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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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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삼성전자 제3대 회장
이재용
李在鎔 | Lee Jae-yong
파일:이재용_삼성.jpg
<colbgcolor=#034ea2> 출생 1968년 6월 23일 ([age(1968-06-23)]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본관 경주 이씨 (慶州 李氏)[1]
직업 기업인
현직 삼성 총수
삼성전자 회장
학력 경기초등학교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 / 학사)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2][3])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박사과정 수료)
부모 아버지 이건희, 어머니 홍라희
친인척 할아버지 이병철, 외할아버지 홍진기
형제자매 여동생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자녀 아들 이지호
이원주
신체 182cm, B형
병역 전시근로역 (추간판 탈출증)[4]
종교 무종교[5]
재산 92억 달러 (한화 약 12조 3,100억 원)[6]
약칭 JY
서명 파일:이재용_서명.png

1. 개요2. 생애
2.1. 성장기2.2. 삼성 입사 ~ 부회장2.3. 회장 취임 이후
3. 경영인으로서
3.1. e삼성3.2. 부회장 시절(2014~2022)3.3. 회장 취임
4. 경력 및 약력
4.1. 기타 경력
5. 가족관계6. 스포츠광
6.1. 야구 직관 성적
7. 논란 및 사건 사고8.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삼성 제3대 총수이자 삼성전자 제3대 회장.

2. 생애

2.1. 성장기

1968년 6월 23일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자이자, 홍진기 전 장관의 외손자, 이건희 전 회장, 홍라희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87학번)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명문 게이오기주쿠대학 MBA를 취득했고[7], 미국 아이비 리그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며 학업 과정을 거쳤다.[8]

대학 진학 당시 일화로, 조부인 이병철 회장이 "경영학은 나중에도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9]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인문학을 전공하라"고 권유해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10] 사족으로 흔히 인문학이나 역사를 배우라는 말을 그냥 취미 생활한다는듯 듣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론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인간' 자체에 대해 알 수 있다기보단 인류가 현재까지 구축해온 여러 '사회'의 변화상과 그 메커니즘을 알 수 있기에, 그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본인 나름대로의 관점과 통찰력이 좀 더 빨리 확립되고 심화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이병철이 이런걸 노리고 손자의 인문학 공부를 추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이후 학부를 다니며 다양한 나라의 역사를 공부했을 것으로 보인다.[11]

물론 이 당시 동양사학과에 입학한건 중앙일보, 사회부장, 청와대 홍보수석의 증언의 바탕으로 제작된 한겨레의 기사에 따르면 좀 더 확실하게 서울대 타이틀을 따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삼성의 계열사였던 중앙일보는 사회부장의 지휘 아래 서울대 출입기자(먼 훗날 청와대의 홍보수석이 된다)와 몇명의 기자를 현장에 투입했고, 이들이 대학 당국자를 붙잡고 밀착 취재한 결과 6시 마감 직전 동양사학과가 가장 유리하다는 걸 알아내 급하게 연락이 오고 갔고, 이재용은 접수 창구가 문을 닫기 직전 원서를 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

입학 이후 이재용의 대학 생활은 이건희-홍라희 부부의 자녀 교육이 그러했듯,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벌집 도련님하곤 상당히 거리를 두고 학교에서는 또래 동급생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학적부처럼 아버지 직업란을 적는 곳이 있으면 회사원이라고 기입했다고 한다.[12] 그래도 알게 모르게 주변인들은 그의 집안 정돈 알고 있었다고. 또 80년대 당시 서울대 인문계열 학과 대다수의 분위기가 그랬지만 동양사학과는 특히 운동권으로 유명한 학과였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공부하려고 오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학과 자체가 급진적인 운동권적 성향이 강했다.

대학에 입학했던 87년 6월 항쟁 당시 같은 과 1년 선배였던 최영인[13]과 연인인 척 손을 잡고 시위에 참가해서 최루탄 맛을 경험하기도 했고, 전방입소 거부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14]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대학생이라면 크게 낯설진 않은 풍경이기도 하지만, 재벌가 3세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과 MT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해 당시 동기들과 각종 논쟁과 토론도 즐겼다고 한다. 당시 동기생들에게 이재용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 이미지였다고. [그사람] 이재용, 이 사람이 아버지를 이기는 길.

그 외 그 역시 평범한 당시 20대 청년답게 흠모하던 여학생과 몇개월 연애도 해보고, 승마 선수 경력을 살려 상무에 입대할지 아님 학사 장교로 입대할지 등 병역 문제 고민도 했다고 한다. 1991년 11월 허리 디스크로 면제되긴 했다.

2.2. 삼성 입사 ~ 부회장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삼성전자 내에서 경영기획팀 상무보, 경영기획팀 상무, 전무,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등을 역임하며 승진했다.

1998년 조미료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이자 9살 연하인 임세령과 결혼했지만 2009년 1,000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합의 이혼했다. 현재 임세령은 대상그룹의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2005년에는 막내 여동생 이윤형이 유학 중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겪게 된다.#

2014년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병으로 입원한 이후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총수가 되었다. 2015년 5월 15일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이후 책임을 지고 등기이사의 자리에 올라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서 명실상부한 기업 1인자가 되었다. 물론 국정농단 의혹으로 감옥에 수감되는 등 여론이 좋진 않은지라 명목상 삼성전자 부회장에 머물고 있지만, 회장직에 올라서는건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22년 형집행 완료 처분이 되고 사면도 되면서, 실제 3대 회장 직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2.3. 회장 취임 이후

세간의 예상대로, 2022년 10월 27일 삼성전자 이사회를 통해 회장 승진안이 의결되었고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인 11월 1일에 취임식을 진행하였다.# 이는 이건희 전 회장이 취임한지 35년만이다.

3. 경영인으로서

이재용의 경영인으로서 자질은 2014년 부회장 취임 이전과 이후의 평가가 많이 상반되는 편이다.

