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03 16:52:50

이승우(1988)

이승우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LG 트윈스 등번호 54번
텔레마코(2006) 이승우(2007~2009) 곤잘레스(2010)
LG 트윈스 등번호 40번
정다흰(2011) 이승우(2012) 김효남(2013~201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1번
김종호(2010~2012) 이승우(2013) 이우선 (201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4번
정우양(2012~2013) 이승우(2014~2015) 최선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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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승우(李承禹 / Seong-woo Lee)
생년월일 1988년 12월 8일 ([age(1988-12-08)]세)
본관 전주 이씨 양녕대군[1]
신체 183cm, 83kg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청원초 - 청원중 - 장충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7년 2차 3라운드 지명(전체 19번, LG)
소속팀 LG 트윈스 (2007~2012)
삼성 라이온즈 (2013~2015)

1. 소개2. LG 트윈스 시절
2.1. 데뷔 후 ~ 2011 시즌2.2. 2012 시즌
3. 삼성 라이온즈 시절
3.1. 2013 시즌3.2. 2014 시즌3.3. 2015 시즌
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투수.

2007년 2차 3순위로 LG에 지명받게 되는데, 사실 지명받을 때 왼손 팔꿈치 부상을 숨기면서까지 지명되었을 정도로 유망주였다. 청원고에서 장충고로 전학을 가 이용찬, 전진호[2]와 삼각편대를 형성하면서 장충고 개교 이래 첫 전국대회 우승인 대통령배 우승과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끌면서 2006년 장충고의 2관왕을 일궈낸 주역이었다.[3]

2. LG 트윈스 시절

2.1. 데뷔 후 ~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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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진용과 함께 개엘지새끼들이 우릴 죽이려고 해로 유명한 '갤진용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 때 주동자인 노진용은 잔여 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4] 김회권은 경기에 아예 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다. 또 한 명인 사이버투수 김유선은 실전에 쓸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이거 때문에 경기 출장하고 못하고도 없다. 결국 갤진용 사건은 운동선수의 SNS 사용 중 안 좋은 예로 꼽히는 사례로 남았고, 이 넷은 전부 LG를 떠나게 되었다.

거기다 2군에서 1군으로 올리고, 1경기도 뛰지 못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보내자 본인 싸이에다 "이럴거면 왜 올렸습니까 씨X"이라는 감독 욕을 해 엘지팬들의 극딜을 받기도 했다.

2009년 시즌 전까지는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다가 당시 감독이였던 김재박 감독이 순위싸움에서 밀려난 뒤 젊은 유망주들에게 계속 등판기회를 주었고 이때 이승우는 처음으로 등판하게 되는데, 롯데전에 1군 데뷔를 하였고 결과는 0⅔이닝 4실점. 연속 삼진을 잡아놓고도 제구가 흔들리며 점수를 헌납하다 강판되고 말았다.

그러나 9월 16일 당시 무시무시한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SK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7⅓이닝 1실점이라는 충공깽한 호투로 무재배에 일조했다. 덕분에 SK는 신나게 KIA를 추격하다 제동이 걸리게 된다. 이승우의 호투로 많은 엘빠들을 설레게 했으나, 그 후 3경기에서 팀의 DTD기운을 받고 안습한 투구를 보였고, 결국 2009년 성적은 5경기 3패 평균자책점 8.31으로 처참했다.

13이닝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4사구를 16개나 줄 정도로 1이닝당 사사구 비율이 1은 그냥 넘어가버리는 제구력 때문에 더 이상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2010년을 앞두고 경찰청에 입대하게 된다. 하지만 팔꿈치 통증이 또 한번 발생해 결국 2011년 4월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시즌 막판이었던 9월 복귀해 5경기에서 3⅓이닝을 던지며 2홀드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2.2. 2012 시즌

본인도 공을 던지면서 너무 오버페이스한 것 같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무리를 했지만 재활조와 진주 잔류군에서 훈련을 하면서 마침내 1군에 콜업되었고, 2012년 시즌을 앞둔 삼성과의 첫 시범경기에 선발 투수로 나와 4이닝 2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이 137km/h에 불과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변화구 위주로 던져 삼성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았았고 막강 타선인 삼성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개막하고 4월 8일 다시 만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선발 투수로 나와 1회 2사 만루 위기를 넘기며 차츰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4⅔이닝 80투구수 5피안타 2탈삼진 1볼넷 1사구(死球) 무실점으로 괜찮은 피칭을 보여줬다. 투구수 때문에 5회 이전에 내려간 것이 아쉽지만 LG 마운드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팀은 이날 3:2로 승리하여 12년 만에 개막전 2연승을 달렸다.

