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12:59:56

삼성 라이온즈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번달 경기 기록에 대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2019년/5월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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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정보 삼성그룹 | 삼성스포츠 |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군
선수단 명단 선수단 리스트
등번호 선수단 등번호
유니폼 선수단 유니폼
구장 1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
2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주요 역사 우승 시즌 1985 통합우승 | 02 한국시리즈 | 05 한국시리즈 | 06 한국시리즈
11 한국시리즈 | 12 한국시리즈 | 13 한국시리즈 | 14 한국시리즈
현재 시즌 2019년 시즌
사건 사고 사건 및 사고
팬덤 관련 정보 응원가 |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 LIONS TV | 사자 사랑방 | 사자후
주요 지역 연고 경북고등학교 | 대구고등학교 | 대구상원고등학교 | 포항제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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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창단 1982년 2월 3일
법인 설립 1982년 3월 5일
법인명 삼성 라이온즈[1]
모회사 제일기획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지분율 제일기획(67.5%)[2] | CJ제일제당(15%)[3] | 신세계(14.5%)[4][5]
구단명 삼성 라이온즈 (1982~)
연고지 대구직할시 -> 대구광역시 (1982~)
경상북도 (1982~1999)[6]
구단주 임대기[7]
대표이사
단장 홍준학
감독 김한수
주장 강민호
홈 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982~2015)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2016~ / 29,000석)[8]
포항 야구장[9](2012~ / 12,000석)
2군 구장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마스코트 파일:external/s20.postimg.org/emblem_BLEO_1.png
블레오
킷 스폰서 V-EXX
워드 마크 파일:external/s20.postimg.org/SL_wordmark.png
홈페이지 파일:external/s20.postimg.org/SL_Hat.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png
공식 APP 파일:iOS11 AppStore icon - DB6.png | 파일:Google Play.png
★★★★★★★★
최종 우승 (8회)
파일:SL_1985_v1.png 파일:SL_2002_v2.png 파일:SL_2005_v3.png 파일:SL_2006_v4.png
1985년 2002년 2005년 2006년
파일:SL_2011_v5.png 파일:SL_2012_v6.png 파일:SL_2013_v7.png 파일:SL_2014_v8.png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17회)
단일 리그 2001년,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전·후기
리그
1982년 후기, 1984년 전기, 1985년 전·후기
1986년 전기, 1987년 전·후기
양대 리그 1999년 매직
아시아 시리즈 2011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최고 승률 .706
1985년 110경기 77승 32패 1무
최저 승률 .396
2017년 144경기 55승 84패 5무
최다 승 88승
2015년 144경기 88승 56패
최다 패 84패
2017년 144경기 55승 84패 5무
최다 관중 851,417명
2016년[10][11]
최소 관중 177,774명
1988년[12][13]
최고 FA 계약 4년 80억
2018년 강민호
}}}||

1. 개요
1.1. 구단 BI
2. 팀 특징
2.1. 팀 컬러2.2. 팀 운영 방식
2.2.1. 2000년대, 돈성시대2.2.2. 2010년대, 변화의 갈림길
2.3. 선수 대우
2.3.1. 삼성 출신 FA 이적 선수 징크스?2.3.2. 은퇴식
2.4. 우수한 선수 육성 및 재활 체계2.5. 왼손잡이2.6. 아마야구 지원과 리틀야구단2.7. 외국인 투수 잔혹사2.8. 홈구장2.9. 83 라인
3. 팀의 역사
3.1. 성적
3.1.1. 암흑기
3.2. 연표
3.2.1. 1980년대3.2.2. 1990년대3.2.3. 김응용 체제(2001~2004)3.2.4. 선동열 체제(2005~2010)3.2.5. 류중일 체제(2011~2016)3.2.6. 김한수 체제(2017~현재)
3.3. 관련 기록들
3.3.1. 역대 구단주3.3.2. 역대 사장(대표이사)3.3.3. 역대 단장3.3.4. 역대 감독3.3.5. 역대 팀 성적3.3.6. 역대 개인 성적
3.3.6.1. 통산3.3.6.2. 단일시즌
3.3.7.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3.3.8. 역대 주장3.3.9. 유니폼 변천사3.3.10. 역대 선수 명단3.3.11.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3.4. 팀 레전드
3.4.1. 영구결번3.4.2. 상징적 인물
4. 삼성 라이온즈의 팬
4.1. 팬 숫자4.2. 팬 성향4.3. 네임드 팬
5. 선수단/등번호6. 응원단
6.1. 응원가
7. 사건 사고8. 지역 연고 학교
8.1. 과거 지역 연고 학교
9. 라이벌 매치
9.1. 싸대기 매치9.2. 클래식 시리즈9.3. 재계 라이벌 시리즈
10. 특이 사항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1. 개요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대구광역시.

KBO 리그 원년부터 연고지, 팀명, 모기업이 바뀌지 않으며 현재까지 이어져온 유이한 팀 중[14] 하나이며 한국시리즈 우승 8회, 페넌트레이스 우승 17회 및 2010년대 초~중반 왕조로 군림하기도 했었던 전통의 명문팀이다.

모기업이 삼성그룹인 팀답게 KBO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0년도부터 KBO에서 메인 스폰서를 도입했는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증권,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삼성전자에서 메인 스폰서를 맡아왔다. 팀의 상징색은 파란색 & 빨강색-하늘색(연파란색, 1984년부터 1994년까지)[15]-파란색(1995년부터 2015년까지)[16]-파란색 & 빨강색(2016년부터). 팀의 마스코트는 블레오.

한때 삼성스포츠단 중 유일한 독립 법인으로서[17], 축구단을 제외한 다른 스포츠 팀들이 그룹 계열사의 부서 형태였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말대로 특정한 계열사가 독점하지 않고 지분을 각각 나눠 가지고 있었다.[18] CJ, 신세계까지 포함한 범 삼성가가 모두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셈.

2015년 삼성그룹의 스포츠단 운영 전략 변화의 일환으로 삼성 스포츠단은 국내 광고 및 마케팅업계 1위의 계열사인 제일기획 산하 자회사로 일괄 이전되었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의 운영비를 전액 지출하는 모기업이 아니며, 단지 운영을 전담으로 하는 것이고 구단의 운영비는 삼성 그룹의 전자나 물산등 다른 계열사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다.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 지분 67.5%(12만 9,000주)[19]를 6억 7천만원에 매입했고,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의 스포츠단으로 편입되었다. ##.

흔히 제일기획 산하로 이관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자금지원이 줄었다는 오해가 공공연한데 돈성 시절처럼 리그 내 넘사벽급으로 펑펑 써대진 못하지만 최근 3년간 FA계약 총액만 200억원 넘게 투자하고 있으며[20], 구단 운영비도 10구단 중 다섯번째로 많이 지출하고 있다.## 다만 성적은 이관 이후 역대급으로 추락하여 자조적으로 제일 블루 떼걸룩스로 재창단했다고 푸념중이다..

1.1. 구단 BI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 BI 변천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파일:samsung_lions_logo_1995.png파일:SL_emblem.png
1982~19891990~1994[21]1995~20072008~

2. 팀 특징

2.1. 팀 컬러

4대 구기 종목 감독들이 뽑은 최고의 팀
전통적인 팀 컬러는 백수의 왕 사자라는 이미지답게 공격적이고 힘이 넘치는, 화려한 야수진을 앞세운 공격 야구로[22] 강건한 수비력 그리고 강속구를 던지는 에이스 투수, 이것이 삼성 라이온즈의 이미지였다.

한창 삼성이 잘 나갈 때의 클린업트리오 사기타선은 두 형태였다. 1980년대 중반의 삼성 타선은 어떤 교타자가 안타를 치든 볼넷을 골라나가든 어떻게든 누상에만 나가면 4번타자가 나와서 홈런을 뻥 쳐버리고 그 뒤에 나오는 세 명의 타자 중 한 명은 연이어 반드시 장타를 쳐버리는 그런 형태였다.[23]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은 이마양이라는 이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이 정리된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강력한 투고타저와 이승엽의 해외진출, 선동열 감독의 투수중심 운용으로 인해 지키는 야구라는 게 팀컬러가 되기도.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주루를 많이 신경쓰지 않았던 팀이기도 하다. 엄청난 타선의 파괴력으로 인해 도루를 안 해도 되었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클린업 양준혁이 193도루로 팀 통산 도루 1위를 하고, 이전까지의 리드오프였던 류중일이나 박한이는 치는 건 좋았지만 달리기는... 확실히 삼성은 달리는 팀과는 이미지가 멀었다. 오죽하면 첫 도루왕이 창단 32년 만인 2014년에 나왔을까. 단 80년대 초중반까지는 이해창 등의 나름 빠른 리드오프는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류중일 감독 시기 들어 타선에 체질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뛴다는 이미지가 생기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선동열 감독 시절에는 강력한 불펜과 마무리 투수를 통해 승리하는 팀이 되었다. 대신 타선은 전체적인 리빌딩이 가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타선으로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긴 했지만. 몇몇 삼성 올드 팬들은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예전부터 고수해 왔던 뻥 야구 스타일에서 벗어나 뻥 야구도 철벽 투수진도 아닌 어정쩡한 팀이 되었다며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투수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KBO 최고 수준이고, 야수들 수비력도 수준급이다. 다만 윤성환이나 장원삼 등 준수한 1선발급 선수들도 있긴 했지만, 류현진같이 리그를 씹어먹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둘 모두 큰 기복 없이 꾸준히 성적을 올리는 스타일. 뭐 게다가 당시 타선도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양준혁심정수 등이 포진했던 타선은 투고타저가 극심했던 데다 대부분의 팀들이 투수진에만 집중하느라 타선이 뭔가 모자랐던 당시 리그에선 정상급이었다.

어쨌든, 이후 2011년 유격수 출신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면서 배영섭, 박해민, 구자욱 같은 유망주가 발굴되고 최형우, 박석민 등 새로운 주포들의 각성으로 공격 야구가 다시 살아나며 2011년 정규 시즌, 한국 시리즈, 아시아 시리즈를 모두 우승, 국내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2012년에는 이승엽까지 일본에서 복귀하며 타선이 더욱 강화되었고, 2014년에는 비록 역대급의 타고투저의 흐름을 타긴 했으나 1987년에 삼성이 세운 팀타율 0.300을 뛰어넘는 0.301의 팀타율 신기록을 세웠다. 2015년에는 0.302로 더 높였다. 팀 타율이 3할을 넘어간 것은 한국프로야구 개막 이래로 2016년까지는 삼성 라이온즈가 유일했다. 여담으로 2015년 넥센(현재 키움)이 팀타율 3할에 도전했는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삼성이 9이닝 1피안타로 넥센 타선을 잠재우며 몸소 2할대로 떨어트려줬다.

그런데 2017시즌 KIA 타이거즈가 시즌 전 FA로 영입한 최형우와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안치홍, 김선빈 등 주축 타자들의 복귀 등 호재가 겹쳐 삼성 라이온즈에 이어서 두번째 시즌 팀타율 3할 달성 구단이 되었는데 삼성의 2015년 팀 타율 .302와 동률을 이뤘다. 물론 팀타율 3할을 세 번이나 기록한 삼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또, 왕조시절엔 선발투수진 만큼은 막강했던 팀이다. 2013 시즌 윤성환, 배영수, 장원삼, 차우찬이라는 토종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하였고, 외국인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 좀 더 분발했다면 5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외국인 선발까지 포함해 2014 시즌은 준수한 선발자원인 차우찬이 본의 아니게 롱 릴리프로 전업을 하게 되었을 정도, 또한 2011~2013년까지의 불펜진은 가히 KBO 최강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 홀드왕 한현희와 구원왕 손승락이 있었던 넥센(현재 키움)도 볼 만하지만(넥센은 선발진이 안 좋다.) 2012년 5월 24일 대구 롯데전부터 7회까지 리드한 경기서 단 1패도 없이 무려 130연승을 내달렸다. 2012년 58경기, 2013년 62경기, 그리고 2014년 10경기를 더해 ‘130연승’을 채웠다. 안정권KO라 불리는 전통의 불펜진에, 정현욱과 오승환이 떠나고 2014년 팀 투수진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5선발 전원이 100이닝을 소화했으며, 그 부진하다던 투수들의 호투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제패했다. 이 정도면 이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원조 투수왕국을 넘어선 新 투수왕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2015년 형체없는 도박루머가 퍼지며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제외되며서 급격히 하락세가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윤성환과 안지만은 무혐의, 임창용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안지만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도박이 아니라 토토 사이트 개설에 돈을 빌려준 부분이다. 이 사건 이후 2016년 용병은 죽을 쒔고 선발진 불펜진 상관없이 죄다 붕괴되었다. 2017년도 마찬가지로 투수진은 붕괴되었다. 2018년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외국인 투수 구성과 빈약한 토종 선발진 때문에 윤성환에게 부담이 쏠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삼성에 정말 오랜만에 혜성처럼 나타난 고졸 신인 투수 양창섭의 활약에 따라 투수왕국의 재건이냐 또는 재건의 실패냐가 갈릴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리고 2018년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가 투수진을 재건하고 백정현의 2년 연속 선발활약 + 최채흥의 등장 + 최충연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 불펜 WAR 1위, 100K라는 성과를 거두면서 삼성의 투수왕국 부활이 가시화되고 있다.

2.2. 팀 운영 방식

전체적으로 부유한 이미지의 팀이다. 또한 전력 자체는 좋지만 구단 운영은 삼성그룹 고위층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팀이다. 현재는 팬들의 힘이 세진 데다 프런트 내부의 지속적인 반성을 통해 선수들에게 연봉 높고 대우 잘해 주는 대인배 이미지의 좋은 팀이 됐지만 옛날엔 비싸게 사와서 쓰다 버리는 전형적인 삼성식 운영으로 그야 말로 악명높았다.[24] 대표적인 예로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 등 한국 야구의 전설이자 팀 프랜차이저들을 매몰차게 내친 것은 유명하며[25] 원년부터 활동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은퇴식을 치뤄 준 선수가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 양준혁, 이승엽 일곱밖에 없다는 것[26] 자체가 선수들을 어떻게 생각해 왔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2002년 V2 이후로부터는 팬덤과 팀 내에서 만연했던 우승제일주의가 충족되면서 저런 행보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 우승 이후 프런트는 기존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대우를 개선하는 데 힘을 기울여서, 2003년에는 뒤늦게나마 이만수를 영구결번 시켜주기도 하고,[27] 최근에는 레전드들을 코치로 기용하는 등의 행보도 보이고 있다. 은퇴식도 신경써서 치뤄주는 건 덤. 그러다 2015년을 기점으로 다시 그 악명 높던 삼성식 운영이 스물스물 돌아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기사이런 글이 올라올 정도로 도박사건에 대한 부실한 대응, 팀프랜차이즈 박해, 용병 계약과 관련해 악의적인 언플등 모든 팬들이 80-90년 악명높던 프런트가 돌아왔다며 분노하는중. 그리고 2016년 류중일 감독의 재계약건등을 보면 아직까지는 팬들의 목소리보단 삼성그룹 고위층의 입김이 구단 운용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보여지고 있다.

김응용 감독 시절까지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선수 영입으로 한국 야구계의 뉴욕 양키스 같은 올스타 팀 이미지였는데,[28]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선수 영입을 자제하여 그 이미지가 희석되었다. 가장 큰 계기는 2004년 우승 팀 현대에서 FA로 풀린 심정수와 박진만을 각각 4년 최대 60억, 4년 최대 39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29]으로 영입하여 05년 우승을 이룬 이후, '그렇게 돈 써서 우승 못하는 팀이 어디 있냐'는 말에 기분 상한 선동열 감독이 FA 영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이후 류중일 감독이 취임을 하고 6년을 팀을 이끌동안 FA 영입은 한 명도 없었다. FA 영입은 커녕 프런트는 '합리'를 외치며 집토끼 마저 잡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해외진출을 한 오승환을 비롯하여 타 팀으로 이적한 차우찬, 박석민, 권혁, 최형우, 배영수 등 선수 유출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취임 후 2011~2014 4년 연속 통합 우승, 2011~2015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거뒀지만 2016년 구단 최악의 성적인 9위로 추락하고 만다.

구단 프런트는 성적 부진의 이유인지 합리의 기조인지 몰라도 6년동안 5번의 정규시즌 우승, 4번의 통합 우승을 달성한 류중일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초짜 김한수 감독을 선임한다. 그리고 저비용 고효율 정책 폐기를 선언하더니 폭풍같은 FA 영입을 시작했다. 2017년 시즌을 앞두고 우규민과 이원석을 데리고 왔으며, 2018시즌을 앞두고 강민호를 영입한다. 롯데와 한화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삼성도 근래 FA에 돈을 안 쓴 건 아니다.

2.2.1. 2000년대, 돈성시대

2002년 전까지 계속된 한국 시리즈 우승 실패[30]로 인해, 외환 위기 이후에는 타 구단들의 경영난을 틈타 무지막지한 자금력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현대 유니콘스와 함께 야구계를 돈으로 양분하기도 했었다.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임창용조계현(해태), 김기태김현욱(쌍방울)을 비롯해 2000년 FA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강철(해태)과 김동수(LG)를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양준혁(LG)를 재영입 2004년에는 박종호(현대)를, 2005년에는 가장 임팩트가 큰 박진만심정수(현대)를 FA로 영입했다. 이외에 해태에서 방출된 이순철을 영입하거나 선수협 파동으로 소속 팀과 갈등을 빚은 마해영을 트레이드해 데려오는 등, 한동안은 우승만을 위해서 외부 자원들을 마구 영입하기도 했다.

이렇듯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전까지는 임팩트가 있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31] 분명 삼성의 공식 첫 우승은 1985년임에도, 삼성이 콩라인을 탈출한 건 김응용 감독이 온 후 2002년 한국 시리즈 우승으로 알고 있는 야구 팬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삼성 구단과 선수, 팬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한국시리즈 우승 뒤에야 85년 우승 기록도 자신있게 우승 기록으로 얘기하게 된다. 또한 다른 팀이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투자를 많이 하는 탓에 돈성, 돈성 타이콘츠[32]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나마 삼성이 돈성의 오명을 벗은 것은 김재박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 '돈으로 누가 우승 못 해'라며 삼성을 향해 디스를 걸었고[33] 이 말을 듣고 빡친 선동열 감독이 FA 영입을 자제한 이후부터이다. 사실 박진만과 심정수 영입 후, 2009 시즌 개막 전 장원삼(히어로즈) 30억 현금 트레이드설 전이나 그 이후 타 팀에서 큰 돈을 들여가며 데려온 선수는 없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KIA의 손지환, 한화의 심광호 정도. 김재박 감독의 발언 후 2009년에도 처음으로 데려온 선수가 트레이드로 영입한 두산 베어스채상병. 이 경우는 좌완 투수 지승민과의 1:1 트레이드였으니 돈과는 상관없다. 그리고 심광호채상병의 트레이드 역시 진갑용현재윤의 부상만 아니었으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트레이드였다.[34]

김재박 감독의 발언 후 자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투타 라인을 리빌딩하면서 돈성 오명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나 2008년 11월 14일, 히어로즈장원삼을 30억에 지르며 돈성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 다른 6개 구단의 반발로 인해 트레이드 승인 불가를 받아 장원삼을 돌려보냈지만, 1년 후에 결국 영입했다.

