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3 23:40:07

제일모직

파일:나무위키+유도.png   2015년까지 제일모직 명칭을 썼던 기업에 대한 내용은 삼성물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 파일:Samsung logo.png제일모직
第一毛織 | CHEIL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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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명 한글: 제일모직 주식회사
영어: Cheil Industries Inc.
한자: 第一毛織株式會社
국가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설립일 1954년 9월 15일
해산일 2014년 7월 1일
업종명 합성수지 및 기타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
본사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906-10
기업 분류 대기업
상장유무 상장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75년 ~ 2014년)
종목코드 001300
1. 개요2. 역사3. 역대 임원4. 특징

1. 개요

삼성그룹 계열 패션, 의류, 섬유, 신소재 업체. 현 삼성물산 패션부문롯데첨단소재의 뿌리이다. 약칭은 '일모'이다.

2. 역사

창립 전 한국인들은 마카오에서 양복지를 사들여 양복을 해 입었는데, 문제는 수입 양복 값이 비쌌다. 이에 착안한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은 중역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54년 9월 15일 제일모직공업을 세웠다. 1955년 소모방공장 준공 후 1956년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만들었고, 이후 방적/직포/방모공장 등을 잇따라 세워 기틀을 다진 뒤, 1961년 창사 최초로 복지를 수출한 후 1968년 경북 경산공장을 세워 이듬해 학생복지 '에리트' 생산도 개시했으나, 1972년 7월 경산공장을 분리해 제일합섬(주)를 설립했다. 한때 제일제당, 제일합섬과 더불어 '제일' 삼총사 중 하나였다.[1]

1975년 기업공개 후 제일복장으로부터 '장미라사' 사업권을 이어받았고, 1976년 제일모직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같은 해 칠곡새마을공장을 필두로 1977년 안양디자인센터를 세우고 여성 기성복 '라보떼'를 출시했다. 1978년 부설여자중학교 및 실업고등학교[2]를 열었고, 구미공장도 세운 뒤 탁구단도 창단했다. 1979년 기술연구소, 1981년 오스트레일리아 합작법인을 각각 냈고, 1982년 현지합작 양모공장을 세웠다. 1983년 안양 남성복생산공장 준공 후 1985년 신사복을 영국에 수출하며 1986년 카펫 생산을 개시했다. 1988년 의류사업본부(하티스트) 및 인테리어사업부를 신설하고 화성연구소를 열었다.

1991년 여천 C-SAN 공장을 세운 후 세계에서 3번째로 순모 120수 복지를 개발했고, 1992년 미국 현지법인 및 여천 EPS공장을 세우는 한편, 세계 최초로 초고밀도 113만 본 순모 카펫을 개발했다. 1993년 삼성물산과 공동으로 삼성패션연구소를 세운 후 1995년 '아이비클럽' 브랜드로 학생복사업에 재진출했고, 1997년 충남 예산공장을 세우고 미국 의류업체 '파멜라데니스'를 인수했다. 1999년 삼성물산으로부터 '에스에스패션' 브랜드를 넘겨받고 하이크리에이션을 합병했다.

2000년 삼성물산으로부터 해외의류사업을 넘겨받고 2001,년 학생복사업부를 '아이비클럽'으로 분사시켜 (주)대원에 넘겼으며, 2002년 구미 IT단지에 전자재료 공장을 세우고 2003년 F&F로부터 'KUHO[3]' 브랜드를 인수한 뒤 2004년 OPC사업을 삼성전자에 넘겼다. 2007년 개미플러스유통을 인수하고 2011년 에이스디지텍을 합병했다. 2012년 YG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해 '네추럴나인'을 세웠다.

케미칼 부문은 ABS, PS, Engineering Plastics 등의 합성수지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고기능 합성수지인 모니터용 난연ABS와 냉장고용 압출 ABS 수지는 세계 최고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1997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인조대리석 사업은 세계 최초 투명 인조대리석을 출시했다.

반도체봉지재 EMC로 개발로 시작된 제일모직 전자재료 사업은 2002년 구미시에 IT생산 단지를 준공해 2차 전지용 전해액, 전자파폐재인 EMS, LCD용 CR, 반도체용 CMP Slurry 등을 양산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여 갔고, 2007년 3월 코스닥 상장기업인 에이스디지텍을 인수하여 LCD 패널의 핵심소재인 편광 필름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를 통해 미래 신수종사업의 본격적인 확대 및 차세대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반을 강화했다.