일단 부친 이건희 회장이 일선에서 활동하던 황태자 시절엔 경영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오죽하면 당시 안티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도 '마이너스의 손'이었을 정도. 다만 그 이건희 회장도 황태자 시절엔 본인이 손댔던 사업에서 실패를 겪어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사업이었다. 즉, 어찌보면 집안 내력이다.

3.1. e삼성

당시 이재용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고 의심받은 결정적 이유는 바로 그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인 e삼성 실패였다. 일반인들은 e삼성 운운하는 얘기는 제법 들어봤겠지만 정작 e삼성 실패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를텐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2000년 당시 33세였던 이재용은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인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창업한다.[15] 이재용이 직접 지분 60%의 대주주로 출자했고, 나머지 지분은 삼성 계열사와 특히 당시 삼성 2인자인 이학수와 김인주[16]까지 참여한 사실상 삼성 수뇌부가 단단히 베팅한 사업이었다.

이렇게 설립한 e삼성은 IT 벤처사업 투자를 목표로 국내 투자는 e삼성, 해외 투자는 e삼성인터내셔널로 나누어 진행했다. e삼성의 설립 배경은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이재용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성과지표이자 이건희 못지않은 능력자 이미지 구축, 미국의 거대 IT 기업 아마존닷컴, Microsoft, 구글처럼 상장 대박나면 비싼 상속세 낼 필요없이 삼성 지분 사들여서 경영권 승계, 삼성그룹의 IT 사업 확장 등 성공만 했으면 이재용의 미래가 크게 바뀌는 사업이었다. 훗날 승계 문제로 된통 당하는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실제로 이런 IT, 4차산업 투자로 대박난 기업 중 하나가 소프트뱅크이다. 이렇게 보면 이재용과 달리 손정의 회장은 베팅에서 제대로 대박을 친 케이스이다.[17]

e삼성의 경영이 어땠는지에 대해선 여러 말이 많은데,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에서도 구체적인 정황이 많이 언급된다. 하여튼 2001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선 e삼성을 위한 삼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 부당지원을 조사하고 경고까지 주는 등 초반부터 경영이 좋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공정위의 철퇴에 결정적으로 당시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e삼성은 폐급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2001년 e삼성인터내셔널은 설립 첫해부터 투자회사들의 적자로 76억 원의 손실을 냈고, e삼성과 나머지 해외법인, 투자한 모든 회사의 적자를 합치면 도합 173억의 적자를 냈다.[18] 더 큰 문제는 이렇게 e삼성이 말아먹은 손실을 삼성 계열사로 전가했다는 것인데, 이재용의 보유 지분을 제일기획이 208억에 사들였으며, 다른 사업의 지분도 삼성SDS, 삼성SDI, 에버랜드 등 계열사가 사들이게 된다. 즉 이재용은 173억의 적자를 낸 회사를 208억에 팔고 손을 뗀 셈이다. 다만, 당시 사업체들을 전부 말아먹은 것은 아니어서 일부가 2020년대까지도 계열사의 자회사 형태로 존속하고 있으며, 멀티캠퍼스(구 크레듀), 시큐아이, 미라콤아이앤씨가 그런 회사들이다. 멀티캠퍼스, 시큐아이의 2020년 기준 시가총액에서 e삼성의 지분가치로 환산하면 지금은 어느정도 수익권이긴 하다. 20년 동안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손해를 받았고 겨우 2019년부터 흑자로 반전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삼성이란 뒷백을 두고도 e삼성이 실패했기 때문에 당시 이재용은 경영 능력에 큰 의심을 받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도 배임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e삼성의 실패로 이재용의 승진길도 전무, 부사장에 머무르는 동안, 물론 개인적인 사이는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동생 이부진이 당시 기준 일반인과의 결혼, 신라호텔 사업의 성과 등으로 부각되었기에 사뭇 비교되면서 세간의 의구심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3.2. 부회장 시절(2014~2022)

이건희가 갑작스레 쓰러지고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부터, 이재용은 상기한 e-삼성 실패로 일각의 우려를 받았으나 이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현재 상황을 놓고 평가를 해보자면 삼성을 대체로 잘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부회장 취임 직후에 한 것이 삼성테크윈 등 비주력부문 사업체를 한화그룹에 매각한 일이다.

SmartThings, 루프페이, 비브랩스, 하만을 인수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구조조정하고 있다. 하만 인수의 경우 총수인 이재용의 결단이 없이 수 조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투자 결정은 힘든 사항이고 실제로 하만 인수 과정에서 이재용이 구속당하자 인수가 무산될 뻔했다. 간신히 인수 과정은 성사시켰으나 이재용 석방 전까지 모회사인 삼성전자와 피인수 직후 자회사인 하만 사이의 갈등이 세계 언론을 통해 표면으로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이재용이 석방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삼성전자와 하만 간 조율을 통해 사업 부문을 조정해 분쟁을 해결했다.

자신의 측근 외에도 많은 경영진을 뽑았고, 실제로 삼성은 이재용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전무, 상무급 임원진이 크게 늘었다.[19] 임원진급 승진 인사 인선 과정에서 딱히 잡음이 나온 적도 없으며, 이후 이재용식 인사를 통해 뽑힌 경영진과 그 경영진들이 뽑은 사원들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이건희 시대보다 더 커진 초대기업임에도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며 매우 우수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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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실적

2018년에는 기록적인 반도체 호황을 기록하며 무려 영업이익 58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 시절에도 못 이룬 업적. 반도체 호황이 끝나가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2020년 기준으로도 삼성전자의 2019년 4분기 실적은 영업이익 7조원을 넘어가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0년 3분기 발표에서 무려 영업이익 12조 3,000억의 서프라이즈를 경신하며 초호황이 끝나고도 괜찮은 경영 실적을 거두었다.