선동열 감독도 FA 영입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2010년 거포 FA 김태균도 영입하려 했으나 엔화에 밀려 실패했다.

하여간 이런 인터뷰가 개그 소재가 될 정도로 삼성의 머니 파워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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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KBS '미디어 포커스'에서의 전화 인터뷰 장면 캡쳐. 여담이지만 이 당시 프로그램에서는 케이블 스포츠 채널 3사에서 삼성 경기의 중복 중계가 심각함을 제시했고, 스포츠 방송사들은 삼성 구단과의 계약(= 몇 경기 이상 중계하는 조건으로 돈 얼마를 받는 조건) 때문이라 주장했다. 이 장면은 그에 대한 반박[35]. 이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중복 중계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지금처럼 한 경기당 하나의 채널이 확보되지도 않은 환경이었고 당시 신생 채널이었던 엑스포츠는 MLB만 중계하던 상황에서 삼성 경기 중계율은 100%를 초과했고 다른 팀들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상대적 비인기 구단인 현대, SK(당시 중계율 7, 8위)가 많이 중계되지 못했다.

2.2.2. 2010년대, 변화의 갈림길

그러나 선동열, 류중일 감독 시절에는 정말로 외부 FA 영입에 돈을 거의 쓰지 않아서 팬들이 이제 돈성 소리 들어도 좋으니 제발 돈 좀 쓰라고 하는 지경에 다달았다. 2016년 기준으로 외부 FA를 12년째 잡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13년 우승 이후엔 단장 송삼봉이 '50억이면 2군에 투자할 수 있는데 외부 FA를 왜 영입함?', '그 돈이면 특급 외국인 하나 데려오고 FA 하나 나가면 젊은 애들 1군에서 육성할 수 있음'이라는 개드립(...)을 친 덕에[36] 팬들마저 '우리는 더 이상 돈성이 아니라 거지성이다'라고 자조할 지경.

뭐 사실 이렇게 엄살(?)을 부려도 내부 FA는 잘 잡았다. 장원삼을 4년 60억 원에 잡았고 박한이를 4년 28억 원에 잡았으니... 정현욱이 떠나긴 했지만, 이 경우에는 떠나기 전후의 성적으로 미뤄봤을 때 삼성이 놓쳤다기보다 오버페이하기 싫어 놔준 것에 가깝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집토끼는 모두 단속해냈다는 이야기. 또한 2014년 핵심 전력이였던 윤성환안지만을 각각 4년 80억, 4년 60억으로 잡고 내야 유틸리티인 조동찬을 4년 28억에 붙잡았다. 그러나 배영수권혁을 내보냈는데 권혁은 본인이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스스로 떠났으며 배영수는 정현욱 때와 같이 굳이 오버페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놔준 것이다.

사실, 프로야구 구단은 만년 적자 사업이기 때문에 윗선의 눈치를 봐야 하고, 편성된 예산을 넘겨서 쓰기가 어려운데 FA에다 돈을 쓰면 기존 선수들에게 돌아갈 자금이 줄어들어 연봉이 깎이거나 하기 십상이기에 삼성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내부 FA를 놓치면서 육성 드립을 쳤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잡을 FA는 다 잡았고, 외부 영입 없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에 겆성이라는 얘기는 좀 더 전력 보강을 원하는 팬들의 아쉬움이 섞인 한탄이다.[37] 류현진의 포스팅비로 지갑이 두둑했던 한화 이글스나 신생팀인 NC 다이노스는 그렇다 치고, 2013년 FA 대란 때 외부 FA를 영입한 구단은 연봉 협상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외부 FA에 휘말리지 않고 내부 FA를 알뜰하게 잘 잡는 삼성이 진정한 승리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5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석민[38]을 놓치고, 2014~2015년 최고의 활약을 펼쳐준 효자 용병 야마이코 나바로도 놓치고, 단장이 '외부 FA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더욱이 2016년 리그 최고 타자이자 팀의 간판 타자인 최형우를 KIA에게, 거기다 좌완 에이스 차우찬까지 LG에게 뺏기자 팬들 사이에서도 '거지성'이라는 용어는 이미 일반화되버린지 오래이다. 게다가 그 내막으로 삼성 라이온즈가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위가 아닌 제일기획 산하로 이동한다. 이 경우는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그룹의 지원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사실은, 예전부터 이미 줄어들고 있었다고 한다. 2018년에는 선수단 운영비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2015년 423억원이었던 선수단 운영비가 2018년 267억원까지 줄었다.기사

아버지와 달리 이재용 부회장은 프로구단이 흑자를 내지 못해 수백 억씩 지원받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인 만큼 삼성이 이전만큼의 자금 동원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자주 야구장을 찾는 야구광이기에 아버지에 준하는 자금 지금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가 거대 명문 구단의 지위를 이어갈 것이라 기대했던 많은 팬들은 이윤 추구로의 급격한 전환, 익숙하지 않은 긴축 운영에 격렬한 배신감을 느끼며 프런트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결국, 공식적으로 2016년 1월 1일부로 삼성 라이온즈제일기획 산하 계열사 삼성스포츠단으로 편입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제일기획 매각설이 돌면서 산하 스포츠단들조 같이 매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었지만, 제일기획의 프랑스 매각이 무산되면서 삼성 라이온즈 또한 삼성 소속 구단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최근 뉴스 기사들로 미루어 보건대 삼성 프런트에서도 SK나 넥센과 같은 광고 및 마케팅을 통한 수익 창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2016 시즌이 끝나고는 각각 27억, 65억에 이원석과 우규민을 FA로 데려왔고[39] 2017 시즌 후 FA 대어 강민호를 80억에 사오는 등 다시 돈성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한 행보를 걷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구단주로 있었던 이수빈 회장이 물러나고 신임 구단주 및 대표이사로 임대기 사장이 취임했다. 고무적인 점은 김동환 사장은 삼성내에서 부사장급 직급이였는데, 임대기 사장이 취임하면서 다시 삼성 라이온즈 사장의 직급이 사장급으로 올라갔다.

2.3. 선수 대우

원년부터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그만큼 레전드 급의 선수들도 많이 나왔다. 이 부분은 아래 삼성 라이온즈/역대 선수와 같이 보면 좋다.

삼성답게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이 직원들과 유사하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높고[40] 신인 선수들에 대한 계약금과 연봉에도 후한 편이다. 매년 팀 성적이 상위권이다 보니 뛰어난 선수를 뽑기 어려워 상위 라운드 지명자의 계약금은 타 팀과 비슷하거나 적을 때도 있지만, 4라운드부터는 타 팀 지명자보다 계약금을 좀 더 주는 편이다. 2010년 선수들 최저 연봉이 2천만 원에서 2천 4백만 원으로 오르자, 신고선수들 연봉도 똑같이 2천 4백만 원으로 올렸다. 타 팀의 경우엔 신고 선수라고 그들의 연봉을 최저 연봉보다 더 적게 주는 경우가 제법 되며 여러가지로 국내 구단 중 대우가 가장 좋은 곳이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칼같이 정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41] 팬들의 목소리와 참여도가 커진 2000년 이후엔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 삼성은 그 어떤 프랜차이즈 스타라도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내치기로 유명했다. 또한 선수협 창단 때는 김기태를 앞세워 선수단 전원을 불참시켰고, 2009년 선수 노조 창단 때에도 삼성 그룹의 무노조 원칙 때문인지 선수들을 전원 불참시켰다. 이와 같은 현상은 LG 트윈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한때 숙적이라 할 수 있던 해태에서 온 김응용 감독이 선수 대우를 개선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이다.[42][43]는 것이다. 또한 일부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타 팀과 마찬가지로 은퇴한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위주로 코치로 전향시키면서도 높게 대우해 주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은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면서 은퇴식까지 치른 후 현재 삼성의 감독이나 코치직을 역임하고 있었거나 역임하고 있다. 류중일이 감독으로 취임한 뒤 이승엽, 임창용 등 해외로 진출했던 레전드 스타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삼성의 레전드 잔혹사는 일단 끝이 났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그동안 삼성 구단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던 이만수가 시포를 맡은 것은 삼성의 레전드 대우 개선을 상징하는 사례로 꼽힌다.

2.3.1. 삼성 출신 FA 이적 선수 징크스?

유난히 삼성 출신에 타팀으로 이적한 FA 선수가 먹튀로 변질되는 경우가 잦다. FA 특성 상 노쇠화의 위험이 있다지만, 첫 번째 FA인데 먹튀로 변질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선수들의 공통점은 FA 협상이 가능한 시즌부터 뭔가 조짐이 있었다.

* 마해영 : 2004년 4년 28억 KIA행
- 2003년에 개인 최다 홈런-타점 기록을 세우며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성적을 냈으나 이마양 트리오에 가려져 있을 뿐, 그해 6월에는 안타도 거의 치지 못하고 시즌 막판에는 하위타선으로 떨어지는 등 조금씩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 2004년에 잠시 숨고르고, 2005년에는 난 아직 안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정환 감독과의 갈등 때문에 벤치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2005시즌 끝나고 LG로 가더니...
* 정현욱 : 2013년 4년 28.6억 LG행
- 2012년 구위 하락으로 필승조에서 밀려났다.
- 2013 시즌 전반기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활동했으나, 후반기부터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계속되는 성적 하락에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위암까지 얻어 전성기 때에 단련된 근육을 모두 잃고 몸이 야위어졌다. 이후 2016년 돌아왔으나 재기에 실패하고 은퇴후 코치로 삼성에 복귀.
* 배영수 : 2015년 3년 21억 한화행
- 2014년에는 두들겨 맞아가며 8승. 꼭 강판 전에 시원하게 얻어맞고 내려갔다.
- 2014 시즌 후 선발 기회를 찾아서 한화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속되는 퀵후크[44]에 시달렸고, 그렇다고 성적도 좋은 건 아니라서 한화팬들에게서 환불 요청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2016 시즌에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5월 20일 재활 등판의 최고구속은 겨우 131km/h. 그래도 다음 시즌 128이닝을 소화하며 그나마 선발진에서 제 역할을 해주었다. 타팀이었다면 5선발 수준이었겠지만, 선발진이 망가진 한화라서 팀내 최다이닝 소화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건 2015년까지의 이야기. 팀이 작살이 난 2016년부터는 박석민, 차우찬, 최형우 등 삼성 출신 FA 선수들은 이적한 팀의 중핵으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삼성 구단은 보상선수 집어오는 안목도 시원찮아 FA 영입 구단이 여러모로 이득. 이는 그전까지 잡지 않은 FA들이 잡은 선수들인 것에 비해, 이후 떠나보낸 FA들은 정말로 잡은 선수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세 선수조차 2018년 부진하는데...
  • 박석민 : 2016년 4년 96억 NC행
    -2016년 3-30-100을 달성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2017년부터 부진하고 있고 고질적인 부상문제까지 겹쳐 먹튀 소리를 듣고 있다. [45]
  • 차우찬 : 2017년 4년 95억 LG행
    -2017년에는 매우 잘 던졌으나 2018년 홈을 제외하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 최형우 : 2017년 4년 100억 KIA행
    -2017년 전반기는 이맛현, 9월부터는 국밥. 2018년 전반기에는 100억이 아깝다는 소릴 들었으나 후반기에 성적을 끌어올려 다시 이맛현으로 돌아왔다.

2.3.2. 은퇴식

원년부터 출발하여 샛별 같은 대 스타들을 보유했지만 은퇴식을 치뤄 준 선수는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 양준혁, 이승엽 등 7명뿐이다.[46] 은퇴 경기는 2010년 9월 19일 양준혁이 최초로 은퇴 경기를 가졌다. 2017년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끝내는 이승엽양준혁 이후 7년 만에 삼성 소속으로 은퇴식을 치렀다. 양준혁도 걸출한 슈퍼스타였지만 이승엽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아는 국민스타인 만큼 역대 은퇴식 중 가장 화려하게 치러졌다.
삼성 라이온즈 역대 은퇴식
이름 활약 기간[47] 날짜 비고
류중일 1987년 ~ 1999년 2000년 8월 5일 최초의 은퇴식
김현욱 1993년 ~ 1995년, 1999년 ~ 2005년 2005년 6월 2일
김한수 1994년 ~ 2007년 2008년 3월 30일
전병호 1996년 ~ 2008년 2009년 4월 5일
김재걸 1995년 ~ 2009년 2010년 4월 10일
양준혁 1993년 ~ 1998년, 2002년 ~ 2010년 2010년 9월 19일 영구결번
이승엽 1995년 ~ 2002년, 2012년 ~ 2017년 2017년 10월 3일 영구결번

2.4. 우수한 선수 육성 및 재활 체계

삼성 라이온즈는 타 팀에서 가장 부러워할 만한 선수 육성 체계와 재활 시설을 갖추고 있다. KBO리그 최초의 단일구단 전용 훈련장인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와 용인에 있는 삼성 트레이닝 센터[48]가 그것. 그러나 이것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1984년 삼성 라이온즈는 신인 육성 및 원활한 선수 수급을 위해, OB 베어스에 이어 두 번째로 2군을 창설했다. 고졸 연습생들을 영입해 2군을 만든 OB와 달리, 삼성은 코칭 스태프까지 따로 영입하며 2군 체제를 확립시켰다. 1987년에는 현재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경산 볼파크)의 모태인 경산 훈련장이 완공되었고, 1990년대에는 2군 선수들을 일본 추계 훈련이나 미국 교육 리그에 보내는 등 선수 육성에 힘써 왔다. 특히 1995년 시즌 후에는 2군 선수단 전원이 미국 교육 리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로 2군 리그에서 남부 리그 5년 연속(1994~1998)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외환 위기2군 투자가 줄었고 결정적으로 매년 한국 시리즈 우승에 실패하면서, 성공 여부가 미지수인 신인 육성보다는 성적이 보장된 외부 선수 영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돈성'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외부 선수 영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삼성이 오랜 기간 2군에 투자해 왔다는 사실은 묻혔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한국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선수 발굴과 육성 필요성을 느끼면서 다시 2군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배영섭이나 최형우 등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우수한 활약을 펼쳐 주면서[49] 화수분 야구라 불리는 두산 베어스와 함께 우수한 선수 육성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김해에 상동 야구장을 짓는 등 2군 육성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사례로 꼽힌다.

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3군을 신설하여 무한 경쟁 체제를 갖추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2012년 8월 포항 야구장의 완공 이후 향후 2군 선수단 이름 자체를 포항 삼성 라이온즈로 변경하며 모든 2군 경기를 포항에서 가질 계획을 세웠다. 이리하여 1군(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2군(포항 야구장) - 3군 및 잔류·재활군(경산 야구장)으로 이어지는 육성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고 그 뒤 노후화된 경산 야구장 대신 청도군에 500억 원을 들여 2군 훈련장 및 클럽하우스를 신축하고 이후에 2군을 경산시에서 청도군으로 변경할 계획이였으나 잠정 중단 되었고 청도의 2군 신축구장 부지도 처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9개 구단이 2군에 투자를 점차 늘리고 새 2군 신구장을 건설하고 있으나 유독 삼성만 1군과 함께 2군의 투자를 대폭 줄이면서 한때 가장 좋은 2군구장을 보유하던 팀에서 가장 질 낮은 구장을 보유한 팀으로 바뀌었다. 많은 팬들은 자생을 하려면 좋은 2군구장과 2군에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것도 전혀 없어 답답해 하는 상황이다.

2.5. 왼손잡이

LG 트윈스 보다 훨씬 뛰어난 왼손잡이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특히 왼손잡이 타자의 경우 독보적이다. 이에 삼성 팬들은 이를 좌타대두라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당장 1983년에 입단하여 삼성 초창기 최고의 교타자로 활약했던 장효조를 시작으로 1993년에 입단하여 은퇴까지 삼성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양준혁, 그리고 좌완 투수로 입단했다가 타자로 전향한 뒤 현역 최고의 슬러거가 된 이승엽이 있다. 또한 입단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약하여 양준혁에 이어 동률인 KBO 역대 두번째 16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며 외야 한 자리를 지키는 박한이, 삼성 왕조시절 4번을 항상 책임졌던 최형우, 한 때는 채럼버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으나 2013, 2014, 2015 정규시즌 3연패와 한국시리즈 2연패에 혁혁한 공을 세운 채태인 등이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5년에 등장하여 지금도 항상 라인업에서 빠지지 않는 구자욱도 있다. 반대로 초창기에는 이만수, 김성래, 강기웅으로 이어졌던 뛰어난 오른손잡이 타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박석민아랫동네로 이적한 이후 삼성의 뛰어난 오른손 타자는 사실상 전멸한 상황이다.[50]

반대로 왼손잡이 투수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오히려 창단 초창기에 이선희와 프로 최초 100세이브를 달성한 권영호 등 뛰어난 좌완들이 많았던 편이지만 성준 이래로 삼성은 왼손투수 갈증에 늘 시달렸다. 성준이 삼성 역대 좌완투수 중 가장 많은 승수(97승)를 올렸지만 구위보다는 제구 위주의 기교파 투수였고, 그나마 성준 이후 장원삼이 삼성으로 트레이드로 오기 전까지는 김태한, 전병호 정도가 활약한 것이 유일했다. 그나마 1990년대 삼성 투수 트리오 중에 김태한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그나마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마구 굴린 탓에 조로한 경향이 있으며, 롱런한 전병호도 흑마구로 대표되는 기교파 투수였다. 지금은 넥센에서 트레이드된 장원삼이 삼성의 전통인 좌완 기교파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삼성의 경우 유독 좌완 스터프형 투수보다는 좌완 기교파 투수들로 계보가 이어져 왔는데, 2017년 시점에서 좌완 스터프형 투수로는 백정현 정도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는 차우찬도 스터프형 투수로 있었는데, 서울로 상경했다.