4월 19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원정 경기에서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을 해서 5⅔이닝을 79개 투구수 4피안타 1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최고 구속이 130대 후반인데도 불구하고 한화 타자들은 잘 맞추지 못하였고 시즌 첫 선발 등판 때는 차우찬을 패전 투수로 만들고 이번 등판에서는 류현진의 승리를 막았기 때문에 상대팀 에이스를 잡는 킬러로 우뚝 섰다. 스코어 0:0 상황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승패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팀이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로 승리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 후에도 꾸준히 선발 로테를 지켰지만 시즌 중반이 되도록 승리가 하나도 없었다. 본인이 잘 던진 날에는 타선이 도와주질 않아서 패전을 먹거나 승리를 챙기지 못했으며 못 던진 날에는…. 과거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였다. 최악의 LG 좌완 선발의 승운

6월 7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선발로 등판, 스코어 1:1이던 4회초에 2011년 신고 선수로 LG에 입단하고 2012년에 정식 선수로 전환된 이천웅이 역전 투런 홈런을 쳐내며 드디어 1승을 챙기나 했지만, 5회말에 곧바로 이천웅의 실책성 플레이와 오지환[5]의 실책이 터지면서 스코어 3:3이 되었고, 6회에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시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승크라이 이승우는 이날 5이닝 94투구수 6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3탈삼진 3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정성훈의 솔로 홈런으로 4:3으로 재역전승했다.

6월 13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 본인은 5이닝 93투구수 7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3탈삼진 4실점 4자책점으로 부진했지만 타선이 난데없이 폭발해주면서 팀이 스코어 6:10으로 이겨서 프로 데뷔 후 첫 승을 챙겼다.

케익빵은 덤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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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케이크는 팬이 유원상에게 준 케이크였다.

3.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2년 11월 26일 LG로 이적한 정현욱의 보상선수로 삼성 라이온즈로 가게 되었다.

이승우를 LG가 풀어주어서 삼성으로 가게된 데에 대해 야구관련 커뮤니티의 LG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약간 아쉽긴 하지만 뭐 이 정도면 선방이다"가 대세다. 같은 팀의 좌완 기대주 최성훈, 윤지웅, 신재웅 등등과는 달리 이승우는 고교 때 어깨부상이 심해 수술 경력도 있는데다 최고 구속이 겨우 141km/h밖에[7] 안 되고 공이 가볍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더군다나 괜찮은 체격인데도 어깨수술을 하고 나서 구속이 크게 줄어들고 이 떨어진 구속이 반등할 가능성이 정말로 희박했다.[8]

제구력에 있어서도 156km/h 던지던 서승화, 권혁의 제구랑 비슷하다는 혹평도 있었고 그냥 왼손 최원호 혹은 김용주 LG 버전이라는 박한 평가가 나온지라 LG팬들도 그리 아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9] 설령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선수층이 두껍기로 유명한 삼성이기에, 당장 1군에 들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단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서 고쳐보든가

그러나 삼성전에서의 호투 때문인지 보상선수에 대한 기대심리인지, 이승우 보상선수 기사의 댓글의 삼성팬들은 다양한 변화구에 좌완계투진의 힘이 될거라며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물론 삼성팬들의 이 기류는 각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이구 동성. 반면 LG팬들의 반응은 뭐 그정도 가지고 설레발이냐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상반된 반응의 이유라면 원래 해당구단의 팬들은 그 해당구단 위주의 경기를 우선으로 봄으로 타 구단 선수, 즉 남의 떡이 커보이는 심리가 작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전술했다시피 어깨부상 수술경력, 평균 135km/h의 느린 구속, 제구력 문제 등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사실이다. 2012 시즌 김기태 감독이 어째서 구위가 더 좋은 최성훈을 계투로 쓰면서도 이승우를 계투로 쓸 생각을 못했는지는 충분히 답이 나오는 부분이다.