스마트폰 경쟁사인 Apple과 비교하자면, 혁신의 아이콘이던 스티브 잡스가 죽었지만 후계자인 팀 쿡이 안정적인 경영과 탄탄한 재무운용을 바탕으로 잡스 시절과 비교가 안될 만큼 애플의 성장을 이끌고 있듯, 삼성도 이병철이 창업하여 국내 대기업으로 키워낸 것을 이건희가 공격적인 경영으로 글로벌 대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면, 이재용은 이를 지키고 한단계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하는 수성형에 가까운 타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삼성은 이미 초거대 기업이므로 리스크를 짊어지는 도박성 공격 위주의 경영보다는 까먹지 않는게 더 중요할 수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은 마이너스의 손이라던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준수한 실적을 올리며 삼성을 이끌고 있다.

또한 그동안 삼성 경영진이 비판받던 무노조 경영이나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 편법/불법 승계 문제 등에서도 이와 결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삼성이 완성형 기업에 위치한 만큼 사회적인 요구에 발 맞춰서 제대로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2020년 5월 이재용 본인이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지할 것임을 밝혔고, 여기에 더불어서 시민사회와 소통을 추진, 특히 삼성의 성역이었던 경영권 승계 문제에 본인이 직접 자식 승계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3.3. 회장 취임

2022년 10월 27일, 삼성전자 이사회는 회의를 열어,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안을 의결했다. 이로서 이재용은 부회장 취임 후 10년, 이건희 회장 2주기 기일이 이틀 지난 후에 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재용 회장은 별다른 취임식이나 행사를 진행하지 않고 당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공판에 출석한 자리에서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 많은 국민들의 응원 부탁드린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2022년 광복절 사면으로 등기이사 등재도 가능해졌지만, 등기이사로 선임되지는 않았는데 아직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재판이 남아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삼성은 미국 연준의 긴축 정책의 영향으로 순이익과 주가 모두 큰 폭으로 하락했다. 또한 단기 이익만 바라보고 원가절감을 함으로써 오랜기간 쌓아온 끊임없는 혁신과 고급스러움이라는 갤럭시 브랜드의 위상이 사라졌고, 애플에 국내 점유율마저 잠식당하고 있다.[20] 이재용 회장이 취임한 직후부터 삼성에 산적한 현안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이후 이재용 회장 시대 삼성의 평가를 가를 것이다.

4. 경력 및 약력

4.1. 기타 경력

5.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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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포츠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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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삼성 라이온즈 전기 우승 축승회에 어머니 홍라희와 함께 참석한 모습

엄청난 야구 팬이라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김시진캐치볼도 하고 야구장에 자주 와서 같이 시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난삼아 이재용을 김시진 제자라고도 한다. 이 때문인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10개 구단 모기업의 오너 중에서는 야구장 방문이 가장 잦은 편이었다. 이재용은 라이온즈의 구단주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사실상' 구단주일 뿐이다. 이재용은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 경기가 있으면 일 년에 두세 번은 잠실을 찾고 한국시리즈 때는 시간 나는 대로 잠실구장 경기를 찾았다.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는 서울과 가까운 인천 SK행복드림구장[22]을 찾기도 했다. 자식들도 종종 데리고 와서 가족 관람을 했다. 허나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자의반 타의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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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노란색 이지호. 우측은 외교부 장관 손자

골프도 잘 친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폭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구조조정본부'(지금의 미래전략실)의 핵심 인사로 일했던 시절 이재용 당시 상무와도 가까이 지냈었는데, 그와 함께 골프를 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김용철은 허리디스크가 있다는 이유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는 사람이 어찌나 골프채를 잘 휘두르는지 의아했다고 한다. 다만,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골프를 즐길 수 있고 그런 사례도 많다.

2011년 라이온즈 경기 때는 경기를 관람하고 경기 후에 삼성 덕아웃에 방문,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또한, 이때 선수 전원에게 갤럭시 탭 최신 버전을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2011년 7월, LG전에서 LG가 외야에 펼친 삼성 디스 현수막을 보고[23] 빡쳐서 집에서 나와 5회부터 잠실구장에서 관람, 삼성이 역전승하는 데 일조한 날이기도 하다.[24] 이날 경기 종료 후 선수단과 악수를 나누며 선수들에게 직접 금일봉을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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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내려다보는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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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목동 야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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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진에게 장난치는 이재용.

이날 턱돌이가 이재용, 이부진 가족과 악수를 했는데, 특히 이재용과 악수하고 난 뒤 꽤나 좋아했다.

2012년 8월 18일 슈퍼매치관람하기도 했다. 다만, 경기를 다 보지는 않고 나갔다고 한다.

2013년 3년 내내 정규시즌에서 단 한 번도 못 이기던 니퍼트를 삼성 선수들이 이날만큼은 박한이채태인의 활약으로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겼는데[25] 이 경기에 이재용이 직접 홈구장인 대구까지 방문하여 관람해서 이재용 효과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국 1승 3패로 밀리던 팀이 결국 7차전까지 끌고 가서 우승을 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등장하여 팀의 우승을 지켜봤다. 명불허전 재용불패임을 증명했다.

2015년 5월 21일 어머니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러 왔는데, 이 날 삼성은 상대로 등판한 對 삼성전 13승 1패를 자랑하던 더스틴 니퍼트를 털어버렸다! 이날 이전까지는 2012년 8월 18일 잠실에서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한 것이 유일한 기록이었다.

인터넷 기사로만 나왔던, 시즌 초에 류중일 감독이 감기에 시달린 사실도 아는 것으로 보아 야구 기사도 많이 챙겨보는 듯하다. 덤으로 팀 4,000홈런도 직접 봤다!