2.6. 아마야구 지원과 리틀야구단

대체적으로 암울했던 2000년대 대구·경북 팜에 대해 삼성 구단이 아마야구 지원에 인색했던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응용이 삼성 사장으로 있는 동안 모교 개성고 야구부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침체에 빠진 모교 지원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사이 연고지의 경주고 야구부와 구미전자공고 야구부가 해체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연고지 야구부의 해체를 온전히 삼성 측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구단의 지원 못지 않게 학교 차원에서의 야구부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경주고는 타 학교에 비해 학교 차원의 지원이 부족했었고[51], 구미전자공고의 경우에는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불가피하게 야구부를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연고지 고교야구부 해체에 후술할 삼성기 대회 폐지나 리틀야구단 해체 등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아마야구 지원에 대해 소홀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삼성이 그 이전에도 아마야구 지원에 손을 놓고 있었던 아니고 실제로 1990년대에는 아마야구 지원을 했었다. 1992년부터 유소년 및 고교야구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구·경북 지역 초중교를 대상으로 한 삼성기 대회를 열었다. 삼성기는 1993년에는 고교까지 참가하는 대회로 확장했다가 IMF 사태로 축소됐다. 그 여파로 2000년에는 대회를 열지 않았고, 200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가 2011년부터 초중교를 대상으로 다시 부활했다. 2014년부터는 삼성의 1차 지명 대상지로 확장된 강원 영동 지역 초중교도 참가한다. 2011년 별세한 장효조 2군 감독을 기리기 위해 2012년 대회부터 타격 1,2위 선수들에게 주는 상을 '장효조 타격상'으로 명명했다.

1990년에는 프로구단으로는 최초로 구단에서 운영하는 리틀야구단을 만들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전부터 진행해 온 어린이 여름야구교실이 큰 인기를 끌어 아예 리틀야구단을 만들어 야구에 소질이 있으나 소속 학교에 야구부가 없어 선수가 될 기회가 없는 유소년 유망주들을 조기에 발굴·육성해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보내든지, 중학교로 진학시켜 야구선수로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이 리틀야구단을 만들기 전에는 대구 지역에는 리틀야구단이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대구 지역에도 하나둘 리틀야구단이 생겨났다. 당시 스카우트를 맡으며 현장에서 멀어졌던 장효조가 명예 감독으로 있었고, 이밖에도 선수 출신 구단 직원들이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정신적인 성장을 목표로 두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 전국 규모의 큰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둔 적은 없지만 현재 나무위키에 등록된 전현직 프로선수 중 강영식, 김인태, 손형준, 용덕한, 우동균, 유선정, 이상민, 이상호, 이정호, 임현준, 정병곤, 최민구 등 12명이 삼성 리틀야구단 출신이다. 이밖에 과거 고양 원더스 소속으로 청각장애인 프로야구선수를 꿈꿨던 박병우도 삼성 리틀 출신.

이렇듯 리틀야구단을 통해 프로선수가 된 사례도 여럿 있었으나, 리틀야구단이 활성화되면서 다른 리틀야구단과의 지원에 대한 형평성을 두고 학부모들간 갈등이 조장되자 2008년을 끝으로 구단이 리틀야구단 운영을 포기했고, 2009년부터는 라이온즈 이름을 계승한 리틀야구단이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다.

2.7. 외국인 투수 잔혹사

외인 투수들의 무덤

한화 이글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용병 투수들의 성적이 암울하다. 모두들 삼성에서 왜 외국인 스카우트를 갈아치우지 않는 지 궁금해할 정도. 특히 2016~2017 시즌간 뛴 선수들은 웹스터 4승, 벨레스터 0승, 레온 0승, 플란데 2승, 그리고 페트릭 3승, 레나도 2승으로 두 시즌동안의 모든 용병 투수들이 쌓은 승수가 겨우 11승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설명하는 선수들 외에도 톰 션, 카리대 등의 선수나, 온갖 말썽을 일으켰던 갈베스[52] 있었다. 그래도 왕조시절의 밴덴헐크, 피가로는 에이스의 몫을 다해줬고, 탈보트, 고든, J.D. 마틴, 클로이드 정도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고든은 SK에서 1년 뛴 선수 재활용이어서 삼성 외국인 스카우트 능력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다. 마틴은 넥센한테 호구 잡히긴 했지만 무난했고, 탈보트는 다음 시즌 한화로 가긴 했지만 어쨌든 1시즌 잘해줬다. 클로이드는 나름 이닝 먹어주긴 했는데 외국인 용병이 4~5선발급 수준이었다는게 함정.

무엇보다 팀 역사적으로도 3년 이상 활약해준 용병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외국인 에이스 갈증을 풀어준 밴델헐크 조차 2014년 시즌이 끝나고 2년 만에 소프트뱅크로 이적해버렸다. 1999년 외국인 용병제가 실시된 이후 약 20년 동안 특급 에이스급이 아니어도 선발 로테이션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며 여러 해 활약해준 외국인 투수가 외국인 투수 운이 없기로 유명한 한화와 2015년 1군 리그에 진입한 kt를 제외하면 타팀에는 1명 정도는 있어왔다. 바티스타는 시즌 중 퇴출된 페레즈를 대신하여 영입되었으며, 2016년 후반기 넥센에서 방출된 뒤 kt로 재영입된 피어밴드는 안타깝게 2018년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에 실패하며 3시즌을 온전히 채우지는 못했다. 즉, 삼성은 최근동안 꾸준히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과 1군에 진입한 지 10년도 안 된 팀과 함께 KBO에서 3년 이상 활약한 외국인 투수가 한 명도 없는 팀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다음은 각 팀별 역대 한 팀에서 3년 이상 활약한 투수들이다. 
외국인 타자들의 경우엔 투수의 경우와는 달리, 찰스 스미스, 훌리오 프랑코, 매니 마르티네스, 틸슨 브리또, 야마이코 나바로, 다린 러프 등 준수하게 뽑아오는 편이다. 하지만 외국인 타자에서도 역시 다년간 활약한 선수가 다린 러프를 빼면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삼성 구단 자체가 외국인 프렌차이즈와는 거리가 멀었던 팀이었음을 증명해주는 셈.

정확하게 외국인 투수들을 잘 뽑지 못했던 것은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았던 이문한이 2008년 즈음에 그만두면서 외국인 선수 통역을 맡았던 이충무가 대신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게 된 후부터다. 이충무는 미국의 한 에이전트 사에서 한국과 일본 프로구단의 외국인 선수 계약 및 스카우트 업무를 맡아왔고, 추신수의 에이전트로도 일하기도 했다. 그러한 이충무의 경력 탓에 삼성이 그에게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였으나 이충무는 원래 스포츠 마케팅이 전공이라 현장과는 거리가 있어 스카우트로서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 결국 삼성에 외국인 잔혹사만 선사한 이충무는 2013년 중반 kt 위즈로 옮겨가면서 외국인 잔혹사는 막을 내리나 싶었으나, 전병호카리대를 데려오면서 제대로 폭망했지만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 2016년을 왕조시대가 저물고 팀이 암흑기로 접어들면서 외국인 잔혹사는 다시 그 명맥을 이어가고야 만다. 그리고 2018년에는 드디어 조금이나마 사람 구실을 하는 용병 투수를 데려왔다. 아니, 이전 두 시즌에 비하면 완전히 환골탈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8년 삼성의 외국인 투수 조합인 아델만 - 보니야 조합은 역대 삼성 단일 시즌 용병 투수 이닝 소화 1위를 기록했으며, 아델만 보니야 각각 한 명의 승수가 2016년 2017년 각 해의 외국인 투수 총 승수보다 더 많다. 한마디로 저 조합이 삼성 최근 외국인 투수의 2년치 승수를 뽑아준 셈. 그만큼 삼성의 외국인 투수 성적이 처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8. 홈구장


유일하게 제1홈구장 제2홈구장 모두 2010년대에 지은 구장을 쓰는 구단이다. 자세한 구장의 내용은 각 문서 참조.

2.9. 83 라인

83라인은 1983년 태생의 삼성라이온즈 선수들을 말하는 말로, 삼성 왕조의 주축이었던 세대를 뜻한다. 삼성왕조 시절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삼성라이온즈의 최대 동기라인이었다. 멤버로는 대표적으로 삼성왕조의 4번타자였던 최형우가 있다.[55] 또한 내야 유틸리티맨으로 활약했던 조동찬도 있다. 투수진에서는 삼성왕조의 좌완 에이스이자 큰경기에서 더더욱 강했던 장원삼과 필승조의 주축이었던 안지만이 있고 좌완 불펜투수였던 권혁이 있다.

그 외에도 이우선, 신용운같은 불펜에서 쏠쏠하게 활약해주던 선수들이 있었다.

이들의 등장과 성장으로 인해 삼성의 왕조 다지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이후 최형우는 2016시즌이 끝난뒤 FA로 이적하게 되고, 조동찬은 2018시즌이 끝난뒤 은퇴후 코치로 그리고 장원삼도 조동찬과 마찬가지로 2018시즌이 끝난뒤 은퇴기로에 서있다가 부활을 위해서 자진해서 방출을 요청해서 방출당한뒤 LG로 입단하게 된다. 권혁은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고자 2014시즌이 끝난뒤 FA로 이적하였다. 안지만은 알다시피...

이러면서 83라인은 2018년을 끝으로 해체되게 된다.

3. 팀의 역사

3.1. 성적

통산 승리 1위[56], 통산 승률 1위, 통산 팀 홈런 1위, 특정 팀 상대 최다 승리,[57] 통산 팀 타율 1위, 단일 시즌 팀 승률 1위(1985년 0.706), 단일 시즌 팀 안타 1위(2015년 1515개), 단일 시즌 팀 타율 3, 4, 5위(2015년 0.302, 2014년 0.301, 1987년 0.300) 등 '삼성의 기록은 삼성만이 경신할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58]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가 본 팀이며[59] KIA 타이거즈와 함께 KBO의 전통적인 강호로 손꼽히는 팀이다. 다만 두 팀의 강력함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타이거즈는 전성기 때의 무지막지한 강함으로 프로야구를 지배하였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9년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등 강약의 차이가 극명한 기복이 심한 이미지라면, 라이온즈는 소수의 예외 시즌을 제외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꾸준히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90년대 두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타이거즈의 이종범과 라이온즈의 양준혁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삼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승하면 '음, 이번 시즌 좀 잘했구나'라는 분위기[60]이고, 5위 턱걸이로 플레이오프 진출하면 굴욕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만약 6위 이하로 시즌을 마치면? 바로 흑역사로 기록된다. 11년을 참고 나서야 가을 야구를 한 모 구단팬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소리. 심지어 그보다 더한 막장 성적을 찍고 있는 모 구단 팬들이 들으면 아예 때려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 실제로 삼성이 5위 이하로 내려간 시즌은 35시즌 동안 단 6회[61]뿐이다. 전·후기 리그로 치러졌던 때에도 한국 시리즈 탈락은 1983년 단 한 번뿐이니 즉 프로야구 35년 역사상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은 단 6회뿐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러한 역대 팀 평균 성적을 감안한다면 2015 시즌부터 5위 팀 또한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와일드카드전 진출 또한 삼성에 있어서는 굴욕이라고 할 만 하다.

또한 삼성은 최하위는 고사하고 가장 낮았던 순위가 2017년 9위(.396)로, 일본시리즈 9년 연속 우승 등 전통 있는 일본프로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월드 시리즈 최다 우승팀인 메이저리그뉴욕 양키스조차도 최하위 경험이 한 번씩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62]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018년 시즌에 NC 다이노스가 창단 최초로 꼴찌를 기록하면서 한국프로야구 사상 꼴찌를 안한 유일한 팀이 되시겠다.[63][64]

1970년대 대구, 경북 야구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그 전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198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을 뿐 명실상부한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1990년대 중반기에 잠시 침체기가 있었으나 후반기부터 부활하여 다시 리그를 주름잡는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통산 최다 준우승팀으로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에는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에 비해 큰 경기에 약한 팀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현재도 한국 시리즈 준우승 10회로 최다이다.

통산 우승 횟수는 1985년 전·후기 리그 시절의 통합 우승 1회 + 2002년 첫 한국 시리즈 우승, 2005~2006년 2연패 이후로 2014년까지 총 8회로 2위.[65] 일부[66]에서는 1985년 우승을 계산에서 빼기도 하지만, 1985년 삼성이 전·후기 모두 가장 잘해서 한국 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된 것이며, 사실 KBO의 인증으로 봐도 무엇으로 봐도 엄연한 우승이다.[67][68]

2002년 한국시리즈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품 시리즈로 회자되는데,[69] 상대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였다. 1, 3, 4차전을 이기고 2, 5차전을 내준 상태에서 홈구장인 대구에 돌아와서 6차전을 치렀는데, 9회말까지 9-6으로 뒤지고 있었고 그대로 7차전까지 갈 가능성이 컸었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헛스윙만 하던 이승엽이 동점 3점 홈런을 쳐내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고, 다음 타자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쳐서 결국 삼성은 지긋지긋한 준우승의 한을 풀고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였다.

일부 팬들이 콩성이라고 부르듯 지금의 영광스런 날이 있기까지에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준우승만 10회로 이 부문 1위인 비운(?)의 팀.[70] 2002년까지는 삼성도 콩라인에 있긴 있었다.[71] 그리고 준 플레이 오프에도 자주 진출했으나,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악몽도 여러 차례 겪었다(특히 역전패.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게 당한 대역전패는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두산 베어스에 당한 2001 한국시리즈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양준혁이 삼성에 없고 해태, LG에 있었다). 또한 원년에 한국 야구를 먹여 살린 두 개의 만루 홈런의 주인공이 된 허무한 팀.[72]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플레이 오프 진출 기록을 세운 팀으로,[73] 삼성이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때는 1994~1996년, 2009년과 2016년 단 다섯 번. 이는 1990년 플레이 오프가 도입된 이래 최소 기록이다. 사실 2000년에 드림 리그 3위로 떨어지며 연속 플레이 오프 진출 행진이 3연속에서 멈출 뻔 하다가 '드림 리그는 1부, 매직 리그는 2부' 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성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통에 매직 리그 2위였던 롯데 자이언츠보다도 승률이 더 높은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자 억지로 진출했다. 이 때문에 2000년 포스트 시즌에 5팀(!)이나 진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74]

참고로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장 기록. 2위 기록 역시 삼성의 1984~1993년의 10년(1985년 통합 우승 포함). 3위까지 와서야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의 1986~1994년의 9년의 기록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스스로 6년 연속 진출에 성공하면서[75] 다시 기록을 세우는 중이니 이제 기록 경신까지 7년 남았으나 2016년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6년으로 멈췄다.[76]

2015년 정규시즌 1위를 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포스트시즌 관련 또 다른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바로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이다. 이전까지의 최다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은 SK 와이번스의 6연속(2007년~2012년)으로, 2015년 현재 삼성 라이온즈가 역시 6연속(2010년~2015년)으로 타이를 이루고 있다. 이전까지는 5연속 진출로 2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5년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공동 1위에 올라섰다. 3위는 해태 타이거즈의 1986년~1989년 4연속

2011~2015년 정규시즌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사상 처음 정규시즌 5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정규시즌 연속 우승은 1996~1997년 해태 타이거즈, 2001~2002년 삼성 라이온즈, 2003~2004년 현대 유니콘스, 2005~2006년 삼성 라이온즈, 2007~2008년 SK 와이번스 등의 2회 연속 우승 기록이 있는데 삼성이 처음으로 5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넥센 히어로즈를 4승 2패로 꺾고 통산 8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1989년에 기록한 4연패 기록과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는 그 기간 정규 시즌 우승을 1회(1988년)만 달성하였으므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기록은 2013년에 삼성이 기록한 3연패가 유일했으며,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도박 사건으로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되면서 통합 5연패에 실패했고 FA자격을 얻었던 프랜차이즈 박석민이 NC 이적했으며 제일기획으로의 야구단이 이관, 2016년 시즌 들어와 주축선수들의 줄부상과 외국인 선수들이 모두 실패하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순위를 받으며 단 1년만에 팀이 몰락해버렸다. 또한 모그룹도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이전의 짧았던 침체기와는 달리 진짜 긴 암흑기가 도래하고 말았다.

3.1.1. 암흑기

2010년대 초중반까지 전통의 강팀 이미지가 강했던 삼성에게도 구단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현 암흑기 시절 말고도 부진하던 시기는 있었다. 순위로 따졌을 때 삼성의 첫 암흑기라 하면 우용득 감독의 임기 중반인 1994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96년까지의 순위를 가리킨다. 각각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를 기록하며 삼성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이는 삼성 라이온즈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의 6위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두번째로 낮은 순위다. 그러나 이승엽이 홈런왕 대열에 들어서고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고, 이후 2011년 한국시리즈 2014년 한국시리즈 까지 우승하면서 삼성 왕조를 이룩했다.

삼성이 556의 순위를 찍게 된 원인으로는 보통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 감독이었던 김성근 책임론이 거론된다. 김성근 감독이 첫 해 3위, 2년차 4위로 생각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된 후 556을 찍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김 감독의 투수혹사 경향과 엮어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근 본인이 자서전에서 인정한 바 있는데, 프런트가 최대한 지원해줬는데 본인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실책의 결과라 시인했다. 다시 말해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 거기에 급격하게 추진한 리빌딩과 조범현을 비롯한 자신의 제자 중용 등으로 선수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웬만해선 김성근식 감독야구를 옹호하는 김은식 작가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방식이 삼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직전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재계라이벌인 LG를 상대로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 것을 구실로 경질해버린 프런트의 조급함이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그 전년도에는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라는 병크도 있었고.

그리고 당시 창단 이래 최하위였던 6위를 찍은 1996년에는 전년도에 포스트시즌에 탈락하던 다섯 팀[77] 중 네 팀이 올랐는데 유일하게 못 오른게 바로 이 암흑기에 있던 삼성이다. 대구, 경북 팜에서 이승엽 이전까지 괜찮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암흑기의 원인이다.

여담으로 이 비밀번호(?)를 끊은 감독이 바로 롯데 팬 한정으로 금지어모 골프 전문 감독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퍼펙트 골드 감독인 김경문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어 이 때 코치 실전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1차 암흑기 동안.

일부는 부임 첫 해에 6을 찍었다는건 함정이라느니 비하하기도 하지만, 백인천의 잘못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추진했던 리빌딩과 자신의 제자들의 주전화 등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자 우용득 감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장들을 방출하면서 세대교체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부임 첫해인 1993년에는 이 세대교체 효과가 있었으나 많은 선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후 극복을 해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고, 하필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만수 등 경험 있는 고참은 리빌딩 과정에서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삼성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져있던 상황. 오히려 고작 1년만에 팀을 추스리고 유망주를 발굴한 걸 높게 평가하는 게 맞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556의 시기를 암흑기라 여길 수 있긴 하지만, 타팀 팬 입장에서는 겨우 3년 정도 가을야구를 못 가고, 그것도 꼴찌도 하지 않고 리빌딩이 착착 진행되며 기대를 모으던 시기를 어떻게 암흑기라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암흑기였다고 말할 근거가 있겠지만. 그리고 꼴찌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중 수 신기록을 쓰는 등 흥행은 했기 때문에 당시 야구를 봤던 삼성 팬[78]들 또한 이 시기를 암흑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90년대부터 야구를 봐온 삼성팬들이 손꼽는 진짜 1차 암흑기는 556 시기가 아니라 김성근 강점기인 1991~1992년이다.

