 시민들에게 화장실을 100% 개방하여 집회 참여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집회 참여자들이 추위를 피하고자 교보문고 광화문점으로 들어온 것은 덤.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국내 기업 중 드물게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10. 계열사

10.1. 금융

10.2. 비금융

  • 교보문고
  • 교보데이터센터
  • 교보리얼코: 교보빌딩 등 부동산관리를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창업주 신용호 회장의 맏조카인 신동재 씨(신용국의 아들)가 회장을 지냈다.
  • 교보정보통신: 정보통신 전문업체, 교보생명, 교보증권 전산시스템 개발 담당을 주로하는 회사이다.
  • 교보핫트랙스: 신창재 회장의 남동생 신문재 씨가 회장을 맡았었고 2005년 교보문고가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 제일안전서비스

10.3. 산하 재단

10.4. 해산/매각



[1] 전통적으로 2위로 알려져 있고, 업계에서의 보편적인 이미지도 그렇지만, 한화(대한생명)에게 밀려 3위가 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서로 "내가 2등"이라며 물어뜯고 싸웠지만 현재는 교보 내부에서도 3위를 인정하는 분위기. 역시 자본빨은 어쩔 수 없나보다.[2] 교보문고를 처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2012년 3월 3일 신창재 회장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교보문고는 아버님의 유작이다. 사회와 시민들이 인정해주는 문화자산이자 브랜드다. 교보문고가 교보생명보다 더 유명한 걸 나도 알고 있다.(웃음) 그 자리에서 다른 사업을 하면 수익성이 높은 건 맞는다. 건물만 임대해도 지금보단 나을 거다. 그러나 사업이란 게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은 최소한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부자라고 구두를 두 켤레씩 겹쳐 신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열 끼를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일찍 죽기밖에 더하나?(웃음)" 결국 창업주의 유언이니 유훈 때문이 아니라 신창재 회장의 뜻이라는 얘기다.[3] 참고로 이병철 회장은 인문학이나 고고학에 대해 상당히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다. 이같은 고집은 친손자 이재용과 외손자 정용진을 인문학(사학) 전공으로 진학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4] 방카슈랑스(Bancasurance):은행창구에서 직접 보험 상품을 판매[5] LG그룹 또한 윤리경영으로 잘 알려져 있다.[6] 2003년 상속 당시 신용희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신인재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은 도합 13.25%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2018년 3월 현재는 5%대로 지분이 줄었다. 신인재 씨는 신창재 회장이 경영을 하던 당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었다고.[7] 허정도: 2018년 현재 교보문고, 교보핫트랙스 대표이사[8] 이석기: KAIST 출신의 재무담당이사. CFO[9] 이중효: 안건회계법인 파트너, 상임고문[10] 황성식: 삼일회계법인 부대표[11] 이상훈: Affinity Equity Partners 한국 지사장[12] Hari R. Rajan: Corsair Capital 파트너[13] 행정동상 종로1,2,3,4가, 법정동상 종로1가동이긴 한데 종로1~4가의 경우 상징성이 높은 동네라서 1가를 떼기도 한다. 따라서 지번주소를 축약하면 도로명주소와 똑같아진다.[14] 이 때문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이 징징 스킬을 벌였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개점 때부터 정문이 종로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15] 행정안전부 국가승강기정보센터대한민국 내에 설치된 모든 엘리베이터가 등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