아들과 같이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는데 그 짤이 그 유명한 "아빠 나 류현진 사줘"다. 참고로 아들 이지호는 오승환 팬으로 이 때문에 삼성팬들 사이에선 "오승환은 종신계약 확정이요 ㅋㅋ"드립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왔음에도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오히려 이 부회장이 친히 직관을 온 2, 3, 4차전을 내리 패했다. 그러나 시즌 후 야구단을 제일기획으로 이전시키는 행보로 인해, 이전 모습과 다르게 180도로 야구단을 팽개쳤다는 평가가 늘어나며 안현호 단장 및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와 함께 많이 까였다. 2016년 이후에는 라이온즈 역시 새 정책을 적용하면서 2016년에 제일기획 산하가 되었다. 그리고 제일기획에 이관한 후 한 번도 야구 직관을 가지 않았다. 게다가 "명색이 프로 구단인데 모기업에서 매년 수백억 원씩 지원을 받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 즉, 앞으로 라이온즈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대구아재들이 구단을 매각하라고 아우성이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제일기획도 연루되었다는 혐의가 포착되어 삼성스포츠단 팬들의 분노를 제대로 샀다. 거기에 전년도의 박석민에 이어 FA로 풀린 차우찬최형우마저 거액의 총액을 받고 각각 LG와 KIA로 이적하면서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26]

제일기획 이전과 지원 감축의 원인을 이재용에게 돌리는 듯한 뉘앙스인데 이는 전적으로 도박으로 기업 이미지까지 실추시킨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 오승환 네명의 잘못이다. 많은 연봉을 받고있고 오너가 친히 격려 차원에서 방문해 선물과 보너스까지 챙겨줬으면 스포츠맨으로 멋진 모습을 어린 팬들에게 보여주는데만 집중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 기대를 짓밟고 건달들과 어울리며 마카오 원정도박에 일부는 중범죄 행위를 저질렀는데, 구단주가 삼성이란 두글자 호적을 파버리지 않은 것만도 굉장히 관대한 처분이다. 원망을 하려면 투수조를 원망해야한다.단 저 사건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중 하나인데 이재용 또한 저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주범이다. 어찌 보면 책임전가.[27]

그래도 관심은 아직 있는지 라이온즈가 2022년 7월달에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라는 13연패 부진에 빠지자 그룹 고위 임원한테 '우승까지 바라진 않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6.1. 야구 직관 성적

년도 관람 상대팀 승패 비고
2004년 10월 17일 두산 베어스 8:5 플레이오프 4차전
2006년 4월 16일 두산 베어스 3:5
10월 29일 한화 이글스 3:2 한국시리즈 6차전(우승)
2011년 7월 29일 LG 트윈스 4:2
10월 29일 SK 와이번스 1:2 한국시리즈 3차전
2012년 5월 11일 LG 트윈스 8:4
5월 20일 넥센 히어로즈 3:5
10월 31일 SK 와이번스 2:1 한국시리즈 5차전
2013년 10월 27일 두산 베어스 3:2 한국시리즈 3차전
10월 29일 두산 베어스 7:5 한국시리즈 5차전
2014년 11월 11일 넥센 히어로즈 11:1 한국시리즈 6차전(우승)
2015년 5월 21일 두산 베어스 6:1 자타공인 삼성 킬러 니퍼트가 두산 선발이었는데 통산 삼성전 2패째를 기록했다.
10월 27일 두산 베어스 1:6 한국시리즈 2차전, 이날도 니퍼트가 두산 선발이었다.
그런데 5월 21일 경기에서 진 것에 복수였는지 6:1로 삼성이 진다.
10월 29일 두산 베어스 1:5 한국시리즈 3차전.

이재용이 직관한 날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승률이 상당히 높아 팬들 사이에서는 재용불패, 재용필승, 승리요정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부르고 있다. 재용불패에 비할 수 있는 것이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의 용만불패가 있다.