그 외 선동열 감독 시기인 2009년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고 2차 암흑기라고 부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선감독 재임 시절엔 일단 우승도 두 번 했고 마지막 해인 2010년에도 준우승을 했기에 다른 팀 팬들로서는 '저게 암흑기라고?'라고 기막혀하는 경우가 대부분. 물론 삼성 시절 선감독의 논란 많은 행적과 연속 포스트시즌 기록 좌절, 양준혁의 급작스러운 은퇴 등 삼성 팬 입장에선 암흑의 시기라 일컬을 일이 많긴 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선감독 재임 시기가 2차 암흑기라는 의견이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실제로 선감독 재임기의 삼성은 우승은 두 번 했지만 관중은 줄어드는 추세였다.

이후 삼성 왕조 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침체기에 접어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2016년2017년에 2년 연속으로 9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가장 낮은 최종 순위다. 특히 다른 때와는 달리 모기업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이라 리빌딩과 인기 둘 다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고 있다. 게다가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에도 엮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팬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위에서 말했듯이 2016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성적도 못 내고 재미도 없는 진짜 암흑기가 시작되어버렸다. 16년 9위, 17년 9위... 18년엔 시즌 막판에 혹시나 하는 3년만의 가을야구가 이루어져 순식간에 암흑기 탈출에 성공하...나했으나 마지막부터 지난해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가 치고 올라오며 [79] 5위를 차지했고 삼성은 6위에 만족해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삼성 라이온즈/암흑기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3.2. 연표

굵은글씨는 우승년도

3.2.1. 1980년대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에도 경북지역은 고교야구와 실업야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튼튼한 경북팜을 노리던 삼성그룹이 대구에 정착해 야구단을 창단한다. 그리고 삼성은 프로야구가 생기자마자 강팀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우승에는 복이 없었고, 야구팬들은 이걸 1984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벌인 노골적인 져주기 게임과 결부시켜 "져주기 게임의 저주"라고 불렀다. 게다가 1985년에는 전후기 리그를 모두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를 소멸시키는 어마어마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당시 구단 프런트는 "한국시리즈 우승"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우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흑역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의 활약에 힘입어 강팀의 이미지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

3.2.2. 1990년대

강팀으로 군림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 복이 없는 건 90년대에도 여전했다. 패넌트레이스 우승을 달성하고도 한국시리즈에서 패퇴하는 패턴이 매년 반복되자 팬들도 인내심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김성근 감독 시기에 선수단과 감독의 불화가 최고조에 달하고, 이만수가 반강제적으로 팀을 떠나면서 팬들의 분노는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우용득에 이어 부임한 백인천이 팀을 수습하여 리빌딩에 성공하고, 이승엽이라는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가 등장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 단골팀으로 복귀하게 된다.

3.2.3. 김응용 체제(2001~2004)

우승 DNA의 시작

해태에서 감독을 맡았던 김응용을 감독으로 정한 뒤, 삼성은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김응용은 LG에 있었던 양준혁을 다시 삼성으로 데려오고, 마침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게 사상 첫 우승을 가져다주며 18년에 걸친 '져주기 게임의 저주'를 풀어낸다. 그리고 2004년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을 일단 은퇴하고, 구단 사장으로 영전한다.

3.2.4. 선동열 체제(2005~2010)

두번의 우승

김응용의 후임으로는 선동열이 정해진다. 선동열은 두 번의 우승을 이루었지만 배영수권혁의 혹사로 인한 삼성 팬들의 반감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2009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당시 팀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남기며 2000년대를 마치게 된다. 그리고 2010년 선동열에 대한 삼성 팬들의 반감이 양준혁의 반강제적인 은퇴로 폭발하고, 2010년 시즌이 끝난 후 계약기간을 4년이나 남겨두고 경질된다.

3.2.5. 류중일 체제(2011~2016)

삼성 역사 최대의 황금기, 그러나 암흑기의 시작

선동열의 후임으로는 주루코치 출신의 류중일이 취임한다. 그리고 삼성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가 열린다. 리그 역사상 최강의 불펜진과 탄탄한 타선을 바탕으로 삼성은 왕조의 칭호를 획득한다. 6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5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 4연속 통합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게다가 신축구장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가 완공됨으로써 삼성은 탄탄대로를 달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모기업의 지원이 줄었다는 사실이 표면화되기 시작하고, FA 선수들이 잇달아 팀을 빠져나감에 따라 우승에 집중하고 육성에 소홀했던 그간의 문제점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결국 2016년엔 전시즌 우승팀이 9위로 추락하는 사태를 맞고, 감독은 김한수로 교체된다. 그래도 류중일은 삼성 역사상 가장 지지를 많이 받은 감독으로 남아있다.

3.2.6. 김한수 체제(2017~현재)

삼성 역사 최악의 암흑기

재계약이 유력하던 류중일 감독을 제쳐두고, 급작스럽게 타격 코치 김한수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원래도 차기 감독 후보군에는 있던 인사였지만, 이렇게 빨리 감독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감독으로서의 첫 시즌인 2017년을 맞게 되었는데, 최악의 4월을 보낸 후 결국 KT WIZ에 밀려(?) 9위를 기록하며 명가의 자존심이 제대로 꺾였다. 하지만 다소의 전력 보강을 거친 후 2018년에는 여름에 반등하며 5강 경쟁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KIA에 밀려 최종전을 남겨둔 시점에서 6위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999를 찍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나름대로의 성과를 남겼다. 2019시즌 삼성은 신인 투수들을 조금 더 잘 다듬고, 러프와는 반드시 재계약을 맺어야 한다. 김한수 감독 본인으로서도 감독 재임 마지막 해인만큼, 전력을 다해서 가을야구를 목표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된다.

3.3. 관련 기록들

3.3.1. 역대 구단주

이름 재임 기간 기타
1 이건희 1982~2001 삼성그룹 회장
대행 김정순 1995 당시 제일제당 사장
대행 안덕기 1996~1997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삼성 라이온즈 4대 사장
대행 이종기 1998~1999 당시 삼성화재 부회장
대행 이대원 2000 당시 삼성항공 부회장
대행 현명관 2001 당시 삼성물산 회장
2 2002
3 이수빈 2003~2017 삼성생명 회장, 삼성 라이온즈 초대 사장
4 임대기 2017~현재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사장 겸직

3.3.2. 역대 사장(대표이사)

1985년까지는 단장이었다.
이름 재임 기간 기타
1 이수빈 1982~1983년 4월 26일 당시 제일제당 사장
2 이종기 1983년 4월 27일~1988 당시 중앙일보 사장
3 편송언 1989~1990 제일기획 대표이사 전무
4 안덕기 1991 前 삼성의료기기 사장
5 김흥민 1992~1994 삼성물산 전무
6 이광진 1995~1996 삼성중공업 총괄전무
7 전수신[80] 1997~1999 前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사장
8 한행수 2000~2000년 7월 9일 前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 일신상 이유로 사임
9 신필렬 2000년 7월 10일~2004 삼성서울병원 행정부원장
10 김응용 2005~2010 감독에서 승진, 최초 야구인 출신 야구단 사장
11 김인 2011~2015 삼성SDS 사장
12 김동환 2016~2017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 부사장
13 임대기 2018~현재 제일기획 대표이사[81]

3.3.3. 역대 단장

1983년까지는 이사와 부단장이 혼용됐고, 1985년까지는 부단장이었다.
이름 재임 기간 기타
1 김동영 1982 동방생명 관리이사
2 김삼용[82] 1983~1983년 4월 27일 실업야구 선수 출신[83]
3 노진호 1983년 4월 27일~1983년 11월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겸 체육부장[84]
4 이달종 1984~1985 前 중앙일보 사업국장
5 윤경헌 1986~1989 前 중앙일보 문화센터국장
6 조복래 1990~1992 사무국장에서 승진
7 지용하 1993~1994 중앙개발 이사
8 김대훤[85] 1995~1996 삼성물산 해외업무실 팀장
9 김종만[86] 1997~1999 스카우트팀장에서 승진
10 김재하 2000~2010 제일모직 이사
11 송삼봉 2011~2014년 8월 16일 부단장[87]에서 승진, 건강상 이유로 사임
12 안현호 2014년 8월 16일~2016 삼성스포츠 부장, 최초 사원 출신 단장[88]
13 홍준학 2017~현재 구단지원팀장에서 승진

3.3.4. 역대 감독

이름 재임 기간 성적(승률)
1 서영무 1982~1983년 5월 27일 69승 40패 1무(63.3)
2 이충남[89] 1983년 5월 27일~1983년 10월 31승 36패 3무(46.2)
3 김영덕 1984~1986 202승 114패 2무(64.3)
4 박영길 1987~1988 120승 94패 2무(56.0)
5 정동진 1989~1990 123승 110패 7무(52.7)
6 김성근 1991~1992 137승 112패 3무(55.0)
7 우용득 1993~1995 193승 172패 13무(52.8)
8 백인천 1996~1997 120승 120패 10무[90](50)
9 서정환 1998~1999 139승 115패 4무(54.7)
10 김용희 2000 69승 59패 5무[91](52.4)
11 김응용 2001~2004 312승 204패 16무(60.4)
12 선동열 2005~2010 454승 380패 13무(54.4)
13 류중일 2011~2016 465승 333패 12무(58.3)
14 김한수 2017~

그 유명한 백인천 감독이 개념 있게 감독직에 충실했던 팀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백골퍼 소리는 들었고, 강기웅, 김성래, 이종두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타 팀으로 보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승엽을 발견한 것[92]김태균, 김한수, 신동주, 정경배, 최익성으로 타선의 세대 교체를 한 것만으로도 그가 삼성에서 한 일은 대단하다.[93] 또한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꾸준히 백업 멤버로 활약했던 김종훈도 있었다.

이 멤버를 데리고 1997년 5월 초, 대구에서 정경배의 역사적인 연타석 만루 홈런을 포함해서 3일 동안 LG 트윈스를 상대로 17홈런을 때리며 49점을 내며 발라버리자 뜬금없이 제 3자인 김성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KBO에 공식적으로 조사의뢰를 넣는 바람에 이른바 부정 배트 의심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삼성 타선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엽도 이 시즌부터 홈런왕의 기질을 보인다.

다만 백인천 본인이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포수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옥의 티.[94]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고 전병호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어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타자들을 키운 공 때문에 나중에 삼성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롯데에 가서는 ...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숙원이던 한국 시리즈 우승을 2회(2005, 2006)나 해내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단 공공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욕 먹은 것은 주로 야구 외적인 일이었고[95] 더티 플레이나 빈 볼 시비와 같은 야구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무리한 계투진 운용과 타선의 리빌딩 지연,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2008 시즌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원년부터 이어져 온 골수 삼성 팬들은 전통적인 강타자 중심의 팀 컬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삼성 프랜차이즈 강타자이자 당시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96]

선동열의 임기 6년 동안 삼성 팬덤의 단결력은 올드 팬 vs 2천년대부터 유입된 신규 팬, 연고지 팬 vs 타 지역 팬, 프랜차이즈 팬 vs 감독 팬 등의 대립으로 박살나다시피 했다. MLB 파크, 디씨 삼갤, 구단 공홈은 특정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고 다른 의견은 키배 끝에 잠수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기아 팬으로 의심 받는 현상 있었다. 특히 팀이 아무리 잘해도 안나타 나다가, 선동열 감독만 비난받으면 갑자기 삼성 팬임을 주장하면서 글을 적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이유없는 의심도 아니였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실제로 기아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있어서 완전히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고.

2009년 5위로 마감하면서 12년간 이어오던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행진이 중단되면서 못해도 가을야구는 가던 삼성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2010 시즌 더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양준혁을 사실상 강제 은퇴시키면서 일부 팬들의 반감을 샀다. 추가적으로 일본에서 부진하던 이승엽이 삼성 복귀를 얘기했을 때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며 이를 거부함으로써[97] 삼성의 레전드들을 부정한 선 감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고, 그해 한국 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4전 전패로 참담하게 패배하면서 선동열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삼성 팬들은 급격하게 선 감독의 안티 팬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2011년 류중일 신임 감독이 선동열과 전혀 다른 투수 운용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는 바람에[98] 선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대비되었고, 부임 후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성적을 내며 삼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류중일 감독의 도움으로 이승엽은 8년만에 고향 팀 삼성에 복귀하여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에 선동열 감독의 "와도 자리 없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2014년에 선동열과 마찰을 일으켰던 임창용이 삼성에 다시 복귀하여 마무리를 맡아 불펜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팀 통합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은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한때 기아 팬들은 선동열이 삼성을 두 번이나 우승시켜 줬는데도 싫어한다고 삼성 팬을 깠다. 그러나 기아팬들 역시 처음에는 해태 프랜차이즈 선수출신 선동열 감독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지만[99] 우승은 커녕 몇년간 성적이 바닥을 보이자 이제는 기아 팬들도 대부분 선동열을 깐다. 그리고 하위권을 맴돌던 기아 타이거즈 성적으로 인해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게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3.5. 역대 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포스트시즌 최종 순위 경기 승률
삼성 라이온즈
1982 전기 2위/6팀
후기 1위/6팀
한국시리즈에서 1-4(1무)로 준우승(OB) 준우승 80 54 0 26 0.675
1983 전기 5위/6팀
후기 2위/6팀
진출 실패 4위 100 46 4 50 0.479
1984 전기 1위/6팀
후기 5위/6팀
한국시리즈에서 3-4로 준우승(롯데) 준우승 100 55 0 45 0.550
1985 전기 1위/6팀
후기 1위/6팀
전·후기리그 통합우승[100] 우승 110 77 1 32 0.706
1986 전기 1위/7팀
후기 4위/7팀
한국시리즈에서 1-4로 준우승(해태) 준우승 108 70 1 37 0.654
1987 전기 1위/7팀
후기 1위/7팀[101]
한국시리즈에서 0-4로 준우승(해태) 준우승 108 64 0 44 0.593
1988 전기 5위/7팀
후기 2위/7팀
플레이오프에서 0-3으로 탈락(빙그레) 3위 108 56 2 50 0.528
1989 4위/7팀 준플레이오프에서 1-2로 탈락(태평양) 4위 120 57 5 58 0.496
1990 4위/7팀 한국시리즈에서 0-4로 준우승(LG) 준우승 120 66 2 52 0.558
1991 3위/8팀 플레이오프에서 1-3으로 탈락(빙그레) 3위 126 70 1 55 0.560
1992 4위/8팀 준플레이오프에서 0-2로 탈락(롯데) 4위 126 67 2 57 0.540
1993 2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2-4(1무)로 준우승(해태) 준우승 126 73 5 48 0.599
1994 5위/8팀 진출 실패 5위 126 60 2 64 0.484
1995 5위/8팀 진출 실패 5위 126 60 6 60 0.500
1996 6위/8팀 진출 실패 6위 126 54 5 67 0.448
1997 4위/8팀 플레이오프에서 2-3으로 탈락(LG) 4위 126 66 7 53 0.552
1998 2위/8팀 플레이오프에서 1-3으로 탈락(LG) 3위 126 66 2 58 0.532
1999 매직 1위/4팀 플레이오프에서 3-4로 탈락(롯데) 4위 132 73 2 57 0.562
2000 드림 3위/4팀 플레이오프에서 0-4로 탈락(현대) 3위 133 69 5 59 0.539
2001 1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2-4로 준우승(두산) 준우승 133 81 0 52 0.609
2002 1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4-2로 우승(LG) 우승 133 82 4 47 0.636
2003 3위/8팀 준플레이오프에서 0-2로 탈락(SK) 4위 133 76 4 53 0.589
2004 2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2-4(3무)로 준우승(현대) 준우승 133 73 8 52 0.584
2005 1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4-0으로 우승(두산) 우승 126 74 4 48 0.607
2006 1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4-1(1무)로 우승(한화) 우승 126 73 3 50 0.593
2007 4위/8팀 준플레이오프에서 1-2로 탈락(한화) 4위 126 62 4 60 0.508
2008 4위/8팀 플레이오프에서 2-4로 탈락(두산) 4위 126 65 0 61 0.516
2009 5위/8팀 진출 실패 5위 133 64 0 69 0.481
2010 2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0-4로 준우승(SK) 준우승 133 79 2 52 0.594
2011 1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4-1로 우승(SK) 우승 133 79 4 50 0.612
2012 1위/8팀 한국시리즈에서 4-2로 우승(SK) 우승 133 80 2 51 0.611
2013 1위/9팀 한국시리즈에서 4-3으로 우승(두산) 우승 128 75 2 51 0.595
2014 1위/9팀 한국시리즈에서 4-2로 우승(넥센) 우승 128 78 3 47 0.624
2015 1위/10팀 한국시리즈에서 1-4로 준우승(두산) 준우승 144 88 0 56 0.611
2016 9위/10팀 진출 실패 9위 144 65 1 78 0.455
2017 9위/10팀 진출 실패 9위 144 55 5 84 0.396
2018 6위/10팀 진출 실패 6위 144 68 4 72 0.486
2019 - /10팀 - - - - -
2020 - /10팀 - - - - -
KBO 통산 37시즌 V8 4627 2520 102 2005 0.557

원년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KBO리그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정규시즌 최하위 기록이 없다.[102]삼성이 정규시즌에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

그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3.3.6. 역대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성 소속이었을 때만의 성적.