2013년 9월 23일 주주총회에서 12월 1일부터 모든 패션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패션 부분은 삼성에버랜드에 1조 500억 원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이미 전체 매출의 70%에 육박하는 소재 산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014년 3월 31일 삼성SDI가 남은 사업부를 흡수합병하겠다고 밝혔으며, 7월 1일 합병이 완료되어 법인이 소멸되었다. 그리고 패션 부문의 상표권까지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하면서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4]

2015년 10월 30일 케미칼 사업부문을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과 함께 롯데케미칼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 해 이미 화학 관련 계열사들을 한화그룹에 매각한 삼성은 이 매각을 끝으로 화학 사업에서는 손을 뗐다. 2016년 2월 1일에 해당 부문을 'SDI케미칼'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했으며, 롯데케미칼이 이 회사의 지분을 순차적으로 인수한 뒤 5월 7일 롯데첨단소재로 이름을 바꾸며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증권가 찌라시에서는 삼성 SDI를 중심으로 전기차 사업을 전개하기 위한 현금을 마련하고자 화학사업부문을 매각했다고 하는데, 화학사업부문을 매각해서 받은 자금은 실제 가치에 비해 약 1조 원 더 많았다고 한다. 나머지 1조 원은 삼성그룹과의 거래선을 유지하기 위한 프리미엄이었다고.DB그룹처럼 모체가 매각됐다!!!

3. 역대 임원

  • 대표이사 회장
  • 대표이사 사장
    • 이병철 (1954~1962)
    • 성상영 (1962~1967)
    • 이창업 (1967~1969)
    • 이은택 (1969~1974)
    • 조우동 (1974~1978)
    • 이수빈 (1977~1983)
    • 이성웅 (1980~1983)
    • 송세창 (1983~1987/1988~1989)
    • 이대원 (1989~1991)
    • 박홍기 (1997)
    • 안복현 (2001~2004)
    • 제진훈 (2004~2009)
    • 황백 (2009~2012)
    • 박종우 (2012~2014)
    • 윤주화 (2013~2014)
    • 조남성 (2014)
    • 박상진 (2014)
  • 대표이사 부사장
    • 이대원 (1987~1989)
    • 채오병 (1991~1993)
    • 유현식 (1993~1997)
    • 원대연 (1997~2001)
    • 안복현 (1999~2001)
  • 대표이사 전무
    • 김헌성 (1973~1976)
  • 대표이사 상무
    • 김헌성 (1970~1973)

4. 특징

주요 사업장으로는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구룡리,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 전라남도 여수시 평여동에 있다. 1954년 이래로 1996년까지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2가에도 사업장이 있었으나, 1996년 구미공장으로 통합 이전했다.[5]

주주로는 국민연금공단이 7.84%, 삼성카드가 7.62%, 한국투자신탁운용이 5.05%, 미래에셋자산운용이 4.50%의 지분을 보유했으며, 본사는 삼성엔지니어링의 13.1%, 삼성정밀화학의 3.2%, 삼성에버랜드의 4%, 삼성석유화학의 21.4%, 삼성 라이온즈의 15%, 아이마켓코리아의 2.8%, 한국경제신문의 6.66% 등을 가졌다.

직물은 역시 출신답게 국내 최고이며, 양복을 맞출 때 이탈리아 원단 바로 아래가 제일모직의 원단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답게 연봉도 빡세고 일거리도 빡세다! 야근을 밥먹듯이 했었다. 유일하게 좋은 게 빈폴 반값 혜택 물론 정규직 기준이었다.


[1] 제일제당, 제일합섬, 제일모직. 이후 제일제당은 계열 분리되어 CJ그룹이 되었고 제일합섬은 새한그룹으로 분리되었다가 외환위기 후 2000년에 해체되고, 웅진그룹에 인수되어 웅진케미칼이 되었다. 그리고 웅진그룹이 어려워지자 일본도레이가 인수하여 도레이케미칼이 되었다가 2019년 도레이첨단소재에 합병됐다.[2] 1982년 이후 성일여중 및 성일여실로 변경됨.[3] 디자이너 이름이 정구호다. 전 제일모직 전무.[4] 이후 이 '신 제일모직'은 2015년 9월 1일 삼성물산을 합병한 뒤 이름을 삼성물산으로 바꾸었다. 법인은 존속했지만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은 이로써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5] 그 부지의 일부는 대구 오페라하우스삼성그룹에서 대구광역시에 기부채납했다. 나머지는 아직 미개발. 현재 오페라하우스 앞 도로명이 "호암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