반대로 아버지 이건희는 직관 필패로 유명하다. 이건희도 스포츠를 이재용 못지않게 좋아하지만 그 유명한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유두열의 역전 홈런을 본 충격으로(...) 별세 전까지 직관을 안 갔다고 한다. 카더라에 의하면 1984년 한국시리즈 때 7차전에서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구단의 연락을 받고 이제는 이기는 것을 보겠구나 싶어 구장에 도착했는데, 도착한 순간 본 게 장효조의 만세 사건이었고 바로 다음 이닝인 8회에 유두열의 역전 쓰리런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7.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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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 영미권에서는 주로 'Jay Y. Lee'라고 불린다.
  • 2010년대 네티즌들에겐 아버지 이건희와 묶여서 빌 게이츠, 만수르와 함께 재벌 개그로 많이 쓰인 인물이다. 다음은 그 예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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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짤방은 (재벌 기준으로) 어느 정도 적당히 부유한 사람들 사례나 짤, 글을 올려놓은 다음 그 밑에
이건희 : 재용아 저거 봐라.
이재용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면
제목 : 와 로또 8억 당첨됐대 너무 좋겠다
내용 : (짤방과 함께)돈 많이 벌겠다 ㅋㅋㅋㅋㅋㅋㅋ
같이 어렵사리 일반 서민들 기준으론 거금을 탄 이들을 보며 낄낄대는 형식으로 많이 사용된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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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이게 서민들이 먹는 빵이라는 건가? 음 맛있네! 이 가게 얼마죠?
라는 꼭지가 달린다. 혹은 이런 식의 드립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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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의 사진은 파일 제목마냥 쇼미더머니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당시 갓 출시된 갤럭시 S6 엣지를 자랑하는 모습이다. 기자들에게 한 번 써보라고 하기도 했으며, 딸바보인지 딸의 사진을 직접 열어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기사.
* 만일 이재용이 유튜브를 하면 어떤 콘텐츠가 나올 것이냐는 밈이 돌아다니곤 한다. 제일 압권은 "동생 몰래 호텔신라에서 계산 안하고 튀기"(...)였으며 이후 한 여직원의 유튜브를 해보라는 말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 상기했듯 온갖 재벌 드립의 밈으로 쓰이고 있지만, 실제 대학생 시절 이재용은 서민을 기준으로 봐도 평범하다면 평범한, 그냥 용돈 잘 받아 쓰는 대학생 생활을 했다고 한다.[29]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모 대학 친구와 같이 어울리며 그의 자취방에 놀러가서 라면을 끓여먹은 적도 많고, 심지어 본인이 직접 라면을 몇 번 끓여주기도 했다고 한다.[30] 또 다른 일화로 어느 날 마지막 강의가 뜻하지 않게 공강이 되어 동기가 야구나 한 판 하면 재밌겠는데 라는 말을 듣고, 개인비용을 써서[31] 스포츠 렌탈 매장에서 장비를 대여해서 함께 어울리며 간단히 야구를 즐기고 맥주 한 잔 하고 들어간 적도 있다고 한다. 굳이 부자 티를 낸다면 과 모임 같은 거 할 때 고급 초콜릿을 종종 싸왔다는 것 정도. 한마디로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격의 없이 자라서, 2010년대 말 구속됐을 때도 다른 국정농단 공범들은 취향에 안 맞는 구치소 식사를 제대로 먹지 못 하고[32] 남기는데 비해 이재용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고 체육시간에도 자주 나와서 철봉을 하며 몸을 스트레칭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국내 최고 재벌이란 이미지나 외모에서도 뭔가 왕자나 귀족 도련님 같이 자란 사람의 티가 많을 것 같지만, 상술했듯이 재벌치곤 매우 소탈하고 수수한 편이라고 한다. 평소에도 강하고 드센 면이 많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겸손하고 차분한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이며, 오히려 너무 부드럽고 얌전해서 세고 직설적인 언행을 보기가 어려웠고 삼성에서 부사장, 사장, 부회장과 같은 높은 자리를 맡았을 때에도 여러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편안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왔는데, 어린 학생들이 다가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자 곤란해하면서 다음에 해주겠다고 넘기려고 했지만 그 학생들이 다음에 언제 기회가 있겠냐고 쫓아오려고 하자 가까이 가서 자신에게 메일을 보내달라며 명함을 주는 삼촌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 물론 돈을 안 쓰는 건 아닌 모양인지,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유전 때문인지 폐가 약해서 집에 공기 정화 장치를 설치했는데, 그래서인지 한달 전기료가 30,000,000원(3,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 덕에 집안 공기 수준은 매우 깨끗해서 하와이급이라고 한다. 물론 재벌이란 본인 특성 고려하면 딱히 사치라고 보기 어려울지도.. 실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둘 다 폐병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신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집안 내력 때문에 폐와 기관지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
* 그가 쓰고 다니는 안경은 오스트리아산 실루엣 무테 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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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경에 업무용 차량을 9년간 타던 에쿠스에서 체어맨으로 바꿨다고 한다. 사진 속의 차량은 에쿠스 1세대다.[33] 이건희의 장례식 때는 팰리세이드를 직접 운전해 도착했다. 삼성 관계자에 의하면 해당 차량은 이 부회장 자가 소유이고 두 아이들 때문에 자가운전해 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제네시스 G90을 업무용으로 사용 중이다.
* 딸인 이원주 양이 국립발레단 산하의 주니어 발레스쿨에서 발레를 배웠던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발레 마니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6년 국립발레단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호두까기 인형의 주연을 맡고 그만뒀다고 한다. 과거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딸의 공연을 관람했다. 2011년 호두까기 인형, 2012, 2013년 프릿츠의 친구 역할로 2014, 2015년에는 주인공 '마리'의 남동생인 '프릿츠' 역할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2016년에는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 마리 역할의 아역인 어린 마리 역으로 나왔다. 이원주 양이 다녔던 학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서울용산국제학교(YISS)이다. 현재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며, 이원주 양이 재학 중인 학교는 미국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Choate Rosemary Hall이다. 이지호 군도 재학했던 적이 있다. 발레단 친구들과 함께 잠실에서 열린 EXO 콘서트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친구인 나 양[34]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나와있으며, 이원주의 SNS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개인 셀카, 친구와 찍은 사진등이 언론에서 세간에 큰 관심사를 끌었다.[35] 보도된 바에 의하면 방탄소년단, 프로듀스 101, Wanna One 등의 남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며 화제를 모았던 해당 계정은 현재 탈퇴한 상태다. 국내 최고의 재벌 딸이라는 것만 빼면 또래 소녀들의 평범한 취향과 차이가 얼추 비슷함을 알 수 있다.[36]
* 딸이 주인공으로 섰던 2015년 12월의 호두까기 인형 관람 후 공연장을 나서는데 한 기자가 인터뷰를 청하며 LG 휴대폰의 마이크를 들이밀자 이재용은 이를 보고 "갤럭시 쓰시는 분이면 말씀드렸을 텐데…"라는 말로 에둘러 거절했다. 아마 가족과 같이 보내는 행사인지라 말을 돌려서 좋게 거절한 것 같은데, 실제로 웃는 표정에 장난끼 가득한 말투였고 심지어는 기자가 계속 인터뷰를 청하자 아예 어깨동무까지 한 채로 함께 걸어가며 친구 대하듯 했다고 한다. 이에 기자는 사진 촬영만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이재용은 계속 갤럭시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갖고 싶은 갤럭시 기종, 색상, 사용 중인 통신사를 물었다. 기자는 그냥 장난인 줄 알고 '갤럭시 S6 엣지 골드 SK'라고 답했는데, 이재용은 주차장까지 가면서 엣지, 골드, SK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회사 차량이 마중나오자 비서를 시켜 트렁크에서 갤럭시 S6 엣지 골드 SKT 모델을 꺼내 진짜로 선물해줬다. 2016년 9월 21일에는 한 손에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아 폭발 사고를 일으켰던 갤럭시 노트7을 들고 출근하던 도중 아이폰을 들고 있는 기자를 보고서는 "여기만 아이폰이네요"라고 말했다. 이재용, '갤노트7’들고 출근하며 아이폰 든 기자에게 "아이폰이네요."