3.3.6.1. 통산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통산 1위.
삼성 라이온즈 역대 투수
부문 이름 기록 삼성 소속 시즌
등판경기 안지만 593경기 2002~2016
선발 등판 배영수 301경기 2000~2014
완투 김시진 61경기 1983~1988
완봉 김시진 14경기 1983~1988
평균자책점 김시진 2.73 1983~1988
승리 윤성환 125승 2004~현재
패전 배영수 98패 2000~2014
세이브 오승환 277세이브 2005~2013
홀드 안지만 177홀드 2002~2016
이닝 배영수 1837⅔이닝 2000~2014
피안타 배영수 1968개 2000~2014
피홈런 윤성환 198개 2004~현재
탈삼진 윤성환 1288개 2004~현재
사사구 배영수 730개 2000~2014
볼넷 배영수 630개 2000~2014
몸에 맞는 공 임창용 108개 1999~2007, 2014~201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자
부문 이름 기록 소속 시즌
출장경기 박한이 2097경기 2001~현재
타율 최형우 .314 2002~2005
2008~2016
타석 박한이 8627타석 2001~현재
타수 박한이 7318타수 2001~현재
안타 이승엽 2156개 1995~2003
2012~2017
2루타 이승엽 464개 1995~2003
2012~2017
3루타 박해민 41개 2012~현재
홈런 이승엽 467개 1995~2003
2012~2017
타점 이승엽 1498타점 1995~2003
2012~2017
득점 이승엽 1355득점 1995~2003
2012~2017
도루 박해민 224개 2012~현재
사사구 양준혁 1134개 1993~1998
2002~2010
볼넷 양준혁 1043개 1993~1998
2002~2010
몸에 맞는 공 김한수 148개 1994~2007
삼진 이승엽 1344개 1995~2003
2012~2017
병살타 박한이 156개 2001~현재
출루율 양준혁 0.419 1993~1998
2002~2010
장타율 이승엽 0.572 1995~2003
2012~2017

3.3.6.2. 단일시즌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단일시즌 1위 기록.
삼성 라이온즈 투수
부문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임창용 71경기 1999
선발 등판 김진웅 31경기 1999
팀 아델만 2018
완투 김시진 17경기 1983
완봉 김시진 5경기 1983
평균자책점 김시진 2.00 1985
승리 김시진 25승 1985
김일융
패전 이선희 13패 1983
김진웅 1999
세이브 오승환 47세이브 2006
2011
홀드 안지만 37홀드 2015
이닝 김시진 269⅔이닝 1985
피안타 김성길 219개 1989
피홈런 장원삼 29개 2015
탈삼진 김시진 201개 1985
사사구 김시진 136개 1985
볼넷 김시진 121개 1985
몸에 맞는 공 임창용 24개 2002
삼성 라이온즈 타자
부문 이름 기록 시즌
타율 장효조 0.387 1987
타석 박해민 649타석 2018
타수 박해민 576타수 2018
안타 최형우 195개 2016
2루타 최형우 46개 2016
3루타 구자욱 13개 2016
홈런 이승엽 56개 2003
타점 이승엽 144타점 2003
최형우 2016
득점 이승엽 128득점 1999
도루 박해민 60개 2015
사사구 이승엽 124개 1999
볼넷 이승엽 112개 1999
몸에 맞는 공 박석민 27개 2012
삼진 구자욱 138개 2017
병살타 김한수 23개 2004
출루율 장효조 0.475 1983
장타율 이승엽 0.733 1999

3.3.7.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두산 베어스 1982 KS : 1승 1무 4패
1986 PO : 3승 2패
2001 KS : 2승 4패
2004 PO : 3승 1패
2005 KS : 4승
2008 PO : 2승 4패
2010 PO : 3승 2패
2013 KS : 4승 3패
2015 KS : 1승 4패
PO 3승 1패, KS 2승 3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23승 1무 24패
롯데 자이언츠 1984 KS : 3승 4패
1991 준PO : 2승 1무 1패
1992 준PO : 2패
1999 PO : 3승 4패
2000 준PO : 2승 1패
2008 준PO : 3승
준PO 3승 1패, PO 1패 ,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13승 1무 12패
KIA 타이거즈 1986 KS : 1승 4패
1987 KS : 4패
1990 PO : 3승
1993 KS : 2승 1무 4패
PO 1승, KS 3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6승 1무 12패
한화 이글스 1988 PO : 3패
1990 준PO : 2승
1991 PO : 1승 3패
2006 KS : 4승 1무 1패
2007 준PO : 1승 2패
준PO 1승 1패, PO 2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8승 1무 9패
현대 유니콘스 1989 준PO : 1승 2패
2000 PO : 4패
2004 KS : 2승 3무 4패
준PO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3무 10패
LG 트윈스 1990 KS : 4패
1993 PO : 3승 2패
1997 PO : 2승 3패
1998 PO : 1승 3패
2002 KS : 4승 2패
PO 1승 2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10승 14패
쌍방울 레이더스 1997 준PO : 2승 1패
준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2승 1패
SK 와이번스 2003 준PO : 2패
2010 KS : 4패
2011 KS : 4승 1패
2012 KS : 4승 2패
준PO 1패, KS 2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8승 9패
넥센 히어로즈 2014 KS : 4승 2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2패

정규 시즌에 강했던 삼성 라이온즈인 만큼 통산 포스트시즌 진출 횟수 또한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동안 KBO 리그에 존재했었고, 또 현재까지 존속 중인 모든 구단과의 포스트시즌 대결 기록 작성이 가능한 유일한 구단이다.[103]

3.3.8. 역대 주장

파일:SL_emblem.png
-1 [[틀:삼성 라이온즈 주장|{{{#FFFFFF '''삼성 라이온즈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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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 ||

3.3.9. 유니폼 변천사

3.3.10. 역대 선수 명단

3.3.11.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1991 김성길 對롯데 2001 임창용 對한화 2011 차우찬 對KIA
1982 황규봉 對MBC 1992 김상엽 對롯데 2002 임창용 對LG 2012 차우찬 對LG
1983 이선희 對해태 1993 김상엽 對쌍방울 2003 엘비라 對두산 2013 배영수 對두산
1984 김시진 對삼미 1994 김태한 對롯데 2004 호지스 對롯데 2014 윤성환 對KIA
1985 김일융 對해태 1995 김태한 對LG 2005 배영수 對롯데 2015 피가로 對SK
1986 김시진 對청보 1996 김태한 對OB 2006 배영수 對롯데 2016 차우찬 對두산
1987 김훈기 對해태 1997 전병호 對현대 2007 브라운 對두산 2017 페트릭 對KIA
1988 전용권 對해태 1998 조계현 對롯데 2008 배영수 對KIA 2018 윤성환 對두산
1989 진동한 對롯데 1999 김상진 對한화 2009 윤성환 對LG 2019 맥과이어 對NC
1990 김상엽 對태평양 2000 노장진 對SK 2010 윤성환 對LG 2020

3.4. 팀 레전드

※ 굵게 표시된 선수는 라이온즈 영구결번 헌액자
* 이만수(1982년~1997년)
* 장효조(1983년~1988년)
* 김성래(1984년~1996년)
* 양준혁(1993년~1998년,2002년~2010년)
* 김한수(1994년~2007년)
* 이승엽(1995년~2003년,2012년~2017년)
* 진갑용(1999년~2015년)
* 임창용(1999년~2007년,2014년~2015년)
* 배영수(2000년~2014년)
* 박한이(2001년~현재)
* 오승환(2005년~2013년)

3.4.1. 영구결번

한화 이글스와 함께 KBO 리그 소속구단 중 가장 많은 3개의 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KBO_Retired_Samsung_10.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KBO_Retired_Samsung_22.svg.png 파일:KBO_Retired_Samsung_36_svg.png
양준혁 이만수 이승엽

파일:삼성영구결번.png

10번은 장효조양준혁이 달았지만, 양준혁의 번호로 처리되었다. 장효조가 선수협 파동에 연루되어 롯데로 이적해 삼성 소속으로서의 성적이 다소 모자라며, 통산 기록에서도 타율출루율을 제외하면 양준혁장효조를 월등히 앞서기 때문. 타율장효조가 1푼 5리 앞서고 출루율도 1푼 앞선다. 하지만 양준혁 본인은 10번은 장효조 선배의 번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고, 그에 따라 팬들 또한 비록 공식적으로는 양준혁의 번호라도 심리적으로는 공동 영구결번이라고 인정하는 편이다.

22번은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포수 이만수의 번호이며 2003년에 지정되었다. 다만 은퇴식은 치르지 않았다. 구단과 모양새가 좋지 않게 헤어졌기 때문.

이승엽의 36번은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임시결번이 발표되었으며, 2012년부터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시 사용하였고 2017년 10월 3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은퇴식과 함께 영구결번이 되었다.

3.4.2. 상징적 인물

  • 삼성을 이야기하면서 "양신" 양준혁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양준혁은 스탯티즈 기준으로 역대 선수들 중 통산 WAR 2위, 타자 통산 WAR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선수이다. 통산 최다 타석, 통산 최다 볼넷 등의 기록을 가진 "기록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10
  • 다음으로는 역시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가 꼽힌다. 스탯티즈 기준으로 역대 선수들 중 통산 WAR 3위를 기록중인 이승엽은 통산 최다 홈런, 단일시즌 최다 홈런 등 홈런과 관련된 기록들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KBO 리그 대표 홈런왕이였다. 2017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36
  • "헐크" 이만수는 KBO 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로 불린다. 포수 홈런왕 및 20-20을 달성한 박경완이나 3할-30홈런을 달성한 강민호 등 그의 뒤를 잇는 포수들은 꾸준히 배출되고 있지만, 세이버 스탯으로 볼 때 아직 이만수의 아성에 도전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구단과 모양새가 좋지 않게 이별했지만 그의 등번호 22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으며, 삼성 역사상 유일하게 22번을 단 선수가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22
  • "타격의 신"이라고 불렸던 장효조 또한 삼성 팬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5년 연속 최고 출루율, 4번의 타격왕을 차지한 장효조의 활약은 어마어마했다. 팀과 안 좋게 이별했다가 류중일 감독 부임 후 2군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안타깝게도 감독으로써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장효조의 등번호 10번은 이미 양준혁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지만, 양준혁 본인도 "이 번호는 원래 장효조 감독님의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장효조가 삼성 팬덤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삼성 라이온즈 No.10
장효조
  • "꾸준함의 대명사"는. 박한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이다. 삼성을 거쳐갔던 선수들 중 (최동원을 제외하고)통산 WAR 6위를 기록하고 있고 삼성에서만 쌓은 WAR를 따지면 양준혁, 이승엽, 이만수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 역사는 박한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는데 팀의 모든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한 것이 그 징표라 할 수 있다. 삼성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해외 진출 등으로 팀을 잠시 떠나 있었을 때에도 박한이는 꾸준히 팀을 지켰으며, 데뷔 후 단 한 시즌도 100안타 미만을 기록해 본 적이 없을 만큼 꾸준한 타자이다. 그래서 삼성 팬들은 외야수 한 자리는 항상 박한이의 것으로 비워 두고 라인업을 짜곤 했었다. 2016 시즌을 기준으로 레전드의 척도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였으며, 양준혁이 가지고 있는 최다 시즌 연속 100안타 기록에 도전하였지만 시즌 중 부상으로 아쉽게도 타이기록에 만족해야했다. 솔직히 부상 여파를 떠나서 감독이 박한이를 싫어하는지 기용을 이상하게 했다. 홈런치고 타격감 물 오르면 어김없이 다음 경기는 벤치였다.
삼성 라이온즈 No.33
박한이
  • 삼성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를 꼽으라면 단연 김시진이다. 포스트시즌에서의 악몽과 동시대에 존재했던 넘사벽급 투수들 덕분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성적은 선동열. 최동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그 최고의 에이스라고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훗날 김시진은 삼성의 강력한 1선발 계보의 시작점이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No.29
김시진
  • 삼성의 1번 라인인 황규봉-류중일-강동우-윤성환 중 한 명인 류중일은 삼성에서만 선수로 뛴 원 클럽맨. 은퇴 후 코치와 감독 시기도 삼성에서 보낸 진정한 푸른 피의 사나이. 삼성 감독시절까지는 원 클럽맨으로서 출신지까지 연고지와 일치하는 것은 물론, 선수, 코치, 감독 어느 부문에서건 뛰어난 성적을 올렸으니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의 좋은 예시. 또한 감독으로서 4연패를 달성하며 감독시절 착용했던 번호 75번은 현재 임시결번 상태로 경우에 따라 영구결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후 류중일 감독이 엘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해제되었고 그뒤 조규제 코치가 2018년부터 사용하게 된다.
삼성 라이온즈 No.1, 75
류중일

* 팀이 왕조였던 시절들과 팀이 하락세를 달렸던 시절에도 윤성환은 묵묵히 1선발 자리에서 힘차게 공을 뿌린 선수다.
윤성환 하면 역시 떠오르는 수식어인 칼제구, 커브왕 등등 그는 완벽한 제구와 자신의 주무기인 커브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는 피칭을 보여준 선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No.1
윤성환
  • 왕조시절을 책임졌던 불펜들 또한 명실상부 레전드로 기억될 선수들이다. 이들은 안정권KO라고 불리며 삼성의 뒷문을 철저히 봉쇄했고, 7회 우세 시 144연승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남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이드암 투수인 "저승사자" 권오준은 상상을 초월하는 혹사로 세 번의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지만, 그래도 매 번 재기에 성공하여 삼성의 뒷문을 책임져 주었다. KBO 리그 역대 최고의 전문 마무리 투수로 불리는 오승환이나 삼성을 대표했던 불펜 투수인 안지만도 있었으나,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인해 레전드로써의 이들의 위치는 애매해졌고, 정현욱권혁이 팀을 떠나면서 결국 불펜 5인방 중 권오준만 팀에 남게 되었다. 삼성 팬들은 이 당시의 불펜을 회상하다가 지금의 불펜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고 한다...
삼성 라이온즈 No.45
권오준
  • 1993년 입단해 14승 7패 2세이브, 방어율 2.45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등판, 15이닝 181구 2실점 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삼성팬들에게 "라이온 킹"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 후 점점 부진하다가 FA로 들어온 이강철의 보상 선수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였고, 2015년 대구 시민야구장 마지막 경기에서 시구를 하며 삼성팬들을 다시 만났다.
삼성 라이온즈 No.17
박충식
  •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한 다음 팀을 대표하는 프렌차이즈의 역할과 성공적인 선발투수이자 팀의 중심역할을 했던 투수로 자신의 팔꿈치와 승리를 바꾼 투수이며 02, 05, 06, 11, 12, 13, 14년도 우승의 주역이다.
삼성 라이온즈 No.25
배영수

또한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와 심창민이 삼성을 대표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4. 삼성 라이온즈의 팬

4.1. 팬 숫자

원년 멤버가 전원 국가대표 출신인 전통적인 강팀이며 타격의 팀이었기에 야구 초창기에는 해태와 더불어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다.#[104][105] 당시 관중 수가 그 열악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임에도 불구하고 60만 명을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106] 프로야구 인기가 절정이었던 2012년에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는데, 이는 90년대 13,000석이었던 관중석이 고급화로 인해 10,000석으로 줄어들었기 때문. [107]관련기사. 하지만 IMF가 터지고 축구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데다 2003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민 타자인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가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다. 이승엽이 떠나자 관중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였다. 그 후에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시 부흥했지만 선동열식 불펜 야구에 대한 재미의 반감과,[108] 대구의 청년층 대거 유출 등으로 인해 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 등 타 구단들에 비해 팬 숫자 증가가 상당히 더디었다. 그러나 2011년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고 불펜 야구뿐 아니라 과거의 공격력 회복을 선언했으며 또 좋은 성적을 냄에 따라 과거 라이온즈 팬들을 되돌리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국민 타자 이승엽이 복귀함에 따라 과거 인기를 점차 회복하였다. 2016년 현재는 각종 설문조사나 시청률 등을 종합할 때 KBO 리그 인기 팀 중 하나이다. 3년 연속 갤럽 조사 최고 인기팀

삼성의 팬 숫자를 어림할 때 참고하는 자료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팬 선호도 조사가 많이 거론된다. 조사 결과. 물론 통계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KBO 리그 인기 팀이라는 자료로 많이 쓰인다.8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2001년도까지는 한국 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어서 팬이나 구단이나 우승 강박증에 시달리고 선수들은 새가슴 성향을 보였으나, 2000년대에 우승을 여러 번 하면서 이런 점은 고쳤다. 하지만 2000년대는 김응용, 선동열로 대표되는 해태 출신 감독들의 영향으로 골수팬들이 떨어져 나가 인기가 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109] 1990년대에는 1995년에 홈 경기 총 관중수 62만3970명으로 최고점을 찍는 등 내내 50만명 선을 유지했으나 2000년부터 줄기 시작하더니 김응용 감독 취임 이후 2002년에 24만7698명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19만5872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2002년 월드컵 여파와 이를 잇는 한국 최초의 시민 프로구단인 대구 FC에 관심이 더 집중된 것도 이 상황에 한 몫 했다. 이후 내내 30만명 선을 유지하다 선동열 감독 마지막 해인 2010년에 45만5246명으로 40만명 선을 회복했고 류중일 감독 취임 이후에는 45만1483명의 2013년을 제외하고 50만명 선을 유지하는 등 인기를 회복했다. 출처

과거에는 나이 많은 팬들이 많아, 인터넷 상에서는 다른 팬덤에 밀리는 편이였으나, 2011년 부터 삼성 왕조가 시작되면서, 젊은 팬들의 유입도 많아져[110],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대구 시민 운동장이다. 하지만, 구장 자체가 너무 작아서 많은 누적 홈 관중 수를 기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대구 구장의 상태는 최악이다 보니 그 때문에 관람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설문에서 40%를 넘었을 정도다. # 또한 신규 구장이 건설될 경우 관람을 가겠다는 의견 또한 예측 수요는 거의 현재의 2배 수준. # 결정적으로 삼성의 관중동원 미진이 구장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히 2016년 라이온즈 파크가 새로 지어지면서 관중동원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모습이다.[111] 2016년 시즌 초반, 삼성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 구장 바로 다음가는 관중동원을 기록했다. 2016년 5월 19일 기준으로 추월하였다. 그리고 시즌 중후반 팀의 부진으로 관중 동원력이 크게 떨어졌으나 처음으로 80만명을 넘기며 총 85만 1천여명의 관중을 불러모으며 구단에서 예측했던 목표치를 달성했다.

4.2. 팬 성향

삼성 팬층은 2016년 라팍 이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 팬층간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왕조시절 혹은 훨씬 이전부터 삼성을 응원했던 팬들은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했다. 이게 절정을 찍은 게 전성기때 나왔던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심지어 팬들이 직접 "우리는 준플레이오프 같은 건 직관 안 간다"라는 패기를 시전하는 등 매번 가을야구 가는 게 목표인 타 구단 팬들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좋은 성적을 가져다준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한 같은 영남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 이상의 성깔과 대범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문서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 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조용하던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훌리건으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이런 올드 팬들은 대부분 아저씨팬들과 남성팬들이고, 네임드팬 비율 절대다수는 정치인들이다.[112]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다른곳 같았으면 논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보수적인 지역과 팬 컬러에 "사인을 해주기보다는 경기를 이겨라"라는 성향이 짙기에 별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라팍 이전 및 선수층의 대격변으로 팬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구단이 젊은 팬 및 여성 팬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팬층도 서서히 젊어졌다. 지금 삼성을 지탱하는 선수들, 특히 투수진의 나이는 상당히 젊다. 심지어 팀 연령대가 젊다고 말하는 두산보다도![113] 게다가 강민호, 우규민, 이원석 등 외부수혈이 늘어나면서 덕아웃 분위기도 예전 삼성과는 달라졌다. 반면 올드 팬들은 왕조시절 이후 지속된 주요 선수들의 이적과 구단의 지원 축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야구에서 멀어졌다.[114] 또한 라팍으로 이전하면서 잔디석, 외야 패밀리석 같이 가족 단위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생기고, 구단이 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를 많이 개최하면서[115]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찾아와 어린이팬들(일명 '삼린이')의 유입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면서 10~20대의 팬층[116] 유입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올드 팬들이 빠져나갔다. 이전 서술에서 올드팬이 빠져 나갔기 때문에 관중 수익이 악화됐다고 적혀있었지만, 시민구장에서 라팍으로 이전하고 나서는 엄청난 부진과 삽질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 이상, 관중수입이 악화되기는 힘들다. 시민구장때에 비해 라팍의 시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좋아졌으며 좌석 가격도 더 비싸기 때문. 게다가 시민구장의 좌석수는 1만석도 안됐으나, 라팍의 경우 2만 4천명이나 된다.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팬들이나 여성팬, 대구경북에 연고가 없는 타 지역 출신 삼성팬들은 팬서비스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117]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에서도 이런 흐름을 아는지 혹은 제일기획 이전의 영향인지 구단에서도 마케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덕질용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이 개설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삼스타'라고 불리는 관리자의 드립력 넘치는 글들도 올라온다!