따지고 보면 잘 던졌다는 삼성전에서도 피안타율 0.278을 기록했고 무엇보다 느린 구속에 아직도 투피치 투수라는 점이 삼성 이적후 1군 진입이 난망이라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2012시즌에도 어깨통증이 있어서 변화구로 한 시즌 버틴 거라는 얘기도 있다. 또한 치명적인 단점은 몸이 더럽게 늦게 풀린다는 거다. 구위도 위력적이지 못한데 좌완이면서도 계투로 못 쓴 건 이게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KIA 타이거즈두산 베어스가 보상선수로 홍성민김승회를 내어주면서 저 둘에 비하면 이승우는 진짜 선방 중의 선방이라는 반응이 많아졌다. 슈퍼세이브 뒷 이야기에 의하면 데뷔초 SNS사건이라든지 멘탈면에서 좋지 않은 평가가 있었고 2012시즌 잠시 반짝했을 때 야수가 실책을 하자 대놓고 표정이 일그러지는 등 이런 점에서 LG구단에서 찍혀 있었던 듯하다. 당시 같이 주목받은 최성훈이 똑같은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었으며, 이승우의 이런 제스처가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뒷말이 나왔다. 결국 포텐의 한계와 멘탈문제로 찍혀서 보호선수에 못 들은 거라는 게 중론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삼성 라이온즈의 재활 시스템이 국내 프로야구단 최고라는 것인데, 계투로서도 매리트가 있는 좌완의 이점을 살리려면 최고구속이 올라와야 하고 여기서 재활을 확실하게 한다면 이승우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3.1. 2013 시즌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서 재활하다 5월 중 경산 재활군에 합류했지만 결국 실전 등판은 못 한 채 시즌을 마쳤다.

3.2. 2014 시즌

몸상태가 영 안 좋은지 육성선수로 전환됐고,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2014년에도 1번도 등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승우를 삼성에 보상선수로 오게한 정현욱 역시 폭망했기에 LG의 정현욱 영입은 삼성과 LG 양쪽에게 다 손해가 되었다. 다만 삼성은 두둑한 보상금을 받았기에 금전적인 이익은 챙겼다.

3.3. 2015 시즌

1군 스프링캠프에서 또 다시 탈락하며 2년 간 소식이 없기에 수많은 팬들을 낙담시켰으나, 성준 투수코치가 지휘하는 3월 단기 재활캠프에 장필준, 박민규, 김건필과 함께 가기로 했음이 알려졌다. 기나긴 재활 단계는 아무래도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름이 언론에 언급되었다. 류중일 감독이 직접 이름을 언급하며 후반기 합류를 기대한다고 말했으나, 결국 이번 시즌도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삼성 이적 이후 3년간 내리 재활만 한 것. 결국 시즌 종료 후 선수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LG 1군 기록 없음
2008
2009 5 13 0 3 0 0 0.000 8.31 13 0 16 9 12 12 2.154
2010 경찰 야구단에서 복무
2011
2012 21 82⅓ 2 9 0 0 0.182 5.90 104 9 37 46 57 54 1.65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3 삼성 1군 기록 없음
2014
KBO 통산
(2시즌)
26 95⅓ 2 12 0 0 0.143 6.23 117 9 53 55 69 66 1.720


[1] 양녕대군 16세손, 시조 40세손 '승(承)' 자 항렬. 이승만의 동생 뻘이다. 설마 내가 생각한 그 이승만? 네. 맞아요.[2] 언더스로 투수로 황금사자기 MVP를 수상했다. 중앙대로 가려다 동국대로 진학했고 대학 졸업반 때도 프로 지명을 받지는 못했다. 해병대 군복무 후 중학교 코치로 일하고 있다.[3] 3루수 김명성(1988), 2루수 김동한, 1루수 이두환도 고교 동기다. 김명성은 중앙대 진학 후 투수로 전향했다.[4] 2012년 12월 14일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다. 개돈성새끼들이 경산밥 먹여서 우리를 배터지게 한 후 죽이려고 해![5] 오지환은 이전에도 실책으로 이승우에게 패전을 안겨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오지환이 이승우를 싫어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6] LG 트윈스갤러리의 한 유저의 누나가 만든 케잌으로 후에 유원상의 말에 따르면 안쪽은 다 파먹고 남은 걸 케잌빵 한 것이라고 한다.[7] 이것도 전광판 뻥튀기빨이 있었던 데다 그나마 한 번 나왔다. 실질적인 최고구속은 138km/h정도가 맞다. 그리고 후반기에 연패만 적립할 때는 135km/h 넘기기도 버거웠다.[8] 고교시절에도 구속자체가 빠른 선수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시절에만 어깨수술을 두번 받았다. 이승우의 구속 리바운딩 가능성에 회의가 제기되는 게 이 때문.[9] 그래도 권혁이나 최원호는 이승우와는 비교 상대가 아니다. 권혁은 전성기 때에는 구위 하나로 리그를 평정한 최상위 불펜이었고, 최원호 역시 그럭저럭 선발로 4점대는 해주는 투수였다. 둘 다 큰 경기에서 말아먹은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