* 2016년 1월 11일, 김포공항에서 TWICE의 입국을 기다리던 아이돌 홈마들에게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
* 2심 판결로 석방된 후 353일 만에 자택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로 치킨을 시켜먹었다. 이후 삼성 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백반식 저녁 식사를 준비했는데 이재용 회장이 귀가하고 나서 곧바로 치킨을 강하게 찾아 급히 배달을 시켰다고 한다. 백반식이야 수감되었을 때 질리게 먹었을 테니 치킨이 땡길만도 하다. 2021년 11월에 황교익치킨은 서민, 노동자가 찾는 음식이어서 부자들은 먹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여, 이 일화가 회자되기도 했다.
* 파일: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대의 천재.jpg
이재용 본인이 안경을 올리고 있는 짤을 가지고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면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검색어로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대의 천재'라는 검색어가 떠서 커뮤니티에 회자된 적이 있다. # 다만 이는 저 짤의 자세가 고갤 밈인 루아녹스 짤과 닮아서 생긴 해프닝이다. 또한, 반대로 위 짤이 일본에서 유카와 마나부를 닮아서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 재즈 클라리네티스트인 베니 굿맨과 얼굴이 묘하게 비슷하다.
* 파일:이재용 인천공항3개.gif
2019년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 방문하여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열고 EUV동 건설 현장을 시찰했는데, 이때 이재용 부회장과 회동했다. 이때 이재용이 "이거 짓는 돈이 인천공항 3개 짓는 비용입니다."라고 말하며 설명하는데 보기드문 이재용의 표정과 손짓에 인터넷에서 화 되어 여러 커뮤니티에서 지금도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제인 특별 수행원으로 참가했는데, 거기서 많은 짤방을 양산했다. 예를 들자면 이코노미석에 탄 이재용, iPhone이라서 취재 안 받은 이재용, 평양냉면 맛 본 모습 등이 있다. 특유의 일관된 표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 중 가장 압권은 방북을 마친 후 들뜬 표정으로 돌아오는 표정이다. 사실 이코노미석이 아니고 비즈니스석인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재벌개그 드립이다. 실제로 이재용은 이코노미석도 타봤다.
* 트럼프 정권 시절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조치에 따라, 방북한 이재용도 미국 방문 시 무비자 입국이 제한되어 미국 방문시 방문 비자를 발급받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미 대통령도 투자 유치 관련해 접견할 정도인 이재용을 양국 정부에서 그렇게 둘진 의문이다. 추가적인 취재가 필요해 보인다.
* 정부로부터 특사 자격을 받아 유럽 등지에서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출장을 준비 중이었는데, 구속으로 인해서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 그러나 이것은 법조계, 산업계의 익명 주장이고 정부 공식 반응은 기사에 없다. 결국 질병청에서 논의한 적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 2021년 시점 앞선 보도의 정정 보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300억원을 먼저 냈고,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 등 연수원 2곳을 수도권 생활치료센터로 쓰도록 했다.
* 부친의 장례식장에 펠리세이드를 타고 왔는데, 본인이 아들과 딸을 태우고 운전기사 대동 없이 직접 운전했다고 한다. 또한, 차량을 조회해 보니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한 것으로 나왔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았다는 루머와 관련해 "아버님께 야단을 맞은 것 빼고는 야단 맞은 기억이 없다", "여자분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 제가 당황했던 것 같다"는 식으로 말했다. 실제 삼성의 이 사건에 대한 스탠스는 당시 대통령에게 기업 오너가 협박당했다는 것이다.[37] 특히 당시 박근혜 정부는 삼성이 관리한다고 생각하던[38] JTBC의 반정부적 보도 스탠스[39] 등과 엮여 삼성이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40]
* 재벌 총수치고 젊어보이고 깔끔한 외모와 다르게 2020년대 초 기준 이미 50대 중반이다. 동갑인 톰 요크와 비교해 보면 이재용이 얼마나 동안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이재용의 경우 대기업 총수이기에 업무량도 많을 것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관리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감옥에선 제대로 된 관리는 못 하기에 2021년 출소 직후의 모습을 보면 조금 수척해지긴 했다만, 후술되어있듯 이 기간 13kg이나 빠진 다이어트의 영향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안이다.
* 밖에서 비춰지는 얼굴 표정이 거의 항상 웃는 듯한 표정이라 이에 대해 호불호가 나뉘기도 한다. 웃어서 친숙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재용의 웃는 표정을 포커페이스의 변형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사실 본인 입장에선 어색해서 웃는듯한 얼굴 표정이 나오는것일수도 있다.
* 입술이 매우 얇다. 집안의 내력인 것인지 동생도 그렇다.
* 상당히 좋은 목소리와 발성을 가지고 있다.# 사족으로 여동생 이부진도 목소리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 구치소에 있었던 시기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일반인들이 재벌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나 싶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2021년 3월 19일 급성 충수돌기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초기에 빠르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감옥에 수감 중인 상태라 특혜 논란이 있을 수 있기에 고통을 참았고, 결국 상황이 악화되어 대장의 일부를 절단해야 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인생이 참 고난의 길이다.
* 2021년 8월 9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최증 승인했다. 207일 만에 경영 복귀…법무부, 이재용 가석방 승인.
* 구치소에 있는 7개월 동안 몸무게가 13kg이나 빠져 나름 화제가 되었는데 스트레스로 빠졌다기보단 본인이 운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독방에서 매일 스쿼트 300회[41], 30분씩 주어진 운동 시간에는 운동장을 전력질주 했다고 한다.[42] 오죽하면, 웃통 벗고 달리는 JY가 구치소 내에서도 화제였다고 한다.# 한 출소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수감된 모 대기업 회장은 이 전 부회장과는 달리 매일 환자복 입고 환자방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 이재용이 수감되어있던 2019년 경 연쇄살인을 저지른 강호순과 같은 구치소였는데, 당시 강호순이 이재용에게 운동장에서 ‘어차피 또 들어올텐데 에어컨이나 설치해놓고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던 변희재 증언.
*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직접 영업을 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 은행들은 업무 기밀 유출을 우려해 기술담당부서의 특별 인증을 받은 휴대폰만 업무용으로 사용한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사내 기술부서의 특별 인증을 받은 아이폰과 블랙베리만 사용해왔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골드만삭스 경영진과의 미팅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직접 영업에 나서 뜻을 관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엔지니어를 대동해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에 찾아갔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영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엔지니어들은 삼성 갤럭시의 장점과 보안 기능에 대해 프레젠테이션 했다. 결국 골드만삭스 기술부서는 삼성 갤럭시에 특별 인증을 내줬다. 골드만삭스 임직원들은 아이폰, 블랙베리 대신 갤럭시폰을 업무용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43]
* 2022년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남을 가졌다.#
* 파일:이재용 빈살만 왕세자.jpg
2022년 11월 17일, 김동관, 박정원, 이재현, 이해욱, 정기선, 정의선, 최태원과 함께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과 티타임을 가졌다.#
*2022년, 이재용이 베트남 출장 갈 때 입은 43만원짜리 패딩 조끼가 화제가 되어 완판이 되었다고 한다. "어! 싸네"…이재용 출장길 '조끼 패딩', 하루만에 품절 대란
* 2023년 1월 18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스위스 국빈 방문의 동행 중 한국의 밤 행사에서 취재진을 향해 '다 캐논을 사용한다'며 '내가 직업병이 있어서 물어봤는데, (니콘은) 동영상이 안돼서 다 캐논만 쓴다고 하더라'고 웃음과 함께 농담을 건넸고, 이에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과 취재진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