삼성 야구를 오랫동안 봤으면 알겠지만 삼성에서 팬서비스나 응원가는 부차적인 요소였다. 팬덤 자체가 보수적인 대구경북의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팀 컬러가 변화하면서 팬덤의 성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지금 삼성은 야구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이 인터뷰마다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것도[118]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3. 네임드 팬

※ 이름에 ★표시가 된 사람은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와 인근 경상북도 출신.

5. 선수단/등번호

6. 응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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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0403 '''1대'''}}}
최봉준
(1995~1998)
-1 {{{#050403 '''2대'''}}}
이시훈
(1999~2000)
-1 {{{#050403 '''3대'''}}}
김용일
(200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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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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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9slcheer.jpg
2019 시즌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응원단장 김상헌
치어리더 (사진 왼쪽부터) 권소영, 박현영, 이수진, 이소영, 안지성, 장혜원, 정지현, 김하연, 고정현, 이예림

6.1. 응원가

7. 사건 사고

8. 지역 연고 학교

8.1. 과거 지역 연고 학교

이하는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이다.
  • 경주상업고등학교 : 1983년 창설, 1985년에 해체되었으며, 지명 대상이긴 했지만 해당 야구부에서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 2003년 창설, 2009년 해체되었다. 홍효의, 추승민 정도가 있지만 프로야구에서 눈에 띄게 활동한 사례는 없다.
  • 대건고등학교 : 1970년 창설, 1977년 해체되었다. 대건고 출신 선수로는 권영호, 박승호, 허규옥, 장태수가 있으며, 해체 당시 선수들은 모두 충암고등학교로 전학가 충암고의 우승멤버가 되었다. 이 때 충암고의 우승 멤버가 된 대건고의 마지막 멤버가 조범현이다.
  • 성광고등학교 : 1981년 창설, 1989년 해체되었다. 유명 선수로는 이상목이 있다.
  • 영남고등학교 : 1968년 창설, 1974년 해체되었다. 실업 야구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은 있었으나, 삼성 창단 시에는 아무도 창단 멤버로 지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 2013년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같은 재단의 자사고인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야구부가 이관됨. 포철공고의 역사는 포철고에 이관되어 있으므로, 위의 해당 문서 참조.

9. 라이벌 매치

오래도록 존속한 팀이다 보니 웬만한 팀들과는 다 라이벌리가 어떻게든 엮여 있다. 전자업계 라이벌인 LG 트윈스부터 해서 경상도권이면서 원년부터 함께한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던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와의 달빛 라이벌리, 포스트시즌 명승부 메이커 두산 베어스, 별도의 문서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했던 한화 이글스,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당시 재계 1, 2위의 간의 라이벌리 등등...

하지만 16, 17시즌 암흑기동안 2년 연속 9위를 찍으면서 kt 위즈라는 라이벌이 생겼다. 그것도 두시즌 10위한 kt에게 우위를 보였으면 모를까 두시즌 내내 8승 8패를 주고받으며 이제는 서글프게도 둘이 라이벌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18년에는 블루윙즈 콤비가[126] 6위와 9위로 멀어졌으나 상대전적은 7승 2무 7패로 동률이다.

9.1. 싸대기 매치

파일:attachment/samsung_lions.png 파일:attachment/doosan_bears.png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두산 베어스
{{{+1 {{{#ed1c24 'Doosan Bears'}}} }}}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싸대기 동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2. 클래식 시리즈

클래식 시리즈

9.3. 재계 라이벌 시리즈

파일:attachment/samsung_lions.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현대 유니콘스
Hyundai Unicorns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재계 라이벌 시리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특이 사항