[1] 중시조 41세. 재(在)○ 항렬. 판전공파(判典公派)-사정공파(司正公派). 파조(派祖) 이강(李파일:한자 강(康+羽)(각주용).png)이 전객시(典客寺)의 판사(判事), 즉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를 역임하였기에 줄여서 판전공(判典公)이라고 한 것이다. 다만 의미상 판사공(判事公)으로 해야 옳다는 의견도 있다. 전객시는 예빈성(禮賓省)이라고도 하며 고려시대 외국의 빈객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일을 하던 관청이다. 전객시의 장(長)은 정3품 판사로 하였다. 사정(司正)은 조선시대 5위(五衛)의 정7품 관직이다.[2] 학위논문: '일본의 산업 공동화의 분석과 그 대책 -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을 이용하여' (1994, 지도교수: 야나기하라 카즈오(柳原一夫))[3] 게이오기주쿠대학 학술정보 저장소에도 초록만 있고 현재 인터넷 상에서 볼 방법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4] 흔히 말하는 허리디스크이며, 이재용이 병역 판정을 받을 시기에는 추간판이 신경을 압박하는 것이 식별되면 압박 정도와 무관하게 무조건 제2국민역(현 전시근로역) 판정이었다. 현재는 병역법이 상당히 강화돼 척추에 직접 철심을 박는 디스크 절제술을 받아야 5급 전시근로역이 나오며, 치환술을 받지 않고 신경성형술만 받거나 신경 압박도가 35% 이상을 넘지 않으면 현역(3급) 판정을 받는다.[5] 부모님이 원불교 교도이기 때문에 이재용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원불교 교도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이후에 종교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6] 2022년 11월 포브스 기준. 한국 부자 순위 2위.[7] 사실 당시엔 삼성뿐 아니라 대다수 국내 수출 대기업의 목표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 일류 수준이던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이었기에, 일본을 알기 위해 일본 명문대를 가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학사 논문도 근대일본사를 주제로 하였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구성과 그 정치적 의미',1992.[8] 대학원 재학 당시 갑작스레 이건희 회장이 폐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와병하게 되었기에, 대학원 논문을 제출하지 못하고 수료만 하고 졸업하게 되었다. 당시 공부를 꽤 잘했는지 하버드 MBA 과정에서 동양인 최초로 최고 점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비서진들도 동행했다는거 보면... 해당 기사에 따르면 게이오 MBA 입학 시험에 한 번 낙방했다고 하고, 하버드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케네디 스쿨에 1년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MBA 과정에 재학했는지는 불명. 이미 일본에서 MBA를 수료하고 왔는데 재차 MBA에 입학하였다기보단 DBA(박사과정)의 오기로 보인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박사 수료 이후 삼성 경영 일선에 투입된다.[9] 미국 대학은 학부 과정에 경영학과가 없는 대학이 많다.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과 비슷하게 대학원 과정에서 배우는 학문으로 취급하여 경영전문대학원 MBA 과정이 보편적이다. 대신 유펜이나 NYU, 조지타운 대학교 등 경영학과 학부 과정이 있는 학교는 인기가 어마무시하다.[10] 이재용과 외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처음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진학학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다만 정용진은 1년만에 그만두고 미국 브라운 대학교로 유학가 경제학을 전공했다.[11] 여담으로 당시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중국사 전공으로 유명했다. 민두기 스쿨로 대표되는 사단이 있었고, 학문적 경쟁력이 얼마나 강했냐면 유학 없이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다 딴 한 학자가 미국 대학 교수로 정식 임용된 사례가 있을 정도로 서울대가 중국사 등의 분야에서 세계(동양)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아주 높다. 이는 중국 국내 역사연구가 문화대혁명으로 박살났기 때문이다.[12] 여동생들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13] SBS 예능본부장을 지낸 최영인 맞다.[14] 특히 87년은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온 사회에 뿜어져 나오던 시기였다. 훗날 신해철은 발레나 무용처럼 학생운동과는 인연이 없던 과의 학생들도 죄다 쏟아져 나오던 시기라 회고한 바 있다. 이 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15] 그 시기 한국은 IT, 벤처 창업이 붐이던 시절이라 삼성 내에서도 사내 벤처 설립이 매우 활발했다. 삼성 사내 벤처를 벗어나 국내 포털 사이트 1위를 달성하고 지금은 대기업이 된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이재용의 IT 벤처 창립도 시대 흐름의 일환이었고, 닷컴 버블이던 이 시기 IT 대박을 노린 것이다.[16] 전 삼성선물 사장. 45세에 삼성 사장에 오른 초엘리트였고 삼성SDS 상장 당시 거액을 번 이너서클이었다.[17] 여담으로 이재용과 손정의 회장은 이때 무렵쯤부터 친분을 맺어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다. 2019년 손 회장 방한 당시엔 이재용 부회장이 손 회장의 부탁으로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이외 이재용 부회장과 친분이 깊은 사이로는 SK 최태원 회장이 잘 알려져 있는데,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두 대기업의 수장이 절친이란 점은 한편으론 흥미롭기도 하다.[18] 지금 기준으로는 173억이 별 거 아닐지 몰라도 2001년에 173억은 지금의 몇배라고 생각해야 된다.