  • 삼성전자에 새겨진 삼성로고와 조금 다르다. 텍스트만 붙인 것이므로 당연한 것이다.
  • 타자와 포수가 쓰는 헬멧에는 양 옆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이름이 새겨져있다. 2018년 9월 기준으로 SAMSUNG Galaxy Note9 이 새겨져있다.
  •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인해 한국시리즈를 무산 시킨 바 있다.
  • 포스트 시즌 한정 전승준포스트 시즌 한정 전패준이라는 흠좀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포스트 시즌 한정 전승준은 1990년, 포스트 시즌 한정 전패준은 1987년).[127]
  • 삼성에서는 개념이었던 감독이 타 팀에 가서는 역대급 막장이 되거나, 그 반대로 딴 팀에서는 명장인데 삼성에서는 도무지 적응 못하고 말아먹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백인천. 김응룡도 한화에 가서는 막장 운영을 보여주며 커리어의 마지막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류중일 감독도 LG 감독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 대열에 합류 중. 21세기 들어 SK감독 시절에 한해 김성근은 삼성에서는 흑역사급 추태만 보여준 희한한 경우이긴 한데 삼성 감독 시절 이전에도 투수 혹사로 악명 높은 감독이었으니 예외가 있다면 정동진 감독인데 1994년 태평양 돌핀스를 한국시리즈까지 올렸다.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 시절때와 마찬가지로 LG한테 4대0으로 깨지기는 했지만
  • 소속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우면 팀이 지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단, 예외적으로 양준혁이 2000안타를 기록 했을 때에는 팀이 이겼다.(6대1로 승리 상대는 두산 베어스) 물론, 기록의 성립 조건 중 하나가 팀의 승리일 때도 예외이다. 권영호의 프로 통산 첫 100세이브, 김시진이상목의 개인 통산 100승 등, 공교롭게도 100승을 올린 두 명의 투수가 등 번호 29번이라는 게 흠좀무.
  •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쌍두 마차 라인도 있다. 대표적으로 가을야구의 최강자 김종훈-김재걸이라거나. 여기서 쌍두 마차 라인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장효조-김시진(1983~1988) : 역대 최강의 투타 쌍두 마차. 그러나 큰 경기에서는…이후 1989년 롯데로 함께 트레이드되면서 해체.
    • 이만수-김시진(1983~1988) : 대구상고-한양대 동기인 배터리 조합으로 정규시즌에는 이만수는 팀의 4번 타자, 김시진은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위의 장효조와 마찬가지로 큰 경기에는 상당히 약했다.
    • 류중일-강기웅(1989~1996) : 말이 필요 없는 KBO 사상 역대 최고의 키스톤 콤비.
    • 김재걸-전병호(1996~1998, 2001~2008)[128] : 김시진-장효조의 완벽한 리버스 버젼. 얼핏 보기엔 각각 우투우타-좌투좌타로 투타도 정반대고, 김시진-장효조에 비하기도 민망한 초라한 정규시즌 성적을 가졌지만 이 두선수는 전형적인 가을에 미치는 선수였다. 이 두선수는 특히나 2002년 한국시리즈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있어 시리즈의 분위기를 삼성 쪽으로 가져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과장 약간 덧붙히자면 이 두 선수가 없었다면 각각 마해영과 오승환에게 활약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김한수-김태균(1994-2001) : 1971년생 동갑내기에, 중앙대 동기에, 거기에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 출신이 아닌 것에,[129] 여러 공통점이 많았던 쌍두마차 라인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입단, 방위 복무를 마치고 1997년 백인천 감독의 눈에 들어 3루수와 유격수로 자리잡으며 2001년까지 삼성의 내야진을 지켰다. 심지어 등번호마저 김한수가 5번을, 김태균이 6번을 달며 서로 이웃해 있었다. 다만 김태균이 2002년 초 롯데로 이적하며 해체, 그 후 삼성이 계속 우승을 하게 되며 우승 이후 유입된 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쌍두마차.
    • 양준혁-이승엽(1997~1998, 2002~2003) : 말이 필요없는 프랜차이즈 좌타거포 쌍두 마차.
    • 강봉규-김창희(2006~2008) : 두산 시절부터 이어진 외야수의 쌍두 마차.
    • 강동우-박한이(2001~2005) : 삼성의 외야를 책임진 "수비되는 외야수" 라인. 농담이 아니라 당시 삼성은 전임 감독들과 프런트의 뻘짓(;;) 때문에 1루수, 지명타자가 주 포지션이었던 김기태-마해영-찰스 스미스 등이 외야수비를 보는 등 그야말로 외야 코너에 헬게이트가 열린 상태였다.[130] 이 후 2002년 시즌 전 포지션이 겹치는 김기태를 트레이드 카드로 쓰며 외야 자리가 교통정리 될때까지 두 선수가 고생해야 했으며, 이승엽과 마해영이 이적한 2004년 이 후에는 박한이는 상위 타순에서, 강동우는 하위 타순에서 활약하며 팀의 물타선을 간신히 지지했으며 양준혁이 1루수로 전업하면서[131] 다시 구멍이 생길뻔한 외야라인을 잘 메꾸는 역할을 했다.
    • 박진만-박종호(2005~2006) : 현대 시절부터 이어온 키스톤 콤비, 그러나 신명철의 합류와 박종호의 부상, 뒤이은 박진만의 노쇠화 등으로 인해 활약 기간이 길지는 않았던 콤비.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삼성 팬들 간에도 심정수와 함께 최악의 듀오로 뽑는 사람과 삼성의 2회 우승을 시켜준 수훈갑으로 손꼽는 사람, 그저 현대의 전력 약화 외에는 큰 의의가 없다는 사람 등등 팬들의 의견과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 콤비이다.
    • 권혁-권오준(2005~2012) : 권오준이 계투가 되면서 탄생한 그 유명한 쌍권총 조합. 둘 중 한명이 부상당하면 권오원이 대신 들어가기도 했다. 2013년엔 권오준은 수술, 권혁은 부진으로 임시해체 되었으며 권오준의 복귀가 미루어 지는 바람에 사실상 2015년 이후를 기약해야 했으나 FA로 권혁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재결성은 불가능해졌다.
    • 권오준-오승환(2005~2012) : 안정권KO 문서 참조.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냈다. 2013년에는 권오준이 수술을 받아 1년을 날린 탓에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할 듯 싶었으나 오승환이 한신으로 떠나버리며 해체.
    • 박진만-신명철(2007~2010 초) : 수비 한정으로 생각보다 궁합이 잘 어울렸던 키스톤 콤비. 원래 박진만의 짝은 박종호였으나 부상과 노쇠화로 수비능력을 상실하면서 그 공백을 채운 게 투수 강영식을 내주고 롯데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신명철이였다. 하지만 박진만마저 2008년 이후로 잔부상으로 인해 노쇠화가 찾아오며 돌글러브화되었고[132] 1차 지명 출신 김상수가 치고 올라오면서 해체되었다. 두 선수 모두 타율은 이 시기에 어마무시하게 낮았지만 수비 능력 만큼은 리그 탑을 다퉜으며 특히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는 타격이나 투수의 구위가 아닌 야수의 수비만으로도 야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 강봉규-신명철(2009 한정) : 단기 임팩트는 최고였던 라인. 이 해 두 선수의 활약은 다른 연도와 비교해 볼 때 신기할 정도였다.[133]
    • 김상수-신명철(2009~2011) : 상당히 미묘한 콤비. 09년에 당시엔 1차 지명으로 입단한 내야수 유망주였던 김상수가 주전을 위협하자 신명철이 무려 20-20을 달성해 버렸다. 이때 김상수에게 붙은 별명이 신명철 부스터. 이 후 신명철이 10년에 준수한 활약을 했을 땐 김상수가 부상 후유증으로 부진했고, 김상수가 활약한 11년엔 신명철이 본인 커리어 평균인 2할 초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하기 시작해 12년 부턴 1군은 고사하고 3군으로 분류되는 지경에 이르다 KT로 이적하며 해체되었다. 김상수는 각성의 계기를, 신명철은 수비 노하우를 서로에게 주었으나 정작 동시엔 안 터진 엇박자 콤비.
    • 박석민-최형우(2008~2015) : 박석민은 우타, 최형우는 좌타라 삼성의 좌우 쌍포라는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채태인도 성적이 좋으면 여기 끼기도 한다. 2014 시즌에는 아예 이 두 명이 특정 선수 최다 백투백 홈런 크보 신기록을 아예 갈아치워 버렸다. 2016시즌에 박석민이 NC 다이노스로, 이듬해 최형우가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며 영원히 볼 수 없는 듀오가 되었다.
    • 차우찬-장원삼(2010~2016) : 삼성의 2010년대를 책임진 좌완 듀오이자 원투 펀치. 차우찬이 FA로 팀을 떠나고 장원삼도 역시 노쇠화로 인해 선발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해체되었다.
    • 윤성환-장원삼(2010~2016) : 마찬가지로 2010년대의 삼성을 책임진 좌우 선발 듀오. 둘 다 구속보다는 제구 위주의 피칭을 하는 선발들이다. 그리고 둘 다 격년제 징크스가 있는 것도 똑같다(...)[134]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둘이서 4승을 올리며 하드캐리했다. 2018년 현재 윤성환은 꾸준히 이닝을 먹어주며 선발 로테이션을 돌아주는데 장원삼은 급격히 노쇠화가 찾아옴에 따라 연투 능력이 떨어져 사실상 해체.[135]
    • 안지만-오승환(2011~2013) : 역대 최고 수준의 우완 계투 듀오. 13년엔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계투진의 쌍두 마차였다. 지금은 오승환이 해외에서 뛰고 있고 안지만이 불법스포츠도박 혐의로 계약해지를 당하며 영구해산.
    • 오승환-진갑용(2005~2013) : 2005년 이후 우승 5회를 이 배터리가 매듭지었다. 경기 후 특유의 세레모니가 트레이드 마크인 최고의 콤비. 역시 오승환이 해외로 진출하고 진갑용은 2015년 은퇴하며 사실상 해체.
    • 이승엽-박한이(2001-2003, 2012-2017) : 박한이가 입단한 2001년부터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2003년까지 삼성의 좌타 라인을 책임졌고, 2012년 이승엽이 일본에서 복귀하며 다시 결성된 베테랑 타선 듀오. KBO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2002년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유이한 현역 선수들이.. 었으나 이승엽의 은퇴 후에는 박한이가 삼성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현역이다.[136]
    • 야마이코 나바로-이승엽(2014) : 얼핏 보기엔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댓글 창에서는 항상 묶여서 언급된다. 그 이유인 즉슨 클린업 트리오도 아닌데 팀내 홈런 1, 2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 그래서인지 삼성의 타선을 칭찬하는 댓글에는 높은 확률로 1번과 6번이 30홈런 치는 무서운 팀이라는 소리가 언급되곤 한다.
  •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된 그림판 마스코트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잘 나온 디자인이다. 물론 여러 스포츠에서 우려먹긴 했지만(농구, 배드민턴, 럭비단, 배구단)... 2008년부터 팀 로고와 색상이 바뀌었어도 디자인은 그대로인 듯. 가히 본좌급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캐릭터 디자인은 비슷하나 구 버전(1995년~2007년)은 원정 유니폼 색과 같은 파란색, 신 버전(2008년~)은 짙은 하늘색이다. 구 버전 마스코트는 2002년, 2005년~2006년, 신 버전 마스코트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 1995년 시즌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5회와 6회의 대량 득점으로 역전했다가 재역전패를 거둔 바 있다. 그 당시 7회에 11점이나 실점했는데, 이닝 점수를 두 자리로 찍을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11 대신 B라는 글자가 찍혔었다. 2008 시즌에도 SK 와이번스한테 0-18로 처참하게 패배했는데, 8회에 11점을 실점하는 바람에 전광판에 B가 찍히는 진풍경을 13년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는 B성 라이온즈라는 별명을 얻었다. [137] 2013년 6월 6일에는 이닝별 점수는 아니고 총 사사구 수 11개를 기록하며[138] 또 전광판에 B를 띄웠다. 최신식 전광판이 있는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 시즌부터는 이 광경을 볼 수...있다! 3루측 띠전광판이 예전 시민구장 방식을 따르는지라 유일하게 점수판에 알파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선수단 소개는 공홈이 KBO 홈페이지에 비해 더 깔끔하다. 2011년 6월에 새로 홈페이지를 단장했다. 팬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자기 소개 영상으로, 코칭 스태프부터 신고 선수까지 자기 소개 영상이 있다. 단점이라면 피드백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업데이트도 상당히 늦다.
  • 왕조시절의 선수들이 전부 개그 본능이 충만하다. 대표적인 개그맨 박석민을 시작으로 채태인, 정인욱, 안지만, 진갑용 등 거의 모든 선수들이 입담이 좋고 성격이 밝다. 외모에서도 날카롭거나 잘생긴 선수들은 딱히 없고 개구장이 같이 정감가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수들과 외부 영입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덕분에(?) 당시 8개 구단 팀들 중 가장 팀 분위기와 팀워크가 좋았던 팀들 중 하나로 뽑힌다.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 개그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선수들의 외모가 역변하는 것을 삼적화라고 한다. 해당 문서 참조.
  • 한때 마스코트인 사돌이와 사순이(블레오)의 엽기 행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거의 없었지만, 옛날에는 빈볼 시비가 여러 차례 있긴 있었다.(배영수-펠릭스 호세, 이승엽-서승화)
  • 2008년 7월 19일 토요일, 삼성은 1985년 통합 우승 기념 올드 유니폼을 입었는데 초반에는 한화가 2-1로 승기를 잡을 듯했으나 실책과 투수의 폭투로 인해 2-2 동점, 박한이의 역전타로 4-3으로 승리했다. 올드 유니폼은 의외로 예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후로 올드 유니폼 데이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미스터리.[139] 그러나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하지 않아야 할 명분이 있는데,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 2008년, 2015년, 2016년, 2017년 다 끝이 좋지 않았으며 올드 유니폼을 입지 않게 된 2018년에 다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야구계의 저주들에서 올드 유니폼의 저주 참고.
  • 전 응원단장인 김용일이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용일 문서 참조.
  • 오래된 특징으로 유독 외국인 투수와 신인 투수에게 약하다. 외국인 투수에게 약했던 역사는 꽤 오래되어서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부터 내내 약했으며[140] 소위 말하는 먹튀급 선수를 제외하고는 삼성 상대로 성적이 안 좋았던 투수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신인이나 1군 등판 경력이 거의 없어 처음 만나는 투수들에게도 약점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이승우, 강철민, 송창식, 유희관 등. 특히 강철민은 사이버 투수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며 송창식도 버거씨병 이후 복귀해서 첫 승리를 삼성에게 따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좀 심각한 수준. 하지만 두 번째로 만나면 얄짤없다. 그래서 감독들이 삼성 상대 첫경기를 치룬 투수들을 다시 올리면서 "저번에 잘 던졌으니 삼나쌩이겠지"라며 방심하다가 역관광당하는 사례도 많다.[141] 팬들 중에서는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같은 에이스 투수에게도 물론 약하다면서 종특으로 꼽는 사람도 있는데 [142] 그리고 애초에 잘하니까 에이스인 것이고 특정팀에 유독 털리면 에이스 소리 못 듣는다. 류현진이 특정팀에 특별히 약했던가? 다시 말해 에이스니까 강한 거지 삼성이라서 에이스가 이긴 게 아니란 소리.
  • 한때 응원단이 최대 약점이라 불렸던 적이 있다. 배영수와 입단동기인 치어리더 노숙희가 2013년까지 활동했을 정도로[143] 구단에서는 치어리더 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90년대 후반에는 박채경과 김순희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치어리더도 있었으나 몇 년 후, 한 명은 결혼을, 한 명은 유학을 떠나며 치어리더에서 은퇴하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LG 트윈스 → SK와이번스의 강윤이,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심지어 넥센 배트걸 민수진과 롯데 배트걸 신소정도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삼성 치어리더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한 때 삼성 치어리더는 SSAT 성적순[144]으로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이수진을 비롯한 새로운 치어리더들의 등장으로 삼성팬들은 드디어 잔혹사가 끝났다며 기뻐하고 있다. 또한 응원가는 김용일이 응원단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스포츠쟈키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어 여전히 현 응원단장 옆에서 활동하며 희망이 보이질 않고 있다...가 2016년 시즌 종료 후 그만두었다.[145] 1990년대까지는 김한수 등의 괜찮은 응원가도 있었으나, 응원단장 김용일의 장기집권으로 흑역사가 되었다. 팀 응원가에 대해서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도 괜찮다는 평이 있으나, 선수 응원가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수준이다. 그나마 2013 시즌에 모든 선수 응원가가 재녹음되면서 채태인, 최형우 등 일부 선수 응원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KBO 전체 수준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진다는 평이 다수다.
  • 대구 지역을 연고로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여름에 승률이 좋다. 다른팀은 퍼질 때 "대구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듯 선수들이 체력 저하 없이 멀쩡하게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오죽하면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다 죽었다"는 구단 관계자의 농담까지 나올 정도이며, 이를 빗대서 봄데, 여름성, 가을슼, 겨울쥐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법칙은 2013년 들어 깨지나 싶었으나, 개막 한 달동안 단 3승밖에 못 거두며 최하위를 맴돌았던 2017 시즌 여름 6월 월간 승률 5할을 찍고 분위기 전환에 성공하며 뜬금없이 부활했다.
  • 다른 팀 선수들 프로필 사진은 홈 유니폼을 입고 찍으나[146], 라이온즈만 원정 유니폼을 입고 찍는다.
  • 2018년 전반기 기준 유일하게 모기업 외 유니폼 스폰서가 없는 프로야구단, 아니 프로 스포츠단이었다. 다른 팀은 유니폼만이라도 비 모기업 제품을 쓰지만 삼성 라이온즈만 광고 패치는 물론이고, 유니폼과 모자 및 의류 제작사까지 삼성 계열사 것이다. 다른 삼성 프로 스포츠의 경우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자이크로, 서울 삼성 썬더스아디다스[147],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휠라[148]가 유니폼 제작을 맡으며, 추가로 수원과 서울은 매일유업을 외부 유니폼 스폰서로 두고 있다. 2018 후반기부터 대구은행 광고를 모자에 붙이며 일단 종결되었다.
  • 나무위키 내에서는 삼성팬이 의외로 초강성팬덤 중 하나다. 대구아재 문서 참고.
  • 올드 멤버 중에서 유독 대구 지역 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출신이 많다.[149] 이에 해당하는 선수들로는 류중일(경북고-한양대), 장효조((대구상고-한양대), 이만수((대구상고-한양대), 김성래(대구상고-한양대), 김용국(대구상고-한양대), 김현욱(경북고-한양대), 성준(경북고-한양대), 오대석(대구상고-한양대) 등이 있다. 한편 이승엽도 경북고 졸업이후 한양대 진학을 고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현재는 대다수가 고교 졸업이후 바로 프로에 입단하는 경우가 많아 지면서 스쿼드에서 대구 지역 고교 - 한양대 출신의 선수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박해민이 한양대 출신[150]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팀의 호성적이 묻히지만 2루수 자리가 저주라도 받았는지 약점이자 공백인 팀이다. 강기웅을 제외하면 그나마 정경배,신명철이 돋보였으나 유리몸 조동찬이나 백업 수준의 김재걸,박정환같은 그저그런 선수들도 2루수였다. 공수겸장인 나바로가 삼성 통합우승 시절 드디어 이 자리를 매웠으나 그마저 떠나고 난 이후는 뭐...... 2019년 스프링캠프에서는 이학주와 김상수가 번갈아 유격수-2루수를 보고 있다.
  • 과거항목에도 몇번 있다가 지워졌지만 선수 일부의 팬서비스가 좋지 않기로 악명높다. 차차 개선되어야 할 부분. 실제로 2017 시즌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당시 임시 주장[151]이던 박해민이 향후 팬서비스 개선에 힘쓰겠다고 홈구장 경기 종료후 선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아졌다. 김상수의 경우 팬서비스 및 사회공헌도 찬사를 받는 중.
  • 한 때 개념운영으로 칭송받던 팀이었으나 라팍으로 옮긴 후 막장운영으로 비판받고 있다. 합리화를 외치며 선수들을 안 잡아 전력이 급락했고[152], 한정판 물품 무한 재판매로 크게 비판을 받기도 했고, 성적 나쁘다는 핑계로 팬 행사를 안 하기도 했으며, 선동 금지라는 핑계로 현수막을 제지하기도 했다. 점차 나아지는가 싶더니 2018년 스페셜 유니폼 데이를 취소하는 등 아직 막장기가 남아 있다.
  • 이 팀을 거쳐간 투수들 중 NPB로 진출한 선수들은 한결같이 악성 안티 요미우리 성향이 높은 팀으로 가게 됐다.투수로 입단했던[153]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갔다
  • 초창기 창단 멤버 구단들 가운데 한국시리즈 우승이 가장 늦다. OB 베어스가 전신인 두산 베어스가 리그 창립년도인 1982년도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고[154] 삼성과 더불어 '진골' 창단 멤버인 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첫 우승을 이뤄냈으며[155], 해태 타이거즈가 전신인 KIA 타이거즈도 1983년 첫 우승을 달성한 반면 라이온즈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무려 2002년, 그러니까 21세기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셈이다. 구단의 첫 우승이 1985년이지만[156] 이 당시엔 전, 후기리그 통합우승이었던 관계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진짜 우승으로 간주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157]. 넓게 적용해 MBC 청룡이 전신인 LG 트윈스까지 창립 멤버로 쳐준다면 트윈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1990년이므로 제일 늦은 것이다.
  • 우승을 확정지은 지역은 3개로, 오래된 순서대로 부산(1985), 대구(2002, 2013), 서울(2005, 2006, 2011, 2012, 2014)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상대는 총 8팀으로, 한국시리즈 나가봤다는 팀들은 웬만하면 삼성과 최종우승을 다투었다고 보면 된다. 유일하게 삼성과 못 만난 한국시리즈 경험구단은 NC 다이노스다.
  • 2006년 한국시리즈를 제외하고 항상 3루 덕아웃에서 뛰어나와 우승 순간을 만끽했다. 1루에서 우승했다고 뛰어나오는 일은 광주에서 KIA 타이거즈를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볼 일이 없다.[158]
  • 의외로 잘했던 선수들 중에 호남 출신 선수들이 꽤 많다. 박충식, 임창용, 오승환, 최형우, 차우찬 등등... 클래식 라이벌이라는 롯데 자이언츠[159]와는 반대되는 부분이다.
  • 21세기 들어서 對삼성 경기 이후 상대팀 감독의 경질 또는 사퇴 소식이 잦아지면서[예시] 다른 의미로 감독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김성근은 세번 경질
  • 팀 자체 징계가 타 팀에 비해 상당히 세다.[161]경기도 치르기 전에 음주운전을 저질러 바로 임의탈퇴당했고, 정형식도 사람은 안 쳤다만 음주운전 사실을 선수가 은폐했다 걸려서 바로 임의탈퇴당했다. 도박 사건에 연루된 임창용벌금형 선고 즉시 방출, 안지만은 도박 사건 연루때는 재판을 못 해서 살았긴 했다만, 얼마 뒤 도박사이트 개설 가담이 걸려서 즉시 계약 해지당하고 계약금 중 일부인 21억원을 도로 내놔야 했다. 자체 징계강도 면에서 비교되는 팀이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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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RT 보고서[2] 135,000주[3] 29,999주[4] 29,000주[5] 그외(3.0%) 6,001주[6] 리그 연고지 제도 개편으로 인한 경북 연고 소멸일 뿐, 1차 지명 권한이 날아간 건 아니다. 현재 1차 지명 권한은 대구/경북/강원 영동[7] 전 제일기획 사장. 성균관대학교 이사 겸직[8] 다만, KBO 리그 기준으로 만원관중은 24,000명이다.[9] 제2구장[10]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1] 경기 당 평균 11,825명[12]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3] 경기 당 평균 3,292명[14] 다른 한 팀은 롯데 자이언츠[15] 롯데 자이언츠보다 약간 진한 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리 블루에 더 가까운 색.[16] 로열 블루나 코발트 블루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17] 야구단이 독립법인화 된후 축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도 법인회사로 전환했다. 그 외 다른 스포츠단들은 전부 모기업의 부서로 포함된다.[18] 삼성전자 27.5% + 삼성SDI 1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 14.5% + 삼성전기 12.5% + 삼성물산 7.5% + 제일기획 3.0% + 이건희 2.5% +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 2.0%. 삼성 라이온즈는 나눠갖지말고 다 같이 공동 운영 하게 하려 했다고..[19] 삼성전자(27.5%) 삼성SDI(15.0%) 삼성전기(12.5%) 삼성물산(9.5%) 등.[20] 17,18,19시즌 문서 FA계약란 참조[21] 사족으로 이 시기의 로고는 같은 모 기업에서 운영한 축구단의 로고와 엇비슷하다.[22] # 스탯티즈 기준 역대 팀 wRC+ 1위는 1987년 삼성이고, 상위 10팀 중 7팀이 삼성 라이온즈이다.[23] 198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비운의 천재타자 강기웅도 무시 못 할 타력을 과시했다.[24] 이와 같은 철혈식 운영으로 인해 김태한, 박충식, 김상엽 등의 에이스들이 쉴 새 없이 구르다 내쳐졌다. 타자도 예외는 없어서 강기웅, 양준혁 등의 스타 플레이어를 내쳐버렸다. 다만 양준혁은 김응용 감독 덕분인지 다시 돌아왔다.[25]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만수는 은퇴식도 없이 방출됐고 김시진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유로 최동원과 트레이드됐으며 장효조 역시 석연찮은 이유로 롯데로 트레이드됐다.[26] 그마저도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전에 은퇴식을 경험한 선수는 류중일 딱 한 명에 불과했다. 김현욱의 은퇴식부터는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갈증을 해결한 이후의 일이다.[27] 그러나 이 시절 화이트삭스 코치로 활동하고 있던 이만수에게 코치직 및 차기 감독 자리를 제시하였다가 갑자기 없던 일로 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자세한 건 이만수 항목 참조.[28] 대표적으로 조계현, 임창용, 김현욱, 김기태 등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김동수, 이강철을 FA로 데리고 왔다.[29] 심지어 심정수의 4년 60억 FA 기록은 무려 9년동안이나 최고액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가 2013년에 와서야 깨졌다.[30] 김응용이 삼성감독 부임 이후 첫해인 2001년에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지만, 두산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해태시절 9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면서 모두 우승했던 김응용감독은 이때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무릎을 꿇게 된다. 하지만 2002년에는......[31] 물론 1985년 통합 우승이 있고, 1987년 통합 1위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정하는 우승 팀은 한국 시리즈 우승 팀이었다. 1985년 한국 시리즈는 열리지 않았고, 1986년부터 바뀐 룰에 의해 전후반기를 휩쓴 팀도 2위 팀과 한국 시리즈를 치르게 되었는데 1987년 한국 시리즈가 그러했다. 전후반기 1위 팀이라는 위치에 맞지 않게 2위였던 해태 타이거즈한테 0-4 셧아웃을 당하면서 한국 시리즈 우승은 무산되었다.[32] 타이거즈 출신의 감독(김응용, 선동열) & 코치진(김평호, 정회열, 조계현 등) + 유니콘스의 FA 선수(박종호, 박진만, 심정수)[33] 물론 디스 건 그 감독돈으로 우승한 적이 있었다.[34] 당시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지만 두산에 부족한 좌완 계투를 내주면서 두산 포수 중 서열이 떨어지는 채상병을 데려온 것에 분노하는 삼성 팬들도 많았지만, 두산 이적 후 지승민의 행보를 생각하면 어딜 봐도 삼성이 남는 장사를 했다.