[19] 양향자도 이때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팀 상무로 진급했다.[20] 가벼이 볼게 아닌게,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애플을 쓰는 비율이 더 늘어나 미래 경쟁에서 불안함을 보이고 있다.[21] 이후 게이오대 MBA, 하버드 유학 기간 동안 휴직.[22] 현 인천 SSG 랜더스필드[23] 당시 LG전자가 내놓았던 3D TV의 품질 차이를 홍보하는 현수막이었는데, "보라, 누가 하늘이고 누가 인지"라는 멘트가 적혀있었다. 문제는 색깔이었는데 '하늘' 부분은 LG의 상징색인 붉은색 글씨로, '땅' 부분은 삼성의 상징색인 푸른색 글씨로 표기되었다.파일:이재용VS서울아재.jpg(이미지) 한마디로 삼성은 바닥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재용이 빡치지 않을 리가 없을 듯하다. 이 당시 삼성과 LG는 백색가전 분야에서 숱한 신경전을 벌였다. 세탁기 파손 문제가 불거졌던 것도 2010년대 중반의 일이다.[24] 정확히 말하면 경기장으로 출발한 후에 삼성이 경기를 뒤집은 상황이라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삼성이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25] 참고로 니퍼트는 경상권 팀들을 상대로 강하다.[26] ‘돈성’ 논란 이후 삼성은 외부 FA를 영입하지는 않지만 팀 내에서 FA를 신청한 선수와는 무조건 재계약을 체결하는 팀으로 유명했다.[27] 스포츠단의 제일기획 관리가 글로벌 대기업의 국내 홍보에 적절했다는 평가 결과가 나온 것인지 이후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산하 스포츠단을 이노션이 일괄 관리하도록 검토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회장 취임을 계기로 온갖 설레발에 빠진 팬덤의 바람과 달리 당분간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한 부분.[28] 바리에이션으로 만수르가 이재용과 이건희를 폰팔이라고 하는 개그도 있다.[29] 당시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운동권 기질이 강해서, 서민친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고 한다. 현재도 서울대 인문대, 특히 사학과 쪽은 전체적으로 과 느낌이 이념적으로 따지자면 왼쪽인 편이다. 그런 동기들과 무난히 잘 어울려 지냈다는거니 이재용이 딱히 까탈스러운 성격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30] 여담으로 이 친구는 평범한 중산층 출신으로 5급 공무원을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종국엔 7급 공무원에 합격했는데, 합격 축하한다고 이재용이 직접 그 친구를 자신의 집에 초청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친구도 이건희 회장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갖게 됐다고 하는데, 그때 그는 5급 공무원에 합격하지 못한 게 죄송하다며 울먹였고, 이에 이건희는 "자네 부모님께 죄송해야지 왜 나한테 죄송한가? (이건희 입장에선 황당했을 법도 하다.) 그리고 자네가 남자라면 이렇게 함부로 울지 마라. 비록 5급 공무원은 되지 못했지만 7급 공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게. 무릇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담당하게 되니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가져야 한다네."라고 덕담을 했다고 한다.[31] 특별히 비싼 게 아니므로 10만원 안쪽으로 일반인도 좀 마음 먹으면 충분히 낼 수 있는 돈이다.[32] 한 끼가 1,400원에 설거지도 본인이 해야 한다. 특히, 법조인 출신인 조윤선만 먹다가 지쳤다고 한다. 최순실은 설거지를 안 했고(...), 박근혜는 원래부터 입이 짧은 소식파라서 그런지 식사를 많이 남기는 편이었다고 한다.[33] 그런데 이런 기사를 보면 계속 차를 바꾸긴 했는데, 에쿠스로만 바꿨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기업인들은 원래 리스로 타고 다니므로 자주 바뀌는 것이 일상이기는 하다. 2020년 4월 17일에 이재용 부회장이 타던 차로 추정되는 체어맨이 중고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언론에 나왔다. # 그리고 아버지 닮아서 국내 유일의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34] 인스타그램 계정은 ballet0210인데, 현재는 게시물이 없다. 이원주와 팔로우 관계이다.[35] 당시 사진이 아이폰으로 찍혔는데, 그 사진은 친구 폰으로 찍은 것이라고 한다. 원주 양은 아이폰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36] 신세계 정용진과 전처 고현정 사이의 자녀 정해인도 아이돌(하이라이트, BTOB)을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37] 검찰의 스탠스는 자발이든 협박이든 결론은 경영권 승계 문제 등으로 정경유착이 벌어졌다는 것.[38] 삼성에서 중앙일보가 떨어져나온 건 맞지만, 이재용에겐 외삼촌, 외사촌격 되는 홍씨 일가가 중앙일보와 JTBC를 실질 경영하고 있던터라 이재용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 법도 하다.[39] 이 비판적 스탠스는 2015년 국정화 사태 때가 결정적이다.[40] TBC가 독재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자주 하긴 했다. 이병철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삼성그룹 회장직에서 퇴진했고,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강제 폐국을 당했을 때도 TBC는 독재정권에 비판하는 스탠스를 자주 보였다.[41] 정확히는 30개x10세트[42] 207일. 7개월 정도에 13kg를 뺐다는 건 어지간히 어려도 가능한 게 아니다.[43] 아이폰은 자체 API와 OS를 사용하는 특성상 사석에서도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블랙베리는 회사 자체가 사정이 좋지 않아 후속 스마트폰이 나오니 마니 하는 상황이며 그러다 보니 빠르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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