[35] 화면에 나온 '구단이 돈이 없다'는 말은 '프로야구단 법인이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의미[36]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삼성은 2010년대 들어 외국인 영입은 폭망했다.[37] 사실 냉정하게 보면 2013년 FA에서 삼성에게 필요한 것은 삼성 취약 포지션인 2루수 정근우 정도밖에 없었고, 이마저도 충분히 대체 선수가 있는만큼 딱히 필요없다는 얘기가 중론이었다. 당장 정근우의 나이를 봐도 현 삼성 2루를 맡고 있는 조동찬김태완과 별 차이도 없고, 도리어 내줘야 하는 보상선수로 인한 출혈을 더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정근우가 70억이라는 거금을 받자 정근우에 대한 토론은 모조리 종료되었다. 심지어 이후 2014 시즌이 시작되자 2루수 자리에 일찍이 인터뷰를 했던 대로 특급 외국인을 데려오며 종지부를 찍었다.[38] 이때 상당히 많은 팬들이 분노했다. 대구 연고지 출신 선수였던 점도 있고, 본인이 "삼성 감독까지 하고싶다"라고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팀을 떠났다는건 팀 분위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상당한 지적을 받고 있다.[39] 팬들은 이원석이 65억, 우규민이 27억이라고. 그만큼 이원석이 가격에 비해 말도 안되는 엄청난 활약으로 혜자 FA가 되었고, 반면 우규민은 허리부상으로 삼성이 데려온 목적인 선발투수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사실상 추격조/패전조로 출장해 욕을 먹고있기에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40] 한 예로 2012년 시즌 후 심창민은 연봉 협상 전 전년도에는 재활 때문에 최저연봉 2400만원을 받았다가 올해는 1군에 올라왔으니 5000만원을 받자고 생각했었는데, 협상 과정에서 프런트가 처음부터 "내년 연봉은 5500만원으로 하자."라 말해 당황한 나머지 "6000만원 주세요."라고 말실수를 했다가 프런트가 "그래."라고 답해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밖에 롯데 시절 매년 연봉 협상에 프런트와 대립각을 세웠던 신명철은 삼성 이적 후 늘 그랬듯이 연봉 협상 때 연봉 고과와 관련된 자료를 잔뜩 준비해 갔으나, 본인이 예상한 금액보다 구단측 제시 금액이 더 높아 군말 없이 바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일화도 있다.[41] 이만수는 은퇴식도 없이 방출당했고, 김시진과 장효조는 선수협 파동으로 롯데로 트레이드 됐다.[42] 김응룡 감독은 구단 측에서 별로 불러오고 싶지 않아 했던 양준혁을 다시 삼성으로 불러들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43] 예외야 있겠지만 대부분의 삼성 팬들은 김응룡 감독이 처음 삼성에 부임했을 때는 크게 반발했지만 첫 한국 시리즈 우승 이후에는 그러한 여론은 수그러들었고 선동열 감독과는 다르게 싫어하지 않는다. 일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던 2002년 한국시리즈의 이미지가 워낙 좋고 이후에도 부임하고 있는 동안 포스트시즌은 꾸준히 진출한 데다 팀 정체성을 딱히 바꾼 것도 아니라 삼성 팬들의 김응룡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또한 그가 공들이거나 그의 임기 중에 데려온 2010년대 우승에 일조했고, 감독 퇴임 후에도 6년 간이나 삼성 라이온즈 사장을 맡는 등 삼성에 대한 애정을 쏟아줬기 때문에 오히려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44] 2012시즌 이후 배영수의 선발 경기는 꾸역꾸역 버텨가며 6이닝 이상 찍는 타입이다.[45] 삼성시절에도 잔부상은 자주 안고 있었지만 STC가 있기에 빠른 회복과 재기가 가능했었다. 하지만 NC로 이적한 후에는 2016년 커리어하이를 뒤로하고 계속해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부상때문에 수비도 자주 못나가고 지명타자로 출장하기까지 한다.[46] 특히 타격의 달인 장효조, 헐크 이만수, 특급 에이스 김시진 등 삼성 구단 초창기 역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세 명은 모두 삼성 소속으로 은퇴식을 치르지 못했다. 장효조김시진은 선수 말년에 쫓겨나듯 아랫 동네 팀으로 트레이드됐고 이만수는 구단 내에서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한 슈퍼스타였음에도 노쇠했다는 이유로 구단으로부터 방출당해 삼성 구단과 좋지 않게 결별했다. 2002년 이전까지 우승에만 목을 맸던 삼성 구단이 레전드 스타들을 얼마나 홀대했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47] 현역으로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연도만 기록.[48] 삼성 트레이닝 센터의 경우에는 삼성 그룹 소속의 스포츠 구단뿐 아니라 삼성에서 후원하는 기타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도 이 곳에서 훈련과 재활을 한다. 국내에서는 가장 체계적인 최첨단 훈련 시설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49] 엄밀히 말하면 배영섭은 지명 후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렸고 최형우는 경찰청 입대 후 방출당하고 제대 후 재영입한 케이스라 삼성 2군에서 성장한 경우라고 보기는 힘들다.[50] 사실 KBO에서도 현재 뛰어난 우타거포는 많이 희귀한 편이다. 리그 정상급 우타거포는 박병호최정정도다.[51] 비단 경주고 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고교야구부에 대한 학교 차원의 지원이 점점 줄어 가면서, 이에 대구·경북 중학야구 유망주들 중 몇몇 선수는 지원이 후한 타 지역 고교로 진학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삼성 리틀야구단 출신임에도 천안 북일고로 진학한 김인태가 있다.[52] 성적만 놓고보면 성공작이긴 하다[53] 시즌 중 방출[54] 시즌 중 재영입[55] 양력생일은 1984년 1월이다.[56] 2011년 9월 11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그리고 2018년 7월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500승을 달성했다[57] 2003년 롯데 자이언츠 전 18승 1패. 그래서 롯까들은 꼴리건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시나리오로 마산 구장에서 롯데가 졌거나 홈런 맞았을 때, 상대가 삼성인 경우를 꼽았는데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 특정 팀 상대 최고 승률은 1982년OB 베어스삼미 슈퍼스타즈 상대로 전승을 해서 10할의 승률을 찍었으나, 당시엔 팀간 16경기씩 했다.[58] 2017년까지는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2003년 213개)까지 갖고 있었지만 2017년에 SK 와이번스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서 무려 234개의 홈런을 터뜨리고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 기록을 경신하면서 2위로 밀려나게 됐다.[59] 17회로 리그 최다. 프로야구가 2016년 기준 출범 35년이니까 2년에 1번 꼴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셈이다.[60] 실제로 대구와 경북 지방의 '야구 팬은 아니지만 굳이 응원하라면 고향 팀인 삼성을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는 매년 10월 말에 공중파에서 삼성 경기를 중계하니까 원래 야구는 10월 말까지 하는 스포츠라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61] 팬들에게 암흑기로 불리는 1994~1996년과, 5위를 기록한 2009년, 내외부의 모든 악재가 터진 2016년~2018년.[62] 요미우리의 경우엔 1975년 시즌이 구단 사상 유일한 최하위, 양키스의 경우에는 지구제 도입 전엔 1966년, 지구제 도입 이후에는 1990년.[63] 그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도 창단 이후에 꼴찌를 한번 한적이 있고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와 쌍방울 레이더스 조차 꼴찌를 한적이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보면 삼성이 꼴찌를 하더라도 NC보다 늦게 할 가능성이 있다. 단, 현대는 삼청태의 역사를 가져갔기에 최하위 기록이 있지만, 엄연히 현대 이름을 쓰면서 꼴찌를 한적이 없다. 2005년 팀 최하위인 8개팀 중 7위를 기록 한 적은 있다. kt 위즈가 꼴찌를 몇번 하긴했지만 이는 신생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64] 대표적인 예시로 KBO 리그 최다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도 두번씩이나 꼴찌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2005년, 2007년),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도 암흑기 기간동안 꼴찌를 밥먹듯이 했으며, 2009년 이전까지 꼴찌가 딱 하나뿐이었던 한화마저도 LG, 롯데와 마찬가지로 꼴찌를 밥먹듯이 한 걸 생각하면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도 꼴찌를 한번도 하지않은 삼성이 대단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65] 코시 기준으로만 따져도 7번으로 역시 2위다.[66] 당시 삼성 구단에서도 85년 전·후기 선수권 대회 통합 우승을 한국 시리즈 우승으로 여기지 않아 선수단에 대한 포상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계속된 채찍질이 2002년 한국 시리즈 우승 이전까지 지나친 부담감으로 구단을 짓누르게 되었다. 물론 이후 2005년 우승 당시 사용한 V3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삼성 구단에서도 85년 통합 우승을 정식 우승의 역사로 여기고 있다.[67] 단 한국 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던 탓에 코시 기준으로는 첫 우승이 아니다.[68]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 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면서 몇몇 분탕꾼들이 V7 대신 V6(+1)이라는 문구로 85년 통합 우승을 평가절하 하지만 KBO에서는 정식 우승으로 인정하므로 V7이 맞다. 몇몇 언론들이 이런 기사들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69] 보통 최고의 한국시리즈로는 최동원의 1984년, 역전 백투백 2002년, 수중 혈투 2004년을 꼽는다. 참고로 3시리즈 모두 삼성이 출전.[70] 그 다음은 두산 베어스의 6회.[71]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이 있긴 했지만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아니라서.[72] 개막전과 한국 시리즈 만루 홈런을 모두, 그것도 이선희라는 투수가 둘 다 당했다. 안습 아닌 안습.[73] 이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을 깬 감독이 2009년 당시 선동열 감독. 별 의미없는 계산이지만 2009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2015시즌까지 총 19시즌 연속이 된다.[74] 물론 KBO에서 유일한 사례. 반대로 1995년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정규 시즌 4위에 올랐지만 3위인 롯데 자이언츠와 4.5게임차로, 4위와 3위의 승차가 3.5게임 이상 벌어지면 준 플레이 오프를 하지 않는다는 당시 KBO 규정에 따라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1995년 포스트 시즌은 3팀으로 치러졌으며 단일 리그(1989~1998, 2001~) 기준으로는 이 또한 KBO에서 유일한 사례.[75] 2010년~2015년.[76] 포스트 시즌 최장 진출 기록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0년대 후반에 강호로 도약한 SK 와이번스가 2007~2012년 6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과 동시에 한국 시리즈 최장 연속 진출까지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3년에 귀신같이 몰락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된 사례와, 암흑기를 벗어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 시즌 단골이 된 롯데 자이언츠도 5년 연속이 전부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롯데 자체적으로는 최다 연속 가을 야구 진출이지만, 대신 1999년 이후로 한국 시리즈 진출은 신생팀 NC를 제외하고 가장 오래 진출을 못하고 있다.[77] 1993~1998년 시즌의 경우 3위와 4위 승차가 3.5경기 이상이면 4위는 탈락하고 3위가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중 1995년은 3위인 롯데와 4위인 해태가 4.5게임의 승차였기 때문에 해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5년의 포스트시즌은 OB, LG, 롯데 이렇게 3개 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78] 그러니까 지금 와서 당시 성적 보고 그때가 암흑기였구나 하는 팬들 말고 진짜 그 당시에 야구를 본 삼성팬들.[79] 10월 1일 기준 최근 10경기 7승 3패[80]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 때 입당해 16대 총선에서 수원 팔달 선거구에 출마, 남경필과 겨뤘으나 낙선한 뒤 곧바로 정계에서 은퇴했다.[81] 성균관대학교 이사 겸임.[82] 중학생이던 1957년에 동인천중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야구사에 기록된 최초의 퍼펙트 게임.[83]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도 했었지만 은퇴 후 한동안 야구계에서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부단장으로 선임됐다. 게다가 부산 출신이라 대구·경북 연고인 삼성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김삼용이 부단장이 된 건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추천했기 때문(김삼용과 천신일은 중, 고교 동문이다.).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팀 성적을 빌미로 서영무 감독의 작전권을 빼앗아 이충남 조감독에게 이양하는 등 잡음만 일으키다 결국 잘렸다.[84]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1985년 빙그레 이글스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85]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18년간 감독을 했으며 해설가로도 유명했던 故 김계현의 아들.[86] 삼성 라이온즈의 초창기 프런트 중 한 명으로, 선수단 매니저로 프런트 활동을 시작했다.[87] 2006년 신설됐는데, 송삼봉 부단장이 단장으로 승진한 후 후임 부단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88] 삼성 입사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이 삼성 라이온즈였다.[89] 공식적으로는 감독 대행이었지만 삼성 구단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90] 감독대행 성적 포함[91] 장효조 감독대행 성적 포함[92] 사실 이승엽을 발견한 건 우용득 감독이었고, 그런 이승엽을 최정상급 타자로 발전시킨 것도 박흥식 코치와의 합작품.[93] 이때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의 내야 라인은 당시 최강급으로 평가 받았다.[94]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백인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백인천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중견수)다. 포수로 뛴 시기는 고등학교 때와 실업 야구 농협 시절, 그리고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초창기 때였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외야수로 활약했다.[95]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팀 순위가 두세 계단씩 오르내릴 만큼 규모가 작은 한국 야구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자기 팀의 주축 선수를 빼가는 삼성이 다른 팀 팬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96] 사실 이만수의 팬들은 대부분 4~50대의 아저씨들이 많고 신세대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2012년 이후 SK에서의 삽질 때문에 이만수를 꺼리는 삼성 팬들이 늘기도 했다.[97]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는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 정도인데 셋의 평균 타율은 2할 2푼 정도, 그들의 홈런 개수를 모두 더한 것이 2011 시즌 일본 퍼시픽 리그의 이승엽의 홈런 개수와 같을 정도로 막장이었다.[98] 소위 '믿음의 야구'라 하는데, 5회 정도면 선발을 내려 버리는 선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믿고 길게 쓰는 투수 운용으로 인해 불펜의 과부하를 최대한 방지하고 선발들의 책임감을 강화시켜 2011 시즌 삼성의 선발, 불펜의 성적을 모두 크게 향상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99] 일부 팬들은 종신감독 시켜야 한다고까지 했다.[100] 당시 룰상 전후기 모두 1위 차지하면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우승이었다. 준우승은 삼성 라이온즈를 제외한 팀들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롯데 자이언츠.[101] 그러나 1985년과는 달리 통합우승은 하지 못했고 2위팀간 플레이오프를 해서 이긴 팀과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해야 했다.[102]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가 창단 첫 시즌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하위를 기록하지 않았으나 그 NC마저 2018년 시즌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면서 삼성이 유일한 정규시즌 최하위 미기록 구단으로 남게 되었다.[103] 타 구단은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대결 전적이 없다. 해체된 구단까지 합치면 삼성 라이온즈와 현대 유니콘스가 전부이며 현존하는 구단 중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유일.[104] 당시 야구 국가대표의 70% 이상이 대구, 경북 출신이었다[105] 대구, 경북 지역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을 실패해서 타 지역 고교에 간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106] 2011년 관중 수보다 무려 10만 명(20%)이나 많은 수치.[107] 그리고 그 10,000석조차 2010년대에는 9,200석으로 줄어들었다[108] 과거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이-마-양으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선동열식 야구는 말 그대로 정반대인 만큼 기존 팬들의 반감을 샀고, 재미있는 야구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신규 팬 유입도 적었다.[109] 이들은 1980-90년대에 삼성 골수팬들을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장본인들이고, 그들이 삼성을 지배하고 있어서 당연히 좋아할 래야 좋아할 수 없었다.[110] 그래도 여전히 아저씨풍이 10개 구단들 중 가장 강력하다.[111] 군인 팬들도 있는데, 공군에서도 제11전투비행단, 공군방공포병학교에서 많이 보러 간다. 부대에서도 야구 이야기 하면 삼성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편.[112] 삼성 라이온즈는 전체적으로 봐도 남성팬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래서 삼성 관중측을 비추면 비교적 칙칙한 남정네가 득시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관중수입의 절대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왕조시절에는 아재팬들로만으로도 충분히 경기장을 쉽게 채웠다.[113] 구자욱이 그나마 나이가 많은 축에 들지만 93년생이다. 마무리 투수 최충연은 97년생이고, 양창섭은 99년생.[114] 심지어 마케팅팀장의 팬 무시 등으로 프런트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 내용은 해당문서 참조[115] 대표적으로 주말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를 개방하고 어린이와 부모가 캐치볼을 할 수 있는 그라운드 캐치볼 행사.[116] 특히 구매력이 센 여성팬층이 늘었다. 반면 올드 팬들은 이런 흐름 속에서 자신들이 소외당한다고 느끼기도 했다.[117] 타지역 출신 팬들의 경우 팬서비스로는 톱을 달리는 SK식 서비스도 싫어한다. KBO 리그 문서의 팀명에 지역명이 없는 이유에서 보듯 워낙에 지역을 강조 일변도이다 보니 심리적 거리감이 드는지라.[118] 당장 2018 시즌 팀 슬로건도 "NEW LIONS!"이다.[119] 공교롭게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그의 지역구에 있다[120] 여의도 국회의원들 중에 삼성팬이 많다. 표창원, 조응천, 추미애, 이종명, 권칠승, 밑에 나오는 유승민, 홍의락 그외에도 더 있다. 하지만 기아팬이 가장 많다.[121] 선수 개인 인스타그램에 가보면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 시민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122] 본인의 페이스북에 푸른색 원정 김상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김상수 유니폼 개시가 새 컬링 유니폼 개시 순간보다 더 설렌다"고(...) 삼밍아웃을 해버렸다.[123] 이후 이승엽의 은퇴식에서도 사회를 맡았었다.[124] 그런데 2017년 9월 5일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에 초청되어 신진식 감독이 시구를 맡았고 박철우 선수가 시타를 맡았는데, 신진식 감독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반면 박철우 선수는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흠좀무. 소속팀 삼성화재가 대전 연고팀인 만큼 대전 연고팀끼리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이뤄진 시구라서 그랬다. 영상[125] 영동 지역(강릉시)만. 영동 지역(강릉시-강릉고등학교,속초시-설악고등학교)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연고 구단 및 1차 지명을 할 권한을 갖고 있다. 영서지역은 한화 이글스가 담당한다.[126] 양 팀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수원"과 "삼성"에 대응한다.[127] 전승준의 경우 2003년 SK 와이번스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전패준은 1987년 삼성이 기록한 게 유일하다.[128] 1999년~2000년에는 김재걸이 중간에 군 복무를 하면서 빠졌다.[129] 김한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광영고를 졸업, 김태균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를 졸업했다.[130] 당시 삼성은 포지션에 상관없이 장타력이 좋은 타자이면 무조건 영입한 뒤 아무 포지션에나 때려박던 케이스가 있었고, 1루수 자리에는 이미 이승엽이 있었기에 저 중 하나는 무조건 좌익수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131] 그도 그럴 것이 양준혁의 데뷔 당시 포지션은 1루수였다. 이승엽이 데뷔한 후에 외야수로 옮겼다가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하며 다시 1루수도 돌아온 것.[132] 결국 삼성과 계약 기간이 1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잔여 연봉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상호 합의 하에 자유계약선수로 풀렸으며 고향팀인 SK로 이적해 말년을 보내다 은퇴한다.[133] 두 선수 모두 평소에 두 자릿수 홈런도 쳐 보지 못한 선수였으나 2009년 둘 다 20-20 클럽에 가입하며 2008년까지 본인들이 쳤던 홈런 개수를 이 한시즌에 모두 경신해버렸다.[134] 윤성환은 짝수해-장원삼은 홀수해 징크스가 있다.[135] 참고로 윤성환이 장원삼보다 2살 더 많다[136] LG에 남은 현역은 이동현박용택이 있다. 사족으로 박한이와 박용택은 등번호가 33번으로 같다.[137] 2001년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게 3회말에 발비노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 가 줄줄이 두들겨 맞으면서 무려 12점을 내줬다.[138] 단, 이건 삼성이 기록한 게 아니고 상대팀인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기록. 즉 삼성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한 게 11번이라는 뜻. 이때의 B성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B성을 떠올렸다 카더라.[139] 현재 올드 유니폼 데이를 가장 많이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하여 두산으로 간판 바꾼 두산 베어스도 올드 유니폼 행사를 자주 하고 있고, 그리고 여태껏 해태의 무게에 짓눌리던 KIA 타이거즈도 최근에 한 차례 열었던 바 있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올드 유니폼 데이 따위는 꿈도 못 꾸는 한화 이글스조차 2012년 들어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었다. 그런데 여태껏 한번도 모기업이 바뀐 적도 없고 어른의 사정 따위는 없는 삼성이 왜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지 않는 것인지는 의문. 올드 팬들을 생각해서라도 한번쯤은 더 해도 되지 않을까?[140] 이 역사의 종결자는 2005~2006 시즌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었던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2005년 대 삼성전 4승 0패 방어율 1.73/06년 대 삼성전 3승 0패 방어율 1.19. 삼성을 상대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으며 이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 팬들은 캘러웨이를 금지어 취급할 정도다. 전 두산 베어스, kt 위즈 소속 더스틴 니퍼트도 삼성 상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 팬들이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의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나마 니퍼트는 한국시리즈에서 이겨 보기라도 했지만 삼성 공식 페이스북에서 박해민 삼행시로 '해로운 미국인 니퍼트'가 선발되는 등 드립소재로도 많이 써먹는 편.[141] 이게 삼성의 전력 분석 시스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분석외에도 자신의 팀 선수에 맞춰 상대방 선수의 공략점을 분석을 하는 것의 비중이 큰데 그 때문에 맞춤데이터가 적은 선수의 경우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모양[142] 물론 에이스들도 날 잡으면 털긴했다. 에이스도 사람이다.[143]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년까지 총 6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현재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치어리더 팀장으로 있다.[144] 실제로 각 구단에서 응원단은 외부 이벤트기업과 계약하여 SSAT는 드립으로 봐도 된다.[145] 현재는 V-리그 여자배구단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다.[146] 한화도 2018년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바꿨으나 주황색도 엄연한 홈 유니폼이다.[147] 아디다스와의 킷 스폰서 계약은 종료.[148] 18-19부터 켈미.[149] 최근에는 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 예가 조무근.[150] 서울 토박이로 초, 중, 고, 대학교를 서울에서 마쳤다.[151] 김상수가 지속된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드러누웠다.[152] 그러나 2017년 이원석을 저렴한 가격에 잡고 저비용 고효율 FA라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153] 삼성 오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접고 타자를 시작했다.[154] 그 제물이 바로 삼성이었다.[155] 이 역시 삼성.[156] 이를 이룬곳이 바로 부산이었다.[157] 사실 구단 자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가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구단 역사에 포함시킨것.[158] 이건 KIA도 마찬가지라 대구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1루에서 뛰어나올 일은 더 이상 없다.[159] 특별히 잘했던 호남 출신 선수들은 없었다. 유망주라 데려왔더니 망한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예시] 2002년 KS 패배 이후 LG 김성근 감독 경질, 2011년 8월 19일 문학 삼성전 9:0 패배 이후 SK 김성근 감독 경질, 2013년 KS 패배 이후 두산 김진욱 감독 경질, 2014년 4월 22일 대구 삼성전 1:8 패배 이후 LG 김기태 감독 사퇴[162], 2016년 문학 삼성과의 최종전 이후 SK 김용희 감독 재계약 불발[163], 2017년 5월 21일 대전 삼성전 8:7 패배 이후 한화 김성근 감독 경질, 2018년 6월 3일 마산 삼성전 8:7 패배 이후 NC 김경문 감독 사퇴[161] 2011년 6라운드 4순위로 지명되었던 김준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